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6장

이 장의 자리 · 3–12장 · 일어서는 재판관들

두려워하는 사람을 부르시는 하나님

기드온은 포도 압착 틀에 숨어서 밀을 떨고 있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곡식을 감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나타나 그에게 말했습니다. 「힘센 용사여, 여호와야훼가 너와 함께한다.」

이 인사는 기드온의 처지와 너무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는 적군을 향해 칼을 들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어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왜 이스라엘은 고통받고 있습니까? 조상들에게서 들었던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까?

사사기 6장은 하나님이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용기를 주시는가 하는 이야기이면서, 그보다 먼저 이스라엘이 누구를 두려워하고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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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뿌려도 먹을 수 없는 땅

사사기 6:1–6 본문 →

이스라엘이 씨를 뿌릴 때마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쪽 사람들이 올라왔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왔다.사사기 6:3 · 본디새김

미디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을 직접 통치하는 것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대신 이스라엘이 농사를 지을 때마다 올라와 그 땅의 생산물을 파괴하고 가축을 빼앗습니다. 이러한 공격은 한 번의 전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농사를 짓는 생활 자체를 위협합니다.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는 일은 한 가족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과정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수고해도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그 결과를 빼앗아 간다면, 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 이상 안정된 생계를 보장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 맞서 진을 치고 가자에 이르기까지 그 땅의 소출을 망가뜨렸다. 이스라엘에 먹고 살 것을 남겨 두지 않았고, 양이나 염소도, 소도, 나귀도 남겨 두지 않았다.사사기 6:4 · 본디새김

양과 염소는 먹을 것과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고, 소와 나귀는 농경과 운반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가축을 잃는다는 것은 현재의 식량뿐 아니라 앞으로 생산하고 생활할 능력까지 위협받는다는 뜻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낙타와 천막을 가지고 메뚜기처럼 수없이 몰려왔다고 묘사됩니다. 메뚜기는 떼를 이루어 나타나면 넓은 지역의 식물을 먹어 치울 수 있습니다. 사사기 저자는 그 이미지를 통해 미디안 사람들의 막대한 수와 약탈의 파괴력을 보여줍니다.

상속받은 땅에서 숨어 살아가는 백성

이스라엘은 미디안을 피해 산속에 굴길과 동굴과 산성을 마련합니다. 산과 굴은 생명을 지키는 피난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거기에 숨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정상적인 생활의 터전을 잃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약속의 땅을 받은 사람들이 이제 그 땅에서 드러내 놓고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백성은 고통 속에서 여호와야훼께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곧바로 구원자를 세우시는 장면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먼저 예언자를 보내십니다.

구원을 요청했는데 하나님은 왜 예언자를 보내셨는가

사사기 6:7–10 본문 →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압제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는 미디안을 물리치는 방법이나 새로운 지도자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예언자 한 사람을 보냈다.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올렸고, 종살이하던 집에서 너희를 이끌어 냈다.』」사사기 6:8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원래 자유로운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을 이끌어 내신 분은 여호와야훼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억은 단순한 위로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라고 말하였다. 또 아모리 사람들의 땅에 사는 너희에게 그들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사사기 6:10 · 본디새김

본문은 두려움과 순종의 문제를 연결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신을 두려워하고, 어떤 신에게 삶의 안전을 기대하는지가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나안의 여러 지역에서 섬기던 바알은 비와 폭풍, 땅의 풍요와 연결되는 신이었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그러한 신앙은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본문은 이스라엘이 실제로 어떤 경제적 목적 때문에 바알을 섬겼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먹고살 것을 미디안에게 빼앗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적하시는 더 깊은 문제는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두려워하면서 자신들의 하나님을 외면했다는 것입니다.

백성은 미디안의 손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살아왔는지 먼저 돌아보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예언자의 말이 끝난 뒤에도 본문은 백성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회개했는지, 제단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책망을 전하고, 이야기에서 사라집니다.

