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2–24장 · 아브라함의 길
롯이 선택한 땅과 하나님이 보여 주신 땅
창세기 13장에는 두 사람이 땅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롯은 눈앞에 보이는 풍요를 보고 자기 몫을 선택합니다. 아브람은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가,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땅에 관한 약속을 듣습니다.
창세기 13장은 어떤 땅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가보다 더 깊은 문제를 다룹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은 아직 자기 것이 아닌 땅에서 어떻게 살아갑니까?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 사이에서 무엇을 신뢰합니까?
그 질문은 아브람과 롯이 모두 부유해졌다는 사실에서 시작됩니다.
많아진 재산이 함께 살아갈 자리를 좁히다
아브람은 제단이 있던 곳으로 돌아온다
창세기 13장은 아브람이 이집트에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아브람은 이집트에서 목숨을 건졌고, 사래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12장에서는 사래를 누이라고 말한 일 때문에 파라오에게 책망을 받았지만, 그 일을 통해 얻은 재산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가나안으로 돌아와 이전에 머물렀던 장소를 다시 찾아갑니다.
3–4절은 그 장소를 유난히 자세하게 확인합니다. 벧엘과 아이 사이에 처음 천막이 있었던 곳, 처음 만든 제단이 있던 자리입니다. 이야기는 아브람을 새로운 장소로 곧장 데려가지 않고, 그가 전에 여호와야훼를 예배했던 자리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거기서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 행동을 아브람이 이집트에서의 잘못을 회개했다는 명시적인 고백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본문에는 회개했다는 말도, 죄를 자백했다는 말도 없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아브람이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려고 행동했습니다. 이제 그는 처음 제단을 쌓았던 자리로 돌아와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부릅니다.
아브람의 이야기는 그가 위기를 지나 돌아왔다는 사실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했던 자리에서 다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전에 없던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유해졌는데, 왜 함께 살 수 없게 되었을까?
아브람에게는 가축과 은과 금이 매우 많았다.창세기 13:2 · 본디새김
이어 5절에서는 롯에게도 가축 떼와 천막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아브람만 부유한 것이 아닙니다. 롯 역시 상당한 규모의 살림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6절에서는 땅이 그들을 함께 살게 할 만큼 감당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 원문도 땅이 그들을 함께 「짊어지거나 감당하지 못한다」(נָשָׂא)는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아브람과 롯의 재산은 많아졌지만, 그 재산을 유지할 공간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재산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유목과 목축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축의 증가는 더 넓은 목초지와 더 많은 물을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두 집안이 가까이 머무르며 많은 가축을 기르는 상황에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생기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은 많아졌지만, 서로에게 내어줄 수 있는 공간은 좁아졌습니다.
그 땅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아브람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과 롯의 가축을 치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창세기 13:7 · 본디새김
이 정보는 앞선 12:6의 설명과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땅에는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람과 롯만 그 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목자들 사이의 다툼이 실제로 어떤 사건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집안이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현실에는 기존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도 배경으로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땅을 약속하셨다고 해서, 그 땅이 곧바로 아브람의 소유로 바뀐 것은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공간을 나누며 살아야 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땅에 살고 있지만, 아직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거나 그 땅을 마음대로 차지할 권한을 행사하는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기 가족 안에서 발생한 토지 이용의 갈등부터 해결해야 하는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해결 방법은 뜻밖입니다.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겠다」
아브람은 왜 선택권을 롯에게 넘겼을까?
아브람이 롯에게 말했다. 「부디 나와 너 사이에, 또 내 목자들과 네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게 하자. 우리는 한 핏줄이니 말이다.」창세기 13:8 · 본디새김
아브람은 자신이 나이가 많다거나, 자신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졌다거나, 집안의 대표로서 결정권이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두 사람이 한 핏줄이라는 사실을 내세웁니다. 실제로 아브람과 롯은 삼촌과 조카 관계입니다.
아브람은 재산 문제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앞세웁니다. 목자들 사이의 갈등이 아브람과 롯 자신들의 다툼으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그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서로 갈라져 살자고 제안합니다.
