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3–12장 · 일어서는 재판관들

승리의 노래가 적장의 어머니에게서 멈추는 이유

사사기 5장은 승리의 노래입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자신들을 억눌렀던 가나안 군대를 물리쳤고, 드보라와 바락은 여호와야훼를 찬양합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뜻밖의 장소에서 오래 머뭅니다.

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 너머로 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왜 돌아오지 않는지 모릅니다. 전차가 늦어지는 이유를 묻자, 곁에 있던 여인들이 대답합니다. 아마 전쟁에서 얻은 여자 포로와 값비싼 옷감들을 나누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독자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시스라는 전리품을 나누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야엘의 천막에서 죽었습니다. 어머니가 기다리는 전차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왜 이스라엘의 승리를 찬양하는 노래가 패배한 적장의 어머니를 이토록 자세히 보여줍니까?

이 장은 단순히 전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다시 설명하지 않습니다. 누가 싸우러 나왔고 누가 머물렀는지, 전쟁이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무엇이 참된 영예이고 무엇이 헛된 기대인지를 노래합니다.

이 장은 앞 장과 같은 사건을 다루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봅니다. 4장이 전쟁의 진행과 인물들의 행동을 이야기했다면, 5장은 그 사건의 의미를 노래합니다. 따라서 두 장을 읽을 때는 세부 사항을 억지로 하나의 전투 기록으로 맞추기보다, 이야기와 노래가 각각 무엇을 강조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읽는 시간 25분소단락 85장 본문 읽기 →

왕들이여, 들으십시오 — 이 노래는 누구에게 들려주는가

사사기 5:1–5 본문 →

「왕들이여, 들으십시오. 다스리는 이들이여, 귀를 기울이십시오. 저는, 바로 저는 여호와야훼께 노래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노래로 찬양하겠습니다.」사사기 5:3 · 두루새김

노래는 처음부터 뜻밖의 청중을 부릅니다.

사사기 시대 이스라엘에는 아직 전국을 다스리는 왕이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드보라의 노래는 왕들을 향해 시작됩니다. 가나안에는 왕들이 있고 강력한 군대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러 지파로 이루어진 공동체였으며, 시스라의 철 전차 구백 대에 오랫동안 억눌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래가 시작되자 왕들이 들어야 할 메시지를 선포하는 쪽은 이스라엘입니다.

드보라는 승리의 영예를 먼저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 노래에서 드보라는 단순히 전투를 지켜본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이 경험한 사건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이스라엘과 다른 왕들 앞에 선포하는 목소리입니다.

사람들이 기꺼이 나섰을 때

「이스라엘에서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백성이 기꺼이 나섰으니, 여호와야훼를 찬양하십시오.」사사기 5:2 · 두루새김

여기서 「지도자들이 앞장서고」(⁨פָּרַע⁩)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어근 파라와 관련된 이 표현은 지도자들이 앞장서거나 전사들이 자유롭게 머리카락을 풀어 헤치는 모습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정확한 뜻을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드보라가 찬양하는 것은 강제로 끌려 나온 군대가 아니라, 스스로 전쟁에 참여한 백성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승리를 이루셨다는 사실과 사람들이 기꺼이 나섰다는 사실이 서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고 합니다.

이 노래에서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자발적인 참여를 지우지 않습니다. 그 참여를 통해 하나님의 일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노래는 곧 전쟁터를 떠나 훨씬 오래된 장소로 돌아갑니다.

세일에서 걸어 나오시는 하나님

「여호와야훼여, 주님께서 세일에서 나오실 때, 에돔 들판에서 걸어 나오실 때 땅이 흔들렸습니다. 하늘도 물을 떨어뜨리고 구름도 물을 떨어뜨렸습니다.」사사기 5:4 · 두루새김

세일과 에돔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를 지나던 역사와 연결되는 남쪽 지역입니다. 이어 5:5에는 시나이산이 등장합니다.

