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10–12장 · 광야 길의 시작
하나님이 앞서 가시는 길
민수기 10장은 이스라엘이 마침내 시나이 광야를 떠나는 장입니다.
성막이 세워졌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의 임무가 정해졌으며, 열두 지파는 각자의 깃발 아래 조직되었습니다. 이제 은 나팔이 울리고, 구름이 올라가며, 거대한 이스라엘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장에는 예상 밖의 대화가 등장합니다.
모세는 호밥에게 「우리의 눈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구름으로 인도하시는 백성에게 왜 광야를 잘 아는 사람의 눈이 필요할까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모세의 말과,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는 서술이 나란히 놓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증거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인도와 인간의 지혜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는 뜻일까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여정의 주인은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은 나팔 두 개가 이스라엘을 움직인다
「너를 위해 은 나팔 두 개를 만들어라. 그것들을 두드려 만들어라. 그것들은 네가 회중을 불러 모으고 진영들을 출발시키는 데 쓸 것이다.」민수기 10:2 · 본디새김
앞서 민수기에서는 이스라엘의 진영을 어떻게 배치하고 성막을 어떻게 운반해야 하는지 자세히 규정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실제로 움직이려면 또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명령을 전달할 것인가요?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로 조직되어 있고, 그 중심에는 성막이 있습니다. 온 회중을 불러 모을 때도 있으며, 지도자들만 모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진영 전체가 움직일 때는 각 집단이 정해진 순서대로 출발해야 합니다.
두 나팔을 함께 불면 온 회중이 만남의 천막 입구로 모입니다. 하나만 불면 지도자들, 곧 이스라엘의 천인대 우두머리들이 모입니다.
그런데 5절에 이르면 나팔 소리의 역할이 달라집니다.
「너희가 나팔로 경보 소리를 내면, 동쪽에 진을 친 진영들이 출발해야 한다.」민수기 10:5 · 본디새김
여기서는 단순히 나팔을 부는 것과 「경보 소리」를 내는 것을 구별합니다. 본문에서는 진영의 출발을 알리는 특별한 신호입니다. 다만 실제 음형이 어떠했는지, 소리를 몇 차례 끊어 불었는지까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집회를 소집할 때에는 나팔을 불되 경보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민수기 10:7 · 본디새김
나팔 소리를 듣고 모여야 할 사람들이 떠나 버리거나, 출발해야 할 진영이 제자리에 머문다면 질서 있는 행진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민수기 2장에서 이스라엘은 동서남북 네 방향에 진을 치도록 배치되었습니다. 이제 10장에서는 그 배치가 실제 이동의 순서로 바뀝니다.
5–6절은 먼저 동쪽 진영과 남쪽 진영의 출발 신호를 설명합니다. 서쪽과 북쪽 진영의 신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랐는지는 여기서 설명하지 않지만, 뒤의 14–27절에는 네 진영 모두의 출발 순서가 제시됩니다.
은 나팔은 흩어진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움직이게 하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이 나팔을 부는 사람은 일반적인 군대 지휘관이 아닙니다.
8절은 아론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회중을 모으고 진영을 움직이는 신호가 제사장의 직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행진은 군대처럼 조직되지만, 그 조직의 중심에는 여호와야훼와 그분을 섬기는 성소가 있습니다.
전쟁의 날에도, 기쁨의 날에도
9절은 이스라엘이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를 바라봅니다.
「너희 땅에서 너희를 괴롭히는 적에 맞서 전쟁에 나설 때에는 나팔로 경보 소리를 내어라.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 앞에서 기억되고, 너희 원수들에게서 구원받을 것이다.」민수기 10:9 · 본디새김
지금 이스라엘은 시나이 광야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는 장차 그들이 거주할 땅에서 겪게 될 전쟁을 말씀하십니다. 이 나팔은 현재의 광야 여행에만 필요한 임시 도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땅에 정착한 뒤에도 사용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누군가를 기억하신다는 표현은 흔히 그 사람에게 행하신 약속이나 관계에 따라 행동하시는 것과 연결됩니다. 창세기 8:1에서는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에 있는 모든 생물을 기억하시고 땅 위에 바람이 불게 하십니다. 출애굽기 2:24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십니다.
그러므로 나팔은 하나님을 조종하는 마법적인 수단이 아닙니다. 전쟁의 위기 가운데 이스라엘이 누구에게 구원을 구해야 하는지 드러내는 정해진 신호입니다.
그리고 10절은 정반대의 상황을 제시합니다.
