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5장 · 강을 건널 준비

강물은 다시 흐르지만 돌들은 남습니다

요단강의 물이 멈추었고, 이스라엘은 마른 강바닥을 걸어 건너왔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약속의 땅에 마침내 발을 디딘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4장은 이 놀라운 사건의 절정을 조금 뜻밖의 방식으로 마무리합니다.

강물은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전처럼 강둑을 넘쳐흐릅니다. 조금 전까지 이스라엘이 걸어왔던 길은 다시 물속으로 사라집니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돌입니다.

왜 하나님은 강을 건넌 직후 돌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실까요?

이스라엘은 이미 강을 건넜습니다. 기적은 일어났고, 약속의 땅은 그들의 발아래 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백성이 강 한가운데로 다시 들어가 돌을 가져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백성에게 강을 건널 길을 열어 주실 뿐 아니라, 그 길을 열어 주신 분이 누구신지 기억할 길도 마련하십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84장 본문 읽기 →

강에서 가져온 돌이 다음 세대의 질문을 기다린다

여호수아 4:1–8 본문 →

4장은 온 백성이 요단강을 다 건넌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온 백성이 요단을 다 건너자, 여호와야훼가 여호수아에게 말했다.여호수아 4:1 · 본디새김

그런데 곧이어 하나님은 강 한가운데서 돌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십니다. 10절에서는 백성이 아직 강을 건너고 있으며 제사장들이 강 한가운데 서 있는 모습이 다시 등장합니다.

1절은 강을 건너는 사건의 완료를 먼저 제시하고, 이어지는 구절들은 그 일이 마무리되기 전에 이루어진 돌을 가져오는 행동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10–11절에서 다시 건넘의 완료로 돌아갑니다. 이미 강을 건넜다는 결과를 알려 준 뒤, 그 사건이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지를 자세히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열두 사람을 뽑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3:12에서 미리 뽑으라고 명령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강 한가운데, 제사장들이 발을 굳게 딛고 서 있는 자리에서 돌을 가져와야 합니다.

강가에 널려 있는 아무 돌이나 가져오는 것이 아닙니다. 물이 멈추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었던 강 한가운데서 돌을 가져와야 합니다. 더구나 그 장소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서 있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돌들은 그들이 건넌 사건과 직접 연결됩니다.

왜 열두 사람이고, 왜 열두 돌인가?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야훼의 궤 앞을 지나 요단 한가운데로 가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수에 맞추어, 여러분 각자가 돌 하나씩 들어 자기 어깨에 메십시오.」여호수아 4:5 · 본디새김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이끌었지만, 돌은 여호수아 개인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들이 강 한가운데 서 있었지만, 돌은 제사장들의 공적을 기념하는 물건도 아닙니다.

열두 지파 전체가 경험한 일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은 서로 다른 지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지파에는 고유한 역사와 가족과 앞으로 받을 땅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단을 건넌 사건은 어느 한 지파만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강을 건넜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돌을 어깨에 메라는 명령도 구체적입니다. 그 돌은 손바닥에 쥘 수 있는 조그만 기념품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깨에 메어 옮기는 물건입니다.

그렇게 강에서 가져온 돌들이 하룻밤 묵을 장소까지 운반됩니다. 강을 건넌 사람들이 실제로 머물게 될 장소에 그 돌을 남기는 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여러분 가운데 표징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훗날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 돌들은 부모님께 무슨 뜻인가요?』 하고 묻거든,」여호수아 4:6 · 본디새김

그런데 이 돌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모양만 보고 알 수 없습니다. 돌을 열두 개 세워 놓았다고 해서, 후대의 자녀들이 저절로 요단강을 건넌 사건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누군가 설명해야 합니다.

돌은 스스로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돌을 본 자녀가 질문하고, 그 질문을 들은 부모가 하나님의 일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기념물은 이야기를 대신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이야기가 계속되게 만드는 물건입니다.

「그들에게 요단 물이 여호와야훼의 언약궤 앞에서 끊겼으며, 그 궤가 요단을 건널 때 요단 물이 끊겼다고 말하십시오. 이 돌들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될 것입니다.」여호수아 4:7 · 본디새김

물길은 다시 닫힐 것입니다. 기적을 직접 보았던 사람들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행동이 함께 잊혀져서는 안 됩니다.

기념물의 목적은 질문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6절의 질문은 단순히 돌의 정체를 묻는 말보다 조금 더 깊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돌들이 여러분에게 무엇인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자녀는 단순히 저것이 무슨 돌이냐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왜 그 돌이 부모 세대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지 묻습니다.

부모 세대는 강을 건넌 사건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자녀 세대는 그 사건을 보지 못했습니다. 부모에게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사건이 자녀에게는 낯선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간격을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자녀가 질문하게 될 상황을 미리 마련하십니다.

