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1–11장 · 세상과 사람의 시작

하나님이 기억하시자 물이 물러가다

창세기 8장은 방주가 산에 내려앉는 장면보다 먼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행동으로 시작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그동안 노아를 잊고 계셨던 것일까요?

앞 장에서 하나님은 노아를 방주 안에 두고 문을 닫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물은 계속 불어났고, 높은 산들까지 잠겼습니다. 방주는 떠 있었지만 땅을 밟을 곳은 없었습니다. 비가 그쳤다고 해서 곧바로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방향을 바꾸는 순간에 성경은 바람이 불었다거나 비가 그쳤다고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셨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8장은 물이 물러가는 이야기이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이 망가진 인간 세계를 어떻게 계속 살아가게 하실 것인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78장 본문 읽기 →

하나님이 기억하시자 물이 물러가기 시작했다

창세기 8:1–5 본문 →

하나님이 노아를, 또 방주에서 그와 함께 있던 모든 들짐승과 모든 집짐승을 기억했다. 하나님이 땅 위로 바람을 지나가게 하자 물이 가라앉았다.창세기 8:1 · 본디새김

성경에서 하나님이 누군가를 ‘기억하신다’는 말은 단순히 잊고 있던 사실을 다시 떠올린다는 뜻으로만 쓰이지 않습니다.

창세기 19:29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고 롯을 멸망 가운데서 내보내신 일이 함께 언급됩니다. 뒤의 출애굽기 2:24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신음을 들으시고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셨다고 기록됩니다. 이 구절들과 함께 읽으면 창세기 8:1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사실을 떠올리셨는가보다, 그 기억 이후에 무엇을 하셨는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기억은 홍수의 진행을 바꾸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기억하신 대상에는 짐승들도 있었다

방주는 노아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는 노아의 가족과 여러 생물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대상에도 그 생명들이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기억은 하나님을 알고 부를 수 있는 인간에게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바람이 지나가고 물이 물러나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물로 덮인 세계에 질서를 마련하셨습니다. 물을 나누시고 마른땅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1:6–10). 창세기 8장에서도 물이 가득한 땅에 하나님의 행동이 시작되고, 그 결과 다시 마른땅이 드러납니다.

깊은 물의 샘들과 하늘의 창들이 닫혔고, 하늘에서 내리던 비가 그쳤다.창세기 8:2 · 본디새김

앞 장 7:11에서는 깊은 물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렸습니다. 이것은 홍수가 시작될 때 일어났던 일이 되돌려지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물이 들어오는 길이 막혔다고 해서 땅이 즉시 마르는 것은 아닙니다.

물이 땅 위에서 계속 물러갔다. 백오십 일이 끝났을 때 물은 줄어들어 있었다.창세기 8:3 · 본디새김

여기서 ‘계속 물러갔다’는 표현은 히브리어에서 움직임의 지속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물러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노아라는 이름과 방주의 쉼

일곱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의 산들 위에 내려앉았다.창세기 8:4 · 본디새김

그런데 지금은 노아의 이름과 직접 연결되는 ‘쉬다’라는 동사가 방주를 설명합니다.

노아가 탄 방주가 마침내 쉬게 된 것입니다.

다만 방주가 내려앉았다고 해서 곧장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방주는 아라랏의 산들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물은 아직 줄어드는 중이었습니다. 산봉우리들은 열째 달 초하룻날이 되어서야 드러납니다.

