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풀어 읽기 · 18장

이 장의 자리 · 17–26장 · 거룩한 삶의 규정

땅이 사람을 토해 내는 이유

레위기 18장을 읽다 보면 처음에는 사람들의 사적인 성생활을 규정하는 법률처럼 보입니다. 누구와 성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는지, 어떤 친족과 결합해서는 안 되는지, 여러 금지 명령이 길게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장의 마지막에 이르면 뜻밖의 존재가 등장합니다.

바로 땅입니다.

사람들이 땅을 떠난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땅이 더 이상 주민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토해 낸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가 선택하신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고,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영원히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무조건 보장하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합니까, 아니면 그 백성에게는 그에 합당한 삶의 방식이 요구됩니까?

이 장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이 따라서는 안 되는 길과 따라야 할 길을 분명히 구별하십니다. 그 구별은 단순히 개인의 사생활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에서 그분의 백성이 어떤 공동체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918장 본문 읽기 →

이집트도 가나안도 아닌, 여호와야훼의 길

레위기 18:1–5 본문 →

레위기 18장은 특별한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다.』」레위기 18:2 · 본디새김

여호와야훼는 먼저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자신 사이의 관계를 선언하십니다.

이 관계가 먼저 세워진 뒤에 명령이 이어집니다.

3절은 이스라엘의 과거와 미래를 한 문장에 나란히 놓습니다.

「『너희가 살던 이집트 땅에서 하는 대로 하지 마라. 내가 너희를 데려가는 가나안 땅에서 하는 대로 하지 마라. 그들의 규례를 따라 살지 마라.』」레위기 18:3 · 본디새김

한쪽은 과거이고 다른 한쪽은 미래입니다. 그런데 두 곳 모두 이스라엘이 그대로 따라야 할 삶의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은 두 땅 사이에서 자신의 삶의 기준을 새롭게 정해야 합니다.

「『내 법도를 행하고 내 규례를 지켜 그것들을 따라 살아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다.』」레위기 18:4 · 본디새김

3절에서는 다른 민족의 규례를 따라 걷지 말라고 하고, 4절에서는 여호와야훼의 규례 안에서 걸으라고 명령합니다. 법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어떤 길을 따라 살아가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다른 민족의 문화와 관습을 무조건 모두 거부하라는 명령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이어서 구체적으로 금지되는 행위들을 열거합니다. 이 말씀의 관심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윤리적 기준을 주변 사회의 관습에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데 있습니다.

「그것들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내 규례와 내 법도를 지켜라. 사람이 그것들을 행하면 그것들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나는 여호와야훼다.』」레위기 18:5 · 본디새김

레위기 18장의 직접적인 문맥에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아갈 백성입니다. 그리고 장의 마지막에서는 그 땅에서 쫓겨나는 일이 경고됩니다. 그러므로 5절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서 그분의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삶과 깊이 연결됩니다.

에스겔 20:11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자신의 규례와 법도를 주시며 사람이 그것들을 행하면 그것들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는 말씀을 다시 사용하십니다. 이 표현은 단순한 생존보다 넓은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레위기 18장 자체는 이를 추상적인 구원 공식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명령은 생명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백성이 어떤 길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은 가족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네 살붙이다」 — 친족의 경계가 필요한 이유

레위기 18:6–16 본문 →

6절은 뒤에 이어지는 긴 금지 목록의 원칙을 제시합니다.

「『너희 가운데 누구도 자기 살붙이인 어떤 친족에게도 하체를 드러내려고 다가가지 마라. 나는 여호와야훼다.』」레위기 18:6 · 본디새김

여기서 「하체를 드러내다」는 성관계를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입니다. 「자기 살붙이인 어떤 친족」이라는 표현은 친족 관계의 가까움을 강조합니다.

