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112편

이 장의 자리 · 107–150편 · 다섯째 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담대함

시편 112편에는 이상한 역설이 있습니다.

첫 절에서는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복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7절과 8절에 이르면 바로 그 사람이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자기 적들을 바라볼 때까지 두려워하지 않으리라」고 두 번이나 강조합니다.

한쪽에서는 두려워하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요?

시인은 이 사람의 집에 재물과 부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은 재물을 쌓아 두는 모습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널리 나누어 주는 모습입니다.

시편은 부유한 사람을 소개하는 듯하다가, 그가 자기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강한 사람을 소개하는 듯하다가, 그가 두려운 소식 앞에서 마음을 어떻게 지키는지를 보여 줍니다.

시편 112편이 그리는 복된 사람의 특징은 단순히 무엇을 많이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신뢰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있습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8112편 본문 읽기 →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기뻐하는 사람

시편 112:1 본문 →

할렐루야.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들을 크게 기뻐하는 사람은 복되다.시편 112:1 · 본디새김

시편 111편은 「지혜의 시작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함이다」라는 고백으로 끝났습니다. 시편 112편은 바로 그 두려움을 지닌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보여 줍니다.

두 시편은 형식에서도 짝을 이룹니다. 모두 「할렐루야」로 시작하며, 히브리어 알파벳 스물두 글자를 순서대로 사용하는 알파벳 시입니다. 그러나 초점은 다릅니다. 111편이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중심으로 노래했다면, 112편은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립니다.

여기서는 「두려워하고」와 「크게 기뻐하는」이라는 두 표현이 나란히 놓입니다. 우리는 흔히 두려움과 기쁨을 반대되는 감정으로 생각합니다. 두려운 대상에게서는 멀어지고 싶고, 기쁜 대상에게는 가까이 가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바로 그분의 계명들을 크게 기뻐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한다는 말이 단순히 벌을 받을까 봐 겁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는 단서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분의 권위와 거룩함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권위를 부담스러운 억압으로만 경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기뻐합니다.

「크게 기뻐한다」는 표현은 마지못해 순종하는 정도를 넘어섭니다. 그분의 계명이 좋기 때문에 그것을 원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이 대목은 시편 1:2와 연결됩니다. 시편 1편의 복된 사람은 여호와야훼의 가르침을 기뻐하고 그것을 밤낮으로 되새깁니다. 두 시편 모두 복된 삶을 설명하면서 먼저 그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시인은 복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일을 성취했는지부터 말하지 않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을 어떻게 대하는지부터 말합니다.

복된 사람의 삶은 결과가 아니라 방향에서 시작됩니다.

그 방향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도 그분의 말씀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제 시인은 그러한 사람의 삶에 어떤 복이 나타나는지 설명합니다.

재물과 부가 있는 집, 그러나 더 오래 남는 것은 의로움

시편 112:2–3 본문 →

그의 후손은 땅에서 강해질 것이다. 올곧은 이들의 세대는 복을 받을 것이다.시편 112:2 · 본디새김
재물과 부가 그의 집에 있고, 그의 의로움은 영원히 지속된다.시편 112:3 · 본디새김

시인은 복된 사람의 모습을 두 가지 영역에서 보여 줍니다. 하나는 후손이고, 다른 하나는 재물입니다.

여기서 「강해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גִּבּוֹר⁩)는 힘이 강한 사람이나 용사를 가리킬 때도 쓰이는 말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후손이 강해진다는 표현에는 단순히 수가 많아지는 것 이상으로, 땅에서 힘과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는 의미가 담길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올곧은 이들의 세대」라는 표현은 복이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익숙한 복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후손과 땅에 관한 약속을 주셨고(창세기 12:1–3; 17:4–8), 신명기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삶을 자손과 땅의 복에 연결합니다(신명기 7:12–14). 시편 112편은 이러한 언약의 세계 안에서 복된 사람을 묘사합니다.

