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10–24장 · 솔로몬의 짧은 격언

손과 입에서 드러나는 삶

사람이 지혜로운지 어리석은지는 어디에서 드러날까요?

잠언 10장은 뜻밖에도 거창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보다 훨씬 평범한 장면들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여름에 곡식을 모으는 손, 남의 말을 듣는 귀,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한마디, 마음속 미움을 감추는 입술,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길을 떠나는 사람까지 등장합니다.

이 장에서 지혜는 특별한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매일 반복하는 행동 속에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드러납니다.

잠언 9장까지는 지혜와 어리석음이 사람들을 직접 부르며 서로 다른 삶으로 초대했습니다. 이제 10장에서는 그 선택이 실제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달라집니다. 여기서부터 잠언은 짧고 독립적인 격언들을 잇따라 제시합니다. 긴 설명도,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도 없습니다. 대개 두 행이 서로 대조되면서 하나의 깨달음을 남깁니다.

처음에는 서로 관계없는 말들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읽으면 몇 가지 주제가 거듭 돌아옵니다. 재물은 사람에게 무엇을 보장하는가? 사람의 말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바르게 사는 사람은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는가?

특히 입과 입술에 관한 격언이 유난히 많습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의 입은 생명의 샘이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입은 재앙을 부릅니다. 똑같이 말을 하는데, 한쪽은 다른 사람을 먹여 살리고 다른 쪽은 자신과 이웃을 해칩니다.

읽는 시간 33분소단락 910장 본문 읽기 →

지혜로운 아들이 부모에게 남기는 것

잠언 10:1–5 본문 →

10장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시작합니다.

솔로몬의 잠언. 지혜로운 아들은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어리석은 아들은 어머니에게 슬픔을 안긴다.잠언 10:1 · 두루새김

이것을 아버지는 아들의 성공을 기뻐하고 어머니는 실패를 슬퍼한다는 식으로 부모의 역할을 구분하는 말씀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히브리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병행 표현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번갈아 언급하여 자녀의 삶이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을 드러냅니다.

자녀의 지혜는 그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삶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행동은 자신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에게도 슬픔을 안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10:2–3은 갑자기 재물과 바르게 사는 삶으로 화제를 옮깁니다.

악한 짓으로 얻은 보물은 도움이 되지 않지만, 바르게 사는 삶은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 낸다.잠언 10:2 · 두루새김

보물은 일반적으로 가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얻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잠언은 보물이 얼마나 많은가보다 어떻게 얻었는가를 먼저 묻습니다.

악한 짓으로 얻은 보물도 당장 사용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본문은 부당하게 얻은 재산이 현실에서 아무 쓸모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재산이 정말 중요한 순간에 사람을 구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죽음에서 건져 낸다」는 말은 바르게 사는 삶이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길에서 보호한다는 지혜 문학의 기본적인 가르침입니다. 잠언 11:4에서도 진노의 날에 재물이 도움이 되지 않지만 바르게 사는 삶은 죽음에서 건져 낸다는 뜻의 표현이 반복됩니다. 따라서 이 대조는 단순히 재산을 적게 가지라는 권고가 아니라, 삶의 안전을 무엇에 두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10:3에서 시선이 하나님께로 향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바르게 사는 사람을 굶주리게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악한 사람들의 욕심은 물리치신다.잠언 10:3 · 두루새김

본문은 재물을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을 단순히 구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람의 욕심을 대조합니다.

여기서 「굶주리게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라는 말씀을 바르게 사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도 실제 굶주림을 겪지 않는다는 절대적인 보장으로 해석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성경에는 바르게 사는 사람도 기근과 고난을 겪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2–47장에서 야곱의 가족 역시 기근을 겪습니다.

잠언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바르게 사는 사람의 삶을 돌보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돌보심이 모든 개인의 삶에서 같은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뒷행에서는 악한 사람들의 「욕심」이 등장합니다. 굶주림은 생존에 필요한 것을 얻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반면 욕심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마음이며, 여기서는 악한 사람들의 것으로 제시됩니다. 따라서 본문은 필요한 것을 공급받는 삶과 욕심을 끝없이 채우려는 삶을 대비하여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얻게 해 주시는 일과 같지 않습니다.

