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41장

이 장의 자리 · 37–50장 · 요셉과 이집트

하나님이 보여 주신 미래와 사람의 준비

파라오의 첫 번째 꿈에는 기이한 장면이 나옵니다. 야윈 암소 일곱 마리가 살진 암소 일곱 마리를 먹어 버립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야윈 소들의 모습은 처음과 똑같이 흉했다.」 앞서 누렸던 풍요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41장은 다가올 재앙을 알려 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일어날 일을 알리시고, 요셉은 그 지식을 실제로 사람들을 살리는 준비로 바꿉니다.

하나님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이미 확정하셨다면, 사람이 준비하고 행동하는 일에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941장 본문 읽기 →

두 해의 침묵 끝에 찾아온 두 개의 꿈

창세기 41:1–8 본문 →

요셉이 잊힌 시간에 일어난 일

꼬박 두 해가 지난 뒤, 파라오가 꿈을 꾸었다. 꿈에 보니 자기가 나일강 가에 서 있었다.창세기 41:1 · 본디새김

‘꼬박 두 해’라는 표현은 앞 장의 결말을 기억하는 독자에게 특별하게 들립니다. 술 시중 책임자는 감옥에서 나오면서 요셉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 해가 흘렀습니다.

그동안 요셉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감옥 밖에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요셉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삶을 바꿀 사건이 왕궁에서 시작됩니다. 파라오의 꿈이 먼저 나타나고, 그 꿈을 풀어 줄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비로소 요셉이 다시 등장합니다.

나일강에서 올라오는 소들

첫 번째 꿈은 나일강 가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나일강에서 생김새가 좋고 살진 암소 일곱 마리가 올라와 갈대밭에서 풀을 뜯었다.창세기 41:2 · 본디새김

이집트에서 나일강은 농경과 목축을 지탱하는 중요한 물의 근원이었습니다. 강물의 범람과 물의 공급은 농업 생산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러므로 파라오가 나일강에서 올라오는 소들을 보는 장면은 이집트의 생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이미지입니다.

그 뒤로 정반대의 암소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암소 일곱 마리가 그 뒤를 따라 나일강에서 올라왔다. 생김새가 흉하고 야윈 소들이었다. 그 소들은 나일강 가에서 암소들 곁에 섰다.창세기 41:3 · 본디새김

처음에는 풍요로웠던 환경이 이제는 먹을 것이 부족한 환경으로 바뀐 듯한 인상을 줍니다. 더구나 뒤에 등장한 암소들은 앞의 살진 암소들을 먹어 버립니다.

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다는 점에서도 비정상적인 꿈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풍요를 나타내던 존재들이 결핍을 나타내는 존재들에게 완전히 삼켜진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꿈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한 줄기에서 굵고 좋은 이삭 일곱 개가 나옵니다. 그런데 뒤이어 가느다랗고 동풍에 시든 이삭 일곱 개가 나타나 좋은 이삭들을 삼켜 버립니다(41:5–7).

여기서 ‘동풍’은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과 연결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시든 이삭은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는 흉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꿈은 이집트의 식량 생산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보여줍니다. 하나는 가축의 상태를 통해, 다른 하나는 곡식의 상태를 통해 풍요와 결핍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파라오 개인의 운명을 넘어 이집트 땅 전체의 생산과 생존에 관한 문제가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왜 풀지 못했는가

아침이 되자 그의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그는 사람을 보내 이집트의 모든 주술사와 그곳의 모든 지혜로운 사람을 불러들였다. 파라오가 그들에게 자기 꿈을 이야기했지만, 파라오에게 그 꿈들을 풀어 주는 사람은 없었다.창세기 41:8 · 본디새김

파라오는 이집트가 가진 지혜와 종교적 전문성을 동원합니다. 여기서 주술사와 지혜로운 사람들은 서로 다른 직무와 지식을 지닌 궁정의 전문가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집트의 지혜로운 사람들이 꿈을 풀지 못합니다. 나중에는 이집트를 다스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납니다.

미래에 관해 아는 지혜와, 그 미래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지혜를 함께 보여줍니다.

왕 앞에 선 히브리 종

창세기 41:9–16 본문 →

뒤늦게 되살아난 기억

파라오가 꿈을 풀 사람을 찾지 못하자 술 시중 책임자가 입을 엽니다.

