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10–24장 · 솔로몬의 짧은 격언

사람을 찌르는 말과 살리는 말

잠언 12장에는 칼을 들지 않고도 사람을 찌르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반대로 의술을 배운 적이 없어도 다른 사람의 상처를 낫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18절의 「칼로 찌르듯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의 혀는 상처를 낫게 한다」는 잠언 12장이 사람의 삶을 얼마나 예리하게 관찰하고 있는지 보여 줍니다. 말은 눈에 보이는 상처를 남기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깊이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짧은 말 한마디가 걱정에 짓눌린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이 관심을 갖는 것은 말뿐만이 아닙니다. 땅을 일구는 사람과 헛된 것을 뒤쫓는 사람, 자기 가축의 생명을 돌보는 사람과 잔인한 사람, 다른 이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과 자기 판단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도 등장합니다.

이들의 차이는 단순히 능력이 뛰어나거나 부족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생명을 돌보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능력을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치는 데 사용합니다.

잠언 12장은 이 차이를 사람의 마음과 입술, 손과 행동에서 찾아냅니다. 잠언 11장에서 바르게 사는 사람의 열매는 생명의 나무로 묘사되었습니다. 12장은 그 열매가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맺히는지 보여 줍니다. 사람의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며, 그 행동이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여러 격언으로 비추어 줍니다.

이 장의 처음과 끝도 의미심장합니다. 처음에는 훈계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나오고, 마지막에는 바르게 사는 길에 생명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지혜로운 삶은 자신을 고칠 수 있는 태도에서 시작하여 생명을 향한 길로 이어집니다.

읽는 시간 32분소단락 912장 본문 읽기 →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잠언 12:1–4 본문 →

훈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식을 사랑하지만, 꾸지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짐승처럼 깨달음이 없다.잠언 12:1 · 두루새김

12장은 매우 직설적인 말로 시작합니다.

꾸지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단순히 조금 어리석다고 하지 않습니다. 짐승처럼 깨달음이 없다고 말합니다. 「짐승처럼 깨달음이 없다」는 이성적인 분별이 부족한 모습을 나타내는 강한 표현입니다. 짐승과 연결되는 비유적 표현이지만, 동물 자체가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평가하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본문이 겨냥하는 것은 사람의 지적 능력보다 배우려는 태도입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 앞 행입니다. 우리는 보통 지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좋아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데 열심인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잠언은 지식에 대한 사랑을 훈계에 대한 사랑으로 확인합니다. 왜 그럴까요?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일은 즐거울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훈계를 받는 일은 다릅니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거나 잘못 행동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미 내린 판단을 바꾸고, 자신의 행동을 고쳐야 합니다.

그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지식을 좋아하면서도 꾸지람은 싫어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말은 듣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잠언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듭니다.

배우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어서 2절에서는 배움의 태도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 줍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선한 사람을 기쁘게 받아 주시지만, 악한 꾀를 꾸미는 사람에게는 죄가 있다고 판결하신다.잠언 12:2 · 두루새김

여기서는 단순히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대조되지 않습니다. 선한 사람과 「악한 꾀를 꾸미는 사람」이 대조됩니다. 이 구절에서 꾀를 꾸민다는 것은 단순히 계획을 세우거나 머리를 잘 쓴다는 뜻이 아닙니다. 악한 목적을 위해 남을 속이거나 해칠 계획을 마련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이는 지혜와 영리함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사람은 매우 영리하면서도 악한 일을 계획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상황을 유리하게 조종하고,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 빈틈없이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능력이 곧 지혜는 아닙니다.

「죄가 있다고 판결하신다」는 표현은 법정의 판단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이 자기 계획을 아무리 훌륭하다고 평가하더라도, 하나님의 판단 앞에서는 그 계획이 도덕적으로 어떤 것인지 드러납니다.

이제 3절에서는 사람의 삶을 건물이나 나무처럼 바라봅니다.