「산들이 여호와야훼 앞에서 흘러내렸습니다. 이 시나이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서 흘러내렸습니다.」사사기 5:5 · 두루새김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전쟁터에 처음 등장하신 분이 아닙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기 백성 가운데 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나이산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는 천둥과 번개와 연기와 진동이 함께했습니다(출애굽기 19:16–19). 신명기 33:2 역시 여호와야훼께서 시나이에서 오시며 세일에서 떠오셨다고 노래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실제로 어떤 길을 따라 이동하셨는지를 지도 위에 그려 보기 위한 설명이라기보다, 여호와야훼의 위엄과 그분이 나타나시는 모습을 노래하는 시적 묘사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5:4에서는 하늘과 구름이 물을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5:20–21에서는 하늘의 별들이 싸우고 키손 시내가 적군을 휩쓸어 갑니다.

이 연결을 통해 드보라는 키손 시내의 승리를 시나이에서 나타나셨던 하나님의 능력과 연결합니다.

길이 끊어지고 마을이 멈추다 — 전쟁이 빼앗아 간 일상

사사기 5:6–11 본문 →

드보라는 하나님의 위엄을 노래한 뒤 갑자기 평범한 사람들의 삶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아낫의 아들 삼갈의 시대에, 야엘의 시대에 큰길에는 발길이 끊겼습니다. 길을 가는 사람들은 구불구불한 샛길로 다녔습니다.」사사기 5:6 · 두루새김

여행이나 장사를 위해 이동하던 사람들, 마을과 마을을 오가던 사람들은 안전하게 다닐 수 없었습니다. 「삼갈의 시대」와 「야엘의 시대」라는 표현은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의 불안한 현실을 돌아봅니다.

「이스라엘에서 마을의 삶이 멈추었습니다. 멈추었습니다. 저 드보라가 일어나기까지, 제가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일어나기까지 그랬습니다.」사사기 5:7 · 두루새김

「마을의 삶」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프라존(⁨פְּרָזוֹן⁩)은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성벽이 없는 마을의 주민이나 농촌의 생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읽기에서는 지도자나 다스리는 질서와 연결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정확히 사회의 어떤 부분이 멈추었는지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앞 절의 큰길에 발길이 끊겼다는 기록과 함께 읽으면 큰 흐름은 분명해집니다.

이스라엘의 일상생활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사람이 마음 놓고 길을 다니고, 마을에서 생활하고, 물을 길으러 갈 수 있다는 것은 평화로운 시대에는 쉽게 잊어버리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이 불가능해졌을 때, 전쟁이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드보라의 노래에서 구원은 적군을 무너뜨리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길이 다시 열리고 마을의 삶이 회복되는 일을 포함합니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일어난 드보라

드보라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일어났다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어머니라는 호칭은 공동체를 보살피고 일으켜 세우는 역할과 연결됩니다.

이 표현은 사사기 4장에서 그가 이미 이스라엘을 재판하던 사람이었다는 사실과도 어울립니다. 그의 지도력은 단순히 전투를 지휘하는 힘에 있지 않았습니다. 공동체의 어려움을 판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도록 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는 또 다른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드보라는 무너진 공동체를 위해 일어난 어머니입니다.

시스라의 어머니는 전쟁에서 돌아올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입니다.

새 신들과 성문의 전쟁

「이스라엘이 새로운 신들을 택했습니다. 그때 성문에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스라엘 사만 명 가운데 방패 하나, 창 하나라도 보였습니까?」사사기 5:8 · 두루새김

「이스라엘이 새로운 신들을 택했습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문장은 주어가 분명하지 않아, 이스라엘이 새로운 신들을 선택했다고 읽을 수도 있고, 하나님이 어떤 새로운 일을 선택하셨다고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성문에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라는 표현에도 낱말의 뜻과 문장 구조를 두고 논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새로운 신들을 택했다는 읽기를 따른다면, 이 구절은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게 된 일과 전쟁의 고통을 연결합니다. 이는 사사기 2:11–15에서 설명한 이스라엘의 상태와도 잘 어울립니다. 다만 이 구절 자체가 모든 전쟁의 구체적인 원인을 세세히 분석하는 설명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만이라는 숫자를 실제로 모인 군인들의 정확한 총수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문장은 시적 질문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적군에 맞설 만한 무기와 군사력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현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기꺼이 나섰습니다.