다음 장면에 등장하는 사람은 포도 압착 틀에서 밀을 떨고 있는 기드온입니다. 이렇게 사사기 저자는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말씀에서 한 사람의 일상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그 한 사람 역시 하나님의 구원과 현재의 고통 사이에서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가 너와 함께한다」 — 기드온이 이해하지 못한 인사

사사기 6:11–16 본문 →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와서 오프라에 있는 테레빈나무 아래 앉았다. 그 나무는 아비에제르 사람 요아스의 것이었다. 그의 아들 기드온은 밀을 미디안에게서 숨기려고 포도 압착 틀에서 밀을 떨고 있었다.사사기 6:11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왔을 때 그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밀의 낟알을 분리하고 쭉정이를 날려 보내는 일은 바람을 이용할 수 있는 비교적 개방된 타작마당에서 이루어집니다. 반면 포도 압착 틀은 포도를 밟거나 눌러 즙을 얻기 위한 시설입니다. 그는 정상적인 장소에서 정상적인 방식으로 일할 자유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특별히 비겁했기 때문이라기보다 당시 이스라엘의 현실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보여줍니다. 백성은 자신이 생산한 곡식을 지키기 위해 적의 눈을 피해 일해야 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사자는 그 일상의 자리로 찾아옵니다.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말했다. 「힘센 용사여, 여호와야훼가 너와 함께한다.」사사기 6:12 · 본디새김

이 인사에는 두 가지 선언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기드온을 힘센 용사라고 부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호와야훼가 그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너와 함께한다」와 「저희와 함께하신다면」

기드온의 대답에서 중요한 것은 인칭의 변화입니다.

기드온이 그에게 말했다. 「실례합니다, 나리. 여호와야훼께서 저희와 함께하신다면 어째서 이 모든 일이 저희에게 닥쳤습니까? 저희 조상들이 저희에게 『여호와야훼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올리지 않으셨느냐?』 하며 들려주던 그분의 놀라운 일들은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데 지금 여호와야훼께서는 저희를 버리시고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기셨습니다.」사사기 6:13 · 본디새김

하나님은 기드온이라는 한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스라엘 전체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는 개인적인 안전이나 성공을 묻지 않습니다. 자신이 속한 백성이 왜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지 묻습니다.

기드온은 조상들에게서 출애굽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경험하는 현실은 그 이야기와 너무나 다릅니다.

기드온은 바로 그 간격을 문제 삼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배웠는지와, 자신이 실제로 겪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함께 이해해야 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가볍게 불신앙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말에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진지한 기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판단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는 저희를 버리시고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기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일부 반영합니다. 6:1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넘기셨다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이미 앞에서 예언자의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이 그 예언자의 말을 직접 들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독자는 기드온보다 먼저 하나님의 설명을 듣도록 배치되어 있습니다.

기드온의 질문은 진지하지만, 그 질문 안에는 아직 이스라엘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돌아보지 못한 모습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시는가

여호와야훼가 그를 향해 돌아서서 말했다. 「너의 그 힘으로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아귀에서 구하여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사사기 6:14 · 본디새김

질문의 방향이 바뀝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묻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기드온 자신을 그 구원에 참여하도록 부르십니다.

기드온이 가야 하는 근거는 그가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여호와야훼에게 말했다. 「실례합니다, 주님. 제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제 씨족은 므낫세에서 가장 약하고,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습니다.」사사기 6:15 · 본디새김

그의 질문은 「제가 누구이기에」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의 가문이 실제로 얼마나 강한지 설명하시거나, 그에게 숨겨진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설득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야훼가 그에게 말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으니, 너는 미디안을 한 사람 치듯 칠 것이다.」사사기 6:16 · 본디새김

기드온은 자신의 능력을 근거로 삼아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함께하심을 근거로 삼아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은 모세를 부르시는 출애굽기 3:10–12와 연결됩니다. 모세도 자신이 누구이기에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도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조금 더 깊이

