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6장

이 장의 자리 · 3–12장 · 일어서는 재판관들

두려워하는 사람을 부르시는 하나님

기드온은 포도즙을 짜는 틀 안에 숨어서 밀 이삭을 두드려 알갱이를 털고 있었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곡식을 감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나타나 그에게 말했습니다. 「힘센 용사야, 여호와야훼께서 너와 함께하신다.」

이 인사는 기드온의 처지와 너무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는 적군을 향해 칼을 들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숨어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왜 이스라엘은 고통받고 있습니까? 조상들에게서 들었던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신 것이 아닙니까?

사사기 6장은 하나님이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용기를 주시는가 하는 이야기이면서, 그보다 먼저 이스라엘이 누구를 두려워하고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읽는 시간 24분소단락 86장 본문 읽기 →

씨를 뿌려도 먹을 수 없는 땅

사사기 6:1–6 본문 →

이스라엘 사람들이 씨를 뿌릴 때마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쪽 사람들이 올라와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사사기 6:3 · 두루새김

미디안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성을 직접 다스리는 것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대신 이스라엘이 농사를 지을 때마다 올라와 그 땅의 농작물을 망가뜨리고 가축을 빼앗습니다. 이러한 공격은 한 번의 전투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농사를 짓는 생활 자체를 위협합니다.

씨를 뿌리고 곡식을 거두는 일은 한 가족이 살아가는 기본적인 과정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수고해도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그 결과를 빼앗아 간다면, 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더 이상 안정되게 먹고살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진을 치고 가자에 이르기까지 농작물을 망가뜨렸습니다. 이스라엘에 먹고살 것을 남겨 두지 않았고, 양이나 염소도, 소도, 나귀도 남겨 두지 않았습니다.사사기 6:4 · 두루새김

양과 염소는 먹을 것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소와 나귀는 농사를 짓고 짐을 나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가축을 잃는다는 것은 현재의 식량뿐 아니라 앞으로 생산하고 생활할 능력까지 위협받는다는 뜻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은 낙타와 천막을 가지고 메뚜기 떼처럼 수없이 몰려왔다고 그려집니다. 메뚜기는 떼를 이루어 나타나면 넓은 지역의 식물을 먹어 치울 수 있습니다. 사사기 저자는 그 모습을 통해 미디안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고, 그들의 약탈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는지 보여줍니다.

상속받은 땅에서 숨어 살아가는 백성

이스라엘은 미디안을 피해 산속에 땅굴과 동굴, 튼튼한 피신처를 마련합니다. 산과 굴은 생명을 지키는 피난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거기에 숨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은 정상적인 생활의 터전을 잃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약속의 땅을 받은 사람들이 이제 그 땅에서 드러내 놓고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밀의 알갱이를 분리하고 쭉정이를 날려 보내는 일은 바람을 이용할 수 있는 비교적 탁 트인 마당에서 이루어집니다. 반면 포도즙을 짜는 틀은 포도를 밟거나 눌러 즙을 얻기 위한 시설입니다.

기드온이 그런 곳에서 밀 알갱이를 털고 있는 이유를 본문은 분명히 밝힙니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밀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특별히 비겁했기 때문이라기보다 당시 이스라엘의 현실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보여줍니다.

사사기의 다른 구원 이야기들처럼, 백성은 고통 속에서 여호와야훼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곧바로 구원자를 세우시는 장면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먼저 예언자를 보내십니다.