「제 마음은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에게, 백성 가운데서 기꺼이 나선 이들에게 향합니다. 여호와야훼를 찬양하십시오.」사사기 5:9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 노래의 첫 문장이 되돌아옵니다. 이스라엘은 충분한 군사적 준비를 갖춘 상태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억눌려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행동합니다.

물 긷는 곳에서 다시 이야기가 들리다

「밝은 빛깔의 암나귀를 타는 이들이여, 깔개 위에 앉는 이들이여, 길을 걷는 이들이여, 이 일을 이야기하십시오.」사사기 5:10 · 두루새김

이들이 정확히 어떤 사회적 계층을 나타내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노래의 청중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5:11에서는 물을 긷는 곳이 등장합니다. 「활 쏘는 이들의 목소리」로 번역된 표현은 정확한 뜻에 논의가 있지만, 사람들이 여호와야훼께서 하신 의로운 일들을 거듭 이야기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전쟁의 승리를 기억하는 일은 왕궁이나 군사 진영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일상의 자리에서 사람들이 그 일을 이야기합니다.

누가 내려왔고 누가 머물렀는가 — 이스라엘 지파들의 서로 다른 응답

사사기 5:12–18 본문 →

「깨어나십시오, 깨어나십시오, 드보라여. 깨어나십시오, 깨어나십시오, 노래를 부르십시오. 일어나십시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포로들을 이끌고 가십시오.」사사기 5:12 · 두루새김

이제 노래는 다시 전쟁터를 향합니다.

「깨어나십시오」가 네 번 반복됩니다. 「일어나십시오」라는 명령이 이어집니다. 시의 리듬 자체가 사람들을 움직이도록 재촉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어머니로 일어났다는 선언과 연결됩니다. 공동체가 무너져 있을 때 드보라가 일어났고, 이제 바락에게도 일어나라고 말합니다.

「포로들을 이끌고 가십시오」라는 표현에는 역전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원수들이 패배하고 포로가 되는 처지에 놓입니다.

그런데 노래는 바락의 개인적인 전투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를 따라 내려온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스스로 내려온 사람들

5:13–15에는 에브라임과 베냐민, 마키르, 스불론, 잇사갈과 관련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마키르는 므낫세와 연결되는 가문 이름입니다(민수기 26:29). 따라서 여기서도 므낫세 계열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려오고, 어떤 사람들은 드보라와 함께하며, 어떤 사람들은 바락을 따라 골짜기로 향합니다. 다만 5:13–15의 히브리어에는 어떤 말이 어느 말을 꾸미는지, 누가 행동하는지 불분명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에브라임과 아말렉의 관계, 여러 지도자들의 위치를 상세하게 그려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사기 4장은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에서 만 명을 모았다고 기록합니다. 그런데 5장의 노래는 더 넓은 지파들의 참여를 기억합니다. 이 차이는 두 장이 승리의 사건을 다른 방식으로 전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노래는 지파들의 참여를 기억하며 영예를 나누어 줍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조가 바뀝니다.

르우벤은 왜 생각만 했는가

「잇사갈에 있는 제 지휘관들은 드보라와 함께했습니다. 잇사갈 사람들도 바락과 함께했고, 그의 뒤를 따라 골짜기로 보내졌습니다. 르우벤의 여러 집단은 마음속에 큰 결심을 품었습니다.」사사기 5:15 · 두루새김

처음에는 칭찬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르우벤이 진지하게 생각하고 결심했다는 뜻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드보라는 묻습니다.

「왜 가축을 기르는 두 우리 사이에 앉아 가축 떼를 부르는 휘파람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까? 르우벤의 여러 집단은 마음속으로 깊이 고민했습니다.」사사기 5:16 · 두루새김

르우벤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깊이 생각했지만, 정작 전쟁터로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두루새김이 「가축을 기르는 두 우리 사이」로 옮긴 히브리어는 정확한 뜻이 불확실합니다. 두 불자리를 가리키는 것으로도, 가축을 기르는 곳의 우리나 울타리 사이를 가리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 나선 사람들은 골짜기로 내려갔지만, 르우벤은 자기 생활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15절에서는 「마음속에 큰 결심을 품었습니다」라고 했고, 16절에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고민했습니다」라고 합니다. 히브리어에서도 이 두 표현은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면서 비슷한 문장 구조를 이룹니다.

