에스라 풀어 읽기 · 6장
이 장의 자리 · 3–6장 · 성전 공사와 방해
성전의 완성과 출애굽의 기억
에스라 6장은 잃어버린 문서 한 장을 찾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페르시아 왕 다리오는 오래된 왕실 기록을 조사하도록 명령합니다. 바벨론의 문서고를 뒤지던 사람들은 마침내 메대 지방의 성채에서 고레스가 남긴 명령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 장은 성전 봉헌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완성된 성전에서 백성은 유월절을 지킵니다. 이집트에서 구원받았던 조상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며, 그들은 다시 여호와야훼 앞에서 절기를 지냅니다.
왜 성전 건축의 완성을 이야기하는 장이 유월절로 끝날까요?
에스라 6장은 왕실 문서고에서 시작하여 유월절 식탁으로 나아갑니다. 그 사이에서 제국의 명령이 어떻게 바뀌고, 성전이 누구의 이름으로 세워지며, 돌아온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들을 ‘온 이스라엘’로 이해하는지가 드러납니다.
바벨론에서 찾던 문서가 메대에서 발견되다
그러자 다리오 왕이 명령을 내렸고, 사람들은 바벨론에서 보물을 보관하는 문서고를 조사했다.에스라 6:1 · 본디새김
앞 장에서 총독 닷드내는 고레스가 실제로 성전 건축을 허락했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리오는 그 요청에 따라 기록을 조사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런데 뜻밖의 장소에서 문서가 발견됩니다.
메대 지방의 악메다 성채에서 두루마리 하나가 발견되었다.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쓰여 있었다.에스라 6:2 · 본디새김
악메다는 고대의 엑바타나로 알려진 도시로, 오늘날 이란의 하마단 지역과 연결됩니다. 메대의 중요한 중심지였으며 페르시아 제국에서도 왕실이 이용했던 장소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넓은 영토를 다스렸고, 왕실의 활동과 행정 기록이 하나의 도시에만 집중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바벨론에서 찾지 못한 기록이 다른 왕실 거점에서 발견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리오에게 중요한 것은 이전 왕이 실제로 어떤 명령을 내렸느냐는 문제입니다. 총독이 보낸 보고와 유다 장로들의 진술을 판단하려면, 그들이 말한 고레스의 허가가 사실인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기록을 열어 보니 단순한 건축 허가 이상의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고레스의 명령은 건축 허가보다 훨씬 구체적이었다
「고레스 왕 첫해에 고레스 왕이 명령을 내렸다.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집, 곧 희생제물을 바치는 장소인 그 집을 짓게 하라. 그 기초를 놓게 하라. 높이는 육십 큐빗, 너비는 육십 큐빗으로 하라.』」에스라 6:3 · 본디새김
에스라 1장에서 고레스의 명령은 주로 귀환과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선포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왕실 기록에는 건축에 관한 훨씬 구체적인 사항들이 담겨 있습니다. 건물의 높이와 너비가 규정되어 있고, 돌과 목재를 사용하는 방식이 언급되며, 건축 비용을 왕실에서 지급하라는 명령도 들어 있습니다.
두 기록의 표현은 완전히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둘 다 고레스가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명령했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합니다.
‘희생제물을 바치는 장소’라는 설명
3절에서 성전은 단순히 ‘하나님의 집’이라고만 불리지 않습니다. 「희생제물을 바치는 장소인 그 집」이라는 설명이 덧붙습니다.
성전은 단지 민족적 정체성을 기념하는 건물이 아닙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는 예배가 이루어집니다. 성전 건축에 관한 왕실 기록이 이러한 기능을 언급한다는 것은, 재건이 종교적 활동을 다시 가능하게 하는 일로 이해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육십 큐빗이라는 숫자는 무엇을 뜻할까?
고레스의 명령에는 성전의 높이와 너비가 각각 육십 큐빗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왕기상 6:2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길이를 육십 큐빗, 너비를 이십 큐빗, 높이를 삼십 큐빗이라고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새 성전이 솔로몬의 성전보다 훨씬 크게 지어졌다는 뜻일까요?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에스라 6:3에는 길이가 별도로 언급되지 않으며, 제시된 수치가 완성된 건물의 실제 치수인지, 건축이 허용된 최대 규모인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고레스의 명령에 기록된 수치를 근거로 제2성전의 실제 크기를 완전히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왕실에서 비용을 지급하라 — 4절
「『큰 돌 세 단과 새 목재 한 단으로 쌓게 하라. 비용은 왕실에서 지급하게 하라.』」에스라 6:4 · 본디새김
유다 장로들은 성전 건축이 고레스의 허가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발견된 기록은 고레스가 건축을 허락했을 뿐 아니라 왕실 재정으로 지원하라고 명령했다는 사실까지 보여줍니다.
