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25장

이 장의 자리 · 22–25장 · 모압 평원의 일들

저주가 실패한 자리의 배신

민수기 25장은 앞선 이야기와 매우 불편한 대조를 이룹니다.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발람을 불렀지만 실패했습니다. 발람의 입에서는 저주 대신 축복이 나왔고, 하나님은 그 백성을 향한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에서 이스라엘은 다른 신에게 엎드립니다.

외부의 저주는 이스라엘을 무너뜨리지 못했지만, 이스라엘은 자기들 가운데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리기 시작합니다.

백성은 다른 신들의 제사에 참여하고, 그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시고, 염병이 퍼집니다. 이스라엘은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울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가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회중 앞에 나타납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창을 들고 일어나 두 사람을 죽입니다. 그때 염병이 멈춥니다.

이 장면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그 행동을 인정하시고 비느하스에게 ‘평화의 언약’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을 죽인 행동과 평화의 언약은 어떻게 연결됩니까? 비느하스의 행동은 무엇을 해결했습니까? 이 사건을 오늘의 독자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 장은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저버릴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심판 가운데서도 그 백성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 가시는지 보여 줍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925장 본문 읽기 →

시팀에서 시작된 일 — 식탁에서 제단으로

민수기 25:1–3 본문 →

이스라엘은 시팀에 머물렀다. 백성은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 시작했다.민수기 25:1 · 본디새김

시팀은 요단강 동쪽의 모압 평원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여호수아 2:1과 3:1에서도 이곳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 머물렀던 장소로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바로 앞에 두고 있습니다. 광야의 긴 여정이 거의 끝나 가는 시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새로운 위기가 시작됩니다.

그 여자들은 자기들의 신들에게 제사드리는 자리에 백성을 불렀다. 백성은 먹고 그 여자들의 신들에게 엎드렸다.민수기 25:2 · 본디새김

처음에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일이 다른 신들을 향한 경배로 이어집니다.

고대의 제사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나누어 먹는 자리가 아닐 수 있었습니다. 제의에 참여하는 공동체가 자신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함께 먹는 행위는 종교적 소속과 충성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결합했다’는 표현의 무게

이스라엘은 바알브올과 결합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에게 분노했다.민수기 25:3 · 본디새김

이 말은 단순히 바알브올에게 한 차례 절을 했다는 표현보다 강합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을 바알브올에게 매어 붙였다는 의미입니다.

‘바알브올’은 브올과 관련된 바알 신을 가리킵니다. 바알이라는 명칭은 여러 지역에서 사용되었고, 여기서는 브올이라는 지역적 이름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앞의 민수기 23:28에서 발락이 발람을 브올 꼭대기로 데려갔다는 사실입니다. 그곳에서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못했습니다.

발락이 브올에서 시도한 저주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브올의 바알에게 스스로 결합했습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34:14–16의 경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야훼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고 명령하시면서, 주변 민족들의 제사에 참여하고 그들의 신들을 따르는 위험을 경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하겠다는 선언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이 묘사하는 과정에서는 사람들과의 관계, 제사 식사, 다른 신을 향한 경배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성적 관계와 종교적 배신은 서로 구별되면서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본문을 모든 이방인과의 관계 자체가 죄라는 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모세의 아내도 미디안 사람입니다(출애굽기 2:21). 이 장에서 하나님이 문제 삼으시는 것은 민족 간의 접촉 일반이 아니라, 다른 신을 섬기며 여호와야훼와의 관계를 배신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배신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조금 더 깊이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바알브올 사건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게 합니다. 그리고 바알브올을 따른 사람들은 멸망했지만, 여호와야훼께 굳게 붙어 있었던 사람들은 살아남았다고 말합니다. 민수기 25:3에서는 이스라엘이 바알브올과 ‘결합했다’고 했는데, 신명기 4:4에서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여호와야훼께 ‘굳게 붙어 있었다’고 말합니다. 두 표현은 히브리어에서 서로 다른 동사를 사용하지만, 누구와 관계를 맺고 누구에게 충성하는가라는 공통된 문제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분노하신 이유와 어려운 처형 명령

민수기 25:4–5 본문 →

이스라엘이 바알브올과 결합하자 여호와야훼가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고, 시나이산에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출애굽기 19:5–6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이자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신에게 엎드리는 것은 이러한 관계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분노를 언약 관계의 배신에 대한 응답으로 묘사합니다.

