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10–24장 · 솔로몬의 짧은 격언

사람을 찌르는 말과 살리는 말

잠언 12장에는 칼을 들지 않고도 사람을 찌르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반대로 의술을 배운 적이 없어도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18절의 「칼로 거듭 찌르듯 함부로 말하는 이가 있지만, 지혜로운 이들의 혀는 치유를 가져온다」는 구절은 잠언 12장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예리하게 관찰하고 있는지 보여 줍니다. 말은 눈에 보이는 상처를 남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깊이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짧은 말 한마디가 근심에 짓눌린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이 관심을 갖는 것은 말뿐만이 아닙니다. 땅을 일구는 사람과 헛된 것을 뒤쫓는 사람, 자기 가축의 생명을 살피는 사람과 잔인한 사람, 다른 이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과 자기 판단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도 등장합니다.

이들의 차이는 단순히 능력이 뛰어나거나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생명을 돌보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능력을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치는 데 사용합니다.

잠언 11장에서 의로운 사람의 열매는 생명의 나무로 묘사되었습니다. 12장은 그 열매가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맺히는지 보여 줍니다. 사람의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며, 그 행동이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여러 격언으로 비추어 줍니다.

이 장의 처음에는 훈계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나오고, 마지막에는 의로움의 길에 생명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지혜로운 삶은 자신을 고칠 수 있는 태도에서 시작하여 생명을 향한 길로 이어집니다.

읽는 시간 30분소단락 912장 본문 읽기 →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잠언 12:1–4 본문 →

훈계를 사랑하는 이는 지식을 사랑하지만, 책망을 미워하는 이는 짐승처럼 무지하다.잠언 12:1 · 본디새김

12장은 매우 직설적인 말로 시작합니다.

책망을 미워하는 사람은 단순히 조금 어리석다고 하지 않습니다. 짐승처럼 무지하다고 말합니다. 「짐승처럼 무지하다」는 이성적인 분별이 부족한 모습을 나타내는 강한 표현입니다. 짐승과 연결되는 비유적 표현이지만, 동물 자체가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평가하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본문이 겨냥하는 것은 사람의 지적 능력보다 배우려는 태도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앞 행입니다. 우리는 보통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좋아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데 열심인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잠언은 지식에 대한 사랑을 훈계에 대한 사랑으로 확인합니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일은 즐거울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훈계를 받는 일은 다릅니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거나 잘못 행동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미 내린 판단을 바꾸고, 자신의 행동을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지식을 좋아하면서도 책망은 싫어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말은 듣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잠언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듭니다.

배우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좋은 이는 여호와야훼에게서 호의를 얻지만, 여호와야훼는 꾀를 꾸미는 이를 유죄로 판정한다.잠언 12:2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꾀를 꾸민다는 것은 단순히 계획을 세우거나 머리를 잘 쓴다는 뜻이 아닙니다. 악한 목적을 위해 계략을 마련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는 지혜와 영리함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사람은 매우 영리하면서도 악한 일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상황을 유리하게 조종하고,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치밀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능력이 곧 지혜는 아닙니다.

「유죄로 판정한다」는 표현은 법정의 판단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간이 자기 계획을 아무리 훌륭하다고 평가하더라도, 하나님의 판단 앞에서는 그 계획의 도덕적 성격이 드러납니다.

사람은 악함으로 굳게 서지 못하지만, 의로운 이들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잠언 12:3 · 본디새김

악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악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거짓과 속임수, 강압적인 행동이 당장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언은 악함으로 삶의 기초를 세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나무의 뿌리는 대부분 땅 아래에 있습니다.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잎과 가지, 열매를 먼저 봅니다. 그러나 나무가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사람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성취보다 더 깊은 곳에 그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직함과 신실함, 옳은 것을 따르려는 태도입니다. 이런 것은 언제나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그 사람을 지탱하는 토대가 됩니다.

유능한 아내는 제 남편의 면류관이지만, 수치를 안기는 아내는 그의 뼛속의 썩음과 같다.잠언 12:4 · 본디새김

면류관은 머리 위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예와 존중의 표시입니다. 반면 뼛속의 썩음은 몸 안에서 일어나는 손상입니다. 겉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몸을 깊은 곳에서 무너뜨립니다.