그렇다면 하나님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기드온의 잠재력을 보고 계신 것일까요? 그렇게 이해할 가능성은 있지만, 본문은 기드온에게 특별한 능력이 숨어 있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힘센 용사」라는 호칭은 기드온의 현재 상태에 대한 단순한 평가라기보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떤 일로 부르고 계신지를 미리 드러내는 말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너의 그 힘으로」라는 표현은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것이 기드온이 이미 가지고 있던 힘을 가리키는지, 그가 방금 보여준 열정과 문제의식을 가리키는지, 하나님의 부르심과 함께하심에서 비롯될 능력을 가리키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드온이 말한 「가장 보잘것없습니다」라는 마지막 표현은 집안에서 가장 어리다는 의미로 읽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정확히 어떤 서열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이 자신에게 충분한 지위와 역량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불이 올라온 바위와 「여호와야훼 샬롬」의 제단

사사기 6:17–24 본문 →

기드온은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그가 여호와야훼에게 말했다. 「제가 당신의 눈에 호의를 얻었다면, 저와 말씀하시는 분이 바로 당신이라는 표징을 제게 보여 주십시오.」사사기 6:17 · 본디새김

여기서 기드온이 요구하는 표징은 아직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인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구별은 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양털 시험과 비교할 때 중요합니다.

기드온은 사자에게 잠시 머물러 달라고 부탁하고, 예물을 준비하러 갑니다. 그는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요리하고 밀가루 한 에파로 누룩 없는 빵들을 만듭니다. 고기와 국물을 담아 가져옵니다.

이스라엘은 미디안 때문에 먹고살 것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기드온 자신도 밀을 숨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손님을 위해 준비한 음식은 적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확신하지 못하지만,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분을 가볍게 대하지는 않습니다.

손님에게 바친 음식이 불에 사라지다

하나님의 사자는 고기와 빵을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을 부으라고 명령합니다. 기드온이 그대로 하자 사자가 지팡이 끝을 뻗어 음식에 댑니다. 그러자 바위에서 불이 올라와 고기와 빵을 삼킵니다.

그리고 사자는 사라집니다.

기드온은 처음에 상대를 대접할 예물로 준비했지만, 그 음식은 이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표징 속에서 불에 삼켜집니다. 이 사건을 통해 기드온은 자신이 만났던 존재의 정체를 깨닫습니다.

기드온은 그가 여호와야훼의 사자임을 알아차렸다. 기드온이 말했다. 「아, 주 여호와야훼여, 제가 여호와야훼의 사자와 얼굴을 마주 보았다니요.」사사기 6:22 · 본디새김

여기서 기드온의 두려움은 새로운 방향으로 바뀝니다.

그는 처음에는 미디안에게 들킬까 봐 곡식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와야훼의 사자와 얼굴을 마주 보았기 때문에 죽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여호와야훼가 그에게 말했다. 「너에게 평안이 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사사기 6:23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 샬롬」은 전쟁이 없다는 뜻인가

기드온은 그곳에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야훼 샬롬이라고 불렀다. 그 제단은 오늘까지도 아비에제르 사람들의 오프라에 남아 있다.사사기 6:24 · 본디새김

히브리어 샬롬(⁨שָׁלוֹם⁩)은 평안, 온전함, 안녕과 관련된 뜻을 가집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여호와야훼 샬롬」을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로 이해하면 앞뒤 문맥을 놓치게 됩니다.

미디안의 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은 아직 전쟁에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굶주리는 현실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에게 주어진 첫 번째 평안은 미디안이 사라진 평안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던 자신에게 주어진 평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평안은 기드온이 아무런 위험 없이 지내게 될 것이라는 약속은 아닙니다. 바로 그날 밤, 그는 자기 집안과 성읍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 명령을 받습니다.

