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8장
이 장의 자리 · 3–12장 · 일어서는 재판관들
왕위를 거절하고 왕처럼 산 기드온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기드온은 왕위를 거절했지만, 그의 삶은 왕의 모습을 닮아 갔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왕위를 거절한 것은 진심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이야기가 더 복잡합니다. 이 장의 기드온은 실제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고백하고, 적을 끝까지 뒤쫓으며,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받던 억압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동시에 자기 백성에게 잔혹한 보복을 가하고, 자신의 집안을 위험에 빠뜨릴 종교적 중심지를 만듭니다.
사사기 8장은 구원자가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이면서, 하나님께 받은 승리를 사람이 자기 권력과 영광으로 바꾸어 갈 때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묻는 이야기입니다.
포도를 주워 모은 사람들과 포도를 수확한 사람들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이스라엘 내부에는 다툼이 일어납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거세게 따집니다. 왜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앞서 미디안 군대의 퇴로를 막도록 에브라임 사람들을 불렀습니다(7:24). 그들은 그 전투에서 미디안의 우두머리 오렙과 즈엡을 붙잡았습니다(7:25). 따라서 그들의 항의는 전쟁에 전혀 참여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중요한 전투의 시작부터 자신들을 참여시키지 않았다는 불만입니다.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의 힘 있는 지파였고, 기드온이 속한 아비에셀은 므낫세 지파 안의 한 집안이었습니다(6:15, 34). 여기에는 단순한 전투 참여 문제를 넘어 지파 사이의 명예와 영향력에 대한 경쟁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드온은 이들의 분노를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습니다. 대신 포도 수확에 관한 뜻밖의 비유를 꺼냅니다.
기드온이 대답했습니다. 「제가 한 일이 여러분이 한 일에 비하면 무엇이겠습니까? 에브라임이 수확 뒤에 주운 포도가 아비에셀이 거둔 포도보다 낫지 않습니까?」사사기 8:2 · 두루새김
포도를 수확한 뒤에 남은 것을 주워 모으는 일은 본격적인 수확보다 작은 일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에브라임이 나중에 거둔 성과가 자신들의 주된 수확보다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디안의 두 우두머리 오렙과 즈엡을 여러분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여러분만큼 큰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기드온이 이렇게 말하자 그를 향한 사람들의 화가 가라앉았습니다.사사기 8:3 · 두루새김
기드온은 에브라임의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그 승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고 밝힙니다. 누가 더 위대한가를 다투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누구에게 승리를 주셨는가로 대화의 방향을 바꾼 것입니다.
이 장의 시작에서 기드온은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존중하고, 갈등을 누그러뜨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지도자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불과 몇 절 뒤, 같은 기드온이 자기 동족에게 가시덤불로 살을 마구 짓이기겠다고 위협합니다.
에브라임 앞에서는 자기 공로를 낮추었던 사람이, 숙곳 앞에서는 자기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벌합니다.
빵을 구하는 지친 삼백 명
기드온과 삼백 명의 병사는 요단강을 건넙니다.
미디안의 진영을 무너뜨린 것으로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디안의 왕 제바흐와 찰문나가 아직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남은 군대를 뒤쫓아 그들이 다시 세력을 모을 가능성을 막으려 합니다.
그의 부하들은 지쳐 있습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무기나 더 많은 병사가 아니라 빵입니다.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저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빵을 좀 주세요. 이 사람들이 지쳤어요. 저는 미디안의 두 왕 제바흐와 찰문나를 뒤쫓고 있어요.」사사기 8:5 · 두루새김
숙곳은 요단강 동쪽에 있는 이스라엘의 성으로, 갓 지파에게 주어진 지역에 속합니다(여호수아 13:27). 기드온은 적국의 주민이 아니라 자기 백성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숙곳의 우두머리들은 거절합니다.
숙곳의 우두머리들이 대답했습니다. 「네가 제바흐와 찰문나를 벌써 붙잡기라도 했어? 우리가 왜 네 군대에 빵을 줘야 하지?」사사기 8:6 · 두루새김
미디안 왕들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기드온을 지원했다가 전세가 뒤집히면 보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우려가 거절의 배경이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본문이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은 기드온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비웃는 대답입니다.
