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7장
이 장의 자리 · 3–12장 · 일어서는 재판관들
하나님은 왜 군대를 돌려보내시는가
기드온은 마침내 군대를 모았습니다. 미디안의 억압에서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여러 지파에서 사람들이 찾아왔고, 그들은 적군이 진을 친 골짜기를 바라보며 전투를 준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기드온이 모은 병력은 삼만 이천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이만 이천 명을 돌려보내시고, 남은 만 명도 다시 줄여 삼백 명만 남기십니다.
사사기 7장은 누가 적을 이겼는가만 묻지 않습니다. 승리한 뒤 누가 그 승리를 자기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우리 힘으로 우리를 구했다」 — 하나님이 경계하신 승리
여룹바알, 곧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군사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습니다. 미디안 진영은 그들의 북쪽, 모레 언덕 쪽 골짜기에 있었습니다.사사기 7:1 · 두루새김
이 이름은 앞 장에서 기드온이 아버지의 바알 제단을 허문 뒤 얻게 된 이름입니다. 바알이 신이라면 스스로 기드온과 다투게 하라는 요아스의 말에서 비롯되었습니다(6:31–32).
바알의 제단을 허물었던 기드온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구하시겠다는 약속을 따라 전쟁터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샘이 있는 산기슭 쪽에 있고, 미디안은 아래쪽 골짜기에 있습니다. 나중에 기드온이 적진으로 「내려가라」는 말씀을 따라 내려가는 행동이 반복되는 것도 이러한 지형과 연결됩니다.
히브리어 지명 하롯은 ‘떨다’, ‘두려워하다’와 관련된 어근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하나님은 두려워하며 떠는 사람들을 돌려보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제 군사들이 듣도록 이렇게 외쳐라. 『두려워 떠는 사람은 돌아가라. 길르앗 산지를 떠나라.』」 그러자 군사들 가운데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사사기 7:3 · 두루새김
여기서 「떠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레드(חָרֵד)는 하롯이라는 지명과 같은 자음 어근을 가집니다. 전쟁을 앞두고 진을 친 장소의 이름과, 군대에서 떠나도 되는 사람들을 설명하는 말이 서로 울림을 이루는 것입니다.
왜 군대가 너무 많으면 안 되는가
여호와야훼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함께 있는 군사가 너무 많아서 미디안을 그들의 손에 넘길 수 없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우리 힘으로 우리를 구했다』라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사사기 7:2 · 두루새김
「우리 힘으로 우리를 구했다」는 표현은 승리의 주체와 구원의 대상이 모두 자신들이 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힘을 바라보게 될 수 있습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풍요롭게 되었을 때 자기 능력과 손의 힘으로 재물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경고합니다. 사사기 7장에서는 같은 문제가 전쟁의 승리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승리할 가능성을 가장 크게 보이게 하는 군대를 원하신 것이 아니라, 승리의 근원을 잘못 이해하지 않을 백성을 원하셨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돌려보내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돌려보내라고 하십니다.
이 명령은 신명기 20:8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도 전쟁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의 두려움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약해지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 사람들이 모두 신앙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거나, 두려워하지 않은 만 명이 특별히 믿음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도록 허락하셨고, 그들이 돌아갔다는 사실을 기록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군사들을 돌려보내시지만, 기드온에게는 두려우면 곁에서 자신을 섬기는 사람을 데리고 적진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십니다(7:10). 같은 두려움 앞에서도 사람들을 대하시는 방식이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돌아가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구원자로 부르신 기드온에게는 두려움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7:3의 「길르앗 산지」는 지리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전투의 배경은 요단강 서쪽 하롯 샘 부근인데, 길르앗은 일반적으로 요단강 동쪽의 산지를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지명이나 원문이 전해지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이 구절만으로 정확한 이유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물을 어떻게 마시는가 — 삼백 명은 정말 특별한 전사들이었는가
만 명이 남았습니다.
일반적인 군사적 판단으로는 이미 상당한 병력을 잃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군사가 많다. 그들을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시험하여 너와 함께 갈 사람을 가려내겠다. 내가 너에게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갈 것이다』라고 하는 사람은 너와 함께 가고,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 가지 못하게 하여라.」사사기 7:4 · 두루새김
이번에는 기드온이 군사들에게 질문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물가로 데려가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식으로 구별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손으로 물을 떠서 입에 대고 핥아 마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마십니다. 그리고 손으로 물을 떠서 입에 대고 핥아 마신 사람은 삼백 명이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물을 핥아 마신 삼백 명으로 내가 너희를 구하겠다. 미디안을 네 손에 넘기겠다. 나머지 군사들은 모두 각자 집으로 돌아가게 하여라.」사사기 7:7 · 두루새김
이 장면은 종종 군사의 경계심을 시험하는 이야기로 설명됩니다. 손으로 물을 떠서 마신 사람들은 주변을 살필 수 있었기 때문에 뛰어난 전사들이었고, 무릎을 꿇은 사람들은 경계심이 부족했다는 해석입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본문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
7:5–6의 히브리어는 물을 혀로 핥는 행동과 손으로 물을 입에 가져가는 행동을 함께 묘사합니다. 구체적인 몸의 자세를 완전히 재구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앞서 두려워하던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장면에는 두려움이라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물가의 시험에서는 두 방식 가운데 왜 하나를 선택하셨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삼백 명이 특별히 훌륭한 전사들이었기 때문에 뽑혔다고 단정하는 것은 본문을 넘어서는 해석입니다.