술 시중 책임자가 파라오에게 말했다. 「제가 오늘 제 잘못들을 말씀드립니다.」창세기 41:9 · 본디새김

그는 과거에 감옥에 갇혔던 일을 이야기하고, 그곳에서 만난 히브리 젊은이를 떠올립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잘못들’이 과거에 파라오에게 저질렀던 잘못을 가리키는지, 요셉을 잊고 있었던 일까지 포함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저희와 함께 히브리 젊은이가 있었는데, 경호대장의 종이었습니다. 저희가 그에게 이야기하자 그가 저희의 꿈들을 풀어 주었습니다. 각자의 꿈에 맞게 풀어 주었습니다.」창세기 41:12 · 본디새김

그가 소개하는 요셉의 신분은 보잘것없습니다. 왕의 궁정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았던 사람도 아니고, 이집트의 지혜로운 사람들 가운데 이름난 인물도 아닙니다. 그리고 술 시중 책임자는 그 풀이가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증언합니다.

이제 요셉이 왕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구덩이에서 왕궁으로

파라오는 사람을 보내 요셉을 불러오게 했다. 사람들이 서둘러 그를 구덩이에서 데리고 나왔다. 요셉은 털을 밀고 옷을 갈아입은 뒤 파라오에게 갔다.창세기 41:14 · 본디새김

앞에서는 꼬박 두 해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이 요셉을 서둘러 데리고 나옵니다.

오랫동안 아무 변화가 없었던 삶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의 특별한 옷은 형들의 적대감과 연결되었고, 39장에서는 주인의 아내에게 남겨진 옷이 거짓 고발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요셉은 감옥의 옷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습니다. 아직 그는 왕 앞에 불려 나온 죄수일 뿐입니다.

왕이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게 달린 일이 아닙니다」

파라오는 요셉에게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확인합니다.

파라오가 요셉에게 말했다. 「내가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풀어 주는 사람이 없다. 내가 너에 대해 듣기로는, 너는 꿈을 들으면 그것을 풀 수 있다고 하더구나.」창세기 41:15 · 본디새김

그런데 요셉은 그 기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요셉이 파라오에게 대답했다. 「제게 달린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평안을 위해 답해 주실 것입니다.」창세기 41:16 · 본디새김

요셉이 부인하는 것은 자신의 역할이 아니라, 그 능력의 궁극적인 근원이 자신이라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요셉이 전하는 내용에는 끔찍한 기근에 대한 경고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안은 그 경고를 듣고 적절히 대응함으로써 파라오와 그의 나라가 재앙을 견딜 길을 찾게 된다는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풍요를 삼켜 버리는 기근

창세기 41:17–32 본문 →

파라오는 왜 꿈을 다시 자세히 이야기하는가

파라오는 요셉에게 자신의 꿈을 다시 설명합니다.

독자는 이미 1–7절에서 두 꿈의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파라오는 몇 가지 표현을 더욱 강하게 말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암소 일곱 마리가 그 뒤를 따라 올라왔다. 허약하고 몸매가 몹시 흉하며 야윈 소들이었다. 나는 이집트 온 땅에서 그처럼 흉한 소들을 본 적이 없다.」창세기 41:19 · 본디새김

그리고 처음 꿈이 소개될 때에는 나오지 않았던 세부 사항을 덧붙입니다.

「살진 소들이 야윈 소들의 배 속으로 들어갔는데도, 그 배 속에 들어간 줄을 알 수가 없었다. 야윈 소들의 모습은 처음과 똑같이 흉했다. 그러고는 내가 잠에서 깼다.」창세기 41:21 · 본디새김

좋은 것을 모두 삼켰는데도 결핍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요셉은 바로 그 장면의 의미를 밝힙니다.

풍년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요셉의 풀이는 명료합니다.

요셉이 파라오에게 말했다. 「파라오의 꿈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파라오께 알려 주신 것입니다.」창세기 41:25 · 본디새김

좋은 암소 일곱 마리와 좋은 이삭 일곱 개는 칠 년의 풍년입니다. 야윈 암소 일곱 마리와 동풍에 시든 이삭 일곱 개는 그 뒤에 닥칠 칠 년의 기근입니다.

