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1–11장 · 세상과 사람의 시작
물이 들어 올린 방주, 물이 삼킨 세상
창세기 7장에는 하나의 물이 정반대의 두 가지 일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방주를 들어 올린 물이 산들을 덮습니다. 방주 안의 생명을 떠받치는 바로 그 물이 방주 밖의 생명들을 삼켜 버립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가장 결정적인 행동은 물이 쏟아지는 순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가족과 생물들이 그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들을 안에 두고 문을 닫으신 분은 여호와야훼입니다.
왜 이야기는 이 짧은 행동을 특별히 기록했을까요?
「내가 보았기 때문이다」 — 심판 앞에서 인정받은 한 사람
여호와야훼가 노아에게 말했다. 「너와 네 온 집안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롭다는 것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다.」창세기 7:1 · 본디새김
앞 장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고 생물들을 준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준비는 실제로 방주에 들어가는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앞서 하나님은 세상의 악함을 보셨습니다(6:5). 땅이 망가진 모습도 보셨습니다(6:12).
이번에는 노아를 보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세대, 같은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하나님이 보시는 모습은 다릅니다.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 가운데서 노아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됩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노아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나았다는 평가를 넘어섭니다. 그는 「내 앞에」 의로운 사람입니다. 이 말은 노아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다른 사람들의 인기나 사회적 인정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그의 삶을 보시고 평가하십니다.
하나님은 노아 한 사람에게 의롭다고 말씀하시지만, 방주에는 그의 온 집안이 함께 들어가도록 하십니다.
본문은 노아의 아내와 아들들, 며느리들 각각의 의로움을 평가하지 않습니다. 다만 명시적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노아이고, 방주에 들어가라는 명령은 그의 가족 전체를 향합니다.
이야기는 노아라는 한 개인을 중심으로 시작하지만, 생존의 범위는 그 개인에게 머물지 않습니다.
왜 어떤 짐승은 일곱 쌍인가?
「정결한 모든 집짐승 가운데서 너를 위해 수컷과 그 짝을 일곱 쌍씩 데려가고, 정결하지 않은 집짐승 가운데서는 수컷과 그 짝을 한 쌍씩 데려가라.」창세기 7:2 · 본디새김
앞 장에서는 모든 육체 가운데 각각 둘씩 방주에 들이라고 하셨습니다(6:19–20). 그런데 여기서는 정결한 짐승과 정결하지 않은 짐승을 구별하십니다.
6장에서는 생물들을 수컷과 암컷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원칙이 제시됩니다. 7장에서는 정결한 짐승과 그렇지 않은 짐승을 구분해 구체적인 수량을 지시합니다. 이어 7:9에서 「둘씩 둘씩」 들어갔다고 하는 표현도 반드시 모든 종류의 생물이 두 마리만 들어갔다는 뜻은 아닙니다. 수컷과 암컷이 짝을 이루어 들어간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7:2의 숫자 자체에는 해석상 어려움이 남아 있습니다. 히브리어에는 ‘일곱, 일곱’, 그리고 ‘수컷과 그 짝’이라는 표현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본디새김처럼 일곱 쌍으로 읽을 수도 있고, 정결한 짐승을 모두 일곱 마리씩 들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원문만으로 어느 쪽인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정결한 짐승을 더 많이 데려가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장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뒤의 창세기 8:20에서 노아가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날짐승으로 번제를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따라서 정결한 짐승을 더 많이 보존하라는 명령은 뒤따를 제사와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시점에 레위기에 기록된 모든 정결 규정이 이미 같은 형태로 시행되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창세기 7장은 그 구분의 기준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날짐승도 수컷과 암컷을 일곱 쌍씩 데려가라. 온 땅 위에 그 자손을 살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창세기 7:3 · 본디새김
하나님은 방주 안에 들어갈 생물들만 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 생물들에게서 앞으로 태어날 자손들까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방주에 들어가는 생물은 살아남아야 할 개체인 동시에, 앞으로 이어질 생명의 시작점입니다.
이레 뒤에 시작될 일
「앞으로 이레 뒤에 내가 땅 위에 사십 일 낮과 사십 일 밤 동안 비를 내리고, 내가 만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땅바닥 위에서 지워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창세기 7:4 · 본디새김
심판의 대상은 하나님과 무관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생명들입니다. 심판은 단순히 악한 사람들이 자기 행동의 결과를 겪는 사건으로만 묘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들이 사라지는 일입니다.
노아의 응답은 한 문장입니다.
노아는 여호와야훼가 자기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대로 했다.창세기 7:5 · 본디새김
노아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 홍수를 앞두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본문이 독자에게 보여 주는 것은 그의 행동입니다. 방주를 만들라는 명령을 따랐던 노아는 이제 그 안으로 들어가라는 명령도 따릅니다.