따라서 건축을 조사하던 페르시아 관리들은 이제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단순히 공사를 허락할지 말지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 왕이 명령한 건축 사업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도록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빼앗긴 기물은 ‘제자리’로 — 5절
「『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꺼내 바벨론으로 가져갔던 하나님의 집의 금은 기물들을 돌려보내게 하라. 각 기물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의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그것들을 하나님의 집에 두어라.』」에스라 6:5 · 본디새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가져간 금과 은의 기물들은 바벨론의 신전에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그것들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려보내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에서 반환은 단순한 재산의 이동이 아닙니다.
그 물건들이 원래 속해 있던 장소와 용도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여기서 성전의 회복은 건물의 재건과 예배에 필요한 물건들의 반환을 함께 포함합니다.
공사를 조사하던 관리들이 공사를 지원하게 되다
다리오는 건축 현장을 조사하던 관리들에게 그곳에서 물러나라고 명령합니다.
「이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을 그대로 두어라. 유다 사람들의 총독과 유다 사람들의 장로들이 이 하나님의 집을 그 자리에 짓게 하라.」에스라 6:7 · 본디새김
페르시아 관리들은 그 일을 대신하거나 건축의 주도권을 차지하라는 명령을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유다 사람들이 성전을 짓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리오의 명령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또 이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이 유다 사람들의 장로들을 위해 너희가 해야 할 일을 내가 명령한다. 왕의 재산, 곧 강 건너편에서 거둔 세금으로 이 사람들에게 비용을 성실히 지급하여 일이 중단되지 않게 하라.」에스라 6:8 · 본디새김
건축 허가를 확인하러 온 관리들이, 왕의 명령에 따라 건축 비용을 지급하는 책임까지 맡게 됩니다.
세금이 왕에게 위험하다는 말에서, 세금으로 성전을 세우라는 명령으로
아닥사스다 시대의 고발자들은 예루살렘이 재건되면 왕에게 조공과 세금과 통행세가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4:13). 그 편지에서 예루살렘의 재건은 왕실 재정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반면 이 장에서 다리오는 강 건너편 지역에서 거둔 세금으로 성전 건축을 지원하라고 명령합니다.
물론 두 사건은 다른 시대에 발생했으며, 앞의 고발은 성읍과 성벽 재건에 관한 것이고 여기서는 성전 건축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공사를 두고 같은 왕이 판단을 뒤집었다고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돈을 주는 것에서 제사에 필요한 물품을 공급하는 일로 — 9절
다리오의 명령은 한층 더 나아갑니다.
「또 필요한 모든 것, 곧 하늘의 하나님에게 바치는 번제에 쓸 어린 수소와 숫양과 어린양,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들이 말하는 대로 날마다 빠짐없이 그들에게 주게 하라.」에스라 6:9 · 본디새김
어린 수소와 숫양과 어린양은 번제를 위한 동물들입니다. 밀과 소금, 포도주와 기름은 제사에 수반되는 예물과 관련됩니다. 이러한 항목들은 레위기 2장과 민수기 28–29장에 기록된 제사 규정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왕이 재정 지원의 권한을 행사하지만, 제사의 구체적인 필요를 정하는 역할은 현지 제사장들에게 맡겨집니다. 정기적인 예배가 계속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급하라는 명령입니다.
왜 페르시아 왕은 제사를 지원하는가? — 10절
「그들이 하늘의 하나님에게 향기로운 제물을 바치고, 왕과 왕의 아들들의 생명을 위해 기도하게 하려는 것이다.」에스라 6:10 · 본디새김
다리오가 여호와야훼의 성전을 지원했다고 해서, 그가 오직 여호와야훼만을 섬기는 신앙으로 개종했다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본문에서 왕이 직접 제시하는 목적은 자신과 왕실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것은 고대 제국의 종교 정책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 지역의 신전을 지원하고 그 지역의 신들에게 왕실의 안녕을 구하게 하는 일은 제국 통치의 안정과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사는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 성읍을 위해 여호와야훼께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에스라 6장에서도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외국 왕과 그의 아들들의 생명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물론 예레미야의 명령과 다리오의 요청은 성격이 다릅니다. 하나는 예언자가 유배민들에게 전한 가르침이고, 다른 하나는 왕이 제사 지원의 이유로 제시한 말입니다.