구원을 요청했는데 하나님은 왜 예언자를 보내셨는가

사사기 6:7–10 본문 →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억압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는 미디안을 물리치는 방법이나 새로운 지도자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들에게 예언자 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예언자가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올렸다. 너희가 종살이하던 곳에서 너희를 이끌어 냈다.』」사사기 6:8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현재 고통을 이해하려면 과거의 구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기억은 단순한 위로로 끝나지 않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라고 말했고, 너희가 살고 있는 땅의 아모리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너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사사기 6:10 · 두루새김

본문은 두려움과 순종의 문제를 연결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신을 두려워하고, 어떤 신에게 삶의 안전을 기대하는지가 그들의 행동을 결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나안의 여러 지역에서 섬기던 바알은 비와 폭풍, 땅의 풍요와 연결되는 신이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회에서 그러한 신앙은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본문은 이스라엘이 실제로 어떤 경제적 목적 때문에 바알을 섬겼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대목에서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음에도 이스라엘이 그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백성은 미디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누구의 말을 듣고 살아왔는지 먼저 돌아보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예언자의 말이 끝난 뒤에도 본문은 백성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회개했는지, 제단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예언자는 책망을 전하고, 이야기에서 사라집니다.

다음 장면에 등장하는 사람은 포도즙을 짜는 틀 안에서 밀 알갱이를 털고 있는 기드온입니다. 그 한 사람 역시 하나님의 구원과 현재의 고통 사이에서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너와 함께하신다」 — 기드온이 이해하지 못한 인사

사사기 6:11–16 본문 →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왔을 때 그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그가 왜 기드온을 선택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기드온이 다른 사람보다 더 신실했는지, 뛰어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지, 특별한 지도력을 갖추었는지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말했습니다. 「힘센 용사야, 여호와야훼께서 너와 함께하신다.」사사기 6:12 · 두루새김

기드온의 현재 모습만 보면 첫 번째 선언은 낯섭니다. 그는 싸우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숨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기드온의 가능성을 보고 계신 것일까요? 그렇게 이해할 가능성은 있지만, 본문은 기드온에게 특별한 능력이 숨어 있었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뒤에서 하나님은 그가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는 근거를 자신의 함께하심에서 찾으십니다.

따라서 「힘센 용사」라는 호칭은 기드온의 현재 상태에 대한 단순한 평가라기보다, 하나님께서 그를 어떤 일로 부르고 계신지를 미리 드러내는 말로 읽을 수 있습니다.

「너와 함께하신다」와 「저희와 함께하신다면」

기드온이 대답했습니다. 「실례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저희와 함께하신다면 왜 저희에게 이런 일이 모두 닥쳤습니까? 저희 조상들은 『여호와야훼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올리지 않으셨느냐?』 하며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그 일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여호와야훼께서는 저희를 버리시고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기셨습니다.」사사기 6:13 · 두루새김

하나님은 기드온이라는 한 사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이스라엘 전체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는 개인적인 안전이나 성공을 묻지 않습니다. 자신이 속한 백성이 왜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지 묻습니다.

그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경험하는 현실은 그 이야기와 너무나 다릅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고 배웠는지와, 자신이 실제로 겪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함께 이해해야 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이 질문을 가볍게 믿음이 없는 말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말에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역사에 대한 진지한 기대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판단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는 저희를 버리시고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기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일부 반영합니다. 6:1은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에게 넘겨주셨다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기드온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독자는 이미 앞에서 예언자의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이 그 예언자의 말을 직접 들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독자는 기드온보다 먼저 하나님의 설명을 듣도록 되어 있습니다.

기드온의 질문은 진지하지만, 그 질문 안에는 아직 이스라엘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돌아보지 못한 모습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질문에 무엇이라고 대답하시는가

여호와야훼께서 기드온을 향해 돌아서서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그 힘으로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아귀에서 구해 내라. 내가 너를 보내지 않느냐?」사사기 6:14 · 두루새김

질문의 방향이 바뀝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묻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기드온 자신을 그 구원에 참여하도록 부르십니다.

