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기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4–6장 · 위협받는 이스라엘
이 백성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홀로페르네스는 이상한 일을 겪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민족이 그의 군대 앞에서 굴복했습니다. 그런데 산지에 사는 작은 백성은 항복하러 나오지 않고 길목을 막았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주변 민족의 지도자들을 불러 묻습니다.
홀로페르네스가 원하는 것은 군사 정보입니다. 적의 규모와 방어 능력, 지휘관을 알아내면 어떻게 공격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암몬 사람 아키오르는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그는 병사들의 숫자나 성벽의 높이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하나님을 섬겼는지, 어떻게 이집트에서 해방되었으며, 왜 나라를 잃었다가 돌아왔는지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홀로페르네스는 현재의 군사력을 물었는데, 아키오르는 오래된 역사를 들려줍니다.
한쪽은 사람의 힘을 병력과 무기로 판단하고, 다른 한쪽은 그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살핍니다.
유딧기 5장은 이 두 가지 현실 이해가 같은 군사 회의 안에서 충돌하는 이야기입니다.
홀로페르네스가 이해하지 못한 저항
이스라엘이 산지의 통로를 막고 방어 시설을 준비했다는 소식이 홀로페르네스에게 전해집니다.
그는 몹시 격분하여 모압의 모든 우두머리와 암몬의 장군들과 해안 지방의 모든 태수를 불렀다.유딧기 5:2 · 본디새김
이들은 지금 유대 산지에 있는 이스라엘과 달리 홀로페르네스의 군사적 지배 아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그 지역 사정을 아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얻으려 합니다. 그는 군사적으로 강력하지만, 이스라엘이 누구인지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가나안 자손들아, 자, 나에게 알려라. 산지에 사는 이 백성은 누구냐? 그들이 사는 도시들은 어디이며, 그들의 병력은 얼마나 되느냐? 그들의 세력과 힘은 어디에 있느냐? 그들 위에 왕으로 서서 그들의 군대를 이끄는 자는 누구냐?」유딧기 5:3 · 본디새김
이 질문들은 모두 그가 알고 있는 권력의 구조를 전제합니다. 어떤 나라든 통치자가 있고, 군대를 이끄는 장군이 있으며, 측정할 수 있는 병력이 있습니다. 그런 요소들을 파악하면 적의 힘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독자는 이미 앞 장에서 이스라엘에 관한 다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왕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제사장 요야김과 원로회가 백성의 방어를 이끌고 있습니다. 백성은 군사적으로 대비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따라서 홀로페르네스의 질문은 이스라엘의 실제 모습과 완전히 맞아떨어지지 않습니다.
아키오르는 이 질문에 특정한 왕의 이름을 대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홀로페르네스의 마지막 질문에는 그의 분노가 직접 드러납니다.
「또 서쪽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과 달리, 어째서 그들은 등을 돌리고 나를 맞으러 오지 않았느냐?」유딧기 5:4 · 본디새김
이미 다른 민족들이 항복했으므로 이스라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이 작은 백성이 왜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지 설명해 줄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키오르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먼 조상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조상의 신들을 떠난 사람들
아키오르는 먼저 자신이 진실을 말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암몬의 모든 자손을 이끄는 아키오르가 그에게 말했다. 「저의 주인이신 나리, 부디 나리의 종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어 주십시오. 나리께서 머무시는 곳 가까이, 이 산지에 사는 백성에 관하여 사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나리의 종의 입에서는 거짓말이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유딧기 5:5 · 본디새김
그는 홀로페르네스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궁정의 말씨를 사용합니다. 아키오르는 권력자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사실을 말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백성은 갈대아 사람들의 후손입니다.」유딧기 5:6 · 본디새김
오늘의 독자는 이스라엘을 주로 가나안 땅과 연결하지만, 아키오르는 그들의 조상이 갈대아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창세기 11:31은 데라가 아브람과 가족을 데리고 갈대아의 우르를 떠났다고 기록합니다. 여호수아 24:2–3은 아브라함의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 살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회고합니다.
