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 풀어 읽기 · 2장

이 장의 자리 · 2장 · 깨뜨린 약속

예배와 배신

말라기 2장은 성경에서도 손꼽힐 만큼 거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성전에서 가장 거룩한 일을 맡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가장 불결한 것을 얼굴에 뿌리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 까닭은 제사장들의 죄가 단순히 예배의 규정을 몇 가지 어긴 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백성이 하나님을 알도록 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은 제사장들의 잘못을 책망하다가 갑자기 결혼과 이혼의 문제로 옮겨 갑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주제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성전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를 연결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배신입니다.

제사장들은 레위의 언약을 망가뜨렸습니다(2:8). 유다는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했습니다(2:10). 남편들은 젊은 시절의 아내를 배신했습니다(2:14).

이 장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예배만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까지 살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버린 관계를 언약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불러내십니다.

읽는 시간 21분소단락 62장 본문 읽기 →

축복이 저주가 되고, 제사장이 제물의 오물처럼 버려진다

말라기 2:1–4 본문 →

앞 장에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바치는 흠 있는 제물을 거절하셨습니다. 이제 그 책임을 묻는 말씀은 제물 자체에서 그것을 바치는 제사장들에게 향합니다.

「너희가 듣지 않고, 내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일을 마음에 두지 않으면」 만군의 여호와야훼가 말했다. 「나는 너희에게 저주를 보내고 너희의 복들을 저주하겠다. 이미 그것을 저주했다. 너희가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말라기 2:2 · 본디새김

그들은 율법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들은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마음에 두다(⁨שׂוּם⁩)’는 표현은 단순히 어떤 내용을 기억한다는 뜻보다 넓습니다. 어떤 일을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일이 그들의 판단과 행동을 결정해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주하겠다는 미래의 경고가 곧바로 이미 저주했다는 선언으로 바뀝니다.

이 문장에서는 아직 돌이킬 기회가 있는 듯한 경고와, 이미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선언이 겹쳐집니다. 제사장들은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태도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판단 아래 놓여 있음을 들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고 누려야 할 제사장들이 도리어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제물의 오물이 제사장의 얼굴로 돌아오다

「보아라, 내가 너희 씨를 꾸짖겠다. 너희 얼굴 위에 똥을 뿌리겠다. 너희 절기 제물의 똥이다. 너희도 그 똥이 있는 곳으로 실려 갈 것이다.」말라기 2:3 · 본디새김

제사장들은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제사에서 버려지는 오물과 같은 자리에 놓으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업신여긴 결과, 이제 자신들이 수치를 당합니다.

그들이 계속 드려 온 제사의 찌꺼기가 그들을 심판하는 도구가 됩니다. 그들은 제사를 수행한다는 사실로 자신의 지위와 안전을 보장받는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제사 자체에서 나온 오물을 사용해 그들의 부정을 드러내십니다.

심판의 목적은 언약을 끝내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4절은 앞선 말씀을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이끕니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보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레위와 맺은 내 언약이 이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야훼가 말했다.말라기 2:4 · 본디새김

제사장들을 향한 심판은 언약을 폐기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망가뜨린 언약의 본래 목적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의 모든 행동을 무조건 인정해 주시는 방식으로 언약을 지키지 않으십니다. 언약을 맡은 사람들이 그 언약을 파괴할 때, 그들을 책망하심으로 언약의 의미를 보존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너희의 복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을 축복하는 직무를 맡았습니다. 민수기 6:23–27에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도록 명령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선포하는 축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은 제사장들이 누리던 복이나 그들에게 주어지던 유익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말라기는 여기서 어느 하나로 뜻을 좁히지 않습니다. 3절의 히브리어 제라는 씨앗이나 곡식의 씨를 가리킬 수도 있고, 사람의 후손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제사장들의 후손과 제사장직의 지속성이 위협받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고, 농사의 결실과 생계의 근원이 심판받는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본문은 그 대상을 더 설명하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29:14와 레위기 4:11–12에서는 속죄 제물의 똥과 내장 등이 포함된 부분을 진영 밖으로 가져가 불태우도록 규정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제사장들이 실제로 겪을 특정한 물리적 사건에 대한 예고라기보다, 그들의 수치와 배제를 드러내는 강렬한 심판의 형상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던 레위, 사람을 넘어뜨리는 제사장들

말라기 2:5–9 본문 →

하나님은 현재의 제사장들에게 곧바로 더 많은 명령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먼저 레위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그와 맺은 내 언약은 생명과 평화였다. 나는 그가 두려워하도록 그것들을 그에게 주었다. 그는 나를 두려워했고, 내 이름 앞에서 떨었다.」말라기 2:5 · 본디새김

민수기 25:12–13에서도 하나님은 비느하스에게 평화의 언약을 주시고 그의 후손에게 제사장직이 이어질 것을 약속하십니다. 따라서 말라기가 말하는 레위의 언약은 비느하스에게 주어진 약속과 분명한 주제적 연결을 가집니다.