여호와야훼의 백성은 페르시아 왕을 섬기는 백성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살아가는 현실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하늘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그 제국의 왕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전을 보호하는 명령에 담긴 두려운 형벌
다리오의 명령은 성전 건축과 예배를 지원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또 내가 명령한다. 누구든 이 명령을 바꾸면, 그 사람의 집에서 들보 하나를 뽑아 그를 들어 올려 그 들보에 꿰어라. 이 일 때문에 그의 집을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라.」에스라 6:11 · 본디새김
고대 제국의 왕실 명령에는 법령을 어기거나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포함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집의 들보를 뽑아 처형에 사용하고 집을 쓰레기 더미로 만들라는 표현은, 위반자 자신뿐 아니라 그가 살던 집까지 파괴하겠다는 강한 위협입니다.
그러나 이 폭력적인 처벌 자체를 곧바로 하나님이 명령하신 형벌이라고 보아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서 이 말을 하는 사람은 다리오입니다. 성전 건축을 지원하는 왕의 명령이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그 안에 포함된 모든 제국의 형벌 방식을 신앙 공동체가 따라야 할 규범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두신 하나님 — 12절
「손을 뻗어 이 명령을 바꾸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 하나님의 집을 파괴하려는 모든 왕과 백성을, 그곳에 자기 이름이 머물게 한 하나님이 무너뜨리기를 바란다. 나 다리오가 명령을 내렸다. 성실히 시행하라.」에스라 6:12 · 본디새김
「그곳에 자기 이름이 머물게 한 하나님.」 이 표현은 신명기와 열왕기에 나타나는 성전 신학을 떠올리게 합니다. 신명기 12:5는 여호와야훼가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장소를 찾으라고 말합니다. 열왕기상 8:29에서는 솔로몬이 여호와야훼의 이름이 그곳에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떠올리며 성전을 향한 기도를 들어 달라고 구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성전에 머문다는 말은 하나님이 그 장소 안에만 갇혀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곳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예배의 장소로 선택되었다는 뜻입니다.
왕이 실제로 신명기의 성전 신학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이 현지의 종교적 표현을 반영한 것일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왕이 자기 권위로 성전을 보호하는 명령을 내리면서, 동시에 그 성전이 자신보다 더 높은 권위와 연결된 장소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왕은 그 하나님의 보호와 심판을 요청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신학적 의미를 읽을 때도 말하는 주체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직접 모든 왕과 백성에게 저주를 선포하신 것이 아니라, 다리오가 성전의 파괴를 막기 위해 이러한 저주의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원어 표현만으로 구체적인 처형 방식이 꿰뚫는 것이었는지, 매달거나 고정하는 형태였는지를 완전히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왕이 자신의 명령을 위반하는 행동에 극도로 무거운 처벌을 부과했다는 사실입니다.
'성실히'라는 말이 명령에서 실행으로 이어지다
그러자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료들은 다리오 왕이 보내온 명령에 따라 그대로 성실히 실행했다.에스라 6:13 · 본디새김
8절에서는 비용을 성실히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12절에서는 명령을 성실히 시행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3절에서는 관리들이 실제로 성실히 실행했다고 보고합니다. 아람어의 같은 부사 표현이 세 번 이어집니다.
성전 재건은 왕의 허가를 얻는 것으로만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허가가 실제 건축 현장에서 효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관리들이 왕의 명령을 집행하면서, 성전 건축을 가로막던 행정적 불확실성은 해소됩니다.
그러나 다음 절은 성전 완공을 다리오의 명령만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왕들의 명령 — 14절
유다 사람들의 장로들은 예언자 학개와 잇도의 아들 스가랴의 예언에 힘입어 집을 지으며 순조롭게 일을 진행했다. 그들은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페르시아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명령에 따라 집을 지어 완성했다.에스라 6:14 · 본디새김
여기서 에스라서는 성전의 완공을 어느 한 사람의 업적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고레스가 처음 허락했고, 다리오가 이를 확인하고 지원했으며, 장로들은 예언자들의 말씀에 힘입어 실제로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설명하는 문장에는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이 먼저 놓입니다. 제국의 명령이 건축을 허락하고 지원했지만, 성전을 다시 세우려는 공동체의 근본적인 방향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학개 2:4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모든 백성에게 힘을 내어 일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그들과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스가랴 4:6에서는 성전 재건과 관련하여 사람의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영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이 주어집니다. 이러한 예언은 사람들이 건축을 시작하고 계속하도록 격려했습니다.
