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17–21장 · 무너지는 공동체

하나님의 뜻을 묻고도 정해 둔 대답

사사기 18장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는 길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묻고, 제사장은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평안을 선언합니다. 정탐꾼들은 하나님이 땅을 주셨다고 확신하며, 마침내 한 지파가 새로운 땅을 차지합니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을 의지하여 새로운 삶의 터전을 얻은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따라가면 이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단 지파는 자기들의 여정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묻지만, 그 뒤에는 남의 집에서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습니다. 평온하게 살아가는 성읍을 발견하자 그 평온함을 공격하기 좋은 조건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을 죽이고 성읍을 불태운 뒤, 자신들의 조상 이름을 붙입니다.

이 장의 핵심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는 것과 하나님께서 실제로 주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918장 본문 읽기 →

유산의 땅을 찾는 단 지파

사사기 18:1–2 본문 →

이야기는 두 번 반복되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그 무렵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다. 그 무렵 단 지파는 자기들이 살 유산의 땅을 찾고 있었다. 그날까지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서 그들에게 유산으로 돌아온 땅이 없었기 때문이다.사사기 18:1 · 본디새김

이스라엘에 왕이 없다는 설명은 바로 앞 장에도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개인의 집안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이야기의 중심에 섭니다.

여호수아 19:40–48에는 단 지파가 제비뽑기로 받은 땅과 성읍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르아와 에슈타올도 그 목록에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1:34는 아모리 사람들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어 평지로 내려오지 못하게 했다고 전합니다.

여호수아서에는 분배받은 땅이 나오지만, 사사기에는 그 땅을 충분히 차지하지 못한 현실이 나타납니다. 사사기 18:1은 후자의 상황을 강조한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 자체는 유산으로 돌아온 땅이 아직 없었다고 서술하므로, 두 기록이 정확히 어떤 시점의 상황을 각각 가리키는지까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은 머물 땅을 원했습니다.

단 지파는 다섯 명의 용맹한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어 땅을 살피게 합니다. 이들은 초르아와 에슈타올에서 출발합니다.

두 지명은 앞선 삼손 이야기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삼손은 단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고, 그의 가족이 살던 지역도 이 일대였습니다(사사기 13:2, 25). 이제 서술자는 삼손 개인의 이야기를 떠나 그가 속했던 지파의 움직임을 보여 줍니다.

정탐꾼 다섯 명은 에브라임 산지에 이르러 미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습니다. 정착할 땅이 필요하고, 그 땅을 탐색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단 지파가 새로운 땅을 얻어야 한다는 필요와, 그들이 앞으로 선택할 구체적인 방법을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얻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얻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들, 대답하는 제사장

사사기 18:3–6 본문 →

미가의 집에서 다섯 정탐꾼은 젊은 레위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습니다.

그들이 이전부터 그 사람을 알고 있었는지, 목소리의 어떤 특징 때문에 알아보았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은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 질문합니다. 레위 사람은 미가가 자신을 고용했으며, 자신이 그의 제사장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들이 그에게 말했다. 「하나님께 좀 물어 주시오.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순조로울지 알고 싶소.」사사기 18:5 · 본디새김

그들은 새로운 땅을 찾으러 가도 되는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묻지 않습니다. 이미 떠난 여행이 순조롭게 진행될지 알고 싶어 합니다.

레위 사람은 앞 장에서 미가의 개인 신당을 위해 고용된 제사장입니다. 그의 제사장 직무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세워졌다고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말했다. 「평안히 가십시오. 여러분이 갈 길은 여호와야훼 앞에 있습니다.」사사기 18:6 · 본디새김