다만 말라기에서 ‘레위’는 한 개인의 생애를 상세히 가리키기보다, 제사장직이 지녀야 할 본래 모습을 대표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평화는 두려움이 없어야만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생명과 평화의 언약을 살아가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그 두려움은 하나님이 변덕스럽게 처벌하실까 봐 불안해하는 마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무겁게 여기고 그분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아는 태도입니다.

「그의 입에는 참된 가르침이 있었고, 그의 입술에서는 불의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평화와 올곧음으로 나와 함께 걸었고,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돌이켰다.」말라기 2:6 · 본디새김

제사장은 단순히 종교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면서, 그 삶과 가르침으로 다른 사람들이 바른 길을 걷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레위기 10:10–11은 제사장들이 거룩한 것과 속된 것,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구별하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규례를 가르쳐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제단에서 제물을 다루는 사람일 뿐 아니라,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돕는 교사였습니다.

제사장이 여호와야훼의 사자라고 불리는 이유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가르침을 구해야 한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야훼의 사자이기 때문이다.」말라기 2:7 · 본디새김

제사장은 자기 생각을 마음대로 선언할 권위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말씀을 보존하고 전달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배우기 위해 그의 입을 바라봅니다. 그의 말이 바르면 사람들은 바른 길을 배웁니다. 그러나 그 입에서 잘못된 가르침이 나오면, 그를 신뢰했던 사람들이 함께 잘못된 길로 들어섭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 길에서 벗어났고, 가르침으로 많은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했다. 너희는 레위의 언약을 망가뜨렸다.」 만군의 여호와야훼가 말했다.말라기 2:8 · 본디새김

6절에서는 레위가 많은 사람을 죄악에서 돌이켰습니다.

8절에서는 현재의 제사장들이 많은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했습니다.

제사장의 실패가 특히 무거운 이유는 그 사람 하나의 잘못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까지 손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편드는 가르침

「너희가 내 길들을 지키지 않고 가르침에서 사람을 편드니, 나도 그에 따라 너희를 온 백성에게 업신여김을 받고 천대받는 자들로 만들었다.」말라기 2:9 · 본디새김

율법은 재판이나 판단에서 사람의 지위에 따라 편파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레위기 19:15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편들거나 권력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우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신명기 1:17 역시 사람의 낯을 보지 말고 작은 자와 큰 자의 말을 함께 들으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사람에 따라 하나님의 가르침을 다르게 적용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가르치는 능력이 부족한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과의 관계나 사람에 대한 판단을 앞세우는 문제입니다.

앞에서는 제사장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이름을 공경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조차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이 됩니다.

이로써 첫 단락의 저주가 더 분명해집니다. 제사장들이 잃는 것은 단순한 사회적 체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직무의 신뢰와 권위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한 아버지가 있지 않으냐?」 — 성전에서 공동체로 옮겨 가는 배신

말라기 2:10–12 본문 →

10절에서는 말하는 목소리가 달라집니다.

앞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제사장들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예언자가 자신을 공동체에 포함하여 ‘우리’라고 묻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한 아버지가 있지 않으냐? 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지 않았느냐? 어찌하여 우리는 저마다 자기 형제를 배신하여 우리 조상들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말라기 2:10 · 본디새김

여기서 ‘한 아버지’는 조상 아브라함이나 야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을 여지도 있지만, 바로 뒤에 ‘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하나님을 가리키는 해석이 자연스럽습니다.

모두가 한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면, 서로를 배신하는 일은 단순히 사람 사이에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공동체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손상시킵니다.

예언자는 자기 자신을 제외한 채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위치에만 서지 않습니다. 공동체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웁니다. 그리고 앞 단락에서 제사장들에게 한정되었던 언약의 문제가 이제 모든 유다 사람의 문제로 확대됩니다.