이제 잠언은 하나님의 돌보심에 관한 이야기에서 사람의 손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게으른 손으로 일하는 사람은 가난해지고, 부지런한 손으로 일하는 사람은 부유해진다.잠언 10:4 · 두루새김

잠언은 여기서 게으름이 삶을 어렵게 하고 성실한 노동이 삶에 도움이 된다는 일반적인 관찰을 전합니다.

그런데 10:5는 이 가르침을 더욱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 줍니다.

여름에 곡식을 모으는 아들은 슬기롭고, 곡식을 거둘 때 잠자는 아들은 부끄러움을 안긴다.잠언 10:5 · 두루새김

농경사회에서 추수는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곡식이 익어 거두어들일 시기가 오면, 그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문제는 잠자는 행위 자체가 아닙니다. 거두어야 할 때 잠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알맞은 때에 알맞은 일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잠언이 말하는 슬기의 한 모습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판단력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10:1의 지혜로운 아들과 어리석은 아들은 10:5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부모에게 기쁨과 슬픔을 주는 아들이라는 결과만 제시했습니다. 이제는 그 차이가 실제로 어디에서 나타나는지 보여 줍니다.

한 사람은 때를 알아 곡식을 모읍니다. 다른 사람은 바로 그때 잠들어 있습니다.

자녀의 지혜로움은 말로 표현하는 훌륭한 생각에만 있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때와 책임을 분별하고 행동하는 데서 드러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잠언 10:6–7 본문 →

바르게 사는 사람의 머리에는 복이 내리고, 폭력이 악한 사람들의 입을 덮는다.잠언 10:6 · 두루새김

머리는 복을 받는 자리이고, 입은 폭력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의 뒷행은 해석이 갈립니다.

뒷행은 악한 사람들의 입을 폭력이 덮는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이 읽기를 따라 「폭력이 악한 사람들의 입을 덮는다」로 옮겼습니다. 다른 가능성은 악한 사람들의 입이 폭력을 감춘다는 의미로 읽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읽기에서는 폭력이 결국 악한 사람 자신을 뒤덮는 결과가 강조됩니다. 두 번째 읽기에서는 악한 사람의 말이 자신의 폭력적인 의도를 숨기는 수단이 됩니다. 어느 쪽으로 읽어도 바르게 사는 사람에게 내리는 복과 악한 사람에게 속한 폭력이 뚜렷하게 대조됩니다. 이 표현은 10:11에서 그대로 반복됩니다.

그다음 10:7은 아주 짧지만 긴 시간을 바라보는 격언입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에 대한 기억은 복이 되고, 악한 사람들의 이름은 썩어 버린다.잠언 10:7 · 두루새김

여기서 잠언은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얻는가에서, 그 사람이 어떻게 기억되는가로 시선을 옮깁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의 삶은 그가 자리를 떠난 뒤에도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기억으로 남습니다.

이름은 본래 오래 남기 위해 사용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재산을 모으고 업적을 남기며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기억하게 하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잠언은 이름을 남기려는 노력 자체가 그 이름을 가치 있게 만들지는 못한다고 말합니다. 악한 짓으로 얻은 보물이 아무리 많더라도 그것이 좋은 이름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의 이름을 복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쌓아 올린 것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입니다.

이제 그 삶의 모습이 가장 쉽게 드러나는 곳으로 시선이 옮겨갑니다.

사람의 입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먼저 들을 줄 안다

잠언 10:8–14 본문 →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은 명령을 받아들이지만,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은 무너진다.잠언 10:8 · 두루새김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은 명령을 받아들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가 하는 말로 드러납니다.

여기서 명령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조건 어떤 사람의 말이든 따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은 올바른 가르침과 명령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지혜로운 태도를 말합니다. 이 대조는 앞 장의 교훈과도 연결됩니다. 꾸지람을 받을 때 자신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10:8에서 잠언은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의 무너짐보다 먼저 듣는 사람의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말의 문제가 입술에서만 시작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을 고칠 준비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말해도 지혜로워지기 어렵습니다. 듣지 못하는 마음이 어리석은 말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10:9에서는 말보다 삶의 방향이 강조됩니다.

흠 없이 사는 사람은 안전하게 걸어가지만, 비뚤어진 길을 가는 사람은 그 행실이 드러난다.잠언 10:9 · 두루새김

흠 없이 사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숨기기 위해 복잡한 계산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대로 비뚤어진 길을 가는 사람은 무엇을 숨기고 누구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계속 관리해야 합니다. 정직한 삶에는 속임수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안정성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10:10은 은밀한 행동을 보여 줍니다.