기드온이 가야 하는 근거는 그가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이 대답했습니다. 「주님, 제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하겠습니까? 제 집안은 므낫세 지파에서 가장 약하고, 저는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사사기 6:15 · 두루새김

그의 질문은 자신이 누구이기에 이런 일을 맡을 수 있느냐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의 집안이 실제로 얼마나 강한지 설명하시거나, 그에게 숨겨진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설득하지 않으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 너는 한 사람을 치듯 미디안을 칠 것이다.」사사기 6:16 · 두루새김

기드온은 자신의 능력을 근거로 삼아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함께하심을 근거로 삼아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은 모세를 부르시는 출애굽기 3:10–12와 연결됩니다. 모세도 자신이 누구이기에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도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너의 그 힘으로」라는 표현은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것이 기드온이 이미 가지고 있던 힘을 가리키는지, 그가 방금 보여준 열정과 문제의식을 가리키는지, 하나님의 부르심과 함께하심에서 비롯될 능력을 가리키는지는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의 집안은 므낫세 지파에서 가장 약하고, 자신은 아버지의 집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표현은 원문에서 집안에서 가장 어리다는 의미로 읽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정확히 어떤 서열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불이 올라온 바위와 「여호와야훼 샬롬」의 제단

사사기 6:17–24 본문 →

기드온은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기드온이 말했습니다. 「저를 좋게 보신다면, 저와 말씀하시는 분이 정말 주님이시라는 표징을 보여 주십시오.」사사기 6:17 · 두루새김

여기서 기드온이 요구하는 표징은 아직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인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구별은 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양털 시험과 비교할 때 중요합니다.

기드온은 사자에게 잠시 머물러 달라고 부탁하고, 드릴 것을 준비하러 갑니다. 그는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요리하고 밀가루 한 에파로 부풀리지 않은 빵을 만듭니다. 고기와 국물을 담아 가져옵니다.

한 에파를 오늘날의 단위로 바꾼 정확한 양은 추정에 차이가 있지만, 일상적인 한 사람의 식사를 준비하는 데 쓰는 양보다 상당히 많은 밀가루입니다. 본문은 기드온이 왜 이렇게 많이 준비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두려워하고 확신하지 못하지만, 자신에게 말씀하시는 분을 가볍게 대하지는 않습니다.

손님에게 바친 음식이 불에 사라지다

하나님의 사자는 고기와 빵을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을 부으라고 명령합니다. 기드온이 그대로 하자 사자가 지팡이 끝을 내밀어 음식에 댑니다. 그러자 바위에서 불이 솟아올라 고기와 빵을 태워 버립니다.

그리고 사자는 사라집니다.

이 순간 음식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기드온은 처음에 상대를 대접하려고 준비했지만, 그 음식은 이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표징 속에서 불에 타 버립니다. 이 사건을 통해 기드온은 자신이 만났던 존재가 누구인지 깨닫습니다.

기드온은 그가 여호와야훼의 사자였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했습니다. 「아, 주 여호와야훼여! 제가 여호와야훼의 사자와 얼굴을 마주 보았습니다!」사사기 6:22 · 두루새김

여기서 기드온의 두려움은 새로운 방향으로 바뀝니다.

그는 처음에는 미디안에게 들킬까 봐 곡식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호와야훼의 사자와 얼굴을 마주 보았기 때문에 죽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해도 된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사사기 6:23 · 두루새김

「여호와야훼 샬롬」은 전쟁이 없다는 뜻인가

기드온은 그곳에 여호와야훼를 위한 제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야훼 샬롬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제단은 이 기록이 쓰인 때까지 아비에셀 집안 사람들이 사는 오프라에 남아 있었습니다.사사기 6:24 · 두루새김

히브리어 샬롬(⁨שָׁלוֹם⁩)은 평안, 온전함, 안녕과 관련된 뜻을 가집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여호와야훼 샬롬」을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로 이해하면 앞뒤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게 됩니다. 미디안의 억압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에게 주어진 첫 번째 평안은 미디안이 사라진 평안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죽을까 두려워하던 자신에게 주어진 평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평안은 기드온이 아무런 위험 없이 지내게 될 것이라는 약속은 아닙니다. 바로 그날 밤, 그는 자기 집안과 성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는 명령을 받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스라엘의 종교적 전통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뵙는 일이 인간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3:20은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수 없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이 장면에서 서술자는 처음에는 「여호와야훼의 사자」라고 부른 존재를 때로는 「여호와야훼」라고 부르고, 기드온과 직접 말씀하시는 장면을 하나님 자신의 말씀으로 서술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사자는 자신을 보낸 분의 권위를 가지고 그분의 말씀을 직접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자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수준을 넘어, 여호와야훼 자신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서술됩니다. 이 때문에 사자를 하나님이 보내신 대표자로 이해하는 읽기와,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일을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읽기가 가능합니다. 본문은 그 관계를 철학적인 말이나 존재의 본질을 설명하는 말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으로 사자의 본질을 확정하거나, 그가 구체적으로 누구였는지 단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미디안과 싸우기 전에 아버지의 제단을 허물다