「유능한 아내」의 「유능한」은 힘, 역량, 뛰어남 등을 가리키는 말로, 단순히 성품이 온순하다거나 집안일을 잘한다는 의미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아내를 남편에게 순종하는 역할만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의 역량과 인격이 가정에 가져오는 영예를 말합니다.

이 구절은 고대의 남편 중심적인 사회적 시각에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통찰은 가정의 삶이 구성원들의 성품과 행동에 깊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은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기쁨과 영예가 될 수도 있고,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3절의 뿌리와 4절의 뼛속이라는 이미지를 함께 읽으면, 잠언이 관심을 갖는 자리가 분명해집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보다 안쪽에서 삶을 지탱하거나 무너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더 깊이

「유능한 아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에셰트 하일입니다. 룻기 3:11에서 룻은 같은 표현으로 불리며, 잠언 31:10에서도 이 표현으로 한 여인의 탁월함을 소개합니다.

마음속 계획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잠언 12:5–8 본문 →

의로운 이들의 생각은 공정하지만, 악한 이들의 계책은 속임수다.잠언 12:5 · 본디새김

사람의 생각은 겉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무엇을 의도하는지는 다른 사람이 쉽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잠언은 생각의 단계에서부터 이미 의로움과 악함이 갈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공정함은 단순히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한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각 사람에게 마땅한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이익 때문에 판단을 왜곡하지 않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이 생각의 차이는 다음 구절에서 말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악한 이들의 말은 피를 노리는 매복이지만, 곧은 이들의 입은 그들을 건져 낸다.잠언 12:6 · 본디새김

매복은 상대가 미처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숨어서 기다리는 행동입니다. 정면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방심한 틈을 이용합니다.

말은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거짓 증언, 의도적으로 퍼뜨린 소문, 상대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약속은 실제로 사람의 삶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처음부터 노골적인 위협으로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 상대를 해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곧은 사람의 입은 건져 냅니다. 다만 여기서 「그들을」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곧은 사람들 자신일 수도 있고, 악한 사람의 매복에 걸린 피해자들일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읽으면 진실한 말이 결국 그 말하는 사람을 보호한다는 뜻이 됩니다. 두 번째로 읽으면 곧은 사람의 말이 위험에 빠진 다른 사람을 구출한다는 뜻이 됩니다. 두 읽기 모두 가능한데, 본문은 그 대명사의 대상을 명확하게 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조의 중심은 분명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군가는 그것을 다른 사람을 해치는 덫으로 사용하고, 누군가는 위험에서 건져 내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악한 생각은 악한 말로 이어집니다. 공정한 판단은 사람을 살리는 말로 나타납니다.

말이 위험한 이유는 입술의 움직임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말을 준비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이들은 뒤엎어져 사라지지만, 의로운 이들의 집은 서 있다.잠언 12:7 · 본디새김

앞에서는 사람이 굳게 서는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집이 서 있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집은 한 사람의 생활을 넘어 가족과 가문의 삶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악한 행동의 결과가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그가 세운 생활의 기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제 통찰에 따라 칭찬받지만, 마음이 뒤틀린 이는 멸시를 받는다.잠언 12:8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칭찬의 근거는 재산이나 외적인 지위가 아니라 통찰입니다. 통찰은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적절하게 판단하는 능력입니다. 단순히 지식이 많다는 사실보다 그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와 관계됩니다.

잠언은 사람의 내면과 공적인 평판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품은 생각은 언젠가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며,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남깁니다.

사람의 가치와 일의 가치를 혼동하지 말라

잠언 12:9–12 본문 →

하찮게 여겨져도 종을 둔 이가, 스스로를 높이면서도 빵이 부족한 이보다 낫다.잠언 12:9 · 본디새김

이 구절은 당시 사회에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체면과 실제 생활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잠언은 이 두 사람을 비교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체면보다 실제적인 생활의 기반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종을 둔」이라는 표현은 고대 사회의 종속적인 노동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본문이 그 제도 자체의 정당성을 논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와 실제 형편 사이의 차이를 보여 주기 위해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사용합니다.