처음에는 큰 결심을 품습니다.

다음에는 깊이 고민합니다.

하지만 행동은 없습니다.

이 반복은 르우벤의 생각이 얼마나 진지했는지를 칭찬하기보다, 그들이 생각에 머문 현실을 드러내는 풍자적인 표현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참여하지 않은 구체적인 이유를 노래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안 르우벤은 머물렀습니다.

요단강 건너편과 바닷가에 머문 사람들

「길르앗 사람들은 요단강 건너편에 머물렀습니다. 단은 왜 배들 곁에 머물렀습니까? 아셀 사람들은 바닷가에 남아 배를 대는 곳들 곁에 머물렀습니다.」사사기 5:17 · 두루새김

특히 단과 배의 관계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단 지파가 처음 물려받은 땅과 뒤에 이동한 지역의 역사까지 고려하면, 이 구절이 정확히 어느 시기의 어떤 집단을 가리키는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단이 어떤 바다 무역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거부했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추론의 영역입니다.

노래가 비판하는 것은 그들이 머물렀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려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머물렀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건 사람들

「스불론 사람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었습니다. 납달리 사람들도 들판의 높은 곳에서 그렇게 했습니다.」사사기 5:18 · 두루새김

이 대목에서 노래는 누가 가장 많은 적을 죽였는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누가 위험을 감수했는지를 기억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 노래의 판단을 모든 시대의 모든 전쟁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사사기 5장은 특정한 억압과 그로부터의 해방을 하나님의 구원으로 해석하는 노래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게 똑같이 전쟁에 참여할 의무가 주어졌는지조차 본문만으로 완전히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유다나 시므온처럼 이 노래에 언급되지 않는 지파들이 왜 등장하지 않는지도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름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비난받고 있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시가 분명하게 칭찬하는 것은 기꺼이 나서서 위험을 감수한 사람들이며, 분명하게 비판하는 것은 참여해야 할 상황에서 머물렀다고 지목된 사람들입니다.

별들이 싸우고 강물이 휩쓸다 — 누가 이 전쟁의 주인이었는가

사사기 5:19–23 본문 →

「왕들이 와서 싸웠습니다. 그때 가나안의 왕들이 타아나크에서, 므깃도의 물가에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은을 전리품으로 얻지는 못했습니다.」사사기 5:19 · 두루새김

사사기 4장은 야빈과 그의 군대 지휘관 시스라를 중심으로 전투를 설명했지만, 5장에서는 가나안의 여러 왕들이 싸웠다고 노래합니다. 시스라의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전리품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노래는 이미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리품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늘의 별들이 시스라와 싸웠다

「별들이 하늘에서 싸웠습니다. 저마다의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습니다.」사사기 5:20 · 두루새김

고대 시에서 별과 하늘과 산과 바다는 하나님의 위엄과 행동을 표현하는 데 자주 등장합니다. 사사기 5장도 이러한 시적 언어를 사용합니다.

시스라는 철 전차 구백 대를 가졌고, 야빈에게는 강력한 군대가 있었습니다. 시인은 하늘 전체가 시스라를 대적하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군사적으로 우세한 자가 자기 힘으로 전쟁의 결과를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키손 시내가 적군을 휩쓸어 가다

「키손 시내가 그들을 휩쓸어 갔습니다. 오랜 시내, 키손 시내가 그들을 휩쓸어 갔습니다. 내 영혼아, 힘차게 나아가라.」사사기 5:21 · 두루새김

이제 별들의 싸움은 땅 위의 물과 연결됩니다.

시의 확실한 진술은 하나님께서 자연의 힘을 통해 시스라의 군대를 무너뜨리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탈출한 뒤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의 군대와 전차를 바다에 던지셨다고 노래했습니다(출애굽기 15:1–5). 사사기 5장에서도 전차를 가진 강력한 군대가 물에 의해 무너집니다.

두 본문은 동일한 사건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과 전차와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주제가 뚜렷하게 연결됩니다.

