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1–11장 · 세상과 사람의 시작

하나의 가족에서 수많은 민족으로

창세기 10장에는 수많은 이름이 등장합니다. 고멜과 마곡, 구스와 미스라임, 엘람과 아르박삿. 대부분은 이름만 기록될 뿐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긴 명단을 자세히 읽으면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어떤 사람의 자손을 소개하다가 갑자기 성읍과 왕국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가문에서는 아들들의 이름 대신 민족과 족속의 이름이 이어집니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자손이 태어났다는 말보다 그들이 어디에 살았는지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이것은 단순히 누가 누구를 낳았는지 알려 주는 족보가 아닙니다. 한 가족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서로 다른 땅에 거주하며, 여러 민족으로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창세기 10장은 이미 여러 언어와 민족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인 창세기 11:1에서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다고 시작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두 장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같은 세계를 바라봅니다. 창세기 10장은 여러 민족과 언어로 나뉜 세계의 모습을 펼쳐 보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11장은 사람들이 한 언어를 사용하던 때의 바벨 사건으로 돌아가, 흩어짐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 속에는 두 가지 움직임이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는 사람이 번성하여 서로 다른 땅으로 퍼져 나가는 움직임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주신 「번식하고 많아져라. 땅을 채워라」(9:1)라는 복이 인간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얻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모여 성읍과 왕국을 이루는 움직임입니다. 특히 니므롯의 이야기는 여러 민족의 계보 한가운데에서 인간의 힘과 도시 권력의 등장을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710장 본문 읽기 →

세 아들의 이름으로 펼쳐지는 온 땅

창세기 10:1–5 본문 →

노아의 아들들인 셈과 함과 야벳의 내력은 이러했다. 홍수 뒤에 그들에게 아들들이 태어났다.창세기 10:1 · 본디새김

이들은 방주에서 함께 나온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자녀들이 태어나고, 그 자녀들로부터 여러 가문과 민족이 이어집니다.

‘아들’이나 ‘자손’이라는 표현은 실제 가족관계를 나타내지만, 때로는 한 집단에서 갈라져 나온 다른 집단이나 역사적·지역적으로 연결된 민족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어떤 이름은 개인처럼 등장하고, 어떤 이름은 민족이나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이름을 한 사람의 생물학적 아들로만 해석하거나, 반대로 모든 이름이 단순한 지역의 상징이라고 단정하는 것 모두 조심해야 합니다.

이 장은 혈통과 민족, 거주 지역이 서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인간 세계를 그립니다.

야벳의 자손 — 바닷가로 뻗어 나간 민족들

야벳의 아들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였다.창세기 10:2 · 본디새김

이어서 고멜과 야완에게서 나온 자손들이 기록됩니다. 여기서 일부 이름들은 고대 지중해와 그 주변 지역의 민족 또는 지명과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야완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그리스계 세계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이름이며, 깃딤은 키프로스와 동지중해의 섬 지역을 가리키는 용례가 있습니다(에스겔 27:13; 이사야 23:1).

그러나 모든 이름을 오늘날의 국가나 민족에 정확히 대응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같은 이름이 시대에 따라 다른 범위의 지역이나 집단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명단을 현대 세계지도에 그대로 옮겨 놓고 각 민족의 직접적인 혈통을 확정하는 일은 본문의 의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서 바닷가 민족들이 각자의 땅에서 저마다 자기 언어에 따라, 자기 민족 안에서 씨족에 따라 갈라져 나갔다.창세기 10:5 · 본디새김

갑자기 이야기가 가족에서 세계로 넓어집니다.

‘바닷가 민족들’은 히브리어에서 섬들과 해안 지역에 관련된 표현입니다.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여러 지역과 민족을 포함하는 말로 읽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말은 「자기 언어」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10장에서 인간 세계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첫 번째 명시적인 언어 구분입니다.

창세기 10장은 다양한 민족을 하나의 이름 아래 지워 버리지 않고, 서로 다른 땅과 언어를 지닌 집단들로 구별하여 기록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모두 노아의 가족이라는 공통된 출발점에 연결됩니다.

다양성과 공동의 기원이 같은 계보 안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야기는 함의 후손들로 옮겨 갑니다. 그런데 그 계보에서는 이름의 목록이 갑자기 한 사람의 활동을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니므롯 — 자손의 이름들 사이에 등장한 왕국

창세기 10:6–12 본문 →

함의 아들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었다.창세기 10:6 · 본디새김

이 이름들은 고대의 여러 지역과 민족을 떠올리게 합니다. 미스라임은 성경에서 이집트를 가리키는 이름이고, 구스는 이집트 남쪽의 누비아 지역을 비롯한 여러 지역과 관련됩니다. 가나안은 앞으로 창세기에서 중요한 무대가 되는 땅과 그곳의 주민들을 가리킵니다.

