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5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시나이에서 센 사람들
하나님이 머무시는 진영과 감추어진 잘못
누군가의 몸에 부정한 상태가 생겼습니다. 그는 진영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죄를 고백하고 피해를 배상해야 합니다.
어떤 남편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합니다. 그러나 증인도 없고, 실제로 잘못이 있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민수기 5장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상황을 나란히 다룹니다. 처음에는 신체의 부정에 관한 규정이 나오고, 이어서 죄의 고백과 배상에 관한 명령이 나오며, 마지막에는 부정이 의심되는 아내에게 시행하는 길고 복잡한 의식이 등장합니다.
야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머무시는데, 그분의 백성 안에 부정과 잘못과 해결되지 않은 의심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앞선 장들에서는 사람들이 어디에 머물고 성막을 어떻게 운반해야 하는지를 정했습니다. 이제 본문은 그 진영 안에서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룹니다.
문제는 점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민수기 5장은 마지막 질문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오늘날 독자에게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의식으로 나타납니다. 그 낯선 의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장이 무엇을 부정이라고 부르고 무엇을 죄라고 부르는지 구별해야 합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진영 밖으로 나가야 하는 사람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차라아트가 있는 모든 사람과 유출이 있는 모든 사람과 시체 때문에 부정해진 모든 사람을 진영에서 내보내게 하여라.」민수기 5:2 · 본디새김
이 명령을 읽으면 하나님이 병에 걸리거나 죽은 사람을 만진 이들을 벌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의례적 부정과 도덕적 죄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차라아트는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특정한 한센병과 동일시할 수 없습니다. 레위기 13–14장에서 차라아트는 사람의 피부뿐 아니라 옷과 집에도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유출 역시 레위기 15장에 규정된 여러 신체적 유출과 관련됩니다. 그 가운데에는 질병과 관련된 상태도 있고, 정상적인 생리 현상에 해당하는 상태도 있습니다.
시체로 인한 부정은 죽은 사람과의 접촉에서 발생합니다. 민수기 19:11–13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진 이가 일정 기간 부정해지며 정결하게 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세 범주에 속하는 모든 사람이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닙니다.
가족의 장례를 치르는 사람이 시체 때문에 부정해질 수 있습니다. 신체의 자연스러운 현상 때문에 부정한 상태에 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진영 밖으로 나가라는 명령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방식과 구별됩니다.
「너희는 남자든 여자든 내보내야 한다. 그들을 진영 밖으로 내보내어, 그들이 자기들의 진영들, 곧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을 부정하게 하지 못하게 하여라.」민수기 5:3 · 본디새김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유는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라는 표현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신다는 사실은 단순히 성막 안의 공간만 거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이 머무시는 공동체 전체의 생활에도 거룩함에 관한 규정이 적용됩니다.
성막의 경계는 이제 진영의 경계와 연결됩니다.
그렇다고 이 규정을 오늘날의 전염병 격리 정책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세 범주의 상태가 모두 전염성을 띠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제시하는 이유는 의례적 부정으로부터 하나님이 거하시는 진영을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앞에서 군사 인원과 성막 봉사자를 집계할 때는 특정한 성별과 연령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명령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모두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요구되는 정결의 규정이 진영에 속한 모두에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14장에는 차라아트가 있던 사람이 정결하게 된 뒤 공동체로 돌아오는 절차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15장과 민수기 19장에도 부정한 상태에서 정결하게 되는 규정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명령의 목적을 부정한 사람들을 공동체에서 영원히 제거하는 데 있다고 읽어서는 안 됩니다.
거룩한 진영의 경계를 유지하면서도, 부정한 상태에서 정결하게 되는 길이 율법 안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4절에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합니다. 그리고 이제 본문은 전혀 다른 종류의 부정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이번에는 신체의 상태가 아니라, 사람의 잘못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한 사람이 돌려주어야 할 것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어떤 남자나 여자가 사람이 짓는 온갖 죄 가운데 하나를 저질러 여호와야훼를 배신하고 그 사람에게 죄책이 생기면,」민수기 5:6 · 본디새김
그런데 바로 다음 구절에서는 그 사람이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상대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사람에게 잘못을 저지른 일이 하나님에 대한 배신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물론 6절만 보면 매우 넓은 범위의 죄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배상 규정을 보면 특히 물질적 손해를 발생시킨 잘못이 중심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레위기 6:1–7의 배상 규정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맡겨진 물건을 속이거나, 강탈하거나, 잃어버린 물건을 발견하고도 거짓말하는 경우 등이 다루어집니다.
