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12–24장 · 아브라함의 길

웃음과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창세기 18장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이야기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전반부에서는 아브라함의 천막을 찾아온 손님들이 사라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후반부에서는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려 하시고, 아브라함이 그 성읍을 위해 간청합니다. 하나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다른 하나는 생명의 파괴를 다룹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에는 공통된 질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을 어떻게 다루시며, 인간이 부당하다고 여길 수 있는 일을 어떻게 판단하시는가?

사라는 자신의 늙은 몸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어려워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심판이 의로운 사람들까지 쓸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묻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의 정의 앞에서 질문합니다.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818장 본문 읽기 →

천막을 찾아온 세 사람 — 환대 속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방문

창세기 18:1–8 본문 →

이야기는 한낮의 더위 속에서 시작됩니다.

여호와야훼가 마므레의 테레빈나무들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났다. 날이 뜨거울 때, 그는 천막 입구에 앉아 있었다.창세기 18:1 · 본디새김

독자는 첫 문장에서 이미 여호와야훼가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아브라함이 발견한 것은 세 사람입니다. 이야기의 독자에게 알려진 사실과 아브라함이 그 순간 알아차린 사실이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보자 달려 나갑니다. 땅에 엎드려 인사하고, 발을 씻을 물을 가져오겠다고 하며, 나무 아래에서 쉬도록 권합니다.

그는 「빵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준비하는 음식은 결코 조금이 아닙니다.

사라에게 고운 가루 세 스아로 빵을 만들게 합니다. 세 스아는 방문객 세 명에게 간단히 내놓을 빵을 만들기에는 상당히 많은 양입니다. 아브라함 자신은 소 떼에게 달려가 살이 연하고 좋은 송아지를 고르고, 젊은 종은 그것을 서둘러 요리합니다.

아브라함은 달려가고, 서두르고, 사라에게 서두르라고 말하고, 종도 서둘러 음식을 마련합니다.

뜨거운 날 천막 입구에 앉아 있던 노인이 손님을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엉긴 젖과 젖과 요리한 송아지 고기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놓았다. 그는 나무 아래 그들 곁에 서 있었고, 그들은 먹었다.창세기 18:8 · 본디새김

이는 손님이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피는 주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자기 천막의 주인이지만, 방문객 앞에서는 스스로를 종이라 부르며 섬깁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약속된 복이 무엇인지 듣기 전에, 먼저 자기에게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식탁을 차립니다.

물론 이러한 환대가 아들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들의 출생은 이미 17장에서 약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아브라함이 낯선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뒤이어 소돔의 운명을 다루는 이야기와 의미 있는 대비를 이루게 됩니다.

조금 더 깊이

18장 3절에서 아브라함은 한 사람을 향해 「주님」이라고 부르지만, 이어지는 4–5절에서는 여러 사람에게 말합니다. 히브리어에서도 이러한 단수와 복수의 변화가 확인됩니다. 한 사람을 대표자로 대우했을 수도 있고, 방문객의 신적 정체가 드러나는 서술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만으로 아브라함이 언제 그들의 정체를 깨달았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이 방문객들의 정체에 관해서도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합니다. 여호와야훼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통해 직접 나타나셨다는 이해와,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그분을 대신하여 말씀한다는 이해입니다. 13절에서 화자를 여호와야훼라고 명시하고, 다음 장 19장 1절에서는 소돔에 도착한 두 방문객을 천사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세 사람이 단순한 여행객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장이 세 인물의 존재 방식을 모두 설명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사라는 어디 있느냐 — 천막 안으로 향하는 약속

창세기 18:9–12 본문 →

식사를 마친 방문객들이 처음 꺼내는 질문은 뜻밖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말했다. 「네 아내 사라는 어디 있느냐?」 그가 말했다. 「여기 천막 안에 있습니다.」창세기 18:9 · 본디새김

이 질문은 단순히 사라의 소재를 확인하기 위한 말처럼 보이지만, 이어지는 말씀은 사라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들입니다.

