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9장
이 장의 자리 · 1–9장 · 시나이에서 센 사람들
정해진 날과 정해지지 않은 길
민수기 9장에는 서로 대조되는 두 종류의 시간이 등장합니다.
앞부분에서 여호와야훼는 유월절을 반드시 정해진 날짜에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첫째 달 열나흗날입니다. 날짜는 분명하고, 지키는 방법도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다른 날짜를 허락하십니다.
뒷부분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이스라엘은 언제 출발할지, 언제 멈출지, 한곳에 얼마나 머물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구름이 하루 만에 올라갈 수도 있고, 한 달이 지나도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정확히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것일까요, 아니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일까요?
시나이 광야에서 다시 맞은 유월절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이 년째 첫째 달에, 여호와야훼가 시나이 광야에서 모세에게 말했다.민수기 9:1 · 본디새김
민수기 1:1은 출애굽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여호와야훼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9:1은 그보다 앞선 첫째 달의 사건입니다.
민수기가 모든 사건을 발생한 날짜 순서대로 배열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40:17에 따르면 성막은 둘째 해 첫째 달 첫째 날에 세워졌습니다. 민수기 9장의 유월절은 그달 열나흗날에 지켰습니다. 그리고 민수기 10:11에서는 둘째 해 둘째 달 스무째 날에 구름이 올라가며 이스라엘의 시나이 출발이 시작됩니다.
왜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는가?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온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2장에서 이스라엘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고기를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과 함께 먹었습니다. 그날 밤 이집트의 처음 난 것들이 심판받았고,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의 보호 아래 있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그들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집트의 집도 없고, 바로의 압제도 없습니다.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 머물고 있으며, 하나님이 거하실 성막까지 세웠습니다.
이제는 유월절이 필요 없어진 것일까요?
「이스라엘 자손은 정해진 때에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민수기 9:2 · 본디새김
유월절은 이스라엘이 편리한 날을 골라 기념하는 행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12:14에서는 그날을 대대로 기념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이제 민수기 9장에서 이스라엘은 실제로 그 명령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유월절은 이집트를 떠나기 직전에 지켰습니다. 이번 유월절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광야로 나아가기 전에 지킵니다.
그들은 스스로 힘을 모아 이집트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구원하신 사람들입니다. 광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 사실이 그들의 출발점이어야 합니다.
5절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야훼의 명령대로 유월절을 지켰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규정만으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현실이 등장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 예수의 마지막 식사와 죽음이 유월절과 연결되는 것 역시 이 구원의 기억이라는 주제 위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누가복음 22:7–20; 고린도전서 5:7). 그러나 민수기 9장의 우선적인 관심은 이스라엘이 이미 경험한 출애굽의 구원을 어떻게 기억하며, 광야에서 여호와야훼의 인도를 어떻게 따를 것인가에 있습니다.
「어째서 저희는 제외되어야 합니까?」
사람의 시신 때문에 부정해져 그날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날 모세 앞과 아론 앞으로 가까이 나아왔다.민수기 9:6 · 본디새김
이 사람들은 유월절을 지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민수기 19:11–13에 따르면 죽은 사람과 접촉한 사람은 일정 기간 부정한 상태가 되며, 정결 절차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부정하다는 것은 반드시 도덕적으로 죄를 지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의 죽음은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가족이 죽으면 누군가는 시신을 다루고 장례에 관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죽음과 관련된 부정은 성소와 제의에 참여하는 일에 영향을 줍니다.
그 사람들이 모세에게 말했다. 「저희는 사람의 시신 때문에 부정합니다. 어째서 저희는 정해진 때에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여호와야훼의 제물을 바치는 데서 제외되어야 합니까?」민수기 9:7 · 본디새김
그들은 자신의 부정한 상태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부정에 관한 규정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자신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여호와야훼께 제물을 바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규정을 피할 방법이 아니라, 규정을 존중하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참여할 길을 찾고 있습니다.
모세는 즉석에서 답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했다. 「기다려라. 여호와야훼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명령하실지 내가 들어 보겠다.」민수기 9:8 · 본디새김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지도자이며, 여호와야훼의 율법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에게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인정합니다. 그는 기존 규정을 독단적으로 완화하지도 않고, 그 사람들을 그대로 돌려보내지도 않습니다. 여호와야훼께 물으려 합니다.
규정은 분명하지만, 현실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존중하면서도 그 명령이 실제 사람들의 삶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물어야 하는 때가 옵니다.