레위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하나님께 물었는지, 어떤 응답을 받았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후 정탐꾼들은 자신들이 찾은 땅을 하나님이 주셨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 확신을 판단할 때 독자가 가진 근거는 이 제사장의 말과 정탐꾼들의 행동뿐입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움직여야 하는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미 정한 목적을 향해 움직이던 사람들이 제사장에게 자신들의 여정이 잘될지를 묻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의 핵심 표현은 노카흐 여호와야훼입니다. ‘여호와야훼 앞에’, 또는 ‘여호와야훼의 면전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그들의 길이 하나님의 시야와 관계 안에 있음을 나타내지만, 그 자체로 그들이 앞으로 하려는 모든 행동을 하나님이 승인하신다는 명시적인 선언은 아닙니다. 물론 「평안히 가십시오」라는 말이 앞에 있으므로, 정탐꾼들은 이 대답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가 의도적으로 거짓 신탁을 전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제의적인 문의 절차를 밟았는데 서술자가 생략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반면 그가 자신의 판단을 하나님의 뜻처럼 말했다고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확실한 것은 이 말이 제사장의 발언이지, 서술자가 직접 전하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평온하게 사는 사람들이 공격하기 좋은 대상이 되다

사사기 18:7–10 본문 →

다섯 정탐꾼은 라이스에 도착합니다.

그 다섯 사람은 길을 떠나 라이스에 이르렀다. 그들은 그 안의 백성이 시돈 사람들의 방식대로 안전하게 살며, 평온하고 안심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땅에는 권력을 쥐고 무슨 일로든 라이스 백성을 모욕하는 자가 없었다. 그 백성은 시돈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았다.사사기 18:7 · 본디새김

여기서 ‘시돈 사람들의 방식’이라는 표현은 라이스 사람들이 어떤 생활 방식을 따르고 있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시돈은 페니키아 해안의 주요 도시였으며, 라이스는 그 문화적 영향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억압하는 권력자가 없다고 소개됩니다. 해당 히브리어 문장은 구문이 까다로워 사회·정치적 상태의 세부 의미를 확정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서술 전체는 라이스 사람들이 외부의 위협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중요한 것은 외부의 위협을 받을 때 도움을 기대할 만한 연결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28절에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을 구해 줄 사람이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들이 말했다. 「일어나십시오. 그들을 치러 올라갑시다. 저희가 그 땅을 보았는데, 보십시오,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가만히 있습니다. 가서 들어가 그 땅을 차지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사사기 18:9 · 본디새김

이 말은 민수기 13–14장과 여호수아 2장의 정탐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도 사람들을 보내어 땅을 살폈고, 그 땅이 어떤 곳인지 보고받았습니다.

정탐꾼들이 발견한 땅이 좋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좋다는 평가가 곧 그 땅을 공격할 권리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가면 안심하고 사는 백성에게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 땅은 사방으로 넓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여러분 손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땅에 있는 어떤 것도 부족하지 않은 곳입니다.」사사기 18:10 · 본디새김

앞서 그들은 한 제사장에게 자신들의 길이 순조로울지 물었습니다. 이제는 더 나아가 하나님이 그 땅을 주셨다고 확신합니다.

라이스 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상태가 좋은 삶의 조건입니다. 그런데 단 지파 정탐꾼들에게는 바로 그 안정과 고립이 쉽게 점령할 수 있는 조건으로 보입니다.

한 공동체의 평화가 다른 공동체의 욕망 앞에서는 공격하기 좋은 약점으로 바뀝니다.

정탐꾼들이 「하나님께서 그 땅을 여러분 손에 주셨다」고 말하는 바로 그 자리에, 아직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있습니다. 단 지파가 차지하려는 땅은 비어 있는 땅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평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쟁을 준비한 육백 명이 먼저 찾아간 곳

사사기 18:11–14 본문 →

단 지파에서 육백 명이 전쟁 무기를 갖추고 출발합니다.

그들은 유다의 키르얏 여아림 근처에 진을 치고, 그곳에 마하네 단이라는 이름을 남깁니다. ‘마하네’는 진영을 뜻하는 말입니다. 이후 그들은 에브라임 산지를 지나 미가의 집에 도착합니다.

