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6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시나이에서 센 사람들

자신을 드리는 사람과 복을 주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을 특별히 드리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민수기 6장은 그 질문에 뜻밖의 대답을 내놓습니다. 성막에서 제사장으로 일할 필요도 없고, 레위 지파에서 태어날 필요도 없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성별하겠다는 특별한 서원을 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 6장은 사람이 하나님께 자신을 구별하여 드리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백성 위에 두시고 복을 주시는 이야기로 끝납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106장 본문 읽기 →

제사장이 아니어도 하나님께 특별히 성별될 수 있다

민수기 6:1–2 본문 →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야기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남자나 여자가 여호와야훼를 위해 자신을 성별하려고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 서원을 한다면,」민수기 6:2 · 본디새김

앞서 레위 사람들의 성막 봉사는 특정한 지파와 가문에 속한 사람들에게 맡겨졌습니다. 제사장 직무는 더욱 제한되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나실인 서원은 그와 다릅니다.

본문은 특정한 지파나 제사장 가문을 조건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여호와야훼를 위해 자신을 특별히 성별하는 서원을 할 수 있습니다.

나실인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특별히 구별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살아가면서, 정해진 기간 동안 특별한 규정을 따릅니다. 레위 사람은 레위의 후손으로 태어나기 때문에 그 지파에 속합니다. 그러나 나실인은 스스로 서원함으로써 특별한 성별의 기간을 시작합니다.

물론 이것이 고대 이스라엘의 남성과 여성에게 모든 법적 권한이 동일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민수기 30장은 특정한 상황에서 아버지나 남편이 여성의 서원을 취소할 수 있는 규정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민수기 6:2 자체는 나실인으로 성별될 수 있는 대상을 남녀 모두로 명시합니다.

본문은 세 가지 규정을 제시합니다.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을 멀리할 것,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을 것, 시체에 가까이 가지 않을 것입니다.

포도주만이 아니라 포도까지 —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 이상의 의미

민수기 6:3–4 본문 →

첫 번째 규정은 술에 관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포도주와 취하게 하는 술을 멀리해야 한다. 포도주로 만든 식초와 취하게 하는 술로 만든 식초를 마셔서는 안 된다. 어떤 포도즙도 마셔서는 안 되며, 생포도와 말린 포도를 먹어서도 안 된다.」민수기 6:3 · 본디새김

이 구절만 보면 나실인 서원이 술에 취하지 않기 위한 금주 서약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들을 읽으면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가 나실인으로 성별되어 있는 모든 날 동안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은 씨에서 껍질까지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된다.」민수기 6:4 · 본디새김

여기에는 취하게 하는 술뿐 아니라 취하게 하지 않는 포도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이 규정의 핵심을 단순히 술에 취하지 않는 절제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포도주와 포도는 고대 이스라엘의 일상생활과 잔치에 익숙한 음식이었습니다. 신명기 7:13은 포도주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일부로 언급하고, 시편 104:14–15는 하나님이 주시는 포도주가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노래합니다.

나실인은 평소에 허락된 것을 특별한 기간 동안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자신이 여호와야훼께 성별되었다는 사실을 삶으로 나타냅니다.

이것은 죄를 피하는 것과 구별되는 성별의 한 모습입니다.

죄악은 원래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실인의 규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허락된 것까지 일정 기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본문은 왜 하필 포도나무에서 나는 것을 선택했는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포도가 기쁨이나 풍요와 연결된다는 사실은 이 규정의 의미를 이해하는 배경이 될 수 있지만, 나실인이 반드시 즐거움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는 뜻으로 확대할 근거는 없습니다. 그가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특정한 음식과 음료입니다.

그리고 이 제한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반복해서 ‘나실인으로 성별되어 있는 모든 날 동안’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포도를 먹는 일처럼 평범한 행동조차 자신의 서원과 관계된 일이 됩니다.