눈을 찡긋하는 사람은 남에게 고통을 주고,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은 무너진다.잠언 10:10 · 두루새김

눈을 찡긋하는 행위 자체가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다른 사람과 은밀하게 신호를 주고받으며 속임수를 쓰는 행동으로 이해됩니다. 잠언 6:12–14에서도 비뚤어진 사람이 눈으로 신호하며 악을 꾸미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10:10의 두 번째 행은 10:8과 같은 표현을 반복합니다. 이 반복은 눈에 보이지 않게 신호를 주는 속임수와, 말로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태도를 함께 생각하게 합니다.

이제 10:11에서 잠언은 10:6의 표현을 다시 가져옵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의 입은 생명의 샘이고, 폭력이 악한 사람들의 입을 덮는다.잠언 10:11 · 두루새김

앞에서는 바르게 사는 사람의 머리에 복이 내린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사람의 입이 생명의 샘이라고 말합니다.

복을 받는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전하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샘은 물을 계속 내어놓습니다. 메마른 곳에서 물을 공급하며 생명을 유지하게 합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의 입이 생명의 샘이라는 것은 그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의 삶에 도움을 가져온다는 뜻입니다.

그의 말은 진실을 알려 줄 수 있고,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경고할 수 있으며, 슬픔에 빠진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잘못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꾸지람 역시 생명을 주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지혜로운 말은 단지 듣기에 부드럽고 기분 좋은 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말은 때로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10:12에서 이 말의 문제는 더욱 깊은 차원으로 옮겨갑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키지만, 사랑은 모든 잘못을 덮는다.잠언 10:12 · 두루새김

미움은 문제를 만들어 내고 키우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반면 사랑은 이미 존재하는 잘못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와 관련됩니다.

「덮는다」(⁨כָּסָה⁩)는 말은 앞서 10:6과 10:11에서 등장한 동사와 같은 어근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덮는다는 행동이 언제나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악한 사람이 폭력을 감추는 것으로 읽으면, 그것은 잘못을 숨기는 일입니다. 반면 사랑이 잘못을 덮는다는 것은 잘못을 이용하여 적대감과 다툼을 끝없이 키우지 않는 태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사랑이 잘못을 덮는다는 말씀을 모든 잘못을 눈감아 주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잠언은 사랑과 정의를 서로 반대되는 가치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잠언 17:9에서는 잘못을 덮어 주는 사람이 사랑을 구하지만, 같은 일을 거듭 들추는 사람은 가까운 사이를 갈라놓는다고 말합니다.

그 맥락에서 잘못을 덮는 사랑은 잘못을 기회 삼아 관계를 파괴하려 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때에도 상대를 무너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미움은 타인의 잘못을 다툼의 불씨로 삼지만, 사랑은 그 잘못이 관계를 영원히 지배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 구절은 말의 문제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단순히 그 사람이 알고 있는 정보를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고 미워하는지 드러냅니다.

10:13–14는 그 결과를 다시 대비합니다.

분별 있는 사람의 입술에서는 지혜가 나오지만, 분별이 모자란 사람의 등에는 매가 따른다.잠언 10:13 · 두루새김
지혜로운 사람들은 지식을 쌓아 두지만, 어리석은 사람의 입은 당장이라도 재앙을 불러온다.잠언 10:14 · 두루새김

13절의 매는 고대에 사람을 가르치고 바로잡을 때 사용하던 신체적 벌을 보여 줍니다. 본문은 분별이 모자란 사람이 벌과 불이익을 불러올 수 있음을 강하게 표현합니다. 이것을 현대의 모든 상황에서 신체적 체벌을 정당화하는 명령으로 곧바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14절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의 특징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아무 때나 전부 말하지 않습니다. 지식을 간직하고 분별하며, 필요한 순간에 알맞게 사용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말을 다스리지 못해 위험을 가까이 불러들입니다.

