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3장
이 장의 자리 · 1–5장 · 강을 건널 준비
하나님이 여신 길
이스라엘이 마침내 요단강 앞에 도착했습니다.
이 강만 건너면 그토록 오래 기다렸던 약속의 땅입니다. 그러나 강은 아직 건너지 못한 경계로 남아 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이 도착한 때는 요단강의 물이 모든 강둑을 넘쳐흐르던 수확기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여호수아 3장은 뜻밖의 명령을 들려줍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강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안에 서 있으라고 하십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먼저 멈추어 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단강을 건넌 사건을 흔히 물이 갈라진 기적의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물론 물이 멈춘 것은 이 장에서 가장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러나 서술자는 물이 멈춘 순간만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누가 앞장서는지, 누가 물속에 발을 디디는지, 누가 끝까지 강 한가운데 남아 있는지를 자세히 기록합니다.
그렇게 읽으면 이 장의 중심에는 단순히 강을 건너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 백성이 건너갈 길을 여시고 그 길을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처음 가는 길에서는 누가 앞에 서야 하는가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이스라엘을 시팀에서 요단강까지 이끌고 갑니다.
시팀은 요단 동편의 마지막 진영이었습니다. 백성은 그곳을 떠나 강가에 도착하지만 즉시 건너지 않습니다. 그곳에서 밤을 보냅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난 뒤 관리들이 진영을 돌며 명령을 전합니다.
그들이 백성에게 명령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언약궤와 그것을 메고 있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을 보거든, 여러분은 각자의 자리에서 출발하여 그 뒤를 따라가십시오.」여호수아 3:3 · 본디새김
출애굽기 25:10–22에서 하나님은 언약궤를 만들도록 명령하시고, 그 위 속죄판에서 모세와 만나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을 기억하게 하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중요한 성물이었습니다. 신명기 10:1–5에는 모세가 언약의 돌판들을 궤 안에 넣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따라서 언약궤가 앞장선다는 것은 단순히 신성한 물건을 앞세우는 의식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에 속한 백성으로서 그분의 인도를 따라간다는 사실을 눈에 보이게 드러냅니다.
「다만 여러분과 궤 사이에는 거리를 재어 약 이천 암마를 두어야 합니다. 궤에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전에 이 길로 지나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여호수아 3:4 · 본디새김
언약궤가 백성보다 앞서 나아가야 하고, 백성은 그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 많은 사람이 앞서가는 궤의 방향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언약궤는 하나님과 관련된 거룩한 성물이었습니다. 민수기 4:15은 고핫 자손이 거룩한 물건들을 옮길 때 그것들을 직접 만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이 배경을 고려하면 가까이 가지 말라는 명령에는 거룩한 것에 함부로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도 있을 수 있습니다.
본문이 직접 강조하는 것은 길을 알도록 하는 목적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알려 주는 성물이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거룩한 것이라는 점도 언약궤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계십니다. 그분은 백성을 떠나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이 그분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백성은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심을 믿으면서도, 그분의 거룩함 앞에서 정해진 거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들은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걸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 가는 길에서는 자신들이 가진 경험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걸었던 길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아직 걸어 보지 않은 길을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길을 미리 알고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알아보고 따르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1장에서 사흘 뒤 강을 건널 것이라고 예고한 말씀, 2장에서 정탐꾼들이 사흘 동안 산에 숨어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3장의 사흘이 서로 어떻게 정확하게 겹치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이 장은 날짜를 세밀하게 맞추기보다, 출발을 앞둔 준비가 이제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천 암마는 일반적인 암마 길이를 약 45센티미터로 계산할 때 대략 900미터에 해당합니다. 고대의 측량 단위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므로 정확한 현대 거리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놀라운 일을 앞두고 자신을 거룩하게 하라
백성에게 길을 따라가라고 명령한 여호수아는 또 하나의 준비를 요구합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말했다. 「여러분 자신을 거룩하게 하십시오. 내일 여호와야훼가 여러분 가운데서 놀라운 일들을 하실 것입니다.」여호수아 3:5 · 본디새김
자신을 구별하여 거룩한 상태로 준비하라는 명령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과 역사에서 거룩함은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되는 것과 관련됩니다.