반복해서 기록되는 입장 — 누가 방주 안에 있는가
노아가 육백 살이었을 때 땅 위에 홍수의 물이 닥쳤다.창세기 7:6 · 본디새김
이 장에서 노아의 나이는 단순한 전기적 정보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이어지는 사건에 정확한 시간이 붙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5장의 계보에서 사람들은 몇 해를 살고 자녀를 낳았으며 몇 해를 더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노아가 육백 살이었다는 사실이 한 사건의 시작점을 표시합니다. 이후 본문은 날짜까지 기록합니다.
노아의 나이를 세는 방식이 이제 생애의 총길이를 계산하는 데서 홍수라는 사건의 시간을 기록하는 데로 옮겨 갑니다.
7절에서는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갑니다. 이어 정결한 집짐승, 정결하지 않은 집짐승, 날짐승과 땅바닥 위를 기어 다니는 생물들이 등장합니다.
수컷과 암컷이 둘씩 둘씩 노아에게 와서 방주로 들어갔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령한 대로였다.창세기 7:9 · 본디새김
앞 장에서 하나님은 생물들이 노아에게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6:20). 이제 그 말씀이 실제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노아는 생물들을 보존할 준비를 하고, 생물들은 그에게 와서 방주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레가 지나자 홍수의 물이 땅 위에 닥쳤다.창세기 7:10 · 본디새김
본문은 7절에서 방주로 들어갔다고 말한 뒤, 10절에서 이레가 지나 홍수가 시작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이후 13절에서는 다시 「바로 그날」 방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본문을 모든 문장이 시간순으로 한 번씩만 일어난 사건을 적은 일지처럼 읽으면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 장은 같은 사건을 반복하면서 서로 다른 측면을 보여 주는 방식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방주에 들어간 사람들이 누구인지 요약합니다. 그다음 홍수가 시작된 정확한 때를 기록하고, 다시 그날 방주에 들어온 사람과 생물들을 상세하게 보여 줍니다. 입장이 며칠에 걸쳐 진행되었고 마지막 날 완료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본문은 각 단계의 정확한 일정을 정리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홍수의 규모를 보기 전에 여러 차례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생명들을 보게 됩니다. 아직 물이 얼마나 높아질지 설명하지 않았지만, 누가 그 안에 있는지는 자세히 기록됩니다.
아래의 샘이 터지고 위의 창이 열리다
노아가 산 지 육백 년째 되는 해, 둘째 달 열이렛날, 바로 그날 거대한 깊은 물의 모든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창세기 7:11 · 본디새김
물은 아래에서도 나오고 위에서도 쏟아집니다.
창조 때 구분된 물이 다시 세상을 덮다
‘거대한 깊은 물’이라는 표현은 창세기 1:2의 깊은 물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조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물 가운데 공간을 만드시고, 물을 위와 아래로 나누셨습니다(1:6–7). 그리고 물이 한곳으로 모이게 하시어 마른땅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1:9–10).
그런데 이제 그 세계에 다시 물이 밀려듭니다.
물이 더 이상 자신에게 주어진 경계 안에 머물지 않는 것처럼 그려집니다. 아래에서 솟아오르고 위에서 쏟아져 내려 인간과 동물들이 살아가던 마른땅을 뒤덮습니다.
창조 때 물 사이에 마련되었던 생명의 공간이, 이제 다시 물에 덮입니다.
사십 일 낮과 사십 일 밤 동안 땅 위에 비가 내렸다.창세기 7:12 · 본디새김
그러나 사십 일이 끝났다고 해서 곧바로 홍수의 모든 위험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장의 마지막에는 물이 백오십 일 동안 땅 위에서 거세게 불어났다고 기록됩니다.
이제 그 물이 실제로 생물들의 삶을 덮기 직전, 이야기의 시선은 다시 방주로 돌아갑니다.
조금 더 깊이
‘하늘의 창들’은 하늘에 있는 창이나 수문과 같은 개구부를 통해 물이 쏟아지는 이미지입니다. 본문은 고대 독자가 이해할 수 있는 물의 세계를 배경으로 홍수의 압도적인 규모를 묘사합니다. ‘사십 일 낮과 사십 일 밤’은 비가 내린 기간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사십 일은 비와 초기 홍수의 진행에 관한 기간이고, 백오십 일은 물이 땅을 지배한 더 긴 기간에 관한 기록으로 구별해서 읽어야 합니다. 두 기간을 무조건 더하여 홍수가 백구십 일 지속되었다고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뒤의 창세기 8:3은 백오십 일이 지난 뒤 물이 줄어들었다고 기록합니다.
