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17장

이 장의 자리 · 17–26장 · 거룩한 삶의 규정

피는 누구의 것인가

레위기 17장은 이상할 만큼 엄중한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소나 양이나 염소를 잡고도 그것을 만남의 천막 입구로 가져오지 않으면, 그 사람은 피를 흘린 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짐승을 잡는 일이 왜 이렇게 심각한 잘못이 되는 것일까요? 고기를 먹으려면 짐승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행위를 단순한 식생활의 문제로 다루지 않습니다.

사냥한 짐승이나 새의 피는 땅에 쏟고 흙으로 덮으라고 합니다. 반면 제물의 피는 제사장이 제단에 끼얹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피를 먹어서는 안 됩니다.

피 자체가 더럽기 때문이라면 제단에 뿌릴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피가 신성한 힘을 가진 물질이기 때문이라면 왜 땅에 쏟고 흙으로 덮으라고 하는 것일까요?

따라서 레위기 17장의 중심에는 단순한 음식 금기가 아니라,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권한과 인간에게 허락된 생명의 사용 방식이 놓여 있습니다.

레위기 16장이 성소와 백성의 속죄를 다루었다면, 17장은 그 속죄에 사용된 피를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이제 제사장뿐 아니라 짐승을 잡고 고기를 먹는 모든 사람이 말씀의 대상이 됩니다.

읽는 시간 16분소단락 717장 본문 읽기 →

짐승을 잡는 일도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레위기 17:1–4 본문 →

1–2절에서 여호와야훼는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 모두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제사장은 피를 제단에 끼얹는 일을 맡지만, 그 피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관한 책임은 짐승을 잡는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3절에는 세 종류의 짐승이 등장합니다. 소, 양, 염소입니다. 이들은 레위기 1–7장의 제사 규정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대표적인 가축들입니다.

본문은 「진영 안에서」 잡는 경우와 「진영 밖에서」 잡는 경우를 모두 언급합니다. 그런 다음 그 짐승을 만남의 천막 입구로 가져오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설명합니다.

이 규정은 제사를 드리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단순하게 읽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광야 진영이라는 상황에서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도살 자체를 성막과 연결하는 매우 포괄적인 규정으로 제시됩니다.

「『여호와야훼의 성막 앞에서 여호와야훼에게 제물로 바치려고 그것을 만남의 천막 입구로 가져오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피를 흘린 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는 피를 흘렸다. 그 사람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레위기 17:4 · 본디새김

레위기 17장이 짐승을 잡는 일을 인간 살인과 모든 면에서 동일하게 취급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당한 절차를 벗어난 도살을 단순한 규정 위반이 아니라 생명의 피를 부당하게 흘린 행위로 규정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사람은 소나 양이나 염소를 소유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짐승을 기르고 돌보며 고기를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기르는 짐승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생명의 피를 아무렇게나 흘려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피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용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런데 여기서 사용된 ‘잡다’는 말은 히브리어 샤하트로, 짐승을 도살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처음부터 반드시 제사를 위한 도살만을 의미하는 단어는 아닙니다.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라는 표현은 공동체에서 끊어지는 엄중한 결과를 가리키지만, 그것이 반드시 인간 재판에 따른 사형인지, 공동체로부터의 추방인지,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인지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들판의 제물이 친교 제물로 바뀌다

레위기 17:5–7 본문 →

5절은 「이는」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들판에서 잡아 바치는 자기 제물들을 여호와야훼에게 가져오되 만남의 천막 입구로 제사장에게 가져와 여호와야훼에게 친교 제물로 잡아 바치게 하려는 것이다.』」레위기 17:5 · 본디새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장소 변경이 아닙니다. 제물의 성격과 그 제물을 받는 대상이 분명해집니다.

친교 제물은 레위기 3장에서 설명된 제사입니다. 제사장은 피를 제단에 끼얹고, 지방을 제단 위에서 태웁니다. 레위기 7:11–21에서는 감사나 서원, 자원하는 제물과 관련된 친교 제물의 규정과 제물 고기를 먹는 절차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짐승을 성막으로 가져오라는 명령은 백성이 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려는 명령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사의 질서 안에서 고기를 먹는 일을 허락합니다.

짐승 전체를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제물의 각 부분을 하나님이 명령하신 방식으로 다룹니다. 여기서 7절이 앞 규정의 또 다른 목적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뒤따라 음행하는 염소 귀신들에게 더는 자기 제물들을 잡아 바쳐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들에게 대대로 영원한 규정이 되어야 한다.』」레위기 17:7 · 본디새김

본문은 다른 숭배 대상을 따르는 행위를 음행에 비유합니다. 이 표현에서 문제는 단순히 여호와야훼 이외의 존재에게 관심을 기울였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이 다른 숭배 대상을 좇아 자신의 신의를 저버리는 데 있습니다.

