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기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4–6장 · 위협받는 이스라엘

두려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

유딧기 4장에는 두 번의 ‘듣다’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듣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홀로페르네스가 다른 민족들에게 어떤 일을 했는지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가 다른 민족들의 신전을 파괴했다는 소식에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전도 같은 운명을 맞게 될까 봐 불안해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들으시는 장면입니다.

이 두 장면 사이에서 백성은 성벽을 쌓고, 산길을 지키고, 식량을 비축합니다. 그러다가 모두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제사장들까지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백성과 함께 부르짖습니다.

이야기의 중심이 적의 군사력에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군사적 대비에서 온 공동체의 기도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두려워하는 바로 그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읽는 시간 15분소단락 74장 본문 읽기 →

그들이 정말 두려워한 것은 무엇인가

유딧기 4:1–3 본문 →

유대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은 아시리아 사람들의 왕 느부갓네살의 총사령관 홀로페르네스가 민족들에게 한 모든 일을 들었다. 그가 그들의 모든 신전을 어떻게 약탈하고 파괴했는지도 들었다.유딧기 4:1 · 본디새김

앞 장에서 홀로페르네스는 항복한 해안 도시들을 장악한 뒤, 그 지역의 신들을 없애고 모든 민족이 느부갓네살만을 신으로 부르도록 하려 했습니다. 이제 그 소식이 유대에 도착합니다.

유대 사람들은 이것이 단순한 영토 정복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홀로페르네스가 자신들의 땅에 도착하면 성전도 파괴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를 몹시, 몹시 두려워했고, 예루살렘과 자기들의 주 하나님의 성전을 두고 불안해했다.유딧기 4:2 · 본디새김

「몹시, 몹시 두려워했고」라는 반복은 두려움의 강도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들은 담대한 척하지 않습니다. 적의 군사력을 과소평가하지도 않습니다.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도 위협받고 있지만, 본문은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에 대한 걱정을 강조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다음 절에 나옵니다.

그들은 얼마 전에 포로살이에서 올라왔고, 유대의 온 백성이 갓 모였으며, 기물과 제단과 성전이 더러움을 벗고 거룩하게 된 참이었기 때문이다.유딧기 4:3 · 본디새김

그들은 오래전부터 굳건하게 유지된 나라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무너진 삶을 가까스로 다시 세워 놓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새로운 침략자가 다가옵니다.

그들에게 성전은 아름다운 건축물이나 민족적 자부심의 상징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분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중심 장소입니다.

백성이 두려워한 것은 단지 자신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는 일이 아니라, 어렵게 회복한 하나님과의 삶이 다시 짓밟히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에스라 3:10–13에는 성전의 기초를 다시 놓을 때 백성들이 기뻐하는 한편, 이전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크게 울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의 기쁨은 단순히 건물이 세워지고 있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포로살이로 끊어졌던 공동체의 예배와 삶이 회복되고 있다는 데 있었습니다. 다만 유딧기가 제시하는 시대를 에스라서의 특정 사건과 정확하게 일치시킬 수는 없습니다.

높은 산을 차지하고 좁은 길을 막다

유딧기 4:4–8 본문 →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취한 행동은 기도가 아니라 군사적 대비입니다.

그들은 높은 산들의 모든 꼭대기를 미리 차지하고, 그 산들에 있는 마을들에 성벽을 쌓았다. 또 전쟁에 대비하여 먹을 것을 비축했다. 그들의 평야에서 얼마 전에 수확을 마쳤기 때문이다.유딧기 4:5 · 본디새김

홀로페르네스는 대규모 병력과 군마와 병거를 이끌고 넓은 지역을 휩쓸었습니다. 그의 강점은 거대한 병력과 압도적인 군사력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높은 산과 좁은 길을 활용합니다.

그들은 적군과 넓은 평야에서 정면으로 맞서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산꼭대기를 먼저 차지하고 마을을 요새화합니다. 이어서 대제사장 요야김이 베툴리아와 베토마스타임의 주민들에게 구체적인 명령을 내립니다.

그는 산지로 올라가는 길들을 장악하라고 했다. 그 길들이 유대로 들어가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올라오는 길은 고작 두 사람이 나란히 지날 만큼 좁아서, 올라오는 자들을 쉽게 막을 수 있었다.유딧기 4:7 · 본디새김

좁은 통로는 대규모 군대의 장점을 제한합니다. 병사가 아무리 많아도 한꺼번에 전진할 수 없다면 수적 우위를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전술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산지와 요새를 활용했던 이야기(사무엘상 23:14, 23:26)나, 기드온이 적의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식으로 싸웠던 이야기(사사기 7장)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유딧기 4장은 아직 하나님께서 어떤 전술을 지시하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보여주는 것은 백성의 신중한 대비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전쟁에 대비해 저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적이 접근하는 동안에도 일정 기간 버틸 준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군사적 방어가 단지 병사와 무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공동체가 살아남으려면 먹을 것이 있어야 합니다.

홀로페르네스는 다마스쿠스 평야에서 밀을 거두는 때에 밭을 불태웠습니다(2:27). 반면 이스라엘은 수확을 마친 곡식을 모아 공동체의 생존을 준비합니다.