그가 말했다.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오겠다. 그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사라는 그의 뒤에 있는 천막 입구에서 듣고 있었다.창세기 18:10 · 본디새김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17:16, 19, 21). 그런데 18장에서는 그 약속을 사라가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에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를 직접 향해 말씀하시는 형식은 아니지만, 사라는 이제 자신에게 관한 약속을 듣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모두 늙었습니다. 특히 사라는 달거리가 끊긴 상태였습니다. 자연적인 임신 가능성이 이미 사라진 상태임을 독자에게 알려줍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쇠한 뒤에 즐거움이 생길까? 내 주인도 늙었는데.」창세기 18:12 · 본디새김

그가 생각하는 것은 추상적인 가능성이 아닙니다. 늙어 버린 자신의 몸, 늙은 남편, 오랫동안 아이 없이 지나온 세월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라의 웃음은 단순한 조롱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믿기 어려운 약속 앞에서 나온 반응이며, 그 배경에는 매우 구체적인 신체적 현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젊고 건강해서 아들을 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몸이 이미 그 가능성을 잃었다는 사실을 본문이 거듭 강조합니다.

약속의 성취가 인간의 능력이나 상황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야훼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 웃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창세기 18:13–15 본문 →

사라는 마음속으로 웃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그 웃음을 알고 계십니다.

여호와야훼가 아브라함에게 말했다. 「사라는 왜 『내가 늙었는데도 정말 아이를 낳을까?』 하며 웃었느냐?」창세기 18:13 · 본디새김

사라는 자신의 쇠함과 남편의 늙음을 모두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라의 말을 다시 언급하시면서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십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대화의 중심은 부부의 신체 상태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옮겨갑니다.

「여호와야훼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겠느냐? 정해진 때, 내년 이맘때에 내가 너에게 돌아오겠다.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창세기 18:14 · 본디새김

사라에게 출산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가능성을 벗어난 일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인간에게 불가능하거나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 여호와야훼에게도 그러한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본문이 하나님은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이루어 주신다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질문의 근거는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말씀하신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젊음을 되찾을 방법을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출산이 어떻게 가능해질지도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자신이 정한 때에 약속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라는 두려워서 「저는 웃지 않았습니다.」 하고 부인했다. 그가 말했다. 「아니다. 너는 분명 웃었다.」창세기 18:15 · 본디새김

하나님은 사라의 부인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약속을 철회하거나 그를 내쫓지도 않으십니다. 그의 마음속 반응을 드러내시면서도 약속은 그대로 남겨 두십니다.

독자는 이제 한 가지를 기다리게 됩니다. 인간의 불신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21장은 사라가 아들을 낳는 장면에서 이 질문에 대답합니다. 그때 웃음은 더 이상 같은 의미에 머물지 않습니다(21:6).

내가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 복의 약속과 정의의 사명

창세기 18:16–19 본문 →

16절에서 장면이 바뀝니다.

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돔 쪽을 바라봅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배웅하려고 함께 걷습니다. 조금 전까지 이야기의 중심이었던 천막과 식탁이 뒤로 물러나고, 시선은 멀리 있는 성읍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소돔에 관한 말씀을 하시기 전에 여호와야훼는 먼저 아브라함을 언급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말했다. 「내가 하려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창세기 18:17 · 본디새김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에 관해 알려 주시려는 것일까요? 18–19절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은 크고 강한 민족이 될 것이며, 땅의 모든 민족이 그를 통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는 그가 자기 뒤를 이을 자녀들과 집안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의로움과 공정한 판단을 행하며 여호와야훼의 길을 지키도록 내가 그를 택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여호와야훼가 아브라함에 관해 말한 것을 그에게 이루려는 것이다.」창세기 18:19 · 본디새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신 목적은 그에게 많은 자손과 땅을 주시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살아가게 하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의로움은 올바른 관계와 행위를, 공정한 판단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땅한 정의가 실현되는 일을 가리킵니다. 둘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과 분리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18장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이어집니다.

