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댜 풀어 읽기 · 1장

이 장의 자리 · 1장 · 시온의 회복

내려오는 에돔, 일어나는 시온

오바댜서는 두 산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에서의 산이고, 다른 하나는 시온 산입니다. 에돔은 높은 바위틈에 거처를 마련하고 누구도 자신을 끌어내릴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반면 시온은 외국 군대에 짓밟히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재산을 빼앗긴 채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바댜의 환상은 이 두 산의 운명을 뒤집습니다.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에돔은 내려오고, 짓밟힌 시온에는 다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오바댜가 묻는 것은 단순히 어느 나라가 승리하느냐가 아닙니다. 무엇이 사람과 나라를 안전하게 하는가, 그리고 힘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불행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에돔의 조상 에서는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의 형이었습니다. 오바댜는 국제 관계의 배신을 이야기하면서 의도적으로 이 오래된 형제 관계를 다시 불러냅니다. 형제가 무너지는 날, 다른 형제가 무엇을 했는지가 이 책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81장 본문 읽기 →

아무도 내려오게 할 수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

오바댜 1:1–4 본문 →

오바댜는 에돔을 향한 전쟁의 소식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야훼에게서 소식이 들려오고, 민족들 가운데 파견된 사절이 전쟁을 촉구합니다.

오바댜의 환상. 주 여호와야훼가 에돔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호와야훼에게서 소식을 들었고, 한 사절이 민족들 가운데 파견되었다. 「일어나라. 우리가 일어나 에돔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자.」오바댜 1:1 · 본디새김

사절의 말이 어디까지 직접 인용되는지, 앞의 「우리는」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에돔을 공격하는 것은 민족들이지만, 사건의 시작에는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 민족의 흥망을 판단하시고 그들을 움직이시는 분으로 여호와야훼를 제시합니다.

이어서 여호와야훼가 에돔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십니다.

「네 마음의 오만이 너를 속였다. 바위틈에 살며 높은 곳에 거처를 둔 그는 마음속으로 『누가 나를 땅으로 끌어내리겠느냐?』 하고 말한다.」오바댜 1:3 · 본디새김

에돔은 사해 남동쪽의 험준한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나라였습니다. 그 지역의 깊은 골짜기와 가파른 바위산은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제공했습니다. 높은 곳에 거처를 두었다는 표현은 이러한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에돔의 자신감은 아무 근거도 없는 허풍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자신을 보호해 줄 만한 지형적 조건이 있었습니다. 에돔은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에서 자신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끌어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는 에돔이 마음속으로 던진 질문에 직접 대답하십니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른다 해도, 네 둥지가 별들 사이에 놓인다 해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겠다.」 여호와야훼의 말이다.오바댜 1:4 · 본디새김

에돔은 ‘누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호와야훼의 대답은 ‘내가’입니다.

여기서 에돔의 지리적 높이는 독수리와 별들 사이의 둥지라는 이미지로 확대됩니다. 아무리 높이 올라가더라도 여호와야훼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는 것입니다.

에돔을 속인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이 뒤에 등장할 동맹국의 배신보다 먼저 제시되는 첫 번째 속임수입니다. 에돔은 자기를 믿었고, 곧이어 자신이 믿었던 다른 나라들로부터도 속임을 당합니다.

남김없이 빼앗기고,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당하다

오바댜 1:5–9 본문 →

에돔의 멸망을 묘사하는 방식은 뜻밖입니다. 예언자는 곧바로 군대의 진격이나 성벽의 붕괴를 설명하지 않고, 두 종류의 일상적인 약탈을 떠올립니다.

도둑들이 네게 왔다면, 밤의 약탈자들이 왔다면, 네가 이토록 망하다니. 그들은 자기들에게 충분한 만큼만 훔치지 않았겠느냐? 포도를 거두는 이들이 네게 왔다면, 뒤에 주울 포도는 남겨 두지 않았겠느냐?오바댜 1:5 · 본디새김

도둑도 가져갈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포도를 수확하는 사람들도 열매를 모두 거두지는 못하기 때문에 뒤에 주울 포도가 남습니다. 그런데 에돔에 닥칠 멸망은 이보다 철저합니다.

에서가 얼마나 샅샅이 뒤져졌는가. 그가 숨겨 둔 보물들이 드러났다.오바댜 1:6 · 본디새김

지리적 방어뿐 아니라 경제적 안전도 무너집니다. 높은 곳에 쌓아 둔 재산은 에돔을 지켜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더욱 뜻밖의 일이 이어집니다.