이어서 재물과 부가 등장합니다. 시인은 물질적인 풍요를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가정에 필요한 재산이 있고 생활이 안정되는 것을 복의 한 모습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재물과 부를 이야기하던 시인이 갑자기 의로움을 말합니다.

두 문장을 이어 읽으면 묘한 차이가 드러납니다. 재물과 부는 그의 집에 있습니다. 그러나 의로움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재산은 어떤 사람이 소유한 것이지만, 의로움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냅니다.

「그의 의로움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표현은 앞 시편과 관계를 맺습니다. 시편 111:3에서는 하나님의 의로움이 영원히 지속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편 112:3에서는 같은 표현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사용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로움과 인간의 의로움이 완전히 같은 수준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그분의 의로운 성품을 자신의 삶에서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시편은 그 의로움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에서 나타나는지 아직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뒤로 가면 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돈을 빌려주며,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어 줍니다. 그렇다면 3절에 등장하는 재물과 부는 단순히 부자의 성공을 자랑하기 위해 언급된 것이 아닙니다. 뒤에 나올 나눔과 자비의 행동을 이해하는 배경이 됩니다.

다만 이 시편은 실제로 후손의 번성과 물질적인 풍요를 복으로 말합니다. 이를 모두 비유적인 표현으로 바꾸어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자가 되고 자녀도 모두 성공한다는 예외 없는 법칙으로 읽어서도 안 됩니다.

욥기는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심각한 고난이 닥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시편 73편은 악인들이 형통하는 현실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시편 112편은 의로운 삶을 향한 하나님의 복을 확신 있게 그리는 지혜의 노래입니다. 모든 개인의 인생에서 어떤 일이 반드시 일어날지를 빠짐없이 예측하는 공식은 아닙니다.

이 사실은 시편 112편 자체의 다음 장면에서도 드러납니다. 복된 사람에게도 어둠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서 솟아나는 빛 —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

시편 112:4 본문 →

올곧은 이들에게 어둠 속에서 빛이 솟았다. 그는 은혜롭고 자비로우며 의롭다.시편 112:4 · 본디새김

그런데 4절에서는 갑자기 어둠이 등장합니다.

올곧은 사람들에게 어둠이 전혀 없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어둠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듯한 표현입니다. 어둠이 있었기에 그 속에서 빛이 솟아납니다.

복된 삶은 어려움이 전혀 없는 삶과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도 어둠을 경험합니다. 다만 시인은 그 어둠이 마지막 말이 되지 않는다고 노래합니다.

「솟았다」(⁨זָרַח⁩)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해나 빛이 떠오르는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어두운 곳에 작은 등불 하나를 켜는 것보다, 어둠을 뚫고 빛이 떠오르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 빛은 누가 비추는 것일까요? 본문은 「빛이 솟았다」고 말하지만, 그 빛을 솟게 한 주체를 명시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읽기가 가능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올곧은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신다는 해석입니다. 시편 97:11에서도 의인을 위한 빛이 언급되며, 시편 27:1에서는 여호와야훼 자신이 시인의 빛이십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사람 자신이 어둠 속에서 빛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해석입니다. 이 경우 빛은 그 사람의 의로운 삶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어느 해석을 택하느냐는 이어지는 「그는 은혜롭고 자비로우며 의롭다」에도 영향을 줍니다. 하나님을 가리킨다면, 어둠 속에서 빛이 솟는 이유는 하나님이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가리킨다면, 그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은혜롭고 자비로우며 의롭게 살아간다는 뜻이 됩니다.

본디새김은 앞에서 이야기한 사람을 계속 가리키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이어지는 5절과 9절에서 그의 자비로운 행동이 자세히 묘사된다는 점이 이 읽기를 뒷받침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본문에서 주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다른 읽기의 가능성도 남겨 두어야 합니다.