사사기 6:25–32 본문 →

기드온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에서 구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처음 맡기신 구체적인 일은 미디안의 진영을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 밤 여호와야훼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버지의 수소와 일곱 살 된 둘째 수소를 데려와라. 네 아버지의 바알 제단을 무너뜨리고, 그 곁의 아세라를 베어 버려라.」사사기 6:25 · 두루새김

앞에서 이름 없는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가진 바알 제단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공동체의 가장 가까운 생활 공간에까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이 치러야 할 첫 싸움은 이스라엘을 억누르는 외부의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집안에 자리 잡은 우상숭배를 거스르는 싸움이었습니다.

제단을 허물고 다시 제단을 쌓다

하나님은 바알 제단을 무너뜨리라는 명령만 하시지 않으십니다.

아세라를 베고, 하나님을 위한 새 제단을 쌓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베어 낸 아세라의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여 번제를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전에는 숭배의 대상이나 제사에 쓰이던 나무가 이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의 땔감으로 사용됩니다. 바알에게 속한 예배의 구조가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위한 제단이 세워집니다. 누구에게 예배할 것인지를 실제 행동으로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마음속으로만 바알을 버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의 집안과 성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장소에서 제단을 무너뜨리고 새 제단을 세우도록 하십니다.

출애굽기 3:12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람으로 보내시면서, 그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뒤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일과, 자신들이 섬겨야 할 하나님께 돌아오는 일을 함께 바라보게 합니다.

다만 오늘날 이 본문을 적용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종교 시설을 부수는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명령은 고대 이스라엘의 특정한 언약 관계 속에서 기드온에게 주어진 것이며, 모든 시대의 신앙인에게 같은 행동을 명령하는 보편적인 지침은 아닙니다.

기드온은 순종했지만 여전히 두려워했다

기드온은 자기 종들 가운데 열 명을 데리고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집안과 그 성 사람들을 두려워해서 낮에는 하지 못하고 밤에 그 일을 했습니다.사사기 6:27 · 두루새김

이것을 단순히 완전한 순종이라고만 칭찬하거나, 반대로 밤에 행동했으므로 불순종이었다고 비판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기드온이 두려워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을 실행했다는 사실을 함께 기록합니다.

그는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가 왜 그렇게 두려워했는지는 다음 날 밝혀집니다.

바알을 위해 사람을 죽이려는 성읍

아침이 되자 성 사람들이 바알 제단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누가 이런 일을 했는지 캐묻고 알아봅니다. 기드온이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그의 아버지 요아스에게 요구합니다.

성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아들을 끌어내요. 그 아들은 죽어야 해요. 바알 제단을 무너뜨리고 그 곁의 아세라를 베었으니까요.」사사기 6:30 · 두루새김

이것은 우상숭배가 단지 개인이 어떤 종교를 좋아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와 권력 관계까지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외부의 억압이 심각한 만큼, 내부의 종교적 상태 역시 심각합니다.

「바알이 신이라면 스스로 싸우게 두세요」

이때 뜻밖의 사람이 기드온을 변호합니다.

바알 제단의 주인인 그의 아버지 요아스입니다.

