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121편

이 장의 자리 · 107–150편 · 다섯째 권

산을 바라보던 눈이 발견한 하나님

시편 121편은 한 사람이 산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나는 산들을 향해 눈을 든다」는 구절을 읽을 때 흔히 웅장한 산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묵상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시인이 실제로 무엇을 느꼈는지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가 산들을 바라보며 먼저 하는 말은 찬양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나의 도움은 어디서 올까?’

산들이 아름다워서 감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앞으로 넘어야 할 산길이 두려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멀리 있는 성전의 산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 산들이 정확히 어디에 있으며 시인이 왜 바라보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답은 분명합니다.

「나의 도움은 여호와야훼에게서 온다. 하늘과 땅을 만든 이에게서.」 시인은 산 자체를 도움의 근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산을 바라보며 도움의 근원을 묻고, 그 답을 하늘과 땅을 만드신 여호와야훼에게서 찾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자신의 도움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3절부터는 누군가가 그 사람을 향해 말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네 발’, ‘너를 지키는 이’, ‘네 오른손’, ‘네 생명’. 시인은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시의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보호를 약속하고 축복하는 말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중심에는 한 동사가 거듭 등장합니다. ‘지키다.’

시편 121편은 위험이 전혀 없는 길을 보여주는 노래가 아니라, 그 길을 걷는 사람을 누가 지키시는지 알려 주는 노래입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6121편 본문 읽기 →

산들을 향해 눈을 들다

시편 121:1–2 본문 →

오름의 노래. 나는 산들을 향해 눈을 든다. 나의 도움은 어디서 올까?시편 121:1 · 본디새김
나의 도움은 여호와야훼에게서 온다. 하늘과 땅을 만든 이에게서.시편 121:2 · 본디새김

시편 121편은 시편 120–134편에 속한 ‘오름의 노래’ 가운데 두 번째 시입니다.

앞의 시편 120편에서는 평화를 미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화자의 고통이 강조되었습니다. 이제 시편 121편에서는 위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이 어디서 오는지를 묻습니다. 두 시가 동일한 사람의 연속된 경험을 묘사한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배열상 곤경의 호소에서 도움의 근원을 묻는 질문으로 옮겨 가는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산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인이 산들을 향해 눈을 드는 장면에는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는 순례자의 모습으로 읽기도 하고, 그 산들을 여정의 위험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으로 이해하기도 하며, 산 위의 신성한 장소들과 창조주 여호와야훼를 대조하는 것으로 읽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능성들 가운데 본문이 명확하게 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시인은 산들을 바라보지만, 도움의 근원은 산들이 아니라 여호와야훼라고 고백합니다.

왜 ‘하늘과 땅을 만든 이’라고 말하는가

2절에서 시인은 단순히 ‘여호와야훼가 나를 도우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하늘과 땅을 만든 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늘과 땅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표현입니다.

이 고백은 시인이 바라보는 산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합니다. 눈앞의 산들은 거대하고, 자신은 그 앞에서 작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산들 역시 하늘과 땅을 만드신 여호와야훼의 창조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시인의 도움은 자신이 바라보는 풍경보다 더 크신 분에게서 옵니다.

시인의 시선은 눈앞의 산에서 출발하지만, 그의 고백은 산들을 포함한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 이릅니다. 그가 의지하는 분은 산 너머 어딘가에 계신 이름 모를 존재가 아니라, 그 산과 하늘과 땅을 만드신 여호와야훼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실 만큼 위대한 하나님이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에도 관심을 기울이실까?

3절부터 시는 바로 그 질문에 응답합니다.

조금 더 깊이

순례자의 읽기: 신명기 16:16은 남자들이 해마다 세 번 여호와야훼가 택하실 곳에 나아가라고 명합니다. 예루살렘은 산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시편 122편에서는 실제로 예루살렘의 성문과 여호와야훼의 집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문맥을 고려하면 시편 121편의 산들이 순례자가 바라보는 예루살렘 주변의 산들일 수 있습니다. 위험의 읽기: 산길은 걷기 어려운 지형입니다. 발을 잘못 디딜 위험이 있고, 피할 곳이나 도움을 받을 곳을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뒤이어 3절에서 발이 흔들리는 문제가 등장한다는 사실도 이러한 이해와 잘 어울립니다. 대조의 읽기: 고대 이스라엘의 주변에서는 산과 높은 장소들이 신들을 섬기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산 위의 신성한 장소들이 아니라 창조주 여호와야훼만이 참된 도움의 근원이라는 대조로 읽기도 합니다. 다만 시편 121편에는 산 위의 다른 신들이나 산당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상 숭배 장소를 바라보며 그것을 거절했다는 해석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네 발이 흔들리지 않기를" — 고백에서 축복으로