시편 111:4는 「여호와야훼는 은혜롭고 자비롭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시편 112:4에서는 「그는 은혜롭고 자비로우며 의롭다」고 말합니다. 앞 시편에서 하나님을 묘사하던 언어가 이 시편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묘사하는 언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단지 그분이 주시는 복을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자기 삶에서 드러내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은혜롭고 자비롭다는 말은 실제 삶에서 무엇을 뜻할까요? 시인은 곧바로 아주 구체적인 경제적 행동으로 답합니다.

돈을 빌려줄 때 드러나는 의로움

시편 112:5–6 본문 →

은혜를 베풀고 빌려주는 사람은 복되다. 그는 자기 일을 공의롭게 처리하리라.시편 112:5 · 본디새김

시인은 종교적인 의식을 얼마나 성실히 행하는지, 얼마나 긴 기도를 드리는지,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갖추었는지부터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돈이나 필요한 것을 빌려주는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은 흉작이나 재난, 질병 등으로 생활에 필요한 자원을 잃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빌려주는 행위는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돈을 빌려주는 일이 언제나 자비로운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려운 사람의 사정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을 수도 있고, 빚을 통해 상대방을 더 깊은 곤경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율법은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을 특별히 다룹니다. 출애굽기 22:25는 가난한 동족에게 돈을 빌려줄 때 이자를 받는 채권자처럼 대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신명기 15:7–11은 가난한 형제에게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손을 넉넉히 펴라고 말합니다. 이 명령들의 핵심은 경제적 거래가 이웃의 궁핍을 이용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있습니다.

시편 112편은 이러한 세계 안에서 은혜롭게 빌려주는 사람을 복되다고 말합니다.

시인은 은혜를 베푸는 마음과 공의로운 처리 방식을 연결합니다. 좋은 마음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실제 거래와 판단에서도 올바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자비는 상대방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이고, 공의는 그 관계를 올바르게 다루는 태도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도 그 사람의 존엄을 무시하거나, 겉으로는 친절을 베풀면서 실제로는 부당한 조건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이 시편이 말하는 의로움과 거리가 멉니다.

시인은 이 사람이 경제활동에서 남들보다 더 영리하다고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가 자신의 일을 공의롭게 처리한다고 말합니다.

그의 의로움은 추상적인 신념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과 맞닿는 거래와 결정에서 드러납니다.

그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로운 이는 영원히 기억되리라.시편 112:6 · 본디새김

이 표현은 시편 15:5와도 연결됩니다. 시편 15편은 하나님 앞에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의 삶을 설명하면서, 돈을 부당한 이자를 받고 빌려주지 않으며 뇌물을 받지 않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112편에서도 돈을 어떻게 다루는가와 삶의 굳건함이 나란히 나타납니다.

시인은 의로운 사람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헛되지 않으며, 그 삶의 가치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표현합니다. 앞에서는 재물과 부가 그의 집에 있다고 했지만, 여기서는 그 사람 자신이 기억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남긴 재산의 규모보다 그가 살아간 방식이 오래 기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111편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놀라운 일들을 기억되게 하셨습니다. 시편 112편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이 기억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는 사람에게서, 사람들도 기억할 만한 의로운 행동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굳건함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 주기 위해, 이제 복된 사람이 맞닥뜨리는 어려운 상황으로 독자를 데려갑니다.

조금 더 깊이

5절의 「복되다」는 1절의 「복되다」와는 다른 히브리어입니다. 5절의 낱말은 좋음이나 유익함을 나타내며, 이 문맥에서는 그 사람이 잘되고 형통하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쁜 소식을 듣고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

시편 112:7–8 본문 →

그는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그의 마음은 굳게 서서 여호와야훼를 신뢰한다.시편 112:7 · 본디새김