기드온이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야훼께서 제바흐와 찰문나를 제 손에 넘기실 때, 광야의 가시와 가시덤불로 여러분의 살을 마구 짓이기겠어요.」사사기 8:7 · 두루새김
그는 승리가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여전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고백이 동족을 향한 보복의 선언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미디안 왕들을 넘기실 것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숙곳 사람들을 가시덤불로 벌하라고 명령하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실 승리에 대한 확신과 그 승리를 근거로 사람이 내리는 모든 판단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브누엘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곳 사람들 역시 빵을 주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무사히 돌아오면 그들의 탑을 무너뜨리겠다고 선언합니다.
탑은 성을 지키는 시설이자 안전의 상징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탑을 무너뜨린다는 말은 단순한 모욕을 넘어 성을 지킬 능력을 훼손하겠다는 위협입니다.
두 성의 거절은 분명 비난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같은 백성의 전쟁을 지원하지 않았고, 지친 병사들의 절박함을 외면했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나타나는 기드온의 처벌이 그 잘못에 비례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사사기는 양쪽의 행동을 모두 기록하면서 어느 한쪽의 잘못이 다른 한쪽의 폭력을 자동으로 정당화하지 않도록 독자를 긴장 속에 놓아둡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는 미디안 왕들의 「손」이 이미 기드온의 「손」에 들어왔느냐고 묻습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네가 제바흐와 찰문나를 벌써 붙잡기라도 했어?」로 옮겼습니다. 고대 전쟁 이야기에서 누군가를 다른 사람의 손에 넘긴다는 말은 그를 상대방의 지배 아래 두는 것을 뜻합니다. 원문에서는 기드온도 같은 「손」이라는 표현으로 대답합니다.
미디안 왕들을 붙잡은 뒤, 칼끝이 향한 곳
미디안 왕들은 카르코르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들 곁에는 약 만 오천 명의 군대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미 십이만 명의 군사가 죽은 뒤였습니다(8:10).
기드온은 천막에 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다가가 안심하고 있던 진영을 공격합니다. 왕들은 달아나지만 결국 붙잡힙니다.
그가 적의 왕들을 붙잡은 뒤 처음으로 하는 일은 숙곳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젊은이 하나를 붙잡아 숙곳의 우두머리와 원로 일흔일곱 명의 이름을 알아냅니다. 그 젊은이는 그 이름들을 적어 줍니다(8:14). 정확히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그런 다음 기드온은 붙잡힌 두 왕을 보여 주며 자신을 조롱했던 말을 되돌려 줍니다.
이어지는 처벌은 가혹합니다.
기드온은 그 성의 원로들을 붙잡고 광야의 가시와 가시덤불을 가져왔습니다. 그는 그것으로 숙곳 사람들을 벌주었습니다.사사기 8:16 · 두루새김
다만 본문은 이 처벌로 숙곳 사람들이 죽었다고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브누엘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또 브누엘의 탑을 무너뜨리고 그 성 사람들을 죽였습니다.사사기 8:17 · 두루새김
처음에 기드온은 삼백 명의 생존을 위해 빵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승리한 뒤에는 자신에게 빵을 주지 않았던 사람들을 벌하는 데 힘을 사용합니다.
앞에서 기드온이 에브라임을 달래는 데 사용했던 것은 포도 수확의 이미지였습니다. 이번에는 사람의 살을 마구 짓이기겠다는 말이 등장합니다. 원문에서는 이 위협에 곡식을 타작하는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농부가 포도를 거두고 곡식을 타작하듯, 기드온은 자신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의 몸을 다룹니다.
지친 병사들을 먹일 빵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동족의 살을 짓이기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전쟁이 끝나 가는 동안 기드온의 힘은 오히려 이스라엘 내부에서 두려운 것이 되어 갑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두루새김이 「벌주었습니다」로 옮긴 히브리어 동사는 「알게 하다」 또는 「가르치다」라는 뜻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실제 문맥에서는 가시와 가시덤불을 사용한 폭력적인 처벌입니다. 이것을 이스라엘 공동체의 책임을 지키기 위한 처벌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전쟁 중 동족을 외면한 행위가 공동체 전체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해석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기드온이 정당한 재판 절차를 거쳤다는 기록도 없고, 그에게 이런 처벌을 명령한 하나님의 말씀도 없습니다. 특히 브누엘 사람들을 죽인 행위는 독자에게 심각한 질문을 남깁니다.