이 대조는 지혜가 단순히 아는 것의 양에 달려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많이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언제 말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칠십인역은 10:10의 뒷행을 달리 전합니다. 공개적으로 꾸짖는 사람이 평화를 이룬다는 내용입니다. 이 읽기에서는 은밀한 속임수와 공개적인 꾸지람이 서로 대조됩니다. 히브리어 본문과 그리스어 본문의 차이는 실제로 두 번째 행의 의미를 바꾸지만, 어느 형태가 더 이른 본문인지는 이 차이만으로 확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4:8은 사랑이 많은 죄를 덮는다는 말로 잠언 10:12의 「사랑은 모든 잘못을 덮는다」는 표현을 직접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 역시 악을 숨기라는 명령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사랑이 공동체 안에서 잘못과 갈등을 다루는 방식을 가르치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부자의 견고한 성읍과 가난한 사람의 파멸

잠언 10:15–17 본문 →

부자의 재산은 그를 지켜 주는 튼튼한 성읍이고,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은 그들을 무너뜨린다.잠언 10:15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읽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잠언은 가난을 아름답게 꾸미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난이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고대의 성읍은 성벽과 방어 시설을 통해 외부의 위험에서 주민을 보호했습니다. 따라서 재산을 그를 지켜 주는 튼튼한 성읍에 비유하는 것은 재물이 실제로 사람에게 어느 정도 안전을 제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재산이 있으면 위험에 대비할 수 있고, 위기를 견딜 여유가 생기며,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도 넓어집니다.

반대로 가난은 단순히 가진 것이 적다는 상태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을 마련하지 못해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잠언은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가난이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말은 가난한 사람이 어리석거나 악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10:15에는 부자가 바르게 산다거나 가난한 사람이 악하다는 말이 없습니다. 본문은 재산이 가진 현실적인 보호 능력과 가난의 위험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을 사람의 도덕적 가치에 대한 평가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10:2에서는 악한 짓으로 얻은 재산이 끝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10:15에서는 재산이 실제적인 안전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두 말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재물은 현실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10:16에서 잠언은 벌어들인 것의 문제를 다시 바르게 사는 삶과 연결합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이 일해서 얻은 것은 생명으로 이어지고, 악한 사람이 벌어들인 것은 죄로 이어진다.잠언 10:16 · 두루새김

여기서는 얼마나 많이 벌었는지가 아니라 그렇게 얻은 것이 어디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합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이 일해서 얻은 것은 삶을 유지하고 선한 일을 이루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반면 악한 사람이 벌어들인 것은 그의 죄와 연결됩니다.

「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타트(⁨חַטָּאָה⁩)는 죄 자체뿐 아니라 죄가 가져오는 결과까지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뒷행은 악한 사람이 벌어들인 것이 죄와 연결된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고, 그것이 죄의 결과나 벌로 이어진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한 가지 의미만을 명시적으로 확정하지 않습니다.

같이 돈을 벌더라도 그것을 얻고 사용하는 사람의 삶의 방향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재물은 사람의 행동과 분리되어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돈을 벌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행동이 지혜롭다고 평가할 수 없고, 재산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그 삶이 안전하다고 결론 내릴 수도 없습니다.

10:17에서는 벌어들인 것에서 훈계로 화제가 바뀝니다.

훈계를 지키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생명으로 가는 길이 되지만, 꾸지람을 저버리는 사람은 남을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잠언 10:17 · 두루새김

훈계를 받아들이는 일은 자기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본문의 마지막 동사는 다른 사람을 잘못 이끌거나 길을 벗어나게 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자신이 길을 잃는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두루새김은 남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의미를 택해 「남을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로 옮겼습니다.

이 읽기에 따르면 훈계를 거부하는 사람의 위험은 자기 실수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있다면, 잘못된 판단을 고집함으로써 다른 사람까지 위험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부모나 교사, 지도자처럼 누군가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사람에게 이 말씀은 특별히 중요합니다. 자신이 고침받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바르게 인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의 중요한 특징은 실수하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잘못된 길에서 돌이킬 수 있는 능력입니다.

입술은 마음에 있는 것을 드러낸다

잠언 10:18–21 본문 →

미움을 감추는 사람의 입술은 거짓되고, 남을 헐뜯는 말을 퍼뜨리는 사람은 어리석다.잠언 10:18 · 두루새김

이 구절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말의 문제를 보여 줍니다. 겉보기에는 정반대의 행동입니다. 한쪽은 속마음을 숨기고, 다른 쪽은 자기 생각을 밖으로 쏟아 냅니다.

그런데 잠언은 둘 다 지혜롭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앞서 10:12의 「사랑은 모든 잘못을 덮는다」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사랑이 잘못을 덮는 것과 미움을 감추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겉으로 보면 둘 다 무엇인가를 숨기는 행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방향은 전혀 다릅니다.