이 격언에서 중요한 것은 허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실제 형편보다 더 풍족하고 존경받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지위가 삶에 필요한 것을 대신 마련해 주지는 않습니다.

이제 10절에서는 사람이 아닌 동물이 등장합니다.

의로운 이는 제 가축의 생명을 살피지만, 악한 이들의 동정심은 잔인하다.잠언 12:10 · 본디새김

왜 의로운 사람의 성품을 설명하면서 가축을 대하는 태도를 이야기할까요?

고대 농경사회에서 가축은 노동과 생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밭을 갈거나 짐을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고, 여러 생산활동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의로운 사람이 가축을 잘 관리하여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가축의 「생명」을 살핀다고 말합니다.

「생명」(⁨נֶפֶשׁ⁩)으로 옮긴 히브리어는 문맥에 따라 생명이나 목숨, 살아 있는 존재 자체를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가축을 단지 주인의 소유물로만 보지 않고 생명을 가진 존재로 다루는 표현입니다. 가축이 인간의 일을 위해 사용되더라도, 그 생명의 필요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뒷행은 더욱 뜻밖입니다.

악한 사람에게도 동정심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잠언은 그 동정심조차 잔인하다고 평가합니다. 본문은 그가 베푸는 자비라고 여겨지는 행동조차 실제로는 잔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상대를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를 해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친절을 베푼다고 생각하면서 상대의 필요와 고통을 제대로 살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의로움은 자신이 얼마나 선한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보다, 자기에게 맡겨진 생명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확인됩니다.

이 가르침은 동물을 넘어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신보다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그 사람의 성품을 드러내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제 땅을 일구는 이는 빵을 배불리 먹지만, 헛된 것을 뒤쫓는 이는 분별이 모자란다.잠언 12:11 · 본디새김

자기 땅을 일구는 사람은 실제로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일을 합니다. 반면 헛된 것을 뒤쫓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쏟지만, 그 결과가 삶을 지탱할 만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거나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는 일이 어리석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핵심은 현실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수행합니다. 다른 사람은 그 일을 외면하면서 근거 없는 기대나 허황된 약속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악한 이는 악한 이들의 그물을 탐내지만, 의로운 이들의 뿌리는 결실을 낸다.잠언 12:12 · 본디새김

「그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초드(⁨מָצוֹד⁩)는 사냥에 사용하는 그물이나 그물로 잡은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악한 사람이 다른 악한 이들의 사냥 수단을 탐낸다는 뜻으로도, 그들이 얻은 노획물을 탐낸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악한 사람은 다른 악한 사람들이 얻은 것을 바라봅니다.

반면 의로운 사람에게는 뿌리가 있습니다. 사냥은 이미 존재하는 먹잇감을 붙잡는 행동입니다. 뿌리는 식물이 땅에서 양분을 얻고 자라도록 합니다.

남이 가진 것을 빼앗거나 손쉽게 얻으려고 애쓰는 삶과,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꾸준히 자라 열매를 맺는 삶은 다릅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23:12에서도 안식일에 소와 나귀가 쉬도록 하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쉼은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1:26–28에서 인간에게 다른 생물을 다스리는 역할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잠언 12:10은 그러한 다스림이 실제 생활에서 어떤 태도를 요구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다스리는 사람은 돌보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한편 12절에서 의로운 사람의 뿌리가 결실을 낸다는 번역에는 원문의 의미를 보충한 부분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뒷행에는 「내다」 또는 「주다」에 해당하는 동사가 있지만 무엇을 내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디새김은 뿌리라는 이미지에 맞추어 결실을 낸다고 옮겼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입과 손으로 어떤 열매를 맺는가

잠언 12:13–16 본문 →

입술의 허물에는 해로운 덫이 있지만, 의로운 이는 곤경에서 빠져나온다.잠언 12:13 · 본디새김

앞에서 악한 사람의 말은 피를 노리는 매복으로 묘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덫은 누구를 노리는 것일까요?