독자는 이미 이들의 목적지가 라이스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정탐꾼들은 그곳이 풍요롭고 공격하기 좋은 곳이라고 보고했고, 육백 명은 무장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라이스로 곧장 가지 않습니다.

미가의 집에서 발걸음을 멈춥니다.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자기 형제들에게 말을 꺼냈다. 「이 집들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제 무엇을 할지 판단하십시오.」사사기 18:14 · 본디새김

이 말은 노골적으로 빼앗으라고 명령하는 형식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행동을 보면 정탐꾼들이 미가의 집에 있는 종교 물건들을 가져가려는 생각을 동료들에게 전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다섯 사람은 미가의 집에 하룻밤 묵으면서 제사장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당시 그 집은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육백 명이 무기를 가지고 다시 찾아옵니다.

단 지파는 자신들에게 유산이 없다고 말하며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여행 도중 다른 사람이 소유한 것들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땅만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땅에서 사용할 종교적 권위와 물건들도 원합니다.

더 큰 공동체를 섬긴다는 명분 아래 이루어진 절도

사사기 18:15–21 본문 →

단 지파 사람들은 미가의 집에 들어가 젊은 레위 사람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방문입니다.

그러나 집의 대문 입구에는 무장한 육백 명이 서 있습니다. 정탐꾼 다섯 명은 집 안으로 들어가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가져갑니다.

이 사람들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 에봇의 새긴 신상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져가자,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 무엇을 하는 겁니까?」사사기 18:18 · 본디새김

그러나 단 지파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해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에게 말했다. 「조용히 하시오. 손을 입에 대고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에게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 주시오. 한 사람의 집안을 위해 제사장이 되는 것이 낫겠소, 아니면 이스라엘의 한 지파와 씨족을 위해 제사장이 되는 것이 낫겠소?」사사기 18:19 · 본디새김

미가는 레위 사람에게 자신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17:10). 이제 단 지파 사람들도 같은 자리를 제안합니다.

그러나 이 말에서 빠진 질문이 있습니다.

그 제사장 직무 자체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까? 그가 섬기는 신당과 신상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까? 이것을 먼저 묻지 않은 채, 사람들은 오직 그가 섬길 공동체의 크기만 비교합니다.

일의 규모가 커진다고 해서 그 일의 성격까지 올바르게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제사장은 마음이 기뻐졌다. 그는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을 들고 백성 가운데로 들어갔다.사사기 18:20 · 본디새김

여기서 레위 사람은 단순히 납치되어 끌려간 사람이 아닙니다. 적어도 20절은 그가 기뻐하며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고 말합니다. 앞서 미가의 집에 고용되어 있던 그는 이제 자신을 고용했던 사람의 물건을 가지고 새로운 공동체로 옮겨 갑니다.

미가와 레위 사람은 신상과 제사장이라는 종교적 수단을 통해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신상은 누군가가 들고 가 버릴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 신상은 자신이 놓인 집에 머물 수조차 없습니다.

이후 단 지파 사람들은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재물을 앞세우고 길을 떠납니다. 본문은 이러한 행렬의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이제 그들이 단순한 정찰대가 아니라 가족과 재산을 거느리고 이동하는 집단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뒤로, 자신들의 물건을 빼앗긴 미가가 사람들을 모아 따라오고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문은 왜 그가 기뻐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을 섬길 기회를 얻어서였는지, 자신의 지위가 높아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46:6–7은 사람들이 금과 은으로 신상을 만들고 그것을 어깨에 메어 옮기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 신상은 사람들이 놓아 둔 자리에 서 있을 뿐, 스스로 움직이거나 사람들을 구해 주지 못합니다. 사사기 18장도 비슷한 역설을 이야기로 보여 줍니다.

「내 신들을 가져갔으니, 이제 내게 무엇이 남았소?」

사사기 18:22–26 본문 →

미가는 이웃 사람들을 모아 단 지파를 따라잡습니다.