마지막으로 문을 닫으신 분
바로 그날 노아와 노아의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이 방주로 들어갔고, 노아의 아내와 그의 세 며느리도 그들과 함께 들어갔다.창세기 7:13 · 본디새김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지만, 그들은 생명이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모두 여덟 사람이 들어갑니다. 노아와 그의 아내, 세 아들과 그들의 아내들입니다.
그들과 함께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집짐승이 그 종류대로,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날짐승, 곧 온갖 새와 날개 달린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들어갔다.창세기 7:14 · 본디새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생물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서는 그 종류대로 방주에 들어갑니다. 창조 때에는 하나님이 생명을 존재하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그 생명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방주 안에 모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생물들의 다양성이 보존되는 사건입니다.
몸 안에 생명의 숨이 있는 모든 육체 가운데서 둘씩 둘씩 노아에게 와서 방주로 들어갔다.창세기 7:15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이어지는 죽음의 장면과 강하게 대조됩니다. 방주에 들어가는 생물들에게는 생명의 숨이 있습니다. 그러나 뒤에서는 마른땅에 있는 생명의 숨결을 지닌 것들이 모두 죽었다고 기록됩니다(7:22).
여기서 생명의 숨은 인간만의 특별한 특징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여러 생물들에게 공통으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입장이 끝납니다.
모든 육체 가운데서 들어간 것들은 수컷과 암컷이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령한 대로였다. 여호와야훼가 노아를 안에 두고 문을 닫았다.창세기 7:16 · 본디새김
노아가 닫지 않은 문
방주에 들어가라는 명령을 내리신 분이 마지막으로 그 입장을 마무리하십니다.
방주를 준비하고 들어가는 일은 노아에게 맡겨졌지만, 그들을 안에 두고 닫는 마지막 행동은 하나님께 속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방주 밖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문이 닫힌 방주는 이제 물 위에 떠오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원문에는 ‘문’이라는 명사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동사는 닫거나 가두는 행동을 나타내고, 목적어와 관련된 표현은 노아가 안에 있도록 닫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이 되도록 ‘문’을 보충했습니다.
물이 방주를 들어 올리고 산들을 덮다
홍수가 사십 일 동안 땅 위에 계속되었다. 물이 불어나 방주를 들어 올렸고, 방주는 땅에서 높이 떠올랐다.창세기 7:17 · 본디새김
본문은 노아가 방주를 어디론가 몰고 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목적지를 향해 항해했다는 설명도 없습니다.
홍수가 시작되기 전까지 방주는 땅 위에 세워진 구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물이 불어나면서 그 구조물이 땅에서 떨어져 나옵니다.
물이 불어나고, 거세지고, 모든 것을 덮다
물이 거세지고 땅 위에서 크게 불어났으며, 방주는 물 위를 떠다녔다.창세기 7:18 · 본디새김
물이 땅 위에서 매우 매우 거세져 온 하늘 아래의 높은 산들이 모두 덮였다.창세기 7:19 · 본디새김
물이 불어납니다.
물이 거세집니다.
물이 매우 매우 거세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높은 산들까지 덮입니다.
이 반복은 독자가 홍수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보게 만듭니다. 산이 덮였다는 표현은 단순히 물이 많았다는 정보가 아닙니다. 사람이 땅 위에서 의지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들까지 물에 덮였다는 서술입니다.
물이 산들 위로 열다섯 암마 높이 차올랐고, 산들이 덮였다.창세기 7:20 · 본디새김
그리고 그 물 위에는 방주가 떠 있습니다.
물이 밀려들어 땅을 덮을 때 그 물 위에 떠오르도록 만들어진 구조물입니다. 그 물 위에 떠 있도록 방주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안의 생명들이 보존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장의 서술은 그 장면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방주가 떠오른 뒤, 본문은 물 아래 남겨진 생명들을 바라봅니다.
조금 더 깊이
‘매우 매우’라는 반복은 히브리어 원문의 강조를 살린 것입니다. 열다섯 암마는 약 6~8미터 안팎으로 환산할 수 있지만, 실제 길이는 어떤 시대의 암마를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본디새김은 산꼭대기 위로 열다섯 암마가 더 차올랐다는 방향으로 읽었습니다. 바로 뒤에서 산들이 덮였다고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표현을 물이 열다섯 암마만큼 더 불어났다는 의미로 이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 숫자만으로 정확한 수심이나 지형의 모습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죽음, 그리고 남겨진 생명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육체, 곧 날짐승과 집짐승과 들짐승과 땅 위에 우글거리는 모든 생물과 모든 사람이 숨이 끊어졌다.창세기 7:21 · 본디새김
이제 이야기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모든 육체’라는 표현은 앞서 방주에 들어갈 생물들을 설명할 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이제는 죽어 가는 생물들을 설명하는 말이 됩니다. 방주 안에 있는 생물들과 방주 밖의 생물들은 모두 생명의 숨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그들의 결말은 달라집니다.