하나님께 드린 서원이 일상의 식탁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머리 위에 있는 성별의 표

민수기 6:5–8 본문 →

두 번째 규정은 머리카락에 관한 것입니다.

「그가 나실인으로 성별되겠다고 서원한 모든 날 동안 그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어서는 안 된다. 여호와야훼를 위해 자신을 성별한 날들이 다 찰 때까지 그는 거룩해야 하며,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야 한다.」민수기 6:5 · 본디새김

포도나무에 관한 규정이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가의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사람의 모습 자체가 달라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카락은 길어집니다. 따라서 나실인의 성별은 단지 자기 마음속에 간직한 결심으로 남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몸에 눈에 보이는 흔적이 나타납니다.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나 자매가 죽더라도 그들 때문에 자신을 부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의 하나님을 위한 성별의 표가 그의 머리 위에 있기 때문이다.」민수기 6:7 · 본디새김

대제사장은 머리에 거룩한 관을 씁니다. 나실인은 서원 기간 동안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으며, 그 머리 위에 하나님을 위한 성별의 표가 있다고 묘사됩니다.

이것은 뒤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성별이 부정해졌을 때 왜 머리카락을 밀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부모가 죽어도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 규정은 더욱 엄격합니다.

가족이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고 마지막을 돌보는 일은 중요한 가족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나실인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시체로 인한 부정을 피해야 합니다.

레위기 21:1–3에서는 일반 제사장도 시체로 인한 부정을 피해야 하지만, 부모와 자녀와 형제 등 가까운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는 예외가 인정됩니다. 반면 레위기 21:10–12에서는 대제사장이 부모의 죽음 때문에도 부정해져서는 안 된다고 명령합니다. 민수기 6장의 나실인에게는 바로 이처럼 엄격한 제한이 적용됩니다.

그렇다고 나실인이 대제사장이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사장 직무와 나실인의 성별은 서로 다릅니다. 다만 이 규정은 나실인이 서원 기간 동안 유지해야 하는 거룩한 상태가 얼마나 엄중하게 취급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 나실인에게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명령이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가족을 향한 감정이나 돌봄 전체를 금하지 않습니다. 금지되는 것은 시체에 가까이 가서 의례적으로 부정해지는 일입니다.

나실인 서원은 특정한 시간에만 수행하는 종교 의식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살아가는 날들 전체에 적용되는 성별입니다.

5절부터 8절까지 반복되는 ‘모든 날 동안’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 점을 강조합니다. 서원의 기간이 계속되는 한, 일상의 여러 순간에서 그 성별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성별에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부정해졌는데, 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까?

민수기 6:9–12 본문 →

「누군가 그의 곁에서 갑자기, 뜻밖에 죽어 그의 성별된 머리를 부정하게 했다면, 그는 자신이 정결해지는 날, 곧 일곱째 날에 머리를 밀어야 한다.」민수기 6:9 · 본디새김

앞에서는 나실인이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실인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사건이 등장합니다. 본문은 ‘갑자기, 뜻밖에’라는 표현을 겹쳐 사용하여 그 사건의 돌발성을 강조합니다.

나실인이 일부러 시체에 접근한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예기치 않게 그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도 본문은 그의 성별된 머리가 부정해졌다고 말합니다.

의례적 부정은 고의적인 범죄 없이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일곱째 날에 머리를 밀고, 여덟째 날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제사장에게 가져오도록 명령하십니다. 제사장은 한 마리를 정화 제물로, 다른 한 마리를 번제로 바치고 그를 위해 속죄합니다.