사람은 악한 짓으로 굳게 서지 못하지만,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다.잠언 12:3 · 두루새김

악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악한 짓을 할 수 있습니다. 거짓과 속임수, 힘으로 억누르는 행동이 당장은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언은 악한 짓으로 삶의 기초를 세울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나무의 뿌리는 대부분 땅 아래에 있습니다. 나무를 바라보는 사람은 잎과 가지, 열매를 먼저 봅니다. 그러나 나무가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는 성취보다 더 깊은 곳에 그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 있습니다. 정직함과 한결같은 믿음직함, 옳은 것을 따르려는 태도입니다. 이런 것은 언제나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상황에서 그 사람을 지탱하는 바탕이 됩니다.

4절에서는 그 바탕이 가정생활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 줍니다.

능력 있는 아내는 남편을 빛내는 관과 같지만, 부끄러움을 안기는 아내는 남편의 뼈를 썩게 하는 것과 같다.잠언 12:4 · 두루새김

관은 머리 위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예와 존중의 표시입니다. 반면 뼈가 썩는 것은 몸 안에서 일어나는 손상입니다. 겉으로 잘 보이지 않지만 몸을 깊은 곳에서 무너뜨립니다.

잠언은 한 사람의 배우자가 다른 사람의 삶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이 두 이미지로 보여 줍니다. 「능력(⁨חַיִל⁩) 있는 아내」의 「능력」에 해당하는 말은 힘, 능력, 뛰어남 등을 가리키는 말로, 단순히 성품이 온순하다거나 집안일을 잘한다는 의미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아내를 남편에게 순종하는 역할만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그의 능력과 인격이 가정을 얼마나 빛내는지 말합니다.

반대로 부끄러움을 안기는 행동은 가족 사이의 관계를 깊이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고대의 남편 중심적인 사회적 시각에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깨달음은 가정의 삶이 구성원들의 성품과 행동에 깊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은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기쁨과 영예가 될 수도 있고,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3절의 뿌리와 4절의 뼈가 썩는 이미지를 함께 읽으면, 잠언이 관심을 갖는 자리가 분명해집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보다 안쪽에서 삶을 지탱하거나 무너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금 더 깊이

룻기 3:11에서 룻은 「능력 있는 아내」와 같은 표현으로 불리며, 잠언 31:10에서도 이 표현으로 한 여인의 뛰어남을 소개합니다.

마음속 계획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잠언 12:5–8 본문 →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생각은 공정하지만, 악한 사람들의 계획은 속임수다.잠언 12:5 · 두루새김

사람의 생각은 겉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무엇을 의도하는지는 다른 사람이 쉽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잠언은 생각의 단계에서부터 이미 바르게 사는 것과 악하게 사는 것이 갈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은 공정하게 판단하려 합니다. 반면 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웁니다. 여기서 공정함은 단순히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한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각 사람에게 마땅한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이익 때문에 판단을 비틀지 않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이 생각의 차이는 다음 구절에서 말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악한 사람들의 말은 숨어서 남의 목숨을 노리지만, 바르게 사는 사람들은 자기 입으로 스스로를 건져 낸다.잠언 12:6 · 두루새김

「숨어서 남의 목숨을 노리지만」이라는 표현은 매우 위협적입니다. 상대가 미처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숨어서 기다리는 행동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면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방심한 틈을 이용합니다.

말은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거짓 증언, 일부러 퍼뜨린 소문, 상대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약속은 실제로 사람의 삶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처음부터 노골적인 위협으로 들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 상대를 해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은 자기 입으로 스스로를 건져 냅니다. 다만 원문에서는 건져 내는 대상을 가리키는 「그들을」이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로 읽으면 진실한 말이 결국 그 말하는 사람을 보호한다는 뜻이 됩니다. 두 번째로 읽으면 바르게 사는 사람의 말이 위험에 빠진 다른 사람을 구출한다는 뜻이 됩니다.

원문에서는 두 읽기 모두 가능하며, 그 대명사의 대상을 명확하게 지정하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첫 번째 읽기를 따라 「스스로를 건져 낸다」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대조의 중심은 분명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군가는 그것을 다른 사람을 해치는 덫으로 사용하고, 누군가는 위험에서 건져 내는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악한 생각은 악한 말로 이어집니다. 공정한 판단은 사람을 살리는 말로 나타납니다.