방주가 쉴 곳을 얻은 것과 방주 안의 생명들이 살아갈 땅을 얻은 것은 아직 같은 일이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1절의 ‘바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루아흐입니다. 이 낱말은 문맥에 따라 바람, 숨, 영을 뜻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에서도 같은 낱말이 등장합니다.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영 또는 하나님에게서 오는 바람으로 읽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땅 위를 지나가면서 물이 가라앉게 되는 문맥이므로, ‘바람’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백오십 일이라는 기간도 바로 앞 장의 마지막과 이어집니다. 창세기 7:24는 물이 백오십 일 동안 땅 위에서 거셌다고 기록했습니다. 창세기 8:3은 그 기간이 끝날 무렵 물이 줄어든 상태를 보여 줍니다. 이 두 구절은 서로 다른 백오십 일의 기간을 단순히 더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같은 홍수의 진행을 물이 거세게 불어나 있던 상태와 물이 물러가는 변화라는 두 방향에서 보여 줍니다. 노아의 이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아버지 라멕은 그가 자신들을 위로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5:29). 그때 사용된 ‘위로하다’는 다른 어근이지만 소리가 비슷한 낱말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라랏의 산들’은 특정한 산봉우리 하나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고대 아라랏 지역의 산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므로, 방주가 오늘날의 어느 정확한 봉우리에 내려앉았는지는 이 구절만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까마귀와 비둘기 — 땅은 얼마나 돌아왔는가

창세기 8:6–12 본문 →

사십 일이 지난 뒤, 노아는 자기가 만든 방주의 창을 열었다.창세기 8:6 · 본디새김

방주가 산에 내려앉고 산봉우리들이 드러난 뒤, 노아가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노아는 밖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새들을 내보냅니다.

까마귀는 나갔다 돌아오기를 거듭했다

노아가 까마귀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땅 위의 물이 마를 때까지 나갔다 돌아오기를 거듭했다.창세기 8:7 · 본디새김

그런데 까마귀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어디에 내려앉았는지, 어떤 먹이를 얻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서술만으로 까마귀가 방주를 버렸다고 하거나, 그 행동을 불순종의 상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후 비둘기의 행동은 훨씬 자세하게 묘사됩니다.

그는 땅바닥 위의 물이 줄었는지 보려고 비둘기를 자기 곁에서 내보냈다.창세기 8:8 · 본디새김

노아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 어느 정도 줄었다는 막연한 정보가 아닙니다. 마른땅에서 생물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을지에 관한 정보입니다.

첫 번째 비둘기 — 발을 딛고 쉴 곳이 없다

비둘기는 발을 딛고 쉴 곳을 찾지 못해 방주에 있는 노아에게 돌아왔다. 온 땅 위에 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아는 손을 뻗어 비둘기를 잡아 방주 안 자기 곁으로 데려왔다.창세기 8:9 · 본디새김

이 장에서 ‘쉼’은 한순간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방주가 먼저 쉴 곳을 얻고, 그다음에 새들이 쉴 곳을 찾아야 합니다.

‘손을 뻗었다’는 말과 ‘자기 곁으로 데려왔다’는 말은 비둘기가 다시 방주 안에 들어오는 장면을 세밀하게 보여 줍니다. 앞에서 하나님이 여러 생물들을 기억하셨다면, 여기서는 노아가 자신이 내보낸 작은 생물을 직접 받아들이는 모습이 기록됩니다.

방주 안의 생명들을 돌보는 책임이 거대한 건축이나 먹거리의 준비뿐 아니라, 돌아온 새 한 마리를 다시 받아들이는 행동으로도 나타납니다.

두 번째 비둘기 — 갓 딴 올리브 잎

노아는 이레를 더 기다립니다.

저녁 무렵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왔는데, 보라, 부리에 갓 딴 올리브 잎이 있었다. 노아는 땅 위의 물이 줄어든 것을 알았다.창세기 8:11 · 본디새김

노아가 알아낸 것은 단순히 물 위에 떠다니는 낡은 잎 하나가 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비둘기가 땅 위에 자라고 있는 식물에서 잎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다시 기다립니다.

세 번째 비둘기 —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다

노아는 이레를 더 기다렸다가 비둘기를 내보냈다. 비둘기는 더 이상 그에게 돌아오지 않았다.창세기 8:12 · 본디새김

첫 번째에는 비둘기가 방주 밖에서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에는 살아 있는 식물의 흔적을 가져왔습니다. 세 번째에는 방주로 돌아올 필요 없이 밖에 머물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땅이 언제 어떻게 마를 것인지 모든 과정을 노아에게 상세히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노아는 방주 안에서 기다리며, 창을 열고, 새들을 내보내고, 돌아온 새가 가져온 것을 살펴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면서도 자신이 관찰할 수 있는 것을 관찰합니다.

