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시나이에서 센 사람들

거룩한 것을 보지 못하고 짊어지는 사람들

성막을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성막에서 가장 거룩한 물건들을 운반할 사람들은 그 물건에 손을 대서도 안 되고, 덮는 모습을 보려고 들어가서도 안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앞 장에서 레위 사람들은 성막의 각 부분을 맡았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그 일을 해야 하는지가 밝혀집니다.

성막이 서 있을 때에는 모든 도구가 정해진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를 떠나려면 성막을 걷어야 합니다. 거룩한 공간을 이루던 물건들이 이제 사람들의 어깨와 손에 실려 길을 가야 합니다.

그때 거룩함은 어떻게 지켜질까요?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일을 맡은 사람들은 어떻게 안전하게 그 일을 마칠 수 있을까요?

민수기 4장은 성막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을 준비합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94장 본문 읽기 →

생후 한 달이 아니라 서른 살부터 — 소속과 복무의 차이

민수기 4:1–4 본문 →

「서른 살부터 쉰 살까지, 만남의 천막에서 맡은 일을 하러 들어오는 사람을 모두 세어라.」민수기 4:3 · 두루새김

이번 집계의 첫 번째 특징은 나이의 변화입니다.

앞 장에서는 레위 지파에 속한 생후 한 달 이상의 남자들을 세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른 살부터 쉰 살까지의 사람들만 세도록 명령하십니다. 앞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레위 사람들을 확인하는 일이 중심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실제로 만남의 천막에서 일하고 성막의 도구를 운반할 사람들을 정합니다.

성막을 걷고, 거룩한 도구를 운반하고, 다시 설치하는 일에는 정해진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누가 참여할 수 있는지, 무엇을 맡을 것인지가 분명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서른 살부터 쉰 살까지일까요? 본문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막을 운반하는 일이 몸의 힘과 경험을 요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된 나이 기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 8:24–25에서는 레위 사람이 스물다섯 살부터 봉사에 참여하고, 쉰 살이 되면 정규 복무에서 물러나도록 규정합니다. 이를 두고 스물다섯 살부터 준비와 보조 업무를 하다가 서른 살부터 정식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본문이 그러한 훈련 단계를 뚜렷하게 나누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두 본문을 함께 이해하는 가능한 해석이지 확정된 설명은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세 레위 집안 가운데 그핫 자손부터 말씀하십니다.

「그핫 자손이 만남의 천막에서 할 일은 가장 거룩한 물건들을 맡는 것이다.」민수기 4:4 · 두루새김

「가장 거룩한 물건들」이라는 표현은 문맥에 따라 「지성소」라는 공간을 가리킬 수도 있고, 특별히 거룩한 물건이나 제물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바로 뒤에 궤와 상과 등잔대와 제단들이 나옵니다. 이 물건들은 모두 지성소 안에만 놓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지성소라는 방 하나를 관리한다는 뜻보다, 성막 안의 가장 거룩한 물건들을 다루는 임무를 가리킨다고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물건들에 바로 다가갈 수 없습니다.

성막을 걷는 첫 번째 일은 궤를 덮는 것이다

민수기 4:5–6 본문 →

「진영이 출발할 때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성막 안으로 들어가 안쪽 가림막을 내리고, 그것으로 증언의 궤를 덮어야 한다.」민수기 4:5 · 두루새김

출애굽기 26:31–33에 따르면 이 가림막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가림막 안쪽에는 증언의 궤가 놓여 있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던 가림막이 이제 증언의 궤를 감싸는 덮개가 됩니다.

성막이 서 있을 때 가림막은 공간을 구분합니다. 궤는 가림막 안쪽에 있고, 정해진 자격과 절차 없이 그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막을 걷으면 그 공간을 이루던 구조물들이 사라집니다.

