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풀어 읽기 · 11장

이 장의 자리 · 10–24장 · 솔로몬의 짧은 격언

속이는 저울에서 생명의 나무까지

잠언 11장은 저울에서 시작해 나무로 끝납니다.

처음에는 상인이 물건의 무게를 재는 작은 돌추가 등장합니다. 마지막에는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나무가 등장합니다. 그 사이에는 재산을 모으는 사람, 이웃을 헐뜯는 사람, 도시를 번영하게 하는 사람, 곡식을 창고에 쌓아 두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차례로 나타납니다.

이 다양한 장면에는 하나의 질문이 흐릅니다.

내가 가진 힘과 재산과 말은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사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나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는 데 사용되고 있는가?

잠언 11장은 이 질문을 1절의 「여호와야훼께서는 속이는 저울을 몹시 싫어하시고, 무게가 정확한 돌추를 기뻐하신다」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몹시 싫어하시는지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대상은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나 종교 의식이 아닙니다. 시장에서 사용하는 저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산다는 것은 개인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데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물건을 사고팔고,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과 연결됩니다.

이 장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에게만 유익을 가져오는 존재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 때문에 도시 전체가 기뻐하고, 그가 베푸는 복으로 도시가 높이 섭니다. 그의 친절은 자신에게 돌아오고, 그의 열매는 다른 사람에게 생명이 됩니다.

읽는 시간 28분소단락 911장 본문 읽기 →

하나님은 저울을 보고 계신다

잠언 11:1–6 본문 →

여호와야훼께서는 속이는 저울을 몹시 싫어하시고, 무게가 정확한 돌추를 기뻐하신다.잠언 11:1 · 두루새김

고대에는 물건의 무게를 재기 위해 저울과 돌추를 사용했습니다. 정해진 무게의 돌을 한쪽에 놓고 다른 쪽에 상품을 올려 비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때 돌추를 실제 무게보다 가볍게 만들거나 무겁게 만들면 거래 상대방을 속일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정당하게 무게를 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쪽이 부당한 이익을 얻는 것입니다.

잠언 11:1은 바로 이러한 속임수를 문제 삼습니다. 「몹시 싫어하시고」(⁨תּוֹעֵבַ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하나님이 매우 역겨워하시는 것을 가리키는 강한 표현입니다. 반대로 「기뻐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호의와 기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거래의 결과에만 관심을 갖는 분이 아닙니다. 거래가 이루어지는 방식 자체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십니다.

사람들은 종종 종교적인 일과 경제적인 일을 별개의 영역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은 신앙의 문제이고, 물건을 사고파는 일은 세상의 문제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잠언 11:1은 그 둘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그것은 예배의 형식뿐 아니라 거래의 정직함에서도 드러납니다.

「무게가 정확한 돌추」는 문자적으로 온전한 돌이라는 뜻입니다. 돌추가 제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여 정해진 무게를 정확히 나타낸다는 의미입니다. 원문에서는 이 온전함의 생각이 잠언 11장 곳곳에 이어집니다. 두루새김은 3절에서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정직함」이 그들을 이끈다고 하고, 5절에서는 「흠 없는 사람」이 바르게 살아 자기 길을 곧게 한다고 합니다.

잠언은 사람이 바르게 사는 모습을 일상생활의 정확함과 성실함에서부터 보여 줍니다. 정직한 사람은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정확한 저울을 사용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도 살피지 않을 때에도 같은 무게를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온전함은 인간의 길을 어떻게 이끄는가

2–3절에서는 저울이라는 물건에서 인간의 마음과 삶으로 시선이 옮겨갑니다.

거만함이 오면 부끄러움도 따라오지만, 겸손한 사람들에게는 지혜가 있다.잠언 11:2 · 두루새김
바르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직함에 이끌리지만, 배신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비뚤어짐 때문에 무너진다.잠언 11:3 · 두루새김

거만한 사람은 자신을 실제보다 높이 평가합니다. 자기 판단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다른 사람의 가르침이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면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겸손은 지혜를 배우고 자신의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3절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직함」에 이끌린다고 말합니다.