시인은 복된 사람이 나쁜 소식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쁜 소식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가족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다는 소식, 생계를 위협하는 사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공동체를 위협하는 상황 등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시편은 어떤 종류의 소식인지 특정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에게도 두려워할 만한 일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시인은 그의 마음을 설명합니다. 마음이 굳게 서 있다는 것은 단순히 겁이 없는 성격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의 판단과 신뢰가 흔들리지 않는 토대 위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 토대가 무엇인지는 시인이 명확하게 밝힙니다. 여호와야훼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1절에서는 그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했습니다. 7절에서는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가 모든 두려움을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 알고,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한다는 것은 두려움을 하나 더 추가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두려움들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근본적인 태도가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세상에 두려운 일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운 일이 있어도 자신이 신뢰할 분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재물이 있는 집은 부러움을 살 수 있습니다. 강한 후손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그보다 더 깊은 곳, 나쁜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의 마음은 받쳐져 있다. 그는 자기 적들을 바라볼 때까지 두려워하지 않으리라.시편 112:8 · 본디새김

8절은 7절의 표현을 반복하면서 더 깊게 만듭니다. 「받쳐져 있다」는 표현은 사람이 자기 힘만으로 자신을 지탱한다기보다, 안정된 토대를 가지고 있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7절에서 그 토대가 여호와야훼를 향한 신뢰임을 이미 밝혔으므로, 8절의 표현은 그 신뢰가 지속되는 상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어서 적들이 등장합니다. 이 표현은 해석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적들을 바라본다는 말이 그들의 패배를 확인하거나 자신이 승리하는 모습을 본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는 있습니다. 시편의 다른 곳에서도 원수들을 바라보는 장면이 승리와 연결됩니다(시편 54:7). 그러나 시편 112:8은 적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적들이 모두 죽었다거나, 완전히 굴복했다거나, 의로운 사람이 그들의 몰락을 기뻐했다는 내용을 덧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이 직접 말하는 것은 적들을 마주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그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시인의 관심은 적들의 운명보다 의로운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세상의 위험을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위험을 알고 있지만, 그 위험이 자신의 마음을 최종적으로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이 내면의 굳건함을 설명한 다음, 다시 한번 이 사람의 행동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조금 더 깊이

7절의 「마음」은 단순히 감정이 일어나는 장소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마음은 사람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심하는 내면의 중심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7절에서는 마음이 「굳게 서서」 여호와야훼를 신뢰한다고 했고, 8절에서는 마음이 「받쳐져 있다」고 말합니다. 두 표현은 비슷하지만, 7절이 흔들리지 않고 서 있는 마음을 보여 준다면, 8절은 그 마음이 어떤 지지대에 의지하여 굳게 유지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움켜쥐지 않고 널리 나누는 사람

시편 112:9 본문 →

그는 널리 나누었고,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다. 그의 의로움은 영원히 지속된다. 그의 뿔은 영예 가운데 높이 솟으리라.시편 112:9 · 본디새김

「널리 나누었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פָּזַר⁩)는 흩어 놓거나 널리 퍼뜨리는 행동을 나타냅니다. 시인은 이 사람이 가난한 사람 한 명에게 우연히 작은 도움을 주었다는 정도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널리 나누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앞의 5절에서는 필요한 것을 빌려주는 행동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9절에서는 단순히 「주었다」고 말합니다. 빌려주는 일은 언젠가 돌려받을 수 있는 관계를 전제하지만, 주는 일은 반드시 그 대가를 돌려받는 것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3절의 재물과 부를 새롭게 보게 만듭니다. 집에 재물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아직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알 수 없습니다. 재물이 많아도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사람의 재물이 가난한 이들에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풍요의 의미가 소유에서 나눔으로 확대됩니다.

「그의 의로움은 영원히 지속된다」는 문장은 3절에서 이미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앞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행동이 놓여 있습니다. 3절에서 의로움은 그 사람의 지속적인 성품으로 소개되었지만, 9절에서는 그 의로움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의로움은 단순히 마음속에 간직한 성품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의로움을 오직 자선행위 하나로 축소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편은 이미 공의로운 거래와 굳건한 신뢰를 함께 묘사했습니다.

그리고 시인은 이 행동 뒤에 뜻밖의 이미지를 붙입니다. 구약에서 뿔은 힘과 권세, 존귀함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시편 75:10에서도 의로운 이들의 뿔이 높이 들리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보십시오.

