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15장
이 장의 자리 · 11–15장 · 정결과 부정
몸의 부정함과 하나님이 머무시는 자리
레위기 15장은 읽는 사람을 당황하게 합니다. 남자의 몸에서 나오는 유출물, 정액, 여자의 월경, 오래 계속되는 출혈을 자세히 다루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떤 자리에 앉았는지, 어떤 물건을 만졌는지, 언제 씻어야 하는지까지 규정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책에서 왜 이렇게 사적인 신체 현상을 길게 설명하는 것일까요?
레위기가 말하는 ‘부정함’은 반드시 도덕적인 잘못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의 체계에서 부정함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영역과 접촉할 때 고려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도덕적인 죄 때문에 부정해질 수도 있지만, 출산이나 정상적인 신체 기능처럼 죄가 아닌 일로도 부정해질 수 있습니다. 레위기 12장이 출산한 여자의 정결 절차를 규정하고, 15장이 부부 관계와 월경을 다루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이 구별이 먼저 필요합니다.
15장은 크게 네 종류의 신체 현상을 다룹니다.
| 본문 | 신체 현상 | 정결 절차 | | --- | --- | --- | | 2–15절 | 남자의 지속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유출 | 유출이 멎은 뒤 이레, 씻음, 여덟째 날 제사 | | 16–18절 | 정액의 유출과 부부 관계 | 씻음, 저녁까지 부정 | | 19–24절 | 여자의 정상적인 월경 | 이레 동안 부정 | | 25–30절 | 월경 기간 밖의 출혈이나 계속되는 출혈 | 유출이 멎은 뒤 이레, 여덟째 날 제사 |
먼저 남자의 장기간 유출을 다룬 뒤 정상적인 정액의 유출을 설명합니다. 이어 여자의 정상적인 월경을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월경을 벗어난 출혈을 다룹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31절이 앞의 모든 규정을 설명하는 결론이라는 것입니다. 처음 서른 절을 읽으면 몸과 물건과 씻는 방법만 보이지만, 마지막에 이르면 성막이 나타납니다.
본문은 사람의 몸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에 도착합니다.
유출이 있는 남자 — 몸의 상태가 생활공간에 미치는 영향
여호와야훼는 모세와 아론에게 남자의 몸에서 유출물이 흐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어지는 16절이 정액의 유출을 따로 다루므로, 여기서는 정상적인 사정과 구별되는 지속적이거나 비정상적인 유출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질병인지는 명시하지 않습니다. 현대 의학의 특정 감염증이나 비뇨기 질환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유출로 인한 그의 부정함은 이러하다. 그의 몸에서 유출물이 흘러나오든, 유출물이 나오는 곳이 그 유출물 때문에 막혀 있든, 이것이 그의 부정함이다.』」레위기 15:3 · 본디새김
그런데 히브리어 표현은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막혔는지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유출물이 몸의 출구를 막은 상황으로도, 흐르던 유출이 막히거나 멈춘 상태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단순히 유출물이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순간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유출과 관련된 신체 상태를 부정함으로 다룬다는 것입니다.
이후 본문은 뜻밖에도 유출물 자체보다 그 사람의 생활공간에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가 누운 자리와 앉은 물건이 부정해지고, 다른 사람이 그것에 닿으면 부정해집니다. 그가 타고 앉은 안장도 부정해집니다. 그가 손을 씻지 않은 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대었을 때의 처리 방법도 규정합니다.
율법은 그 사람을 단지 제사장 앞에 서 있는 환자로만 다루지 않습니다. 그가 일상의 여러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여기서 부정함은 한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에게서 물건으로, 물건에서 다른 사람으로 옮겨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접촉이 반드시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접촉한 사람을 비난하기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옷을 빨고 몸을 씻어야 하는 경우가 반복되며, 대부분의 접촉으로 생긴 부정함은 저녁까지 지속됩니다.
부정함이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과 그 부정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함께 제시됩니다.
「『유출물이 흐르는 사람이 손을 댄 질그릇은 깨뜨려야 한다. 나무로 된 모든 물건은 물로 씻어 내야 한다.』」레위기 15:12 · 본디새김
두 재질의 차이를 흡수성이나 위생상의 이유로 설명하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고대의 감염 예방 지침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정결의 질서는 추상적인 생각에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과 생활 방식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행됩니다.