그런데 그는 이스라엘의 기원을 단순히 어느 땅에서 왔다는 사실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왜 떠났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들은 자기 부모들의 길에서 벗어나, 자기들이 알게 된 하나님, 곧 하늘의 하나님께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들을 자기 신들 앞에서 쫓아냈습니다. 그들은 메소포타미아로 달아나 그곳에서 오랫동안 나그네로 살았습니다.」유딧기 5:8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강한 나라였기 때문에 특별한 백성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신들을 떠나 자신들이 알게 된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상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당장 안전과 번영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쫓겨나 나그네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추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에게 나그네로 사는 곳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자리 잡고 살았고, 그들에게 금과 은과 가축이 아주 많이 늘어났습니다.」유딧기 5:9 · 본디새김
앞에서는 사람들이 그들을 쫓아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떠남은 다른 사람들의 거절과 박해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떠남은 하나님이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체성은 단순히 어디에 정착했는가보다 누구의 말씀을 따라 움직였는가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창세기 자체는 아브라함의 가족이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이동한 일을 기록하지만(창세기 11:31), 유딧기처럼 조상들의 신들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고 직접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아키오르의 설명을 창세기의 모든 사건과 일대일로 대응하는 역사적 요약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는 익숙한 조상들의 이야기를 특정한 관점에서 다시 들려주고 있습니다.
쫓겨난 사람들이 큰 민족이 되다
아키오르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자리 잡고 부유해졌다고 말한 뒤, 그들이 다시 이집트로 내려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들은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기근이 가나안 땅 온 지면을 덮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양식을 공급받는 동안 그곳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아주 큰 무리를 이루었고, 그들의 겨레는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습니다.」유딧기 5:10 · 본디새김
이 대목은 창세기 41–47장의 요셉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기근 때문에 야곱의 가족이 이집트로 내려가고, 그곳에서 살아갈 양식을 얻게 됩니다. 아키오르는 요셉의 이름이나 형제들의 갈등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한 가족이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민족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백성이 많아지자 새로운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집트 왕이 그들에게 맞서 일어났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교활한 꾀로 그들에게 고된 노동과 벽돌 일을 시켰으며, 그들을 짓누르고 노예로 삼았습니다.」유딧기 5:11 · 본디새김
이스라엘의 수가 늘어나자 이집트 왕은 그들을 잠재적인 위협으로 여겼습니다. 홀로페르네스는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위협적인지 알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키오르는 이스라엘이 한때 거대한 제국 아래에서 힘없는 노예로 살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역사는 처음부터 승리한 사람들의 기록이 아닙니다.
하지만 다음 절에서 이야기의 주체가 바뀝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자, 하나님은 치유할 길 없는 재앙들로 이집트 땅을 쳤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그들을 자기들 앞에서 쫓아냈습니다.」유딧기 5:12 · 본디새김
이집트 왕은 이스라엘을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왕에게서 해결책을 찾지 않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앞에서 홍해를 말리고,」유딧기 5:13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뒤에서 추격하는 이집트 군대와 앞에 놓인 바다 사이에 갇혔습니다. 스스로 길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바다를 갈라 지나갈 길을 내셨습니다.
아키오르는 이스라엘이 시내와 가데스 바르네아로 이동하고, 여러 민족을 쫓아내며, 요단강을 건너 산지를 차지한 일까지 설명합니다.
「아모리 사람들의 땅에 살면서 자기들의 힘으로 헤스본 사람들을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또 요단강을 건너 온 산지를 상속받았습니다.」유딧기 5:15 · 본디새김
아키오르는 이스라엘에게 아무런 군사력이나 행동 능력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싸웠고 다른 민족을 몰아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아키오르의 설명에서는 하나님의 인도와 백성의 행동이 함께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힘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은 그들에게 인간적인 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최종적인 기준이 군사력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다른 신을 섬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쫓겨났습니다(5:8). 이집트에서는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쫓아냈습니다(5:12). 그 후 이스라엘은 광야와 가나안의 여러 민족을 쫓아냈습니다(5:14, 16).
이것을 모든 전쟁 행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정당화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키오르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전승을 압축하고 있으며, 그 전쟁들의 세부적인 윤리 문제를 논의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서로 다른 경험을 하나로 묶어 주는 원리는 무엇일까요?