가족은 낯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 아닙니다. 서로의 삶과 몸과 출생이 연결되어 있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가까움 때문에 지켜야 할 경계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조부모와 손자녀 사이에는 이미 정해진 관계가 있습니다. 그 관계를 성적인 결합으로 바꾸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본문은 이 원칙을 추상적인 금지 명령으로만 남겨 두지 않습니다. 가족관계를 하나하나 부르며 그 경계를 설명합니다.

아버지의 하체가 어머니의 하체와 연결되는 이유

「『네 아버지의 하체와 네 어머니의 하체를 드러내지 마라. 그 여자는 네 어머니다. 그의 하체를 드러내지 마라.』」레위기 18:7 · 본디새김
「『네 아버지의 아내의 하체를 드러내지 마라. 그것은 네 아버지의 하체다.』」레위기 18:8 · 본디새김

왜 아버지의 아내와 성관계를 맺는 일을 「네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표현할까요? 본문은 성관계의 상대방만을 고립된 개인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이미 맺고 있는 혼인 관계를 함께 고려합니다.

그 여자의 하체를 드러내는 일은 아버지와 무관한 별개의 성적 행위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혼인 관계를 침범하는 일입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2:24에서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룬다는 말씀과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레위기 18장은 창세기 2장을 직접 인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혼인 관계로 연결된 사람의 몸을 상대 배우자와 무관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제적인 연결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족의 몸이 공동 소유물이라는 뜻이 아니라, 한 사람과의 성적 관계가 그가 이미 맺고 있는 가족관계를 침범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14절과 16절에서도 반복됩니다. 아버지의 형제의 아내에게 다가가는 일이 그 형제의 하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표현되고, 형제의 아내의 하체는 형제의 하체라고 설명됩니다.

혼인 관계가 가족의 경계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이러한 반복이 보여 줍니다.

「그들은 네 하체다」

9–13절에서는 누이와 손녀들, 아버지의 누이와 어머니의 누이가 등장합니다.

특히 9절은 누이가 아버지의 딸이든 어머니의 딸이든, 집에서 태어났든 밖에서 태어났든 그 하체를 드러내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집에서 태어났든 밖에서 태어났든」이라는 말의 정확한 범위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출생 당시의 가정이나 거주 장소를 구별하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고, 혼인 관계 안팎의 출생과 관련된 표현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출생 환경이나 부모 관계의 차이가 누이라는 친족 관계를 없애지 않습니다.

11절에서도 아버지의 아내에게서 태어난 딸을 누이라고 설명하면서 같은 금지 명령을 반복합니다. 9절과 11절이 어느 경우를 각각 구별하려는지는 완전히 분명하지 않지만, 두 구절 모두 친족이라는 관계가 성적인 결합의 경계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네 아들의 딸이나 네 딸의 딸의 하체를 드러내지 마라. 그들은 네 하체이기 때문이다.』」레위기 18:10 · 본디새김

이것은 손녀들이 조부모의 소유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자신의 직계 후손이며, 자신의 몸과 연결되는 가까운 혈육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이러한 반복은 가족관계가 단순히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의 명칭이 아니라 몸과 출생, 혼인을 통해 이어지는 관계임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그 연결이 강할수록 모든 경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연결 때문에 성적으로 넘지 말아야 할 경계가 생깁니다.

왜 여성 친족의 목록이 이렇게 길까?

본문에는 어머니, 아버지의 아내, 누이, 손녀, 고모, 이모, 숙모, 며느리, 형제의 아내 등이 차례로 나옵니다. 이 목록이 현대적인 의미에서 가능한 모든 근친 관계를 빠짐없이 열거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모든 친족 관계가 대칭적으로 표현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명령은 남성을 행위의 주체로 삼는 문장입니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의 가족과 혼인 관계를 남성의 관점에서 규정하는 법률적 표현 방식을 반영합니다. 본문이 직접 다루는 것은 남성에게 금지된 성적 접근과 결합의 범위입니다.