들판에서 짐승을 잡는 일이 언제나 그런 숭배 행위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성막 밖의 제사가 그러한 숭배와 연결되는 일을 분명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도살 규정은 생명에 대한 태도인 동시에 예배의 충실성에 관한 규정입니다.

신명기 12장은 왜 성소 밖에서 도살하는 일을 허락하는가?

광야에서는 소나 양이나 염소를 만남의 천막으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살게 되었을 때에도 모든 가축을 중앙 성소까지 데려가야 했을까요?

특히 신명기 12:20–21은 이스라엘의 땅이 넓어지고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실 곳이 멀어졌을 때, 소와 양을 잡아 자기 성읍 안에서 먹을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레위기 17장은 소나 양이나 염소를 잡는 일을 만남의 천막과 긴밀하게 연결합니다. 반면 신명기 12장은 중앙 성소에서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사람들이 제사와 구별되는 일상적인 도살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합니다.

한 가지 읽기는 두 본문의 생활환경에 주목합니다. 레위기 17장은 성막을 중심으로 형성된 광야 진영을 배경으로 합니다. 반면 신명기 12장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게 되는 상황을 다룹니다. 성소까지의 거리가 멀어질 수 있으므로 모든 일상적인 도살을 성소에서 행하도록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생활환경이 다르다는 설명만으로 두 법의 관계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두 규정이 서로 다른 법적 전통이나 제의적 발전 단계를 반영한다고 이해할 여지도 있습니다. 따라서 레위기 17장의 모든 조항이 신명기 12장에서도 동일한 형태로 유지된다고 말하거나, 반대로 신명기가 레위기의 규정을 완전히 부정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신명기 12장은 일상적인 도살을 허락하면서도, 번제와 희생 제물은 여호와야훼가 선택하신 곳에서 바치도록 합니다(12:26–27). 그리고 성소 밖에서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된 뒤에도 피를 먹는 것은 여전히 금지합니다(12:23–25).

도살 장소에 관한 규정은 달라질 수 있지만, 피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은 그대로 남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세이림은 본래 털이 많은 존재, 특히 숫염소를 가리키는 말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이 문맥에서는 제물을 바치는 대상이므로 단순한 실제 염소가 아니라, 염소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초자연적 존재나 우상적 숭배 대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역대하 11:15에서도 같은 표현이 금송아지와 함께 불법적인 제의의 대상과 관련되어 나옵니다. 다만 레위기 17장은 그 존재들의 구체적인 이름이나 모습, 그들을 섬기는 의식의 세부 사항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가 직접 맞서겠다고 하신 이유

레위기 17:8–10 본문 →

8–9절은 제사의 장소를 다시 명령합니다.

앞에서는 소와 양과 염소를 잡는 일을 다루었다면, 여기서는 번제와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일 자체를 명시합니다. 이스라엘 집안에 속한 사람뿐 아니라 그들 가운데 머무는 거류민도 이 규정을 지켜야 합니다.

거류민은 이스라엘 혈통에 속하지 않더라도 그 공동체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입니다. 8–9절은 그들이 제사를 바칠 때에도 여호와야훼가 정하신 장소와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런데 10절에서는 더욱 엄중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집안에 속한 사람이든 그들 가운데 머무는 거류민이든, 누구든 어떤 피라도 먹으면, 나는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 내 얼굴을 돌려 맞서고 그를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 버리겠다.』」레위기 17:10 · 본디새김

앞의 4절과 9절에서는 규정을 어긴 사람이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반면 여기서는 여호와야훼가 직접 말씀하십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규정을 어겼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 자신이 그 행위를 심판의 대상으로 삼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왜 피를 먹는 일을 특별히 엄중하게 금지합니까?

조금 더 깊이

‘얼굴을 향하다’라는 동작은 상황에 따라 호의적인 관심을 표현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맞서고」라는 말과 결합되어 적대적인 심판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피를 먹는 행위가 단순한 식사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거스르는 일로 취급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내가 너희에게 그 피를 주어」 — 금지 명령 속에 담긴 선물

레위기 17:11–12 본문 →

11절은 레위기 전체에서 피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그 피를 주어 제단 위에서 너희의 생명을 위해 속죄하게 했다. 바로 피가 생명으로 속죄하기 때문이다.』」레위기 17:11 · 본디새김

피는 생명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여호와야훼는 피에 어떤 추상적인 신비한 성질이 있다고 설명하시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의 생명과 피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단순히 몸에서 액체 하나가 빠져나오는 일이 아닙니다. 피를 흘려 죽이는 일은 생명을 빼앗는 일입니다.