아키오르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와 그 길을 떠났을 때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는 동안에는 그들에게 좋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불의를 미워하는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유딧기 5:17 · 본디새김
지금까지 아키오르는 이스라엘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그는 그 역사가 왜 그렇게 전개되었는지 설명합니다.
그 설명의 중심은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입니다.
「불의를 미워하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단순히 이스라엘 편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그들을 보호하시는 분으로 묘사되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것은 민족적 소속만이 아닙니다. 그분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정해 준 길에서 벗어났을 때, 그들은 많은 전쟁에서 참혹하게 멸망했고 자기들 땅이 아닌 곳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의 성전은 땅바닥까지 무너졌고, 그들의 도시들은 적들에게 점령당했습니다.」유딧기 5:18 · 본디새김
앞에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부모들의 길을 떠나 하늘의 하나님을 섬겼습니다(5:8). 이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길에서 벗어났다고 말합니다.
두 번의 떠남이 서로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첫 번째 떠남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떠남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설명은 신명기 28–30장의 언약적 축복과 저주의 구조를 떠올리게 합니다. 신명기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누릴 복과, 그 말씀을 떠날 때 겪을 재앙이 함께 제시됩니다. 특히 신명기 28:64는 불순종의 결과로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지는 일을 경고합니다.
아키오르가 이스라엘의 과거를 이렇게 해석한다고 해서,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패배와 고난을 반드시 어떤 사람의 특정한 죄에 대한 형벌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욥기는 의로운 사람도 깊은 고난을 겪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들은 하나님께 충실하면서도 박해와 고통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이스라엘의 포로살이와 성전 파괴라는 공동체적 역사를 언약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키오르의 설명은 멸망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그들은 자기들의 하나님께 돌아와, 흩어져 살던 곳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들의 성소가 있는 예루살렘을 차지했고, 산지가 비어 있었으므로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유딧기 5:19 · 본디새김
여기서 ‘돌아왔다’는 표현은 두 가지 움직임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흩어졌던 곳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 다시 정착했습니다. 아키오르는 이스라엘의 지리적 귀환에 앞서 하나님께 돌아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지금 홀로페르네스가 마주하고 있는 백성의 역사입니다.
그들이 산지에 머무는 이유는 단순히 군사적으로 유리한 곳을 선택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곳은 포로살이에서 돌아온 백성이 다시 정착한 땅이며, 예루살렘의 성소와 연결된 삶의 터전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과거를 근거로 현재의 전쟁에 관한 조언을 제시합니다.
그들의 죄를 확인하라, 그렇지 않으면 지나가라
아키오르의 이야기는 역사적 설명에서 군사적 조언으로 바뀝니다.
「그러니 이제 주인이신 나리, 이 백성 가운데 모르고 지은 잘못이 있고 그들이 자기들의 하나님께 죄를 짓고 있다면, 저희는 그들 가운데 이런 걸림돌이 있음을 확인하고 올라가서 그들을 쳐 무찌를 것입니다.」유딧기 5:20 · 본디새김
「그러나 그들의 민족 가운데 불법이 없다면, 나리께서는 부디 지나가십시오. 그들의 주이자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감싸 지킬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저희는 온 땅 앞에서 조롱거리가 될 것입니다.」유딧기 5:21 · 본디새김
아키오르는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두려워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실 가능성을 고려하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행동하셨는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금 어떤 일을 하실지 모두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조언에는 한 가지 불편한 면도 있습니다.
아키오르는 이스라엘이 죄를 짓고 있다면 그들을 공격해 무찌르자고 말합니다. 그는 전쟁 자체가 옳지 않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죄를 발견하면 군사적으로 공격해도 정당하다는 전제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키오르의 조언을 완전한 윤리적 판단이나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홀로페르네스의 진영에 있는 암몬의 지도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군사 회의 안에서 조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산지의 좁은 통로를 막고 방어 시설을 쌓았습니다. 하지만 아키오르는 그들이 스스로 마련한 방어선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직접 그들을 감싸 지키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 문장에 등장하는 두 주인
아키오르는 홀로페르네스를 「주인이신 나리」라고 부릅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그들의 주이자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말이 서로 다른 대상을 가리킵니다.