보통 사람은 자신의 목표나 계획이 자기를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잠언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려는 태도 자체가 판단의 길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한다면 그 길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매번 모든 선택을 처음부터 계산해야 하는 부담이 줄어듭니다. 자신의 삶을 이끄는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배신하는 사람은 자신의 비뚤어짐 때문에 무너집니다. 배신은 단순히 정해진 규칙 하나를 어기는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믿고 맡긴 관계를 깨뜨리는 행동입니다. 속임수와 배신은 인간이 의지하는 신뢰의 바탕을 스스로 파괴합니다.

이어서 4–6절은 같은 문제를 더욱 강한 표현으로 다룹니다.

분노가 쏟아지는 날에는 재산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바르게 사는 삶은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 낸다.잠언 11:4 · 두루새김

「분노가 쏟아지는 날」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가리키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지만,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미래의 어느 한 시점으로 한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재산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흠 없는 사람은 바르게 살아 자기 길을 곧게 하지만, 악한 사람은 자기 악 때문에 넘어진다.잠언 11:5 · 두루새김
바르게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바른 삶으로 구출되지만, 배신하는 사람들은 자기 욕심에 붙잡힌다.잠언 11:6 · 두루새김

사람은 욕심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합니다. 그런데 그 욕심이 오히려 자신을 붙잡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속임수와 배신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바르게 사는 삶은 인간을 얽매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길로 이끕니다.

잠언이 말하는 자유는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태와 같지 않습니다. 욕심이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올바른 길을 분별하는 능력과도 연결됩니다.

조금 더 깊이

레위기 19:35–36에서도 하나님은 재판과 길이, 무게와 부피를 잴 때 속이지 말고 정확한 저울과 추를 사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바로 이어 자신이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하나님임을 밝히십니다. 이스라엘을 억압에서 구해 내신 하나님은 이제 그 백성이 자기 이웃을 경제적으로 속이지 않기를 요구하십니다. 정확한 저울을 사용하라는 명령(19:35–36)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명령(19:18)과 같은 장에 놓여 있습니다. 아모스 8:4–6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곡식을 파는 데 부정한 저울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책망받습니다. 반면 이사야 58:6–10에서는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누고, 고통받는 사람을 돌보며, 억압을 없애는 삶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과 연결됩니다. 또 11:6의 「욕심」에 해당하는 말은 욕망이나 파멸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자기 욕심에 붙잡힌다」로 옮겨, 배신하는 사람이 자신의 욕심에 붙잡힌다는 의미를 택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이 끝날 때, 성읍에는 무엇이 남는가

잠언 11:7–11 본문 →

악한 사람이 죽으면 희망이 사라지고, 힘에 걸었던 기대도 사라진다.잠언 11:7 · 두루새김

악한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도 미래를 계획하고,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죽음은 그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이루려던 계획을 끝낼 수 있습니다. 앞에서 재산과 바르게 사는 삶을 대조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간이 자기 재산이나 힘만으로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경고로 읽을 수 있습니다.

뒷행의 「힘」은 원어상 해석이 갈리는 표현입니다. 히브리어 오님은 힘이나 재력과 관련된 말로 이해할 수도 있고, 불의한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힘에 걸었던 기대」로 옮겨, 인간이 의지하던 힘 자체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다는 의미를 드러냅니다. 반면 불의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읽기를 따르면, 앞 행과 나란히 놓이는 사람들의 기대가 사라진다는 의미가 두드러집니다. 어느 쪽이든 인간의 희망이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가를 묻는다는 점은 같습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은 곤경에서 빠져나오고, 악한 사람이 대신 그 곤경에 빠진다.잠언 11:8 · 두루새김

마치 위험한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이 빠져나오자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형편이 마지막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곤경에 처한 사람이 끝내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현재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자신이 선택한 길 때문에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9절부터 장면이 개인에게서 공동체로 확대됩니다.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은 입으로 이웃을 망치지만, 바르게 사는 사람들은 지식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잠언 11:9 · 두루새김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이 사용하는 무기는 여기서 칼이나 창이 아닙니다. 입입니다.

