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시나이에서 센 사람들
거룩한 것을 보지 못하고 짊어지는 사람들
성막을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성막에서 가장 거룩한 물건들을 운반할 사람들은 그 물건에 손을 대서도 안 되고, 덮는 모습을 보려고 들어가서도 안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민수기 4장의 엄격한 규정은 거룩한 물건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그 물건을 운반할 사람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앞 장에서 레위 사람들은 성막의 각 부분을 맡았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그 일을 수행해야 하는지가 밝혀집니다.
성막이 서 있을 때에는 모든 기구가 정해진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길을 떠나려면 성막을 걷어야 합니다. 거룩한 공간을 구성하던 물건들이 이제 사람들의 어깨와 손에 실려 길을 가야 합니다.
민수기 4장은 성막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을 준비합니다.
생후 한 달이 아니라 서른 살부터 — 소속과 복무의 차이
「서른 살부터 쉰 살까지, 만남의 천막에서 일을 하려고 복무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그 대상이다.」민수기 4:3 · 본디새김
이번 집계의 첫 번째 특징은 나이의 변화입니다.
앞 장에서는 레위 지파에 속한 생후 한 달 이상의 남자들을 집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른 살부터 쉰 살까지의 사람들만 세도록 명령하십니다.
앞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레위 사람들을 확인하는 일이 중심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실제로 만남의 천막에서 일하고 성막의 기구를 운반할 사람들을 편성합니다.
‘복무에 들어오는(צָבָא)’이라는 표현의 원어는 군대나 조직된 복무 집단을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앞에서 이스라엘의 군사 인원을 집계할 때 등장했던 말과 같은 계열입니다. 이들은 성막을 위한 일에 동원되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그 일이 군사 조직처럼 책임과 질서를 갖춘 복무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성막을 걷고, 거룩한 기구를 운반하고, 다시 설치하는 일에는 정해진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누가 참여할 수 있는지, 무엇을 맡을 것인지가 분명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서른 살부터 쉰 살까지일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막을 운반하는 일이 육체적 힘과 경험을 요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복무 능력과 관련된 연령 기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 8:24–25에서는 레위 사람이 스물다섯 살부터 봉사에 참여하고, 쉰 살이 되면 정규 복무에서 물러나도록 규정합니다. 이를 두고 스물다섯 살부터 준비와 보조 업무를 수행하다가 서른 살부터 정식 복무를 시작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이 그러한 훈련 단계를 명시적으로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가능한 조화 해석이지 확정된 설명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 레위 집안 가운데 그핫 자손부터 말씀하십니다.
「그핫 자손이 만남의 천막에서 맡을 일은 지극히 거룩한 것들에 관한 것이다.」민수기 4:4 · 본디새김
‘지극히 거룩한 것들’이라는 표현은 문맥에 따라 ‘지성소’라는 공간을 가리킬 수도 있고, 특별히 거룩한 물건이나 제물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바로 뒤에 궤와 상과 등잔대와 제단들이 나옵니다. 이 물건들은 모두 지성소 안에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지성소라는 방 하나를 관리한다는 뜻보다, 성막 안의 지극히 거룩한 물건들을 다루는 임무를 가리킨다고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물건들에 바로 다가갈 수 없습니다.
성막을 걷는 첫 번째 일은 궤를 덮는 것이다
「진영이 출발할 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들어와 가리는 안쪽 휘장을 내리고, 그것으로 증언의 궤를 덮어야 한다.」민수기 4:5 · 본디새김
출애굽기 26:31–33에 따르면 이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휘장 안쪽에는 증언의 궤가 놓여 있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던 휘장이 이제 증언의 궤를 감싸는 덮개가 됩니다.