말발굽 소리가 무엇을 말하는가

「그때 말발굽들이 땅을 쳤습니다. 힘센 말들이 내달리고 또 내달렸기 때문입니다.」사사기 5:22 · 두루새김

「내달리고 또 내달렸기」라는 반복은 말들의 격렬한 움직임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처음에 시스라의 전차는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억누르는 힘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제 그 전차의 말들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뒤흔들린 전쟁터에서 격렬하게 달리고 있습니다.

철 전차의 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힘을 통제하던 사람들이 전쟁의 주도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메로즈는 왜 저주받는가

전투의 장엄한 묘사가 끝나자 갑자기 저주가 등장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사자가 말했습니다. 『메로즈를 저주하라. 그 주민들을 철저히 저주하라. 그들이 여호와야훼를 도우러, 용사들 가운데서 여호와야훼를 도우러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사사기 5:23 · 두루새김

메로즈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곳 주민들이 이스라엘 지파에 속했는지, 어떤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는지도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인간의 도움 없이는 승리할 수 없으셨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앞에서 별들과 강물까지 여호와야훼의 전쟁에 참여했다고 노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에 참여해야 할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정반대의 말이 등장합니다.

메로즈에게는 저주가 선포됩니다.

야엘에게는 복이 선포됩니다.

조금 더 깊이

5장의 가나안 왕들이 4장에 나오지 않은 추가적인 왕들이 모두 실제로 참여했다는 뜻인지, 가나안의 군사 세력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은을 전리품으로 얻지는 못했습니다」가 단순히 전리품을 얻기 전에 패했다는 뜻인지, 그들이 전쟁에 나선 일 자체가 헛수고가 되었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것인지는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키손은 이스르엘 평야 일대를 흐르는 하천입니다. 내리는 비의 양에 따라 물의 양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면, 폭우나 거센 물살이 전차 부대에 불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가 정확히 얼마나, 언제 내렸는지, 전차가 진흙에 빠졌는지 등 구체적인 전투 상황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5:22의 말들이 전투에 뛰어드는 장면인지, 혼란 속에서 달아나는 장면인지 정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키손 시내가 적군을 휩쓸었다는 내용을 고려하면, 전투의 격렬함과 전차 부대의 혼란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천막에 사는 여인이 받은 복 — 야엘은 무엇을 했는가

사사기 5:24–27 본문 →

「겐 사람 헤베르의 아내 야엘이 다른 여자들보다 더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천막에 사는 여자들보다 더 복을 받기를 바랍니다.」사사기 5:24 · 두루새김

야엘은 시스라를 죽였기 때문에 복을 받는 인물로 노래됩니다. 사사기 4:17에서는 하초르 왕 야빈과 헤베르의 집안 사이에 평화가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야엘은 이스라엘 밖의 겐 사람 집안에 속했지만, 시스라를 무너뜨린 행동으로 복을 받습니다. 이 장에서 영예의 기준은 단순히 어느 집단에 속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사건에 어떻게 참여했는가가 중요한 기준으로 나타납니다.

물 대신 젖을 준 장면

「시스라가 물을 달라고 하자 야엘은 젖을 주었습니다. 높은 사람들이 쓰는 대접에 걸쭉한 젖을 담아 내놓았습니다.」사사기 5:25 · 두루새김

「높은 사람들이 쓰는 대접」이라는 표현은 손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스라는 야엘의 천막에 들어왔을 때 자신의 안전을 기대했습니다.

노래는 이 장면을 짧게 보여준 뒤 곧바로 그녀의 손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야엘은 손을 뻗어 말뚝을 잡고, 오른손으로 일꾼들이 쓰는 망치를 잡았습니다. 시스라의 머리를 내리쳐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았습니다.」사사기 5:26 · 두루새김

시는 강력한 군대 지휘관이 일상적인 도구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을 최대한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주저앉고, 쓰러져 누웠다

「그녀의 두 발 사이에서 그는 주저앉고 쓰러져 누웠습니다. 그녀의 두 발 사이에서 주저앉고 쓰러졌습니다. 주저앉은 바로 그곳에 죽임을 당해 쓰러졌습니다.」사사기 5:27 · 두루새김

이 반복은 한 사람이 죽어 가는 움직임을 느린 화면처럼 보여줍니다. 시스라는 한때 이스라엘을 스무 해 동안 심하게 억눌렀던 군대 지휘관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고 강제로 복종하게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여인의 발아래 쓰러져 있습니다.