말이 위험한 이유는 입술의 움직임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말을 준비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7절에서는 그러한 삶의 결과가 집의 이미지로 표현됩니다.

악한 사람들은 뒤엎어져 사라지지만,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집은 굳게 서 있다.잠언 12:7 · 두루새김

앞에서는 사람이 굳게 서는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집이 서 있는가를 이야기합니다. 집은 한 사람의 생활을 넘어 가족과 가문의 삶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악한 행동의 결과가 개인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그가 세운 생활의 기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슬기롭게 생각하는 만큼 칭찬을 받지만, 마음이 뒤틀린 사람은 업신여김을 받는다.잠언 12:8 · 두루새김

이 구절에서 칭찬의 근거는 재산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지위가 아니라 슬기롭게 생각하는 능력입니다. 슬기롭게 생각한다는 것은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알맞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지식이 많다는 사실보다 그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와 관계됩니다.

잠언은 사람의 내면과 사람들 사이의 평판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에 품은 생각은 언젠가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며,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남깁니다.

사람의 가치와 일의 가치를 혼동하지 말라

잠언 12:9–12 본문 →

하찮게 여겨져도 종을 둔 사람이, 잘난 체하면서도 먹을 빵이 없는 사람보다 낫다.잠언 12:9 · 두루새김

이 구절은 당시 사회에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겼던 체면과 실제 생활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하찮게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는 종을 둘 정도의 생활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다른 사람은 잘난 체합니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 하지만, 정작 먹을 빵이 없습니다.

여기서 「종을 둔」이라는 표현은 고대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종속되어 일하던 관계를 전제로 합니다. 본문이 그 제도 자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와 실제 형편 사이의 차이를 보여 주기 위해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사용합니다.

이 격언에서 중요한 것은 허세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실제 형편보다 더 풍족하고 존경받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지위가 삶에 필요한 것을 대신 마련해 주지는 않습니다.

잠언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보다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은 자기 가축의 생명을 돌보지만, 악한 사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마저 잔인하다.잠언 12:10 · 두루새김

왜 바르게 사는 사람의 성품을 설명하면서 가축을 대하는 태도를 이야기할까요?

고대 농경사회에서 가축은 노동과 생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밭을 갈거나 짐을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고, 여러 생산활동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바르게 사는 사람이 가축을 잘 관리하여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가축의 「생명」을 돌본다고 말합니다.

「생명」(⁨נֶפֶשׁ⁩)으로 옮긴 말은 문맥에 따라 생명이나 목숨, 살아 있는 존재 자체를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가축을 단지 주인의 소유물로만 보지 않고 생명을 가진 존재로 다루는 표현입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은 자기 가축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살핍니다. 가축이 인간의 일을 위해 사용되더라도, 그 생명에 필요한 것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뒷행은 더욱 뜻밖입니다.

악한 사람에게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잠언은 그 마음마저 잔인하다고 평가합니다. 이 표현을 악한 사람에게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바꿀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가 베푸는 자비라고 여겨지는 행동조차 실제로는 잔인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상대를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를 해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친절을 베푼다고 생각하면서 상대의 필요와 고통을 제대로 살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바르게 사는지는 자신이 얼마나 선한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보다, 자기에게 맡겨진 생명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확인됩니다.

이 가르침은 동물을 넘어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신보다 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 자신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그 사람의 성품을 드러내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11절에서는 다시 농사짓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자기 땅을 일구는 사람은 빵을 배불리 먹지만, 헛된 것을 뒤쫓는 사람은 분별이 모자란다.잠언 12:11 · 두루새김

자기 땅을 일구는 사람은 실제로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일을 합니다. 반면 헛된 것을 뒤쫓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쏟지만, 그 결과가 삶을 지탱할 만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모든 사람이 농사를 지어야 한다거나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는 일이 어리석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핵심은 현실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냅니다. 다른 사람은 그 일을 외면하면서 근거 없는 기대나 허황된 약속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잠언은 현실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일에 충실한 사람을 지혜롭다고 평가합니다.