요아스가 자기에게 맞선 모든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바알을 위해 싸우겠어요? 여러분이 바알을 구해 주겠어요? 바알을 위해 싸우는 사람은 아침까지 죽임을 당해야 해요. 바알이 신이라면 스스로 싸우게 두세요. 기드온이 바알의 제단을 무너뜨렸으니까요.」사사기 6:31 · 두루새김

제단을 보호하기 위해 신이 사람을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신을 지켜 주려고 합니다. 요아스는 그 관계가 뒤집혀 있음을 드러냅니다.

다만 이 말만으로 요아스가 완전히 바알 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득력 있는 논리를 사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이 바알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새로운 이름을 얻습니다.

그날 기드온은 여룹바알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기드온이 바알의 제단을 무너뜨렸으니, 바알이 기드온과 싸우게 하라는 뜻이었습니다.사사기 6:32 · 두루새김

이름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모두 설명한다기보다, 기드온이 바알의 제단을 무너뜨린 사건을 기억하게 하는 방식으로 해석됩니다. 본문은 바알이 기드온을 벌하거나 그의 제단을 다시 세웠다는 사건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 장면에서는 하나님의 영께서 기드온을 사로잡으십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일곱 살 된 수소가 등장합니다. 앞에서 이스라엘이 미디안에게 지배를 받은 기간도 일곱 해였습니다. 두 숫자가 같기 때문에 이 수소가 미디안의 지배 기간을 상징한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두 숫자의 관계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의도된 상징인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원문에서는 6:25의 수소가 두 마리인지, 한 마리를 두 가지 표현으로 설명한 것인지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네 아버지의 수소와 일곱 살 된 둘째 수소」로 옮겨 두 마리로 읽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영께서 기드온을 사로잡으시다

사사기 6:33–35 본문 →

이제 이야기는 다시 미디안의 위협으로 돌아옵니다.

처음에 등장했던 적들이 다시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농작물을 망가뜨리고 가축을 빼앗던 세력입니다. 이번에는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칩니다.

그런데 이제 이전과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여호와야훼의 영께서 기드온을 사로잡으셨습니다. 기드온이 뿔나팔을 불자 아비에셀 집안 사람들이 부름을 받고 모여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사사기 6:34 · 두루새김

기드온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기드온을 통해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두려워하던 사람이 사람들을 부르다

이 장면은 앞에서 성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했던 장면과 대조됩니다. 그때 기드온은 밤에 숨어 행동해야 했습니다. 이제 그는 공개적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이어 기드온은 므낫세 지파 온 땅에 사람들을 보내 소식을 전하고,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도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 지파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6:15에서 기드온은 자기 집안이 므낫세 지파에서 가장 약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6:35에서는 므낫세 지파 온 땅의 사람들이 그의 부름에 응합니다. 기드온의 사회적 위치가 처음부터 강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영의 일하심 속에서 그가 사람들을 이끄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아직 그가 충분히 확신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 주어는 「여호와야훼의 영」이고, 동사 라바쉬(⁨לָבַשׁ⁩)는 「입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의 문장 구조를 그대로 살리면 기드온이 하나님의 영을 입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기드온을 입으신 것입니다. 옷을 입는 사람이 옷을 사용하듯, 하나님의 영이 기드온을 자신의 활동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사용하신다는 이미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비유를 지나치게 밀고 나가 기드온의 의지가 사라졌다거나, 그가 더 이상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기드온은 뒤에서도 질문하고 확인을 요구합니다.

양털은 젖고 땅은 마르게 — 기드온은 무엇을 확인하려 했는가

사사기 6:36–40 본문 →

기드온은 하나님께 다시 말합니다.

이번에는 양털 뭉치를 곡식 알갱이를 털어 내는 마당에 놓고, 자신이 정한 조건대로 이슬이 내리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이 장면은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표징을 구하는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뜻을 몰랐는가

기드온은 이미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습니다.

6:14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아귀에서 구해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6:16에서는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6:21에서는 불이 바위에서 솟아오르는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하시려 한다면,」사사기 6:36 · 두루새김

그는 새로운 명령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약속이 이루어질지 확인하려 합니다. 양털 시험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장면이 아니라, 이미 말씀을 받은 사람이 그 약속이 정말 이루어질지 확인하려는 장면입니다.