모세가 보여 주는 것은 규정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자신의 판단을 최종적인 답으로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하나님의 답변은 단지 몇 사람의 문제만 해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날짜를 허락하신다
여호와야훼는 부정해진 사람들의 질문에 응답하시면서 새로운 규정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가운데서나 너희의 뒤 세대 가운데서 누구든지 시신 때문에 부정하게 되거나 먼 길을 여행 중이면, 여호와야훼를 위한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민수기 9:10 · 본디새김
질문을 제기한 사람들은 시신 때문에 부정해진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답변에는 먼 길을 여행 중인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더욱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뒤에 올 세대에도 적용됩니다.
특정한 사람들의 문제가 장래의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규정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그들은 둘째 달 열나흗날 두 저녁 사이에 그것을 지켜야 한다. 유월절 제물을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과 함께 먹어야 한다.』」민수기 9:11 · 본디새김
날짜는 한 달 뒤로 옮겨집니다.
그러나 유월절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11–12절에는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이 다시 등장하고, 제물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는 명령과 뼈를 꺾지 말라는 명령이 이어집니다. 이 규정들은 출애굽기 12:8–10, 46에 등장하는 유월절의 기본 규정을 따릅니다.
하나님은 참여할 수 없는 형편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길을 열어 주시지만, 그들이 참여하는 유월절은 여전히 같은 유월절입니다.
이는 규정을 없애는 방식의 해결이 아닙니다. 정해진 규정 안에서 불가피한 사정에 처한 사람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규정입니다.
두 번째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13절에서 본문의 어조가 갑자기 엄격해집니다.
「『그러나 정결하고 여행 중이 아닌 사람이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자기 겨레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 정해진 때에 여호와야훼의 제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죄를 짊어질 것이다.』」민수기 9:13 · 본디새김
앞에 등장한 사람들은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사람은 참여할 수 있는데도 참여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바로 그 차이를 구별합니다.
유월절은 단순한 축제나 개인적 취향에 따른 종교 행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도록 명령받은 공동체의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을 위한 배려와, 지킬 수 있는 사람이 그 명령을 가볍게 여기지 못하게 하는 책임이 함께 나타납니다. 둘째 달의 유월절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대체 일정이 아니라, 정당한 사유로 첫째 달에 지키지 못한 사람을 위한 길입니다.
거류민에게도 같은 규정이 적용된다
14절에서는 적용 범위가 한 번 더 넓어집니다.
「『거류민이 너희와 함께 머물며 여호와야훼를 위한 유월절을 지킬 때에는, 유월절의 규정과 법도에 따라 그대로 지켜야 한다. 너희에게도 거류민에게도 그 땅에서 난 사람에게도 하나의 규정이 있어야 한다.』」민수기 9:14 · 본디새김
다만 이것이 아무 조건 없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출애굽기 12:48–49는 거류민이 유월절에 참여하려면 할례에 관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며, 이스라엘 본토인과 거류민에게 하나의 법이 적용된다고 선언합니다. 민수기 9:14는 그러한 기본 규정을 폐지하지 않습니다.
유월절을 지킬 때 거류민에게 덜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거나, 이스라엘 사람과 다른 방식으로 참여하게 하지 않습니다. 시신 때문에 부정한 사람에서 먼 길을 여행하는 사람으로, 지금의 세대에서 뒤 세대로, 이스라엘 본토인에서 함께 사는 거류민으로 시야가 넓어집니다.
이제 본문은 유월절에 관한 이야기를 끝내고 구름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조금 더 깊이
「자기 겨레 가운데서 끊어질 것이다」라는 표현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집행되는지 9장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반드시 특정한 사형 방식이나 사회적 추방 절차로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공동체와의 관계에 매우 심각한 결과가 따른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구름은 머물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다
성막을 세운 날, 구름이 성막 곧 증언의 천막을 덮었다. 저녁에는 그 구름이 성막 위에 아침까지 불 같은 모습으로 있었다.민수기 9:15 · 본디새김
출애굽기 40:34–38에서도 성막을 덮은 구름과 여호와야훼의 영광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은 구름이 성막 위에서 올라갈 때 이동하고, 올라가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9장은 그 장면을 이어받아 구름이 이스라엘의 일상과 여정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더욱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본문은 밤에 실제로 다른 물체가 구름을 대신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구름이 밤에는 불처럼 보였다고 설명합니다.
늘 그러했다. 구름이 성막을 덮었고, 밤에는 불 같은 모습이었다.민수기 9:16 · 본디새김
이 표현은 특별한 어느 하루의 광경을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일상으로 바꿔 놓습니다. 성막 위의 구름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가끔 목격한 신기한 현상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시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보여 주는 표지였습니다.
