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121편
이 장의 자리 · 107–150편 · 다섯째 권
산을 바라보던 눈이 발견한 하나님
시편 121편은 한 사람이 산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가 산들을 바라보며 먼저 하는 말은 찬양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제 도움은 어디에서 올까요?」 산들이 아름다워서 감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앞으로 넘어야 할 산길이 두려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멀리 있는 성전의 산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답은 분명합니다. 「제 도움은 여호와야훼께서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한 사람이 자신의 도움을 이야기하지만, 3절부터는 누군가가 그 사람을 향해 말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네 발」, 「너를 지키시는 분」, 「네 오른손」, 「네 생명」. 시인은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시의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보호를 약속하고 축복하는 말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중심에는 한 동사가 거듭 등장합니다. 「지키다」입니다.
시편 121편은 위험이 전혀 없는 길을 보여주는 노래가 아니라, 그 길을 걷는 사람을 누가 지키시는지 알려 주는 노래입니다.
산들을 향해 눈을 들다
오름의 노래. 산들을 향하여 눈을 듭니다. 어디에서 내 도움이 오겠습니까?시편 121:1 · 두루새김
내 도움은 여호와야훼께로부터,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께로부터 옵니다.시편 121:2 · 두루새김
시편 121편은 시편 120–134편에 속한 「오름의 노래」 가운데 두 번째 시입니다. 앞의 시편 120편에서는 평화를 미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화자의 고통이 강조되었습니다. 이제 시편 121편에서는 위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도움이 어디서 오는지를 묻습니다.
산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인이 산들을 향해 눈을 드는 장면에는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는 순례자의 모습으로 읽기도 하고, 그 산들을 여행길의 위험을 떠올리게 하는 배경으로 이해하기도 하며, 산 위의 거룩하다고 여기는 장소들과 달리 창조주 여호와야훼만이 참된 도움을 주신다는 뜻으로 읽기도 합니다. 어느 쪽으로 읽느냐에 따라 산은 목적지가 되기도, 두려움이 되기도, 거절해야 할 다른 의지처가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능성들 가운데 본문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시인은 산들을 바라보지만, 도움을 주시는 분은 산들이 아니라 여호와야훼라고 고백합니다.
왜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라고 말하는가
2절에서 시인은 단순히 「제 도움은 여호와야훼께서 주십니다」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을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늘과 땅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눈앞의 산들은 거대하고, 자신은 그 앞에서 작고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산들 역시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야훼의 창조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시인의 도움은 자신이 바라보는 풍경보다 더 크신 분에게서 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실 만큼 위대한 하나님이 한 사람의 작은 발걸음에도 관심을 기울이실까?
3절부터 시는 바로 그 질문에 응답합니다.
조금 더 깊이
두 시가 같은 사람의 이어지는 경험을 그린다고 확정할 수는 없지만, 놓인 순서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다가 도움이 어디서 오는지 묻는 질문으로 옮겨 가는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순례자로 읽는 근거는 이렇습니다. 신명기 16:16은 남자들이 해마다 세 번 여호와야훼가 택하실 곳에 나아가라고 명합니다. 예루살렘은 산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시편 122편에서는 실제로 예루살렘의 성문과 여호와야훼의 집이 등장합니다. 위험의 배경으로 읽는 근거는 이렇습니다. 산길은 걷기 어려운 곳입니다. 발을 잘못 디딜 위험이 있고, 피할 곳이나 도움을 받을 곳을 찾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뒤이어 3절에서 발이 흔들리는 문제가 등장한다는 사실도 이러한 이해와 잘 어울립니다. 세 번째 읽기의 근거는 고대 이스라엘의 주변에서 산과 높은 곳들이 신들을 섬기는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다만 시편 121편에는 산 위의 다른 신들이나 산당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는 장소를 바라보며 그것을 거절했다는 해석을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네 발이 흔들리게 두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 고백에서 축복으로
그대의 발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기를. 그대를 지키시는 분이 졸지 않으시기를.시편 121:3 · 두루새김
참으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잠들지도 않으십니다.시편 121:4 · 두루새김
3절에 이르면 말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1–2절의 화자는 「제 도움」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3절부터는 「네 발」, 「너를 지키시는 분」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고백한 뒤 다른 사람이 그를 축복하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동행자나 공동체의 누군가가 축복을 건네는 모습과도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누가 말하는지 본문은 밝히지 않습니다. 같은 화자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향해 신뢰를 표현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라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시의 표현이 주는 효과는 분명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고백했습니다. 이제 그 도움이 다른 사람에게도 주어지기를 바라는 축복의 말이 등장합니다.