낯선 신의 딸과 결혼한다는 것

유다가 배신했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서 역겨운 일이 벌어졌다. 유다는 여호와야훼의 거룩함, 곧 여호와야훼가 사랑하는 것을 욕되게 하고, 낯선 신의 딸과 결혼했기 때문이다.말라기 2:11 · 본디새김

여성을 ‘낯선 신’과의 관계 속에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직접적인 문제는 다른 혈통의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여호와야훼가 아닌 신을 섬기는 종교적 관계가 이스라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는 일과 연결됩니다.

이러한 문제는 출애굽기 34:15–16과 신명기 7:3–4에서도 다루어집니다. 그 본문들은 다른 민족과의 결혼이 이스라엘을 다른 신들을 섬기도록 이끌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고합니다. 반면 룻기는 모압 여인 룻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룻기 1:16), 훗날 다윗의 가계에 포함되는 이야기를 전합니다(룻기 4:13–22).

그러므로 말라기의 고발을 모든 민족 간 결혼이 그 자체로 죄라는 선언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 문제는 포로 귀환 이후 공동체에서 실제로 중요한 논쟁거리였습니다. 에스라 9–10장과 느헤미야 13:23–27에는 이방 민족과의 결혼을 둘러싼 갈등과 종교적 정체성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다만 말라기 2장은 그 결혼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모든 당사자의 종교적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앞뒤 문맥에 있는 아내에 대한 배신과 연결하여 기존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인과 결혼한 경우를 떠올릴 수 있지만, 모든 사례가 그러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여호와야훼가 사랑하시는 것을 욕되게 한다

‘여호와야훼의 거룩함’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성소를 가리킨다면, 유다의 행동은 하나님의 거룩한 예배 장소를 더럽히는 일입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공동체를 가리킨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질서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택과 행동이 단순히 공동체의 관습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라기는 그것이 하나님이 거룩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것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 일을 하는 자에게 속한 깨어 있는 자와 응답하는 자,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야훼에게 예물을 바치는 자를 여호와야훼가 야곱의 천막들에서 끊어 버리기를.말라기 2:12 · 본디새김

여기에는 ‘깨어 있는 자와 응답하는 자’라는 난해한 표현이 나옵니다.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을 빠짐없이 가리키는 말로도, 부르는 사람과 응답하는 사람 같은 특정한 역할을 가리키는 말로도 읽힙니다. 어느 범위를 가리키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예물을 바친다는 사실이 언약을 배신한 행동을 덮어 주지 못합니다.

성전에 나아오는 자격과 하나님 앞에 서는 삶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 여자는 네 동반자이며 네 언약의 아내인데도」 — 결혼을 배신으로 만드는 행동

말라기 2:13–16 본문 →

13절은 다시 성전의 제단으로 돌아갑니다.

둘째로 너희는 이런 일을 한다. 눈물과 울음과 신음으로 여호와야훼의 제단을 덮는다. 그가 더는 예물을 돌아보지 않고,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않기 때문이다.말라기 2:13 · 본디새김

본문은 그 눈물의 주인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너희는 「무슨 까닭입니까?」라고 말했다. 여호와야훼가 너와 네 젊은 시절의 아내 사이의 증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네 동반자이며 네 언약의 아내인데도, 너는 그 여자를 배신했다.말라기 2:14 · 본디새김

제단에서 예물이 거절당한 이유가 성전 밖의 결혼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제사를 받으실 때 제물이나 제사 절차만 보신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아내를 어떻게 대했는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물을 드리는 사람과 집에서 아내를 배신하는 사람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결혼의 증인이셨다

성경에서 증인은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언약과 관련하여 증인은 약속이 맺어졌다는 사실과 그 약속의 내용을 확인하는 역할을 합니다.

결혼이 두 사람 사이의 사적인 관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 안에서 맺은 약속은 하나님 앞에서도 의미를 가집니다.

남편은 아내를 버리고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행동을 두 사람 사이의 단순한 변화로만 보지 않으십니다.

그는 약속을 배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약속의 증인이셨습니다.

아내를 부르는 세 가지 표현

하나님은 버림받은 아내를 세 가지 방식으로 설명하십니다.

첫째는 ‘젊은 시절의 아내’입니다. 이 표현은 결혼이 시작된 오랜 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함께 살아온 역사가 있습니다.