「그는 나실인으로 성별될 날들을 여호와야훼를 위해 다시 성별하고, 한 살 된 어린 숫양 한 마리를 속건 제물로 가져와야 한다. 앞서 지낸 날들은 계산에서 빠진다. 그가 나실인으로 성별된 상태가 부정해졌기 때문이다.」민수기 6:12 · 본디새김

나실인 서원은 단순히 정해진 날짜만 채우는 일이 아닙니다. 그 날짜들이 하나님께 성별된 상태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사고를 겪으면 이전의 모든 신앙적 노력이 무가치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이 고의 없이 부정해진 사람의 헌신 자체를 부정하셨다고 말할 근거도 없습니다. 본문은 나실인 서원이라는 특별한 의례 제도 안에서 성별 기간이 어떻게 계산되는지를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영원히 나실인 자격에서 제외하지 않으십니다. 머리를 밀고, 제물을 바치고, 성별의 기간을 새롭게 시작하도록 하십니다.

앞의 날들이 계산에서 빠진다는 명령은 엄격합니다. 그러나 그 규정 안에는 부정해진 상태를 정결하게 하고 서원을 이어 갈 수 있는 절차도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11절에는 나실인이 시체 때문에 ‘죄를 지은 일’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을 근거로 그가 고의적인 도덕적 잘못을 저질렀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이 제시한 사건은 뜻밖의 죽음으로 인해 성별 상태가 부정해진 경우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죄와 정화에 관련된 용어들은 의례적 상태를 처리하는 제사 규정에서도 사용됩니다. 여기서 요구되는 속죄 역시 그러한 정결의 회복과 관련됩니다.

머리카락을 불에 놓고, 다시 포도주를 마시다

민수기 6:13–21 본문 →

나실인 서원에는 시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는 절차도 있습니다.

「나실인에 관한 법은 이러하다. 그가 나실인으로 성별되어 있는 날들이 다 차는 날에는 그를 만남의 천막 입구로 데려와야 한다.」민수기 6:13 · 본디새김

이것은 이 장의 일반적인 나실인 서원이 일정한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성별임을 보여 줍니다. 그 기간의 길이를 본문이 일률적으로 정하지는 않지만, 정해진 날들이 다 차면 서원을 마칠 수 있도록 규정합니다.

특별한 성별을 마치는 데도 제물이 필요하다

나실인은 번제와 정화 제물과 친교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또한 누룩 없는 빵과 곡식 제물, 부어 드리는 제물도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나실인은 만남의 천막 입구로 나아가고, 제사장은 정해진 제물을 여호와야훼 앞에 드립니다. 나실인 서원이 개인의 자발적인 결심으로 시작되었다고 해서, 그 성별의 모든 과정이 개인의 판단에만 맡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작은 자발적이지만, 그 서원을 지키고 마치는 방법은 하나님이 정하신 규정에 따릅니다.

성별의 표였던 머리카락은 어떻게 되는가?

「나실인은 만남의 천막 입구에서 자신의 성별된 머리를 밀어야 한다. 그 성별된 머리의 머리카락을 가져다가 친교 희생 제물 아래에 있는 불 위에 놓아야 한다.」민수기 6:18 · 본디새김

서원 기간 동안 특별한 의미를 가졌던 머리카락은 그 기간이 끝났다고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제사 의식 속에서 처리됩니다. 그 머리카락은 하나님께 성별된 기간을 나타내는 표지였고, 서원을 마치는 의식에서 특별히 다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실인의 머리카락은 자르지 않는 것이 순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머리카락을 미는 것이 순종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언제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방식에 따라 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별의 표지를 영원히 붙들고 있는 것이 이 서원의 목적은 아닙니다. 그 표지가 가리키던 기간을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마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뒤에 나실인은 포도주를 마셔도 된다」

「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야훼 앞에서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드려야 한다. 이것은 흔들어 바친 가슴과 봉헌물로 바친 넓적다리에 더하여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거룩한 몫이다. 그 뒤에 나실인은 포도주를 마셔도 된다.」민수기 6:20 · 본디새김

서원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금지되었던 것이 포도주였습니다. 그런데 서원이 끝나자 이제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는 허락이 주어집니다.

나실인의 성별은 하나님께 드리는 특정한 기간의 특별한 헌신입니다.