서 있을 때 공간의 경계로 나타나던 구별이, 이동할 때에는 물건을 감싸는 덮개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 위에 타하쉬 가죽 덮개를 씌우고, 맨 위에는 온통 파란색인 천을 펼쳐 덮어야 한다. 또 궤의 운반채들을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민수기 4:6 · 두루새김

다른 여러 거룩한 물건은 타하쉬 가죽이 가장 바깥쪽 덮개가 되지만, 증언의 궤는 그 바깥에 다시 「온통 파란색인 천」을 펼칩니다. 본문은 그 차이를 기록하지만 이유까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궤는 손으로 직접 들거나 끌고 가는 물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구조와 방식에 따라 운반해야 합니다.

성막을 옮기는 일은 출발하기 전에 이미 세밀한 준비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준비는 궤 하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타하쉬는 정확히 어떤 동물의 가죽을 가리키는지 확정되지 않은 이름입니다. 바다동물의 가죽이나 특정한 가공 가죽으로 보기도 하지만, 본문만으로 그 재료를 확정할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25:15에서는 증언의 궤에 꽂힌 운반채를 빼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따라서 민수기 4:6의 「운반채들을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는 표현을 반드시 운반채를 평소에 빼 두었다가 이동할 때 새로 꽂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동 중에도 거룩한 질서는 중단되지 않는다

민수기 4:7–14 본문 →

궤에 관한 명령이 끝나자 하나님은 상, 등잔대, 금 제단, 섬기는 데 쓰는 도구들, 그리고 바깥 제단을 차례로 다루십니다.

늘 놓아두는 빵은 길을 떠나도 그 자리에 있다

「내 앞에 빵을 놓는 상에는 파란 천을 펼쳐야 한다. 그 위에 접시와 작은 그릇, 대접과 술 제물을 붓는 주전자를 놓아야 한다. 늘 놓아두는 빵도 그 상 위에 있어야 한다.」민수기 4:7 · 두루새김

이것은 출애굽기 25:30에서 하나님께서 빵을 늘 자기 앞에 두라고 하신 명령과 연결됩니다. 레위기 24:5–9에서는 그 빵을 준비하고 안식일마다 새로 놓는 규정이 나옵니다.

성막이 움직인다고 해서 그 빵을 늘 놓아두어야 한다는 규정이 중단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은 이것이 하나님에게 음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에서 하나님 앞에 놓이는 빵은 이스라엘의 예배와 언약 관계에 속한 규정입니다.

등잔대는 기구들과 함께 덮인다

9–10절에서는 등잔대와 그에 딸린 도구들을 파란 천으로 덮고, 타하쉬 가죽 덮개로 싸서 멜대 위에 놓도록 합니다.

본문은 등잔대뿐 아니라 등잔, 집게, 불똥을 담는 그릇, 기름 도구들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등잔대 하나만 잘 운반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등잔대를 돌보는 데 필요한 도구들도 함께 준비되어야 합니다.

성소에서 정해진 역할을 하는 물건들은 작은 것까지 빠짐없이 관리됩니다.

제단마다 덮는 방식이 다르다

11절에서는 금 제단을 파란 천과 타하쉬 가죽으로 덮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13절의 제단에는 자주색 천이 사용됩니다.

「제단에서 재를 치우고 그 위에 자주색 천을 펼쳐야 한다.」민수기 4:13 · 두루새김

여기서 제단은 앞의 금 제단과 구별되는, 성막 뜰의 번제단으로 이해됩니다. 재를 치우고 불씨를 담는 그릇과 고기 갈고리와 삽 등의 도구를 놓는다는 설명이 그 점을 보여 줍니다.

그 차이를 모두 상징으로 풀이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파란색과 진한 붉은색과 자주색의 모든 차이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성막을 걷을 때에는 물건마다 고유한 절차가 있습니다. 모든 거룩한 물건을 같은 방식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준비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해야 합니다.

그핫 자손의 일은 그다음에 시작됩니다.