조금 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아들과 후손들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의로움과 공정한 판단을 행해야 할 사람입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이 한 성읍을 어떻게 판단하시는지를 듣게 됩니다.

내가 이제 내려가서 보겠다 — 심판에 앞선 하나님의 살핌

창세기 18:20–21 본문 →

여호와야훼가 소돔과 고모라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말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들의 죄가 매우 무거우니,」창세기 18:20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소돔의 악을 설명하면서 구체적인 범죄 목록을 먼저 제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부르짖음」을 말합니다.

창세기 4장 10절에서는 아벨의 피가 땅에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출애굽기 3장 7–9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억압 속에서 부르짖고,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보시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다만 창세기 18장은 그 부르짖음의 주체가 누구인지, 어떤 사건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아직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19장에서는 소돔 주민들이 방문객에게 집단으로 폭력을 행사하려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후대의 에스겔 16장 49절은 소돔의 교만과 풍요 속에서도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을 돕지 않았던 죄를 지적합니다.

이러한 본문들을 함께 살피면 소돔의 죄를 한 가지 행위로만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18장 자체에서 중요한 것은 범죄의 세부 항목보다, 그 성읍에 관한 심각한 호소가 하나님께 도달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들이 한 일이 내게 이른 부르짖음과 온전히 들어맞는지 보겠다. 그렇지 않다면 알아보겠다.」창세기 18:21 · 본디새김

본문은 하나님의 지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철학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의 언어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합니다.

비슷한 표현은 바벨탑 이야기에도 등장합니다. 창세기 11장 5절에서 여호와야훼는 사람들이 세우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십니다. 이러한 서술은 하나님이 인간 세상의 일을 멀리서 무심하게 처리하시는 분이 아니라, 직접 살피시고 판단하시는 분이라는 인상을 줍니다.

특히 창세기 18장에서 이 표현은 심판의 정당성과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소돔에 관한 호소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호소가 들렸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살핌 없이 파괴를 집행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악에 대한 무관심도 아니고, 사실을 가리지 않는 분노도 아닙니다.

이것은 다음 장면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공정한 판단을 요구할 수 있는 토대가 됩니다.

온 땅을 재판하시는 분이 공정한 판단을 행하지 않으시겠습니까 — 아브라함의 담대한 질문

창세기 18:22–26 본문 →

방문객들은 소돔을 향해 떠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여전히 여호와야훼 앞에 서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다가가 말했다. 「참으로 의로운 이를 악한 이와 함께 쓸어버리시겠습니까?」창세기 18:23 · 본디새김

아브라함은 소돔에 죄가 없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소돔의 죄가 가벼우니 심판하지 말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제기하는 문제는 심판이 의로운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이루어질 가능성입니다.

「성 안에 의로운 이 쉰 명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쓸어버리시고, 성 안에 있는 의로운 이 쉰 명을 위해 그곳을 살려 두지 않으시겠습니까?」창세기 18:24 · 본디새김

의로운 사람이 악한 사람과 함께 죽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의로운 사람을 따로 구해 달라는 요청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단순히 무고한 사람의 보호만을 간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의 의로운 사람들 때문에 죄가 있는 성읍 전체에 자비가 베풀어질 가능성을 묻고 있습니다.

그의 질문에는 심판의 공정성과 심판을 유보하는 자비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의로운 이를 악한 이와 함께 죽여 의로운 이를 악한 이와 똑같이 취급하는 그런 일을 하셔서는 결코 안 됩니다. 결코 그러셔서는 안 됩니다. 온 땅을 재판하시는 분이 공정한 판단을 행하지 않으시겠습니까?」창세기 18:25 · 본디새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공정한 판단을 행하는 삶을 가르치려 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바로 그 공정한 판단을 근거로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보다 더 높은 도덕적 권위를 자신에게 부여하는 행동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셔야 하는지를 자신의 바람대로 규정하기보다, 하나님이 의로우신 재판장이라는 사실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실제적인 긴장이 남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판단을 아직 다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말했다. 「내가 소돔에서, 그 성 안에서 의로운 이 쉰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해 그곳 전체를 살려 두겠다.」창세기 18:26 · 본디새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질문을 불경한 도전이라며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이 대답으로 아브라함의 간청은 한 번의 질문에서 끝나지 않고 더 깊은 대화로 이어집니다.