사랑이 잘못을 덮는 것은 상대의 잘못을 이용해 적대감을 키우지 않으려는 태도입니다. 반면 미움을 감추는 거짓된 입술은 겉으로는 다른 말을 하면서 마음속에는 적대감을 품고 있는 상태입니다.

잠언은 단순히 모든 감정을 즉시 드러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람은 때로 감정을 절제하고 말할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문제는 마음에 품은 미움을 거짓된 말로 숨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계를 회복하려는 침묵이 아니라, 관계 안에 거짓을 남겨 두는 행동입니다.

반대로 남을 헐뜯는 말을 퍼뜨리는 사람은 자신의 미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합니다. 결국 한 사람은 거짓으로 미움을 감추고, 다른 사람은 말로 미움을 퍼뜨립니다.

두 사람에게 공통으로 부족한 것은 사랑과 분별입니다.

이어서 잠언은 말의 양을 문제 삼습니다.

말이 많으면 잘못이 끊이지 않지만, 말을 삼가는 사람은 슬기롭다.잠언 10:19 · 두루새김

본문의 초점은 말이 많아질수록 잘못이 생길 위험이 커진다는 데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할수록 자신이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것까지 단정할 수 있습니다. 남의 의도를 함부로 해석할 수도 있고, 생각 없이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말을 삼간다는 것은 언제나 침묵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말할 필요가 있을 때 말하되, 자신의 말이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 내용인지를 살피는 태도입니다. 앞서 10:11에서는 바르게 사는 사람의 입을 생명의 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말을 하지 않는 능력만이 아닙니다. 필요한 말을 알맞게 하는 능력입니다.

10:20은 그 말의 가치를 은에 비유합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의 혀는 가장 좋은 은과 같지만, 악한 사람들의 마음은 거의 가치가 없다.잠언 10:20 · 두루새김

대조는 바르게 사는 사람의 혀와 악한 사람의 마음 사이에 있습니다. 혀는 바깥으로 드러나는 부분이고, 마음은 안쪽에 감추어진 부분입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넌지시 보여 줍니다.

좋은 말은 단지 세련된 표현이나 뛰어난 말솜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얼마든지 듣기 좋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참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은 말과 마음을 분리해서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10:21에서는 바르게 사는 사람의 입술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하는지 설명합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의 입술은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지만, 어리석은 사람들은 분별이 없어 죽는다.잠언 10:21 · 두루새김

여기서 「먹여 살리지만」(⁨רָעָה⁩)에 해당하는 동사는 양 떼를 먹이거나 돌보는 행위와 연결되는 동사입니다. 이 표현은 단순히 바르게 사는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뜻보다 더 풍성합니다.

목자는 양 떼가 먹을 것을 찾도록 돌봅니다. 위험한 곳으로 가지 않게 이끌고, 필요한 것을 얻도록 인도합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의 입술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의 말은 많은 사람을 살아가게 합니다.

여기서 10:11의 생명의 샘이라는 표현이 새로운 깊이를 얻습니다. 샘은 물을 공급합니다. 목자는 양 떼를 먹입니다. 두 이미지 모두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지혜를 과시하는 수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자원이 됩니다.

이것이 잠언 10장이 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입니다. 말은 눈에 보이는 재산처럼 쌓아 둘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의 삶에 실제적인 영향을 남깁니다. 어떤 말은 사람을 바른길로 이끌고, 어떤 말은 관계를 무너뜨리며, 어떤 말은 사람에게 다시 살아갈 힘을 줍니다.

조금 더 깊이

신약에서는 야고보서 3:1–12가 혀의 힘을 자세히 다룹니다. 혀는 작은 몸의 일부이지만 큰 영향을 미치며, 같은 입에서 찬양과 저주가 나오는 모순을 경고합니다. 이는 잠언 10장의 입술과 생명이라는 주제를 발전시키는 연결입니다.

부유하게 하는 것은 누구의 복인가

잠언 10:22–26 본문 →

여호와야훼가 주시는 복이 사람을 부유하게 하며, 그분께서는 그 복에 고통을 더하지 않으신다.잠언 10:22 · 두루새김

앞에서는 부지런한 손으로 일하는 사람이 부유해진다고 했습니다(10:4). 이제는 여호와야훼가 주시는 복이 사람을 부유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두 말씀을 함께 읽으면 균형이 드러납니다.