12절은 노동의 이미지를 사냥과 뿌리의 대조로 바꿉니다.

악한 사람은 다른 악한 사람들의 그물을 탐내지만,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뿌리는 열매를 맺는다.잠언 12:12 · 두루새김

「그물」(⁨מָצוֹד⁩)로 옮긴 말은 사냥에 사용하는 그물이나 그물로 잡은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악한 사람이 다른 악한 이들의 사냥 수단을 탐낸다는 뜻으로도, 그들이 얻은 사냥감을 탐낸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악한 사람은 다른 악한 사람들이 얻은 것을 바라봅니다.

반면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는 뿌리가 있습니다. 사냥은 이미 존재하는 먹잇감을 붙잡는 행동입니다. 뿌리는 식물이 땅에서 양분을 얻고 자라도록 합니다.

남이 가진 것을 빼앗거나 손쉽게 얻으려고 애쓰는 삶과, 자신의 뿌리를 내리고 꾸준히 자라 열매를 맺는 삶은 다릅니다.

잠언은 후자를 바르게 사는 사람의 삶으로 제시합니다.

조금 더 깊이

출애굽기 23:12에서도 안식일에 소와 나귀가 쉬도록 하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쉼은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창세기 1:26–28에서 사람에게 다른 생물을 다스리는 역할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잠언 12:10은 그러한 다스림이 실제 생활에서 어떤 태도를 요구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다스리는 사람은 돌보는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12절의 「열매를 맺는다」는 원문의 의미를 보충한 번역입니다. 히브리어 뒷행에는 「내다」 또는 「주다」에 해당하는 동사가 있지만 무엇을 내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은 뿌리라는 이미지에 맞추어 「열매를 맺는다」로 옮겼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입과 손으로 어떤 열매를 맺는가

잠언 12:13–16 본문 →

입술로 저지른 잘못은 해로운 덫이 되지만, 바르게 사는 사람은 곤경에서 빠져나온다.잠언 12:13 · 두루새김

앞에서 악한 사람의 말은 숨어서 남의 목숨을 노리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입술로 저지른 잘못이 덫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덫은 누구를 노리는 것일까요?

악한 사람은 말로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거짓말을 반복하다 보면 그 말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해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꾸민 말이 드러나면, 말한 사람 자신이 곤경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이어지는 14절에서는 부정적인 덫의 이미지가 긍정적인 열매의 이미지로 바뀝니다.

사람은 자기 입이 맺은 열매로 좋은 것을 배불리 누리고, 자기 손으로 한 일의 대가를 돌려받는다.잠언 12:14 · 두루새김

손은 눈에 보이는 일을 합니다. 땅을 일구고 물건을 만들고 다른 사람을 돕습니다. 그런데 잠언은 입에도 열매가 있다고 말합니다. 말 역시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좋은 말은 사람들 사이에 신뢰를 쌓고, 올바른 판단을 돕고, 공동체에 유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잘못된 말은 갈등과 불신을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말은 단지 행동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말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동입니다.

사람은 손으로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자신이 한 말에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바르게 말하려면 먼저 자신의 판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15절이 그 질문에 답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길이 바르다고 여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잠언 12:15 · 두루새김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이 언제나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 길을 계속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은 바로 그 확신을 경계합니다.

「자기 길이 바르다고 여기지만」이라는 표현은 자신의 시각만을 기준으로 삼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반면 지혜로운 사람은 조언에 귀를 기울입니다.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자기 생각을 무조건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판단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을 검토하는 일입니다.