너와 동맹을 맺은 모든 이들이 너를 국경까지 내보냈다. 너와 평화롭게 지내던 이들이 너를 속이고 제압했다. 네 빵을 먹던 이들이 네 밑에 그물을 놓을 것이다. 그에게는 슬기가 없다.오바댜 1:7 · 본디새김

고대 세계에서 함께 식사하는 행위는 우호적인 관계와 신뢰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배신은 단순히 적국이 공격해 온 사건과 다릅니다. 자신을 보호해 주리라고 믿었던 관계 자체가 무너지는 일입니다.

에돔을 국경까지 내보낸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적 상황을 가리키는지는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동맹 관계가 보호의 수단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에돔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에돔의 지혜와 군사력입니다.

여호와야훼의 말이다. 「그날 내가 에돔에서 지혜로운 이들을, 에서의 산에서 슬기를 없애지 않겠느냐?」오바댜 1:8 · 본디새김
「데만아, 네 용사들이 겁에 질릴 것이다. 이는 에서의 산에서 사람이 살육으로 끊어지게 하려는 것이다.」오바댜 1:9 · 본디새김

에돔과 관련된 지혜의 전통은 예레미야 49:7에서도 나타납니다. 그곳에서는 데만에 더 이상 지혜가 없느냐고 묻습니다. 욥의 친구 엘리바스 역시 데만 사람으로 소개됩니다(욥기 2:11).

오바댜의 묘사는 이러한 명성을 뒤집습니다. 판단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도, 싸울 줄 아는 용사도 나라를 구하지 못합니다.

특히 7절은 배신당하는 에돔을 두고 「그에게는 슬기가 없다」고 끝나며, 8절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에돔에서 슬기를 없애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배신당한 상황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상태와 지혜의 상실이 서로 연결됩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왜 에돔이 이런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오만했다는 이유만으로 이처럼 철저한 멸망이 선언되는 것입니까?

오바댜는 그 답을 10절에서 밝힙니다.

형제가 무너지던 날, 에돔은 어디에 있었는가

오바댜 1:10–14 본문 →

「네 형제 야곱에게 저지른 폭력 때문에 수치가 너를 덮고, 네가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오바댜 1:10 · 본디새김

창세기에서 에서와 야곱은 같은 부모에게 태어난 쌍둥이 형제입니다(창세기 25:24–26). 두 사람은 태어나기 전부터 갈등이 예고된 형제였고(25:23), 성장하면서 장자의 권리와 축복을 둘러싸고 대립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에서는 야곱에게 달려가 그를 껴안았습니다(33:4).

신명기 23:7에는 이 관계가 더욱 분명하게 표현됩니다. 이스라엘은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가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바댜가 「네 형제 야곱」이라고 말할 때, 단순히 두 민족의 혈통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돔이 마땅히 기억했어야 할 관계를 다시 일깨우는 것입니다.

먼저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공격받던 날을 떠올립니다.

「네가 맞은편에 서 있던 날, 낯선 이들이 그의 재물을 빼앗아 가던 날, 외국인들이 그의 성문들로 들어와 예루살렘을 놓고 제비를 뽑았을 때, 너도 그들 가운데 하나와 같았다.」오바댜 1:11 · 본디새김

이 장면은 외국 군대의 예루살렘 침입을 배경으로 합니다. 에돔은 외국 군대와 동일한 방식으로 처음부터 공격했기 때문에만 비난받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가 무너지는 현장에서 그 일에 동조하고 이익을 취했기 때문에 침략자들과 같은 편으로 간주됩니다.

형제의 고통을 지켜보는 자가 어느 순간 그 고통을 가하는 자들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네 형제의 날에, 그가 불행을 당하는 날에 구경하지 마라. 유다 자손이 멸망하는 날에 그들을 두고 기뻐하지 마라. 곤경의 날에 네 입으로 큰소리치지 마라.」오바댜 1:12 · 본디새김

이 구절들에서 반복되는 것은 「날」이라는 표현입니다. 형제의 날, 멸망하는 날, 곤경의 날, 재난을 당하는 날이 거듭 등장합니다. 모두 예루살렘이 무너지는 그 시간을 가리킵니다.