그러나 관찰을 통해 알게 되는 것과 하나님이 방주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아직 구별되어 있습니다.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해서 노아가 곧바로 방주에서 나갔다고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안에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사십 일이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 계산되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서 산봉우리들이 드러난 때부터로 읽을 수 있지만, 확정적인 기산점이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올리브 잎이 어떤 보편적인 평화의 상징이라는 후대의 의미가 아닙니다. 본문에서 그 잎은 땅에 살아 있는 식물이 있음을 알려 주는 구체적인 단서입니다.

눈으로 확인한 마른땅과 하나님이 명령하신 때

창세기 8:13–14 본문 →

노아가 육백한 살 되던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의 물이 말랐다. 노아는 방주의 덮개를 걷어 내고 살펴보았다. 보라,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창세기 8:13 · 본디새김

홍수가 시작되고 물이 물러가 마른땅이 드러나기까지 거의 한 해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것은 방주가 산에 내려앉은 뒤에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14절에서는 또 다른 날짜가 등장합니다.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다.창세기 8:14 · 본디새김

이 두 장면을 연결하면, 물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과 땅이 다시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사이에 시간이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동안 노아가 어떤 일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노아는 땅이 마른 것을 눈으로 확인하지만, 방주에서 나오는 일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뒤에 이루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는 두 절에 서로 다른 동사가 사용됩니다. 두 낱말이 언제나 완전히 구별되는 뜻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서술의 대상도 달라집니다. 13절에서 노아는 방주의 덮개를 걷어 내고 땅바닥이 마른 것을 봅니다. 14절에서는 땅 자체가 말랐다고 기록됩니다.

「방주에서 나와라」 — 생명이 다시 땅을 채우다

창세기 8:15–19 본문 →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했다.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아들들의 아내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와라.」창세기 8:15–16 · 본디새김

이 말씀은 창세기 7:1과 뚜렷하게 대응합니다.

그때 여호와야훼는 노아에게 「너와 네 온 집안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들어가라는 명령으로 시작된 방주 안의 시간이, 나오라는 명령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지 않습니다.

「너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모든 육체 가운데 날짐승과 집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것을 너와 함께 데리고 나와라. 그러면 그것들이 땅에서 우글거리고, 땅 위에서 번식하고 많아질 것이다.」창세기 8:17 · 본디새김

하나님은 생물들이 방주 안에 남아 있도록 보존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다시 땅으로 나가고, 자손을 낳고, 많아지게 하십니다.

다시 들리는 창조의 말

이 표현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장면을 강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 1:20에서 하나님은 물에 생물들이 우글거리게 하셨고, 1:22에서는 생물들에게 번성하고 많아지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홍수는 숨 쉬는 생물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남겨진 생물들이 다시 많아지게 하십니다.

방주에 들어갈 때에는 수컷과 암컷이 함께 들어왔습니다. 그 구별이 중요했던 이유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단지 각각의 생물이 살아남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생물들에게서 다음 세대가 태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것은 방주 안에서의 생존만이 아니라, 땅 위에서 생명이 다시 이어지는 삶입니다.

처음 창조에서는 생명들이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심판을 통과하여 보존된 생명들이 다시 땅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혀 다른 세상을 새로 만들어 놓으신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생명들을 통해 기존 세계의 삶을 계속 이어 가게 하십니다.

종류대로 들어갔고, 가족별로 나왔다

18절에서 노아와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옵니다.

모든 짐승과 기어 다니는 모든 것과 모든 날짐승, 곧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이 가족별로 방주에서 나왔다.창세기 8:19 · 본디새김

앞서 방주에 들어갈 때에는 생물들이 반복해서 「그 종류대로」 들어갔다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올 때에는 「가족별로」라고 합니다.