왕들을 죽인 이유가 뒤늦게 밝혀지다
기드온은 이제 제바흐와 찰문나를 심문합니다.
기드온이 제바흐와 찰문나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타보르에서 죽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느냐?」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두 왕의 아들 같은 모습이었습니다.」사사기 8:18 · 두루새김
이것은 독자에게 새로운 사실입니다. 앞선 전쟁 이야기에서는 타보르에서 기드온의 가족이 죽었다는 소식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이 말했습니다. 「그들은 내 형제들이다. 나와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살아 계신 여호와야훼를 두고 맹세한다. 너희가 그들을 살려 두었더라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사사기 8:19 · 두루새김
여기에서 미디안 왕들을 끝까지 뒤쫓은 기드온의 행동에 또 하나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억압한 왕들을 없애려 했을 뿐 아니라, 자기 형제들을 죽인 자들을 직접 처단하려 했습니다. 공동체를 위한 전쟁과 가족의 원수를 갚으려는 마음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었을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맏아들 예테르에게 두 왕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예테르는 두려워서 칼을 뽑지 못합니다. 아직 소년이었기 때문입니다.
제바흐와 찰문나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직접 일어나 우리를 죽이십시오. 사람마다 그에 걸맞은 힘이 있는 법입니다.」 기드온은 일어나 제바흐와 찰문나를 죽이고, 그들의 낙타 목에 달린 초승달 모양의 장식들을 떼어 가졌습니다.사사기 8:21 · 두루새김
기드온의 싸움에는 이미 다음 세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장 후반부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의 아들과 손자까지 자신들을 다스려 달라고 요청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들이 아버지의 승리와 권력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는 곧 다시 등장할 문제가 됩니다.
전쟁의 마지막에 남은 것은 죽은 왕들과 그들에게서 가져온 장식품입니다. 이 장식품들은 뒤이어 등장하는 금과 자주색 옷, 에봇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 이스라엘에서 가족이 흘린 피에 대한 책임은 가볍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35:19에는 피의 복수자에 관한 규정이 나옵니다. 따라서 가족을 죽인 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 자체를 오늘날의 의미에서 개인적인 복수심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사사기 8장은 기드온이 미디안 왕들을 처단하는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어린 소년보다 어른 전사인 기드온에게 죽는 것을 원합니다. 이것은 전사의 명예와 관련된 요구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예테르에게 죽임을 당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불명예를 뜻했는지까지 본문이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왕위를 거절한 지도자에게 사람들이 금을 바치다
미디안 왕들이 죽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대를 이어 다스리는 일을 제안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에게서 구해 주셨으니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 당신의 아들과 손자도 대를 이어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사사기 8:22 · 두루새김
이들은 단순히 기드온이 살아 있는 동안 지도자가 되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과 손자에게까지 권력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의 군사적 승리를 오래 이어질 왕조의 기초로 삼으려는 제안입니다.
특히 앞 장에서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군대를 삼백 명으로 줄이신 이유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스스로를 구했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7:2). 그런데 이 장에서 이스라엘은 기드온에게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에게서 구해 주셨으니」 우리를 다스려 달라고 말합니다(8:22).
하나님이 막으려 하셨던 일이 승리 직후에 다시 나타난 것입니다.
그는 실제로 하나님께 부름받아 전쟁을 이끌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일으키신 구원의 지도자를 하나님 대신 지속적인 안전의 근원으로 삼으려는 데 있습니다.
기드온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겠습니다. 제 아들도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사사기 8:23 · 두루새김
이것은 이스라엘을 다스릴 권한이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있는지에 관한 선언입니다. 사사기의 세계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입니다. 인간 지도자는 백성을 구원할 수 있지만, 그 구원이 백성을 영원히 자기 소유로 삼을 권리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훗날 사무엘상 8:7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 요구를 자신에 대한 거절의 문제로 말씀하십니다. 두 본문은 역사적 상황이 같지는 않지만, 인간 왕권과 하나님의 다스림 사이의 관계를 묻는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왕위를 거절한 기드온이 곧바로 백성에게 한 가지 요청을 합니다.