운반할 수 있지만 만질 수는 없다

민수기 4:15–16 본문 →

「진영이 출발할 때는 먼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룩한 물건들과 성소의 모든 도구를 덮어야 한다. 그 일을 마친 뒤에야 그핫 자손이 들어와 그것들을 날라야 한다. 그들은 거룩한 물건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손을 대면 죽을 것이다. 이것들이 그핫 자손이 만남의 천막에서 옮길 짐이다.」민수기 4:15 · 두루새김

이 명령의 핵심은 「그것들을 날라야 한다」와 「거룩한 물건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가 동시에 주어진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언급된 궤와 상과 제단의 운반채가 그 방법을 보여 줍니다. 운반하는 사람은 거룩한 물건 자체가 아니라 운반채를 이용합니다. 등잔대와 그에 딸린 도구들도 별도로 정해진 운반 방식에 따라 옮깁니다.

사무엘하 6:6–7에서는 웃사가 궤를 붙들었다가 죽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궤를 실은 수레가 흔들릴 때 손을 뻗었습니다. 그 본문에는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이 있지만, 민수기 4장의 규정은 왜 궤를 직접 만지는 행위가 중대한 문제였는지를 이해하는 배경이 됩니다.

거룩한 물건을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이 그 물건 자체에 독립적인 마법적 능력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본문은 물건의 신비한 힘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하나님께 구별된 거룩한 물건이며, 하나님이 접근과 운반 방법을 정하셨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위험은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함의 경계를 무시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엄격한 규정 한가운데서 엘아자르의 이름이 나옵니다.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아자르는 등불용 기름과 향기로운 재료로 만든 향, 늘 바치는 곡식 제물과 기름 부음에 쓰는 기름을 맡아 관리해야 한다. 그는 성소와 그 도구들을 비롯해 성막 전체와 그 안의 모든 것을 감독해야 한다.」민수기 4:16 · 두루새김

성소의 거룩한 도구뿐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예배와 봉사에 필요한 재료들까지 감독의 대상인 것입니다. 새로운 장소에 도착했을 때에도 성막에서 정해진 봉사가 계속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엘아자르의 감독은 그러한 책임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은 그핫 자손의 생명에 관해 더욱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죽지 않고 살도록」 — 규정의 목적이 드러나다

민수기 4:17–20 본문 →

「너희는 그핫 씨족들이 레위 사람들 가운데서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민수기 4:18 · 두루새김

하나님은 단순히 위험한 일을 맡기시고 모든 책임을 그핫 자손에게 떠넘기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죽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도록, 그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에게도 책임을 주십니다.

「그들이 가장 거룩한 물건들에 가까이 갈 때 죽지 않고 살도록 이렇게 하여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들어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을 일과 옮길 짐을 정해 주어야 한다.」민수기 4:19 · 두루새김

그핫 자손을 한 집단으로 불러 모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누가 무엇을 운반할지 구체적으로 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본문은 그들이 「죽지 않고 살도록」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밝힙니다.

생명을 지키는 방법이 정확한 임무 배정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 사람이 자신의 임무와 짐을 알면, 허락되지 않은 물건에 접근하거나 다른 사람의 일을 대신하려다가 위험에 빠지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거룩한 물건을 덮는 책임을 맡았을 뿐 아니라, 그핫 자손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합니다. 제사장들이 맡은 책임을 소홀히 하면 그핫 자손이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거룩한 일을 맡긴다는 것은 그 일을 할 사람의 생명까지 책임 있게 돌보는 일입니다.

성물을 보는 것도 금지된다

「그핫 자손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룩한 물건들을 덮는 동안 들어와 그것들을 보아서는 안 된다. 들어와 보면 죽을 것이다.」민수기 4:20 · 두루새김

손을 대는 것뿐 아니라, 허락되지 않은 방식으로 거룩한 물건을 보려는 접근도 금지됩니다.

본문은 호기심 자체가 언제나 죄악이라는 일반적인 교훈을 주고 있지 않습니다. 금지의 대상은 가장 거룩한 물건들에 대한 자격 없는 접근입니다.