성막이 서 있을 때 휘장은 공간을 구분합니다. 궤는 휘장 안쪽에 있고, 정해진 자격과 절차 없이 그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막이 해체되면 그 공간을 이루던 구조물들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그 물건을 아무에게나 드러내지 않도록, 먼저 휘장으로 감싸라고 명령하십니다. 정지해 있을 때 공간의 경계로 나타나던 구별이, 이동할 때에는 물건을 감싸는 덮개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 위에 타하쉬 가죽 덮개를 놓고, 맨 위에 온통 청색인 천을 펼친 다음 궤의 운반채들을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민수기 4:6 · 본디새김
다른 여러 성물은 타하쉬 가죽이 가장 바깥쪽 덮개가 되지만, 증언의 궤는 그 바깥에 다시 온통 청색인 천을 펼칩니다. 본문은 그 차이를 기록하지만 이유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궤는 손으로 직접 들거나 끌고 가는 물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구조와 방식에 따라 운반해야 합니다.
성막을 옮기는 일은 출발하기 전에 이미 세밀한 준비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준비는 궤 하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타하쉬는 정확히 어떤 동물의 가죽을 가리키는지 확정되지 않은 명칭입니다. 이를 바다동물의 가죽이나 특정한 가공 가죽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본문만으로 그 재료를 확정할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25:15에서는 증언의 궤에 꽂힌 운반채를 빼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따라서 민수기 4:6의 ‘운반채들을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표현을 반드시 운반채를 평소에 빼 두었다가 이동할 때 새로 꽂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핵심은 궤를 운반할 수 있는 상태로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이동 중에도 거룩한 질서는 중단되지 않는다
궤에 관한 명령이 끝나자 하나님은 상, 등잔대, 금 제단, 봉사 기구들, 그리고 바깥 제단을 차례로 다루십니다.
각 기구에 다른 준비 방법이 정해져 있습니다.
늘 놓아두는 빵은 길을 떠나도 그 자리에 있다
「임재의 상 위에는 청색 천을 펼치고, 그 위에 접시들과 종지들과 대접들과 술 제물용 주전자들을 놓아야 한다. 늘 놓아두는 빵도 그 위에 있어야 한다.」민수기 4:7 · 본디새김
이것은 출애굽기 25:30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임재의 빵을 늘 자기 앞에 두라고 하신 명령과 연결됩니다. 레위기 24:5–9에서는 그 빵을 준비하고 안식일마다 새로 놓는 규정이 나옵니다.
그런데 민수기 4장에서 성막은 곧 이동할 예정입니다.
성막이 움직인다고 해서 그 빵을 늘 놓아두어야 한다는 규정이 중단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늘 놓아두는 것으로 정해진 빵은, 광야를 이동하는 동안에도 그 상과 함께합니다.
등잔대는 기구들과 함께 덮인다
9–10절에서는 등잔대와 그 부속 기구들을 청색 천으로 덮고, 타하쉬 가죽 덮개 안에 넣어 멜대 위에 놓도록 합니다. 본문은 등잔대뿐 아니라 등잔, 집게, 불똥 받는 그릇, 기름 기구들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등잔대 하나만 잘 운반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등잔대를 돌보는 데 필요한 기구들도 함께 준비되어야 합니다.
성소에서 정해진 기능을 수행하는 물건들은 작은 것까지 빠짐없이 관리됩니다.
제단마다 덮는 방식이 다르다
11절에서는 금 제단을 청색 천과 타하쉬 가죽으로 덮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제단에서 재를 치우고 그 위에 자색 천을 펼쳐야 한다.」민수기 4:13 · 본디새김
여기서 제단은 앞의 금 제단과 구별되는, 성막 뜰의 번제단으로 이해됩니다. 재를 치우고 불씨 그릇과 갈고리와 삽 등의 기구를 놓는다는 설명이 그 점을 보여 줍니다.
금 제단과 번제단은 모두 거룩한 봉사에 사용되지만, 준비 과정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 차이를 모두 상징으로 풀이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청색과 진홍색과 자색의 모든 차이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준비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수행해야 합니다.
그핫 자손의 일은 그다음에 시작됩니다.
운반할 수 있지만 만질 수는 없다
「진영이 출발할 때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물과 성소의 모든 기구를 덮는 일을 마치고 나서야 그핫 자손이 들어와 그것들을 운반해야 한다. 그들은 성물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손을 대면 죽을 것이다. 이것들이 그핫 자손이 만남의 천막에서 운반할 짐이다.」민수기 4:15 · 본디새김
이 명령의 핵심은 ‘운반하라’와 ‘손을 대지 마라’가 동시에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운반할까요?