여기서 읽어야 할 핵심은 가족이라는 친밀한 관계가 성적 접근의 무제한적인 허가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지만, 본문을 현대의 동의와 권력, 학대에 관한 모든 문제를 이미 체계적으로 설명한 법으로 과장해서는 안 됩니다. 레위기 18장이 직접 제시하는 것은 친족의 경계입니다. 그 경계를 존중하도록 요구한다는 사실에서 가족 안의 성적 접근이 단지 개인의 욕망에 따라 결정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읽을 수 있습니다.

한 여자와 그 딸, 그리고 아내의 누이 — 결혼이 허락하지 않는 관계

레위기 18:17–18 본문 →

17절에서는 규정의 범위가 조금 달라집니다.

「『한 여자와 그 딸의 하체를 드러내지 마라. 하체를 드러내려고 그 여자의 아들의 딸과 그 여자의 딸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이지 마라. 그들은 그 여자의 살붙이다. 이것은 사악한 짓이다.』」레위기 18:17 · 본디새김

6절에서는 자기 자신의 살붙이에게 성적으로 다가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한 여자와 결합한 남자가 그 여자의 가까운 혈육까지 성적 관계로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남자가 그 여자와 맺는 관계만을 보지 않고, 그 여자에게 이미 존재하는 가족관계도 존중하도록 요구합니다.

바로 다음 18절에서는 조금 다른 문제가 나타납니다.

「『네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 누이의 하체를 드러내려고 그 누이까지 네 아내의 맞수로 맞아들이지 마라.』」레위기 18:18 · 본디새김

여기서는 금지의 이유가 단순히 그 여자가 아내의 누이라는 사실에만 있지 않습니다. 「맞수로」라는 표현이 덧붙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두 자매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놓이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읽힙니다.

야곱은 자매인 레아와 라헬을 모두 아내로 맞았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그 관계가 평온한 가족생활로 이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레아는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였고(창 29:31–32), 두 자매 사이에서는 자녀를 얻는 일을 둘러싼 경쟁이 이어졌습니다(창 30:1–8).

레위기 18:18이 직접 야곱의 가족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이야기는 한 남자의 두 아내가 된 자매 사이에 어떤 경쟁과 고통이 생길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정경 안의 사례입니다.

특히 18절은 「네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이라고 명시합니다. 이 표현 때문에 아내가 죽은 뒤 그 누이와 혼인하는 경우까지 이 구절이 직접 금지하는지에 관해서는 해석상 구별이 필요합니다. 본문이 명확하게 금지하는 것은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 누이를 또 다른 아내로 맞아 경쟁 관계에 놓는 일입니다.

앞의 6–16절이 이미 존재하는 친족의 경계를 중심으로 했다면, 17–18절은 새로운 혼인 관계를 만들어 기존의 가족관계를 뒤얽히게 하는 일에 주목합니다. 이러한 흐름 안에서 결혼은 한 사람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무제한적인 권한으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이미 맺어진 관계, 특히 그 관계에 속한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고려해야 합니다.

정상적인 부정함과 금지된 성관계의 차이

레위기 18:19–20 본문 →

19절은 월경 중인 여자와의 성관계를 금지합니다.

「『여자가 월경으로 부정한 동안에는 그의 하체를 드러내려고 다가가지 마라.』」레위기 18:19 · 본디새김

15장은 월경으로 인한 부정함이 얼마나 지속되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특히 15:24에서는 월경 중인 여자와 동침한 남자가 이레 동안 부정해지는 경우를 다루었습니다. 앞에서는 발생한 부정함의 처리 방법을 다루었다면, 여기서는 금지되는 행위를 직접 규정합니다.

레위기 18장이 월경 자체를 죄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금지되는 것은 월경으로 부정한 기간에 성적으로 다가가는 행위입니다.

20절에서는 간음이 등장합니다.

「『네 이웃의 아내와 정액을 내는 성교를 하지 마라. 그로 말미암아 부정해져서는 안 된다.』」레위기 18:20 · 본디새김

여기서 「네 이웃의 아내」라는 표현은 성관계의 상대방이 이미 다른 사람과 혼인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친족 관계가 성적으로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를 형성하듯, 다른 사람의 혼인 관계도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를 형성합니다.