기드온이 말을 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각자 전리품에서 금고리 하나씩을 제게 주십시오.」 적들은 이스마엘 사람들이어서 금고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사사기 8:24 · 두루새김
백성은 기꺼이 동의합니다. 그들은 겉옷을 펼쳐 놓고 각자의 금고리를 던져 넣습니다.
앞에서 숙곳 사람들은 기드온의 지친 병사들에게 빵을 주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승리가 확정된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드온에게 금을 기꺼이 내놓습니다. 빵을 거절한 집단과 금을 바친 집단은 다르지만, 두 장면은 패배할 가능성이 있는 지도자와 승리한 지도자를 사람들이 얼마나 다르게 대하는지 보여 줍니다.
금고리의 무게는 천칠백이라는 큰 규모에 이릅니다. 여기에 미디안 왕들의 자주색 옷과 여러 장식품, 낙타들의 목걸이는 포함되지 않습니다(8:26). 자주색 옷은 왕들의 신분과 위엄을 드러내는 물건입니다. 기드온은 왕위에 앉지는 않았지만, 패배한 왕들이 지녔던 부와 권력의 상징들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 금의 사용처는 더욱 뜻밖입니다.
기드온은 그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가 사는 성 오프라에 두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은 그곳에서 에봇을 섬기며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 에봇은 기드온과 그의 집안을 걸려들게 하는 덫이 되었습니다.사사기 8:27 · 두루새김
기드온이 처음 부름받았을 때 오프라는 바알 제단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위해 제단을 쌓았던 장소였습니다(6:25–26). 그런데 이제 같은 성이 이스라엘 전체가 잘못된 종교적 행위에 참여하는 장소가 됩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집에 있던 바알 제단을 무너뜨렸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자기 집안을 걸려들게 하는 덫이 되는 종교적 물건을 세웠습니다.
기드온은 바알의 제단을 무너뜨릴 수 있었지만, 자신의 승리를 중심으로 새로운 종교적 권위가 만들어지는 위험은 막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에봇은 구약에서 제사장과 관련된 물건입니다. 출애굽기 28:6–12에서는 제사장이 입는 에봇을 만들 때 금과 여러 색실을 사용하도록 명령합니다. 다른 본문에서는 에봇이 하나님의 뜻을 묻는 행위와도 관련됩니다(사무엘상 23:6–12). 그러나 기드온이 만든 에봇의 구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습니다. 제사장이 입는 옷과 같은 것이었는지, 별도로 종교 의식에 쓰는 물건이었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기드온이 그것을 만들면서 어떤 의도를 품었는지도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여기서 두루새김이 「에봇을 섬기며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로 풀어 옮긴 원문의 표현은 「음행하다」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에서 신의를 저버리는 행위를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마흔 해의 평온과 일흔 명의 아들
미디안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굴복했고 다시는 세력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기드온이 살던 때에 그 땅은 마흔 해 동안 평온했습니다.사사기 8:28 · 두루새김
기드온의 지도력은 실제로 이스라엘에 평온을 가져왔습니다. 사사기는 그가 이룬 구원의 결과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좋은 노년」을 누리다가 세상을 떠나 자기 아버지의 무덤에 묻힙니다(8:32).
그러나 평온과 신실함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에봇을 섬기며 하나님을 배신한 사건은 기드온이 죽은 뒤가 아니라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시작된 것으로 서술됩니다(8:27). 외부의 억압이 사라졌어도 백성의 예배에는 이미 문제가 생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기드온의 가정이 소개됩니다.