출애굽기 34:14는 여호와야훼를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처럼 불안해서 타인의 관심을 독점하려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 관계에서 다른 신을 섬기는 배신을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했다. 「백성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데려다가, 여호와야훼를 위해 해가 비치는 데서 그들을 처형하여라. 그러면 여호와야훼의 타오르는 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물러갈 것이다.」민수기 25:4 · 본디새김

본문은 ‘해가 비치는 데서’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공개적인 심판의 성격을 분명하게 나타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각자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 가운데 바알브올과 결합한 자들을 죽여라.」민수기 25:5 · 본디새김

이 장면에서 본문은 이스라엘의 죄를 가벼운 종교적 실수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공동체가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저버리는 중대한 배신으로 다룹니다.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 아래에서 주어진 구체적인 심판 명령입니다. 오늘의 종교 공동체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죽일 권리를 얻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 이야기는 공적인 심판 명령에서 한 개인의 행동으로 급격히 이동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문장의 가장 직접적인 읽기에서는 ‘백성의 우두머리들’이 처형의 대상으로 이어집니다. 본디새김은 이 읽기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절에서 모세가 재판관들에게 바알브올과 결합한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두머리들을 소집하여 그들로 하여금 범죄자들을 처형하게 한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지도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심판을 강조합니다. 두 번째는 지도자들에게 맡겨진 사법적 책임을 강조합니다. 이 구절만으로 지도자 전원이 실제로 죄에 참여했거나 처형되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처형 명령이 얼마나 실행되었는지도 이후의 서술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호카(⁨יָקַע⁩)는 공개적으로 매달거나 처형하여 드러내는 행동과 관련되어 이해되지만, 정확한 방식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울고 있는 곳에 들어온 두 사람

민수기 25:6 본문 →

바로 그때,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한 남자가 와서, 모세의 눈앞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의 눈앞에서 미디안 여자 하나를 자기 형제들에게 데려왔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울고 있었다.민수기 25:6 · 본디새김

본문은 회중이 왜 울고 있는지 이 절에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 뒤에 염병이 멎었다는 말과 사망자의 수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미 공동체에 심각한 재앙이 닥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남자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가 모세에게 무엇을 보여 주려 했는지, 두 사람이 어떤 관계였는지는 본문이 직접 밝히지 않습니다. 다만 그의 행동이 공개적이었다는 사실은 강조됩니다.

‘모세의 눈앞’과 ‘온 회중의 눈앞’이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개인적 만남이 아닙니다. 심판과 애통이 진행되는 공동체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행동입니다.

왜 이번에는 미디안 여자인가

처음에는 모압 여자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6절에서는 미디안 여자가 나타납니다.

그들의 등장은 바알브올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진행되는 바로 그 순간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에서는 하나님이 이 미디안 여자의 사건을 브올의 일과 직접 연결하십니다.

공동체 전체가 자기들이 처한 위기 앞에서 애통하고 있을 때, 그 남자의 행동은 그 위기의 심각성과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제시됩니다.

그를 보고 한 사람이 일어납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22:4에서 모압과 미디안의 장로들이 함께 이스라엘의 위협을 논의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두 집단이 이 지역의 사건에서 함께 등장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미디안 여자가 앞서 언급된 모압 여자들과 똑같은 행동을 했다고 자동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25:6 자체는 이 남자가 여자를 데려왔다는 사실을 기록합니다. 그들이 어떤 제사에 참여했는지, 정확히 어떤 행위를 하려고 했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비느하스의 창과 멈춘 염병

민수기 25:7–9 본문 →

제사장 아론의 손자이며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이를 보고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었다.민수기 25:7 · 본디새김

이 계보가 중요한 이유는 다음 단락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제사장 직분에 관한 언약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손에 든 것은 제사장의 의식 도구가 아니라 창입니다.

그는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천막 안으로 들어가 두 사람을 꿰찔렀다. 곧 이스라엘 남자를 꿰찌르고 그 여자의 배를 꿰찔렀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에게 내린 염병이 멎었다.민수기 25:8 · 본디새김

본문은 두 사건을 직접 연결합니다.

왜 비느하스의 행동 뒤에 염병이 멈추는가

본문은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두 주지 않습니다.

9절에서는 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2만 4천 명이었다고 말합니다. 독자는 그제야 앞서 만남의 천막에서 울고 있던 회중의 슬픔이 얼마나 큰 재앙과 관련되어 있었는지 알게 됩니다.