「그 뒤에는 기근이 드는 칠 년이 닥칠 것입니다. 이집트 땅의 그 모든 풍요는 잊히고, 기근이 이 땅을 황폐하게 할 것입니다.」창세기 41:30 · 본디새김
「그 뒤에 닥칠 그 기근 때문에 이 땅에서는 풍요가 있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 기근이 몹시 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창세기 41:31 · 본디새김

기근은 단순히 풍년이 끝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앞선 풍요의 흔적을 지워 버릴 만큼 심각한 재앙입니다. 살진 암소를 먹어 치운 야윈 암소가 여전히 야윈 모습으로 남아 있던 것은, 풍요가 뒤따라올 결핍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릴 것을 보여주는 이미지였습니다.

앞 장에서 술 시중 책임자는 요셉을 잊었습니다. 이제는 이집트의 풍요 자체가 잊힐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기억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을 잊을 수 있고, 한 사회의 풍요로운 시절도 뒤이은 고통 속에서 기억조차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풍요가 사라지기 전에 그 풍요의 일부를 미래를 위해 남겨 두어야 합니다.

꿈이 두 번 반복된 이유

요셉은 두 개의 꿈이 같은 일을 보여준 이유까지 설명합니다.

「파라오께 꿈이 두 번 되풀이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일을 확정하셨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서둘러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창세기 41:32 · 본디새김

요셉의 설명대로라면 풍년과 기근은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에 속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요셉은 그 미래에 대비할 방법을 제안합니다.

그가 바꾸려는 것은 기근 자체가 아니라, 기근이 닥쳤을 때 사람들이 맞게 될 결과입니다.

미래를 아는 지혜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로

창세기 41:33–36 본문 →

요셉은 왜 꿈풀이를 마치고 정책을 제안하는가

요셉은 꿈의 뜻을 설명한 뒤 말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 파라오께서는 분별력 있고 지혜로운 사람을 찾으시고, 그에게 이집트 땅을 다스리게 하십시오.」창세기 41:33 · 본디새김

여기서 ‘그러니 이제’라는 연결이 중요합니다. 요셉은 미래에 일어날 일을 알게 되었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다음 각 지역을 관리할 사람들을 임명하고, 풍년 동안 수확의 오분의 일을 거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곡식을 성읍들에 모아 보관해야 합니다.

첫째, 준비는 기근이 시작된 뒤가 아니라 풍년이 계속되는 동안 이루어져야 합니다.

둘째, 한 사람의 판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실제로 수확을 거두고 보관할 관리들이 필요합니다.

셋째, 식량은 성읍들에 저장하도록 합니다. 48절에서는 각 성읍에 그 주변의 먹거리를 저장합니다.

넷째, 비축한 식량은 단순히 왕궁의 재산을 늘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먹거리는 이집트 땅에 닥칠 칠 년 기근에 대비해 이 땅을 위한 비축분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이 기근으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창세기 41:36 · 본디새김

요셉은 꿈의 해석을 사람들의 생존 문제와 연결합니다.

확정된 미래와 피할 수 있는 재앙

요셉은 하나님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확정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행동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알려 주신 미래는 인간이 행동해야 할 이유가 됩니다.

지혜는 모든 미래를 마음대로 통제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다가올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안에서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잠언 6:6–8에서 개미가 여름과 추수 때 먹을 것을 마련한다는 지혜의 가르침과도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풍요로운 때에 미래의 필요를 위해 준비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다만 창세기 41장은 개인의 근면보다 훨씬 큰 규모의 문제를 다룹니다. 한 나라의 식량을 어떻게 관리하여 사람들이 재앙을 견디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해는 현실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일로 이어집니다.

꿈을 풀이하던 죄수에서 이집트를 다스리는 사람으로

창세기 41:37–46 본문 →

파라오가 알아본 지혜

파라오는 요셉의 꿈풀이뿐 아니라 그가 제안한 대책도 받아들입니다.

파라오가 신하들에게 말했다. 「하나님의 영이 깃든 이런 사람을 우리가 찾을 수 있겠느냐?」창세기 41:38 · 본디새김

그는 요셉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판단합니다.

파라오가 요셉에게 말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알려 주었으니, 너만큼 분별력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창세기 41:39 · 본디새김

요셉은 자신을 그 자리에 임명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에게 필요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했을 뿐입니다.