시편 121:3–4 본문 →

그가 네 발이 흔들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를. 너를 지키는 이가 졸지 않기를.시편 121:3 · 본디새김
보아라, 이스라엘을 지키는 이는 졸지도 않고 잠들지도 않는다.시편 121:4 · 본디새김

3절에 이르면 말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1–2절의 화자는 ‘나의 도움’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3절부터는 ‘네 발’, ‘너를 지키는 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고백한 뒤 다른 사람이 그를 축복하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동행자나 공동체의 누군가가 축복을 건네는 모습과도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누가 말하는지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동일한 화자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향해 신뢰를 표현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문학적인 효과는 분명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고백했습니다. 이제 그 도움이 다른 사람에게도 주어지기를 바라는 축복의 언어가 등장합니다.

간구가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3절의 ‘내버려 두지 않기를’, ‘졸지 않기를’에는 부정 표현 알이 사용됩니다. 이 표현은 문맥에 따라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기원이나 금지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반면 4절의 ‘졸지도 않고 잠들지도 않는다’에는 로가 사용됩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실제로 졸거나 잠들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부정문으로 단언합니다.

따라서 본디새김처럼 3절을 축원으로, 4절을 확신의 선언으로 구별해 읽으면, 앞에서는 바람의 형태로 말했던 내용이 뒤에서는 확신의 근거로 제시됩니다. 시인이 상대방에게 하나님의 보호를 기원하면서, 왜 그런 보호를 기대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이시며, 결코 잠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왜 잠들지 않으신다고 말하는가

잠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책임감이 강해도 계속 깨어 있을 수 없습니다. 가족을 보호하는 사람도 잠을 자야 하고,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도 교대해야 합니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바로 이 인간적인 한계를 하나님과 대조합니다.

여호와야훼는 졸지도 않고 잠들지도 않으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잠들지 않으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인간처럼 생물학적인 피로를 느끼지 않으신다는 설명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분의 보호가 인간의 경계처럼 중단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잠시도 쉬지 않고 모든 것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지키시는 일을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졸음은 잠들기 전의 짧은 방심을 떠올리게 하고, 잠은 완전히 의식을 내려놓는 상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은 두 표현을 나란히 놓아 하나님의 보호에는 그런 빈틈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 선언의 대상은 한 개인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3절에서는 ‘너를 지키는 이’였지만, 4절에서는 ‘이스라엘을 지키는 이’가 됩니다. 한 사람의 발걸음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지켜 오신 하나님과 다른 분이 아니십니다. 이 개인적인 확신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알려진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합니다.

신명기 32:10–12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광야에서 만나 보호하시고 돌보신 일을 회상합니다. 출애굽기 13:21–22에서도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시편 121편의 화자는 구체적인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지키는 이’라는 표현은 그분이 한 사람의 사적인 기대에 따라 만들어진 보호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이심을 상기시킵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 네 오른손 곁에 계신다

시편 121:5–6 본문 →

여호와야훼는 너를 지키는 이다. 여호와야훼는 네 오른손 곁에 있는 네 그늘이다.시편 121:5 · 본디새김

여기서 시편은 하나님을 설명하는 새로운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그늘입니다.

앞에서는 하나님을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그분을 한 사람의 오른손 곁에 있는 그늘이라고 부릅니다. 한쪽에는 하늘과 땅 전체가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한 사람의 오른손이 있습니다.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한 사람의 바로 곁에서 그를 지키시는 분으로 묘사되십니다.

왜 하필 그늘인가

햇볕이 강한 지역에서 그늘은 단순히 편안한 휴식 공간만이 아닙니다. 뜨거운 열기를 피하게 해 주는 실제적인 보호의 장소입니다. 이사야 25:4는 하나님을 폭풍 속의 피난처이자 뜨거운 열기를 피하는 그늘로 묘사합니다. 이사야 4:6에서도 그늘은 낮의 더위를 피하는 장소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그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네 오른손 곁’에 있습니다.