따라서 피를 어떻게 다루는가는 그 생명을 어떻게 대하는가와 관련됩니다.

피가 속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는 피가 그 안에 있는 생명으로, 또는 생명을 근거로 속죄한다는 읽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피가 생명을 대신하는 관계에서 속죄한다고 이해하는 읽기입니다.

본문에서 명확한 것은 피가 생명과 관련되기 때문에 속죄에 사용된다는 사실입니다.

피를 속죄의 수단으로 삼으신 분은 여호와야훼다

피가 속죄에 사용될 수 있는 근거는 그 물질에 대한 인간의 조작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여하신 제의적 역할에 있습니다. 사람이 피를 자기 것으로 취하는 것은 금지되지만, 하나님이 그 피를 속죄를 위해 사용하도록 주시는 일은 허락됩니다.

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의 이유는 단순히 피가 위험해서가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생명과 연결된 그 피에 특별한 용도를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용도는 다른 생명을 위한 속죄입니다.

여호와야훼는 생명의 피를 함부로 취하지 못하도록 제한하시는 동시에, 그 피를 통하여 백성이 속죄를 받을 수 있도록 하십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하도록 허락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를 지키는 것이 레위기 17장에서 요구하는 순종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생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네페시입니다.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생명, 살아 있는 존재, 사람 자신 등을 가리킵니다. 반드시 육체와 분리된 불멸의 영혼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10절에서는 피를 먹는 「그 사람」을 가리키고, 11절에서는 육체의 「생명」과 속죄가 필요한 사람의 생명을 가리킵니다. 11절의 마지막 문장은 번역과 해석에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키 핫담 후 바네페시 예카페르입니다. 문제는 바네페시가 속죄와 어떤 관계를 나타내는가에 있습니다. 하나는 피가 그 안에 있는 생명으로, 또는 생명을 근거로 속죄한다는 읽기입니다. 이 경우 피가 속죄의 수단이 되는 이유는 피와 생명의 관계에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피가 생명을 대신하는 관계에서 속죄한다고 이해하는 읽기입니다. 이 경우 제물의 생명과 속죄를 받는 사람의 생명 사이의 대리적 관계가 강조됩니다. 두 해석은 서로 완전히 무관하지 않습니다. 제물의 생명이 사용된다는 점에서는 만납니다. 그러나 이 구절만으로 속죄의 작동 원리를 완전한 대리 형벌의 체계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신약에서는 히브리서 9:11–14가 제물의 피와 속죄의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연결해 해석합니다. 레위기의 피와 속죄라는 주제가 그리스도교적 이해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기 17장의 본래 관심은 먼저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이 동물의 생명과 그 피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있습니다. 이 본문을 곧바로 예수의 피에 관한 상징으로만 읽으면, 제단으로 가져가는 피와 땅에 쏟는 피를 구별하는 이 장만의 중요한 가르침을 놓치게 됩니다.

사냥한 짐승의 피는 왜 땅에 덮어야 하는가?

레위기 17:13–14 본문 →

이제 본문은 제단에서 사냥터로 이동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든 그들 가운데 머무는 거류민이든, 누구든 먹을 수 있는 들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으면, 그 피를 쏟고 흙으로 덮어야 한다.』」레위기 17:13 · 본디새김

앞에서는 소나 양이나 염소를 잡을 때 만남의 천막 입구로 가져오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사냥한 짐승을 만남의 천막으로 가져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제물의 피는 제사장이 제단에 끼얹습니다. 반면 사냥한 짐승의 피는 땅에 쏟고 흙으로 덮습니다.

두 행동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피를 사람의 음식에서 분리합니다.

본문이 직접 연결하는 이유는 다시 피와 생명의 관계입니다.

「『모든 육체의 생명으로 말하면, 그 피는 그 생명과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도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 끊어질 것이다.』」레위기 17:14 · 본디새김

앞의 규정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어떻게 짐승을 잡아야 하는지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피에 관한 설명은 모든 육체의 생명으로 확대됩니다. 피와 생명의 관계는 제물로 사용되는 특정 짐승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냥한 짐승과 새에게도 적용됩니다.

