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117편
이 장의 자리 · 107–150편 · 다섯째 권
모든 민족이 우리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
시편 117편은 시편 전체에서 가장 짧은 시입니다. 단 두 절입니다. 그런데 이 짧은 시가 부르는 청중은 놀라울 만큼 넓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만 부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민족을 향해 「여호와야훼를 찬양하여라」 하고 외칩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설명하는 다음 절에서 뜻밖의 표현이 등장합니다. 모든 민족이 여호와야훼를 찬양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애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왜 다른 민족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가 됩니까? 다른 민족들도 각자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질문을 따라가면 시편 117편이 단순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권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한 백성에게 베푸신 인애와 온 세상이 드릴 찬양 사이의 관계를 노래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민족을 향한 초대
첫 절에는 두 개의 명령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모든 민족들아, 여호와야훼를 찬양하여라. 모든 겨레들아, 그를 찬미하여라.시편 117:1 · 본디새김
‘모든 민족’과 ‘모든 겨레’는 서로 다른 두 집단을 구분하기보다 같은 대상을 두 번 가리키는 병행 표현입니다. ‘찬양하여라’와 ‘찬미하여라’도 비슷한 의미를 지닙니다. 첫 번째 부름을 두 번째 부름이 받아 더욱 힘 있게 울려 퍼지게 합니다.
시인은 모든 민족에게 그들이 섬기던 신들을 찬양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고 요청합니다.
여호와야훼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자신을 알리신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기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시며,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신 바로 그분이십니다(출애굽기 3:13–15; 19:4–6).
그런데 이제 그 이름을 찬양하라는 요청이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모든 민족에게 향합니다.
이것은 시편 안에서도 낯선 주제가 아닙니다. 시편 67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목적을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길과 구원을 알게 되는 것과 연결합니다(시편 67:2–6). 시편 96편은 여러 민족 가운데 여호와야훼의 영광을 선포하라고 요청합니다(시편 96:3).
그러나 시편 117편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다른 시편들이 하나님의 창조나 통치, 정의로운 심판을 모든 민족이 찬양할 이유로 제시하기도 하는 반면, 이 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인애를 그 이유로 내세웁니다.
시편 117편의 가장 중요한 발견은 바로 이 ‘모든 민족’과 ‘우리’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그의 인애가 강하다
우리를 향한 그의 인애가 강하고, 여호와야훼의 신실함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할렐루야.시편 117:2 · 본디새김
시편 117편 자체에는 이 ‘우리’를 명시적으로 설명하는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의 문맥을 살펴보면 가장 자연스러운 일차적 이해는 여호와야훼의 인애를 경험한 이스라엘, 곧 언약 백성의 목소리라는 것입니다.
시편 117편이 자리한 시편 113–118편은 하나의 찬양시 묶음으로 전해지며, 후대 유대교 예배 전통에서는 특별히 ‘할렐’로 불렸습니다. 이 묶음 안에서 시편 114편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난 사건을 노래합니다. 시편 115편은 이스라엘과 아론의 집,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권합니다. 바로 앞의 시편 116편에서는 죽음의 위협에서 구원받은 사람이 여호와야훼께 감사하며 온 백성 앞에서 자신의 서원을 갚겠다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이 자기 경험을 고백했습니다. 이제 그 감사의 소리가 모든 민족을 향한 찬양의 초대로 확장됩니다. 물론 시편 117편의 ‘우리’가 반드시 시편 116편의 화자와 동일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두 시는 서로 독립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배열에서 두 시를 이어 읽을 때, 개인과 공동체의 감사가 모든 민족을 향해 열리는 흐름은 분명히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인애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강하고(גָּבַר)’에 해당하는 말은 ‘강하다’, ‘우세하다’, ‘압도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입니다. 출애굽기 17:11에서는 이스라엘과 아말렉이 싸울 때 어느 편이 우세해지는지를 설명하는 데 같은 동사가 사용됩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인애는 단순히 하나님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따뜻한 감정이 아닙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인애가 자신들을 향해 강력하게 작용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이러한 표현은 구체적인 무게를 갖습니다. 이집트의 압제 아래 있던 백성은 스스로 자유를 얻을 힘이 없었습니다. 광야에서도 자기 힘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금송아지 사건 이후에는 자신들의 불성실함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기억을 배경으로 읽으면 ‘인애가 강하다’는 말은 단지 은혜의 양이 많다는 말이 아니라, 백성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향한 관계를 지켜 오셨다는 고백으로 들립니다. 다만 시편 117편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염두에 두었는지 밝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특정한 사건을 명시하지 않기 때문에 이 고백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베푸신 여러 구원의 경험을 담아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인애가 왜 다른 민족의 찬양을 불러냅니까?
시편 98:3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집을 향한 인애와 신실하심을 기억하셨으며, 그 결과 땅끝이 모두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노래합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이 그들만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들도 그 구원을 통해 여호와야훼가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인애는 우리가 찬양할 이유일 뿐 아니라, 다른 민족에게 그분을 알릴 이유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시는 모든 민족이 이미 여호와야훼를 믿고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모두 이스라엘과 똑같은 방식으로 언약에 참여했다고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인애를 경험한 공동체가 다른 민족들에게도 그분을 찬양하라고 요청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경험은 세계를 향한 증언이 됩니다.
여호와야훼의 신실함은 영원하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를 더욱 깊게 만듭니다.