실제로 사람은 자기 생각만으로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만 주목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결과 때문에 위험을 작게 볼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은 그런 한계를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16절은 이 지혜를 감정의 문제로 확장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화가 나면 곧바로 드러내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모욕을 당해도 덮어 둔다.잠언 12:16 · 두루새김

「곧바로 드러내지만」이라는 표현은 감정이 일어난 때와 그것을 드러내는 때 사이에 거의 간격이 없음을 보여 줍니다. 이것을 어떤 모욕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반드시 침묵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잠언은 화를 느끼는 것 자체를 금지하지 않습니다. 화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욕을 당한 순간에 화가 모든 판단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상대의 말보다 더 큰 상처를 주는 말을 하거나, 나중에 후회할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슬기로운 사람은 그 순간의 감정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 말하고 어떻게 대응할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분별은 화를 전혀 느끼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화가 자신의 판단을 대신하지 못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이렇게 13–16절은 말의 결과에서 시작하여 그 말을 조절하는 내면의 태도로 나아갑니다.

입술을 지키려면 먼저 자신의 판단과 감정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조금 더 깊이

13절의 「해로운 덫」은 원문에서는 악한 사람을 노리는 덫으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두루새김은 덫 자체의 해로운 성격을 강조합니다. 14절 뒷행에서 누가 그 대가를 돌려주는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잠언의 초점은 입과 손의 활동이 모두 결과를 낳는다는 데 있습니다.

같은 혀가 칼이 되기도 하고 치료가 되기도 한다

잠언 12:17–20 본문 →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옳은 것을 밝혀 주지만,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한다.잠언 12:17 · 두루새김

이 구절의 배경에는 증언의 문제가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재판에서는 증언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실을 어떻게 말하는가에 따라 다른 사람의 권리와 형편이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진실한 말의 가치는 말하는 사람의 성실함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 말이 무엇을 드러내는가에 있습니다.

진실한 증언은 사건을 바르게 판단하도록 돕습니다. 반면 거짓 증언은 판단을 그르치게 합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은 단순히 개인의 성격에 있는 문제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판단과 대우를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이어서 18절에서는 말이 가진 힘을 더욱 강렬한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칼로 찌르듯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들의 혀는 상처를 낫게 한다.잠언 12:18 · 두루새김

「함부로 말하는」은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문제는 반드시 일부러 하는 거짓말만은 아닙니다. 생각 없이 던진 말, 상대의 형편을 살피지 않은 말도 사람을 찌를 수 있습니다.

칼은 몸에 상처를 냅니다. 잠언은 말이 그와 비슷한 상처를 남길 수 있다고 표현합니다. 특히 「칼로 찌르듯」이라는 비유는 말이 단순히 한순간의 불쾌함을 넘어 깊은 고통을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같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상처를 낫게 할 수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상처를 입은 사람을 회복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위로의 말이 지혜로운 말은 아닙니다. 상대의 고통을 충분히 듣지 않은 채 괜찮아질 것이라고만 말한다면, 그 말은 듣기에 부드러워도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려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잘못을 바로잡는 꾸지람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상대를 해치기 위한 것인지, 회복을 돕기 위한 것인지입니다.

지혜로운 말은 언제나 부드러운 말과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불필요하게 찌르는 것을 즐기지 않고, 가능한 한 회복을 향해 나아갑니다.

이것이 17절의 진실한 증언과 18절의 상처를 낫게 하는 혀가 함께 놓인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진실은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올바른 판단과 회복을 위한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19절은 진실과 거짓이 얼마나 오래가는지를 대조합니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굳게 서지만, 거짓된 혀는 눈 깜짝할 동안만 버틴다.잠언 12:19 · 두루새김

거짓말이 언제나 즉시 드러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오랫동안 믿어지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은 사실과 어긋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유지하려면 계속 다른 설명을 덧붙이거나 사실을 감추어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진실은 시간이 지나도 그 사실 자체가 달라지지 않습니다.

20절에서는 다시 마음이 등장합니다.

악을 꾸미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속임수가 있지만, 평화를 이루도록 조언하는 사람들에게는 기쁨이 있다.잠언 12:20 · 두루새김

이 구절은 5절과 서로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 공정하고 악한 사람들의 계획이 속임수라고 했습니다.