이어서 행동은 더욱 적극적으로 변합니다.

「그들이 재난을 당하는 날에 내 백성의 성문으로 들어가지 마라. 그가 재난을 당하는 날에 너도 그의 불행을 구경하지 마라. 그가 재난을 당하는 날에 그의 재물에 손을 뻗지 마라.」오바댜 1:13 · 본디새김

14절에서는 가장 비참한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의 도망자들을 죽이려고 갈림길에 서지 마라. 곤경의 날에 그의 살아남은 이들을 넘겨주지 마라.」오바댜 1:14 · 본디새김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망칠 길을 찾습니다. 이미 자기 집과 재산을 잃은 사람들이 목숨만이라도 건지려는 것입니다.

11절에서 에돔은 맞은편에 서 있었습니다. 14절에서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두 장면 모두 누군가 서 있는 모습을 보여 주지만, 그 의미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처음에는 고통받는 형제를 외면했고, 끝에서는 그 형제의 마지막 도피까지 방해합니다.

눈으로 구경하고, 마음으로 기뻐하고, 입으로 자랑하고, 손으로 약탈하고, 발로 도망자의 길을 막습니다.

형제에 대한 폭력은 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이런 선택들이 이어지면서 완성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유다의 편을 드시는 이유를 단순히 혈통에 대한 무조건적인 편애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유다는 자기 죄 때문에 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가 심판받고 있다는 사실이 에돔의 잔혹함을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예레미야애가 4:21–22와 에스겔 35:5–15도 에돔에 대한 심판을 말합니다. 특히 에스겔 35장은 이스라엘이 재난을 당하는 때에 에돔이 적개심을 품고 행동하며 그 땅을 차지하려 했다고 고발합니다.

오바댜는 유다의 무너짐을 이용한 에돔의 죄를 묻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정의는 승리한 쪽의 행동도 판단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587/586년경 바벨론의 예루살렘 함락과 연결하는 해석이 자연스럽습니다. 열왕기하 25장에 기록된 사건과 상황이 잘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시편 137:7 역시 예루살렘이 무너지던 날 에돔 사람들이 보인 적대적인 태도를 기억합니다. 다만 오바댜는 침략자의 이름이나 왕의 연대를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묘사만으로 그 사건의 정확한 연대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예루살렘이 당한 다른 침략과 연결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습니다. 12–14절의 금지형은 이미 벌어진 일을 뒤돌아보며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편 번역문처럼 금지의 형태 자체를 살리면, 예언자가 그 끔찍한 행동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멈추라고 명령하는 듯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어느 쪽이든 본문이 고발하는 행위는 같습니다.

형제의 날에서 모든 민족의 날로

오바댜 1:15–16 본문 →

15절에서 오바댜의 시야가 갑자기 넓어집니다.

「모든 민족에게 닥칠 여호와야훼의 날이 가깝기 때문이다. 네가 한 대로 네게 행해질 것이다. 네 행위의 대가가 네 머리로 돌아올 것이다.」오바댜 1:15 · 본디새김

에돔은 형제의 날을 이용했습니다. 형제가 약해진 틈에 자신의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역사의 마지막 판단은 아니었습니다. 에돔의 행동을 판단할 또 다른 날이 다가옵니다.

이것은 예언의 초점이 단순한 민족적 보복을 넘어선다는 뜻입니다. 에돔은 먼저 심판의 대상으로 지목되지만, 여호와야훼가 적용하시는 정의는 에돔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앞에서 에돔은 형제의 고난을 이용해 그를 약탈했습니다. 이제는 에돔 자신이 약탈당합니다. 형제의 도망자들을 막아섰던 에돔은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합니다. 형제의 재난을 기뻐했던 에돔도 재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뒤집힘은 단순히 강한 자와 약한 자의 자리가 바뀌는 현상이 아닙니다. 이전의 행동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심판입니다.

16절에서는 그 심판이 마시는 행위로 표현됩니다.

「너희가 내 거룩한 산에서 마셨듯이 모든 민족이 끊임없이 마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시고 삼킬 것이며, 없었던 것처럼 될 것이다.」오바댜 1:16 · 본디새김

다만 이어지는 「모든 민족」의 마심이 파멸로 연결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민족들은 자신들의 힘과 승리가 영원할 것처럼 행동하지만, 결국 자기들의 행위에 대한 판단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민족이 심판받는 날에, 이미 무너진 시온에는 무엇이 남을까요?