히브리어 표현은 오른손의 바로 곁이나 옆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이 정확히 오른쪽 어느 위치에 서 계신지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매우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시편 16:8에서도 여호와야훼가 자신의 오른쪽에 계시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길을 걷는 사람의 바로 곁에서 그를 가려 주는 그늘처럼, 여호와야훼의 돌보심을 가까운 이미지로 보여줍니다.

해와 달이 치지 않는다

낮에는 해가 너를 치지 않고, 밤에는 달이 너를 치지 않을 것이다.시편 121:6 · 본디새김

5절의 그늘은 자연스럽게 6절의 해와 연결됩니다. 낮의 햇볕은 실제로 사람에게 위험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해와 함께 달을 언급합니다.

달이 사람을 친다는 말은 오늘날 독자에게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해와 달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본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낮과 밤의 대조입니다. 해와 달은 낮과 밤을 대표하며, 두 표현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모든 시간에 걸친 보호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서로 대조되는 두 대상을 사용하여 전체를 나타내는 성경의 시적 언어와 잘 어울립니다.

이 장면을 앞의 4절과 연결하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은 잠들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밤이 되어 인간의 활동이 멈추더라도 그분의 보호는 멈추지 않습니다.

낮과 밤의 교대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끊어 놓지 못합니다.

조금 더 깊이

히브리어에서 ‘치다(⁨נָכָה⁩)’에 해당하는 동사는 실제로 때리거나 해를 입히는 행동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달빛이 특정한 병을 일으킨다는 고대의 관념과 연결하여 이해하기도 하지만, 시편 121편이 그런 질병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특정한 질환이나 자연 현상을 이 구절의 의미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섯 번 반복되는 '지키다' — 이 시편의 중심 동사

시편 121:7 본문 →

시편 121편을 다시 읽으면 같은 말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키다’입니다.

이 동사는 보호하다, 지키다, 살피다, 보존하다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 동사에서 나온 표현이 시편 121편의 여덟 절 가운데 여섯 번 등장합니다.

3절에는 ‘너를 지키는 이’, 4절에는 ‘이스라엘을 지키는 이’, 5절에는 다시 ‘너를 지키는 이’가 나옵니다. 7절에서는 두 번, ‘너를 지킬 것이다’, ‘네 생명을 지킬 것이다’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8절에서도 ‘네가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을 지킬 것이다’로 사용됩니다.

산들을 바라보며 도움을 묻는 일, 발이 흔들릴 위험, 졸지 않는 보호자, 오른손 곁의 그늘, 낮의 해와 밤의 달, 생명과 일상의 모든 움직임이 하나님의 ‘지키심’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 동사의 사용 방식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주로 하나님을 ‘지키는 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하는 표현입니다. 뒷부분에서는 하나님이 실제로 ‘지킬 것이다’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그분의 성품에서 출발하여 그분이 행하실 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시인은 그분이 앞으로도 지키실 것을 기대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위험을 피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길을 잘 알고 있어서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반복해서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키심입니다.

지킨다는 것은 아무런 고난도 겪지 않는다는 뜻인가

여호와야훼는 모든 해악에서 너를 지킬 것이다. 네 생명을 지킬 것이다.시편 121:7 · 본디새김

‘모든 해악’이라는 표현은 매우 강합니다.

히브리어 라아(⁨רַע⁩)는 도덕적인 악뿐 아니라 사람에게 닥치는 재난이나 해로운 일도 가리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은 단순히 하나님이 사람을 악한 생각에서만 지키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보호는 인간의 생명과 실제 삶을 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모든 해악에서 지키신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사고나 질병, 고난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본문의 표현을 지나치게 약하게 만들지도, 본문이 명시하지 않은 조건을 덧붙이지도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인은 분명히 하나님의 보호를 강하게 선언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마음의 평안만을 뜻하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는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다치거나 죽지 않는다는 세부적인 약속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시편 121편이 속한 ‘오름의 노래’의 첫 시편에서 화자는 이미 고통과 적대적인 관계 속에 있었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여러 시편에도 억압과 고난, 눈물과 기다림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 절은 모든 개별적인 위험에서 반드시 즉각적인 무사함을 보장하는 약속으로 읽기보다, 위험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여호와야훼의 돌보심에 맡길 수 있다는 강한 신앙의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읽기가 ‘모든 해악’이라는 표현의 강도를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시인은 조심스럽게 ‘어떤 해악에서만’ 지키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보호가 인간이 마주하는 모든 위험보다 크다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이 구체적인 삶의 모든 고통과 어떻게 함께 성립하는지는 시편 121편만으로 완전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시는 그 문제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 하나님의 지키심을 신뢰하는 언어로 노래합니다.