평화는 단순히 갈등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태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평화(⁨שָׁלוֹם⁩)로 옮긴 히브리어 낱말은 평안과 온전함, 좋은 관계를 포함하는 폭넓은 의미를 가집니다. 평화를 이루도록 조언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갈등을 이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관계와 공동체가 온전하게 세워지는 방향을 찾습니다.

이 구절은 평화를 이루도록 조언하는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기뻐한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평화를 이루도록 조언하는 사람 자신에게 기쁨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해치려는 계획을 세우는 삶과, 사람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려는 삶은 그 일을 하는 사람 자신의 마음속에도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신명기 19:16–21은 거짓 증언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룹니다. 증언이 단순히 의견을 말하는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에 실제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0:4에서는 지친 사람을 말로 붙들어 줄 수 있도록 가르침받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반면 욥기의 친구들은 욥을 위로하려고 찾아왔지만, 욥의 고난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잘못을 문제 삼았습니다. 욥기 16:2에서 욥은 그들을 괴로운 위로자들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을 향해 종교적으로 옳아 보이는 말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말이 상처를 낫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신약의 야고보서 3:1–12에서도 이어집니다. 19절의 「눈 깜짝할 동안」은 원문에서는 「내가 눈을 깜박일 동안」처럼 일인칭 형태를 쓰지만, 이를 새로운 화자의 등장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에게는 정말 아무 재앙도 닥치지 않는가

잠언 12:21–23 본문 →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는 어떤 재앙도 닥치지 않지만, 악한 사람들에게는 재난이 가득하다.잠언 12:21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잠언을 정직하게 읽으려는 독자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는 정말 어떤 재앙도 닥치지 않을까요? 본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것을 곧바로 바르게 사는 사람도 고난은 겪지만 결국 영적으로 승리한다는 식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설명은 다른 성경 본문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는 신학적 해석이지만, 이 구절의 표현 자체가 그렇게 뜻을 제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잠언은 삶에 관한 지혜로운 관찰과 일반적인 질서를 짧은 격언으로 표현합니다. 바르게 사는 삶은 생명으로 향하고, 악한 삶은 파멸을 향한다는 도덕적 질서를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는 바르게 사는 사람이 실제로 큰 재앙을 겪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욥기 1:1은 욥을 흠 없고 곧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욥은 재산과 자녀를 잃는 참혹한 일을 겪습니다. 시편 34:19도 의로운 사람에게 많은 고난이 있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져 내신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잠언 12:21을 바르게 사는 모든 사람의 삶에서 재앙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경험적 법칙으로 읽으면 다른 성경 본문과 충돌합니다.

그렇다고 잠언의 단호한 선언을 없애 버릴 필요도 없습니다.

이 구절은 바르게 사는 삶이 생명을 향하고 악한 삶이 재난을 낳는다는 지혜의 확신을 가장 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질서가 각 사람의 경험 속에서 언제나 예외 없이 이루어지는지는 욥기와 전도서 같은 다른 지혜 문학이 던지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강한 선언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고난받는 사람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재앙을 겪는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악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는 잠언의 말씀을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증언을 함께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거짓된 입술을 몹시 싫어하시고, 진실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신다.잠언 12:22 · 두루새김

첫째 행은 거짓된 「입술」을 말합니다. 그런데 둘째 행은 진실한 입술이라고 하지 않고 「진실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말과 행동이 나란히 놓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실함은 입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말한 대로 행동하고, 맡은 책임을 성실하게 다하는 삶과 연결됩니다. 정직한 말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난다면 그 정직함은 온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잠언 12장에서 하나님이 직접 등장하시는 중요한 두 구절은 2절과 22절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단지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만을 바라시는 분으로 묘사되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어떤 생각과 행동에서 비롯되었는지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단지 하나님에 관해 올바른 말을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해내는 데서 드러납니다.

23절에서는 또 다른 흥미로운 대조가 나타납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아는 것을 감추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리석음을 외친다.잠언 12:23 · 두루새김

이것을 자신의 지식을 독점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진실을 일부러 감추는 행동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아는 것을 드러내는 방식의 차이를 말합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것을 언제나 모두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가려 냅니다.