사람은 말로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습니다.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일부러 오해를 만들며, 다른 사람의 명예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반면 바르게 사는 사람의 지식은 무엇이 진실인지 분별하고, 어떤 말과 행동이 위험한지 알아차리는 능력과 연결됩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잘되면 도시가 기뻐하고, 악한 사람들이 망하면 환호가 터진다.잠언 11:10 · 두루새김

왜 한 사람의 형편이 도시 전체의 기쁨과 연결될까요? 그 사람이 자신의 삶을 통해 공동체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그가 가진 재산과 영향력, 판단과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악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억압했다면, 그가 망했을 때 공동체는 억압에서 벗어난 것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악한 사람이 망할 때 환호가 터진다는 표현을 모든 인간의 고통을 즐기라는 명령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공동체를 해치던 악한 영향력이 사라질 때 사람들이 느끼는 해방과 안도의 기쁨을 그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축복으로 도시가 높이 서지만, 악한 사람들의 입으로 도시가 무너진다.잠언 11:11 · 두루새김

여기서 도시가 높이 서고 무너지는 원인은 군사력이나 성벽의 튼튼함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축복과 말입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축복」은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복된 말과 행동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그들이 받은 복이 공동체에 유익을 가져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한쪽 의미로만 분명하게 제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뒷행에서 악한 사람들의 입이 도시를 무너뜨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이 강조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도시는 건물과 도로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하고, 공동체의 결정을 믿을 수 있어야 하며, 이웃에게서 최소한의 정직함을 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짓 소문과 선동, 부당한 고발과 속이는 조언은 실제로 사람들의 관계와 공동체의 질서를 흔들 수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 바르게 살 수도, 혼자 악하게 살 수도 없습니다. 그가 하는 선택은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남깁니다.

언제 말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가

잠언 11:12–15 본문 →

도시 전체를 세우거나 무너뜨리는 말의 힘을 이야기한 뒤, 잠언은 이웃 사이의 아주 구체적인 상황으로 돌아옵니다.

이웃을 업신여기는 사람은 분별이 모자라고, 분별 있는 사람은 잠잠히 있다.잠언 11:12 · 두루새김

여기서 두 사람의 차이는 단순히 말이 많고 적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본문은 정확한 상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행의 대조를 보면, 이웃을 업신여기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분별의 한 모습으로 제시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부족함을 알아차렸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말할 자격까지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침묵은 때로 무관심이나 두려움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말을 삼가는 성숙한 태도입니다.

남의 말을 옮기며 돌아다니는 사람은 비밀을 드러내지만, 마음이 믿음직한 사람은 그 일을 덮어 둔다.잠언 11:13 · 두루새김

「남의 말을 옮기며 돌아다니는」이라는 표현은 정보를 가지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찾아다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법에서도 험담을 퍼뜨리는 행위는 공동체를 해치는 문제로 다루어졌습니다. 레위기 19:16에서는 백성 가운데 돌아다니며 험담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런 행동의 문제는 정보가 사실인지 거짓인지에만 있지 않습니다. 어떤 사실이 실제로 일어났더라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퍼뜨리는 일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적인 어려움을 털어놓는 친구가 있을 수 있고, 민감한 문제를 맡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때 믿음직한 사람은 자신이 알게 된 정보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도 중요한 경계가 있습니다. 비밀을 지킨다는 이유로 학대나 폭력, 부당한 행위를 감추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적절한 도움을 구하는 일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잠언 11:13은 모든 비밀을 무조건 감추라는 절대적인 법칙이 아니라, 이웃의 사정을 함부로 퍼뜨리지 않는 믿음직한 태도를 가르칩니다.

이끌어 줄 지혜로운 계획이 없으면 백성이 무너지지만, 조언하는 사람이 많으면 안전하다.잠언 11:14 · 두루새김

앞에서는 분별 있는 사람이 잠잠히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조언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 둘은 모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잠언이 경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험담을 퍼뜨리는 말입니다. 반면 공동체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조언은 귀하게 여깁니다.