출애굽기 19:12–13에서 하나님은 산 둘레에 경계를 정하라고 하셨습니다. 백성은 그 경계를 넘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임하셨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하나님이 계신 곳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 4장에서는 그 거룩함이 이동하는 성막과 연결됩니다. 가림막이 내려지고, 도구들이 덮이고, 제단이 운반될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그 물건들은 하나님께 구별된 거룩한 물건입니다. 그래서 이동 중에도 접근의 경계가 유지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지키는 일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일이 같은 명령 안에 놓여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발라는 기본적으로 「삼키다」라는 뜻을 가지며, 문맥에 따라 무엇인가를 감싸거나 가리는 행동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해석은 이 구절을 거룩한 물건들이 덮이는 동안 그것들을 보러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두루새김은 이 해석을 따라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거룩한 물건들을 덮는 동안」이라고 옮겼습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어 칠십인역은 이 구절을 「갑자기」 또는 「순간적으로」 보는 것과 연결되는 방식으로 옮깁니다. 이에 따라 거룩한 물건을 한순간이라도 보러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어느 읽기가 원문의 뜻을 더 정확히 반영하는지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르손 자손 — 덮개와 휘장을 운반하다

민수기 4:21–28 본문 →

그핫 자손의 임무가 자세히 설명된 뒤, 본문은 게르손 자손에게로 시선을 옮깁니다.

「게르손 자손도 아버지 집안과 씨족별로 세어라.」민수기 4:22 · 두루새김

그핫 자손이 먼저 소개되었지만, 게르손 자손도 정식으로 집계되고 구체적인 임무를 맡습니다. 게르손 자손에게 주어진 물건들은 성막의 천과 덮개, 입구의 가림막, 뜰의 천 울타리와 줄, 그리고 관련 도구들입니다.

성막 안에 아무리 중요한 도구들이 있어도 그것들이 놓일 공간을 제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성막의 덮개와 가림막은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고, 성소의 공간을 이루는 역할을 합니다. 그들의 일이 중요한 이유는 그 물건들이 독립적으로 특별해서가 아니라, 성막 전체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게르손 자손에게는 거룩한 물건에 대한 직접 접촉이나 바라봄을 금지하는 명령이 같은 방식으로 반복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임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레위 지파 전체에게 하나의 똑같은 규정을 적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각 집안이 맡은 물건의 성격에 따라 구체적인 일을 정하십니다.

그러나 게르손 자손 역시 독립적으로 마음대로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게르손 자손은 짐을 나르는 일을 비롯한 모든 일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지시에 따라 해야 한다. 너희는 그들이 옮길 모든 짐을 그들에게 맡겨 책임지게 하여라.」민수기 4:27 · 두루새김

28절에서는 이타마르가 그들이 맡은 일을 감독한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엘아자르가 성소와 그 도구들을 감독했다면, 여기서는 이타마르가 게르손 자손의 일을 감독합니다. 아론의 두 아들은 모두 제사장이지만 맡은 감독 책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중요한 일은 모두 한 사람에게 몰려 있지 않습니다. 각자가 맡은 영역이 있고, 그 영역 안에서 책임을 다합니다.

므라리 자손 — 이름까지 정해 짐을 맡기다

민수기 4:29–33 본문 →

므라리 자손에게는 성막의 판자, 가로대, 기둥, 받침, 말뚝과 줄 등이 맡겨집니다.

이 물건들은 성막의 뼈대를 이루는 구조물들입니다. 그런데 므라리 자손에 관한 규정에는 다른 집안의 설명과 구별되는 표현이 하나 등장합니다.

「그리고 뜰 둘레의 기둥들과 받침들, 말뚝들과 줄들, 그 모든 도구와 작업에 쓰는 모든 것이다. 너희는 그들이 책임지고 옮길 물건들을 하나하나 이름을 들어 정해 주어라.」민수기 4:32 · 두루새김

운반할 물건들을 하나하나 이름으로 지정하라는 뜻일 수도 있고, 운반할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여 각자 맡을 물건을 정하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이 두 가능성을 완전히 구별해 주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문장에 직접 나오는 물건들을 대상으로 읽어 「그들이 책임지고 옮길 물건들을 하나하나 이름을 들어 정해 주어라」라고 옮겼습니다.