여기에는 왕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제사장 요야김과 이스라엘 온 백성의 원로회가 백성을 이끕니다. 왕 한 사람의 명령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느부갓네살의 왕궁과 달리, 이스라엘은 대제사장과 원로회가 함께 지시하고 백성이 그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베툴리아가 처음 등장하는 것도 이 부분입니다.

이야기는 아직 그 도시의 주민들을 자세히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로 올라가는 좁은 길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렇게 베툴리아는 거대한 제국군과 유대의 산지 사이에 놓인 중요한 방어 거점으로 등장합니다.

높은 산과 좁은 길을 지키는 일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신들의 생명과 성전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의 장소가 바뀝니다.

산꼭대기와 성벽에서 성전 앞으로, 방어 준비를 하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공동체로 시선이 옮겨갑니다.

한 공동체가 함께 베옷을 입다

유딧기 4:9–10 본문 →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매우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매우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었다.유딧기 4:9 · 본디새김

9절부터는 반복되는 표현이 달라집니다.

앞에서는 산꼭대기를 차지하고 성벽을 쌓고 통로를 막는 행동이 이어졌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부르짖고 자신을 낮추는 행동이 이어집니다.

특히 「매우 간절한 마음으로」라는 표현이 두 번 반복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일과 자신을 낮추는 일이 같은 간절함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뒤에 나오는 베옷과 금식의 장면을 고려하면, 그들의 낮아짐은 몸으로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들 자신과 그들의 아내들과 어린아이들과 가축들이 그렇게 했다. 그들 가운데 머물러 사는 나그네나 삯꾼, 돈으로 산 종도 모두 허리에 굵은 베옷을 둘렀다.유딧기 4:10 · 본디새김

이들은 모두 같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그네는 이스라엘 땅에 머물지만 이스라엘 혈통에 속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삯꾼은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사람이고, 돈으로 산 종은 자유로운 계약 노동자와 다른 신분에 놓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이들 모두가 베옷을 두릅니다.

전쟁은 지도자와 병사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나그네와 종도 그 땅이 파괴되면 함께 고통받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부르짖음 역시 공동체 전체의 부르짖음이 됩니다.

고대의 베옷은 거칠게 짠 천으로, 슬픔과 애도, 회개와 간절한 간구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몸에 두르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가축도 베옷을 입는 무리에 포함됩니다.

가축은 인간처럼 자기 처지를 성찰하며 회개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위기가 가축을 포함한 생활 세계 전체에 미친다는 사실이 의례적 행동으로 표현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의 운명을 하나님 앞에 가져오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자신을 낮추거나 괴롭게 한다는 표현은 금식과 같은 종교적 실천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레위기 16:29–31은 속죄일에 자신을 낮추라는 명령을 전합니다. 구약에서 비슷한 장면은 요나 3:7–8에 나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심판의 경고를 듣고 금식할 때, 왕의 명령에 따라 사람뿐 아니라 짐승까지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장면입니다. 한 이야기에서는 니느웨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다른 이야기에서는 니느웨의 왕이 다른 민족의 예배까지 지배하려 합니다. 두 책 사이에 의도적인 문학적 차용이 있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짐승까지 참여하는 공동체적 간구라는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제단까지 베옷을 입은 까닭

유딧기 4:11–12 본문 →

이제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전 앞으로 옮겨갑니다.

예루살렘에 사는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은 성전 앞에 엎드려 머리에 재를 뿌리고, 주 앞에 자기들의 굵은 베옷을 펼쳤다.유딧기 4:11 · 본디새김

베옷과 재는 자신의 고통과 낮아짐을 몸으로 드러내는 행동입니다. 본문은 그들이 특별한 죄를 지어서 침략을 받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가까이 다가온 재앙을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베옷과 재는 반드시 어떤 죄에 대한 참회의 표시로만 이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동체의 비탄과 간절한 간구를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제단도 굵은 베로 감쌌다. 그리고 자기들의 어린아이들이 약탈당하고, 아내들이 노략물이 되고, 자기들이 물려받은 도시들이 파괴되고, 성소가 더럽혀지고 모욕당하여 민족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 달라고, 한마음으로 간절히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다.유딧기 4:12 · 본디새김

제단은 제사를 드리는 곳입니다. 그곳은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며 그분을 예배하는 중심 장소입니다. 여기서 제단을 베로 감싸는 행동은 공동체의 위기가 예배의 중심 장소에까지 표현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백성이 구하는 것은 추상적인 승리가 아닙니다.

그들은 전쟁에서 어떤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적군이 들이닥치면 군사들만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방어할 힘이 약한 사람들이 약탈과 포로의 위험에 놓입니다.

앞서 홀로페르네스는 점령한 지역의 사람들을 약탈하고 죽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기들의 가족이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전쟁을 정치적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는 문제로 바라보게 합니다.

그들이 지키려는 도시는 단순히 자신들이 건설하거나 소유한 부동산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 도시들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았습니다. 이 표현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받은 땅과 조상들의 유산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마지막에는 성소가 등장합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더럽혀지는 일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건축물이 손상되는 사건이 아닙니다. 다른 민족들 앞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가 모욕당하는 사건이 됩니다.