반면 어리석은 사람들의 마음은 어리석음을 외칩니다. 그들에게는 말을 자제하고 자신의 판단을 살피는 과정이 부족합니다. 자기 길이 언제나 바르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쉽게 밖으로 쏟아 낼 수 있습니다. 반면 조언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판단을 살펴본 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지혜로운 말은 지식의 양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분별에서 드러납니다.

조금 더 깊이

21절의 히브리어에서도 부정 표현과 「모든」 또는 「어떤」을 가리키는 말이 함께 사용되어 강한 부정을 나타냅니다.

손에 쥔 사냥감보다 중요한 것

잠언 12:24–27 본문 →

부지런한 사람의 손은 남을 다스리지만, 게으른 사람은 강제로 일을 하게 된다.잠언 12:24 · 두루새김

앞에서는 입술과 마음이 중심이었습니다. 이제 잠언은 다시 손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자기 책임을 다하고 꾸준히 일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거나 관리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는 사람은 점점 선택의 여지를 잃고 다른 사람의 지시와 강제 아래 놓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강제로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고대 사회에서 강제로 일을 시키는 것은 정치적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제도이기도 했습니다. 이 격언은 부지런함과 게으름의 일반적인 결과를 대조하는 것이지, 사람을 억압하는 모든 노동관계의 원인을 설명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본문이 강제로 일을 시키는 제도 자체를 정당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다음 구절에서 잠언은 갑자기 노동과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합니다.

마음속 걱정은 사람의 마음을 짓누르지만, 좋은 말은 그 마음을 기쁘게 한다.잠언 12:25 · 두루새김

걱정은 밖에서 눈에 보이는 무게를 가진 물건이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을 무겁게 만들 수 있습니다. 걱정거리가 많아지면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해야 할 일을 시작하기가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해석상의 문제가 있습니다. 걱정을 눌러 가라앉힌다는 뜻으로 읽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경우 사람이 걱정을 억누르거나 다스리는 행동이 중심이 됩니다. 반면 두루새김처럼 마음속 걱정이 사람의 마음을 짓누른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걱정이 사람의 마음속에 미치는 영향이 강조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우 간단하게 말합니다. 좋은 말입니다.

상대의 어려움을 알아주는 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조언은 걱정에 짓눌린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좋은 말 한마디가 모든 걱정과 고통을 반드시 해결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걱정에는 실제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말은 칼이 되기도 하고 상처를 낫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 회복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좋은 말은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모두 짊어질 수는 없어도, 그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은 사귈 사람을 살피지만, 악한 사람들의 길은 그들을 헤매게 한다.잠언 12:26 · 두루새김

이 구절은 번역상의 문제가 있는 자리입니다.

「살피지만」(⁨תּוּר⁩)으로 옮긴 히브리어 낱말은 살피거나 찾아본다는 동사의 형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낫거나 뛰어나다는 의미로 읽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구나 이웃 앞에 붙은 전치사는 비교를 나타낼 때 자연스럽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바르게 사는 사람이 이웃보다 뛰어나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의 읽기를 따르면 바르게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주의 깊게 살피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웃을 무분별하게 따르거나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반면 악한 사람들의 길은 그들을 헤매게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첫 행은 원어상 불확실한 부분이 있으므로, 이웃을 돌보는 태도에 관한 세부적인 교훈을 확정적인 원뜻으로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27절에서는 다시 게으름에 관한 모습이 등장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잡은 사냥감도 굽지 않지만, 부지런함은 사람에게 귀한 재산이다.잠언 12:27 · 두루새김

여기서 「굽지 않지만」(⁨חָרַךְ⁩)으로 옮긴 히브리어 동사는 매우 드문 표현입니다. 사냥감을 몬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하고, 두루새김처럼 사냥한 것을 굽거나 요리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로 읽으면 사냥감을 얻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이 됩니다. 두 번째로 읽으면 이미 잡은 사냥감이 있는데도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지 않는 모습이 됩니다.