악한 사람은 말로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면 그 말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해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꾸민 말이 드러나면, 말한 사람 자신이 곤경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의 「해로운 덫」은 악한 사람을 노리는 덫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본디새김은 덫 자체의 해로운 성격을 강조합니다. 중요한 것은 말의 허물이 실제적인 위험과 연결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제 입의 열매로 좋은 것을 배불리 누리고, 사람의 손이 한 일의 보상은 그에게 되돌려진다.잠언 12:14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는 입과 손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손은 눈에 보이는 일을 합니다. 땅을 일구고 물건을 만들고 다른 사람을 돕습니다. 그런데 잠언은 입에도 열매가 있다고 말합니다. 말 역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좋은 말은 사람들 사이에 신뢰를 형성하고, 올바른 판단을 돕고, 공동체에 유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잘못된 말은 갈등과 불신을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말은 단지 행동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말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동입니다.

뒷행에서 누가 그 보상을 돌려주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잠언의 초점은 입과 손의 활동이 모두 결과를 낳는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손으로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자신이 한 말에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바르게 말하려면 먼저 자신의 판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미련한 이의 길은 제 눈에 바르지만, 조언을 듣는 이는 지혜롭다.잠언 12:15 · 본디새김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이 언제나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은 바로 그 확신을 경계합니다. 「제 눈에 바르다」는 표현은 자신의 시각만을 기준으로 삼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조언을 듣는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무조건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판단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을 검토하는 일입니다.

실제로 사람은 자기 생각만으로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주목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결과 때문에 위험을 과소평가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은 그런 한계를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미련한 이의 분노는 그날로 드러나지만, 슬기로운 이는 모욕을 덮어 둔다.잠언 12:16 · 본디새김

그날로 드러난다는 표현은 감정이 일어난 때와 그것을 표출하는 때 사이에 거의 간격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슬기로운 사람이 모욕을 덮어 둔다는 것을 어떤 모욕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반드시 침묵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잠언은 분노를 느끼는 것 자체를 금지하지 않습니다. 분노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욕을 당한 순간에 분노가 모든 판단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상대의 말보다 더 큰 상처를 주는 말을 하거나, 나중에 후회할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슬기로운 사람은 즉각적인 감정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 말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분별은 분노를 전혀 느끼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분노가 자신의 판단을 대신하지 못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입술을 지키려면 먼저 자신의 판단과 감정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같은 혀가 칼이 되기도 하고 치료가 되기도 한다

잠언 12:17–20 본문 →

신실하게 말하는 이는 옳은 것을 알리지만, 거짓 증인은 속임수를 말한다.잠언 12:17 · 본디새김

이 구절의 배경에는 증언의 문제가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재판에서는 증언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실을 어떻게 말하는가에 따라 다른 사람의 권리와 형편이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신명기 19:16–21은 거짓 증언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증언이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에 실제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진실한 말의 가치는 말하는 사람의 성실함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 말이 무엇을 드러내는가에 있습니다. 진실한 증언은 사건을 바르게 판단하도록 돕습니다. 반면 거짓 증언은 판단을 왜곡합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은 단순히 개인적인 성격상의 결점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판단과 대우를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칼로 거듭 찌르듯 함부로 말하는 이가 있지만, 지혜로운 이들의 혀는 치유를 가져온다.잠언 12:18 · 본디새김

「함부로 말하는」은 경솔하게 말을 내뱉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문제는 반드시 의도적인 거짓말만은 아닙니다. 생각 없이 던진 말, 상대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은 말도 사람을 찌를 수 있습니다.

칼은 몸에 상처를 냅니다. 잠언은 말이 그와 비슷한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표현합니다. 특히 「칼로 거듭 찌르듯」이라는 비유는 말이 단순히 한순간의 불쾌함을 넘어 깊은 고통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같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치유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치유」는 치료와 회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상처를 입은 사람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위로의 말이 지혜로운 말은 아닙니다. 상대의 고통을 충분히 듣지 않은 채 괜찮아질 것이라고만 말한다면, 그 말은 듣기에 부드러워도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잘못을 바로잡는 책망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상대를 해치기 위한 것인지, 회복을 돕기 위한 것인지입니다. 지혜로운 말은 언제나 부드러운 말과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불필요하게 찌르는 것을 즐기지 않고, 가능한 한 회복을 향해 나아갑니다.