이 모습은 출애굽기 12:26–27과도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자녀들이 유월절 예식의 의미를 물으면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일을 설명하도록 명령받습니다. 또한 출애굽기 13:14에서는 자녀가 어떤 의식의 의미를 물을 때, 여호와야훼께서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답하게 합니다.

자녀들은 과거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만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들이 속한 공동체가 어떤 하나님의 행동으로 여기까지 왔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강 한가운데에도 돌이 남아 있다

여호수아 4:9–10 본문 →

8절에서는 열두 사람이 요단강에서 가져온 돌을 건너편 묵을 곳에 내려놓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에서 다른 돌들이 등장합니다.

여호수아는 요단 한가운데,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발을 딛고 서 있던 자리에 돌 열두 개를 세웠다. 그 돌들은 오늘까지 거기에 남아 있다.여호수아 4:9 · 본디새김

본문의 서술을 그대로 따르면, 강에서 가져와 길갈에 세운 돌들과 강 한가운데 세운 돌들은 구별됩니다. 특히 20절에서 여호수아가 요단강에서 가져온 열두 돌을 길갈에 세웠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기 때문에, 두 장소의 돌을 하나의 이동 과정으로 합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것은 강에서 돌을 가져와 건너편에 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강 한가운데에 또 다른 열두 돌을 세우라는 별도의 명령은 이 장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강 가운데 돌을 세운 행동이 어떤 별도의 의도에서 이루어졌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이 강 한가운데 세워진 별도의 기념물을 전하는 전승을 반영한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돌들을 세운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 주의할 표현은 ‘오늘까지’입니다. 이는 이야기를 전하는 화자의 시점에서 그 돌들이 남아 있었다는 진술입니다. 그것을 현재까지 돌들이 확인된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강 밖의 돌들은 후대의 자녀들이 질문하게 할 표징으로 설명됩니다. 반면 강 안의 돌들은 그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만 전해집니다. 곧 강물이 다시 흘러넘치면 그 장소는 이전처럼 물이 흐르는 곳이 될 것입니다.

서둘러 건너는 백성과 끝까지 서 있는 제사장들

궤를 멘 제사장들은 여호와야훼가 백성에게 전하라고 여호수아에게 내린 모든 명령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모든 것에 따라 이행될 때까지 요단 한가운데 서 있었다. 백성은 서둘러 건넜다.여호수아 4:10 · 본디새김

본문은 그들이 왜 서둘렀는지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강을 건너는 긴박한 상황에 있었다는 것은 드러납니다.

이들의 멈춤과 백성의 서두름이 대조됩니다.

제사장들이 서 있는 동안 백성은 빠르게 강을 건넙니다. 그리고 돌을 가져오는 일까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모세를 통해 이어진 명령이 함께 언급됩니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새로운 시대는 모세의 시대와 단절된 별도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시작하신 일을 여호수아가 이어받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연속성을 확인하는 모습은 거대한 지도자의 선언이 아니라, 강 한가운데 서 있는 제사장들과 돌을 메고 이동하는 백성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공동체의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문장에서 모세의 명령을 앞의 어느 부분에 직접 연결해야 하는지는 다소 모호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이 현재의 행동을 모세가 남긴 명령과 연결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미 땅을 받은 사람들도 강을 건넜다

여호수아 4:11–14 본문 →

온 백성이 강을 다 건너자 언약궤와 제사장들도 건넙니다.

그런데 12절에서 서술자는 특별히 세 지파를 언급합니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지파의 절반은 모세가 그들에게 말한 대로 전투 대열을 갖추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건넜다.여호수아 4:12 · 본디새김

이들은 이미 요단 동편에서 땅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몫의 땅을 확보했지만, 다른 지파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할 때까지 함께 싸우기로 약속했습니다(민수기 32:20–32; 여호수아 1:12–15).

이제 그 약속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무장한 병사 약 사만 명이 전쟁을 하러 여호와야훼 앞에서 여리고 평원으로 건너갔다.여호수아 4:13 · 본디새김

그들은 단지 다른 지파와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맡은 책임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한 약속이 공동체 앞에서, 그리고 여호와야훼 앞에서 실제로 이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열두 돌이 이스라엘 전체를 나타내듯, 이미 땅을 받은 지파들도 다른 지파들과 함께 움직입니다. 이스라엘은 저마다의 몫을 따로 챙기는 집단들의 느슨한 연합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함께 받는 백성이며, 서로를 향한 책임도 함께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념할 사건도 공동체 전체의 사건입니다.

그날 여호와야훼가 온 이스라엘의 눈앞에서 여호수아를 높였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사는 동안 내내, 모세를 두려워했던 것처럼 여호수아를 두려워했다.여호수아 4:14 · 본디새김

이것은 3:7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높이기 시작하겠다고 말씀하셨고, 이제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기록됩니다. 하나님이 백성 앞에서 일하심으로 그의 지도자로서의 지위가 확인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서 존중받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언제나 경외해야 할 궁극적인 대상은 여호와야훼이십니다.