앞에서 언급된 궤와 상과 제단의 운반채가 그 방법을 보여 줍니다. 운반하는 사람은 성물 자체가 아니라 운반채를 이용합니다. 등잔대와 부속 기구들도 별도로 정해진 운반 방식에 따라 옮깁니다.
그들의 임무는 거룩한 물건을 운반하되, 하나님이 허락하신 방식으로만 그 물건에 접근하는 것입니다.
성물을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이 성물 자체에 독립적인 마법적 능력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물건의 신비한 힘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하나님께 구별된 성물이며, 하나님이 접근과 운반 방법을 정하셨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위험은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함의 경계를 무시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엄격한 규정 한가운데서 엘르아살의 이름이 나옵니다.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이 감독할 것은 등불용 기름과 향료로 만든 향과 늘 바치는 곡식 제물과 기름부음에 쓰는 기름이다. 그는 성막 전체와 그 안의 모든 것, 성소와 그 기구들을 감독해야 한다.」민수기 4:16 · 본디새김
성소의 거룩한 기구뿐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예배와 봉사에 필요한 재료들까지 감독의 대상인 것입니다. 성막을 이동시키는 일은 건물을 해체하고 짐을 옮기는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새로운 장소에 도착했을 때에도 성막에서 정해진 봉사가 계속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그핫 자손의 생명에 관해 더욱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사무엘하 6:6–7에서는 웃사가 궤를 붙들었다가 죽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궤를 실은 수레가 흔들릴 때 손을 뻗었습니다. 그 본문에는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이 있지만, 민수기 4장의 규정은 왜 궤를 직접 만지는 행위가 중대한 문제였는지를 이해하는 배경이 됩니다.
"그들이 죽지 않고 살도록" — 규정의 목적이 드러나다
「너희는 그핫 씨족들이 이루는 무리가 레위 사람들 가운데서 끊어지게 하지 마라.」민수기 4:18 · 본디새김
앞에서는 성물을 만지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핫 씨족들이 끊어지지 않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위험한 일을 맡기시고 모든 책임을 그핫 자손에게 떠넘기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죽지 않고 자신의 일을 수행하도록, 그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도 책임을 부여하십니다.
「그들이 지극히 거룩한 것들에 가까이 갈 때 죽지 않고 살도록, 그들을 위해 이렇게 하여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들어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을 일과 운반할 짐을 정해 주어야 한다.」민수기 4:19 · 본디새김
그핫 자손을 한 집단으로 소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누가 무엇을 운반할지 구체적으로 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업무 효율의 문제가 아닙니다. 본문은 그들이 ‘죽지 않고 살도록’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밝힙니다.
생명을 지키는 방법이 정확한 임무 배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 사람이 자신의 임무와 짐을 알면, 허락되지 않은 물건에 접근하거나 다른 사람의 일을 대신하려다가 위험에 빠지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본문이 실제 사고의 모든 원인을 업무 배정의 미비로 설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은 그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로 제사장들의 업무 지정을 명령하십니다.
거룩한 일을 맡긴다는 것은 그 일을 수행할 사람의 생명까지 책임 있게 돌보는 일입니다.
성물을 보는 것도 금지된다
「그들은 성물을 덮는 동안 그것을 보려고 들어와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죽을 것이다.」민수기 4:20 · 본디새김
손을 대는 것뿐 아니라, 허락되지 않은 방식으로 성물을 보려는 접근도 금지됩니다.
본문은 호기심 자체가 언제나 죄악이라는 일반적인 교훈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금지의 대상은 지극히 거룩한 물건들에 대한 자격 없는 접근입니다.