이렇게 병력을 줄이시는 장면에서는 삼백 명이 어떤 특별한 능력을 갖추었는가보다, 그처럼 적은 사람으로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삼백 명이 남았을 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7:8은 미디안 진영이 기드온이 있는 곳보다 아래쪽 골짜기에 있었다고 다시 말합니다. 처음에도 미디안은 골짜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지형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삼만 이천 명이 적군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삼백 명뿐입니다. 적군의 위치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미디안의 수가 줄었다는 설명도 없습니다.
변한 것은 이스라엘의 병력입니다.
더욱이 7:12는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쪽 사람들이 메뚜기 떼처럼 수없이 깔려 있고, 낙타가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았다고 다시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은 계속 줄어드는데 적군은 여전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기드온에게 처음부터 충분한 확신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치러 내려가기가 두렵다면」 — 적진에서 들려온 하나님의 격려
그날 밤 여호와야훼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적의 진영을 치러 내려가라. 내가 그 진영을 네 손에 넘겼다.」사사기 7:9 · 두루새김
하나님은 승리를 이미 이루어진 일처럼 선언하십니다.
그런데 곧이어 덧붙이십니다.
「치러 내려가기가 두렵다면 너를 곁에서 섬기는 부라를 데리고 진영으로 내려가라.」사사기 7:10 · 두루새김
기드온은 이미 하나님께 여러 차례 확인할 표를 요청했던 사람입니다. 앞 장에서는 불이 바위에서 올라오는 사건을 보았고, 양털과 이슬을 통해 두 번의 확인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드온이 확인할 표를 먼저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에게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왜 하필 적진으로 내려가야 하는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 보아라. 그러면 용기를 얻어 그 진영을 치러 내려갈 것이다.」 기드온은 자기를 섬기는 부라와 함께 무장한 군사들이 있는 진영 가장자리로 내려갔습니다.사사기 7:11 · 두루새김
기드온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전투 정보보다 마음을 굳게 할 근거입니다.
원문에서는 기드온의 손(יָד)에 힘이 생긴다고 표현합니다. 두루새김은 그 뜻을 「용기를 얻어」로 옮겼습니다. 앞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우리 힘으로 우리를 구했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문에서는 이 자랑도 자신을 구한 「손」으로 표현합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힘을 구원의 근원으로 삼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는 것은 그가 맡겨진 일을 하는 데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힘을 없애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바로 알게 하십니다.
부라는 꿈을 풀어 주지도 않고, 전투를 지휘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이 혼자 내려가는 대신 부라와 함께 내려갈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적진의 가장자리에 도착했을 때, 기드온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듣습니다.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간 보리빵
기드온이 도착했을 때, 마침 한 군사가 동료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꿈을 꾸었어. 둥근 보리빵 한 덩이가 미디안 진영 안에서 굴러가다가 천막을 들이받았어. 천막이 쓰러지고 위아래가 뒤집혀 무너졌어.」사사기 7:13 · 두루새김
하나님은 앞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기드온은 바로 그 말을 듣습니다.
왜 보리빵인가
미디안은 이스라엘이 농사를 지을 때마다 올라와 그 땅에서 거둔 곡식을 망가뜨렸습니다. 기드온은 미디안에게 곡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포도즙 짜는 틀에서 밀을 떨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이 생산한 곡식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적군의 꿈속에서는 곡식으로 만든 빵 한 덩이가 미디안의 천막을 무너뜨립니다.
천막을 뒤엎은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미디안 사람들은 앞 장에서 낙타와 천막을 가지고 메뚜기처럼 몰려든 집단으로 묘사되었습니다(6:5). 천막은 그들의 생활과 군사적 진영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약탈당하던 농경 사회의 음식이, 약탈자들의 거처를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꿈의 뜻을 누가 설명하는가
그 동료가 대답했습니다. 「그건 틀림없이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야. 하나님께서 미디안과 온 진영을 기드온의 손에 넘기셨어.」사사기 7:14 · 두루새김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직접 꿈의 뜻을 알려 주셨다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적진에서 들을 말을 통해 힘을 얻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실제로 그 일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장면에서 기드온은 적의 말로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듣습니다.