므라리 자손의 짐은 대강 나누어 맡겨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누가 책임질지 구체적으로 지정해야 합니다.

성막의 구조물들은 각기 맡은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판자와 가로대, 기둥과 받침은 서로 연결되어 성막 전체를 이룹니다. 하나를 잃거나 잘못 운반하면 성막을 다시 세우는 일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물건들을 운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맡은 짐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는 앞에서 그핫 자손에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임무를 정해 주라는 명령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생명의 위험보다 책임의 정확성이 앞에 나옵니다.

므라리 자손도 이타마르의 감독 아래 일합니다. 그핫 자손의 성소 관련 책임은 엘아자르의 감독과 연결되고,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의 일은 이타마르의 감독 아래 놓입니다.

그리고 민수기 7:7–9에 이르면 이 구별은 실제 운반 수단의 차이로도 나타납니다. 게르손 자손에게는 수레 두 대와 소 네 마리가, 므라리 자손에게는 수레 네 대와 소 여덟 마리가 주어집니다. 반면 그핫 자손에게는 수레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들이 맡은 성소의 물건들은 어깨로 메어 운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성막을 섬기지만, 맡은 물건에 따라 책임과 방법이 달랐습니다.

8,580명 — 이제 일할 사람들이 정해졌다

민수기 4:34–49 본문 →

34절부터는 앞에서 주어진 명령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와 아론과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각 집안의 사람들을 셉니다. 그핫 자손은 2,750명, 게르손 자손은 2,630명, 므라리 자손은 3,200명입니다. 세 집안의 인원을 모두 합하면 8,580명입니다.

앞 장의 레위 지파 전체 집계에서는 그핫 자손이 가장 많고 므라리 자손이 가장 적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실제로 일을 맡을 서른 살부터 쉰 살까지의 인원을 세자 므라리 자손이 가장 많습니다. 본문은 그 수적 차이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여호와야훼의 지시에 따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맡을 일과 옮길 짐을 정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수를 센 것도 여호와야훼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습니다.민수기 4:49 · 두루새김

이 문장은 처음의 인구조사 명령과 마지막의 임무 배정을 하나로 묶습니다.

「봉사」라는 말만 사용하면 종교적인 역할이나 의식의 의미가 먼저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짐」이라는 말이 함께 등장하면 그 봉사가 얼마나 구체적인 노동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천을 걷고, 기둥을 운반하고, 받침을 옮기며, 정해진 물건을 어깨에 메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일할 사람들을 세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사람들 각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사람을 세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책임을 맡기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맺음 — 각자의 어깨에 놓인 짐

민수기 4:1–49 본문 →

하나님은 거룩한 물건을 운반할 사람들에게 엄격한 경계를 정하시면서도 그들이 살아서 자기 일을 마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거룩한 짐을 맡기신 하나님은 그 짐을 지는 사람들의 생명도 살피십니다.

우리는 민수기 4장의 운반 규정을 현대의 모든 종교 활동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예배당이나 종교 물품을 민수기의 거룩한 물건과 동일한 지위에 놓을 근거는 없습니다. 또한 특정한 나이가 되어야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거나, 어떤 종교적 지도자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본질적으로 높은 신분이 있다는 식으로 읽을 수도 없습니다.

정확한 역할과 준비 절차 없이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면서도, 그것을 열심이나 헌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하지는 않습니까?

민수기 4장의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지 않으십니다.

광야에는 아직 성막이 서 있습니다.

곧 떠날 때가 오면 제사장들이 가림막을 내리고 거룩한 물건들을 덮을 것입니다. 그리고 정해진 사람들이 들어와 저마다의 짐을 짊어질 것입니다.

그때 아무도 마음대로 물건을 집어 들지 않습니다. 누구도 자기 몫을 마음대로 바꾸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순서에 따라, 각자가 맡은 짐을 들고 길을 나섭니다.

민수기 4장은 바로 그 출발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책임을 확인하면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