날짜가 있는 완공 — 15절
이 집은 다리오 왕의 통치 육 년째 아달월 삼일에 완성되었다.에스라 6:15 · 본디새김
고레스가 귀환과 성전 건축을 허락한 뒤, 기초가 놓이고 공사가 중단되었으며, 예언자들의 말씀으로 다시 시작되었던 일이 이제 완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성전의 완공을 이야기하면서 건물의 외형을 길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대신 완공 날짜를 밝힌 뒤 곧바로 봉헌식으로 넘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14절에는 중요한 연대기적 문제가 있습니다. 고레스와 다리오에 이어 아닥사스다의 이름까지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페르시아 왕들의 통치 순서에서 아닥사스다 1세는 다리오 1세보다 훨씬 뒤의 왕입니다. 따라서 14절에 언급된 아닥사스다를 그가 성전 완공 이전에 직접 건축 명령을 내렸다는 뜻으로 읽으면 역사적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는 서술자가 성전의 초기 완공뿐 아니라 이후 성전 운영과 공동체 회복을 지원한 왕들의 명령까지 넓게 묶어 회고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에스라 7:15–23에서는 아닥사스다 왕이 성전 예배와 관련된 은과 금, 필요한 물품 등을 지원하도록 명령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이 문장의 왕 이름들이 최종적인 본문 형성 과정에서 더 넓은 역사적 관점을 반영하여 배열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설명이 정확한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15절이 성전의 실제 완공 시점을 다리오 육 년째로 명시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아닥사스다의 이름 때문에 완공 시기를 후대로 옮기거나, 본문에 없는 별도의 완공 사건을 만들어 넣어서는 안 됩니다. 다리오 1세의 통치 육 년째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516/515년에 해당하며, 아달월은 종교력으로 열두째 달에 해당합니다. 이 완공 시점은 대체로 기원전 515년으로 이해됩니다.
열두 마리의 숫염소가 보여주는 '온 이스라엘'
이스라엘 자손,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머지 유배민들은 기뻐하며 이 하나님의 집의 봉헌식을 거행했다.에스라 6:16 · 본디새김
앞에서 그들은 유다 사람들, 유배민들, 유다의 장로들이라고 불렸습니다. 이제 봉헌식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의 작은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의 예배를 회복하면서 여전히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이해합니다.
그들은 이 하나님의 집을 봉헌하면서 수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양 사백 마리를 바쳤다. 또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제물로, 이스라엘 지파의 수에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를 바쳤다.에스라 6:17 · 본디새김
왜 유다와 베냐민 중심의 공동체가 열두 지파를 위한 제물을 바칠까?
귀환 공동체의 중심은 유다와 베냐민이었습니다(에스라 1:5).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아시리아 시대에 멸망했고, 많은 주민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졌습니다. 에스라서가 기록하는 귀환은 주로 바벨론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 사람들의 귀환입니다.
그런데 성전 봉헌식에서는 열두 지파 전체를 상징하는 제물을 바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전체의 예배 전통을 이어 가는 공동체로 자신들을 이해합니다. 열두 마리라는 숫자는 인구 통계가 아니라, 제사를 통해 표현되는 공동체의 정체성과 연결됩니다.
특히 이 제물은 「온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제물」이라고 불립니다. 성전이 완성되었지만, 공동체는 자신들에게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속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예배 안에서 표현합니다.
솔로몬 성전 봉헌과의 차이
열왕기상 8:63은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소 이만 이천 마리와 양 십이만 마리를 제물로 바쳤다고 기록합니다. 에스라 6장의 제물 수는 그보다 훨씬 적습니다.
이 차이만으로 귀환 공동체의 모든 경제적 상황을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성전의 봉헌이 서로 다른 규모와 역사적 조건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솔로몬 시대에는 강력한 왕국의 왕이 봉헌식을 주도했습니다. 에스라 6장에서는 왕이 봉헌식의 중심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유배민들이 함께 기뻐하며 성전을 봉헌합니다.
다윗 왕조의 왕이 없는 상황에서, 공동체 자체가 성전 예배를 다시 시작하는 주체가 됩니다. 정치적으로는 옛 왕국이 회복되지 않았지만, 예배 안에서는 이스라엘 전체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 가려는 것입니다.