구스의 자손들이 소개된 뒤, 8절에서 갑자기 다른 종류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구스는 니므롯을 낳았다. 그는 땅에서 용사가 되기 시작했다.창세기 10:8 · 본디새김

지금까지는 거의 모든 인물이 이름으로만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니므롯에게는 특별한 설명이 붙습니다. 본문은 그가 강한 인물로 두드러지기 시작했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 앞에서 힘센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여호와야훼 앞에서 힘센 사냥꾼 니므롯처럼」이라는 말이 쓰인다.창세기 10:9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 앞에서」는 칭찬인가, 비난인가?

‘여호와야훼 앞에서’라는 말을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뛰어난 사람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능력이 탁월했다는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읽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 자체에는 니므롯이 여호와야훼를 거역했다거나, 반대로 하나님께 특별히 인정받았다는 직접적인 평가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 표현만으로 그를 최초의 악한 폭군이라고 단정하거나, 하나님께서 칭찬하신 영웅이라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본문이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힘센 사냥꾼을 말할 때 니므롯의 이름을 떠올릴 정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에서 그의 힘은 다른 영역으로 확장됩니다.

그의 왕국을 처음 이룬 곳은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아카드와 갈네였다.창세기 10:10 · 본디새김

사냥꾼의 명성에서 왕국의 형성으로

시날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바빌로니아 지역과 연결되는 이름입니다. 바벨은 바벨론과, 에렉은 고대 우루크와 관련된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카드 역시 메소포타미아 역사에서 중요한 도시와 지역을 가리킵니다.

야벳의 계보에서는 사람들이 여러 해안 지역으로 갈라져 나갔습니다. 그런데 니므롯의 이야기에서는 여러 성읍이 하나의 왕국과 연결됩니다.

인간의 세계는 흩어져 다양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모여 성읍을 세우고, 그 성읍들을 연결하여 더 큰 권력도 형성합니다. 니므롯에 관한 기록이 계보의 흐름을 잠시 멈추고 왕국을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그의 왕국이 어떤 제도로 운영되었는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다스렸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니므롯이 사람들을 억압했다거나 전쟁으로 모든 도시를 정복했다고 확정할 수 없습니다. ‘힘센 사냥꾼’이라는 표현만으로 그가 인간을 사냥하듯 지배했다는 뜻을 만들어 내서도 안 됩니다.

바벨은 바로 다음 장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창세기 11:2에서 사람들이 머물러 정착하는 곳이 시날 땅이고, 그곳에서 성읍과 탑을 세우려 합니다. 따라서 창세기 10장에서 니므롯의 왕국과 관련된 도시로 소개된 바벨은, 다음 장에서 인간의 집단적인 행동이 펼쳐질 장소를 미리 보여 줍니다.

그러나 니므롯이 바벨탑을 직접 건설했다는 말은 어느 구절에도 없습니다. 창세기 11장의 건축을 니므롯이 지휘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본문의 진술을 넘어섭니다.

성읍들의 이름이 이어지는 이유

11–12절에서는 또 다른 도시들이 나옵니다. 니느웨와 르호봇이르, 갈라와 레센입니다.

그 땅에서 앗수르가 나가 니느웨와 르호봇이르와 갈라를 세웠고,창세기 10:11 · 본디새김

본디새김은 앗수르를 성읍들을 세운 주체로 읽었습니다. 앗수르가 시날 땅에서 나가 도시들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등장한 니므롯이 계속 주어라고 보아,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 지역으로 나가 도시들을 세웠다고 읽는 길도 있습니다.

두 읽기는 도시들을 세운 인물이 누구인지에 차이를 만듭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이 단락이 보여 주는 큰 흐름은 같습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주요 성읍과 왕국의 세계가 노아의 후손들에 관한 기록 안에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그 권력을 곧바로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의 복과 동일한 것으로 선언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인간이 세운 왕국과 성읍들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갑니다.

가나안의 경계 — 이름의 목록이 실제 땅을 가리키다

창세기 10:13–20 본문 →

니므롯과 성읍들의 이야기가 끝나자, 본문은 다시 함의 계보로 돌아갑니다.

먼저 미스라임의 자손들이 소개됩니다. 루딤, 아나밈, 르하빔, 납두힘, 바드루심, 가슬루힘, 갑도림.