「온 땅이 네 앞에 있지 않으냐? 부디 나와 갈라져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겠다.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창세기 13:9 · 본디새김
가족의 연장자인 아브람이 먼저 자신의 몫을 정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는 하나님에게 땅을 약속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자신의 지위를 내세워 유리한 지역을 선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왜 양보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앞 장에서 아브람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12:7). 하나님이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아브람이 지금 눈앞의 모든 땅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아브람은 약속을 받았지만 아직 완전히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직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반드시 지금 차지하려 하지 않으면서, 이미 자기와 함께 살아온 사람과의 다툼을 피하려 합니다. 이것은 앞 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너는 복이 되어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연결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브람이 선택권을 내어주자, 이제 롯이 땅을 바라봅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여기서 아브람의 속마음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가 오직 순수한 이타심에서 양보했는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인 판단을 했는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기 때문에 선택권을 내어주었는지 본문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동기들이 서로 배타적인 것도 아닙니다. 이 모습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의 표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가 바로 그런 이유로 행동했다고 본문이 직접 말하지는 않으므로, 신앙적 해석과 서술된 사실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롯이 눈을 들어 바라본 땅
롯의 선택은 왜 매력적이었을까?
롯은 눈을 들어 요단 들판 전체에 물이 넉넉한 것을 보았다. 여호와야훼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전, 소알에 이르기까지 그곳은 여호와야훼의 동산 같고 이집트 땅 같았다.창세기 13:10 · 본디새김
물이 넉넉하다는 사실은 많은 가축을 기르는 롯에게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더구나 본문은 그곳을 두 장소에 비교합니다. 하나는 「여호와야훼의 동산」이고, 다른 하나는 「이집트 땅」입니다.
「여호와야훼의 동산」은 창세기 2–3장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합니다. 풍성한 물과 생명이 있는 장소입니다.
이집트 역시 물이 풍부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일강에 의존하는 농경지의 풍요는 가나안에서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가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그는 가축을 돌보아야 했고, 자신의 집안에 속한 사람들의 생활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물이 넉넉한 땅을 선택하는 것은 그 상황에서 합리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롯이 본 것은 실제로 좋은 땅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땅에 관한 모든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아름다운 땅에 관한 불길한 설명
10절에서 독자는 롯이 보지 못했을 중요한 정보를 받습니다.
「여호와야훼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전」은 뒤에 일어날 사건을 알고 있는 서술자가 과거의 풍요로움을 설명하면서 덧붙인 말입니다. 이것은 롯이 미래의 멸망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롯의 눈에는 풍요로운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풍요를 묘사하는 문장 안에는 이미 멸망이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롯은 미래를 모른 채 현재의 좋은 조건을 보고 선택합니다. 반면 독자는 그 좋은 조건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임을 알게 됩니다.
롯은 땅을 선택했지만, 그 땅의 사람들까지 살피지는 못했다
11절에서 롯은 요단 들판 전체를 자기 몫으로 선택합니다.
그리고 12절은 그가 들판의 성읍들에서 살면서 소돔까지 천막을 옮겨 갔다고 말합니다. 이어 13절이 짧고 단호하게 덧붙입니다.
소돔 사람들은 매우 악했고 여호와야훼를 거슬러 죄를 많이 지었다.창세기 13:13 · 본디새김
롯의 판단이 경제적인 관점에서 이해할 만했다는 사실과, 그의 선택이 결과적으로 위험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3장이 보여 주는 것은 악한 사람으로서의 롯이라기보다, 풍요로운 환경을 선택하는 판단만으로는 앞으로 마주할 모든 위험을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롯은 자신의 몫을 선택했습니다.
이제 아브람은 홀로 남습니다.
「롯이 아브람과 갈라진 뒤에」 — 다시 말씀하시는 하나님
롯이 떠난 다음에야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14절은 시간의 흐름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롯이 아브람과 갈라진 뒤에 여호와야훼가 아브람에게 말했다. 「자, 눈을 들어 네가 있는 그곳에서 북쪽과 남쪽과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아라.」창세기 13:14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앞선 사건과 하나님의 말씀을 긴밀하게 연결합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먼저 선택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롯은 물이 넉넉한 들판을 선택하고 떠났습니다.
이제 아브람에게는 롯이 선택하지 않은 지역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때 아브람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고르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눈을 들어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롯의 시선과 아브람의 시선
10절에서 롯이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는 표현과 14절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눈을 들라고 하시는 표현은 히브리어에서도 서로 대응합니다.
롯이 스스로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면, 아브람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눈을 들어 바라봅니다. 롯에게 보인 것은 물이 넉넉한 특정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보여 주시는 것은 사방으로 펼쳐진 땅입니다.
롯에게는 보고 선택하는 일이 연결됩니다. 아브람에게는 보고 약속을 듣는 일이 연결됩니다.