어떤 지도자가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듣고 자신의 판단을 점검해야 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잘못 판단할 수도 있지만, 잠언의 요점은 중요한 결정을 혼자 독단적으로 내리는 것보다, 다양한 조언을 통해 살피는 태도가 지혜롭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는 앞선 겸손의 가르침이 다시 드러납니다.

낯선 사람을 위해 보증을 서면 크게 해를 입지만, 손을 맞잡아 보증하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은 안전하다.잠언 11:15 · 두루새김

고대의 보증은 다른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을 대신 떠맡는 약속이었습니다. 손을 맞잡는 행위는 그러한 약속을 맺는 장면과 연결됩니다. 여기서 경고의 대상은 다른 사람을 돕는 마음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지 충분히 헤아리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책임을 떠맡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필요한 곳에서는 침묵하고, 필요한 곳에서는 조언을 구하며, 중요한 약속을 맺을 때에는 그 결과를 신중하게 살핍니다.

지혜는 사람을 무조건 의심하게 만들지도 않고, 아무나 무조건 믿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신뢰를 책임 있게 다루도록 가르칩니다.

조금 더 깊이

「이끌어 줄 지혜로운 계획」에 해당하는 원어는 계획을 세우고 방향을 잡는 지혜로운 지도를 가리킵니다. 이 말은 본래 배를 다루거나 방향을 잡는 이미지와 관련된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잠언의 문맥에서는 신중한 계획과 조언의 의미가 중심입니다.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뿌리는가

잠언 11:16–21 본문 →

품위 있는 여자는 명예를 붙들고, 난폭한 사람들은 재물을 붙든다.잠언 11:16 · 두루새김

두 행 모두 「붙들고」(⁨תָּמַךְ⁩)와 「붙든다」로 같은 동사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붙드는 대상이 다릅니다.

「품위 있는」(⁨חֵן⁩)에 해당하는 말은 호의나 은혜로움,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아름다움과 관련된 말입니다. 반면 「난폭한」은 강압적이고 위협적인 성격을 나타냅니다.

원문이 여자와 남자를 대조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를 여자는 명예를 추구하고 남자는 재물을 추구한다는 일반적인 성별 구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잠언은 서로 다른 인물을 통해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이 구절에서 독자는 한 가지 질문을 마주합니다.

사람이 자기 손에 쥐고 있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친절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지만, 잔인한 사람은 자기 몸을 괴롭힌다.잠언 11:17 · 두루새김

친절은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인데, 왜 친절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한다고 할까요? 잠언은 친절이 다른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행동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잔인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 자기 삶에도 해를 끼칩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적대감을 만들어 낸다면, 자신 역시 그러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치면서도 자기 삶만은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잠언은 그렇게 쉽게 분리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악한 사람이 벌어들이는 대가는 헛되지만, 바른 일을 씨처럼 뿌리는 사람은 확실한 보상을 받는다.잠언 11:18 · 두루새김

농부는 씨앗을 뿌린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곧바로 수확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씨앗이 자라야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바른 일을 씨처럼 뿌리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정직하게 행동하고 다른 사람을 공정하게 대한다고 해서 언제나 즉시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잠언은 그가 하는 일이 헛되지 않다고 말합니다.

큰돈을 벌었더라도 그 돈이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한다면 그것을 참된 유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르게 사는 삶은 참으로 생명으로 이어지고, 악을 뒤쫓는 사람은 자기 죽음을 향해 간다.잠언 11:19 · 두루새김

본문은 바르게 사는 삶과 악한 삶을 단순한 성격 차이로 그리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길처럼 보여 줍니다. 악이 우연히 사람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악을 적극적으로 추구합니다. 그런데 그는 악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으려다가 오히려 자신의 죽음으로 향합니다.

20절에서는 다시 하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마음이 뒤틀린 사람들을 몹시 싫어하시고, 흠 없는 길을 걷는 사람들을 기뻐하신다.잠언 11:20 · 두루새김

이 구절은 1절과 뚜렷하게 대응합니다. 처음에는 저울이라는 물건의 정직함이 문제였습니다. 이제는 그 저울을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과 삶이 문제입니다.