진실은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올바른 판단과 회복을 위한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굳게 서지만, 거짓된 혀는 내가 눈을 깜박일 동안뿐이다.잠언 12:19 · 본디새김

「내가 눈을 깜박일 동안」이라는 표현은 아주 짧은 순간을 나타냅니다. 원문에 일인칭 형태가 있지만, 이를 새로운 화자의 등장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거짓말이 언제나 즉시 드러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오랫동안 믿어지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은 사실과 어긋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유지하려면 계속 다른 설명과 은폐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반면 진실은 시간이 지나도 그 사실 자체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악을 꾸미는 이들의 마음에는 속임수가 있지만, 평화를 권하는 이들에게는 기쁨이 있다.잠언 12:20 · 본디새김

이 구절은 5절과 대응합니다. 처음에는 의로운 사람의 생각이 공정하고 악한 사람의 계책이 속임수라고 했습니다.

평화는 단순히 갈등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에서 평화는 평안과 온전함, 좋은 관계를 포함하는 폭넓은 의미를 가집니다. 평화를 권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갈등을 이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관계와 공동체가 온전하게 세워지는 방향을 찾습니다.

이 구절은 평화를 권하는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기뻐한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평화를 권하는 사람 자신에게 기쁨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해치려는 계획을 세우는 삶과,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려는 삶은 그 일을 하는 사람 자신의 내면에도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잠언 12장의 말에 관한 가르침은 구약의 다른 본문들과 깊이 연결됩니다. 시편 15:2–3은 여호와야훼의 장막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 진실을 말하고 이웃을 헐뜯지 않는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이사야 50:4에서는 지친 사람을 말로 붙들어 줄 수 있도록 가르침받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반면 욥기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려고 찾아왔지만, 욥의 고난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잘못을 문제 삼았습니다. 욥기 16:2에서 욥은 그들을 괴로운 위로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을 향해 종교적으로 옳아 보이는 말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말이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신약의 야고보서 3:1–12에서도 이어집니다. 야고보는 혀가 작은 지체이지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하며, 말의 힘을 경고합니다.

의로운 사람에게는 정말 아무 재앙도 닥치지 않는가

잠언 12:21–23 본문 →

의로운 이에게는 어떤 재앙도 닥치지 않지만, 악한 이들은 재난으로 가득하다.잠언 12:21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잠언을 정직하게 읽으려는 독자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의로운 사람에게는 정말 어떤 재앙도 닥치지 않을까요? 본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히브리어에서도 부정 표현과 「모든」 또는 「어떤」을 가리키는 말이 함께 사용되어 강한 부정을 나타냅니다.

이것을 곧바로 의로운 사람도 고난은 겪지만 결국 영적으로 승리한다는 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설명은 다른 성경 본문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는 신학적 해석이지만, 이 구절의 문면 자체가 그렇게 제한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잠언은 삶에 관한 지혜로운 관찰과 일반적인 질서를 짧은 격언으로 표현합니다. 의로운 삶은 생명으로 향하고, 악한 삶은 파멸을 향한다는 도덕적 질서를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는 의로운 사람이 실제로 큰 재앙을 겪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욥기 1:1은 욥을 흠 없고 곧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욥은 재산과 자녀를 잃는 참혹한 일을 겪습니다. 시편 34:19도 의로운 사람에게 많은 고난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여호와야훼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져 내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잠언 12:21을 모든 의로운 사람의 삶에서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경험적 법칙으로 읽으면 다른 성경 본문과 충돌합니다. 그렇다고 잠언의 단호한 선언을 없애 버릴 필요도 없습니다. 이 구절은 의로움이 생명을 지향하고 악함이 재난을 낳는다는 지혜의 확신을 가장 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질서가 개별 인간의 경험 속에서 언제나 예외 없이 실현되는지는 욥기와 전도서 같은 다른 지혜 문학이 제기하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강한 선언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고난받는 사람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재앙을 겪는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악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야훼는 거짓된 입술을 혐오하고, 신실하게 행하는 이들을 기뻐한다.잠언 12:22 · 본디새김

첫째 행은 거짓된 「입술」을 말합니다. 그런데 둘째 행은 진실한 입술이라고 하지 않고 「신실하게 행하는 이들」이라고 말합니다.