강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여호수아 4:15–18 본문 →

이제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증언의 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여라.」여호수아 4:16 · 본디새김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올라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들이 강에서 올라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강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한가운데서 올라올 때, 제사장들이 발바닥을 떼어 마른 땅을 밟자 요단 물이 제자리로 돌아와 이전처럼 그 모든 강둑을 넘쳐흘렀다.여호수아 4:18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앞 장의 사건을 정확하게 뒤집습니다. 3:15–16에서는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기자 강물이 멈추었습니다. 물에 들어가는 발과 물에서 나오는 발이 사건의 시작과 끝을 표시합니다.

서술자는 이것을 우연히 일어난 두 사건의 연속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제사장들의 행동에 따라 강물이 멈추고 다시 흐르는 사건으로 전합니다.

요단강은 다시 강이 됩니다.

하나님은 강의 존재 자체를 제거하지 않으셨습니다. 백성이 건너가도록 물을 멈추게 하셨고, 그 일이 끝나자 강물은 이전처럼 흐릅니다.

기적의 목적은 요단강을 영원히 마른 강바닥으로 만드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게 하는 데 있었습니다.

물이 다시 흐르는 강 앞에서 후대의 자녀들은 그곳이 한때 마른 땅이 되었다는 사실을 직접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불러올 돌들이 필요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언약궤를 ‘증언의 궤’라고 부르는 것도 눈에 띕니다. 출애굽기 25:16은 하나님이 주시는 증언을 궤 안에 넣도록 명령합니다. 언약궤와 증언의 궤는 서로 다른 두 궤가 아니라, 언약과 그 증언에 관련된 같은 성물을 가리키는 호칭들입니다.

첫째 달 열흘째, 길갈에 세워진 돌들

여호수아 4:19–20 본문 →

서술자는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날짜를 기록합니다.

백성은 첫째 달 열흘째 되는 날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끝에 있는 길갈에 진을 쳤다.여호수아 4:19 · 본디새김

이 날짜는 출애굽의 역사와 연결하여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12:2–3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그달을 해의 첫째 달로 삼으라고 말씀하시고, 그달 열흘째 되는 날에 집안별로 어린양을 준비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5:10에서는 이스라엘이 첫째 달 십사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만 여호수아 4:19 자체가 이스라엘이 첫째 달 열흘째에 들어온 이유를 유월절 어린양을 준비하는 날짜와 직접 연결하여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날짜의 일치가 의도적인 문학적 연결인지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올 때 하나님이 정하신 달력의 첫째 달에, 이스라엘은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왔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기억하는 시간과 그들이 새로운 땅에 들어온 시간이 나란히 놓입니다.

길갈은 단순한 숙영지가 아니다

이곳은 앞으로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지만, 4장에서는 무엇보다 요단강을 건넌 뒤 처음 진을 친 장소로 소개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돌이 세워집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요단에서 가져온 이 돌 열두 개를 길갈에 세웠다.여호수아 4:20 · 본디새김

여호수아는 그것을 단순히 보관하지 않고 공동체가 기억할 수 있도록 남깁니다. 사람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기 쉽습니다. 한때 온 공동체를 뒤흔든 사건도 다음 세대에는 낯선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기념물이 중요하다고 해서 그 기념물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설명의 중심에는 돌의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행동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돌을 세운 직후 다시 자녀들의 질문을 이야기합니다.

자녀에게 전해야 할 것은 돌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다

여호수아 4:21–23 본문 →

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했다. 「훗날 여러분의 자녀들이 자기 아버지들에게 『이 돌들은 무엇인가요?』 하고 묻거든,」여호수아 4:21 · 본디새김

앞서 6절에서 들었던 질문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질문에 대한 설명이 더 풍성해집니다. 6–7절에서는 주로 언약궤 앞에서 요단 물이 끊겼다는 사실을 설명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제 여호수아는 그 사건을 이스라엘의 더 긴 역사와 연결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이스라엘이 마른 땅으로 이 요단을 건넜다.』 하고 알려 주십시오.」여호수아 4:22 · 본디새김

이 한 문장에는 강이 실제로 마른 땅이 되었다는 사실과, 온 이스라엘이 그곳을 건넜다는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절에서 여호수아는 그 일이 왜 가능했는지 설명합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이 다 건널 때까지 여러분 앞에서 요단 물을 말리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갈대 바다에 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다 건널 때까지 우리 앞에서 그 바다를 말리셨습니다.」여호수아 4:23 · 본디새김