사람에게 저지른 잘못은 하나님께 드리는 종교적 행위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를 고백해야 한다. 각 사람은 배상할 것을 본래 액수대로 돌려주고 거기에 그 액수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자기가 잘못을 저지른 상대에게 주어야 한다.」민수기 5:7 · 본디새김
이것은 원래 빼앗거나 가로챈 것만 돌려주면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피해자는 단순히 잘못이 없었던 상태로 돌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추가 배상을 받습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돌려줄 수 없다면?
「그 상대를 대신하여 배상금을 돌려받을 친족이 없으면, 여호와야훼에게 돌려주는 그 배상금은 제사장의 것이다. 이것은 제사장이 그 사람을 위해 속죄할 때 쓸 속죄의 숫양과는 별도다.」민수기 5:8 · 본디새김
민수기 5장에서는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직접 배상할 수 없고 그를 대신하여 배상금을 받을 친족도 없는 경우를 상정합니다. 이 조항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피해자나 그 친족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배상 책임을 면제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두 종류의 책임이 구별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잘못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배상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이루어지는 속죄의 절차입니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성물을 드린다는 것은 소유 관계가 바뀌는 일입니다
9–10절은 제사장에게 가져오는 성물과 봉헌물의 귀속을 규정합니다. 이 구절들은 앞의 배상 규정에 비해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부분 모두 누구에게 무엇이 돌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됩니다.
10절의 첫 문장, 「각 사람의 성물은 그 사람의 것이다」는 원문에서 ‘그 사람’이 바치는 사람을 가리키는지 제사장을 가리키는지 해석이 갈립니다. 본디새김은 이어지는 ‘사람이 제사장에게 주는 것은 그 제사장의 것이다’라는 문장과 대비하여, 아직 드리지 않은 성물과 실제로 제사장에게 주어진 성물을 구별합니다.
이렇게 읽으면 성물을 바치는 행위도 막연한 종교적 표현이 아닙니다. 무엇이 누구에게 속하는지가 실제로 결정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는 일은 사람 사이의 책임을 회피할 구실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장은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들어갑니다.
잘못이 있었다면 배상하라고 명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이 실제로 있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금 더 깊이
레위기 19:11–18은 도둑질과 거짓말, 이웃에 대한 억압과 불의한 재판을 금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미가 6:6–8에서는 하나님께 어떤 제물을 드려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정의와 신실한 사랑,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이 본문들이 민수기 5장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이웃에게 책임 있게 행동하는 일을 분리할 수 없다는 주제에서 서로 연결됩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는 제단에 예물을 드리려다가 형제가 자신에게 원망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먼저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복음 5:23–24). 이는 민수기 5장의 배상 규정을 직접 해설한 말씀은 아니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과 인간관계의 회복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주제적으로 이어집니다.
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 — 질투의 법이 시작됩니다
마지막 규정은 혼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배신의 문제를 다룹니다.
그런데 본문은 실제로 간음한 사람이 드러난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13절에서는 다른 남자가 그 여자와 동침한 일이 남편에게 드러나지 않았고, 증인도 없으며, 여자가 붙잡히지도 않았다는 상황을 제시합니다.
증인도 없고 발각되지도 않았다면 일반적인 증언에 따른 판결이 어렵습니다. 신명기 19:15는 범죄나 잘못을 확정할 때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두세 증인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규정합니다.
「질투하는 마음이 남편을 휩싸서 그가 아내를 질투하고 그 아내가 부정해졌거나, 또는 질투하는 마음이 남편을 휩싸서 그가 아내를 질투하지만 그 아내는 부정해지지 않았다면,」민수기 5:14 · 본디새김
따라서 남편이 질투한다는 사실은 아내가 실제로 잘못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만일 남편의 의심 자체가 곧 죄의 증거라면 뒤에 나오는 의식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는 것만으로 아내가 유죄가 되었다고 선언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의 의심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요?
본문은 그 문제를 성소로 가져갑니다.