그 기간에는 평소에 허락된 것을 멀리합니다. 그러나 그 기간을 마친 뒤에는 다시 허락된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서원하는 나실인과 그가 나실인으로 성별된 일로 여호와야훼에게 바치는 예물에 관한 법이다. 이는 그가 형편이 닿는 대로 더 바치는 것과는 별도다. 그는 자신이 서원한 그대로, 나실인으로 성별되는 일에 관한 법에 따라 행해야 한다.」민수기 6:21 · 본디새김

자발적으로 시작한 서원이라고 해서 가볍게 바꾸거나 마음대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신명기 23:21–23도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체 없이 이행해야 하지만, 서원하지 않은 것 자체는 죄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서원은 강요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원했다면 그 약속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조금 더 깊이

사사기 13:5에서는 삼손이 태중에서부터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구별될 것이라고 선언됩니다. 그에게 주어진 성별은 일반적인 기간제 서원과 다른 특별한 경우입니다. 따라서 삼손의 이야기를 근거로 민수기 6장의 모든 나실인이 평생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민수기 6장의 규정에서는 서원을 마치는 날 머리를 미는 일이 명시적으로 포함됩니다. 여기서 정화 제물은 정상적인 서원 완료 절차에 포함된 제물입니다. 그것이 어떤 특정한 도덕적 죄를 속하기 위한 것인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서원이 잘못된 일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서원을 하나님께 드린 특별한 성별로 인정하며, 어떻게 마쳐야 하는지 규정합니다.

특별히 성별된 사람의 이야기 다음에 모든 백성을 위한 축복이 나온다

민수기 6:22–23 본문 →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야기하여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복을 빌어 주어라. 그들에게 말하여라.」민수기 6:23 · 본디새김

나실인에 관한 명령과 제사장의 축복은 서로 다른 규정입니다. 본문도 둘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실인 서원을 마친 사람에게만 이 축복을 선언했다거나, 서원을 잘 지켜야 비로소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앞의 나실인 서원은 특별한 헌신을 원하는 사람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의 축복은 그러한 특별한 서원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주어집니다. 성막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도, 나실인 서원을 하지 않은 사람도,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이라면 이 축복의 대상에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복은 특별한 헌신을 한 소수에게만 허락된 보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베풀기 원하시는 선물로 선포됩니다.

짧은 세 문장에 담긴 하나님의 얼굴과 평화

민수기 6:24–26 본문 →

제사장의 축복은 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축복 — 복을 주고 지키시는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네게 복을 주고 너를 지키기를 바란다.』」민수기 6:24 · 본디새김

예를 들어 시편 121:7–8은 여호와야훼께서 사람을 모든 악에서 지키시고, 그의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지키신다고 노래합니다. 민수기 6장의 축복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를 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복을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기를 기원합니다.

이스라엘은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는지 모두 알지 못합니다. 적을 만날 수도 있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축복은 그런 어려움이 전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약속하는 말은 아닙니다.

복을 주시는 분이 동시에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백성의 삶 가운데 선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축복 — 얼굴을 비추시는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자기 얼굴을 네게 비추고 네게 은혜를 베풀기를 바란다.』」민수기 6:25 · 본디새김

구약에서 얼굴은 누군가를 향한 관심과 관계를 나타내는 중요한 이미지입니다. 얼굴을 숨기는 것은 관계의 단절이나 고통스러운 부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시편 13:1에서는 시인이 여호와야훼께 언제까지 자기에게서 얼굴을 숨기실 것인지 묻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얼굴이 빛난다는 것은 하나님이 선한 관심과 호의를 베푸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얼굴이 비친다는 표현과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축복은 단순히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기원에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선하게 바라보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세 번째 축복 — 얼굴을 들고 평화를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너를 향해 자기 얼굴을 들고 네게 평화를 주기를 바란다.』」민수기 6:26 · 본디새김

마지막 문장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추다’가 아니라 ‘들다(⁨נָשָׂא⁩)’라는 동사가 사용됩니다. 여기서는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얼굴을 사람에게 향하게 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등을 돌리거나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를 호의적으로 대하시기를 바라는 축복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평화’가 등장합니다. 문맥에 따라 안녕, 온전함, 안전, 평안, 관계의 안정과 같은 의미를 포함합니다.