권력 관계가 완전히 뒤집힌 것입니다.

야엘의 행동은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는가

그러나 야엘의 행동을 모든 시대에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윤리적 명령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녀는 자신을 믿고 천막에 들어온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는 손님을 보호하고 대접하는 관계에서 매우 어려운 윤리적 질문을 남깁니다.

사사기 5장은 그런 질문을 차분하게 토론하는 글이 아닙니다. 전쟁에서 억눌린 백성의 편에 서서 부르는 승리의 노래입니다. 이런 시의 성격을 생각하면, 야엘을 향한 축복은 그녀가 이스라엘을 억압한 군대 지휘관의 최후를 이루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본문을 지나치게 부드럽게 바꾸어 야엘의 행동이 가진 폭력성과 긴장을 지워 버릴 필요도 없습니다. 이 노래는 실제로 전쟁의 승리와 적장의 죽음을 기뻐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한 뒤, 왜 그런 노래가 불렸는지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글의 흐름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노래는 야엘의 승리 장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은 시스라의 몸을 보여준 다음, 전혀 다른 장소로 시선을 옮깁니다.

조금 더 깊이

사사기 4장은 야엘이 시스라에게 살며시 다가가 말뚝을 박았다고 기록했습니다. 5장은 같은 장면을 빠른 동작으로 표현합니다. 원문에서는 동사들이 잇달아 이어져 그 움직임을 더욱 강하게 보여줍니다. 사사기 4장에서는 시스라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고, 야엘이 그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았다고 기록합니다. 반면 5장의 노래에서는 시스라가 야엘의 두 발 사이에서 주저앉고 쓰러지는 모습이 강조됩니다. 이 차이를 근거로 시스라가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가 다시 쓰러졌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사건 순서를 만들어 낼 필요는 없습니다. 4장은 사건을 산문으로 이야기합니다. 5장은 그의 몰락을 반복되는 시의 말로 강조합니다.

창문 너머의 어머니 — 가장 날카로운 반전

사사기 5:28–30 본문 →

「시스라의 어머니가 창문으로 내다보며, 창살 사이로 울부짖었습니다. 『왜 시스라의 전차가 이렇게 늦느냐? 왜 그 전차들의 발걸음이 더디냐?』」사사기 5:28 · 두루새김

갑자기 노래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독자는 이미 시스라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모릅니다. 그녀는 전차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녀가 아무리 기다려도 시스라는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왜 전차가 늦는가

사사기 4장에서 시스라의 힘을 상징했던 것은 철 전차 구백 대였습니다. 그런데 전투에서 패한 시스라는 전차를 버리고 두 발로 달아났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그 전차가 왜 늦는지 묻습니다.

그는 전차를 잃었고, 군대를 잃었고, 결국 목숨까지 잃었습니다. 어머니가 믿는 아들의 군사력은 이미 사라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기다림은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자리에서 계속됩니다.

지혜로운 귀부인들의 어리석은 대답

「곁에 있던 귀부인들 가운데 지혜로운 이들이 대답했습니다. 어머니도 스스로 같은 대답을 되풀이했습니다.」사사기 5:29 · 두루새김

여기서 「지혜로운 이들」이라는 표현에는 강한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들은 지혜로운 사람들로 소개되지만, 실제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전리품을 찾아 나누고 있지 않겠습니까? 사내 하나마다 여자 하나, 여자 둘씩 있겠지요. 시스라에게는 물들인 천이 전리품으로 돌아가겠지요. 물들인 천과 수놓은 천이겠지요. 목에 두를 전리품으로는 물들인 천, 수놓은 천 두 벌이 있겠지요.』」사사기 5:30 · 두루새김

그들은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다른 여성들의 고통을 당연한 전쟁의 보상으로 여깁니다. 중요한 것은 이 말이 노래의 화자가 여성 포로들을 그렇게 대해야 한다고 명령하는 내용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스라의 어머니와 그녀의 귀부인들이 상상하는 전리품 분배를 그들의 말로 보여준 것입니다.