잠언은 인간의 노력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게으름의 위험을 경고하고, 때를 알아 일하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평가합니다. 동시에 인간의 노력만으로 삶의 모든 결과를 설명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성실하게 일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 그 노동이 열매 맺을 수 있는 환경까지도 하나님이 주신 삶의 조건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10:22의 뒷행은 해석이 갈립니다.

히브리어 에체브(⁨עֶצֶב⁩)는 고통이나 슬픔을 뜻하며, 고된 수고나 힘든 노동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두루새김은 「그분께서는 그 복에 고통을 더하지 않으신다」로 옮겼습니다. 이 경우 하나님의 복은 인간에게 해로운 고통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강조됩니다.

반면 고된 수고가 그 복에 무엇을 더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부의 궁극적인 근원이 인간의 노력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이라는 점이 강조됩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10:4–5의 노동에 관한 가르침을 없던 것으로 만드는 말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을 하나님의 복을 받으면 반드시 부자가 되고 고통 없이 살게 된다는 약속으로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잠언이 강조하는 것은 삶의 궁극적인 유익이 여호와야훼가 주시는 복에서 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다음 10:23에서는 재물과 무관해 보이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악한 짓을 하는 것이 놀이 같고, 분별 있는 사람에게는 지혜롭게 사는 것이 즐거움이다.잠언 10:23 · 두루새김

보통 사람은 악한 행동을 할 때도 어떤 이익이나 목적을 생각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잠언은 악 자체를 즐거움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놀이」는 즐겁게 하는 활동이나 웃음을 동반하는 놀이를 가리킵니다.

이 말은 악한 행동이 언제나 경제적 이익이나 현실적 필요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남을 곤란하게 만들고 속이거나 해치는 일 자체가 재미있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언은 이와 대조하여 분별 있는 사람에게도 즐거움이 있다고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언제나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선한 일을 하는 사람만은 아닙니다. 지혜롭게 사는 데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앞서 잠언 8:30–31에서 지혜는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인간들과 함께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여기서는 분별 있는 사람이 지혜롭게 사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지혜가 하나님 앞에서 기뻐했던 모습이 인간의 삶에서도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삶은 단지 악을 참아 내며 피하는 삶이 아니라, 선하고 올바른 것을 기뻐할 줄 아는 삶입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유가 오직 처벌이 두렵기 때문이라면, 그의 행동은 밖에서 주어지는 제한에 크게 의존할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것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지켜보지 않는 순간에도 그 길을 선택할 이유를 갖습니다. 잠언은 단순히 행동만 바뀌는 것을 넘어, 무엇에서 즐거움을 느끼는가까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10:24에서는 인간의 두려움과 바람이 대조됩니다.

악한 사람이 두려워하는 일은 그에게 닥치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은 바라는 것을 받는다.잠언 10:24 · 두루새김

여기서 잠언은 악한 사람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의 결과를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구절은 악한 삶과 바르게 사는 삶이 각각 어떤 결과를 향하고 있는지를 대조하는 지혜의 표현입니다.

이 구절에서 누가 바르게 사는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을 주는지는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일을 하는 이를 마음대로 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앞뒤 문맥에서 여호와야훼가 주시는 복과 돌보심이 반복되므로, 바르게 사는 사람의 소망이 하나님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제 잠언은 아주 짧고 강렬한 장면을 보여 줍니다.

폭풍이 지나가면 악한 사람은 사라지지만, 바르게 사는 사람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기초와 같다.잠언 10:25 · 두루새김

폭풍은 모든 것을 한순간에 뒤흔듭니다.

평소에는 튼튼해 보이던 것도 폭풍 앞에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잠언은 이런 상황을 통해 두 사람의 삶이 지닌 차이를 드러냅니다.

악한 사람은 겉으로는 강해 보일 수 있습니다. 재산과 권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많은 것을 이루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이 바르게 사는 태도와 진실에 뿌리를 두지 않았다면 그 튼튼함은 오래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기초」라는 표현은 삶이 안정되고 오래 이어지는 모습을 강렬한 그림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10:26은 다시 아주 일상적인 경험으로 돌아옵니다.