이야기의 관심이 보존에서 번성으로 옮겨 가는 장면에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8장의 마지막은 이 생존자들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모습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노아가 제단을 쌓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 제단에서, 앞으로 인간 세계가 어떻게 지속될 것인가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위로의 향기와 하나님의 마음속 결심

창세기 8:20–21 본문 →

노아는 여호와야훼를 위해 제단을 쌓았다. 그는 정결한 모든 집짐승과 정결한 모든 날짐승 가운데서 가져다가 제단 위에 번제물들을 올렸다.창세기 8:20 · 본디새김

이것은 창세기에서 제단이 명시적으로 처음 등장하는 자리입니다. 앞서 가인과 아벨이 여호와야훼에게 예물을 가져온 이야기는 있었지만, 그때에는 제단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떤 말로 기도했는지, 제사를 드리면서 무엇을 간구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습니다. 이 제사를 홍수에서 살아남은 데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본문은 노아의 내면적인 동기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보존한 뒤 드린 생명의 제물

이 장면에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긴장이 있습니다.

노아는 생물들을 살아 있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생물들을 방주에 들였고, 홍수에서 살아남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방주에서 나온 뒤에는 정결한 생물들 가운데 일부를 가져다가 제물로 드립니다.

생명을 보존하는 이야기 다음에 생명을 제물로 드리는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이 앞서 정결한 짐승들을 더 많이 데려가도록 명령하셨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7:2–3). 그것이 제사를 위한 수량 배정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홍수 이후 제물이 드려지는 장면과 분명히 연결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마음을 달래는 향기를 맡았다. 여호와야훼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나는 사람 때문에 땅바닥을 다시는 저주하지 않겠다. 사람 마음의 성향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다. 또 내가 했던 것처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다시는 치지 않겠다.」창세기 8:21 · 본디새김

여기서 ‘마음을 달래는 향기’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는 제사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노아의 제사에 호의적으로 반응하시는 모습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감각적 표현으로 나타냅니다.

홍수 이전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인간의 악함으로 인해 고통받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홍수 이후에는 그분의 마음속에서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대하실 것인가에 관한 결심이 나옵니다.

같은 인간의 악함, 달라진 하나님의 결단

6:5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성향이 언제나 오직 악할 뿐임」 그리고 인간의 악함을 보시고,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며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8:21에서도 인간의 마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인간의 악함이 심판의 이유였습니다.

홍수 이후에는 인간의 악함이 다시는 같은 방식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치지 않겠다는 결심의 이유로 등장합니다.

인간이 달라졌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악함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시면서도 그렇게 결심하십니다.

홍수는 악한 인간을 모두 없애고 전혀 죄 없는 새로운 인간만을 남긴 사건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들어 있습니다.

저주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일까?

이 말씀을 창세기 3:17에서 선언된 땅바닥의 저주가 이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창세기 3:17에서는 사람이 고생하며 땅의 소산을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8:21은 인간이 앞으로 땅을 일구는 데 아무 고통도 겪지 않으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도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이 계속될 것이라고 하실 뿐, 수고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문맥에서 강조되는 것은 하나님이 방금 행하신 것과 같은 전면적인 파괴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행하신 홍수 심판을 돌아보시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다시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치지 않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 약속을 앞으로 어떤 지역에서도 홍수가 일어나지 않는다거나, 자연재해나 인간의 고통이 모두 사라진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이 없어졌다는 뜻도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사용된 ‘번제물’이라는 표현은 짐승을 불에 태워 올리는 제물을 가리킵니다. 후대의 레위기에서 번제에 관한 상세한 규정이 제시되지만, 이 구절은 그 규정들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악하기 때문이다」에 해당하는 부분은 키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이것을 이유를 나타내는 말로 읽을 수도 있고, ‘비록 악하지만’이라는 양보의 의미로 읽는 길도 있습니다. 후자로 읽으면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이 악함에도 불구하고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됩니다. 전자로 읽으면 인간의 마음이 어려서부터 악하다는 사실 자체가 반복적인 전면 심판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과 연결됩니다. 노아의 제사가 하나님을 설득하여 원래의 생각을 바꾸게 했다고 직접 말하지도 않습니다. 제사에 대한 하나님의 호의적인 반응과 이어지는 결심은 서사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제사가 하나님의 결심을 강제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시 씨를 뿌리고 거둘 수 있는 세상