여기서 제사장들은 성물을 독점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를 지키면서 그핫 자손이 자기 일을 수행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는 일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 같은 명령 안에 놓여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원문의 케발라(בָּלַע) 에트 하코데쉬는 직역하기 어려운 구문입니다. 발라는 기본적으로 ‘삼키다’라는 뜻을 가지며, 문맥에 따라 무엇인가를 감싸거나 가리는 행동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해석은 이 구절을 성물들이 덮이는 동안 그것들을 보러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본디새김은 이 해석을 따릅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어 칠십인역은 이 구절을 ‘갑자기’ 또는 ‘순간적으로’ 보는 것과 연결되는 방식으로 옮깁니다. 이에 따라 성물을 한순간이라도 보러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두 해석의 차이는 금지되는 시점의 범위에 있습니다. 어느 읽기가 원문의 뜻을 더 정확히 반영하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출애굽기 19:12–13에서 하나님은 산 둘레에 경계를 정하라고 하셨습니다. 백성은 그 경계를 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임하셨지만, 그 임재에 아무런 준비 없이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 4장에서는 그 거룩함이 이동하는 성막과 연결됩니다.
게르손 자손 — 덮개와 휘장을 운반하다
그핫 자손의 임무가 상세히 설명된 뒤, 본문은 게르손 자손에게로 시선을 옮깁니다.
「게르손 자손도 그들의 아버지 집안별로, 그들의 씨족별로 집계하여라.」민수기 4:22 · 본디새김
여기서 ‘도’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핫 자손이 먼저 소개되었지만, 게르손 자손도 정식으로 집계되고 구체적인 임무를 맡습니다.
게르손 자손에게 주어진 물건들은 성막의 천과 덮개, 입구의 가림막, 뜰의 휘장과 줄, 그리고 관련 기구들입니다. 그핫 자손의 임무가 지극히 거룩한 기구를 운반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면, 게르손 자손의 임무는 성막을 덮고 구획하는 천과 부속품들을 운반하는 데 집중됩니다.
성막의 천과 휘장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성막 안에 아무리 중요한 기구들이 있어도 그것들이 놓일 공간을 제대로 형성할 수 없습니다. 성막의 덮개와 휘장은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고, 성소의 공간을 이루는 역할을 합니다.
게르손 자손에게는 성물에 대한 직접 접촉이나 바라봄을 금지하는 명령이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임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레위 지파 전체에게 하나의 획일적인 규정을 적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각 집안이 맡은 물건의 성격에 따라 구체적인 직무를 정하십니다.
그러나 게르손 자손 역시 독립적으로 마음대로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게르손 자손이 운반할 모든 짐과 수행할 모든 일을 포함한 그들의 모든 직무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너희는 그들이 운반할 모든 짐을 그들에게 맡겨 책임지게 하여라.」민수기 4:27 · 본디새김
28절에서는 이타마르가 그들의 책무를 감독한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엘르아살이 성소와 그 기구들을 감독했다면, 여기서는 이타마르가 게르손 자손의 일을 감독합니다. 아론의 두 아들은 모두 제사장이지만 맡은 감독 책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중요한 일은 모두 한 사람에게 몰려 있지 않습니다. 각자가 맡은 영역이 있고, 그 영역 안에서 책임을 수행합니다.
므라리 자손 — 이름까지 정해 짐을 맡기다
므라리 자손에게는 성막의 판자, 가로대, 기둥, 받침, 말뚝과 줄 등이 맡겨집니다.
이 물건들은 성막의 뼈대를 이루는 구조물들입니다. 그런데 므라리 자손에 관한 규정에는 다른 집안의 설명과 구별되는 표현이 하나 등장합니다.
「그리고 뜰 둘레의 기둥들과 그 받침들과 말뚝들과 줄들, 그 모든 기구와 그 모든 작업에 쓰이는 것들이다. 너희는 그들이 책임지고 운반할 기구들을 이름별로 정해 맡겨라.」민수기 4:32 · 본디새김
히브리어 본문에서 ‘이름별로’에 해당하는 베셰모트(שֵׁם)는 ‘이름들에 따라’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름이 누구의 이름인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운반할 물건들을 하나하나 이름으로 지정하라는 뜻일 수도 있고, 운반할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각자 맡을 물건을 정하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이 두 가능성을 완전히 구별해 주지 않습니다. 본디새김은 문장에 직접 나오는 기구들을 대상으로 읽어 ‘기구들을 이름별로 정해 맡겨라’라고 옮겼습니다.
므라리 자손의 짐은 대강 나누어 맡겨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누가 책임질지 구체적으로 지정해야 합니다.