특별히 출애굽기 19:10–11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시나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을 거룩하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백성은 옷을 빨고 준비하여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여호수아 3장에도 비슷한 구조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행하시기 전에 백성이 자신을 거룩하게 준비합니다. 다만 여호수아 3장은 이스라엘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결 의식을 행했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백성의 거룩함이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원인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행동이 먼저 약속되고, 백성의 준비가 그에 대한 응답으로 요구됩니다.
다음 절에서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 나아가라고 명령합니다. 그들은 실제로 궤를 메고 나아갑니다. 5절이 내적인 준비를 요구한다면, 6절은 그 준비가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강가에 머무르는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앞서가시는 대열을 따라 움직이는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높이시되, 자신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여호수아에게 말했다. 「오늘 내가 온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너를 높이기 시작하겠다. 그리하여 그들은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처럼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여호수아 3:7 · 본디새김
여호수아가 맡은 사명이 하나님에게서 왔으며, 하나님이 그를 통해 백성을 이끌고 계시다는 사실을 공동체가 확인하게 하려는 말씀입니다. 모세의 권위는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에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했다는 사실을 백성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이제 그 권위를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가 모세의 후계자라는 사실만으로 앞으로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백성은 하나님이 실제로 그와 함께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일은 여호수아가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동행을 인정받는 중요한 시작이 됩니다. 여호수아 4:14에서는 하나님이 그날 여호수아를 온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높이셨고, 백성이 모세를 두려워했던 것처럼 여호수아를 존중했다고 기록합니다.
여호수아 3장에서 약속된 일이 4장에서 공동체의 반응으로 확인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권위는 하나님과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높임을 받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도자를 높이시는 목적은 지도자 자신에게 시선을 붙들어 두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아보게 하는 데 있습니다.
「너는 언약궤를 메는 제사장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여라. 『요단 물가에 이르면 요단 안에 서 있으십시오.』」여호수아 3:8 · 본디새김
여호수아가 하나님에게서 말씀을 받고, 제사장들이 여호수아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며, 백성이 그들 뒤를 따라가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의 권위가 한 사람의 개인적인 카리스마에 머무르지 않고 공동체의 질서 있는 순종 속에서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물을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여호수아는 백성을 가까이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여호수아가 말했다. 「이것으로 여러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 여러분 가운데 계시며, 여러분 앞에서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히위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반드시 쫓아내실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여호수아 3:10 · 본디새김
‘살아 계신 하나님.’ 이 말은 하나님에게 생명이 있다는 단순한 설명이 아닙니다. 문맥에서는 하나님이 실제로 행동하시며 자기 백성 가운데 능력을 나타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렇지만 여호수아는 이 기적의 의미를 요단강에만 한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앞으로 가나안 주민들을 쫓아내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은 특정한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과 정복에 관한 선언입니다. 이를 오늘날 다른 민족이나 집단을 몰아내도 된다는 일반적인 종교적 명령으로 적용할 근거는 없습니다.
더욱이 앞 장에 등장한 라합의 이야기는 가나안 주민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보여 주었습니다. 여호수아서의 정복 이야기는 이런 인물과 사건들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요단강의 물이 멈추는 사건이 가나안 정복에 관한 확신의 근거가 되나요?