유출이 멎은 뒤 — 기다림에서 하나님 앞으로
13절에 이르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유출물이 흐르던 사람은 유출이 멎으면 자신의 정결을 위해 이레를 세고, 자기 옷을 빨고 자기 몸을 샘물로 씻어야 한다. 그러면 정결해진다.』」레위기 15:13 · 본디새김
본문은 유출을 멈추게 하는 치료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유출이 멎은 다음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레는 여기서 회복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을 확인하는 정결의 기간입니다.
그다음 여덟째 날에 남자는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와 만남의 천막 입구에 섭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몸에서 성막으로 이동합니다.
한 마리는 정화 제물로, 다른 한 마리는 번제로 바쳐집니다. 제사장은 그를 위해 여호와야훼 앞에서 속죄합니다. 이곳의 속죄는 부정함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필요한 제의적 정결의 회복과 관계됩니다.
본문이 도달하려는 자리는 질병의 진단실이 아니라 여호와야훼 앞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마임 하임은 직역하면 ‘살아 있는 물’입니다. 이를 「샘물」로 옮겼습니다. 고여 있는 물과 대비되는 흐르는 물이나 신선한 물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 14:5에서도 차라아트에서 정결하게 되는 사람을 위한 의식에 이러한 물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어 하타트는 문맥에 따라 ‘죄’를 뜻하기도 하고, 죄나 부정함을 다루는 제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레위기 4장에서는 죄와 관련하여 이 제물이 등장하지만, 레위기 12:6–8에서는 출산한 여자의 정결 절차에도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같은 제물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유출이 곧 도덕적인 죄라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13절에서 씻고 정결해지는 일과 15절에서 제사장이 그를 위해 속죄하는 일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앞의 절차는 몸의 유출과 관련된 부정함을 정리하고, 뒤의 제사는 하나님 앞에서 요구되는 의식을 완성합니다.
부부 관계도 부정함을 일으킨다는 사실
앞의 긴 규정에 비하면 16–18절은 매우 짧습니다.
남자에게서 정액이 나오면 몸을 씻고 저녁까지 부정합니다. 정액이 묻은 옷과 가죽도 물로 빨아야 합니다. 부부가 동침하여 정액이 나오면 두 사람 모두 몸을 씻고 저녁까지 부정합니다.
여기에는 이레를 세라는 명령도 없고 제물도 없습니다.
창세기 1:28에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24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일이 인간의 창조 질서 안에 놓입니다. 그런데 레위기 15:18은 그러한 부부 관계에서도 부정함이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부정함을 곧 죄나 하나님의 불쾌함으로 이해하면 두 본문을 함께 읽기 어려워집니다. 어떤 행위는 정당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제의적으로는 일시적인 부정함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왜 정액의 유출이 부정함을 낳는지까지 모두 설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그 원인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정액과 생명의 생성 가능성을 연결하여 설명할 수는 있지만, 본문이 그것을 부정함의 직접적인 이유로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레위기의 정결과 부정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체계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월경하는 여자 — 남자의 규정이 반복되는 이유
19절은 여자의 몸에서 피가 나오는 정상적인 월경을 다룹니다.
「『여자에게 유출이 있고 몸에서 나오는 그 유출물이 피이면, 그 여자는 이레 동안 월경으로 부정한 상태에 있게 된다. 그 여자에게 닿는 사람은 누구나 저녁까지 부정하다.』」레위기 15:19 · 본디새김
남자의 정상적인 정액 유출이 저녁까지 부정하게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기간이 다릅니다. 그러나 본문은 왜 이런 차이를 두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차이를 여성의 도덕적 열등함이나 더 큰 죄의 표시라고 해석할 근거는 없습니다.
다음 절들은 앞서 남자의 유출을 설명할 때 사용했던 표현을 거의 그대로 가져옵니다. 여자가 누운 자리가 부정해지고, 앉는 물건도 부정해집니다. 다른 사람이 그 물건에 닿으면 부정해집니다. 옷을 빨고 몸을 씻어야 하는 경우도 반복됩니다.