‘신실함(אֶמֶת)’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참됨’, ‘진실’, ‘신실함’을 뜻합니다. 어떤 말이나 사실이 참되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어떤 존재가 믿을 만하며 그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의미도 가집니다. 이 절에서 ‘신실함’이라는 번역이 적절한 까닭은 앞의 ‘인애’와 함께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인애와 신실함은 자주 짝을 이루어 등장합니다. 금송아지 사건 이후 하나님께서 모세 앞을 지나가시며 자신의 성품을 선포하실 때, 그분은 자신을 인애와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으로 알리십니다(출애굽기 34:6). 이스라엘은 언약을 어겼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인애와 신실함을 드러내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악을 무조건 눈감아 주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어지는 출애굽기 34:7은 하나님의 용서와 함께 죄에 대한 책임도 말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말씀과 관계에 충실하신 분이며, 그 충실함 속에서 인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향한 그의 인애가 강하고’라는 말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어떻게 행동하셨는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신실함이 영원하다’는 말은 그런 행동의 근거가 되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인애는 우연히 베풀어진 호의가 아니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은혜가 됩니다.
‘강하다’는 말은 인애가 얼마나 힘 있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반면 ‘영원하다’는 말은 하나님의 신실함이 시간의 흐름에 의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무엇을 행하셨는가 하는 질문과, 앞으로도 그분을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시인은 나란히 대답하는 셈입니다.
그분의 인애는 강합니다. 그분의 신실함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야훼를 찬양할 이유는 한때의 특별한 사건에만 묶여 있지 않습니다. 그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성품이 지속적인 찬양의 근거가 됩니다.
할렐루야 — 처음의 명령으로 돌아오다
시편 117편은 ‘여호와야훼를 찬양하여라’라는 명령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라는 명령으로 끝납니다. 할렐루야는 히브리어로 여호와야훼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첫 절에서 길게 표현한 요청이 마지막에 짧은 외침으로 되돌아옵니다.
처음에는 모든 민족을 찬양으로 부릅니다. 그다음에는 왜 찬양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찬양을 외칩니다. 그사이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인애와 신실함이 처음과 마지막의 찬양을 연결합니다.
시인은 먼저 하나님의 성품과 행동을 증언합니다. 모든 민족을 향한 요청은 그 증언에 근거합니다.
시편 117편이 하나님의 인애와 영원한 신실함을 노래한 직후, 시편 118편은 여호와야훼께 감사하라는 요청과 함께 그분의 인애가 영원하다고 선포하며 시작합니다(시편 118:1). 시편 117편에서 모든 민족을 향해 울려 퍼진 찬양은 시편 118편에서 다시 이스라엘과 아론의 집, 여호와야훼를 두려워하는 이들의 감사로 이어집니다(시편 118:2–4). 이처럼 시편의 배열 속에서 찬양은 한 공동체의 경계에 갇히지 않고, 그렇다고 그 공동체가 겪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역사도 잊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117편이 보여주는 하나님과 민족들의 관계는 구약 성경의 더 큰 흐름 속에서도 발견됩니다. 창세기 12:1–3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며 그에게 복을 주고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시는데, 땅의 모든 가족이 그를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함께 주어집니다. 시편 117편은 그 약속의 실현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베푸신 인애를 근거로 모든 민족의 찬양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봅니다. 이사야 49:6 역시 여호와야훼의 종이 야곱의 지파를 일으키는 일에만 머무르지 않고 민족들의 빛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이 땅끝까지 이르도록 한다는 전망을 제시합니다. 이 본문들은 각각 고유한 역사적·문학적 문맥을 지닙니다. 그렇지만 함께 읽으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특별히 베푸신 은혜와 그분의 뜻이 모든 민족에게 알려지는 일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이 점은 신약에서도 이어집니다. 바울은 로마서 15:11에서 시편 117:1을 직접 인용합니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문제를 설명하면서 이 구절을 제시하고(로마서 15:7–12), 그리스도를 통해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일을 구약의 약속과 연결하여 이해합니다. 이것은 시편 117편에 대한 신약의 명시적인 인용이자 그리스도 중심의 해석입니다. 그러나 시편 자체가 먼저 보여주는 의미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알게 된 여호와야훼의 인애와 신실함은 모든 민족이 그분을 찬양해야 할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서 시작되어 모든 민족에게로
시편 117편에는 장대한 구원의 이야기도, 극적인 장면도 없습니다. 단 두 절 안에서 시인은 모든 민족을 부르고,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베푸신 인애를 증언하며, 다시 찬양을 외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향해 베푸신 강한 인애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인애를 경험한 백성이 모든 민족을 향해 보내는 찬양의 초대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함이 그 둘을 연결합니다.
시편의 화자가 ‘우리’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다른 민족을 여호와야훼의 찬양에서 배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함께 찬양하자고 부릅니다. 오늘날 믿음의 공동체 역시 자기들이 받은 은혜를 특별하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을 향한 배타적인 우월감으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통찰을 이 시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초대의 근거는 공동체의 위대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애와 신실함입니다.
시인은 모든 민족이 어떻게 한자리에 모일 것인지, 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여호와야훼를 알게 될 것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을 향해 부릅니다. 자신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인애가 그분을 찬양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시인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그 외침에는 처음에 불렀던 모든 민족을 향한 초대가 여전히 담겨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