마른땅에 있던 모든 것 가운데 코에 생명의 숨결이 있는 것은 모두 죽었다.창세기 7:22 · 본디새김
앞서 창세기 1장에서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마른땅이 드러났을 때, 하나님은 그곳에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창조 세계를 질서 있게 마련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마른땅에 살던 생물들이 죽습니다.
여기서 본문은 물속에 사는 모든 생물까지 같은 방식으로 죽었다고 열거하지는 않습니다. 강조되는 것은 마른땅에 살며 생명의 숨결을 지닌 존재들입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마른땅이라는 삶의 공간이 사라지면서 그곳에 살던 생명들도 사라지는 사건입니다.
여호와야훼가 땅바닥 위의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사람에서 집짐승까지, 기어 다니는 것까지, 하늘의 날짐승까지 지워 버렸다. 그 모든 것이 땅에서 지워졌고, 오직 노아와 방주에서 그와 함께 있던 것들만 남았다.창세기 7:23 · 본디새김
예고가 실제 사건이 된 것입니다.
왜 죽음을 여러 번 말하는가?
21절에서는 모든 육체가 숨이 끊어졌다고 말합니다.
22절에서는 생명의 숨결이 있는 것들이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23절에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지워졌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죽음의 범위와 철저함을 강조합니다. ‘모든’, ‘모두’라는 말이 거듭되는 것도 같은 효과를 냅니다. 이것은 홍수가 단지 강한 비가 내려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의 세계를 뒤흔든 심판으로 묘사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오직」이라는 말에 남겨진 생명들
모든 것이 지워졌다고 말한 뒤, 본문은 예외를 기록합니다. 「노아와 방주에서 그와 함께 있던 것들」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가족들도, 함께 들어온 생물들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령하신 것은 처음부터 그 혼자 살아남으라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생물들을 살아 있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 명령에 따라 보존된 생명들이 마지막 문장에 함께 등장합니다.
노아의 생존은 그와 함께 있는 존재들의 생존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홍수는 수많은 생명들이 죽는 사건입니다. 본문은 그 사실을 완곡하게 숨기지 않습니다. 특히 동물들까지 죽음의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오늘날 독자에게 깊은 질문을 남깁니다.
그 동물들이 어떤 도덕적 잘못을 저질렀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폭력으로 망가진 세계에 대한 심판이 다른 생명들에게까지 미친다는 것이 이야기의 모습입니다. 그 사실을 가볍게 정당화하거나 모든 의문이 해결된 것처럼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지워 버리시는 심판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생명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하십니다.
이 두 사실 중 어느 하나만으로 창세기 7장을 설명하면 본문의 무게를 잃게 됩니다.
백오십 일 동안 거세게 불어난 물
이 장의 마지막 구절은 뜻밖에도 생존자들의 기쁨이나 방주의 안전을 말하지 않습니다.
물이 백오십 일 동안 땅 위에서 거셌다.창세기 7:24 · 본디새김
홍수가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물이 언제 줄어들 것인지, 방주가 어디에 머물게 될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가족과 생물들은 살아남았지만, 그들이 발을 디딜 마른땅은 아직 나타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원문에서 23절의 첫 동사는 주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디새김은 앞서 심판을 선언하신 여호와야훼를 주어로 밝혀 옮겼습니다. 이어지는 문장은 수동형으로 되어 있어 그 모든 것이 땅에서 지워졌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같은 사건을 능동과 수동으로 연이어 표현하면서, 살아 있는 것들이 사라지는 일이 거듭 강조됩니다. 창세기 7장은 홍수가 온 하늘 아래의 높은 산들을 덮고, 마른땅의 숨 쉬는 생명들이 죽었다고 서술합니다. 이것이 이야기 안에서 의도하는 심판의 범위입니다. 그러나 이 서술만으로 현대 지질학적 의미에서 물이 지구 전체를 어떤 방식으로 덮었는지, 실제 수면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등을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런 검증을 위한 관측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언하신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닫힌 문 안에 남겨진 생명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방주에 들어온 뒤 노아를 안에 두고 문을 닫으신 분도 하나님입니다. 인간의 순종과 하나님의 보호가 한 장면 안에서 만납니다.
노아는 그 물을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방주를 원하는 곳으로 몰고 갈 수도 없습니다. 본문은 그가 앞으로 얼마나 오래 물 위에 있어야 하는지도 이 자리에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물이 백오십 일 동안 거세게 불어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거센 물 위에 방주가 떠 있습니다.
세상을 덮은 물은 아직 물러가지 않았지만, 여호와야훼가 문을 닫으신 방주 안에는 생명이 남아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