조금 더 깊이
한편 13절의 ‘붙잡히지도 않았으며’라는 표현에는 중요한 해석 문제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니트파사(תָּפַשׂ)는 ‘붙잡히다’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현장에서 발각되거나 붙잡히지 않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에 ‘증인도 없고’라는 설명이 있으므로 이 읽기는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신명기 22:25–27처럼 성폭력과 관련된 법적 문맥에서는 붙잡거나 강제로 제압하는 행위가 피해자의 책임 여부와 연결됩니다. 따라서 여기에서도 강제로 붙들린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논의됩니다. 어느 의미가 본문에서 결정적인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신명기 22:25–27은 강제로 성폭력을 당한 여자에게 죄책을 돌리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므로, 민수기 5장을 성폭력 피해자에게 죄책을 묻는 일반적 규정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고소장이 아니라 곡식 제물을 들고 오는 남편
「그 남자는 자기 아내를 제사장에게 데려와야 한다. 또 아내를 위한 예물로 보릿가루 십분의 일 에파를 가져와야 한다. 그 위에 기름을 부어서는 안 되고 그 위에 유향을 놓아서도 안 된다. 그것은 질투의 곡식 제물, 곧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기억의 곡식 제물이기 때문이다.」민수기 5:15 · 본디새김
이것은 일반적인 재판 장면과 다릅니다.
증인을 세우고 증언을 검토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제사장 앞에서 종교적 의식이 진행됩니다. 일반적인 곡식 제물은 기름과 유향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레위기 2:1). 그러나 이번 제물에는 기름과 유향을 더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이것을 단순히 죄의 곡식 제물이라고 부르지 않고 ‘질투의 곡식 제물’이라고 부릅니다. 아내의 죄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 제물은 ‘죄악을 기억나게 하는’ 제물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 어떤 일을 기억나게 한다는 표현은 그것을 하나님 앞에 제시하여 그분의 주의와 판단에 맡기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경우에는 드러나지 않은 잘못의 문제가 의식을 통해 하나님 앞에 놓입니다.
이어서 제사장은 여자를 여호와야훼 앞에 세웁니다. 그리고 거룩한 물을 질그릇에 담고 성막 바닥의 흙먼지를 넣습니다. 본문은 그 물에 특별한 독초나 약물을 넣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자의 머리를 풀어 놓습니다
「제사장은 그 여자를 여호와야훼 앞에 세우고 여자의 머리카락을 풀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여자의 두 손바닥 위에 기억의 곡식 제물을 놓아야 한다. 그것은 질투의 곡식 제물이다. 제사장의 손에는 저주를 가져오는 쓴 물이 있어야 한다.」민수기 5:18 · 본디새김
여자는 아직 잘못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미 엄중한 의식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이 의식은 당시의 남편과 아내가 동등한 법적 권한을 가진 현대적 재판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남편의 의심이 의식을 시작하게 만들고, 의심받는 아내가 신체적·사회적 부담을 지는 구조입니다.
그러면서도 여자의 죄책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구별은 끝까지 유지합니다.
조금 더 깊이
제물에 기름과 유향을 사용하지 않는 점은 레위기 5:11에서 가난한 사람이 드리는 속죄의 곡식 제물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두 제물이 같은 규정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제물은 남편의 질투와 확인되지 않은 잘못의 문제에 특별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18절에서 ‘풀어 놓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라(פָּרַע)는 머리를 풀거나 흐트러뜨리는 행위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묶었던 머리카락을 풀어 내리는 행위로 볼 수도 있고, 머리에 씌운 것을 벗겨 머리를 드러내는 행위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동작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가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여호와야훼 앞에 세워진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아멘, 아멘" — 여자가 자기 입으로 받아들이는 맹세
제사장은 여자에게 맹세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맹세의 내용은 두 가지 조건으로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는 여자가 결백한 경우입니다.
「제사장은 그 여자에게 맹세하게 하고 여자에게 말해야 한다. 『어떤 남자도 너와 동침하지 않았고, 네가 남편을 둔 채 빗나가 부정해지지 않았다면, 저주를 가져오는 이 쓴 물로부터 해를 입지 마라.』」민수기 5:19 · 본디새김
물은 무조건 여자를 해치도록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두 번째 조건에서는 여자가 실제로 남편을 배신한 경우를 다룹니다. 그때에는 저주의 결과가 그녀에게 임하기를 선언합니다.