그에게는 많은 아내가 있었고, 일흔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많은 아내와 자녀를 둔 것은 부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왕들은 특히 혼인을 통해 집안의 영향력과 정치적 관계를 넓히곤 했습니다. 기드온이 실제로 왕위에 올랐다는 기록은 없지만, 그의 생활이 평범한 지파 지도자의 규모를 넘어 왕실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은 충분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 17:14–20은 이스라엘의 왕에게도 절제와 율법에 대한 복종을 요구합니다. 특히 왕이 아내를 많이 두거나 자신을 위해 재물을 지나치게 늘리는 일을 경계합니다. 이 기준에서 기드온의 집안을 돌아보면 그가 왕이라는 칭호를 거절한 것만으로 왕권의 모든 위험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세겜에 사는 기드온의 첩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기드온은 그 아들의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지었습니다.사사기 8:31 · 두루새김
아비멜렉은 일반적으로 「내 아버지는 왕이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을 곧바로 기드온이 자신을 왕이라고 선언한 증거로 삼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고대 사람들의 이름에서 「아버지」는 인간의 아버지만이 아니라 신을 가리킬 수도 있고, 아비멜렉이라는 이름 자체도 다른 성경 본문에 등장합니다(창세기 20:2; 26:1). 따라서 이름만으로 기드온의 정확한 의도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기드온은 자기 아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안에는 왕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을 가진 아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아들은 오프라가 아니라 세겜에 있는 여인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세겜이라는 장소와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은 다음 장에서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왕조는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왕조를 둘러싼 갈등이 싹틀 조건들은 이미 갖추어지고 있었습니다.
기억하지 않은 백성, 사랑을 베풀지 않은 백성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시 바알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배신했고,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았습니다.사사기 8:33 · 두루새김
바알브릿은 이름 그대로 「언약의 바알」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었는데, 이제 다른 신의 이름에 「언약」이라는 말을 붙여 그를 섬깁니다.
이 이름은 다음 장의 세겜 이야기와도 연결됩니다. 바알브릿의 신전은 아비멜렉이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 등장합니다(9:4). 기드온이 죽은 뒤 나타난, 하나님을 저버리는 일이 곧 정치적 혼란의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사사기 8장은 이렇게 하나님을 저버린 일을 두 가지 실패로 마무리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잊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방의 모든 원수에게서 자기들을 구해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잊었습니다.사사기 8:34 · 두루새김
여기서 「기억하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정보를 머릿속에 간직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누구의 은혜로 살아가는지를 인정하고, 그 관계에 걸맞게 응답하는 일을 포함합니다. 그들을 구원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더 이상 그들의 충성과 예배를 결정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드온의 집안을 잘 대해 주지 않은 것입니다.
여룹바알, 곧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그토록 좋은 일을 해 주었지만, 그들은 그에 걸맞게 그의 집안을 잘 대해 주지도 않았습니다.사사기 8:35 · 두루새김
여기서 두루새김이 「그에 걸맞게 그의 집안을 잘 대해 주지도 않았습니다」로 풀어 옮긴 자리에는 히브리어 헤세드(חֶסֶד)가 쓰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호감이나 친절에 그치지 않습니다. 관계 속에서 받은 은혜와 맺어진 책임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사랑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서술자는 기드온의 집안을 걸려들게 하는 덫이 된 에봇을 이미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스라엘에 행한 모든 좋은 일까지 지워 버리지는 않습니다. 35절은 기드온이 이스라엘에 「그토록 좋은 일」을 해 주었다고 인정합니다.
기드온의 잘못이 그가 행한 구원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으며, 그가 행한 구원이 그의 잘못을 정당화하지도 않습니다.
구원을 얻은 뒤에도 남는 질문
사사기의 관심은 결국 이스라엘이 누구의 다스림 아래 살아가는 백성인가에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힘을 절제해야 하는 까닭도, 지도자가 공동체를 자기 소유로 삼지 말아야 하는 까닭도, 구원을 베푸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라는 고백은 잘못된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고백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모든 행동이 그 고백에 일치하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사기 8장은 왕관을 쓰는 장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끝까지 왕이라는 칭호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프라에는 에봇이 남았습니다.
그 에봇 앞에서 이스라엘이 무엇을 잊었는지를 생각하면, 왕위를 거절하던 기드온의 말이 다시 들려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그 말은 옳았습니다. 문제는 그 말을 들은 백성과 그 말을 한 기드온이, 과연 누구를 중심으로 살아갔느냐는 데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