치아에 닿는 식초와 눈에 들어가는 연기처럼, 게으른 사람은 그에게 일을 맡겨 보낸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잠언 10:26 · 두루새김

폭풍과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기초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식초와 연기가 등장합니다. 이 대비에는 잠언 특유의 생생함이 있습니다. 치아에 닿는 식초는 불쾌한 자극을 일으키고, 눈에 들어가는 연기는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게으른 사람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를 믿고 일을 맡긴 사람까지 곤란하게 만듭니다. 책임을 맡긴 사람은 그가 일을 해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가 성실하게 응답하지 않으면 일을 맡긴 사람의 계획도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은 앞서 노동을 이야기한 10:4–5와 연결됩니다. 성실함은 단지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수단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신뢰에 응답하는 방식입니다. 잠언은 이렇게 경제적인 활동과 인간관계의 책임을 함께 바라봅니다.

조금 더 깊이

10:22는 신명기 8:17–18의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은 재산을 얻은 뒤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재산을 얻을 능력을 주시는 분이 여호와야훼임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또한 시편 1편은 바르게 사는 사람을 물가에 심긴 나무에 비유합니다. 그 나무는 때를 따라 열매를 맺고 잎이 마르지 않습니다. 악한 사람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습니다. 잠언 10:25의 폭풍과 기초, 10:31의 입이 맺는 열매는 시편 1편의 그림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두 본문 모두 삶의 겉모습보다 무엇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여호와야훼의 길은 누구에게 피난처가 되는가

잠언 10:27–30 본문 →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면 사는 날이 늘어나지만, 악한 사람들이 살아갈 햇수는 짧아진다.잠언 10:27 · 두루새김

잠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이 인간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고 가르칩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일찍 죽을 수도 있고, 악한 사람이 오래 살 수도 있습니다. 욥기 21:7에서도 악한 사람들이 살아남아 오래 살며 힘이 커지는 현실에 대한 질문이 제기됩니다. 지혜 문학은 인간의 삶에서 관찰되는 일반적인 질서와 그 질서가 향하는 가치를 가르칩니다.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삶은 절제와 올바른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고, 악한 행동은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가 언제나 곧바로 예외 없이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어지는 10:28은 삶의 길과 소망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들의 기다림은 기쁨으로 이어지지만, 악한 사람들의 희망은 사라진다.잠언 10:28 · 두루새김

이 구절은 현재의 행동이 미래에 대한 태도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도 기다립니다. 그에게 모든 좋은 일이 이미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바라며 살아갑니다.

반면 악한 사람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 역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잠언은 소망을 갖는 행위 자체가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무엇을 바라는가, 그리고 그 바람이 어떤 삶 위에 놓여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악한 사람도 자신의 성공을 바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공이 다른 사람의 희생과 불의를 바탕으로 한다면, 잠언은 그 희망이 오래 이어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제 10:29에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여호와야훼의 길은 흠 없이 사는 사람에게는 피난처이지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파멸이 된다.잠언 10:29 · 두루새김

똑같은 「여호와야훼의 길」이 어떤 사람에게는 피난처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파멸이라고 합니다. 왜 같은 길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가져올까요?

하나님의 성품이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길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흠 없이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길은 보호와 안전을 제공하는 길입니다. 반면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없게 만드는 기준입니다. 그 길은 악한 행동을 옳다고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단지 인간의 행복을 도우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넘어섭니다. 하나님은 의로움과 정의의 기준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길이 피난처인 이유는 어떤 행동이든 눈감아 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길이 진실하고 의롭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앞서 10:15의 표현이 다시 떠오릅니다. 부자의 재산은 그를 지켜 주는 튼튼한 성읍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와야훼의 길이 피난처라고 합니다.

재산이 실제적인 보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잠언은 인간의 안전을 재산에만 맡기지 않습니다. 튼튼한 성읍도 무너질 수 있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바른 삶의 길은 재물과는 다른 차원의 안전을 제공합니다.

이 구절에 이어 10:30에서는 땅에서 사는 문제가 등장합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지만, 악한 사람들은 땅에서 살지 못한다.잠언 10:30 · 두루새김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땅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와 연결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야훼께서 주신 땅에서 살아가는 백성이었습니다. 그 땅에서 사는 삶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대한 순종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잠언 10:30의 땅은 단지 막연한 영적 공간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바르게 사는 삶이 오래 이어지는 모습과 악한 삶이 흔들리는 모습이 실제 삶의 터전이라는 그림으로 표현됩니다.