‘여러분’이 건넌 강, ‘우리’가 건넌 바다

여호수아의 말을 듣는 백성은 요단강을 실제로 건넌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여러분이 다 건널 때까지’ 하나님이 강물을 말리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대 바다를 건넌 사건은 더 오래전의 일입니다. 광야를 거치며 세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현재 요단강을 건넌 사람들 모두가 그때의 경험을 직접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갈대 바다에 대해서도 ‘우리 앞에서’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경험을 단지 먼 조상들의 사건으로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건은 자신들이 속한 백성 전체의 역사입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자신이 그 백성에 속해 있기에 ‘우리의 역사’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은 신명기 5:2–3에서도 나타납니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맺은 언약을 이야기하면서, 그 언약이 단지 조상들과만 맺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자신들과도 관련된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언어는 한 세대의 경험이 다음 세대의 정체성이 되는 방식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이, 이제 ‘여러분’을 위해 다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듣고 자라날 자녀들도 그 역사를 자기들의 역사로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기억은 과거를 그대로 복사하는 일이 아니다

출애굽기 14장에서 바다를 건넌 일은 이집트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넌 일은 조상들에게 약속된 땅에 들어가는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출발과 도착이 하나님의 행동으로 연결됩니다.

그렇다고 이 두 사건이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를 빠짐없이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광야에서의 불순종과 심판, 다음 세대의 준비도 그 사이에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그 역사를 관통하여 하나님이 계속 자신의 약속을 이루고 계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렇기에 기념물 앞에서 자녀에게 들려줄 이야기는 단순히 조상들이 얼마나 용감했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조상들이 누구의 도움으로 살아남고 여기까지 왔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녀에게 전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유산은 자신들의 위대함에 대한 자부심이 아니라, 자신들을 여기까지 이끄신 하나님에 대한 기억입니다.

이 돌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호수아 4:24 본문 →

여호수아는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요단강에서 행하신 일의 목적을 설명합니다.

「이는 온 땅의 모든 민족이 여호와야훼의 손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며, 여러분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언제나 두려워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여호수아 4:24 · 본디새김

여기서 ‘여호와야훼의 손’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신체를 설명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는 비유적인 말입니다.

출애굽기 13:3에서 모세는 여호와야훼께서 강한 손으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 14:31에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 사람들에게 행하신 큰 능력을 보고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며 믿었다고 기록합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던 하나님의 능력이 현재의 요단강 사건에서도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지만,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토 안에서만 통치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호수아 3:11, 13에서 여호와야훼는 ‘온 땅의 주님’으로 불리셨습니다. 이제 4:24에서는 온 땅의 모든 민족이 그분의 손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목적이 밝혀집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섭니다.

앞서 라합은 이스라엘에 관한 소식을 듣고 여호와야훼께서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이심을 고백했습니다(2:11). 그와 같은 고백은 이스라엘 밖에서도 하나님의 행동에 관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다만 4:24는 모든 민족이 실제로 이 사건을 듣고 하나님을 인정했다는 결과 보고는 아닙니다. 그것은 이 사건에 부여된 목적을 밝히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알아야 할 것과 이스라엘이 배워야 할 것

온 땅의 민족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강하신 분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그보다 더 직접적인 응답이 요구됩니다. 그 하나님을 언제나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그분의 거룩함과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그분을 경외하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신명기 10:12–13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고 그분의 길을 걸으며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말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은 사랑과 순종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함께 포함하는 언약적 관계의 태도입니다.

따라서 여호수아 4:24에서 요구되는 경외는 한 번 놀라운 기적을 보고 감탄하는 감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기적을 경험한 날만이 아니라, 강물이 다시 평범하게 흐르는 날에도 그분을 경외해야 합니다.

돌을 세운 일을 끝내며 여호수아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손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그분을 언제나 두려워하라고 말합니다.

강물이 다시 흐르는 날에도

여호수아 4:1–24 본문 →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길을 여셨고, 온 백성이 건너도록 하셨으며, 그들이 살아갈 땅에 그 일을 기억할 표지를 남기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기억은 지나간 기적을 계속 눈앞에 붙잡아 두는 일이 아니라, 그 기적을 행하신 하나님을 강물이 다시 흐르는 날에도 알아보는 일입니다.

이제 길갈에는 이스라엘의 진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곁에는 요단강에서 가져온 열두 돌이 놓여 있습니다. 강 너머에는 그들이 걸어온 광야가 있고, 앞에는 아직 들어가야 할 땅이 펼쳐져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한 아이가 그 돌들을 보고 물을 것입니다.

‘이 돌들은 무엇인가요?’

그때 부모는 돌을 가리키며 요단강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지금은 물이 넘쳐흐르는 저 강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이 건너갈 길을 여셨다고. 그리고 그 강을 건넌 이스라엘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라고.

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돌 앞에서 하나님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