「보십시오. 온 땅의 주님의 언약궤가 여러분 앞에서 요단을 건너갑니다.」여호수아 3:11 · 본디새김
이것은 앞서 라합이 고백했던 하나님의 통치와도 연결됩니다. 라합은 여호와야훼께서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이시라고 말했습니다(여호수아 2:11). 요단강도 그분의 통치 아래에 있고, 강 건너편의 땅도 그분의 통치 아래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물이 멈추는 사건은 단순히 장애물 하나를 제거하는 기적을 넘어섭니다. 이스라엘이 앞으로 들어갈 땅에서 누가 궁극적인 권위를 가지시는지를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온 땅의 주님이신 여호와야훼의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물속에 발바닥을 딛고 서면, 요단의 물, 곧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끊기고 한 무더기로 서게 될 것입니다.」여호수아 3:13 · 본디새김
언약궤는 하나님의 통치를 나타내는 성물이지, 그 자체가 하나님인 것은 아닙니다. 물이 멈추는 이유를 궤라는 물체가 가진 특별한 힘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온 땅의 주님이신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해 일하시는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물이 한 무더기로 서다
이스라엘은 한때 바다를 건너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이제는 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갑니다.
두 사건 모두 하나님이 물을 통제하셔서 백성에게 길을 내어 주신다는 공통점을 가집니다. 출애굽기 14장에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뒤쫓는 이집트 군대와 앞을 가로막은 바다 사이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때 물이 갈라지는 사건은 노예 생활에서 벗어난 백성이 다시 이집트의 지배 아래로 돌아가지 않도록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이었습니다.
여호수아 3장에서 이스라엘은 이집트 군대에게 쫓기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강을 건너야 합니다.
바다를 건너는 일은 이집트에서 나오는 길을 열었고, 강을 건너는 일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을 엽니다.
출애굽기 14장에서 바다를 건넌 것은 이집트에서 나온 세대가 경험한 결정적인 구원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불순종했던 세대의 대부분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민수기 14:29–35).
이제 요단강 앞에 선 백성은 그다음 세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과거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 자신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사건은 과거의 하나님이 여전히 자신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인하게 합니다.
아직 건너지 않았는데 열두 사람을 뽑으라는 이유
그런데 12절은 이야기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
「이제 여러분을 위해 이스라엘 지파들에서 남자 열두 명을, 지파마다 남자 한 명씩 뽑으십시오.」여호수아 3:12 · 본디새김
이 장 안에서는 그들이 당장 무슨 일을 할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장에서 밝혀집니다. 여호수아 4장에서 이들은 요단강 한가운데서 돌을 가져와 기념물이 되게 하는 일과 연결됩니다.
3장만 읽으면 명령이 갑작스럽게 느껴지지만, 이어지는 이야기까지 고려하면 하나님은 백성이 강을 건너기도 전에 그 사건을 기억하게 할 일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강을 건너는 경험은 그 순간을 살아남은 사람들만의 기억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나중에 태어날 사람들도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11절의 히브리어 문장은 명사들이 압축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온 땅의 주님’이 언약궤와 어떤 문법적 관계를 맺는지 논의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13절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온 땅의 주님’이라는 사실이 더 명료하게 표현됩니다.
물이 멈춘 것은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겼을 때였습니다
이야기는 마침내 결정적인 순간에 도달합니다.
백성은 천막에서 출발합니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앞서갑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단강에 도착합니다.
궤를 멘 사람들이 요단에 이르고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의 물에 잠기자(요단은 수확기 내내 그 모든 강둑을 넘쳐흐르고 있었다),여호수아 3:15 · 본디새김
그들은 건널 수 있는 쉬운 강을 만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이 적어져서 자연스럽게 강바닥이 드러난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강물이 줄어들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제사장들에게 물가에 이르면 강 안에 서 있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명령을 따라 물에 발을 디딥니다.
본문은 물이 먼저 갈라지고 제사장들이 안전한 마른 강바닥으로 들어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의 물에 잠기자, 위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멈추었다고 말합니다.
앞서 하나님이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제사장들은 그 말씀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물이 멈추는 사건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제사장들은 결과가 이미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일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이 장면을 무조건 위험한 일을 감행하면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켜 주신다는 일반적인 공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충동이나 개인적인 확신으로 강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입니다.
강물은 어디에서 멈추었는가?
위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멈추어 섰다. 그 물은 차르탄 곁에 있는 성읍 아담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한 무더기로 솟아올랐다. 아라바 바다, 곧 소금 바다로 흘러내리던 물은 다하여 끊겼다. 백성은 여리고 맞은편에서 건넜다.여호수아 3:16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강을 건넌 장소와 강물이 멈춘 장소를 구별합니다. 물이 멈추어 선 곳은 강을 건너는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로 묘사됩니다.