왕이 그 조건에 가장 잘 맞는 사람으로 요셉을 선택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맡긴다는 말의 새로운 의미

「너는 내 집을 맡아 다스릴 것이다. 내 모든 백성이 네 말에 복종할 것이다. 다만 왕좌의 지위에서만 내가 너보다 높을 것이다.」창세기 41:40 · 본디새김
파라오가 요셉에게 말했다. 「보아라. 내가 너를 이집트 온 땅을 다스릴 사람으로 세웠다.」창세기 41:41 · 본디새김

보디발의 집에서는 주인의 소유를 관리했습니다. 감옥에서는 죄수들과 감옥 안의 일을 맡았습니다. 이제는 이집트 온 땅을 관리하게 됩니다.

세 경우 모두 요셉은 다른 사람에게서 권한을 위임받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한 집안의 살림이나 감옥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의 생존이 걸린 일을 맡게 됩니다.

그가 맡은 일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은, 그의 판단과 행동이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범위도 그만큼 넓어졌다는 뜻입니다. 요셉의 지위가 높아지는 만큼, 그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수도 많아집니다.

인장 반지와 새로운 옷

파라오는 요셉의 임명을 상징적인 행동으로 확정합니다.

파라오는 자기 손에서 인장 반지를 빼 요셉의 손에 끼워 주고, 그에게 고운 아마포 옷을 입히고 목에 금목걸이를 걸어 주었다.창세기 41:42 · 본디새김

인장 반지는 공식적인 권한을 나타내는 물건입니다. 왕의 인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왕의 이름과 권위를 바탕으로 명령을 내리고 행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감옥에서 나올 때의 옷은 왕 앞에 나아가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지금의 옷은 왕이 그에게 새로운 지위를 부여했다는 표시입니다.

파라오는 요셉을 자기의 병거 가운데 서열이 둘째인 병거에 태웠고, 사람들은 요셉 앞에서 「아브레크」 하고 외쳤다. 파라오는 그를 이집트 온 땅을 다스릴 사람으로 세웠다.창세기 41:43 · 본디새김

요셉의 새로운 지위는 왕과 요셉 사이에서만 인정되는 비밀스러운 임명이 아닙니다. 이집트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드러나는 권한입니다.

이집트식 이름과 이집트인 아내

파라오는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고 부르고,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아내로 주었다. 요셉은 이집트 땅 곳곳으로 나갔다.창세기 41:45 · 본디새김

요셉은 이제 이집트의 공적 권력 체계 안에 들어갑니다.

그의 사회적 위치와 생활 환경은 이집트 사회 안에서 깊이 자리 잡게 됩니다. 오히려 뒤에 등장할 두 아들의 이름에서 요셉이 자신의 삶을 여전히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열세 해가 지나서야 맞은 새로운 자리

요셉이 이집트 왕 파라오 앞에 섰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다. 요셉은 파라오 앞에서 나와 이집트 온 땅을 돌아다녔다.창세기 41:46 · 본디새김

열일곱 살에 형들과 함께하던 요셉이 서른 살이 되어 파라오 앞에 섰습니다. 그 사이에 형들에게 팔렸고, 노예가 되었으며,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습니다.

하지만 이 장에서 요셉의 새로운 지위는 이야기의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부터 그의 지위가 무엇을 위해 주어졌는지가 드러납니다.

조금 더 깊이

물론 이 한마디만으로 파라오가 여호와야훼를 유일한 하나님으로 믿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집트 왕의 종교적 이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아브레크’의 정확한 뜻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요셉이 지나갈 때 사람들이 외친 말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했는지는 단정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사브낫바네아라는 이름의 정확한 어원과 뜻은 논쟁적이므로 확정적인 뜻을 부여하기 어렵습니다. ‘온’은 이집트의 종교적으로 중요한 도시로, 훗날 헬리오폴리스라고 불린 곳과 연결됩니다.

풍년을 낭비하지 않은 사람

창세기 41:47–49 본문 →

땅이 풍성하게 내는 동안

풍년이 든 일곱 해 동안 땅은 곡식을 움큼으로 퍼 담을 만큼 풍성하게 냈다.창세기 41:47 · 본디새김

요셉은 생산량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습니다. 그 풍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풍년은 단순히 좋은 시절이 아닙니다.

기근을 준비할 수 있는 한정된 시간입니다.