여기서 「정액을 내는 성교」라는 표현을 근거로 금지가 오직 자녀를 얻으려는 목적의 성관계에만 적용된다고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특정한 생식 목적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20:14의 「간음하지 마라」는 계명과도 직접적인 주제적 연결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가족과 혼인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본문에 전혀 다른 행위가 등장합니다.

자녀를 몰렉에게 넘기는 일입니다.

왜 성관계 금지 목록 한가운데 몰렉이 등장하는가?

레위기 18:21 본문 →

21절은 이 장에서 가장 갑작스러운 전환처럼 보입니다.

「『네 자손 가운데 누구도 몰렉에게 넘겨주지 마라. 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라. 나는 여호와야훼다.』」레위기 18:21 · 본디새김

왜 이 말씀이 여기에 놓였을까요?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6–20절이 가족과 혼인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앞에서는 가족 안의 친족 관계를 성적으로 침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자신의 자손을 다른 숭배 대상에게 넘기지 말라고 합니다.

가족에게 속한 사람을 자기 뜻대로 다룰 수 없다는 점에서 두 문제는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구절의 위치에 관한 유일한 설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에서 더 분명하게 확인되는 연결은 「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이 행위는 단순히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잘못으로만 취급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이 됩니다.

2절에서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밝히셨습니다. 이제 21절에서는 그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자신의 자손을 다른 제의적 대상에게 넘기는 일을 금지하십니다.

가족 안에서 맺는 관계와 하나님께 드리는 충성은 서로 무관한 두 영역이 아닙니다.

자신의 자녀를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일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속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몰레크(⁨מֹלֶךְ⁩)는 신적 존재의 이름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특정한 종류의 제의나 봉헌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레위기 18:21 자체는 정확히 어떤 의식이 행해지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20:2–5에서는 자손을 몰렉에게 넘기는 사람에 대한 처벌이 규정되고, 그 행위가 성소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로 설명됩니다. 열왕기하 23:10과 예레미야 32:35는 자녀를 몰렉에게 바치는 일을 말하며, 전자는 불도 명시합니다. 이러한 본문들을 함께 읽으면 자녀를 바치는 의식, 특히 불과 관련된 의식이 배경에 있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18:21만으로 구체적인 수행 방법이나 모든 사례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와의 동침, 짐승과의 교미 — 금지의 범위를 어디까지 읽어야 하는가?

레위기 18:22–23 본문 →

22–23절은 이 장에서 현대 독자에게 특히 많은 질문을 일으키는 구절입니다.

이 부분을 정확하게 읽으려면 본문이 실제로 금지하는 행위와, 후대에 그 본문을 적용하면서 제기되는 문제를 구별해야 합니다.

22절이 직접 말하는 것

「『여자와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지 마라. 이것은 혐오스러운 짓이다.』」레위기 18:22 · 본디새김

히브리어 원문은 남자와의 동침을 여자와의 동침에 비교하는 구조를 가집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남성이 다른 남성과 여성과의 성관계에 상응하는 성적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는 말씀으로 읽힙니다. 레위기 20:13에서도 같은 표현이 다시 등장합니다.

이 구절은 현대적인 의미의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남성에게 끌리는 감정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관한 논의가 아닙니다. 본문이 직접 금지하는 대상은 성적 행위입니다.

이 구절이 어떤 특정한 형태의 남성 간 성관계만을 겨냥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해석상의 논의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남성 간 성행위를 금지한다고 읽는 해석은 22절 자체에 상대방의 연령이나 사회적 신분, 강제성, 신전 의식과 같은 제한 조건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합니다.

반면 이 구절을 고대의 특정한 성적 관행이나 남성의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금기로 이해하려는 읽기도 있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고대 사회의 성별 역할과 권력관계를 중요한 배경으로 고려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특정한 제의적 매춘이나 성폭력 상황만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직 그런 행위만 금지한다는 결론을 이 구절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구절은 여성 사이의 성관계를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침묵을 근거로 그 문제에 대한 허용이나 금지의 결론을 자동으로 끌어낼 수도 없습니다.