본문은 동물의 고기를 먹는 일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동물의 생명을 아무런 한계 없이 다룰 수 있다고 허락하지도 않습니다.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생명에 대한 무제한의 권리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왜 흙으로 덮어야 하는지는 본문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생명의 피를 존중하는 의례적 행위라고 이해할 수 있고, 피를 함부로 방치하거나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행동이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행위를 반드시 죽은 짐승을 위한 장례식이나 영혼을 돌려보내는 의식이라고 해석할 근거는 없습니다. 14절의 히브리어는 문법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특히 다모 브나프쇼 후에서 전치사와 대명사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피가 생명과 하나다’, ‘생명이 피 안에 있다’, ‘피가 생명을 담고 있다’와 같은 번역이 가능합니다. 이미 창세기 9:3–6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동물을 음식으로 허락하시면서도 피에 관한 제한을 두셨습니다. 창세기 9:4는 생명인 피가 있는 채로 고기를 먹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어 9:5–6은 인간의 피와 생명에 대한 책임을 말씀합니다. 특별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사람의 피를 흘리는 일이 엄중하게 다루어집니다. 다만 레위기 17장은 창세기의 규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피가 성막의 제단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설명합니다. 이후 신명기 12:23은 다시 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피가 생명이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그곳에서는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말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죽은 짐승을 먹었을 때 — 왜 제재가 달라지는가?

레위기 17:15–16 본문 →

마지막 두 절은 앞의 규정들과 조금 다른 상황을 다룹니다.

「『저절로 죽은 짐승이나 찢겨 죽은 짐승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 본토인이든 거류민이든, 자기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어야 한다. 그는 저녁까지 부정하며, 그 뒤에는 정결해질 것이다.』」레위기 17:15 · 본디새김

앞에서는 피를 먹으면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씻고 기다리는 정결 절차가 주어집니다.

10–14절은 피를 먹는 행위를 직접 금지합니다. 반면 15절은 자연사하거나 찢겨 죽은 짐승의 고기를 먹은 경우를 설명합니다. 그 짐승의 피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별도로 명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15절을 피를 먹는 행위가 허용되는 예외 조항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15절이 그러한 고기를 적극적으로 먹어도 좋다고 허락한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 구절은 그 고기를 먹었을 때 발생하는 부정함과 그 처리 방법을 설명합니다. 레위기 11:39–40에서도 먹을 수 있는 짐승이 죽었을 때 그 사체에 닿거나 그것을 먹은 사람의 부정함과 정결 절차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옷을 빨지 않고 자기 몸도 씻지 않으면, 자기 죄책을 짊어질 것이다.』」레위기 17:16 · 본디새김

15절에서는 그 사람이 이미 부정한 상태에 놓였습니다. 그러나 16절에서는 그 부정함을 처리하라는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일이 문제가 됩니다.

사람이 부정해질 수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이 명령하신 정결 절차를 거부하는 일은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와 부정함을 처리할 길을 마련하십니다. 그러나 그 길이 마련되었다는 사실이 사람의 순종과 책임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16장에서는 죄악이 염소에게 지워져 공동체 밖으로 옮겨집니다. 17장 마지막에서는 사람이 정결 절차를 지키지 않으면 자신의 죄책을 직접 짊어져야 합니다. 두 본문이 서로 의도적으로 대조되도록 배열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흙으로 덮인 피

레위기 17:1–16 본문 →

성막에서는 제사장이 피를 제단에 끼얹습니다. 그 피는 하나님이 속죄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들판에서는 사냥꾼이 피를 땅에 쏟고 흙으로 덮습니다. 피의 의미는 피 자체에서 독립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의 관계와 여호와야훼의 명령 안에서 결정됩니다.

레위기 17장의 마지막을 이해하고 나면, 13절의 사냥꾼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그는 먹을 수 있는 들짐승이나 새를 사냥했습니다. 그 고기는 음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냥꾼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이 볼 때 그 짐승은 이미 죽었고, 사냥은 끝났습니다. 이제 고기를 손질하고 가져가면 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호와야훼의 명령은 그 마지막 순간에 한 동작을 더 요구합니다.

피를 쏟고, 흙으로 덮는 일입니다.

그 행동은 사냥꾼에게 자신이 얻은 것이 단순한 음식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그는 살아 있던 짐승을 잡았습니다. 이제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지만, 그 생명의 피까지 자신의 것으로 취할 수는 없습니다.

생명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는 사실이, 그 생명의 주인이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단 위에서는 피가 속죄를 위해 사용됩니다.

들판에서는 피가 흙으로 덮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그 피를 먹지 않은 채, 허락된 고기만 가지고 돌아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