이 기도의 중심에는 적의 파멸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명과 예배가 보존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수아서에서 땅은 각 지파에게 분배되는 유산으로 등장합니다. 레위기 25:23은 땅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속하며, 이스라엘은 그분 앞에서 나그네와 거류민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시편 79:1–10에도 이와 비슷한 탄식이 나타납니다. 민족들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전을 더럽히자, 시편의 기도자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서 민족들이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는 현실을 호소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고난을 보셨다

유딧기 4:13 본문 →

주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그들의 고난을 보았다. 백성은 온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전능한 주의 성소 앞에서 여러 날 동안 금식했다.유딧기 4:13 · 본디새김

여기서 ‘들으셨다’와 ‘보셨다’는 두 동사는 단순히 정보가 전달되었다는 뜻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아셨고, 그들이 처한 고난을 외면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서술자가 직접 말합니다.

이 장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행동이 명시적으로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적군을 무찌르지 않으셨습니다. 홀로페르네스의 군대를 흩으셨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백성을 위해 기적을 행하셨다고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기도했고,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고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들으심은 백성의 고난이 이미 끝났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들의 고난이 하나님 앞에서 외면당하지 않았다는 선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더라도,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께 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계속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확신을 모든 기도가 반드시 원하는 결과로 이루어진다는 약속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보증하는 것은 이 장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들으심이며, 이후에 어떤 구원이 이루어지는지는 아직 이야기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2:23–25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의 고된 노동 때문에 탄식하고 부르짖자, 하나님은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이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보시고 그들의 처지를 아셨다고 기록됩니다. 출애굽기 3:7에서도 하나님은 이집트에 있는 자기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셨고,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으며, 그들의 고통을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딧기 4:13의 표현은 이러한 출애굽의 하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것이 출애굽기의 직접적인 인용인지, 유사한 신학적 표현을 사용한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이 공유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분명합니다.

재를 뒤집어쓴 제사장들이 계속 제사를 드리다

유딧기 4:14–15 본문 →

대제사장 요야김과 주 앞에 서 있는 모든 사람, 곧 제사장들과 주를 섬기는 이들은 허리에 굵은 베옷을 두르고, 늘 바치는 번제와 백성의 서원 제물과 자원하여 내놓은 예물을 바쳤다.유딧기 4:14 · 본디새김

‘늘 바치는 번제’는 이스라엘의 정규적인 성전 예배를 떠올리게 합니다. 출애굽기 29:38–42와 민수기 28:3–8에는 날마다 드리는 번제에 관한 규정이 나옵니다.

그들은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에 들어갔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중단하지 않습니다.

백성은 앞에서 산길을 지키고 식량을 비축했습니다. 이제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며 제사를 드립니다.

그들은 방어해야 할 때 방어하고, 기도해야 할 때 기도합니다. 어느 한쪽의 행동이 다른 쪽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들의 두건 위에는 재가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 온 집안을 선하게 돌보아 달라고 온 힘을 다해 주를 향해 부르짖었다.유딧기 4:15 · 본디새김

제사장의 두건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수행하는 직무와 관련된 복장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위에는 슬픔과 간구를 나타내는 재가 뿌려져 있습니다.

이 장면은 제사장들이 공동체의 고통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특별한 제사장 직무가 있습니다. 그들은 제물을 바치며 성전 예배를 수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자리에서는 그들 역시 고통받는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돌보심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제사장들이 구하는 것은 특정 지도자의 안전이나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만의 보호가 아닙니다. 앞에서 나그네와 삯꾼과 종까지 베옷을 입은 장면을 기억하면, 이 마지막 기도는 공동체 전체를 향한 관심으로 읽힙니다.

앞선 장에서 항복한 해안 주민들은 홀로페르네스에게 자신들이 그의 눈에 좋은 대로 처분되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3:4).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정복자의 처분에 맡기지 않고, 하나님께 선하게 돌보아 달라고 구합니다.

그 차이는 양쪽이 처한 위협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둘 다 같은 군대를 두려워합니다.

차이는 그 두려움 속에서 누구에게 마지막으로 도움을 구하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두 장의 표현은 같은 원어를 쓰지만 문구 전체가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흐름에서는 분명한 차이가 나타납니다. 해안 주민들은 홀로페르네스가 원하는 대로 자신들을 다루도록 내어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자신들을 선하게 돌보아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서는 공동체

유딧기 4:1–15 본문 →

그들은 두려움을 감추거나 믿음에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두려움을 구체적인 기도로 바꿉니다. 처음에는 백성이 적의 소식을 듣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이 백성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성전 앞에는 여전히 굵은 베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단은 베로 감싸여 있고, 제사장들은 머리에 재를 얹은 채 제물을 바칩니다.

그들은 아직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난을 보셨다는 사실을 서술자는 이미 전했지만, 백성의 기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딧기 4장은 바로 그 모습으로 끝납니다. 재를 얹은 두건, 베옷을 입은 제사장들, 그리고 하나님께 계속 올라가는 공동체의 부르짖음.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