조금 더 깊이

한 에파의 정확한 현대식 환산량은 추정에 차이가 있지만, 일상적인 한 사람의 식사를 준비하는 데 쓰는 양보다 상당히 많은 밀가루입니다. 본문은 기드온이 왜 이렇게 많이 준비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전통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뵙는 일이 인간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3:20은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수 없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 장면에서 서술자는 처음에는 「여호와야훼의 사자」라고 부른 존재를 때로는 「여호와야훼」라고 부르고, 기드온과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을 하나님 자신의 말씀으로 서술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사자 개념에서는 보냄받은 사람이 자신을 보낸 분의 권위를 가지고 그분의 말씀을 직접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자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수준을 넘어, 여호와야훼 자신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서술됩니다. 이 때문에 사자를 하나님이 보내신 대표자로 이해하는 읽기와, 하나님의 현현을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본문은 그 관계를 철학적이거나 존재론적인 언어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으로 사자의 본질을 확정하거나, 그가 구체적으로 누구였는지 단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미디안과 싸우기 전에 아버지의 제단을 허물다

사사기 6:25–32 본문 →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에서 구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처음 맡기신 구체적인 일은 미디안의 진영을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 밤 여호와야훼가 그에게 말했다. 「네 아버지의 수소와 둘째 수소, 곧 일곱 살 된 수소를 데려와라. 네 아버지의 바알 제단을 헐고 그 곁의 아셰라를 베어라.」사사기 6:25 · 본디새김

앞에서 이름 없는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두려워하며 여호와야훼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고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소유한 바알 제단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공동체의 가장 가까운 생활 공간에까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이 치러야 할 첫 싸움은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외부의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집안에 자리 잡은 우상숭배를 거스르는 싸움이었습니다.

제단을 허물고 다시 제단을 쌓다

하나님은 바알 제단을 허물라는 명령만 하시지 않으십니다. 아셰라를 베고, 여호와야훼를 위한 새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베어 낸 아셰라의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여 번제를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전에는 숭배의 대상이나 제의물로 사용되던 나무가 이제 여호와야훼께 드리는 제물의 땔감으로 사용됩니다. 바알에게 속한 예배의 구조가 해체되고, 그 자리에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이 세워집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마음속으로만 바알을 버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가문과 성읍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제단을 허물고 새 제단을 세우도록 하십니다.

다만 오늘날 이 본문을 적용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종교 시설을 파괴하는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명령은 고대 이스라엘의 특정한 언약 관계 속에서 기드온에게 주어진 것이며, 모든 시대의 신앙인에게 동일한 행동을 명령하는 보편적인 지침은 아닙니다.

기드온은 순종했지만 여전히 두려워했다

기드온은 자기 종들 가운데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야훼가 자기에게 말한 대로 했다. 그는 아버지 집안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낮에 그 일을 하지 못하고 밤에 했다.사사기 6:27 · 본디새김

그의 행동은 담대함과 두려움 가운데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순종하는 모습이 함께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가 왜 그렇게 두려워했는지는 다음 날 밝혀집니다.

바알을 위해 사람을 죽이려는 성읍

아침이 되자 성읍 사람들이 바알 제단이 허물어졌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누가 이런 일을 했는지 캐묻고 조사합니다. 기드온이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의 아버지 요아스에게 요구합니다.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말했다. 「당신 아들을 끌어내십시오. 그자는 죽어야 합니다. 바알 제단을 헐었고 그 곁의 아셰라를 베었기 때문입니다.」사사기 6:30 · 본디새김

이것은 우상숭배가 단지 개인적인 종교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와 권력 관계까지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미디안은 이스라엘을 굶주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 제단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자기 동족을 죽이려 합니다.

외부의 압제가 심각한 만큼, 내부의 종교적 상태 역시 심각합니다.

「그가 신이라면 스스로 다투게 하십시오」

이때 뜻밖의 사람이 기드온을 변호합니다. 바알 제단의 소유자인 그의 아버지 요아스입니다.

요아스가 자기를 대적해 서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말했다. 「여러분이 바알을 위해 다투겠습니까? 여러분이 그를 구하겠습니까? 그를 위해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처형되어야 합니다. 그가 신이라면 스스로 다투게 하십시오. 기드온이 그의 제단을 헐었으니 말입니다.」사사기 6:31 · 본디새김

제단을 보호하기 위해 신이 사람을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신을 지켜 주려고 합니다. 요아스는 그 관계가 뒤집혀 있음을 폭로합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새로운 이름을 얻습니다.