「『저주를 가져오는 이 물이 네 속으로 들어가 배를 부풀게 하고 넓적다리를 처지게 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그 여자는 『아멘, 아멘.』 하고 말해야 한다.」민수기 5:22 · 본디새김
여자가 두 번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은 제사장이 선언한 조건부 맹세를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를 오늘날의 자유롭고 대등한 동의 절차와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 의식에서 여자는 남편의 의심으로 인해 제사장 앞에 서게 되었고, 정해진 맹세에 응답해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또한 ‘아멘’이라고 대답했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죄의 유무가 밝혀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의식의 논리에 따르면 죄의 유무는 뒤따르는 결과를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글로 기록된 저주가 물에 씻겨 들어갑니다
「제사장은 이 저주들을 문서에 쓰고, 쓴 물 속으로 그 글을 씻어 지워야 한다.」민수기 5:23 · 본디새김
기록된 말은 더 이상 문서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되고, 그 글을 씻어 낸 물을 여자가 마시게 됩니다. 이 행동은 말을 기록하는 행위와 물을 마시는 행위를 연결합니다.
이 물은 단순히 성막 바닥의 흙먼지가 섞인 물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 앞에서 선포된 저주의 말이 의식적으로 연결된 물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 물을 ‘저주를 가져오는 쓴 물’이라고 부릅니다.
증인이 없어 사람들이 밝혀내지 못한 일을 여호와야훼 앞에 가져옵니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한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쓴’이라는 표현을 반드시 실제 물의 맛이 극도로 쓰다는 뜻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히브리어 마림(מַר)은 쓰라림이나 괴로운 결과와 관련될 수 있습니다. 문맥에서 강조되는 것은 그 물이 저주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의식이 어떤 자연적·의학적 작용으로 죄의 유무를 확인했는지는 본문에서 설명하지 않습니다. 물과 흙먼지와 지워진 글자가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켜 간음 여부를 판별한다는 주장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이 의식이 역사적으로 언제나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정하신 의식 안에서 무죄와 유죄의 결과가 갈릴 것이라고 선언하지만, 그 작동을 현대적인 실험이나 의학적 설명으로 입증하지는 않습니다.
쓰라림인가, 결백인가 — 물을 마신 뒤의 두 결과
이제 여자는 물을 마셔야 합니다.
확실한 것은 곡식 제물과 저주의 물이 하나의 의식 안에서 함께 다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그 결과가 두 갈래로 제시됩니다.
실제로 부정해졌다면
「제사장이 그 여자에게 물을 마시게 했을 때, 그 여자가 부정해져 자기 남편을 배신했다면, 저주를 가져오는 그 물이 여자 안으로 들어가 쓰라림을 일으킬 것이다. 여자의 배가 부풀고 넓적다리가 처질 것이며, 그 여자는 자기 백성 가운데서 저주할 때 드는 본보기가 될 것이다.」민수기 5:27 · 본디새김
여기서 본문의 관심은 그 증상이 의학적으로 어떤 이름을 갖는가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드러나지 않았던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이 저주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선언에 있습니다.
결백하다면
그러나 본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여자가 부정해지지 않고 정결하다면, 해를 입지 않고 아이를 잉태할 것이다.」민수기 5:28 · 본디새김
‘해를 입지 않고’라는 표현은 앞의 엄중한 저주에 대응합니다. 여기서 아이를 잉태한다는 말은 결백한 여자가 반드시 즉시 임신한다는 뜻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저주로부터 벗어나는 결과와 생식의 가능성을 함께 제시합니다.