창세기 8:22 본문 →

「땅이 존속하는 동안 씨 뿌림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창세기 8:22 · 본디새김

씨 뿌림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

이것들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의 기본적인 리듬입니다. 씨를 뿌리는 때가 있고 거두는 때가 있습니다. 추운 때와 더운 때가 있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낮과 밤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심판 이야기가 이런 평범한 자연의 반복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홍수 동안에는 이 모든 것이 위협받았기 때문입니다.

물이 땅을 덮었을 때에는 씨를 뿌릴 밭도, 곡식을 거둘 땅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산들까지 덮이는 물 앞에서는 사람들이 평소에 의지하던 삶의 조건이 무너졌습니다.

창조의 질서가 다시 이어지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구별하시고 낮과 밤을 만드셨습니다. 하늘의 광명체들이 날과 해를 구분하게 하셨습니다(1:14–18). 그런데 창세기 8장의 마지막에서도 낮과 밤이 다시 등장합니다.

또한 씨 뿌림과 거둠이라는 표현은 인간이 땅에서 먹을 것을 얻는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조 이후 땅은 식물을 내었고, 사람은 땅을 일구며 살아왔습니다. 홍수는 그 삶의 공간을 물로 뒤덮었습니다.

이는 창조 세계가 다시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선언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창세기 뒤의 이야기에서도 기근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12:10; 26:1; 41:54). 따라서 여기서 약속되는 것은 모든 농사의 성공이나 고통 없는 자연환경이 아닙니다. 낮과 밤이 교대하고 계절이 바뀌며 씨 뿌리고 거두는 일이 가능한 세계가 계속될 것이라는 기본적인 질서입니다.

왜 하필 씨 뿌림과 거둠으로 시작할까?

하나님은 여러 자연의 순환을 말씀하시면서 맨 앞에 씨 뿌림과 거둠을 놓으십니다.

이 순서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앞부분의 이야기와 연결하면 뜻깊게 읽힙니다.

아담은 땅을 일구며 살아야 했습니다.

가인은 땅바닥을 일구는 사람이었습니다.

라멕은 노아가 태어났을 때 여호와야훼가 저주하신 땅바닥에서 겪는 노동의 고통을 말하며 위로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홍수가 일어나 그 땅 전체가 물에 덮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다시 씨 뿌리고 거둘 수 있는 세계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노아가 태어났을 때 라멕이 기대했던 위로가 어떤 의미에서 이루어지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노아가 태어났다고 땅을 일구는 고통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홍수를 거쳤다고 인간의 마음이 완전히 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시 땅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 결심은 다음 장에서 노아와 그의 후손들, 살아 있는 모든 생물과의 언약으로 더욱 분명하게 표현됩니다(9:8–17). 그러나 창세기 8장은 아직 언약의 표징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그보다 먼저, 세상이 어떤 조건 아래 계속될 것인가에 관한 하나님의 마음속 선언을 들려줍니다.

물이 물러간 뒤에도 변하지 않은 것, 새롭게 정해진 것

창세기 8:1–22 본문 →

이제 인간은 죄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악함을 아시면서도 세상의 기본 질서를 지속시키겠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에 다시 삶을 이어 갈 수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마음속으로 말했다」고 기록합니다. 노아가 그 말씀을 그때 직접 들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는 그저 방주에서 나왔고, 여호와야훼를 위해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 뒤에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진 결심을 독자에게 들려줍니다.

그 결심은 거창한 제국이나 인간의 위대한 업적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다시 씨를 뿌리고, 계절을 맞이하고, 다음 날 아침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세계를 지속시키기로 하셨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