그날 요아스는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고 부르며 말했다. 「그가 바알의 제단을 헐었으니, 바알이 그와 다투게 하십시오.」사사기 6:32 · 본디새김

히브리어 여룹바알(⁨יְרֻבַּעַל⁩)은 본문에서 바알이 그와 다투게 하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이름은 원래의 어원적 형성 과정을 모두 설명한다기보다, 기드온이 바알의 제단을 허문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방식으로 해석됩니다.

본문은 바알이 기드온을 벌하거나 그의 제단을 회복했다는 사건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 장면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영이 기드온을 옷처럼 입으십니다.

바알은 자기 제단이 무너졌을 때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반면 여호와야훼는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실제로 행동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앞에서 이스라엘이 미디안에게 압제당한 기간도 일곱 해였습니다. 두 숫자가 같기 때문에 이 수소가 미디안의 압제 기간을 상징한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두 숫자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의도된 상징인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6:25에서 수소가 두 마리인지, 한 마리를 두 가지 표현으로 설명한 것인지도 히브리어 문면에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요아스의 말만으로 요아스가 완전히 바알 숭배를 버리고 여호와야훼께 돌아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득력 있는 논리를 사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바알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출애굽기 3:12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람으로 보내시면서, 그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뒤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단순히 이집트를 떠나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일과, 자신들이 섬겨야 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을 함께 바라보게 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영이 기드온을 옷처럼 입다

사사기 6:33–35 본문 →

이제 이야기는 다시 미디안의 위협으로 돌아옵니다.

처음에 등장했던 적들이 다시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생산물을 파괴하고 가축을 빼앗던 세력입니다. 이번에는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칩니다.

그런데 이제 이전과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여호와야훼의 영이 기드온을 옷처럼 입었다. 기드온이 뿔나팔을 불자 아비에제르 사람들이 소집되어 그의 뒤를 따랐다.사사기 6:34 · 본디새김

기드온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기드온을 통해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두려워하던 사람이 사람들을 부르다

이 장면은 앞에서 성읍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했던 장면과 대조됩니다. 그때 기드온은 밤에 숨어 행동해야 했습니다. 이제 그는 공개적으로 사람들을 소집합니다.

이어 기드온은 므낫세 전역에 전령들을 보내고,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도 전령들을 보냅니다. 그 지파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6:15에서 기드온은 자기 씨족이 므낫세에서 가장 약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6:35에서는 므낫세 전역의 사람들이 그의 소집에 응합니다. 기드온의 사회적 위치가 처음부터 강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영의 역사 속에서 그가 사람들을 이끄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아직 그가 충분히 확신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의 문장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 기드온이 여호와야훼의 영을 입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영이 기드온을 입으신 것입니다. 이 표현은 일반적인 「여호와야훼의 영이 그에게 임했다」라는 말보다 훨씬 강렬한 이미지를 만듭니다. 옷을 입는 사람이 옷을 사용하듯, 여호와야훼의 영이 기드온을 자신의 활동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사용하신다는 이미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비유를 지나치게 밀고 나가 기드온의 의지가 사라졌다거나, 그가 더 이상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기드온은 뒤에서도 질문하고 확인을 요구합니다.

양털은 젖고 땅은 마르게 — 기드온은 무엇을 확인하려 했는가

사사기 6:36–40 본문 →

이번에는 양털 뭉치를 타작마당에 놓고, 자신이 정한 조건대로 이슬이 내리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이 장면은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표징을 구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뜻을 몰랐는가

기드온은 이미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6:14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16에서는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6:21에서는 불이 바위에서 올라오는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뒤 기드온은 바알 제단을 허물라는 명령에 순종했고, 여호와야훼의 영이 그를 옷처럼 입으셨으며, 그는 여러 지파에서 사람들을 소집했습니다. 그가 확인하려는 것은 하나님이 정말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에게 말했다. 「말씀하신 대로 제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하시려 한다면,」사사기 6:36 · 본디새김

그는 새로운 명령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약속의 성취를 확인하려 합니다. 양털 시험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장면이 아니라, 이미 말씀을 받은 사람이 그 약속이 정말 이루어질지 확인하려는 장면입니다.