요셉은 이집트 땅에서 그 일곱 해 동안 난 모든 먹거리를 모아 성읍들에 두었다. 각 성읍 둘레의 들에서 난 먹거리를 그 성읍 안에 두었다.창세기 41:48 · 본디새김

앞서 말한 정책이 실제 행정으로 옮겨집니다. 이는 곡식을 모으고 보관하는 일에 지역별 관리와 시설이 필요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모든 먹거리’라는 말은 문맥상 요셉이 수집하고 저장한 식량을 포괄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집트에서 생산된 식량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거두었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요셉은 수확의 오분의 일을 거두라고 제안했습니다(41:34).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곡식

요셉은 바닷가의 모래처럼 엄청나게 많은 곡식을 쌓아 두었다. 마침내 그는 세는 일을 그만두었다. 셀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창세기 41:49 · 본디새김

앞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을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22:17). 그런데 여기서는 그 표현이 사람의 수가 아니라 곡식의 양을 나타냅니다.

두 본문을 직접적인 예언과 성취의 관계로 연결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안에서 같은 이미지가 생명과 풍성함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이 곡식은 그 자체로 요셉의 명예를 드러내기 위해 쌓인 것이 아닙니다. 장차 굶주릴 사람들의 생명을 지탱할 식량입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 — 고난을 기억하는 두 가지 방식

창세기 41:50–52 본문 →

풍년이 계속되는 동안 요셉에게 두 아들이 태어납니다.

본문은 두 아들의 이름과 그 이름에 담긴 요셉의 설명을 전합니다. 이 부분은 이야기의 큰 흐름에서 잠시 벗어난 가족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요셉이 자신의 지난 삶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첫째 아들 므낫세 — 잊게 하신 하나님

요셉은 맏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고생과 내 아버지의 온 집안을 잊게 해 주셨다.」라고 했기 때문이다.창세기 41:51 · 본디새김

이 이름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요셉이 자신의 변화된 처지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고난의 기억이 달라진 이유를 자신의 의지나 성공에만 돌리지 않습니다.

이 표현은 앞서 술 시중 책임자가 요셉을 잊었던 장면과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때 잊힘은 요셉을 고난 속에 남겨 두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요셉이 말하는 잊음은 고난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경험과 연결됩니다.

둘째 아들 에브라임 — 고난의 땅에서 번성하게 하신 하나님

둘째의 이름은 에브라임이라고 지었다. 「하나님께서 내 고난의 땅에서 나를 번성하게 하셨다.」라고 했기 때문이다.창세기 41:52 · 본디새김

지금 요셉은 이집트에서 왕 다음가는 권한을 지닌 사람입니다. 이집트인 아내를 맞아들였고 두 아들도 얻었습니다. 곡식을 쌓아 두며 나라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살아가는 이집트를 여전히 고난의 땅이라고 부릅니다.

현재의 성공이 과거에 겪은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는 고난의 땅이라는 표현을 버리지 않으면서, 바로 그 땅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번성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고난의 기억과 풍성함의 경험이 같은 장소 안에 놓여 있습니다.

이 두 이름은 요셉이 고통스러운 과거를 단순히 지워 버린 사람도 아니고, 과거의 고통에만 붙잡혀 있는 사람도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하나님의 행동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이해를 두 아들의 이름에 새겨 넣습니다.

조금 더 깊이

‘므낫세(⁨מְנַשֶּׁה⁩)’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에서 ‘잊다’를 뜻하는 동사와 연결되는 이름풀이를 지닙니다. 우선 요셉은 자신이 잊었다고 말하는 대상을 여전히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또한 이후의 이야기에서 요셉은 형제들을 알아보고 자신의 가족을 기억합니다(창세기 42장). 따라서 여기서 ‘잊게 해 주셨다’는 말은 과거에 관한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는 뜻보다는, 그 고생과 가족에게서 겪은 상처가 더 이상 지금의 삶을 이전과 똑같이 짓누르지 않게 되었다는 고백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요셉이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에 도달했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형들을 완전히 용서했다거나 가족에게 돌아갈 생각을 포기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에브라임(⁨אֶפְרַיִם⁩)’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에서 열매를 맺거나 번성한다는 의미와 연결되는 이름풀이를 지닙니다.