히브리어에서 여러 이름이 ‘-임’이라는 복수형으로 끝납니다. 따라서 이 이름들은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 집단이나 민족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이해할 여지가 큽니다. 어떤 이름들은 한 사람의 자녀처럼 서술되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에게서 이어졌다고 이해되는 집단들을 나타냅니다.

특히 14절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나온 가슬루힘」이라는 설명이 등장합니다. 아모스 9:7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갑돌에서 나왔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10:14의 가슬루힘과 관련된 표현과 비교하면, 블레셋의 기원을 한 장소나 한 번의 이동으로 단순하게 정리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보는 가나안에게로 옮겨 갑니다.

가나안은 한 사람이면서 여러 족속의 이름이 된다

가나안은 자기 맏아들 시돈과 헷과,창세기 10:15 · 본디새김

이어서 여부스 족속, 아모리 족속, 기르가스 족속, 히위 족속 등이 길게 등장합니다. 가나안이 낳았다는 자손들은 이제 하나하나의 개인보다 여러 집단으로 소개됩니다.

이 가운데 여부스 족속은 훗날 예루살렘과 관련하여 등장합니다(여호수아 15:63; 사무엘하 5:6–9). 아모리 족속과 히위 족속 등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야기에서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여기서 앞 장의 가나안에 대한 저주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9:25–27). 그러나 그렇다고 이 명단에 등장한 모든 가나안 족속을 처음부터 도덕적으로 열등한 집단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창세기 10장은 그들의 악함을 열거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서로 다른 족속을 이루고 살았다는 사실을 기록할 뿐입니다.

가나안 땅의 경계를 그리다

가나안 족속의 경계는 시돈에서 그라르 방향으로는 가자까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 방향으로는 라사까지 이어졌다.창세기 10:19 · 본디새김

시돈은 지중해 동쪽 해안의 북부 지역과 연결됩니다. 가자는 남서쪽 해안에 있는 도시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아드마와 스보임은 뒤의 이야기에서 특히 중요해지는 도시들입니다. 이 가운데 소돔과 고모라는 창세기 18–19장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하여 등장합니다.

라사의 정확한 위치를 비롯해 19절이 가리키는 모든 경계를 현대 지도 위에 확정적으로 표시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분명합니다. 가나안이라는 이름을 추상적인 혈통의 표지로만 남겨 두지 않고, 사람들이 실제로 거주하는 지역과 연결합니다.

창세기 12:5–6에서 아브람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기록됩니다. 따라서 창세기 10장의 지리적 설명은 앞으로 등장할 아브라함의 이야기에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하나님이 장차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실 땅은 텅 빈 땅이 아니라, 이미 여러 사람의 삶과 역사가 있는 땅입니다.

이들이 씨족과 언어에 따라, 각자의 땅과 민족별로 구분된 함의 아들들이었다.창세기 10:20 · 본디새김

야벳의 계보 끝에서 나온 표현과 같은 종류의 마무리입니다. 함의 자손들에 관한 기록에는 왕국과 도시, 여러 족속과 구체적인 경계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집단도 다른 계보들과 마찬가지로 각자의 언어와 땅을 가진 민족들로 설명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셈의 계보가 나옵니다. 그런데 셈의 명단은 다른 두 계보와 달리, 기록자가 특별히 한 계보의 가지를 오래 따라간다는 특징을 보입니다.

셈의 계보 — 수많은 가지 가운데 에벨의 이름을 먼저 부르다

창세기 10:21–23 본문 →

에벨의 모든 자손의 조상이자 야벳의 아우인 셈에게도 자식이 태어났다.창세기 10:21 · 본디새김

셈을 소개하는 문장은 앞의 야벳과 함을 소개한 문장보다 복잡합니다.

그런데 에벨은 아직 이 계보에 등장하지 않은 인물입니다. 실제로 그의 이름은 24절에 가서야 나옵니다.

왜 기록자는 셈을 소개하면서 아직 등장하지 않은 에벨의 이름을 먼저 말할까요?

이것은 독자의 시선을 특별한 계보의 가지로 이끄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셈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습니다.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루드와 아람입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아르박삿에게서 셀라가 태어나고, 셀라에게서 에벨이 태어납니다. 즉 기록자는 셈의 여러 후손 가운데 에벨로 이어지는 계보를 특별히 부각합니다.

에벨이라는 이름은 왜 중요한가?