적들을 무찔렀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 큰 재산을 얻었다는 말도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얼마나 많은 것을 획득하고 보유했는지에 따라 힘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이 시편은 자기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준 사람의 뿔이 높아진다고 노래합니다.

시편 112편에서 존귀함은 얼마나 많이 움켜쥐었는가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어떻게 사용했는가와 깊이 연결됩니다.

그 사람의 집에 있던 재물이 이제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닿습니다. 그가 받은 복이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이러한 모습은 창세기 12:2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과도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면서 그가 복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편 112편에서는 의로운 사람이 자신의 재물을 나누어 가난한 이들의 삶에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그러한 복의 흐름을 보여 줍니다. 신약에서 고린도후서 9:9은 시편 112:9을 직접 인용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나눔을 설명합니다. 이는 이 시편의 의로운 사람을 공동체의 자발적인 나눔과 연결하는 후대의 적용입니다. 그러나 그 적용 이전에, 시편 자체가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의로움을 가난한 이들을 향한 구체적인 나눔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의인은 굳게 서 있지만 악인의 욕망은 사라진다

시편 112:10 본문 →

악한 이는 보고 분노하리라. 이를 갈며 녹아내리리라. 악한 이들의 욕망은 사라지리라.시편 112:10 · 본디새김

시편의 마지막 절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의 삶을 자세히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악인의 반응을 들려줍니다. 악인이 무엇을 보는지는 직접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앞에서 묘사한 의로운 사람의 형통함과 존귀함을 본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를 간다는 것은 격렬한 분노와 적대감을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악인은 의로운 사람을 보면서 기뻐하지 못합니다. 그의 형통함과 존귀함이 오히려 분노의 이유가 됩니다.

의로운 사람은 두려운 소식을 들어도 흔들리지 않지만, 악인은 다른 사람의 좋은 모습을 보고도 스스로 무너져 내립니다.

복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는 단순히 한쪽은 재산이 많고 다른 한쪽은 재산이 없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기뻐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원하는지가 다릅니다. 1절에서 복된 사람은 여호와야훼의 계명을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절에서 악인은 의로운 사람의 형통함을 보고 분노합니다.

그리고 시편은 마지막에 악인의 욕망을 이야기합니다.

의로운 사람의 의로움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의 욕망은 사라집니다.

의로운 사람의 마음은 굳게 서 있지만, 악한 사람은 녹아내립니다.

의로운 사람의 뿔은 높이 솟지만, 악한 사람의 욕망은 소멸합니다.

악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싶어 하지만, 그 욕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복을 보며 분노하는 가운데 스스로 소진됩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대조는 시편 1편의 마지막 부분과도 연결됩니다. 시편 1:4–6에서 악인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겨와 같고,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야훼가 아시지만 악인들의 길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112편은 같은 주제를 더욱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그려 냅니다.

하나님을 닮아 가는 삶이 어떻게 복이 되는가

시편 112:1–10 본문 →

이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자신의 삶으로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시기에 그 사람도 은혜와 자비를 베풉니다. 하나님이 공의로우시기에 그 사람도 자신의 일을 공의롭게 처리합니다. 하나님이 신뢰할 만한 분이시기에 그 사람은 나쁜 소식 앞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그대로 갖게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다는 것은 전능해지는 일이 아니라, 그분이 보여 주신 의로움과 자비를 인간의 삶에서 실천하는 일입니다.

시편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면, 복된 사람은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삶을 끝까지 따라가자, 그는 나쁜 소식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들 앞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처음의 두려움이 마지막의 담대함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 사이에 놓인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기뻐하는 마음과 그 계명을 따라 이웃을 대하는 삶입니다.

악인은 다른 사람의 복을 보고 이를 갈며 녹아내립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자신의 재물을 붙들고 남을 시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널리 나누어 주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굳게 서 있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욕망에 붙들려 무너지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자신의 손을 펼 수 있습니다.

어둠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어둠 속에서도 빛이 솟기 때문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