요단강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 소금 바다, 곧 사해에 이릅니다. 그런데 상류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멈추었고, 아래쪽으로 흐르던 물은 끊어졌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여리고 맞은편에서 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온 땅의 주님이신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여셨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호수아 5:10–12을 보면 이스라엘이 강을 건넌 뒤 첫째 달 십사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봄철의 수확기와 연결됩니다. 아담은 요단강 상류 쪽의 성읍으로 이해됩니다. 차르탄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지리적 불확실성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이 구절의 히브리어에는 읽는 방식에 관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담이라는 지명 앞의 전치사는 기록된 형태와 읽도록 전해진 형태가 달라, 물이 솟아오른 곳을 아담과 관련하여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에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물이 쌓인 정확한 지점을 이 문장만으로 지나치게 세밀하게 확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이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자연적인 하천 붕괴나 산사태 같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견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현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는 별도의 지질학적 검토 대상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3장은 물이 멈춘 물리적 과정을 분석하는 기록이 아닙니다. 이 사건을 하나님의 예고와 제사장들의 행동에 맞추어 일어난 일로 서술합니다. 따라서 물이 어떤 물리적 과정을 거쳐 멈추었는지 이 본문만으로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건널 때까지 강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들
여호와야훼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한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서 있었고, 온 이스라엘은 온 백성이 요단을 다 건널 때까지 마른 땅으로 건너갔다.여호수아 3:17 · 본디새김
그런데 이야기의 마지막 초점은 가장 먼저 강을 건넌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강 한가운데 서 있는 제사장들에게 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제사장들이 ‘굳게’ 서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마지막 구절에는 ‘서다’와 ‘건너다’에 해당하는 동작이 뚜렷하게 대비됩니다.
‘마른 땅’이라는 표현도 두 번 등장합니다. 제사장들이 마른 땅에 서 있고, 이스라엘이 마른 땅으로 건너갑니다. 한때 강물이 흘러가던 장소가 이제는 백성이 건너가는 길이 되었습니다.
앞부분에서 하나님은 언약궤가 백성보다 먼저 나아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언약궤가 먼저 강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그 궤가 강 한가운데 머뭅니다.
처음에는 앞장섰고, 이제는 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 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인도 아래 강을 건너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그 궤를 멘 채 강 한가운데 머무는 모습은 그 인도가 백성의 통과가 완료될 때까지 계속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온 이스라엘이 건넙니다.
온 백성이 다 건널 때까지 제사장들이 서 있습니다.
이 사건은 몇몇 용감한 사람이 먼저 강을 건너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공동체 전체가 건너는 이야기입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땅을 받은 지파들에게도 형제들이 안식을 얻을 때까지 함께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제 그 공동체는 실제로 한 백성이 되어 요단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기적의 절정이 물이 멈춘 한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백성이 안전하게 건너가는 과정 전체에 걸쳐 있는 셈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에서 출애굽기 14:21–22의 바다를 건넌 장면과 다시 연결됩니다. 그때도 물이 물러가고 이스라엘은 마른 땅으로 건넜습니다.
마지막 장면
그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시작되었고, 그분의 능력으로 열렸으며, 백성이 모두 건널 때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고, 이스라엘은 그 언약에 응답하는 백성입니다.
여호수아 3장은 백성이 모두 강을 건넜다는 말로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마지막까지 제사장들이 강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직 강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양쪽 강둑은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에는 원래 강물이 흘러야 할 강바닥이 드러나 있습니다. 그 길 위로 온 이스라엘이 지나갑니다.
강물은 멈추었습니다.
언약궤는 강 한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해 이스라엘의 발걸음이 이어집니다.
그 길은 가장 용감한 사람이 먼저 발견한 길이 아니라, 온 백성이 건널 수 있도록 하나님이 열어 주신 길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