그가 말했다. 「당신들이 내가 만든 내 신들을 가져가고 제사장을 데리고 떠났으니, 이제 내게 무엇이 남았소? 그런데 어찌 나더러 『무슨 일이냐?』 하고 말하오?」사사기 18:24 · 본디새김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든’과 ‘내 신들’이라는 표현이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기 신들을 만들었고, 집에 모셨으며, 그 신들을 섬길 제사장까지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다른 사람들이 그 신들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이 질문에는 실제적인 상실감이 담겨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물건을 빼앗겼고, 자신과 함께 살던 제사장마저 떠나 버렸습니다. 그의 재산을 빼앗긴 억울함까지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단 지파 사람들이 절도와 위협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더 깊은 역설이 있습니다.

미가는 자신을 지켜 주리라고 기대한 신상들을 잃어버렸고, 이제 그 신상들이 없어서 자신에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탄식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제로 의지했던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이 순간에 드러납니다.

본문은 미가가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잃어버린 신상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지 고민했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자신이 만든 물건들과 자신이 고용한 제사장이 없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단 지파 사람들의 대응은 더욱 냉혹합니다.

단 자손들이 그에게 말했다. 「우리 있는 데서 네 목소리를 내지 마라. 자칫 성난 자들이 너희를 덮쳐, 네가 네 목숨과 네 집안의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사사기 18:25 · 본디새김

결국 미가는 그들이 자기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누가 옳은지를 판단하는 절차도 없고, 정의로운 해결도 없습니다. 더 강한 쪽이 원하는 것을 가지고 떠나고, 약한 쪽은 돌아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바로 다음 장면을 미리 보여 줍니다.

미가에게 일어난 일이 이제 라이스 사람들에게 훨씬 더 큰 규모로 일어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도 그가 만든 대상들은 복수형으로 ‘내 신들’이라고 표현됩니다. 이것이 신상 여러 개를 가리키는지, 그가 소유한 제의 물건들을 묶어 부르는 표현인지까지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평온한 성읍을 파괴하고 자기 조상의 이름을 붙이다

사사기 18:27–29 본문 →

단 지파 사람들은 라이스에 이릅니다.

그들은 미가가 만든 것들을 가져가고 그의 제사장도 데려갔다. 그들은 라이스로 가서 평온하고 안심하며 사는 백성을 공격했다. 그 백성을 칼날로 쳐 죽이고 성읍을 불로 태웠다.사사기 18:27 · 본디새김

7절에서 정탐꾼들이 처음 라이스를 발견했을 때 사용했던 설명이 되돌아옵니다. 적어도 본문은 라이스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거나 단 지파를 위협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단 지파에게 무슨 악행을 했다는 설명도 없습니다.

구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 성읍은 시돈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곳 백성은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성읍은 벳 르홉에 딸린 골짜기에 있었다. 단 자손들은 그 성읍을 세우고 거기서 살았다.사사기 18:28 · 본디새김

한때 압제받는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이제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강자가 되었고, 그들에게 공격당한 사람들은 아무에게서도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미가는 단 지파 사람들이 자기보다 강하다는 사실 때문에 물러섰습니다. 라이스 사람들은 자신들을 도와줄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두 사건 모두 강한 쪽이 원하는 것을 차지하고, 약한 쪽은 그것을 지켜 내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그 성읍은 본래 라이스였지만, 단 지파는 자기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곳을 단이라고 부릅니다. 새로운 지명은 단 지파에게 자신들의 정체성과 정착을 나타내지만, 독자에게는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끝났는지도 기억하게 합니다.