이 구절은 고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남성 간 성적 행위에 관한 금지 명령이며, 그 금지가 오늘날 서로 다른 관계와 상황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본문의 원래 의미를 확인한 뒤 별도로 논의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혐오스러운 짓」이라는 말

22절은 그 행위를 「혐오스러운 짓」이라고 평가합니다. 이 말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나 혐오스러운 일을 가리키며, 문맥에 따라 우상숭배와 관련된 행위에도, 다른 종류의 윤리적 위반에도 사용됩니다.

따라서 이 단어 자체만으로 그 행위가 오직 제의적인 금기인지, 어떤 종류의 윤리적 위반인지가 모두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의미는 각 본문의 문맥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26–30절에서 같은 계열의 표현이 앞에 나열된 여러 금지 행위들을 포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22절의 부정적인 평가를 이 장 전체에서 오직 한 행위에만 붙어 있는 특별한 범주처럼 읽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이 구절을 해설할 때에도 특정한 사람들의 정체성을 비하하거나 다른 모든 금지 명령보다 이 한 구절을 본문의 중심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23절의 금지는 무엇이 다른가?

23절은 짐승과의 성교를 금지합니다.

남자가 짐승과 성교하는 일뿐 아니라, 여자가 짐승과 교미하도록 자신의 몸을 내어놓는 일도 명시합니다. 그다음 본문은 이를 「질서를 어지럽히는 짓」이라고 평가합니다.

여기서 22절과 23절은 나란히 있지만, 두 구절을 아무 구별 없이 동일한 행위 범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각각 금지하는 행위가 다르고, 평가에 사용되는 히브리어 표현도 다릅니다. 이 구절들이 한데 놓여 있다는 사실은 레위기 18장이 허용되지 않는 성적 결합을 여러 종류로 열거한다는 점을 보여 주지만, 각각의 행위가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제 구체적인 금지 명령이 끝납니다.

그리고 24절부터 본문은 다시 복수의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향해 말합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한 사람이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한 행동들이 한 민족과 그들이 사는 땅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가 문제로 등장합니다.

부정해지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레위기 18:24–25 본문 →

24절은 앞의 모든 명령을 하나로 묶습니다.

「『이 모든 일로 너희 자신을 부정하게 하지 마라.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민족들이 이 모든 일로 부정해졌기 때문이다.』」레위기 18:24 · 본디새김

레위기 11–15장에서 우리는 음식과 신체 상태, 출산과 유출, 차라아트 등에 관한 부정함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18장에서 나타나는 부정함은 그와 성격이 다릅니다. 이 장에서는 금지된 성적 행위와 다른 제의적 숭배가 부정함을 일으킵니다.

이 부정함은 단순히 저녁까지 기다리거나 옷을 씻는 절차로 처리하도록 설명되지 않습니다. 본문은 금지된 행위가 계속되면 땅마저 부정해지고 주민들이 그곳에서 쫓겨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25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 땅이 부정해졌고, 나는 그 땅에 그 죄악의 책임을 물었으며, 그 땅은 자기 주민들을 토해 냈다.』」레위기 18:25 · 본디새김

땅은 단순히 사람들이 활동하는 무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그곳을 하나님에게서 받아 살아가는 일입니다. 따라서 땅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방식과 그 땅의 운명을 서로 무관하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레위기 18장은 인간의 잘못으로 자연환경이 물리적으로 오염되는 과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땅의 부정함은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에 대한 하나님 앞의 윤리적·제의적 평가와 관계됩니다.