「너희의 기쁜 날과 너희의 정해진 절기와 매달 초하루에는,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친교 제물을 바치며 나팔을 불어라. 그 나팔들은 너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기억하게 하는 표가 될 것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야훼다.」민수기 10:10 · 본디새김
전쟁의 날에 이스라엘은 도움이 필요한 백성입니다. 기쁨의 날에는 이미 받은 은혜를 누리는 백성입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전쟁은 오직 자신들의 군사력에 달린 일이 아니며, 기쁨 역시 자신들의 성취만을 기념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위험할 때뿐 아니라 기뻐할 때에도 여호와야훼 앞에 섭니다.
나팔의 의미는 소리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그 나팔을 사용하도록 명령하신 분이 누구인가에 있습니다.
이제 명령이 끝나고, 실제로 진영이 움직입니다.
마침내 시나이를 떠나다
이 년째 둘째 달 스무째 날, 구름이 증언의 성막 위에서 올라갔다.민수기 10:11 · 본디새김
출애굽기 19장의 도착과 민수기 10장의 출발 사이에는 성막의 제작과 봉헌, 제사 규정, 인구 조사, 진영 배치에 관한 긴 이야기가 놓여 있습니다. 이제까지 독자가 읽었던 많은 명령이 실제 여정에 사용될 준비를 마친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해 전해진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처음으로 출발했다.민수기 10:13 · 본디새김
시나이에서 성막과 진영의 질서가 갖추어진 뒤,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처음 출발했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장엄한 연설도 없고, 지도자의 감격적인 선언도 없습니다. 그저 구름이 올라갔고, 이스라엘이 출발했다고 기록합니다.
앞 장에서 이스라엘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 진을 쳤습니다. 이제 구름이 올라가자 실제로 움직입니다.
그들은 마침내 약속의 땅을 향해 출발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성막을 중심으로 조직된 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행렬로 바뀌어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이스라엘은 출애굽한 뒤 셋째 달에 시나이 광야에 도착했습니다(출애굽기 19:1). 민수기 1:1은 둘째 해 둘째 달 첫째 날에 이루어진 인구 조사를 기록합니다. 따라서 그 날짜와 10:11의 출발일 사이에는 19일의 간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이스라엘이 19일 동안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성막은 이미 첫째 달 첫째 날에 세워졌고(출애굽기 40:17), 앞선 준비 역시 그 이전부터 진행되었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의 행렬 한가운데서 움직인다
14절부터 27절까지는 여러 지파의 이름과 지도자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앞에서는 각 지파가 어디에 진을 쳐야 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여기서는 그 지파들이 어떤 순서로 실제 출발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정지된 진영의 배치가 움직이는 행렬의 순서로 바뀌는 것입니다.
민수기 10:14–27의 행진 순서는 선두 진영인 유다 · 잇사갈 · 스불론, 성막의 구조물을 운반하는 게르손 · 므라리 자손, 르우벤 · 시므온 · 갓, 성소의 거룩한 기물을 운반하는 그핫 자손, 에브라임 · 므낫세 · 베냐민, 후위 진영인 단 · 아셀 · 납달리입니다. 행진 순서는 본문 14–27절에 따른 것이며, 33절의 언약궤 선행 묘사는 뒤에서 별도로 살핍니다.
17절에서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성막을 운반하며 출발합니다. 이어서 르우벤 진영이 출발하고, 21절에서 그핫 자손이 성소 기물들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왜 성막을 운반하는 사람들이 나뉘어 움직일까요?
성소 기물을 나르는 그핫 자손이 출발했다.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은 그핫 자손이 도착할 때까지 성막을 세워 놓았다.민수기 10:21 · 본디새김
게르손 자손과 므라리 자손이 맡은 일을 하지 않으면 그핫 자손이 기물을 놓을 장소가 마련되지 않습니다. 그핫 자손이 성소의 기물을 운반하지 않으면 성막의 구조물만 세워 놓아도 제 기능을 갖출 수 없습니다.
각자의 임무는 구별되지만 서로 의존합니다.
성막은 한 사람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 제자리를 지킬 때 움직입니다.
이스라엘은 각 지파가 제각각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 집단이 아닙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치밀하게 조직된 행렬의 묘사가 끝난 직후, 모세는 뜻밖의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우리의 눈이 되어 주십시오」
29절에서 모세는 미디안 사람 호밥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합니다.
모세가 자기 장인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말했다. 「우리는 여호와야훼께서 『그곳을 너희에게 주겠다』라고 말씀하신 곳으로 출발하는 중입니다. 우리와 함께 가십시오. 우리가 좋은 것을 베풀어 드리겠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에 좋은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민수기 10:29 · 본디새김
호밥은 모세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미디안 사람이며, 광야에서 진을 칠 장소를 아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바로 그 경험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호밥은 처음에 거절합니다.