말과 행동이 나란히 놓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실함은 입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말한 대로 행동하고, 맡은 책임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삶과 연결됩니다. 정직한 말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난다면 그 정직함은 온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신앙을 인간의 일상생활과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단지 하나님에 관해 올바른 말을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수행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지식을 덮어 두지만, 어리석은 이들의 마음은 어리석음을 외친다.잠언 12:23 · 본디새김

이것을 자신의 지식을 독점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진실을 의도적으로 감추는 행동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지식을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를 말합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언제나 모두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분별합니다.

반면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말을 억제하고 판단을 점검하는 과정이 부족합니다. 이것은 15절의 말씀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자기 길이 언제나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쉽게 밖으로 쏟아 낼 수 있습니다. 반면 조언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검토한 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지혜로운 말은 지식의 양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분별에서 드러납니다.

손에 쥔 사냥감보다 중요한 것

잠언 12:24–27 본문 →

부지런한 이들의 손은 다스리지만, 게으른 손은 강제 노역을 하게 된다.잠언 12:24 · 본디새김

앞에서는 입술과 마음이 중심이었습니다. 이제 잠언은 다시 손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자기 책임을 다하고 꾸준히 일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거나 관리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는 사람은 점점 선택의 여지를 잃고 타인의 지시와 강제 아래 놓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강제 노역을 당하는 사람은 모두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고대 사회에서 강제 노역은 정치적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제도이기도 했습니다. 이 격언은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일반적인 결과를 대조하는 것이지, 모든 억압적 노동관계의 원인을 설명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본문이 강제 노역 제도 자체를 정당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다음 구절에서 잠언은 갑자기 노동과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람의 마음속 근심은 그 마음을 짓누르지만, 좋은 말은 그 마음을 기쁘게 한다.잠언 12:25 · 본디새김

근심은 밖에서 눈에 보이는 무게를 가진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을 무겁게 만들 수 있습니다. 걱정거리가 많아지면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해야 할 일을 시작하기가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해석상의 문제가 있어, 근심을 눌러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읽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본디새김처럼 근심이 마음을 짓누른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어지는 뒷행과의 대조를 생각하면 후자의 읽기는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우 간단하게 말합니다. 좋은 말입니다. 여기서 좋은 말은 반드시 특별한 지혜나 길고 정교한 설명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의 어려움을 알아주는 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조언은 근심에 짓눌린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좋은 말 한마디가 모든 근심과 고통을 반드시 해결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걱정에는 실제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관계의 갈등,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 말은 칼이 되기도 하고 치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 치유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좋은 말은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모두 짊어질 수는 없어도, 그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의로운 이는 제 이웃을 살피지만, 악한 이들의 길은 그들을 헤매게 한다.잠언 12:26 · 본디새김

이 구절은 번역상의 문제가 있는 자리입니다. 첫 행은 의로운 사람이 이웃을 살핀다는 뜻으로도, 의로운 사람이 이웃보다 뛰어나다는 뜻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본디새김은 의로운 사람이 이웃을 살핀다는 의미를 택했습니다. 이 읽기를 따르면 의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주의 깊게 살피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웃을 무분별하게 따르거나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반면 악한 사람들의 길은 그들을 헤매게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첫 행은 원어상 불확실성이 있으므로, 이웃을 돌보는 태도에 관한 세부적인 교훈을 확정적인 원뜻으로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게으른 이는 제 사냥감을 몰지 않고, 사람에게 귀한 재산은 부지런함이다.잠언 12:27 · 본디새김

「사냥감을 몬다」(⁨חָרַךְ⁩)고 옮긴 동사는 사냥감을 얻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으로도, 이미 잡은 사냥감이 있는데도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지 않는 모습으로도 읽힙니다. 어느 쪽이든 게으름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잠언이 강조하는 중심은 삶의 유익을 얻으려면 부지런히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기회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면 유익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책임 있게 다루는 태도입니다.