둘째는 ‘동반자’입니다. 이 말은 아내를 남편의 재산이나 종속된 존재로만 묘사하지 않습니다. 함께 삶을 나누는 상대라는 관계적 의미를 드러냅니다.

셋째는 ‘언약의 아내’입니다. 결혼은 단지 두 사람이 함께 살기로 선택했다는 사실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 관계에는 서로에게 신실할 것을 요구하는 약속이 있습니다.

남편은 단순히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헤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반자, 자신과 언약을 맺은 사람을 배신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관계를 끝난 일로 취급할 수 있어도, 하나님은 그 관계 안에서 맺어진 약속을 증언하십니다.

「그 하나는 무엇을 구하느냐?」 — 풀기 어려운 15절

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자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하나는 무엇을 구하느냐? 하나님의 씨다. 너희 영을 지켜라. 아무도 자기 젊은 시절의 아내를 배신해서는 안 된다.말라기 2:15 · 본디새김

본디새김은 앞의 ‘하나’를 사람으로 이해합니다. 한 가지 중요한 대안은 이 구절을 창세기의 결혼 이야기와 연결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읽기에서는 ‘그 하나’를 특정한 인물로 이해합니다. 앞부분의 문법과 지시 대상이 불확실하더라도, 이 명령의 방향은 분명합니다.

아내를 배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적인 행동만을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그 행동이 나오기 전에 자기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것이 ‘너희 영을 지켜라’라는 말의 무게입니다.

「미워하여 내보내는 자」 — 폭력으로 덮인 옷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말했다. 「미워하여 내보내는 자가 자기 옷을 폭력으로 덮기 때문이다.」 만군의 여호와야훼가 말했다. 「너희 영을 지켜라. 배신하지 마라.」말라기 2:16 · 본디새김

옷은 사람의 몸을 감싸고 남들에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옷이 폭력으로 덮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행한 부당함이 마치 옷에 묻은 것처럼 그 사람에게 남는다는 이미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내보냄으로써 더는 그녀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의 행동이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남는다고 말합니다.

아내를 버렸다고 해서 그 배신까지 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신명기 24:1–4에는 이혼과 재혼에 관한 법적 규정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말라기 2:16만으로 이혼에 관한 모든 상황을 단일한 규칙으로 정리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폭력이나 학대의 피해자가 안전을 위해 관계를 떠나는 상황과, 상대방을 부당하게 버리고 해를 끼치는 이 본문의 상황을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말라기가 책망하는 사람은 배신당한 사람이 아니라 배신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너희 영을 지켜라. 배신하지 마라.」 이 명령은 15절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옵니다. 행동을 바꾸라는 요구에 앞서, 자신의 마음과 태도를 살피라는 요청입니다.

언약을 깨뜨리는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벌어지는 외적인 사건만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바라보는 태도가 변하고, 약속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며, 자신에게 유리한 이유로 신실함을 포기하는 과정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3절의 눈물은 문장상으로는 하나님이 예물을 받아들이지 않으시는 일 때문에 탄식하는 예배자들의 눈물로 읽기 쉽습니다. 그러나 뒤에 등장하는 배신당한 아내들의 고통을 함께 떠올리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15절에서 본디새김은 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아내를 그렇게 배신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이 해석에서는 ‘영’이 남아 있다는 말이 도덕적 분별이나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판단할 능력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은 문장 사이의 관계가 매우 압축되어 있어 다른 읽기도 가능합니다. 창세기의 결혼 이야기와 연결하는 읽기에서는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하나의 관계로 만드셨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그 하나 됨의 목적이 하나님께 속한 후손을 얻는 데 있다고 이해합니다. 창세기 2:24는 남자가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이 창조 이야기는 결혼의 지속성과 결합을 강조하는 말라기 2장의 문맥과 잘 어울립니다. ‘그 하나’를 특정한 인물로 이해하는 읽기는 아브라함과 같은 조상을 염두에 두고, 그가 후손을 얻으려 했던 일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 인물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어느 특정한 인물을 가리킨다고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씨’를 하나님께 속한 후손, 하나님을 경외하는 후손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을 근거로 말라기가 특정한 혈통의 생물학적 순수성을 가르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결혼 관계의 신실함과 공동체의 신앙적 지속성이 중요한 문맥에서, 하나님께 속한 다음 세대라는 의미가 자연스럽습니다. 16절은 오랫동안 ‘하나님이 이혼을 미워하신다’는 뜻으로 읽혀 왔습니다. ‘미워하다’와 ‘내보내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일인칭으로 말씀하시는 문장이 아니라, 삼인칭으로 읽을 수 있는 형태를 가집니다. 따라서 하나님 자신이 이혼을 미워하신다고 선언하신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아내를 미워하여 내보내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후자를 선택합니다. 문맥상 아내를 배신하는 남편의 행동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읽기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문법적 모호성을 모두 해소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해석을 택하더라도 14–16절에서 비난받는 것은 아내를 배신하고 해를 끼치는 행동입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 하나님을 지치게 한 질문