속이는 저울은 우연히 생기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속이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하나님은 그 행동만이 아니라 그 행동을 낳는 마음과 삶까지 보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거래만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악한 사람은 틀림없이 벌을 피하지 못하지만,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자손은 벗어난다.잠언 11:21 · 두루새김

「틀림없이」(⁨יָד⁩)에 해당하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손과 손」이라는 관용적 표현입니다. 이는 확실함이나 보증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한패가 되는 모습을 가리킨다고 보는 해석도 있지만, 이 문맥에서는 악한 사람이 벌을 피할 수 없다는 확실한 선언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바르게 사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는 무조건 보호받고, 악한 부모의 자녀는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 18장은 자녀가 부모의 죄를 자동으로 짊어지는 것은 아니며, 각 사람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강조합니다. 잠언 11:21은 바른 삶과 악한 삶이 다음 세대의 형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혜 문학의 시야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금고리가 어울리지 않는 자리

잠언 11:22–23 본문 →

아름다워도 분별을 저버린 여자는 돼지 코에 달린 금고리와 같다.잠언 11:22 · 두루새김

금고리는 귀한 장신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돼지의 코에 달려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귀한 물건이지만 그 가치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금고리가 가짜라는 사실이 아닙니다. 금고리는 실제로 귀합니다. 그러나 귀한 것이 제자리에 놓이지 않으면 그 가치를 충분히 드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비유이므로 오늘날 독자에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본문이 고대의 성별 구분이 담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을 여성의 아름다움을 깎아내리거나 외모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의 초점은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분별이 없는 아름다움의 한계입니다.

외모뿐 아니라 재산이나 권력, 뛰어난 능력에도 같은 질문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보다 그것을 어떤 지혜로 다루는가가 중요합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좋은 것이지만, 악한 사람들이 기대하는 끝에는 분노가 기다린다.잠언 11:23 · 두루새김

잠언은 바르게 사는 삶의 방향을 말합니다. 원문에서 이 분노가 악한 사람 자신이 품은 분노인지, 그가 마주하게 될 진노의 결과인지를 따지면 문맥상 후자의 의미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두루새김도 기대하는 끝에 분노가 기다린다고 옮겼지만, 본문은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인간의 희망도 옳고 그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잠언은 이 문제를 재물을 나누는 행동 속에서 보여 줍니다.

나누어 주는데 왜 더 풍족해지는가

잠언 11:24–28 본문 →

넉넉히 나누어 주어도 가진 것이 더 늘어나는 사람이 있고, 마땅히 줄 것까지 아껴도 가난해질 뿐인 사람이 있다.잠언 11:24 · 두루새김

보통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면 줄어들고, 아껴 두면 늘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잠언은 그 반대의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본문은 모든 나눔이 반드시 더 많은 재산으로 돌아온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가진 것이 더 늘어나는 사람이 있고」, 「가난해질 뿐인 사람이 있다」는 형태로 삶의 역설을 보여 줍니다. 뒷행의 「마땅히 줄 것까지」에 해당하는 원어(⁨יֹשֶׁר⁩)는 올바름이나 정당함과 관련됩니다. 단순히 돈을 아껴 두는 행동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마땅히 내놓아야 할 것까지 지나치게 붙잡고 있는 행동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계획 없이 재산을 나누어 주면 반드시 부자가 된다는 교훈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씀의 중심을 베풀면 반드시 더 많이 돌려받는다는 계산으로 바꾸면 오히려 본래의 의미가 흐려집니다. 그렇게 되면 베풂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투자로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정당하게 베풀고 필요한 것을 나누는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좋은 관계와 신뢰를 쌓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붙잡아 두려는 사람은 재산을 지키려다가 정작 자신의 삶을 지탱할 관계를 잃을 수 있습니다.