「네가 보고 있는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줄 것이기 때문이다.」창세기 13:15 · 본디새김
롯의 선택을 설명하는 이유는 그 땅이 물이 넉넉해 보였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람이 땅을 받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양보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상하신 것일까?
아브람이 좋은 땅을 양보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더 큰 땅으로 보상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문의 흐름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땅을 약속하신 것은 롯과 갈라지기 전이었습니다. 이미 창세기 12:7에서 여호와야훼는 아브람의 후손에게 그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13장의 약속은 처음 없었던 보상이 갑자기 주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앞서 하신 약속을 더욱 구체적으로 확장하여 말씀하십니다.
12장에서는 땅을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3장에서는 아브람과 그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시며, 그 약속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좋은 것을 양보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보상하신다는 법칙이 아닙니다. 더 정확하게 읽으면, 하나님은 아브람이 눈앞의 유리한 선택을 확보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이미 주셨던 약속을 다시 확인하십니다.
아브람이 좋은 땅을 먼저 차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아직 자녀가 없는데,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진다
15절에서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은 16절에서 후손에 관한 약속을 덧붙이십니다.
「내가 네 후손을 땅의 먼지처럼 만들겠다. 누군가 땅의 먼지를 셀 수 있다면 네 후손도 세어질 것이다.」창세기 13:16 · 본디새김
먼지는 발밑 어디에나 있습니다. 개별적인 알갱이를 모두 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아직 자녀 하나 없는 아브람에게 그 먼지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아브람의 현재는 한 사람의 자녀도 보여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서 있는 땅의 먼지를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미래의 자손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먼지를 셀 수 없다는 사실을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먼지를 셀 수 있겠느냐는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약속의 규모를 표현합니다.
앞 절에서는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땅을 물려받을 후손을 약속하십니다.
땅과 후손은 따로 떨어진 두 개의 선물이 아닙니다.
땅은 후손이 살아갈 자리가 되고, 후손은 약속이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고 이어질 미래가 됩니다. 그는 땅을 완전히 소유하지 않았고, 그 땅을 물려받을 자녀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미완성의 현실 안에서 약속을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이 땅의 길이와 너비를 따라 걸어 다녀라」
17절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새로운 명령을 주십니다.
「일어나 이 땅의 길이와 너비를 따라 걸어 다녀라. 내가 이 땅을 너에게 줄 것이기 때문이다.」창세기 13:17 · 본디새김
앞에서는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걸어 다니라고 하십니다.
이 명령은 땅을 당장 군사적으로 점령하라는 뜻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아브람이 직접 걸으며 경험하도록 하시는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그 땅을 이미 모두 가진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땅을 실제로 걸으며 살아갑니다.
아브람은 약속을 자기 힘으로 완성하지 않지만, 그 약속을 향해 걸어갑니다.
마므레의 테레빈나무들 곁에 세워진 제단
창세기 13장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브람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테레빈나무들 곁으로 이동합니다.
아브람은 천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테레빈나무들 곁으로 가서 살았다. 그는 거기에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을 쌓았다.창세기 13:18 · 본디새김
이 장은 천막과 제단으로 시작해서 천막과 제단으로 끝납니다.
처음에는 아브람이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있던 옛 제단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에는 새로운 장소에 천막을 치고 또 다른 제단을 쌓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삶의 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천막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땅 전체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브람이 갑자기 거대한 저택이나 성읍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새롭게 세우는 것은 제단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한편 아브람이 머문 헤브론은 이후에도 중요한 장소로 등장합니다. 창세기 18장에서 아브라함은 마므레의 테레빈나무들 곁에 머물면서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합니다. 창세기 23장에서는 사라가 헤브론에서 죽고,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그녀를 묻을 매장지를 삽니다. 아브람은 13장에서 사방의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지만, 훗날 사라를 장사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땅을 사야 합니다. 약속과 소유 사이의 거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창세기는 그 거리를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지 못하셨다는 증거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오랜 세월을 지나며 약속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계속 보여 줍니다.
맺으며 — 롯이 떠난 자리에서 아브람이 바라본 것
롯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땅을 바라보았지만, 아브람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을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미래를 붙들고 계신다는 믿음은, 눈앞의 모든 유리한 선택을 반드시 자신이 차지해야 한다는 불안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 땅을 바라본 아브람에게 당장 생긴 것은 새로운 소유권이 아니라, 그 땅을 걸어가며 살아갈 이유였습니다.
아브람은 아직 소유하지 못한 약속의 땅을 걸어가다가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세기 13장은 그가 마므레의 나무들 곁에 천막을 치고,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을 쌓는 장면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