하지만 사망자의 수를 이용해 비느하스의 모든 행동을 자동으로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제시하는 신학적 평가는 뒤이어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에서 주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비느하스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조금 더 깊이

‘천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쿠바(⁨קֻבָּה⁩)는 이곳에서 매우 드물게 쓰이는 표현입니다. 이것을 특별한 제의용 천막이라고 확정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또한 여자의 배를 꿰찔렀다는 말은 있지만, 두 사람의 정확한 자세나 창이 어떤 경로로 몸을 통과했는지는 본문이 밝히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0:8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이 음행한 사건을 경고로 언급합니다. 그곳에는 하루에 2만 3천 명이 죽었다는 숫자가 나오며, 민수기 25:9는 염병으로 죽은 사람을 2만 4천 명이라고 기록합니다. 하루 사망자와 전체 사망자를 구분하면 두 진술을 조화시킬 가능성이 있지만, 어느 집계 방식이 사용되었는지는 본문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이 사건을 언급하는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과거의 폭력적인 심판 방식을 재현하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상숭배와 음행을 경계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투를 품은 사람

민수기 25:10–11 본문 →

하나님은 모세에게 비느하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이며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나의 격노를 돌이켰다. 그가 그들 가운데서 나의 질투를 품고 열심을 보였으므로, 나는 나의 질투로 이스라엘 자손을 멸하지 않았다.」민수기 25:11 · 본디새김

이것은 비느하스가 단순히 개인적인 분노를 폭발시켰다는 설명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의 행동을 자신이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향해 나타내신 반응과 연결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께 속한 백성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알브올에게 자신을 매어 붙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배신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넘기지 않으십니다.

여기에서 이야기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독자는 비느하스가 두 사람을 죽인 장면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전체의 멸망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 장에서 비느하스의 행동에 내려진 하나님의 평가는, 더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한다는 요구가 아니라 심판이 멈추고 공동체가 살아남았다는 결과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설명이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모든 윤리적 질문을 없애지는 않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특정한 행동을 인정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그 행동의 방식에 대해 오늘의 독자가 느끼는 충격까지 해소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약속은 뜻밖에도 ‘평화’에 관한 것입니다.

창을 든 사람에게 주어진 평화의 언약

민수기 25:12–13 본문 →

「그러므로 말하여라. 『보아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준다.』」민수기 25:12 · 본디새김

여기서 평화는 무엇인가

민수기 25장의 앞부분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렸고,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이 공동체를 위협했습니다. 그런데 비느하스의 행동 뒤에 염병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이상 이스라엘을 멸하지 않으셨다고 선언하십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평화의 언약은 심판이 멈추고 하나님과 공동체의 관계가 계속될 수 있게 된 상황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것은 폭력 자체가 평화라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은 특정한 언약적 위기에서 비느하스의 행동을 인정하고, 그와 그의 후손에게 특별한 약속을 주시는 사건을 설명합니다.

「『그 언약은 그와 그 뒤를 이을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 될 것이다. 그가 자기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보이고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속죄했기 때문이다.』」민수기 25:13 · 본디새김

이것은 비느하스가 아론의 손자라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아론과 그의 후손에게 제사장 직분이 주어졌다는 배경은 출애굽기 28–29장에 나타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비느하스의 행동을 계기로 그와 그의 후손에게 지속되는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 특별히 선언됩니다.

비느하스가 ‘속죄했다’는 말의 의미

13절은 비느하스의 행동을 ‘속죄했다’고 설명합니다.

비느하스는 제단에서 속죄 제물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창을 들고 두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속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그의 행동이 공동체에 닥친 하나님의 분노를 돌이키고, 이스라엘이 심판 아래에서 멸망하는 상황을 막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구절을 근거로 그 두 사람의 죽음이 일반적인 속죄 제물과 동일하게 기능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들의 죽음을 제사나 속죄 제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거룩함과 속죄에 관계된 직무를 맡습니다. 이 장에서 비느하스는 공동체의 배신과 하나님의 심판이 충돌하는 순간에 개입했고, 그 결과 심판이 멈추었습니다.

비느하스가 받은 약속의 중심에는 더 많은 사람을 심판할 권한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를 위한 제사장 직분이 놓여 있습니다.

그는 한 번의 행동으로 사건을 마무리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언약은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지는 책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뒤늦게 밝혀진 이름들 — 시므리와 코즈비

민수기 25:14–15 본문 →

비느하스에게 주어진 언약 선언 뒤에 본문은 갑자기 죽임당한 두 사람의 이름을 밝힙니다.