복을 주시는 분도 여호와야훼이고, 지키시는 분도 여호와야훼이며, 은혜와 평화를 베푸시는 분도 여호와야훼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원문에서 첫 번째 축복은 세 단어, 두 번째는 다섯 단어, 세 번째는 일곱 단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 문장 모두 여호와야훼의 이름을 명시하면서, 여호와야훼가 행하실 두 가지 일을 짝으로 제시합니다. 세 문장에 사용된 단어들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선하게 행동하시기를 바라는 하나의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시편 67:1에서도 비슷한 언어로 다시 나타납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복을 주시며 자기 얼굴을 비추시기를 구합니다. 시편은 민수기의 축복에 사용된 언어를 되받아, 하나님의 은혜가 땅의 모든 민족에게 알려지기를 바라는 기도로 확장합니다(시편 67:1–2).

수많은 백성에게 "네게"라고 말씀하시다

민수기 6:26 본문 →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 전체에게 복을 빌어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실제 축복의 문장에서는 계속해서 단수형이 사용됩니다. ‘네게’, ‘너를’, ‘너를 향해’라는 표현이 모두 한 사람을 향해 말하는 형태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도 2인칭 남성 단수형이 사용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의 인격적인 대상으로 부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중이 축복을 들을 때 각자가 자신에게 선포되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파와 집안으로 구별되고, 군대의 인원으로 계수됩니다. 그러나 축복의 문장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각각 ‘네게’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속한 지파의 규모나 성막에서 수행하는 직무가 이 축복의 내용을 다르게 만들지 않습니다. 동쪽 진영의 사람도, 서쪽 진영의 사람도 같은 축복을 듣습니다. 레위 사람도, 다른 지파의 사람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과 보호와 은혜와 평화를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27절은 이 축복이 실제로 누구의 일인지를 더욱 분명하게 합니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주겠다" — 축복의 최종 주체

민수기 6:27 본문 →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위에 내 이름을 둘 것이며, 나는 그들에게 복을 주겠다.」민수기 6:27 · 본디새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백성 위에 두지만, 실제로 복을 베푸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이것은 제사장의 축복을 어떤 자동적인 효력을 가진 주문처럼 이해하지 않도록 합니다. 하나님이 그 축복을 명령하셨고,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내 이름을 둘 것’이라는 표현은 무엇을 뜻할까요?

구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정체성과 권위, 임재와 깊이 연결됩니다. 출애굽기 20:24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게 하시는 곳에 임하여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12:5에서도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장소가 언급됩니다.

그러나 민수기 6:27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 위에 놓인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말을 듣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 아래 살아가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백성 위에 놓이는 방식은 그 축복의 선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여호와야훼께서 이집트에서 구원하시고 언약을 맺으신 백성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두시고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실인의 서원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헌신입니다.

맺음 — 머리카락을 내려놓은 사람과 백성 위에 놓인 이름

민수기 6:1–27 본문 →

나실인은 자신이 하나님께 성별되었다는 표지를 머리 위에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 전체 위에 자신의 이름을 두라고 명령하십니다. 나실인의 성별에는 끝나는 날이 있지만, 이 장의 마지막 말씀은 그가 서원을 마친 뒤에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남깁니다.

광야의 진영에는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서원을 지키고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그러한 서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이 축복을 선포할 때 그들 모두가 같은 이름을 듣습니다.

여호와야훼.

그분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을 지키시며, 자신의 얼굴을 비추시고, 평화를 주시기를 바란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끝에서 여호와야훼 자신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주겠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