아키오르에게 홀로페르네스는 자신이 섬기는 군사적 상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그들의 주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는 이유는 그들이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기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의 땅을 차지하려 해도,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지키신다면 그 군대는 실패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권위와 인간의 권력이 충돌합니다.
앞서 느부갓네살은 자신을 「온 땅의 주인」이라고 불렀습니다(2:5). 이제 아키오르는 한 작은 백성의 하나님이 제국의 군대에 맞서 그들을 지키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제국의 군사 회의 한가운데서입니다.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복잡한 관계를 맺어 온 주변 민족의 지도자가, 홀로페르네스 앞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키오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었는지는 이 시점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관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고 있고, 그분이 그 백성을 지키실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군사 회의의 분위기가 급격히 달라집니다.
조금 더 깊이
21절에서는 홀로페르네스를 「나의 주」라고 부르면서, 곧이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그들의 주」라고 부릅니다. 여호수아 2:9–11에서 라합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지만,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에게 어떤 일을 하셨는지 들었다고 말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홍해의 물을 마르게 하신 일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두 인물을 곧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믿음을 직접 고백하지만, 아키오르는 이 시점에서 주로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가능성을 군사적으로 설명합니다.
진실을 말한 사람에게 돌아온 것은 죽음의 위협이었다
아키오르가 이 말을 마치자, 장막을 에워싸고 둘러서 있던 모든 사람이 투덜거렸다. 홀로페르네스의 고관들과 해안 지방과 모압에 사는 모든 사람이 그를 토막 내야 한다고 말했다.유딧기 5:22 · 본디새김
앞에서 홀로페르네스는 이스라엘이 누구인지 알려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키오르는 그 요청에 따라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군사 회의의 참석자들은 그의 설명을 논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과거가 사실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실 가능성이 있는지도 검토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키오르를 죽이자고 말합니다.
그가 군사적 판단에서 중요한 요소를 제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확신에 어긋나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 근거를 제시합니다.
「저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거세게 싸울 병력도 힘도 없는 백성입니다.」유딧기 5:23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의 대군과 비교할 때 군사적으로 약한 것은 실제적인 상황일 가능성이 큽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에게 홀로페르네스와 맞먹는 규모의 군대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그 사실만으로 모든 판단을 끝낸다는 데 있습니다.
아키오르는 이스라엘의 힘을 군사력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군사력만을 말합니다.
홀로페르네스가 처음에 던진 질문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은 것입니다.
아키오르는 자신이 아는 역사를 근거로 모르는 것을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볼 수 있는 힘만을 근거로 이미 승리를 확신합니다.
「그러니 저희가 올라가겠습니다. 그들은 나리의 온 군대의 먹이가 될 것입니다, 홀로페르네스 나리.」유딧기 5:24 · 본디새김
이 표현에는 적을 동등한 인간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대화하거나 협상할 상대가 아닙니다. 군대가 올라가 삼켜 버릴 대상입니다.
과거의 이집트 왕도 이스라엘을 자기 힘 아래 종속시켰습니다. 하지만 아키오르가 들려준 그 이야기는 이집트 왕의 뜻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홀로페르네스의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보는 군사적 우세가 모든 결말을 결정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이 이 장의 마지막에 남겨지는 긴장입니다.
힘을 아는 것과 힘의 한계를 아는 것
홀로페르네스는 이스라엘의 힘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키오르는 그 힘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대답한 셈입니다. 가장 강한 군대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의심하지 못하고, 그 군대 안에 있는 한 이방인만이 자신들이 모르는 힘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아키오르가 들려준 긴 역사는 끝났습니다.
그의 말에는 조상들의 신을 떠난 사람들과, 이집트의 노예들이 부르짖는 소리와, 말라 버린 홍해와, 무너진 성전과, 다시 돌아온 백성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역사를 들은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그저 군대의 먹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에게 이스라엘은 여전히 병력이 부족한 작은 백성일 뿐입니다.
군사 회의는 끝을 향하고 있지만, 아키오르가 던진 질문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감싸 지키신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장막을 둘러선 사람들 가운데 그 질문에 대답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들은 다만 올라가서 이스라엘을 삼켜 버리겠다고 말할 뿐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