정착의 이야기는 동시에 다른 공동체가 사라진 이야기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벌인 전쟁이라는 구약의 더 넓은 문맥을 고려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사기 18장의 구체적인 공격을 자동으로 하나님이 명령하신 정복 전쟁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에는 이 공격을 명령하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없습니다. 단 지파 정탐꾼들이 하나님이 땅을 주셨다고 주장했지만, 그 주장만으로 라이스 사람들에 대한 공격의 정당성이 확립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이 땅을 하나님의 선물로 말한다는 사실은 그 땅을 차지하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 행동해도 된다는 허락이 아닙니다. 신명기 16:18–20은 이스라엘에게 정의를 따르라고 명령하며, 신명기 10:17–19는 하나님께서 외국인과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를 가르칩니다. 사사기 3:9와 3:15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구원자를 세우셨다고 기록합니다. 물론 라이스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사사들에게 주어진 것과 같은 구원의 약속을 받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해 줄 사람’이라는 표현은 적어도 이야기의 중요한 대조를 만듭니다.

실로에는 하나님의 집이 있었지만, 단에는 미가의 신상이 있었다

사사기 18:30–31 본문 →

이제 이야기는 끝날 것처럼 보입니다.

단 지파는 땅을 얻었습니다. 성읍을 재건했고, 조상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두 절을 더 붙입니다.

단 자손들은 자기들을 위해 그 새긴 신상을 세웠다. 므낫세의 아들 게르솜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아들들은 그 땅의 주민들이 유배되는 날까지 단 지파의 제사장으로 있었다.사사기 18:30 · 본디새김

한 가정에서 시작한 사적인 신앙의 문제가 이제 한 지파의 제도로 발전합니다.

미가 개인이 만든 신상은 단 지파의 신상이 되고, 미가 개인이 고용한 제사장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됩니다. 그동안 그는 줄곧 젊은 레위 사람, 또는 제사장으로만 불렸습니다. 이제 그의 이름과 가계가 밝혀지면서, 한 사람의 임시적인 고용 관계가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제사장 가문의 시작으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는 동안 내내, 그들은 미가가 만든 그 새긴 신상을 자기들을 위해 세워 두었다.사사기 18:31 · 본디새김

실로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온 뒤 회막을 세운 장소입니다(여호수아 18:1). 이스라엘 지파들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머무시는 것을 나타내는 성막과 그 예배의 질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섬길 길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이 있음에도 자기들이 마련한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데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본디새김은 「므낫세의 아들 게르솜의 아들 요나단」이라고 옮겼습니다.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는 ‘므낫세’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이름의 눈이라는 글자가 다른 글자보다 높게 쓰인 특이한 표기가 전해집니다. 그 글자를 제외하면 ‘모세’라는 이름이 됩니다. 일부 고대 그리스어 사본과 라틴어 성경에도 ‘모세’라는 읽기가 전해집니다. 이 때문에 요나단이 모세의 후손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그러나 전승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과 어느 읽기가 최초의 본문이었는지를 확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높여 쓴 글자의 존재만으로 모세라는 읽기를 반드시 채택해야 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서술자는 이 제도가 그 땅의 주민들이 유배되는 날까지 이어졌다고 전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느 사건과 시점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상 논의가 있으므로 한 연도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열왕기상 12:28–30에서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이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는 사건이 나옵니다. 사사기 18장의 신상과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를 동일한 물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단이라는 장소가 후대에도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연결된 장소로 등장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 것인가, 자기들의 결정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부른 것인가

사사기 18:1–31 본문 →

이 장에서 사람들은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이 땅을 주셨다고 선언했으며, 자신들에게 필요한 종교적 제도를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독자가 실제로 보는 행동은 남의 재산을 빼앗는 일, 위협으로 항의를 막는 일,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확신과 하나님께서 직접 드러내신 뜻 사이에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술자는 마지막으로 독자의 시선을 실로로 돌립니다.

실로에는 하나님의 집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단에서는 사람들이 미가의 집에서 가져온 새긴 신상을 세워 두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자기들 가운데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단 지파는 자기들이 손에 넣은 신상을 자기들 가운데 세워 두었습니다.

사사기 18장은 그 두 장소를 나란히 남겨 놓은 채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