조금 더 깊이

25절에서 첫째 행의 동사에 붙은 목적어가 여성형인데, 이 구절에서 「근심」은 여성형이고 「마음」은 남성형입니다. 그래서 근심을 눌러 가라앉힌다는 읽기에서는 사람이 근심을 억누르거나 다스리는 행동이 중심이 되고, 본디새김의 읽기에서는 근심이 인간의 내면에 미치는 영향이 강조됩니다. 26절의 히브리어 야테르는 살피거나 찾아본다는 동사의 형태로 이해할 수 있지만, 더 낫거나 뛰어나다는 의미로 읽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구나 이웃 앞에 붙은 전치사 민은 비교를 나타낼 때 자연스럽습니다. 27절의 「사냥감을 몬다」고 옮긴 히브리어 동사는 매우 드문 표현으로, 정확히 어떤 사냥 행위를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달리 사냥한 것을 굽거나 요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정확한 사냥 방식이나 행동을 본문 이상으로 구체화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뒷행의 「사람에게 귀한 재산은 부지런함이다」 역시 원어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부지런함을 귀한 재산으로 보는 읽기가 자연스럽지만, 재산과 부지런함의 정확한 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의 여지도 있습니다.

의로움의 길에는 생명이 있다

잠언 12:28 본문 →

의로움의 길에는 생명이 있고, 그 오솔길에는 죽음이 없다.잠언 12:28 · 본디새김

잠언 12장은 이 말씀으로 끝납니다.

이 구절은 지금까지 등장한 다양한 인물과 행동을 하나의 길로 모읍니다. 훈계를 사랑하는 사람, 공정하게 생각하는 사람, 자기 가축의 생명을 살피는 사람, 자기 땅을 일구는 사람, 조언을 듣는 사람, 진실하게 말하는 사람, 평화를 권하는 사람이 모두 의로운 삶의 여러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행은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본디새김은 죽음 앞의 표현을 부정 표현으로 읽어 「죽음이 없다」고 옮겼습니다. 그러나 이를 「~로 향하여」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뒷행을 죽음으로 향하는 다른 길에 관한 말로 읽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첫째 행의 생명의 길과 둘째 행의 죽음이 없는 길을 같은 방향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생명으로 가는 길과 죽음으로 가는 길의 대조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의 문법과 표현만으로 어느 읽기가 유일하게 옳다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첫째 행은 분명합니다.

의로움의 길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 장에서 의로운 사람은 가축의 생명을 살피고, 진실한 말로 다른 사람을 보호하며, 근심에 짓눌린 마음에 좋은 말을 건네는 사람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한 행동들은 이미 현재의 삶에서 생명을 돌보고 회복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의로움의 길에 생명이 있다는 선언은 단순히 먼 미래에 관한 약속만이 아닙니다.

물론 이 구절의 「죽음이 없다」는 표현을 의로운 사람은 육체적으로 죽지 않는다거나 죽음 이후의 상태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설명된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잠언은 여기서 의로운 삶이 지향하는 방향을 가장 강한 언어로 제시합니다.

그 길은 생명을 향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는 길을 뜻하는 두 낱말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데레크는 길을, 네티바는 길이나 오솔길을 가리킵니다. 이 두 낱말이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죽음 앞에는 알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금지나 부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비슷한 형태의 엘, 곧 「~로 향하여」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다른 읽기가 생깁니다.

근심에 짓눌린 마음 앞에서

잠언 12:1–28 본문 →

잠언 12장의 여러 장면 가운데 특히 오래 남는 것은 25절입니다. 이 말씀에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근심에 짓눌린 사람과 좋은 말이 있습니다.

본문은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근심하는지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의 어려움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도,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인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마음이 짓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입술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모든 상황에서 정답을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어떤 말이 필요한지 살피고, 자신이 충분히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함부로 단정하지 않으며, 필요할 때 진실하고 좋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 태도는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훈계를 통해 배우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며,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는 과정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잠언 12장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은 서로 이어집니다. 훈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그가 살아가는 길을 생명으로 향하게 합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근심으로 무겁게 짓눌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 곁에 있습니다.

그는 상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좋은 말을 건넬 수는 있습니다.

칼처럼 사람을 찌를 수도 있는 입술이, 누군가의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잠언 12장이 보여 주는 지혜로운 삶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평범한 순간에도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