성막의 구조물들은 각기 맡은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판자와 가로대, 기둥과 받침은 서로 연결되어 성막 전체를 이룹니다. 하나를 잃거나 잘못 운반하면 성막을 다시 세우는 일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앞에서 그핫 자손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임무를 정해 주라는 명령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생명의 위험보다 책임의 정확성이 전면에 나옵니다.
성막을 이동시키는 일은 물건들을 한곳에 모아 옮기는 일이 아닙니다.
각 기구가 제자리에 돌아갈 수 있도록 책임 있게 운반하는 일입니다.
므라리 자손도 이타마르의 감독 아래 일합니다. 그핫 자손의 성소 관련 책무는 엘르아살의 감독과 연결되고,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의 직무는 이타마르의 감독 아래 놓입니다.
그리고 민수기 7:7–9에 이르면 이 구별은 실제 운반 수단의 차이로도 나타납니다.
게르손 자손에게는 수레 두 대와 소 네 마리가, 므라리 자손에게는 수레 네 대와 소 여덟 마리가 주어집니다. 반면 그핫 자손에게는 수레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맡은 성소의 물건들은 어깨로 메어 운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성막을 섬기지만, 맡은 물건에 따라 책임과 방법이 달랐습니다.
8,580명 — 이제 일할 사람들이 정해졌다
34절부터는 앞에서 주어진 명령이 실제로 이행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와 아론과 회중의 지도자들은 각 집안의 사람들을 집계합니다. 그핫 자손은 2,750명, 게르손 자손은 2,630명, 므라리 자손은 3,200명입니다. 세 집안의 인원을 모두 합하면 8,580명입니다.
앞 장의 레위 지파 전체 집계에서는 그핫 자손이 가장 많고 므라리 자손이 가장 적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실제 복무 대상인 서른 살부터 쉰 살까지의 인원을 집계하자 므라리 자손이 가장 많습니다. 본문은 그 수적 차이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제 더 중요한 것은 전체 숫자보다 그 숫자로 집계된 사람들이 어떤 일을 맡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여호와야훼의 지시에 따라 모세를 통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을 일과 운반할 짐을 정해 주었다. 그들을 집계한 것도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명령한 대로였다.민수기 4:49 · 본디새김
이 문장은 처음의 인구조사 명령과 마지막의 임무 배정을 하나로 묶습니다.
레위 사람들의 직무에는 해야 할 일이 있고, 실제로 짊어질 짐이 있습니다. ‘봉사’라는 말만 사용하면 종교적인 역할이나 의식의 의미가 먼저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짐’이라는 말이 함께 등장하면 그 봉사가 얼마나 구체적인 노동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성막을 섬긴다는 추상적인 목표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천을 걷고, 기둥을 운반하고, 받침을 옮기며, 정해진 물건을 어깨에 메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복무할 사람들을 세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사람들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사람을 세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책임을 맡기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맺음 — 각자의 어깨에 놓인 짐
하나님은 성물을 운반할 사람들에게 엄격한 경계를 정하시면서도 그들이 살아서 자기 일을 마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거룩한 짐을 맡기신 하나님은 그 짐을 지는 사람들의 생명도 살피십니다.
우리는 민수기 4장의 운반 규정을 현대의 모든 종교 활동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예배당이나 종교 물품을 민수기의 성물과 동일한 지위에 놓을 근거는 없습니다. 또한 특정한 나이가 되어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거나, 어떤 종교적 지도자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본질적으로 높은 신분이 있다는 식으로 읽을 수도 없습니다.
정확한 역할과 준비 절차 없이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면서도, 그것을 열심이나 헌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지는 않습니까?
민수기 4장의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으십니다.
광야에는 아직 성막이 서 있습니다.
곧 떠날 때가 오면 제사장들이 휘장을 내리고 성물들을 덮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해진 사람들이 들어와 저마다의 짐을 짊어질 것입니다.
그때 아무도 마음대로 물건을 집어 들지 않습니다. 누구도 자기 몫을 임의로 바꾸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순서에 따라, 각자가 맡은 짐을 들고 길을 나섭니다.
민수기 4장은 바로 그 출발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책임을 확인하면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