왜 양털과 이슬인가

기드온은 깎은 양털 뭉치를 타작마당에 놓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양털에만 이슬이 맺히고 땅은 온통 말라 있으면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하실 줄 알겠다고 합니다.

그다음 날 실제로 그렇게 됩니다.

기드온은 양털을 눌러 짜서 대접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물을 얻습니다. 오히려 뒤따르는 행동을 보면 그는 여전히 확신을 얻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첫 번째 표징이 이루어졌는데 왜 다시 요구하는가

기드온이 하나님에게 말했다. 「제게 노하지 마십시오. 이번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디 이번 한 번만 양털 뭉치로 시험하게 해 주십시오. 부디 양털 뭉치만 말라 있고 땅에는 온통 이슬이 있게 해 주십시오.」사사기 6:39 · 본디새김

그 자신도 「제게 노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다시 확인을 요구하는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을 노하게 할 수 있음을 의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표징은 첫 번째와 무엇이 다른가

기드온은 같은 재료를 사용하면서 정반대의 결과를 요구합니다. 확실한 것은 기드온이 첫 번째 표징만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더욱 분명한 확인을 원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요구에 응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날 밤 그렇게 했다. 양털 뭉치만 말라 있었고 땅에는 온통 이슬이 있었다.사사기 6:40 · 본디새김

하나님은 기드온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그의 요청을 특별히 칭찬하지도 않으십니다.

이 장면은 기드온이 반복해서 확인을 요청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자신이 정한 기적의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지침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의 초점은 표징을 통해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방법이 아니라, 분명한 약속을 받고도 두려워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고 계시는가에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기드온이 하나님을 「시험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사사기 2:22와 3:4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신다는 표현과 연결됩니다. 거기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자신의 명령에 순종하는지를 시험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기드온이 하나님을 시험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말씀에 순종하는지 보려 하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대로 행하실지 확인하려 합니다. 이 대조는 기드온의 요청을 단순히 훌륭한 신앙의 본보기로만 읽기 어렵게 합니다. 양털이 이슬을 머금는 성질을 가졌다는 점에서, 첫 번째 표징은 자연적인 현상으로도 설명할 여지가 일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양털과 주변 땅의 상태를 특별히 구별하고 있으며, 한 대접의 물을 짤 정도로 이슬이 맺혔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첫 번째 사건 전체를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확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두 번째 요구가 중요한 것은 반대의 조건을 제시한다는 점입니다. 양털이 원래 물을 잘 머금기 때문에 첫 번째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생각할 여지를 없애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기드온의 내면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가능한 해석입니다.

양털 뭉치 위에 내린 이슬

사사기 6:1–40 본문 →

이스라엘은 미디안에게서 벗어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겪는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기드온을 불러 구원을 시작하십니다.

사사기 6장은 완성된 믿음을 가진 사람이 구원자로 선택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두려움과 순종 사이를 오가는 사람이 구원의 일에 참여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사기 6장은 아직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은 채 끝납니다.

미디안은 여전히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기드온은 사람들을 소집했지만, 아직 군대를 이끌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을 구하시겠다고 말씀하셨지만, 그 결과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그는 포도 압착 틀에 숨어서 밀을 떨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타작마당에 양털을 놓고 이슬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두 장면 모두 곡식을 다루는 장소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미디안에게 빼앗기지 않을 곡식을 지키는 것이 그의 관심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정말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하실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그의 관심입니다.

그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아직 완전한 확신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기드온은 더 이상 미디안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응답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도 하나님은 기드온의 요구대로 행하셨습니다.

양털 뭉치만 말라 있었습니다. 그 주위의 땅에는 온통 이슬이 맺혀 있었습니다. 미디안의 군대는 여전히 골짜기에 있었고,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한때 미디안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밀을 숨기던 사람 앞에,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마른 양털 뭉치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