넉넉히 베푸는 사람은 풍족해지고, 남에게 물을 넉넉히 주는 사람은 자신도 물을 받는다.잠언 11:25 · 두루새김

여기서 물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물을 넉넉히 준다는 것은 단순히 남는 것을 처리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내어주는 모습입니다. 잠언은 넉넉히 베푸는 삶 자체가 지닌 가치를 보여 줍니다.

곡식을 내놓지 않는 사람은 사람들의 저주를 받지만, 곡식을 파는 사람의 머리에는 복이 내린다.잠언 11:26 · 두루새김

농사를 중심으로 살아가던 사회에서 곡식의 공급은 공동체의 생존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곡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면 곡식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곡식을 공짜로 나누어 주는 사람이 아니라, 파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잠언은 정상적인 거래 자체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의 필요와 완전히 분리하여, 공급을 막는 행동입니다. 물론 본문은 곡식을 내놓지 않는 사람이 정확히 어떤 이유로 그렇게 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1절의 저울과 연결됩니다.

처음에는 거래의 정직성이 문제였습니다. 이제는 거래를 통해 공동체에 필요한 것이 공급되는가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제활동은 다른 사람을 속이지 않는 데서 시작하여, 다른 사람의 삶에 필요한 것을 정당하게 공급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좋은 것을 힘써 찾는 사람은 호의를 구하지만, 악을 찾는 사람에게는 악이 닥친다.잠언 11:27 · 두루새김

사람은 무엇을 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갑니다.

자기 재산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넘어지지만, 바르게 사는 사람들은 푸른 잎처럼 돋아난다.잠언 11:28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재산 자체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자기 재산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재산이 자신의 안전을 끝까지 보장한다고 믿는 순간, 그 사람은 재물에 자신을 맡기게 됩니다.

한 사람은 자신이 쌓아 놓은 것에 의지합니다. 다른 사람은 살아 있는 식물처럼 자랍니다.

재물은 쌓아 둘 수 있지만, 잎은 생명이 있어야 돋아납니다.

조금 더 깊이

26절의 곡식을 내놓지 않는 행동은 가격을 올리려고 곡식을 사 모아 쌓아 두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그 동기를 본문에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특정한 경제정책이나 가격 규제의 직접적인 근거로 삼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집안에 남는 바람과 사람을 살리는 열매

잠언 11:29–30 본문 →

자기 집안을 괴롭히는 사람은 바람을 물려받고,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의 종이 된다.잠언 11:29 · 두루새김

집안을 괴롭히는 사람은 무엇인가를 자기 손에 넣으려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가족을 통제하려 하거나, 집안의 자원을 자기 욕망에 따라 사용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언은 그런 사람에게 남는 것이 바람이라고 말합니다.

바람을 물려받는다는 표현은 실제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을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집안을 괴롭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앞서 친절한 사람과 잔인한 사람을 대조했던 17절과 연결됩니다.

이제 30절에서는 전혀 다른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의 열매는 생명의 나무이고, 사람들을 얻는 사람은 지혜롭다.잠언 11:30 · 두루새김

보통 나무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바르게 사는 사람의 열매가 다시 생명의 나무가 됩니다. 이 표현은 바르게 사는 삶의 결과가 다른 사람에게도 생명을 공급할 수 있음을 풍성하게 보여 줍니다.

앞서 24–25절에서 나눔과 물을 공급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이제 그 모든 일이 한 그루의 나무로 그려집니다. 그 삶에서 나온 열매가 또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그 사람 역시 생명을 전하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얻는 사람」은 누구인가