물론 이 말씀을 특정한 사람이 땅을 잃거나 쫓겨났다면 반드시 악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자체도 그런 단순한 판단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들도 나라의 멸망과 유배라는 공동체 전체의 재난을 겪었습니다. 잠언은 악한 삶이 궁극적으로 안정된 터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 모든 말씀을 지나 마지막에 이르면, 잠언은 다시 사람의 입으로 돌아옵니다.

조금 더 깊이

전도서는 이러한 지혜의 질서가 현실에서 언제나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전도서 8:14에서는 바르게 사는 사람이 악한 사람이 받아야 할 결과를 겪고, 악한 사람이 바르게 사는 사람이 받아야 할 결과를 누리는 현실이 언급됩니다. 이 말씀은 잠언을 부정하기보다, 잠언의 격언들을 개인의 운명을 단순히 계산하는 공식으로 읽지 못하도록 합니다. 또한 신명기 30:15–20에서도 생명과 죽음의 선택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에서 살아가는 문제와 함께 제시됩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의 입에는 무엇이 자라는가

잠언 10:31–32 본문 →

바르게 사는 사람의 입은 지혜를 열매로 맺지만, 비뚤어진 말을 하는 혀는 잘려 나간다.잠언 10:31 · 두루새김

열매는 어느 날 아무런 과정 없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필요한 양분을 얻어야 열매가 맺힙니다. 입에서 지혜가 열매로 맺힌다는 것은 사람의 말이 그 사람의 삶과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지혜로운 말을 외워서 반복한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이 자신의 삶에서 길러지고, 분별과 훈계를 통해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비뚤어진 말을 하는 혀는 잘려 나간다고 합니다. 이 구절의 심판을 보여 주는 그림은 매우 강합니다. 비뚤어진 말이 단순히 무례하거나 매끄럽지 못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없애야 할 악으로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바르게 사는 사람의 입술은 기쁘게 받아들여질 말을 알지만, 악한 사람들의 입은 비뚤어진 말을 한다.잠언 10:32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잠언 10장에 반복되어 온 말과 지혜의 관계를 짧게 정리합니다. 여기서 기쁘게 받아들여질 말은 단지 듣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는 아첨과 같지 않습니다. 잠언은 이미 다른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는 꾸지람도 지혜로운 사람에게 유익하다고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핵심은 상대를 무조건 만족시키는 말이 아니라, 상황에 알맞고 참으로 받아들일 만한 말을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본문은 누구에게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말인지를 분명히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로만 한정하거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로만 좁힐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은 10:8의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과 연결됩니다.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은 명령을 받아들입니다. 그가 받은 지혜는 이제 입술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이렇게 보면 잠언 10장의 처음과 끝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처음에는 지혜로운 아들이 아버지를 기쁘게 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바르게 사는 사람의 입술이 기쁘게 받아들여질 말을 안다고 합니다.

잠언 10장이 보여 주는 바르게 사는 삶의 모습

잠언 10:1–32 본문 →

잠언 10장을 하나의 긴 이야기처럼 읽으려고 하면 흐름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짧은 격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한결같은 생각을 보여 줍니다. 돈을 버는 방식과 말을 하는 방식은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둘 다 그 사람이 무엇을 옳다고 여기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 장을 단지 지혜로운 행동을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원칙으로 정리해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일찍 죽은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고난을 겪는 사람은 악한 삶의 결과를 받고 있다고 판단할 근거도 없습니다.

잠언 자체도 가난한 사람을 억누르는 일을 경고합니다. 잠언 14:31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것이 그를 만드신 분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가르칩니다.

지혜로운 삶은 자신만을 위한 성취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기쁨과 유익을 가져오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삶의 성격은 매일 사용하는 말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잠언 10장에는 폭풍이 지나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폭풍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것을 쌓아 올렸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 무엇으로 지탱되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잠언은 그 폭풍이 지나간 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폭풍이 지나가면 악한 사람은 사라지지만, 바르게 사는 사람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기초와 같다」(10:25).

바르게 사는 태도와 진실,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마음 위에 세워진 삶은 자신이 얻은 것의 크기보다 더 깊은 가치를 가집니다.

그 삶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도 굳게 서 있는 기초처럼, 다른 사람에게 믿고 의지할 만한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르게 사는 사람의 입은 여전히 생명의 샘이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삶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지켜 냈는가로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아갈 힘을 얻었는가에서도 드러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