모세의 책에 따라 직무를 세우다
그들은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제사장들을 각 반에 따라, 레위 사람들을 각 조에 따라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맡게 했다.에스라 6:18 · 본디새김
모세의 율법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직무와 구별에 관한 기본적인 규정을 제시합니다. 민수기 3–4장은 레위 사람들의 봉사 책임을 기록하며, 민수기 18장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역할을 구별합니다.
다만 제사장들의 구체적인 반과 레위 사람들의 조를 편성하는 모습은 역대상 23–26장에 나타나는 다윗 시대의 성전 조직 전통과도 연결됩니다. 따라서 18절은 모세의 책에 근거한 예배 질서를 말하지만, 그 구체적인 반과 조의 모든 편성 방식이 오직 모세오경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는 뜻으로 단순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성전은 단순히 완성된 건물이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이루어질 준비를 갖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절에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성전 봉헌 다음에 유월절이 오는 까닭
유배민들은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켰다.에스라 6:19 · 본디새김
서술의 무대도 왕실 문서고와 총독의 보고에서, 예루살렘의 예배 공동체로 옮겨 갑니다.
왜 첫째 달 십사일인가?
유월절은 출애굽의 밤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12:6은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 제물을 잡도록 명령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올 때 어린양을 잡았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으며,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사건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절기를 지키는 사람들은 바벨론 유배에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출애굽의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지배 아래 있다가 여호와야훼의 구원으로 그곳에서 나왔습니다. 에스라의 귀환 공동체도 외국 제국의 지배와 유배를 겪은 뒤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출애굽은 파라오의 압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탈출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반면 바벨론 유배에서의 귀환은 페르시아 왕의 허락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유배에서 돌아온 자신의 경험만을 축하하는 새로운 절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구원받았던 일을 기억하는 유월절을 지킵니다.
새로운 회복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원을 처음부터 새롭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조상들을 구원하셨던 여호와야훼의 역사를 기억하며 현재의 자신들을 이해합니다.
모두 정결하게 준비하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함께 자신을 정결하게 하여 모두 정결했기 때문이다. 레위 사람들은 모든 유배민과 자기 형제인 제사장들과 자신들을 위해 유월절 제물을 잡았다.에스라 6:20 · 본디새김
히스기야 시대에 유월절을 지킬 때에는 제사장들과 많은 백성이 충분히 정결하게 준비하지 못한 문제가 나타납니다(역대하 30:3, 17–18). 반면 에스라 6장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함께 정결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을 특별히 밝힙니다. 또한 역대하 35:11에서도 레위 사람들이 유월절 제물을 잡는 일을 수행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성전은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그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을 준비합니다.
유월절 식탁에 함께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찾으려고 그 땅 민족들의 부정함에서 자신을 분리하여 그들에게 합류한 모든 사람이 유월절 제물을 먹었다.에스라 6:21 · 본디새김
유월절 식탁에는 유배에서 돌아온 사람들뿐 아니라, 여호와야훼를 찾기 위해 그 공동체에 합류한 사람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성전 건축에 참여하려던 사람들은 거절되었는데
이 장면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에스라 4:1–3이 떠오릅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도 여호와야훼를 찾고 제사를 바쳐 왔다며 성전 건축에 함께 참여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먼저 두 사건의 당사자가 동일한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앞에서 거절당했던 사람들이 나중에 신앙을 바꾸어 유월절에 참여했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성전 건축의 책임과 권한을 공유하는 일과, 여호와야훼를 예배하는 공동체에 참여하는 일은 완전히 동일한 문제가 아닙니다.
에스라 4장은 공동체의 경계를 보여줍니다.
에스라 6장은 그 공동체에 합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귀환 공동체가 모든 외부인을 무조건 배척하는 집단이었다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반대로 누구든 아무런 구별 없이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분리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그들은 「그 땅 민족들의 부정함에서 자신을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찾으려고」 공동체에 합류했습니다.