왜 양털과 이슬인가

기드온은 깎은 양털 뭉치를 곡식 알갱이를 털어 내는 마당에 놓겠다고 말합니다. 그는 양털 뭉치에만 이슬이 내리고 땅은 온통 말라 있으면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하실 줄 알겠다고 합니다.

그다음 날 실제로 그렇게 됩니다.

기드온은 양털 뭉치를 눌러 짜서 대접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물을 얻습니다.

첫 번째 표징이 이루어졌는데 왜 다시 요구하는가

기드온은 하나님께 한 번 더 요청합니다.

기드온이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제게 화내지 마십시오. 이번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양털 뭉치로 딱 한 번만 더 시험하게 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양털 뭉치만 말라 있고 땅에는 온통 이슬이 내리게 해 주십시오.」사사기 6:39 · 두루새김

다시 확인을 요구하는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을 화나게 할 수 있음을 의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기드온이 첫 번째 표징만으로 만족하지 않았고, 더욱 분명한 확인을 원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 표징은 첫 번째와 무엇이 다른가

이번에는 조건을 거꾸로 합니다.

첫 번째에서는 양털이 젖고 땅이 말랐습니다. 두 번째에서는 양털이 마르고 땅이 젖었습니다. 기드온은 같은 재료를 사용하면서 정반대의 결과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요구에 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 밤 그렇게 하셨습니다. 양털 뭉치만 말라 있었고 땅에는 온통 이슬이 내려 있었습니다.사사기 6:40 · 두루새김

하나님은 기드온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그의 요청을 특별히 칭찬하지도 않으십니다.

이 장면은 기드온이 반복해서 확인을 요청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 자신이 정한 기적의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지침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 장면의 초점은 표징을 통해 여러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르는 방법이 아니라, 분명한 약속을 받고도 두려워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하고 계시는가에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사사기 2:22와 3:4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자신의 명령에 순종하는지를 시험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기드온이 하나님을 시험하겠다고 말합니다. 이 대조는 기드온의 요청을 단순히 훌륭한 신앙의 본보기로만 읽기 어렵게 합니다. 양털이 이슬을 머금는 성질을 가졌다는 점에서, 첫 번째 표징은 자연적인 현상으로도 설명할 여지가 일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양털과 주변 땅의 상태를 특별히 구별하고 있으며, 한 대접의 물을 짤 정도로 이슬이 내렸다고 기록합니다. 따라서 첫 번째 사건 전체를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확정할 근거도 없습니다. 양털이 원래 물을 잘 머금기 때문에 첫 번째 일이 일어났을 뿐이라고 생각할 여지를 없애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기드온의 속마음을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가능한 해석입니다.

양털 뭉치 위에 내린 이슬

사사기 6:1–40 본문 →

사사기 6장은 아직 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은 채 끝납니다.

기드온의 확신이 먼저 완성된 뒤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가운데 기드온이 점차 그 부르심에 참여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겪는 그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구원의 시작은 예상과 달리 기드온의 아버지 집안에 있는 바알 제단에서 이루어집니다.

처음에 그는 포도즙을 짜는 틀 안에 숨어서 밀 이삭을 두드려 알갱이를 털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곡식 알갱이를 털어 내는 마당에 양털을 놓고 이슬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두 장면 모두 곡식을 다루는 장소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미디안에게 빼앗기지 않을 곡식을 지키는 것이 그의 관심이었습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정말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하실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그의 관심입니다.

그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아직 완전한 확신에 이르지 못했지만, 기드온은 더 이상 미디안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께 묻고 그분의 응답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도 하나님은 기드온의 요구대로 행하셨습니다.

양털 뭉치만 말라 있었습니다. 그 주위의 땅에는 온통 이슬이 내려 있었습니다. 미디안의 군대는 여전히 골짜기에 있었고, 전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한때 미디안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밀을 숨기던 사람 앞에,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마른 양털 뭉치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