본문은 땅을 마치 자기 안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밖으로 내보내는 존재처럼 묘사합니다. 하나님이 그 땅에 죄악의 책임을 물으셨다는 25절의 선언과 연결된 의인화된 표현입니다. 땅이 주민들을 토해 낸다는 이미지는 그들이 더 이상 그 땅에 거할 수 없게 되는 심판을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가나안 사람들에게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본문은 땅이 부정해지고 주민들을 토해 낸 일을 완료된 사건처럼 서술합니다. 이를 이미 일어난 일에 관한 서술로 읽을 수도 있고, 앞으로 이루어질 일을 확정적인 사건처럼 말하는 방식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만으로 가나안의 모든 주민이 이미 역사적으로 추방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본문이 가나안 주민들의 관습을 비판한다고 해서 모든 시대의 가나안 사람이 실제로 열거된 모든 행위를 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입증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본문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야훼가 그 땅의 주민들에게도 자신이 정하신 질서에 따른 책임을 물으신다는 신학적 선언입니다.

이스라엘도 땅에서 쫓겨날 수 있다

레위기 18:26–30 본문 →

26절에서 여호와야훼는 다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규례와 내 법도를 지켜라. 본토인이든 너희 가운데 머무는 거류민이든, 이 혐오스러운 짓들 가운데 어느 것도 하지 마라.』」레위기 18:26 · 본디새김

처음 4–5절에서 등장했던 「내 규례와 내 법도」라는 표현이 다시 나타납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의 법도를 행하면 그것들로 말미암아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그 법도를 지키지 않으면 땅에서 쫓겨날 수 있다고 경고하십니다.

이렇게 생명과 심판이 서로 마주합니다.

「『그 땅이 너희보다 앞서 있던 민족을 토해 냈듯이, 너희가 그 땅을 부정하게 하여 그 땅이 너희를 토해 내는 일이 없게 하여라.』」레위기 18:28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백성입니다. 그러나 선택받았다는 사실이 불순종을 심판받지 않는 특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서 살아가도록 선택받았기 때문에 그분의 규례를 따라야 합니다.

선택은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면허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할 책임을 동반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 사는 거류민은 이스라엘 혈통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금지 명령의 적용 대상에 포함됩니다. 그 땅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질서는 본토인과 거류민 사이에 임의로 나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이 단지 특정 혈통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사적인 규칙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위를 규정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공동체의 심판과 개인의 책임

29절은 다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이 혐오스러운 짓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행하는 사람은 누구든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레위기 18:29 · 본디새김

땅에서 토해 내는 것은 공동체의 거주와 관련된 심판입니다.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는 것은 해당 행위를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엄중한 제재입니다.

여기서도 「끊어질 것이다」라는 말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집행되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특정한 형벌 방식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경고는 공동체가 겪는 심판을 말한다고 해서 개인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 30절은 다시 처음의 말씀으로 돌아옵니다.

「『내가 맡긴 의무를 지켜, 너희보다 앞서 행해졌던 혐오스러운 관습들 가운데 어느 것도 행하지 마라. 그것들로 너희 자신을 부정하게 하지 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다.』」레위기 18:30 · 본디새김

이 장은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해서 같은 선언으로 끝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명령을 감싸는 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가 가족과 혼인의 경계를 정하고, 다른 숭배 대상을 따르는 일을 금지하며, 땅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결정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말씀은 신명기 9:4–6과 함께 읽을 때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자신들의 의로움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열왕기하 17:7–23은 북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야훼의 규례를 버린 결과 자기 땅에서 쫓겨난 사건을 신학적으로 해석합니다. 그곳에서는 이스라엘이 다른 민족들의 관습을 따랐다는 사실도 강조됩니다. 레위기 18장과 열왕기하 17장이 반드시 직접적인 인용 관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규례를 버리고 다른 길을 따르면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주제는 분명히 이어집니다.

땅이 토해 내지 않도록

레위기 18:1–30 본문 →

이스라엘은 땅을 얻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그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것과, 그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앞에는 아직 들어가지 않은 땅이 있습니다.

그 땅을 향해 가는 백성에게 여호와야훼는 먼저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그 땅이 그들을 토해 내지 않도록.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