월경하는 여자는 유별나게 부정한 존재로 따로 규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의 유출과 마찬가지로 신체 상태와 접촉에 따른 부정함의 질서 안에 놓입니다. 또한 19–24절은 정상적인 월경을 마친 여자에게 제물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23절은 어떤 물건을 가리키는지 지시어가 다소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모호함은 단락의 큰 의미를 바꾸지는 않습니다. 본문은 여자가 누운 자리와 앉은 물건을 통하여 부정함이 전달되는 경우를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24절에서는 조금 더 특별한 상황을 다룹니다.
「『만일 남자가 그 여자와 동침하여 그 여자의 월경으로 인한 부정함이 그에게 미치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다. 그가 눕는 자리는 모두 부정해진다.』」레위기 15:24 · 본디새김
18절에서 일반적인 부부 관계는 저녁까지 부정함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남자가 이레 동안 부정해집니다.
레위기 18:19는 월경으로 부정한 여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을 금지하고, 20:18은 그러한 행위에 대한 엄중한 제재를 규정합니다. 그런데 15:24는 그 행위의 금지 여부를 말하지 않고 발생한 부정함을 처리하는 방법만 설명합니다.
이를 이해하는 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15장이 의도적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 행위로 발생한 제의적 결과만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월경 중임을 알지 못했거나 월경이 시작된 상황과 같이, 부정함이 의도하지 않게 남자에게 미친 경우를 염두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으므로 어느 한쪽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15:24가 성관계에 관한 모든 윤리적 판단을 제시하려는 구절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기서는 부정함이 어떻게 전달되고 얼마나 지속되는지를 다루며, 성관계에 관한 금지 명령은 뒤의 18장과 20장에서 다룹니다.
멎지 않는 피 — 끝을 알 수 없는 부정함과 회복의 길
25절에 이르면 월경에 관한 규정이 다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여자에게 월경 때가 아닌데도 여러 날 피의 유출이 있거나 월경 때를 지나서도 유출이 계속되면, 그 여자는 부정한 유출이 있는 모든 날 동안 월경 때와 같은 상태에 있다. 그 여자는 부정하다.』」레위기 15:25 · 본디새김
앞에서 월경의 부정함은 이레라는 일정한 기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여기서는 피의 유출이 끝나지 않는 한 그 기간도 끝나지 않습니다.
그 여자의 부정함은 그녀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녀가 눕고 앉는 자리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 물건에 닿는 사람들에게까지 미칩니다. 오랫동안 출혈이 계속된다면 그녀는 자신의 신체적 어려움뿐 아니라 일상적인 접촉에서 발생하는 제의적 제약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다만 본문은 그 여자가 실제로 가족이나 공동체에서 얼마나 고립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부정함의 전달에 대한 규정만으로 모든 사회적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본문은 다시 회복의 순간을 기다립니다.
「『그 여자의 유출이 멎으면, 그 여자는 자신을 위해 이레를 세어야 한다. 그 뒤에 정결해진다.』」레위기 15:28 · 본디새김
앞서 남자의 유출이 멎었을 때와 대체로 대응하는 절차가 시작됩니다. 유출이 멎으면 이레를 세고, 여덟째 날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져옵니다. 제사장은 하나를 정화 제물로, 다른 하나를 번제로 드립니다.
이때 14–15절과 29–30절의 표현은 거의 평행을 이룹니다. 남자는 자신을 위해 비둘기 두 마리를 마련하여 여호와야훼 앞에 옵니다. 여자도 자신을 위해 같은 제물을 마련하여 만남의 천막 입구에 있는 제사장에게 가져옵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남자를 위해 속죄했던 것처럼 여자를 위해서도 속죄합니다.
부정함의 원인이 되는 신체 현상은 서로 다르고, 그 지속 기간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함이 끝나고 정결을 회복하는 절차에서는 남녀에게 동일한 제물이 요구됩니다. 여자에게 특별히 더 무거운 제물이 요구되지도 않고, 남자보다 열등한 방식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지도 않습니다.