호밥이 모세에게 말했다.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제 땅과 제 친족에게로 가겠습니다.」민수기 10:30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향해 출발하는 것처럼, 호밥 역시 자신이 속한 곳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모세는 다시 부탁합니다.
모세가 말했다. 「부디 우리를 떠나지 마십시오. 우리가 광야에서 진 칠 곳을 아시니, 우리의 눈이 되어 주십시오.」민수기 10:31 · 본디새김
이것은 단순히 길을 알려 달라는 요청보다 더 생생합니다. 이스라엘이 익숙하지 않은 광야에서 주변을 살피고 적절한 진영의 위치를 판단하는 데 호밥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길을 가면서도, 그 길을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모세의 요청에는 실용적인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좋은 것을 함께 나누겠다는 약속
「우리와 함께 가신다면, 여호와야훼께서 우리에게 베푸실 그 좋은 것을 우리도 베풀어 드리겠습니다.」민수기 10:32 · 본디새김
모세는 이스라엘이 받게 될 좋은 것을 자신들이 독점해야 할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호밥이 그들과 함께한다면 하나님이 주실 좋은 것을 그에게도 베풀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스라엘의 여정은 혈통으로 이루어진 집단만의 폐쇄적인 이동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사람에게도 함께 가자고 초대합니다.
본문은 모세가 다시 부탁한 뒤 대화를 끝냅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 문장에서는 「모세의 장인」이라는 표현이 르우엘을 가리킬 수도 있고 호밥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출애굽기 2:18에는 르우엘이 모세의 아내가 된 십보라의 아버지로 등장하고, 출애굽기 3:1과 18:1에는 모세의 장인이 이드로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사사기 4:11에서는 호밥이 모세와 혼인으로 맺어진 친족으로 언급됩니다. 이 이름들과 관계를 모두 하나의 확정된 가계도로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가지 해석은 모세가 호밥에게 도움을 청한 것을 믿음의 부족으로 보는 것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친히 구름으로 인도하시는데 인간의 안내를 구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모세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 장면을 하나님이 주시는 인도와 인간의 전문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사례라고 확정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은 그러한 원칙을 직접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름은 이스라엘이 언제 떠나고 어디에 진을 쳐야 하는지를 여호와야훼의 명령에 따라 결정하게 합니다. 호밥은 광야의 지형과 환경을 잘 아는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과 사람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반드시 서로 배척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사사기 1:16과 4:11에는 모세와 혼인으로 연결된 겐 사람들의 후손이 이스라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민수기 10장에서 호밥 개인이 모세의 두 번째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언약궤가 앞서 가며 쉴 곳을 찾는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산을 떠나 사흘 길을 갔다. 여호와야훼의 언약 궤는 그들이 쉴 곳을 찾으려고 사흘 길을 그들 앞에서 나아갔다.민수기 10:33 · 본디새김
모세는 사람의 눈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서술에서 이스라엘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인도의 표지는 여호와야훼의 언약궤입니다.
언약궤는 어떻게 쉴 곳을 찾는가?
출애굽기 25:10–22에 따르면 언약궤는 증언판을 보관하는 거룩한 기물이며, 여호와야훼가 모세와 만나 말씀하시는 장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민수기 7:89에서도 모세는 증언궤 위 두 그룹 사이에서 여호와야훼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언약궤는 여호와야훼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며 그들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표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스라엘이 목적지를 탐색하고 그곳에 하나님을 모셔 가는 것이 아니라, 언약궤가 그들 앞에서 나아가 쉴 곳을 찾는다고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향해 걸어가지만, 그들보다 앞서 길을 여시는 분은 여호와야훼입니다.
여호수아 3:3–4에서 백성은 언약궤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 뒤를 따르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들이 이전에 지나가 본 적 없는 길을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언약궤가 백성의 길을 인도한다는 주제는 이어집니다.
신명기 1:30–33에서도 모세는 여호와야훼가 이스라엘보다 앞서 가셔서 싸우시며, 진 칠 곳을 찾으시고 가야 할 길을 보여 주셨다고 회상합니다. 특히 신명기 1:33의 「진 칠 곳」을 찾으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민수기 10:33의 「쉴 곳을 찾으려고」 앞서 가는 언약궤의 모습과 가깝습니다.