하나님은 7:9에서 진영을 그의 손에 넘기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디안 사람의 입에서도 같은 사실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적의 무기를 보여주시기보다, 적의 두려움을 듣게 하십니다.
기드온은 그 꿈 이야기와 풀이를 듣고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말했습니다. 「일어나라! 여호와야훼께서 미디안 진영을 너희 손에 넘기셨다.」사사기 7:15 · 두루새김
앞 장에서 기드온은 자신이 정말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라고 명령합니다.
그에게 새로운 대규모 병력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삼백 명입니다. 적군의 수가 줄어든 것도 아닙니다.
달라진 것은 기드온이 들은 말과 그에 대한 응답입니다.
조금 더 깊이
보리는 밀보다 상대적으로 거친 곡식으로 여겨졌으며,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중요한 식량이었습니다. 밀에 비해 경제적으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의 음식이라는 이미지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리빵이 적군의 거대한 진영을 뒤엎는 장면은 작고 평범한 것이 강력한 군사 세력을 무너뜨린다는 역설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이 보리빵을 분명하게 가난한 이스라엘의 상징이라고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보리와 가난을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해석은 가능한 문학적 읽기이지 확정된 의미는 아닙니다. 기드온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향해 절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맥에서 이 행동은 하나님의 약속이 확인된 데 대한 경외와 예배의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칼 대신 뿔나팔과 항아리 — 삼백 명의 전투
기드온은 삼백 명을 세 부대로 나눕니다.
기드온은 삼백 명을 세 부대로 나누었습니다. 군사들 모두에게 뿔나팔과 빈 항아리를 주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넣어 주었습니다.사사기 7:16 · 두루새김
그는 군사들에게 자신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세 부대를 적진의 둘레에 배치합니다.
이 계획에는 소리와 빛이라는 두 요소가 중요하게 사용됩니다.
뿔나팔은 군대의 움직임을 알리거나 사람들을 모으는 신호로 쓰일 수 있습니다. 항아리는 횃불을 가리는 역할을 합니다. 항아리를 깨뜨리면 횃불의 빛이 갑자기 드러납니다.
따라서 밤중에 여러 방향에서 뿔나팔 소리와 함께 횃불이 나타나면, 적군은 큰 군대에 둘러싸였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미디안 진영의 혼란을 이해할 수 있지만, 본문은 적군이 정확히 어떤 판단을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왜 보초가 바뀌는 순간인가
밤의 중간 보초 시간이 시작될 무렵,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백 명이 진영 가장자리에 이르렀습니다. 미디안 진영에서는 막 보초들이 교대한 참이었습니다. 기드온 일행은 뿔나팔을 불고 손에 든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사사기 7:19 · 두루새김
이 시간은 진영의 일부가 잠들어 있고, 일부는 새로 경계를 맡는 때였을 수 있습니다. 본문은 보초 교대가 적군의 혼란을 직접 일으킨 원인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부 사항을 기록한 것은 공격이 이루어진 시점이 중요했음을 보여줍니다.
세 부대가 모두 뿔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군사들은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는 불기 위한 뿔나팔을 든 채 외쳤습니다. 「여호와야훼와 기드온을 위한 칼이다!」사사기 7:20 · 두루새김
구호에는 칼이 있지만 손에는 칼이 없다
7:18에서 기드온이 지시한 구호는 「여호와야훼와 기드온을 위하여!」였습니다. 그러나 7:20에서 실제로 외치는 구호에는 「칼」이라는 말이 덧붙습니다. 본문은 이 차이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미디안 군사의 동료는 천막을 무너뜨린 보리빵을 「기드온의 칼」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전투에서도 기드온의 삼백 명은 먼저 칼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구호 속에서 칼을 선포하지만, 이어지는 본문에서 그 칼을 실제로 휘두르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입니다.
이 대조가 다음 장면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왜 구호에 기드온의 이름이 들어가는가
하나님은 인간이 승리의 영예를 자기 것으로 삼는 일을 경계하셨습니다. 반면 전투 구호에는 기드온의 이름이 실제로 들어갑니다.
조금 더 깊이
이것은 기드온이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구원자로 세웠다는 뜻입니까?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고대의 전투 구호에서는 신의 이름과 군대를 이끄는 지도자의 이름이 함께 언급될 수 있습니다. 이 구호 역시 전투의 주체로 하나님과 그분이 세우신 지도자를 함께 부르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 구호를 직접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기드온과 이스라엘이 승리의 영예를 어떻게 다루는지 계속 살펴보게 하는 요소가 됩니다.
삼백 명은 서 있고 미디안은 서로를 죽이다
기드온의 군사들은 진영 둘레에서 저마다 제자리를 지켰습니다. 적의 진영에 있던 군사들은 모두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달아났습니다.사사기 7:21 · 두루새김
보통 전투의 승리는 공격하는 군대가 적군을 향해 나아가고 무기를 휘두르는 과정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기드온의 군대가 제자리를 지키는 동안 적군이 소리를 지르며 달아납니다.