마침내 열린 곡식 저장고

창세기 41:53–57 본문 →

풍년은 끝났고, 기근이 시작되었다

이집트 땅에 들었던 칠 년 풍년이 끝났다.창세기 41:53 · 본디새김

이 짧은 문장으로 일곱 해가 지나갑니다.

요셉이 말한 대로 칠 년 기근이 시작되었다. 모든 땅에 기근이 들었지만, 이집트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었다.창세기 41:54 · 본디새김

이집트라고 해서 기근을 피한 것은 아닙니다. 그 땅에도 곡식 생산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풍년 동안 모아 둔 식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에게 가라」

이집트 온 땅이 굶주리자 백성이 파라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부르짖었다. 파라오가 이집트의 모든 사람에게 말했다. 「요셉에게 가라. 그가 너희에게 말하는 대로 하라.」창세기 41:55 · 본디새김

이 말은 앞서 요셉에게 부여된 권한이 실제로 행사되는 장면입니다. 요셉이 지닌 지혜의 최종적인 가치는 그가 얼마나 높은 지위에 올랐는가보다, 그 지위를 통해 어떤 일을 하는가에서 드러납니다.

저장고를 열다

기근이 온 땅에 퍼져 있었다. 요셉은 곡식을 쌓아 둔 곳을 모두 열어 이집트 사람들에게 곡식을 팔았다. 이집트 땅의 기근은 더욱 심해졌다.창세기 41:56 · 본디새김

이제 그 준비가 실제로 사람들의 생존을 지탱합니다.

온 땅의 사람들이 찾아오다

마지막 절에서 이야기의 시야는 이집트 바깥으로 넓어집니다.

온 땅의 사람들이 곡식을 사려고 이집트의 요셉에게 왔다. 온 땅에 기근이 심했기 때문이다.창세기 41:57 · 본디새김

그가 보디발의 집에서 일할 때 그의 능력은 한 집안에 복을 가져왔습니다. 이제 그가 맡은 일은 이집트뿐 아니라 식량을 구하러 오는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를 통해 땅의 여러 가족이 복을 받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세기 12:3). 아브라함의 후손인 요셉은 이집트에서 다른 민족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요셉이 이 장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을 완전히 성취했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요셉 자신의 가족과의 관계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창세기 41장은 약속의 후손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보존할 길이 마련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높아진 요셉과 아직 남아 있는 약속

열일곱 살의 요셉은 형들의 곡식 단들이 자신의 단 앞에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37:7). 그 꿈은 형들과의 갈등을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요셉은 이집트에서 곡식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곡식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그에게 찾아옵니다.

곡식이라는 이미지가 뜻밖의 방식으로 다시 등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41장만으로 요셉의 첫 번째 꿈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꿈에서 절한 사람들은 형들이었고, 이 장의 마지막에는 아직 형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가족과 관련된 꿈의 구체적인 성취는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살펴야 합니다.

본문은 요셉의 사회적 성공과 가족 관계의 회복을 하나의 사건으로 합쳐 버리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요셉은 곡식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곡식을 팔았습니다. 이집트의 식량 관리와 판매가 백성의 재산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뒤의 창세기 47:13–26에서 더욱 자세하게 나타납니다. 그곳에서는 기근이 계속되는 동안 사람들의 돈과 가축, 토지가 어떻게 이전되는지도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요셉의 정책이 사람들의 생존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식량을 어떤 조건으로 공급했는가 하는 문제는 구별해서 살펴야 합니다. 성경은 그의 지혜로운 준비를 분명하게 보여주지만, 식량 정책의 모든 경제적·사회적 결과를 이 한 장에서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온 땅’은 이야기에서 기근의 영향을 받는 넓은 지역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를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 예외 없이 기근이 들었다는 지리적 진술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과 인간의 지혜

창세기 41:1–57 본문 →

하나님이 알려 주신 미래를 요셉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미래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처지는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알려 주신 일을 듣고,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고,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곡식을 쌓아 둔 곳을 엽니다.

그 안에는 풍년 동안 모아 둔 곡식이 있습니다. 한때는 사람들의 눈앞에 넘쳐나던 풍요였지만, 이제는 기근 속에서 생명을 이어 갈 수 있게 하는 식량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준비된 곡식 저장고의 문이 열리자, 먹을 것을 찾아온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