흙먼지와 재인 제가 감히 — 여섯 번 이어지는 간청

창세기 18:27–33 본문 →

아브라함은 다시 말을 꺼냅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했다. 「보십시오, 흙먼지와 재인 제가 감히 주님께 말씀드리려 나섰습니다.」창세기 18:27 · 본디새김

「흙먼지와 재」라는 표현은 인간의 유한함과 낮은 처지를 드러냅니다. 아브라함은 온 땅을 재판하시는 분 앞에 선 한 인간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낮추는 이 말이 대화의 끝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이 말을 한 다음 다시 질문합니다.

의로운 사람이 쉰 명이 아니라 마흔다섯 명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답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마흔 명을 묻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받아들이십니다.

서른 명을 묻고, 스무 명을 묻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같은 방향으로 대답하십니다.

마침내 아브라함은 마지막으로 열 명을 제시합니다.

아브라함이 말했다. 「주님, 부디 노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번 한 번만 말씀드리게 해 주십시오. 거기서 열 명이 발견될지도 모릅니다.」 그가 말했다. 「그 열 명을 위해 멸망시키지 않겠다.」창세기 18:32 · 본디새김

이 대화에서 아브라함은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의로운 사람들의 숫자를 제시합니다. 숫자가 줄어들수록 아브라함의 말에는 더욱 조심스러운 표현이 등장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노하지 말아 달라고 거듭 부탁합니다. 자신의 말이 너무 지나친 것은 아닌지 의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숫자를 줄일 때마다 그 요청을 받아들이십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더 분명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를 베풀 의향입니다.

열 명은 아브라함이 마지막으로 요청한 숫자이지, 하나님이 직접 설정하신 자비의 최저 기준이라고 제시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왜 열 명에서 멈추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숫자에 특정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거나, 하나님이 더 낮은 숫자는 받아들이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단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그는 성읍의 악을 변호하지 않으면서도 성읍의 보존을 위해 간청합니다. 하나님의 정의에 호소하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합니다. 땅의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은 여기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염려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의 행동을 무조건 모범적인 것으로 이상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의 판단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며, 이 장의 기도도 소돔의 심판을 완전히 막지는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하나님의 정의를 이해하려 애쓰면서,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한 질문을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대화를 하나님이 이미 확정하신 결정을 아브라함이 조금씩 바꾸어 놓는 협상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하나님은 내려가서 살펴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물음에 대해서는 그 조건에 해당하면 성읍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응답하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어떤 결정 변경이 일어났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독자에게 들려주는 것은 아브라함의 반복되는 간청과 그때마다 주어지는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다음 장은 소돔에 대한 심판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창세기 19장 29절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고 롯을 멸망 가운데서 내보내셨다고 명시합니다.

맺음말 — 두 문턱에 선 아브라함

창세기 18:1–33 본문 →

아브라함의 첫 번째 움직임은 자기 천막으로 찾아온 사람들을 향했습니다. 마지막 움직임은 멀리 있는 성읍을 향한 간청으로 이어집니다. 두 장면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정의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면서, 생명을 다루는 일에 공정한 판단을 행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 이야기는 조용히 끝납니다.

여호와야훼는 아브라함에게 말을 마치자 떠났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창세기 18:33 · 본디새김

아브라함이 돌아간 자리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소돔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사라에게 약속된 아들도 아직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하루 동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들었고, 하나님이 공정한 판단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지 들었으며, 그분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미래를 약속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 간청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 그는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독자가 그 자리의 아브라함을 바라보는 눈은 처음과 같을 수 없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