중요한 것은 결백한 여자의 미래가 저주의 결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24절에서는 제사장이 여자에게 물을 마시게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25–26절에서는 그다음에 곡식 제물을 받아 흔들고, 기념 몫을 제단에서 태운 뒤 물을 마시게 하라고 다시 말합니다. 이를 이해하는 한 방법은 24절을 물을 마시는 절차에 대한 앞선 요약으로 보고, 25–26절이 제물의 처리를 포함한 실제 순서를 자세하게 설명한다고 읽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곡식 제물을 바친 다음 물을 마시는 것이 구체적인 순서가 됩니다. 다른 가능성은 이 단락에 서로 다른 의식 설명이 결합되어 있어서 반복과 순서상의 긴장이 남아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이 여자에게 반드시 두 차례 물을 마시게 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27절의 히브리어 본문은 배와 넓적다리에 해당하는 신체 부위를 언급합니다. 그런데 ‘넓적다리’는 다른 문맥에서 생식과 관련된 부위를 완곡하게 가리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28절에서 결백한 여자가 아이를 잉태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저주의 결과가 생식 능력의 손상과 관련되어 있다고 읽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곧바로 유산이나 낙태, 자궁의 특정한 질병, 영구적인 불임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여자가 이미 임신한 상태라는 조건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의식을 임신 중인 여자의 태아를 유산시키는 절차로 설명하는 것은 본문에 명시되지 않은 상황을 전제합니다. 따라서 가장 신중한 읽기는 본문이 어떤 심각한 신체적 저주를 묘사하고 있으며, 그 결과가 생식 능력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은 있으나 정확한 의학적 의미는 확인할 수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남자는 죄책에서 벗어나고" — 가장 불편한 마지막 문장
질투의 의식에 관한 긴 설명이 끝나면 본문은 마지막으로 이 법의 적용 대상을 요약합니다.
29–30절은 아내가 실제로 부정해진 경우뿐 아니라 남편이 아내를 질투하는 경우도 이 법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합니다. 그런데 31절은 이 장을 읽는 독자에게 매우 어려운 질문을 남깁니다.
「그 남자는 죄책에서 벗어나고, 그 여자는 자기 죄책을 져야 한다.」민수기 5:31 · 본디새김
이 문장을 앞뒤 문맥 없이 읽으면 남편은 언제나 죄가 없고, 여자는 언제나 죄가 있다는 뜻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읽으면 14절과 28절에서 명시한 결백한 여자의 경우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31절의 ‘그 여자는 자기 죄책을 져야 한다’는 표현은 실제로 죄책이 있는 여자가 자신의 죄에 대한 결과를 감당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남편이 죄책에서 벗어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문맥에서는 남편이 규정된 절차에 따라 의심의 문제를 제사장에게 가져왔을 때, 그 의식과 관련하여 죄책을 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남편이 근거 없이 악의적인 의심을 품었을 때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또한 의심이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남편이 아내에게 사과하거나 배상해야 한다는 조항도 없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남아 있는 법적 비대칭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혼인 관계와 가족법은 오늘날의 동등한 부부 관계를 전제로 만들어진 제도가 아닙니다. 민수기 5장에는 남편이 아내의 정절을 의심하는 절차가 자세하게 규정되지만, 아내가 남편의 부정을 의심할 때 동일한 의식을 요구할 수 있다는 대응 조항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규정과 오늘날의 적용은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요?
이 본문은 고대 이스라엘의 특정한 제사장 제도와 성막 의식 안에 놓여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남편이 아내를 의심할 때 비슷한 의식을 시행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또한 누군가가 상대를 의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공개적인 수치심을 감수하게 해도 된다는 근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감추고 이 의식이 오직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하는 것은 본문을 넘어서는 해석입니다. 반대로 이 규정이 의심받는 여자의 무죄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분명히 결백한 경우와 실제로 잘못한 경우를 구별합니다. 그러나 그 둘을 구별하는 절차 자체는 남성과 여성에게 대칭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 긴장은 본문의 일부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맺음 — 물속으로 지워진 글자들
민수기 5장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진영에서 거룩함이 성막의 경계만이 아니라, 사람의 책임과 관계와 진실의 문제에까지 닿아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의례적 부정에는 정결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고, 재산상의 잘못에는 고백과 배상이 요구되며, 증거 없는 간음 의심에는 별도의 의식이 마련됩니다.
마지막에는 한 여자가 여호와야훼 앞에 섭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증인은 없습니다. 남편의 의심이 옳은지 그른지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은 그녀의 손에 곡식 제물을 놓고, 거룩한 물에 성막 바닥의 흙먼지를 넣습니다. 그리고 저주의 말을 문서에 기록합니다.
그 글자들은 물속으로 씻겨 사라집니다.
장의 마지막 장면에는 여전히 물이 담긴 질그릇이 있습니다. 그 물에는 성막 바닥의 흙먼지가 섞여 있고, 문서에서 씻겨 내려온 저주의 말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밝혀내지 못한 일을 여호와야훼 앞에 가져온 것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