네 생명을 지키실 것이다

7절의 두 번째 문장 ‘네 생명을 지킬 것이다’는 보호의 대상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여기서 ‘생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네페쉬(⁨נֶפֶשׁ⁩)입니다. 이 말은 문맥에 따라 목숨, 생명, 사람 자신, 욕구나 내적인 존재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몸은 다치거나 죽어도 몸과 분리된 영혼만은 안전하다는 의미로 읽는 것은 본문의 초점을 벗어납니다. 시인은 몸과 영혼을 분리하여 서로 다른 운명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발걸음을 지키시고, 낮과 밤의 위험에서 보호하시며, 생명을 지키신다고 말하는 흐름 전체가 한 사람의 실제적인 삶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뒤이어 등장하는 마지막 축복에서 더욱 넓은 범위로 확장됩니다.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 — 보호받는 삶의 전체

시편 121:8 본문 →

여호와야훼는 네가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을 지킬 것이다. 지금부터 영원까지.시편 121:8 · 본디새김

마지막 절에서는 더 이상 산이나 해와 달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사람이 일상에서 반복하는 가장 평범한 행동을 이야기합니다. 이 표현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여행과 귀환입니다. 시편이 오름의 노래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길을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을 축복하는 말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집에서 나가 위험한 길을 걷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모든 과정에서 여호와야훼께서 지키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삶 전체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사람은 날마다 어딘가로 나가고 다시 돌아옵니다. 노동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길을 걷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은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생활 전체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두 해석은 서로 배제되지 않습니다. 실제 여행의 출발과 귀환을 떠올리면서도, 그 표현이 사람의 삶 전체로 확장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 28:6은 이스라엘이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복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또한 창세기 28:15에서는 야곱이 고향을 떠나는 길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그가 어디로 가든 지키시며, 다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두 본문은 시편 121편의 원래 상황을 직접 설명하는 구절은 아닙니다. 그러나 길을 떠나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보호가 구약 성경에서 반복되는 중요한 주제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앞의 6절에서는 낮과 밤을 통해 보호의 지속성을 표현했습니다. 이제 시인은 그 범위를 더욱 넓힙니다. 시편의 축복은 어떤 특정한 여행 기간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오늘의 출발과 귀환을 넘어, 계속되는 삶의 시간 전체를 향합니다.

다만 이 표현을 근거로 죽음 이후의 구체적인 상태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런 장면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여호와야훼의 지키심이 잠깐 주어졌다가 사라지는 보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한순간의 위기를 넘긴 뒤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시인은 그분의 보호를 지금 시작되어 앞으로도 지속될 축복으로 노래합니다.

산에서 시작된 노래가 발걸음에 머물다

시편 121:1–8 본문 →

시편 121편은 산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여호와야훼였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그 대답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나의 도움’이라고 말하던 개인의 고백이 다른 사람을 향한 축복으로 바뀌고, 발이 흔들리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 보호의 범위가 낮과 밤, 생명 전체, 나가고 들어오는 모든 활동, 마침내 ‘지금부터 영원까지’로 확장됩니다. 보호의 근거는 사람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길을 걷느냐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어떤 분이시냐에 있습니다.

온 세상을 만드신 분이 한 사람의 발걸음을 지키시는 분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한 길을 떠날 때 모든 위험을 대신 막아 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을 평생 따라다니며 모든 순간을 지켜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1편의 축복은 인간이 서로를 지키는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하는 언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와야훼는 너를 지키는 이다’라는 말은 상대방의 두려움을 가볍게 여기거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위험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 위험 속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분이 누구인지 알려 주는 말이어야 합니다.

처음에 시인의 눈앞에는 산들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면 그 산들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한 사람의 발걸음이 남습니다. 집을 나서는 발걸음, 길을 걷는 발걸음, 다시 돌아오는 발걸음입니다.

시인은 그 길이 얼마나 길고 험한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길 끝에 정확히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든 움직임을 향해 하나님의 보호를 선포합니다.

산을 향해 눈을 들었던 사람에게 주어진 마지막 말은 산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그가 어디로 가든 자신을 지키시는 분이 계시다는 축복입니다.

그렇게 시편 121편은 산에서 시작하여 한 사람의 발걸음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