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자와 함께 죽임을 당한 사람의 이름은 살루의 아들 시므리였다. 그는 시므온 사람들에게 속한 한 가문의 지도자였다.민수기 25:14 · 본디새김
죽임을 당한 미디안 여자의 이름은 추르의 딸 코즈비였다. 추르는 미디안에서 부족들의 우두머리이자 한 가문의 우두머리였다.민수기 25:15 · 본디새김

두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이야기는 그들을 단순히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자로 불렀습니다. 그들이 죽고 염병이 멈춘 뒤에야 이름과 집안이 밝혀집니다.

이스라엘과 미디안 양쪽의 지도층 가문이 이 사건에 관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지위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의 행동은 지도자의 책임이라는 차원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고까지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코즈비 역시 이름과 가문이 있는 인물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녀가 이스라엘 남자와 어떤 관계였는지, 그 관계에 들어간 개인적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18절에서는 이 사건이 미디안 사람들의 계략과 연결되지만, 그렇다고 코즈비 개인의 모든 행동과 의도를 본문이 밝혀 준 것은 아닙니다.

또한 죽임당한 두 사람이 단순한 상징이나 도구로만 남지 않고, 구체적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었음을 독자에게 알립니다. 이 본문을 해석할 때 그들의 죽음을 너무 쉽게 추상화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본문은 그 죽음이 공동체의 심판을 멈추는 사건과 연결되었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죽임당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지우지는 않습니다.

모압에서 미디안으로 —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민수기 25:16–19 본문 →

이제 하나님은 모세에게 새로운 명령을 주십니다.

「너희는 미디안 사람들을 적대하고 그들을 쳐라.」민수기 25:17 · 본디새김

처음 사건은 모압 여자들과 관련되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미디안 사람들이 심판의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그들은 브올의 일과 그들의 누이인 미디안 지도자의 딸 코즈비의 일로 너희에게 꾸민 계략들을 써서 너희를 적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즈비는 브올의 일로 염병이 일어난 날에 죽임을 당했다.」민수기 25:18 · 본디새김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계략들’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 결합한 사건이 단순히 우연한 만남의 결과만은 아니었음을 밝힙니다. 미디안 사람들의 의도적인 적대 행위가 그 사건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25장은 누가 그 계략을 처음 계획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실행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후에 민수기 31:16에서는 발람의 계책과 브올의 사건을 직접 연결합니다. 따라서 민수기 전체를 읽으면 발람의 역할도 다시 평가하게 됩니다.

미디안은 모세의 장인과 아내의 출신 배경과도 관련된 민족입니다(출애굽기 2:16–21). 따라서 성경이 모든 미디안 사람을 처음부터 본질적으로 악한 민족으로 묘사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 장에서 심판의 이유는 혈통이나 민족적 정체성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18절에서 지적하시는 적대적인 행위입니다.

이 역시 고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특정한 전쟁 명령으로 읽어야 합니다. 오늘의 민족적 적대감이나 종교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반 명령으로 옮길 수 없습니다.

민수기 25장은 미디안과의 전쟁을 기록하지 않은 채 끝납니다. 그 대신 마지막에 짧은 문장이 등장합니다.

염병이 지나간 뒤,민수기 25:19 · 본디새김

염병이 지나간 뒤, 하나님은 모세와 엘르아살에게 다시 백성의 수를 세도록 명령하십니다(민수기 26:1–2). 민수기 초반부에서 첫 번째 인구조사는 광야 여정을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다음 세대는 약속의 땅을 향한 새로운 준비를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실제로 본디새김의 절 구분에서는 이 표현이 다음 장 첫절로 이어집니다. 일반적인 장절 구분에서는 민수기 26:1에 포함되는 말입니다.

결론 — 염병이 지나간 뒤

민수기 25:1–19 본문 →

민수기 25장은 이스라엘의 배신이 얼마나 깊었는지 보여 주면서도, 그 배신이 하나님의 약속의 마지막 문장이 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남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지위는 그들의 불순종을 정당화하는 면허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의 불순종이 곧 하나님의 약속 전체를 취소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심판이 지나간 자리에는 죽은 사람들이 남았고, 애통하는 사람들도 남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이 이끌어 가실 백성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이 겪은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죄와 심판은 실제로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백성과의 역사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염병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백성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