조금 더 깊이

여기서 「너희」가 누구인지 본문은 명확히 밝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에돔을 향해 주로 단수로 말하다가 갑자기 복수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읽기는 에돔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축하하며 거룩한 산에서 마셨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 다른 민족들이 마시는 것은 에돔이 경험하게 될 심판의 잔이 됩니다. 다른 읽기는 「너희」를 재난을 당한 유다 공동체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유다가 먼저 고난의 잔을 마셨듯이 다른 민족들도 심판의 잔을 마신다는 뜻이 됩니다. 히브리어의 「마셨다」(⁨שָׁתָה⁩)라는 동사는 마신 대상을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행위를 승리의 잔치로 볼지, 재난의 잔을 마시는 것으로 볼지는 문맥을 통해 판단해야 합니다. 두 읽기 모두 문맥상 근거가 있어 한쪽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구약에서는 마시는 잔이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예레미야 25:15–29에서는 여러 민족이 여호와야훼의 진노의 잔을 마시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오바댜의 16절 역시 이러한 심판의 언어와 연결됩니다.

도망자의 길이 막혔던 시온에 다시 피할 곳이 생기다

오바댜 1:17–18 본문 →

그러나 시온 산에는 피신한 이들이 있을 것이고, 그 산은 거룩한 곳이 될 것이다. 야곱 집안이 자기들의 소유지를 차지할 것이다.오바댜 1:17 · 본디새김

14절에서 에돔은 유다의 도망자들을 죽이려고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존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런데 17절에서는 시온 산에 「피신한 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에돔이 없애려고 했던 바로 그런 사람들이 시온에 다시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시온은 침략자들이 들어와 재산을 나누던 장소였습니다. 이제 그곳이 다시 거룩한 장소가 됩니다.

여호와야훼의 산이 더 이상 약탈자들의 전리품이 아니라, 그분의 백성이 살아갈 장소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또한 야곱 집안이 자기들의 「소유지」를 차지한다고 선언합니다. 그들이 빼앗겼던 것은 단순히 재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과 그곳에서 이루어 온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그러나 18절에서는 다시 매우 엄중한 심판의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야곱 집안은 불이 되고, 요셉 집안은 불꽃이 되며, 에서 집안은 지푸라기가 될 것이다. 야곱 집안과 요셉 집안이 에서 집안을 불사르고 먹어 치울 것이며, 에서 집안에는 살아남은 이가 없을 것이다. 여호와야훼가 말했기 때문이다.오바댜 1:18 · 본디새김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며, 요셉 집안은 북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명칭으로도 사용됩니다(에스겔 37:16, 19 참조). 그러므로 야곱 집안과 요셉 집안이 함께 등장하는 것은 흩어지고 갈라졌던 이스라엘의 회복이라는 넓은 전망을 보여 줍니다.

불과 지푸라기의 비유는 힘의 차이를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불 앞의 지푸라기는 저항할 수 없습니다. 앞에서는 에돔이 안전한 바위산에 거주하는 강한 민족으로 묘사되었지만, 이제는 쉽게 타 버리는 지푸라기로 그려집니다.

14절에서 에돔은 유다의 「살아남은 이들」을 넘겨주었습니다. 18절에서는 에서 집안에 「살아남은 이가 없을 것」이라고 선언됩니다.

에돔이 유다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생존이 에돔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심판의 대칭입니다.

이 언어는 에돔 집안의 완전한 패배를 선언하는 강한 예언적 표현입니다. 그것을 모든 에돔계 개인의 영원한 운명에 관한 진술로 확대하거나, 후대의 어떤 민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에돔의 폭력과 그에 대한 여호와야훼의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은 마지막에 「여호와야훼가 말했기 때문이다」라고 못 박습니다. 심판을 실행하는 도구로 야곱과 요셉 집안이 등장하지만 그 판단의 근원은 여호와야훼에게 있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땅을 차지하다

오바댜 1:19–20 본문 →

18절까지의 회복이 생존과 심판의 문제였다면, 19–20절은 그 회복을 구체적인 지리적 언어로 펼쳐 보입니다.