그런데 구름의 역할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구름이 천막 위에서 올라가면, 그 뒤에 이스라엘 자손이 출발했다. 구름이 머무는 곳, 바로 그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다.민수기 9:17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를 여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여행자는 목적지를 향해 언제 출발할지, 얼마나 걸을지, 어디서 쉬어 갈지 계획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출발했고,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진을 쳤다.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 내내 그들은 진을 치고 있었다.민수기 9:18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눈으로 구름을 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이 단지 구름의 움직임을 따라간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따라갑니다.
구름의 움직임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런데 이 인도에는 한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구름이 언제 움직일지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떠나지 않는 것도 순종이다
19절부터 본문은 구름이 머무는 시간을 여러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구름이 성막 위에 여러 날 동안 머물 때에도,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야훼가 맡긴 임무를 지켰고 출발하지 않았다.민수기 9:19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구름이 움직이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습니다.
목적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특히 19절은 그들이 출발하지 않는 것을 「여호와야훼가 맡긴 임무를 지켰다」라고 표현합니다. 성막의 일을 맡은 레위 사람들은 주어진 일을 수행함으로써 임무를 지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은 출발하지 않음으로써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지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에는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는 것뿐 아니라, 움직이지 말아야 할 때 머무는 것도 포함됩니다.
이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무조건 미화하는 말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기다림이 순종인 이유는 하나님이 그곳에 머물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구름이 올라가면 출발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불순종이 됩니다.
하루를 기다릴지, 한 달을 기다릴지 알 수 없다
20–22절에서는 구름이 머무는 시간이 계속 달라집니다.
어떤 때는 며칠입니다. 어떤 때는 저녁부터 아침까지만 머뭅니다. 어떤 때는 이틀이고, 한 달이며, 그보다 긴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디에 도착하든 그곳에서 얼마나 머물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며칠 동안 머무른 곳이라도 구름이 올라가면 떠나야 합니다. 반대로 오랫동안 머무는 곳에서는 아무리 출발하고 싶어도 구름이 올라가기 전에는 출발하지 않습니다.
이틀을 머물렀다고 해서 반드시 셋째 날에는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달이 지났다고 해서 출발할 권리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따라야 할 기준은 지난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구름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였습니다.
조금 더 깊이
22절의 마지막 기간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야밈(יוֹם)에는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날들」을 뜻하지만, 레위기 25:29처럼 문맥에 따라 한 해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틀이든 한 달이든 한 해든」으로 읽을 수 있고, 본디새김처럼 「이틀이든 한 달이든 여러 날이든」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점차 긴 기간을 나열하는 흐름에서는 한 해라는 해석이 자연스럽지만, 단어 자체만으로 어느 쪽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구름보다 앞서가지 않는 백성
마지막 절은 앞에서 설명한 내용을 다시 한번 압축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진을 쳤고,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출발했다. 모세를 통해 전해진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여호와야훼가 맡긴 임무를 지켰다.민수기 9:23 · 본디새김
18절에서는 출발하고 진을 치는 순서로 말했지만, 23절에서는 진을 치고 출발하는 순서로 말합니다. 이 순서의 변화에 특별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절이 출발하는 행동으로 마무리된다는 사실은 다음 장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민수기 10:11에서 실제로 구름이 증언의 성막 위에서 올라가며 이스라엘의 시나이 출발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23절에는 「모세를 통해 전해진 여호와야훼의 명령」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구름을 보고 출발과 정지를 판단하지만, 그 구름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는 모세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는 눈에 보이는 인도와 말씀으로 주어진 명령이 함께 있습니다. 구름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그 의미를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야훼가 명령하신 방식에 따라 움직입니다.
정해진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 — 두 이야기가 만나는 곳
민수기 9장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월절과 구름의 이야기를 나란히 놓으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에게 정해진 때와 기다려야 하는 때가 모두 있음을 보여 줍니다. 유월절에서는 정해진 날을 소홀히 하지 않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구름 아래에서는 정해지지 않은 때를 기다리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규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듣고, 그 말씀이 요구하는 바를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의 독자에게 구름과 같은 초자연적 표지가 언제나 주어진다고 약속하는 본문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장을 자신의 모든 계획이나 직감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라는 이름을 붙이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시나이 광야에는 성막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위로 구름이 드리워져 있고, 밤이 되면 불 같은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들이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사실을 다시 기억했습니다.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직 구름이 머물러 있습니다.
아침이 오고, 다시 밤이 찾아옵니다. 성막 위의 구름은 여전히 그곳에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구름이 올라가면, 이스라엘도 떠날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길을 떠나지 않았지만, 이미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