여기서 분리의 대상은 그 땅 사람들의 혈통 자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부정함’에서 자신을 분리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여호와야훼를 예배하는 데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는 종교적·의례적 상태와 관행을 떠나는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분리는 목적 자체가 아니라, 여호와야훼를 예배하는 공동체에 합류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과 여호와야훼를 찾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일이 반드시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그들의 출신을 일일이 밝히지 않습니다.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이 아니었던 지역 주민들을 포함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 표현만으로 그들 모두가 혈통상 이방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점에서 민수기 9:14도 의미 있는 배경을 제공합니다. 그곳에서는 이스라엘 가운데 거주하는 외국인이 유월절을 지키려 할 때 같은 규정에 따라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12:43–49 역시 유월절에 누가 참여할 수 있는지를 구별하면서, 정해진 언약적 조건을 받아들인 외국인의 참여를 규정합니다. 다만 그 사람들이 실제로 어떠한 절차를 거쳤는지는 에스라서가 직접 설명하지 않으므로, 모세오경의 모든 규정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까지 단정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시리아 왕'은 누구인가
그들은 기뻐하며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다. 여호와야훼가 그들을 기쁘게 했고, 하나님 곧 이스라엘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에서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하도록 아시리아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 돌렸기 때문이다.에스라 6:22 · 본디새김
여기까지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던 왕은 페르시아 왕 다리오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갑자기 ‘아시리아 왕’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여기서 확인해야 할 것은 본문이 실제로 ‘아시리아 왕’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사실과, 그 왕이 이 장의 서술 속에서는 성전 건축을 지원한 페르시아 왕을 가리킨다는 점입니다.
왕의 마음을 돌리신 분
에스라서는 여호와야훼가 고레스의 마음을 일깨우셨다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전 건축이 완성된 뒤에는 여호와야훼가 왕의 마음을 백성에게 돌리셨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왕의 마음을 움직여 성전 재건의 길을 여셨습니다.
이제는 왕의 마음을 돌려 그 일이 완성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성전을 세운 사람들은 유다의 장로들과 일꾼들이지만, 서술자는 그 일을 가능하게 한 역사적 변화 속에서 여호와야훼의 행동을 봅니다.
다시 등장하는 ‘손을 강하게 하다’
에스라 4:4에서는 적대자들이 유다 백성의 기운을 꺾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원어의 의미로는 그들의 손을 약하게 만들었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6:22는 여호와야훼가 왕의 마음을 돌려 유다 백성의 손을 강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변화에는 예언자들의 말씀과 공동체의 행동, 왕의 행정적 지원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절은 그 모든 과정을 여호와야훼가 왕의 마음을 돌리신 결과로 해석합니다.
이 장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단순히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 위로로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 돌보심은 실제로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조건이 바뀌고, 필요한 자원이 공급되고, 건축이 완성되는 과정에서도 드러납니다.
왜 성전 건축의 이야기가 기쁨으로 끝나는가?
16절에서 백성은 기뻐하며 성전을 봉헌합니다. 22절에서 백성은 기뻐하며 무교절을 지킵니다.
성전 건축이 완성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과 성취만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 일이 이루어지는 동안 여호와야훼가 어떻게 자신들을 돌보셨는지를 기억하며 기뻐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역사적으로 아시리아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보다 훨씬 이전에 멸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아시리아 왕’을 다리오와 같은 시대에 통치하던 별도의 아시리아 제국 왕으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이 표현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페르시아 왕을 이전 제국의 지배권을 계승한 통치자로 넓게 부른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 북왕국을 멸망시킨 것은 아시리아였습니다. 그 뒤 남유다를 멸망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것은 바벨론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을 정복하여 유다 사람들의 귀환과 성전 재건을 허락한 것은 페르시아였습니다. 에스라 6장의 마지막에서 페르시아 왕을 ‘아시리아 왕’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제국의 역사와 지배권의 연속성 안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 하필 이 구절에서 그 옛 이름을 사용했는지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의도적으로 이전 압제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려는 표현일 수도 있지만, 본문은 그 의도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전의 완성보다 더 깊은 회복
건물의 회복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다시 살아가기 위한 토대입니다. 에스라서가 성전 봉헌식 뒤에 유월절 이야기를 배치한 것은 그 점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장의 마지막 관심은 완성된 건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안에서 조상들의 구원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한때 성전은 무너졌고, 백성은 고향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함께 모여 조상들의 출애굽을 기억합니다.
성전 봉헌의 제물은 이미 바쳐졌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정해진 직무를 맡았고, 유월절 식탁에는 여호와야훼를 찾는 사람들이 함께합니다.
그들은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키며 기뻐합니다.
에스라 6장은 성전이 완성되었다는 선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완성된 성전에서 백성이 다시 여호와야훼를 예배하며 기뻐하는 모습으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