적장의 어머니도 여자다

시스라의 어머니 역시 여자입니다. 그녀는 자기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이고,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 현실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독자는 그녀의 기다림에서 인간적인 슬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와 주변 여인들이 기대하는 것은 다른 여성들을 전리품으로 나누는 광경입니다. 그들은 다른 어머니들의 딸들이 겪게 될 고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아들이 돌아와 가져올 전리품을 생각합니다.

그녀의 기다림은 인간적인 동시에 도덕적으로 불편합니다.

시인은 이 두 측면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지워 버리지 않습니다.

야엘과 시스라의 어머니

야엘은 시스라가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시스라의 어머니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야엘은 손을 뻗어 말뚝과 망치를 잡습니다.

시스라의 어머니는 창문 너머로 내다보며 기다립니다.

한 여인은 사건의 결과를 결정했습니다.

다른 여인은 그 결과를 전혀 모른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야엘의 행동에는 속임수와 폭력이 있으며, 시스라의 어머니에게는 자식을 기다리는 인간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전쟁의 결과를 전혀 다르게 마주합니다.

시스라의 어머니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독자는 이미 끝난 권력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 기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들이 기대한 전리품은 오지 않습니다.

여성 포로들도 오지 않습니다.

값비싼 천도 오지 않습니다.

노래는 그녀가 결국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창문 너머에서 기다리는 모습으로 남습니다.

조금 더 깊이

원문에서 여성 포로들은 자신의 이름이나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자궁이라는 신체 부위로 불립니다. 그리고 남자 한 사람에게 하나나 둘씩 돌아가는 전리품으로 계산됩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여자 포로가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진다는 사실을 넘어, 여성들이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전쟁의 현실을 드러냅니다.

저주와 축복, 어둠과 떠오르는 해

사사기 5:31 본문 →

드보라는 이제 노래 전체를 마무리합니다.

「여호와야훼여, 주님의 모든 원수가 이처럼 망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힘차게 떠오르는 해 같기를 바랍니다.」 그 땅은 마흔 해 동안 평온했습니다.사사기 5:31 · 두루새김

이것은 중립적인 역사 기록이 아니라 승리한 이스라엘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따라서 적의 멸망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강하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감정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이 기도를 모든 개인적인 원수에게 똑같은 저주를 돌려도 된다는 명령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특정한 전쟁에서 오랫동안 억눌린 이스라엘이 경험한 해방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역사적 상황과 시의 형식을 존중해야 합니다.

「힘차게 떠오르는 해」는 어둠을 지나 솟아오르는 빛의 이미지입니다. 여호와야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해와 같기를 바란다는 말은 그들이 강하고 생명력 있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축복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하는 모습으로 시작된 노래가 빛의 이미지로 끝납니다.

노래가 끝나자 다시 서술자의 목소리로 돌아옵니다. 그 땅에 평온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이 다시 길을 다니고, 마을에서 살아가며, 물 긷는 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전쟁의 승리가 일상의 평온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다만 이 구원이 영원한 평화를 이루었다고 본문은 말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기록된 것은 마흔 해의 평온입니다. 사사기 전체에서 평온은 소중한 선물이지만, 그것을 얻었다는 사실만으로 공동체의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창문에는 기다리는 어머니가, 노래의 끝에는 떠오르는 해가 있다

사사기 5:1–31 본문 →

창문 너머의 어머니는 오지 않을 전차를 기다립니다. 반면 떠오르는 해는 어둠 뒤에 찾아오는 새로운 빛을 나타냅니다. 한쪽에는 사라진 권력에 대한 헛된 기대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다시 일어나는 백성을 향한 축복이 있습니다. 드보라의 노래는 하나님께서 강한 자를 무너뜨리셨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그들이 억눌렀던 사람들에게 다시 살아갈 시간을 주셨다는 사실을 찬양합니다.

전리품을 기대하던 사람들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행하려고 했던 지배와 착취의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다른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창문 너머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전차를 기다리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땅에는 다시 사람들이 길을 다니고 마을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