에벨은 히브리어로 에베르(⁨עֵבֵר⁩)입니다. ‘히브리 사람’을 가리키는 이브리와 소리와 형태가 가까워, 두 이름을 연결해 이해하는 오래된 해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관계가 단순한 언어적 어원인지, 조상 이름에서 민족 명칭이 직접 나왔다는 뜻인지까지 이 장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창세기 11:10 이후에는 셈의 계보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곳에서 에벨을 거쳐 아브람의 조상들에게 이어지는 이름들이 기록됩니다. 따라서 창세기 10장에서 셈을 에벨의 조상으로 특별히 소개한 것은 뒤의 이야기를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셈의 자손들 가운데에는 엘람과 앗수르, 아람처럼 앞으로 성경의 여러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과 민족의 이름들도 등장합니다. 엘람은 메소포타미아 동쪽의 고대 지역과 관련되고, 앗수르는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앗수르 세계와 연결됩니다. 아람은 시리아를 비롯한 지역과 관련된 여러 아람계 집단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러 민족과 지역을 포함하는 넓은 계보 가운데, 기록자가 앞으로 따라갈 특정한 줄기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셈은 야벳의 형인가, 아우인가?

21절에서 셈은 「야벳의 아우」로 소개됩니다. 그러나 이 표현의 히브리어 문장에는 해석상 갈림이 있습니다. 형 또는 연장자를 뜻하는 표현이 야벳을 수식한다고 읽으면, 본디새김처럼 야벳이 형이고 셈이 아우가 됩니다. 반면 그 표현을 셈과 연결하면, 셈이 야벳의 형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창세기 5:32와 11:10의 나이 기록만으로도 세 아들의 모든 출생 순서를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세 아들이 반복해서 셈, 함, 야벳의 순서로 열거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출생 순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기록자가 이야기의 흐름이나 앞으로의 중요성에 따라 이름을 배열할 수도 있습니다. 셈이 다른 두 아들의 계보 뒤에 등장하면서도 에벨의 조상이라는 말로 특별히 소개되는 것은 그런 문학적 배열을 생각하게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창세기 11장에서는 사람들이 바벨에서 한 언어로 자신들의 이름을 내려고 합니다. 그 뒤 창세기 12장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 땅의 모든 씨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2:3).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갑자기 아무 배경 없이 시작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여러 언어와 땅, 수많은 민족으로 펼쳐진 인류의 세계를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질 복이 ‘땅의 모든 씨족’과 연결된다는 말도 더욱 구체적으로 들립니다. 그 씨족들이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창세기 10장이 먼저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벨렉의 시대에 땅이 나뉘었다

창세기 10:24–30 본문 →

셈의 자손을 따라가던 기록은 아르박삿과 셀라를 거쳐 에벨에 이릅니다.

에벨에게 두 아들이 태어났다. 한 아들의 이름은 벨렉이었다. 그가 살던 때에 땅이 나뉘었기 때문이다. 그의 형제 이름은 욕단이었다.창세기 10:25 · 본디새김

나뉜 것은 땅인가, 사람인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 정착하며 영토가 나뉜 사건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여러 민족이 갈라져 형성된 일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의 바벨 사건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민족들의 세계가 처음부터 구별된 상태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구절만으로 정확히 어떤 사건을 가리키는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현대적인 의미에서 대륙이 갈라졌거나 지각이 분리되었다는 설명도 없습니다.

벨렉의 이름은 그 다음 이야기를 미리 바라보게 하는 작은 표지처럼 놓여 있습니다.

욕단의 자손들 — 계보가 다시 넓어지다

그런데 기록자는 벨렉의 이름을 설명한 뒤 곧장 그의 후손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대신 그의 형제 욕단의 자손들을 길게 소개합니다. 알모닷, 셀렙, 하살마웻, 예라, 하도람, 우살, 디글라, 오발, 아비마엘, 스바, 오빌, 하윌라, 요밥. 모두 열세 이름입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메사에서 동쪽 산지의 스발로 가는 데까지 뻗어 있었다.창세기 10:30 · 본디새김

욕단의 여러 후손들은 아라비아반도, 특히 그 남부와 관련된 고대 지명들과 연결해서 이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메사와 스발의 정확한 위치를 비롯하여 모든 이름을 현대 지리와 일대일로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함의 자손 가운데 라아마의 아들로 스바가 등장했습니다(10:7). 욕단의 자손 가운데에도 스바가 등장합니다(10:28). 또 함의 계보에는 하윌라가 있었는데(10:7), 욕단의 계보에도 하윌라가 나옵니다(10:29).