말라기 2:17 본문 →

마지막 절에서 장면은 다시 한번 바뀝니다.

너희는 너희 말로 여호와야훼를 지치게 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무엇으로 지치게 했습니까?」라고 말했다. 너희가 「악을 행하는 자는 모두 여호와야훼의 눈에 좋으며, 그는 그들을 기뻐한다.」라고 말하거나, 「정의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라고 말함으로써 그랬다.말라기 2:17 · 본디새김

이 질문은 말라기 1장부터 이어지는 대화의 흐름에 들어맞습니다. 하나님이 문제를 지적하시면 백성은 무엇이 문제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말이나 행동을 직접 드러내십니다.

이번에는 제물이 아니라 그들이 사용하는 말이 문제입니다.

이 질문은 왜 문제가 되는가

‘정의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라는 말은 그 자체로 반드시 불신앙적인 질문은 아닙니다.

시편 73:3–12에서는 악인들이 번영하는 모습을 보며 괴로워합니다. 하박국 1:2–4에서는 악과 폭력이 계속되는데도 하나님이 왜 개입하지 않으시는지 묻습니다. 그러므로 고통 가운데 정의를 요구하는 모든 질문을 말라기 2:17의 죄와 동일하게 볼 수는 없습니다.

이 문맥에서는 그 질문이 단순한 고통의 탄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덕적 판단을 의심하거나 뒤집는 말과 연결됩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모두 여호와야훼의 눈에 좋다’는 말은 하나님이 악을 보고도 모른 척하신다는 불평을 넘어, 하나님이 악을 기뻐하신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갑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불의와 배신을 미워하시고, 제사장들의 잘못을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백성은 오히려 하나님이 악을 기뻐하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말라기가 드러내는 신앙의 모순입니다.

정의를 요구하면서 자신의 불의는 보지 않는다

문제는 정의를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들은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잘되는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말라기 3:14–15에서도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잘된다는 불평이 다시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그보다 앞서 하나님이 이미 공동체 내부의 불의를 지적하셨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묻는 사람들 역시 그 정의 앞에 서야 합니다.

이것은 불의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자신의 고통을 문제 삼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라기 2장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한 이들의 편에 하나님이 증인으로 서 계십니다.

말라기 2장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대답을 여기서 제시하지 않습니다.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며 어떻게 행동하실 것인지는 다음 장에서 이어질 주제입니다.

오늘의 의미 — 하나님은 우리가 잊어버린 사람을 기억하신다

말라기 2:1–17 본문 →

하나님은 자신과 맺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일 뿐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에게 맺은 약속을 어떻게 지키는지도 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참된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보여 주셨습니다. 남편들에게는 아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일깨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잊어버린 관계의 본래 의미를 되찾아 주십니다.

그 아내는 제단 앞에 서서 자신을 변호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 장에서 직접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녀를 대신하여 말씀하십니다.

그 여자는 네 동반자이며 네 언약의 아내인데, 네가 그녀를 배신했다고.

그 장면을 지나면 마지막 절의 질문은 더욱 묵직하게 들립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

백성은 하나님이 정의롭게 행동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그들의 가르침을 살피셨고, 편파적인 판단을 고발하셨으며, 배신당한 아내의 증인이 되셨습니다.

그들이 정의의 하나님을 찾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이 돌아보지 않던 사람의 편에서 증언하고 계셨습니다.

정의의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말라기 2장은 그 질문에 곧장 하나님의 자리를 가리켜 대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이 누구의 말을 들으시고, 누구의 약속을 기억하시며, 누구의 배신을 고발하고 계신지를 보여 줍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