어느 쪽이든 게으름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회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면 유익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책임 있게 다루는 태도입니다.

조금 더 깊이

25절 첫째 행의 동사에 붙은 목적어가 여성형인데, 이 구절에서 「걱정」에 해당하는 말은 여성형이고 「마음」에 해당하는 말은 남성형입니다. 그래서 걱정을 눌러 가라앉힌다는 읽기가 나옵니다. 이어지는 뒷행과의 대조를 생각하면 두루새김의 읽기는 자연스럽습니다. 27절 뒷행의 「부지런함은 사람에게 귀한 재산이다」 역시 원어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부지런함을 귀한 재산으로 보는 읽기가 자연스럽지만, 재산과 부지런함의 정확한 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의 여지도 있습니다.

의로움의 길에는 생명이 있다

잠언 12:28 본문 →

바르게 사는 길에는 생명이 있고, 그 길에는 죽음이 없다.잠언 12:28 · 두루새김

잠언 12장은 이 말씀으로 끝납니다.

이 구절은 지금까지 등장한 다양한 인물과 행동을 하나의 길로 모읍니다. 훈계를 사랑하는 사람, 공정하게 생각하는 사람, 자기 가축의 생명을 돌보는 사람, 자기 땅을 일구는 사람,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진실을 말하는 사람, 평화를 이루도록 조언하는 사람이 모두 바르게 사는 삶의 여러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행은 해석이 쉽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는 알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금지나 부정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두루새김은 이를 부정 표현으로 읽어 「그 길에는 죽음이 없다」고 옮겼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형태의 엘, 곧 「~로 향하여」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뒷행을 죽음으로 향하는 다른 길에 관한 말로 읽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첫째 행의 생명의 길과 둘째 행의 죽음이 없는 길을 같은 방향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생명으로 가는 길과 죽음으로 가는 길의 대조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의 문법과 표현만으로 어느 읽기가 유일하게 옳다고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첫째 행은 분명합니다.

바르게 사는 길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이 장에서 바르게 사는 사람은 가축의 생명을 돌보고, 진실한 말로 다른 사람을 보호하며, 걱정에 짓눌린 마음에 좋은 말을 건네는 사람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한 행동들은 이미 현재의 삶에서 생명을 돌보고 회복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바르게 사는 길에 생명이 있다는 선언은 단순히 먼 미래에 관한 약속만이 아닙니다.

물론 이 구절의 「죽음이 없다」는 표현을 바르게 사는 사람은 육체적으로 죽지 않는다거나 죽음 이후의 상태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설명된다는 뜻으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잠언은 여기서 바르게 사는 삶이 향하는 방향을 가장 강한 말로 제시합니다.

그 길은 생명을 향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는 길을 뜻하는 두 낱말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하나는 길을, 다른 하나는 길이나 오솔길을 가리킵니다. 이 두 낱말이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근심에 짓눌린 마음 앞에서

잠언 12:1–28 본문 →

잠언 12장의 여러 장면 가운데 특히 오래 남는 것은 25절의 「마음속 걱정은 사람의 마음을 짓누르지만, 좋은 말은 그 마음을 기쁘게 한다」입니다.

이 말씀에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저 걱정에 짓눌린 사람과 좋은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입술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모든 상황에서 정답을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어떤 말이 필요한지 살피고, 자신이 충분히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는 함부로 단정하지 않으며, 필요할 때 진실하고 좋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 태도는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훈계를 통해 배우고, 자신의 잘못을 고치며, 다른 사람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과정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잠언 12장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은 서로 이어집니다.

훈계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그가 살아가는 길을 생명으로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다시 25절의 장면으로 돌아가 봅니다.

한 사람의 마음이 걱정으로 무겁게 짓눌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 곁에 있습니다.

그는 상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좋은 말을 건넬 수는 있습니다.

칼처럼 사람을 찌를 수도 있는 입술이, 누군가의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할 수도 있습니다.

잠언 12장이 보여 주는 지혜로운 삶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평범한 순간에도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