11:30의 뒷행은 중요한 해석의 갈림이 있는 구절입니다. 문자적으로 옮기면 「사람들의 목숨을 취하는 이는 지혜롭다」 혹은 「사람들을 얻는 이는 지혜롭다」 정도의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취하다」(⁨לָקַח⁩)로 옮길 수 있는 동사는 취하다, 얻다, 붙잡다 등의 뜻을 가집니다. 네페시는 문맥에 따라 생명, 목숨, 사람 자신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사람들을 얻는 사람은 지혜롭다」로 옮겼습니다. 이 경우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바른길로 이끌고 그들의 삶에 유익을 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을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칠십인역은 뒷행을 다르게 전합니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의 목숨이 때 이르게 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특정한 전도 활동이나 영혼 구원을 가리키는 명령으로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앞에서 바르게 사는 사람은 도시를 세우고, 이웃을 함부로 헐뜯지 않으며, 신뢰를 지키고, 필요한 것을 나누어 주는 사람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을 얻는다는 표현은 지혜로운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들과 생명을 주는 관계를 만들어 낸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생명의 나무」라는 표현은 창세기 2:9와 3:22의 생명나무를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에서 생명나무는 에덴동산에 놓여 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은 뒤에는 그 나무에 접근하는 길이 막힙니다. 그런데 잠언에서는 지혜와 바르게 사는 삶이 생명나무의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잠언 3:18에서도 지혜는 그것을 붙드는 사람에게 생명의 나무라고 불립니다. 물론 바르게 사는 사람이 문자 그대로 에덴의 생명나무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르게 사는 삶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는 시적 표현입니다.

의로운 사람도 보응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잠언 11:31 본문 →

보아라, 바르게 사는 사람도 이 땅에서 한 일에 따라 대가를 받는데, 악한 사람과 죄짓는 사람은 얼마나 더하겠느냐?잠언 11:31 · 두루새김

잠언 11장은 바르게 사는 사람의 열매가 생명의 나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한 일에 따라 대가를 받는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שָׁלַם⁩)는 갚음을 받거나 마땅한 대가를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반드시 좋은 보상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바르게 사는 사람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과 결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가는 비교의 논리입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도 이 땅에서 한 일에 따라 대가를 받는다면, 악한 사람과 죄짓는 사람은 더더욱 그러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이 겪는 모든 고난을 그의 죄에 대한 벌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욥기는 바르게 사는 사람의 고난을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하는 태도를 강하게 문제 삼습니다.

잠언 11:31이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인간의 삶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잠언은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현실 세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은 인간이 살아가는 땅과 무관한 추상적인 원리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이 구절의 칠십인역은 다른 방식으로 전해집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도 어렵게 구원을 받는다면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과 죄인은 어떻게 되겠느냐는 형태입니다. 신약의 베드로전서 4:18은 이 그리스어 형태를 인용합니다. 이는 히브리어 잠언의 표현과 구별되는 후대의 성경적 사용입니다. 그러나 잠언 11장 자체는 먼저 땅에서 이루어지는 삶과 그 삶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합니다.

생명의 나무가 되는 사람

잠언 11:1–31 본문 →

1절에서 하나님은 속이는 저울을 몹시 싫어하시고 무게가 정확한 돌추를 기뻐하십니다. 20절에서는 마음이 뒤틀린 사람들을 몹시 싫어하시고 흠 없는 길을 걷는 사람들을 기뻐하십니다. 잠언은 바르게 사는 삶이 자신에게도 유익을 가져온다고 말하지만, 그 유익만이 바른 삶을 선택해야 할 이유는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직함과 흠 없는 삶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사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신만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11장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아주 작은 돌추 하나를 발견합니다. 누군가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있습니다. 돌추가 조금만 잘못되어도 한 사람은 부당한 이익을 얻고 다른 사람은 손해를 봅니다.

한 사람의 정직함은 자기 혼자에게만 유익하지 않습니다.

그 정직함을 통해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직함 때문에 누군가는 안심하고 자신의 어려움을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넉넉히 베풀기 때문에 누군가는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잠언 11장은 마지막으로 「바르게 사는 사람의 열매는 생명의 나무」라는 이미지를 우리 앞에 놓습니다.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자기 자신만을 위해 간직하지 않습니다. 열매는 다른 생명에게 양식이 되고,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은 누군가에게 쉴 자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잠언이 말하는 바르게 사는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붙잡기만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얻고, 책임 있게 사용하며, 필요한 곳에 나누어 줍니다.

속이지 않는 저울에서 시작된 바른 삶이 마침내 다른 사람을 살리는 나무가 됩니다.

그 나무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열매를 가지고 있는지 자랑하지 않습니다.

그저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로 다른 생명이 살아갑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