물론 동명이인이나 이름이 같은 서로 다른 집단일 수 있습니다. 지명과 민족명이 여러 계보에 걸쳐 사용되는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 이름들이 반드시 정확히 같은 집단을 가리킨다고 확정할 수도 없고, 전혀 관계가 없는 집단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반복은 고대의 계보를 지나치게 단순한 혈통 분류표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창세기 10장의 기록은 인간 세계의 관계를 질서 있게 설명하지만, 그 질서를 오늘날의 엄격한 인종 분류나 국가 구분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벨렉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펠레그(⁨פֶּלֶג⁩)입니다. ‘나뉘었다’는 말은 니플레가입니다. 두 낱말은 같은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땅’을 뜻하는 에레츠(⁨אֶרֶץ⁩)는 물리적인 땅뿐 아니라 지역, 영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세계까지 가리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땅이 나뉘었다」라는 표현은 여러 방향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1:8–9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고 기록됩니다. 언어가 갈라지고 사람들이 흩어지는 사건이므로, 벨렉의 이름에 붙은 땅의 나뉨을 그 사건과 관련지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0:25는 바벨을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름을 하나로 묶는 마지막 문장

창세기 10:31–32 본문 →

셈의 계보가 끝나면 앞에서 들었던 표현이 다시 나옵니다.

이들이 씨족과 언어에 따라, 각자의 땅과 민족별로 구분된 셈의 아들들이었다.창세기 10:31 · 본디새김

씨족은 사람들 사이의 계보와 집단적 관계를 나타냅니다. 언어는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하고 공동의 삶을 이루는 방식과 연결됩니다. 땅은 그들이 살아가는 장소입니다. 민족은 이 사람들이 이루는 더 넓은 공동체입니다.

사람이 어느 민족에 속한다는 것은 단지 누구에게서 태어났느냐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어느 땅에 살며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는가와도 관련됩니다.

이들이 내력에 따라 민족별로 구분된 노아의 아들들의 씨족들이었다. 홍수 뒤에 이들에게서 민족들이 땅 위에서 갈라져 나갔다.창세기 10:32 · 본디새김

이 구절은 1절의 시작과 맞물립니다. 1절에서는 홍수 뒤에 노아의 아들들에게 자녀들이 태어났다고 말했습니다. 32절에서는 그 자녀들에게서 여러 민족이 땅 위로 갈라져 나갔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한 가족의 출생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여러 민족의 형성이 되었습니다.

이 명단은 모든 민족을 빠짐없이 적은 것일까?

창세기 10장은 흔히 민족들의 목록으로 불립니다. 전통적으로 이름을 헤아려 일흔 민족의 계보라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는 개인의 이름과 집단의 이름, 지명과 민족명이 함께 등장하며, 어느 항목을 독립적인 민족으로 세어야 하는지는 계보의 구조와 본문 전승을 어떻게 읽느냐에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이 명단을 오늘날까지 존재한 모든 민족의 완전한 목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장은 고대 이스라엘의 세계 인식과 관계된 여러 민족과 지역을 중심으로 인간 세계가 펼쳐진 모습을 보여 줍니다.

창세기 10장의 보편성은 알려진 모든 민족의 이름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민족들을 노아의 후손이라는 하나의 인류 이야기 안에 놓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름은 갈라졌지만, 인간의 이야기는 하나로 이어진다

창세기 10:1–32 본문 →

하나의 가족은 수많은 민족으로 넓어지고, 그 넓어진 세계 안에서는 새로운 권력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10장이 여러 언어와 민족이 존재하게 된 세계를 먼저 소개하고, 11장이 그 갈라짐과 관계된 특정한 사건으로 돌아가는 문학적 배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창세기 10장은 도시와 왕국이 반드시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민족들이 갈라진 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땅을 채우는 일과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힘을 행사하는가는 구별해서 살펴야 합니다.

이 장이 보여 주는 것은 하나의 인류가 여러 민족으로 펼쳐지는 모습이지, 하나님이 인류를 가치의 높낮이에 따라 나누셨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셈의 계보가 앞으로 아브라함에게 이어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야벳과 함의 후손들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장은 아직 아브라함을 부르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그보다 먼저 온 땅에 퍼져 살아가게 된 여러 민족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고멜과 마곡, 구스와 미스라임, 가나안과 엘람, 아람과 욕단의 자손들.

이 이름들은 낯설고, 대부분은 한두 번 언급된 뒤 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그들을 생략하지 않고 하나씩 기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하나의 가족으로 돌아옵니다.

「홍수 뒤에 이들에게서 민족들이 땅 위에서 갈라져 나갔다.」 이 장을 마무리하는 문장은 처음의 가족이 얼마나 넓은 세계로 퍼져 나갔는지를 보여 줍니다.

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수많은 민족이 있습니다. 각자의 언어가 있고, 거주하는 땅이 있으며, 그들마다 이어 온 가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의 방주에서 나온 가족의 이름들이, 마침내 온 땅에 퍼져 살아가는 민족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