삼백 명이 뿔나팔을 불자, 여호와야훼께서는 적의 진영 곳곳에서 군사들이 자기 동료에게 칼을 휘두르게 하셨습니다. 적의 군사들은 츠레라 쪽 벳 싯타까지, 타밧 곁에 있는 아벨 므홀라의 끝자락까지 달아났습니다.사사기 7:22 · 두루새김
이제 「칼」이라는 구호가 어떤 방식으로 현실이 되었는지 드러납니다.
기드온의 군대가 삼백 자루의 칼로 적군을 무찌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적진에 혼란을 일으키셔서 적들이 서로를 공격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전투에 참여했지만, 자신들이 전투의 승리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방식으로 구원하셨는가
이스라엘이 미디안에게 억압당한 것은 단지 군사력이 부족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사기 6장에서 하나님은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섬겨야 했지만, 다른 신들을 두려워하고 섬겼습니다.
그러한 백성에게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승리만을 주신다면, 그들은 다시 자기 힘을 신뢰하는 쪽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이 승리하는 방법까지 다루십니다.
이 장에서 군대를 줄이는 일은 승리에 딸린 준비 과정이 아니라, 구원이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과정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군대를 줄였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적진으로 내려가 말을 들었습니다. 삼백 명을 세 부대로 나누고 전투를 준비했습니다.
군사들은 명령에 따라 진영 둘레에서 제자리를 지키며 뿔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그 후에는 적군을 뒤쫓는 전투가 이어집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다는 사실이 인간의 행동을 지우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행동이 승리의 근원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삼백 명에서 다시 여러 지파로 — 승리는 어떻게 이어지는가
미디안 군대가 달아나기 시작하자 전투의 모습이 바뀝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기드온의 군대를 삼백 명으로 줄이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 지파의 사람들이 다시 부름을 받고 모입니다.
적군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삼백 명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달아나는 적을 뒤쫓는 과정에서는 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참여합니다.
그들의 역할과 참여 시점이 달랐던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왜 뒤늦게 소집되는가
기드온은 에브라임 산지 곳곳에도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들에게 미디안보다 먼저 물길들과 요단강의 길목을 차지하라고 요청합니다.
이는 달아나는 적군의 이동을 제한하기 위한 작전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너 자신들의 지역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강을 건널 수 있는 장소를 통제하는 것은 중요한 전략이 됩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그 요청에 응합니다. 그들은 물길들과 요단강의 길목을 차지하고, 미디안의 두 우두머리를 붙잡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을 통해 결정적인 일을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완성되는 과정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역할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장을 모든 시대의 조직 운영이나 전쟁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전략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직접 병력을 줄이라고 명령하셨다는 특별한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렙과 즈엡의 죽음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의 두 우두머리 오렙과 즈엡을 붙잡았습니다.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즈엡은 즈엡 포도즙 짜는 틀에서 죽였습니다. 그들은 미디안을 뒤쫓으며, 오렙과 즈엡의 머리를 요단강 건너편에서 기드온에게 가져왔습니다.사사기 7:25 · 두루새김
기드온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포도즙 짜는 틀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미디안에게 밀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기드온이 숨어서 일하던 장소였습니다(6:11).
그런데 이번에는 미디안의 우두머리가 포도즙 짜는 틀에서 죽습니다.
두 장소가 정확히 같은 곳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서로 다른 포도즙 짜는 틀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처음과 끝에 같은 종류의 장소가 등장한다는 사실은 의미 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힘의 관계가 뒤집힌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장면은 승리의 기쁨만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고대 전쟁의 잔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본문은 적군의 지도자들이 제거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하지만, 이러한 행위를 오늘날 따라야 할 윤리적 모범으로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7장의 마지막은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다음 장에서도 뒤쫓는 일은 계속됩니다.
조금 더 깊이
오렙과 즈엡은 미디안의 우두머리들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각각 까마귀와 늑대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이름과 연결됩니다. 그들의 이름은 죽임당한 장소와 연결되어 기록됩니다.
삼백 개의 뿔나팔이 울리는 밤
기드온과 삼백 명은 자신들의 손으로 승리를 차지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승리 안에서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을 했습니다. 전투의 승리가 나타난 순간, 그들은 자기 힘을 자랑할 이유를 잃습니다. 승리의 근원은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삼백 개의 뿔나팔이 계속 울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들은 제자리를 지킵니다. 횃불은 타오르고, 적군은 자기들끼리 칼을 휘두르며 달아납니다.
삼백 명의 손에는 뿔나팔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밤의 전투를 결정한 것은 그들의 손이 아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