네게브 사람들은 에서의 산을, 낮은 지대 사람들은 블레셋 사람들의 땅을 차지할 것이다. 그들은 에브라임의 들과 사마리아의 들을 차지하고, 베냐민은 길르앗을 차지할 것이다.오바댜 1:19 · 본디새김

네게브는 유다 남쪽의 지역이고, 낮은 지대는 유다의 서쪽에 펼쳐진 구릉 지대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땅은 서쪽 해안 평야와 관련되며, 에브라임과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주요 지역이었습니다. 길르앗은 요단 동쪽의 땅입니다.

남쪽과 서쪽, 북쪽과 요단 동쪽이 함께 등장합니다. 이는 예루살렘 성 하나를 회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스라엘이 상실했던 땅 전체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북이스라엘은 유다의 멸망보다 앞서 아시리아에 의해 무너졌고, 그 주민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주당했습니다(열왕기하 17:5–6). 따라서 오바댜가 그 지역을 함께 언급하는 것은 예루살렘의 재난만을 되돌리는 것보다 넓은 회복을 내다보는 표현입니다.

20절에서는 시야가 한 번 더 넓어집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이 요새에 속하고 사르밧까지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 있는 유배민들과 스바랏에 있는 예루살렘의 유배민들이 네게브의 성읍들을 차지할 것이다.오바댜 1:20 · 본디새김

앞에서 유다는 쫓겨나고, 재산을 빼앗기고, 도망자들까지 붙잡히는 백성이었습니다. 이제는 흩어진 유배민들이 땅을 다시 차지하는 사람들로 등장합니다.

따라서 지명의 긴 나열은 단순한 영토 확장 목록이 아닙니다.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이 다시 거처를 얻는 장면입니다.

오바댜가 그리는 회복은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쫓겨난 사람들이 돌아와 자기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자리를 얻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스라엘 자손의 이 요새」로 번역된 표현은 요새를 뜻하는 것으로도, 무리나 군대를 뜻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가나안 사람들」을 유배민들이 있는 곳과 연결할지, 그들이 차지할 땅과 연결할지에 따라서도 문장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지명인 스바랏의 정확한 위치 역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본문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유배민들을 가리키고 있다는 큰 흐름은 분명하지만, 각 집단의 위치와 소유할 땅을 하나의 지도로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누구의 왕권인가

오바댜 1:21 본문 →

오바댜서는 짧지만 놀라울 만큼 큰 선언으로 끝납니다.

구원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 에서의 산을 심판할 것이다. 왕권은 여호와야훼에게 속할 것이다.오바댜 1:21 · 본디새김

여기서 「구원자들」은 복수형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우선 여호와야훼의 구원을 실행하는 사람들의 등장을 말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들이 정확히 어떤 인물들이며 어떤 방식으로 에서의 산을 심판하는지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오바댜는 처음에 에돔의 높이를 보여 주었고, 마지막에는 시온의 높이를 보여 줍니다.

시온 역시 적에게 짓밟혔던 장소입니다. 두 산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지형의 높이가 아니라 여호와야훼의 심판과 회복의 말씀입니다.

왕권은 이스라엘에게 속한다고 선언되지 않습니다. 여호와야훼에게 속합니다.

오바댜의 마지막 관심은 에돔보다 강한 이스라엘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 위에 여호와야훼의 통치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사사기에서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우신 인물들에게 비슷한 표현이 사용됩니다(사사기 3:9, 15). 이러한 왕권의 선언은 시편 22:28의 「왕권은 여호와야훼께 속하고」라는 고백과도 통합니다. 여호와야훼는 한 민족의 이해관계 안에 갇힌 분이 아니라 여러 민족을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형제의 고난 앞에서 드러나는 마음

오바댜 1:1–21 본문 →

에돔의 문제는 자신을 지켜 줄 힘이 있다고 믿었던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문제는 그 힘을 가지고 형제의 고난을 어떻게 대했느냐에 있었습니다. 형제의 고난을 이용하는 자에게는 책임을 물으시고, 살아남을 길마저 막힌 사람들에게는 다시 피할 곳을 약속하십니다.

처음에는 바위틈에 높이 자리 잡은 에돔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자신을 끌어내리지 못하리라는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그 목소리가 사라졌습니다.

대신 한때 짓밟혔던 시온 산에 피신한 사람들이 있고, 흩어진 사람들이 자기 삶의 터전을 다시 차지하며, 구원자들이 그 산에 올라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들리는 말은 어느 나라의 승리 선언도 아닙니다.

「왕권은 여호와야훼에게 속할 것이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