몸에서 일어난 일은 다르지만, 정결을 회복한 두 사람이 나아가는 곳은 같습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15장이 신약에서 특별히 떠오르는 장면은 마가복음 5:25–34에 나오는 오랫동안 출혈을 앓은 여자 이야기입니다. 그 여자는 열두 해 동안 출혈을 겪었고, 예수의 옷에 손을 댑니다. 마가복음은 이 장을 직접 인용하지는 않지만, 레위기 15:25–30의 장기 유출 규정을 알고 읽으면 그 여자가 처했을 제의적 상황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그 여자를 외면하지 않고, 그녀의 믿음을 인정하며 평안히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레위기의 정결 절차를 반복하는 장면이 아니라, 예수의 치유 사역에서 회복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다만 이 신약의 장면을 근거로 레위기 15장이 여자를 죄인으로 취급했다고 거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는 그 여자의 상태를 제의적인 부정함으로 설명하는 것이지, 그녀가 도덕적인 죄를 지었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이 모든 규정이 필요한가 — 성막이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31절에 이르러 여호와야훼는 이 모든 규정의 목적을 밝히십니다.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그들의 부정함에서 떨어져 있게 하여라. 그들이 자기들 가운데 있는 내 성막을 부정하게 하여 그들의 부정함 가운데서 죽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레위기 15:31 · 본디새김
하나님이 백성들 가운데 거하신다는 것은 커다란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아 먼 곳으로 떠나야 하는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들 가운데 거하시는 백성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은혜 때문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깁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백성들 가운데 거하신다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부정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피가 흐르지 않게 할 수는 없습니다. 몸에서 분비물이 나오지 않게 할 수도 없고, 부부 관계를 완전히 없앨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삶 자체를 중단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부정함을 식별하고, 그 상태에 맞는 절차를 지키고, 거룩한 영역을 부정하게 하지 않도록 명령하십니다. 31절은 부정함 자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즉시 죽음에 이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부정함을 적절히 다루지 않아 하나님의 성막을 부정하게 하는 위험을 경고합니다.
정결 규정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는 동시에, 그 거룩함 가운데 살아가는 백성을 보호합니다.
여호와야훼는 백성을 자기에게서 멀리 떨어뜨리기 위해 성막을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 거하시려고 성막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의 거룩함을 지키는 규정도 그분이 백성 가운데 계속 거하시는 질서를 위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25:8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에게 자신을 위한 성소를 만들라고 명령하시면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겠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출애굽기 40:34–38에서는 성막이 완성되자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그곳을 가득 채웁니다. 레위기 15장의 규정은 바로 그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레위기 11–15장은 여러 종류의 정결과 부정함을 다룹니다.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을 수 없는 짐승의 구별(11장), 출산 이후의 정결(12장), 차라아트와 관련된 사람과 물건과 집의 정결(13–14장), 그리고 신체의 유출로 생기는 부정함(15장)이 이어집니다. 이렇게 정결과 부정함을 여러 영역에서 다룬 뒤, 레위기 16장은 속죄일의 규정을 제시합니다. 그 가운데 16:16은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함과 죄 때문에 성소를 정결하게 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레위기 15장은 개인이 자신의 부정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레위기 16장은 그보다 더 넓은 차원에서 이스라엘의 부정함과 죄를 다루는 성소의 정결을 설명합니다. 둘 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신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여덟째 날,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손을 씻는 일, 옷을 빠는 일, 저녁까지 기다리는 일, 이레를 세는 일, 제물을 가져오는 일은 서로 떨어진 규칙들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공동체가 그분의 거룩함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레위기의 정결 규정을 그대로 수행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사람의 실제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은 여전히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레위기 15장은 마침내 한 장면으로 돌아옵니다.
유출이 멎은 사람이 이레를 세었습니다. 몸을 씻고 정결해졌습니다. 이제 여덟째 날이 되었습니다.
그는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만남의 천막 입구로 향합니다. 오랫동안 출혈을 겪었던 여자도 같은 제물을 가지고 그곳으로 갑니다. 제사장은 그들을 위해 여호와야훼 앞에서 제사를 드립니다.
처음에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유출물이 문제였습니다. 그 유출물 때문에 눕는 자리와 앉는 물건이 부정해졌고, 사람들과의 접촉에도 제약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 사람이 여호와야훼 앞에 서 있습니다.
그가 가져온 것은 거창한 제물이 아닙니다.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비둘기 두 마리입니다. 그리고 그 제물을 가지고 찾아온 곳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려고 마련하신 만남의 천막입니다.
그 길의 끝에, 여호와야훼의 성막이 서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