신약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주제는 계속되지만, 민수기 10장이 특정한 신약 사건을 직접 예언한다고 말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 장의 본래 초점은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을 여호와야훼가 광야에서 직접 이끄신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들이 진영에서 출발할 때, 낮에는 여호와야훼의 구름이 그들 위에 있었다.민수기 10:34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광야를 지나고 있지만 홀로 걷는 집단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여정은 여호와야훼의 임재 아래 이루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21절에서는 성소 기물을 운반하는 그핫 자손이 르우벤 진영과 에브라임 진영 사이에서 출발합니다. 언약궤 역시 성소의 거룩한 기물에 속하며, 민수기 4:4–15에 따르면 그핫 자손의 운반 임무와 연결됩니다. 그런데 33절에서는 언약궤가 이스라엘 앞에서 나아갔다고 말합니다. 이를 설명하는 방법으로는 33절이 특정한 사흘의 여정에서 언약궤의 특별한 선행을 묘사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는 21절은 행렬의 전체적인 운반 질서를, 33절은 하나님의 인도가 앞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서술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설명 모두 본문의 명시적인 설명은 아닙니다. 실제 행진에서 언약궤가 다른 성소 기물과 언제, 어떻게 분리되었는지 10장은 말하지 않습니다. 33절의 사흘 길이라는 표현 역시 이스라엘과 언약궤 사이에 반드시 사흘의 거리만큼 간격이 있었다는 뜻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야훼여, 일어나십시오」
10장의 마지막 두 절은 앞선 행진의 묘사와 문체가 다릅니다.
지금까지 본문은 누가 출발했고, 무엇을 운반했으며, 어떤 순서로 움직였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35절에서는 갑자기 모세의 기도가 들립니다.
출발할 때 — 일어나십시오
궤가 출발할 때마다 모세가 말했다. 「여호와야훼여, 일어나십시오. 당신의 적들이 흩어지고, 당신을 미워하는 자들이 당신 앞에서 달아나기를 바랍니다.」민수기 10:35 · 본디새김
이스라엘은 군대별로 조직되어 출발합니다. 그러나 모세의 기도에서 싸움의 궁극적인 주체는 여호와야훼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전쟁이나 모든 적대 행위를 무조건 하나님의 뜻으로 승인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이 보여 주는 것은 여호와야훼의 백성으로서 출발하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안전과 승리를 여호와야훼께 의탁하는 모습입니다.
앞서 9절에서는 전쟁이 일어날 때 나팔을 불어 여호와야훼 앞에서 기억되고 구원받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제 35절에서 모세는 그 구원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기도로 드러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구하는 것은 단지 승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힘으로 길을 열어 놓은 뒤 하나님께 동행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일어나셔서 길을 여시기를 구합니다.
멈출 때 — 돌아오십시오
궤가 쉴 때마다 모세가 말했다. 「여호와야훼여, 이스라엘의 수천수만 명에게로 돌아오십시오.」민수기 10:36 · 본디새김
언약궤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에는 하나님이 앞서 일어나시기를 구하고, 언약궤가 머무를 때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머무시기를 구하는 기도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두 기도는 서로 다른 요청이면서도 하나의 소망을 표현합니다.
걸어갈 때에는 여호와야훼께서 앞서 가시기를 원합니다. 머물 때에는 여호와야훼께서 백성 가운데 계시기를 원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68편은 하나님이 일어나셔서 원수들을 흩으시는 모습을 노래합니다. 민수기 10:35와 표현이 매우 가깝습니다. 어느 본문이 다른 본문을 직접 인용했는지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하나님의 일어나심과 원수들의 흩어짐이라는 같은 신학적 이미지를 공유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수천수만 명」이라는 표현에는 많은 수의 이스라엘 백성이 등장합니다. 원문의 수량 표현이 정확히 어떤 구문 관계로 연결되는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문맥상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누가 이스라엘을 이끄는가?
따라서 이 장은 하나님의 인도와 인간의 책임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시는 백성에게도 자신의 몫을 감당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임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나팔은 사람들이 듣는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마지막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말이었습니다.
이 두 소리 사이에서 이스라엘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은 나팔이 울리고, 유다의 깃발이 움직입니다. 게르손과 므라리 자손이 성막의 구조물들을 메고 나아갑니다. 르우벤과 에브라임의 진영이 뒤따르고, 단의 진영이 행렬의 끝을 맡습니다.
수많은 사람과 가축, 성막의 기물들이 시나이 광야를 떠납니다. 그들 앞에는 여호와야훼의 언약궤가 나아가고, 낮에는 구름이 그들 위에 있습니다.
민수기 10장은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은 백성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이제 막 산을 떠났고, 광야는 여전히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걸어가는 길에는 이미 한 가지 분명한 질서가 있습니다.
언약궤가 움직이면 백성도 움직입니다. 언약궤가 쉬면 백성도 머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길로 데려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앞서 가시는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