간구가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너를 지키시는 분께서 졸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집니다.
「보아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께서는 졸지도 않으시고 잠들지도 않으신다.」
앞에서는 바람의 형태로 말했던 내용이 뒤에서는 확신의 근거로 제시됩니다. 시인이 상대방에게 하나님의 보호를 기원하면서, 왜 그런 보호를 기대할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하나님은 왜 잠들지 않으신다고 말하는가
사람은 아무리 책임감이 강해도 계속 깨어 있을 수 없습니다. 가족을 보호하는 사람도 잠을 자야 하고, 성벽을 지키는 파수꾼도 교대해야 합니다. 시인은 바로 이 인간적인 한계를 하나님과 나란히 놓아 차이를 보여줍니다.
여호와야훼는 졸지도 않으시고 잠들지도 않으십니다.
그분의 보호가 인간이 주변을 살피는 일처럼 중단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졸음은 잠들기 전의 짧은 방심을 떠올리게 하고, 잠은 완전히 의식을 내려놓는 상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은 두 표현을 나란히 놓아 하나님의 보호에는 그런 빈틈이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 선언의 대상은 한 개인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3절에서는 「너를 지키시는 분」이었지만, 4절에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이 됩니다. 한 사람의 발걸음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전체를 지켜 오신 하나님과 다른 분이 아니십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이스라엘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 안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3절의 「두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졸지 않으시기를 바란다」에 해당하는 원문에는 부정 표현 알이 사용됩니다. 이 표현은 앞뒤 흐름에 따라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뜻이나 어떤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반면 4절의 「졸지도 않으시고 잠들지도 않으신다」에 해당하는 원문에는 로가 사용됩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실제로 졸거나 잠들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두루새김은 3절을 「바란다」라는 말로 바람을 표현하고, 4절을 「않으신다」라는 말로 확신을 선언하도록 옮겼습니다. 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신명기 32:10–12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광야에서 만나 보호하시고 돌보신 일을 되돌아봅니다. 출애굽기 13:21–22에서도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의 길을 이끄십니다. 시편 121편의 화자는 구체적인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표현은 그분이 한 사람의 개인적인 기대에 따라 만들어진 보호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이심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 네 오른손 곁에 계신다
여호와야훼께서 그대를 지키시고 여호와야훼께서 그대 오른편에서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시편 121:5 · 두루새김
앞에서는 하나님을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그분이 한 사람의 오른손 곁에서 그늘이 되어 주신다고 말합니다.
한쪽에는 하늘과 땅 전체가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한 사람의 오른손이 있습니다.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한 사람의 바로 곁에서 그를 지키시는 분으로 그려집니다.
왜 하필 그늘인가
햇볕이 강한 지역에서 그늘은 단순히 편안한 휴식 공간만이 아닙니다. 뜨거운 열기를 피하게 해 주는 실제적인 보호의 장소입니다. 이사야 25:4는 하나님을 폭풍 속의 피난처이자 뜨거운 열기를 피하는 그늘로 그립니다.
그런데 이 그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네 오른손 곁」에 있습니다. 원문 표현은 오른손의 바로 곁이나 옆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이 정확히 오른쪽 어느 위치에 서 계신지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보호하시는 하나님이 매우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길을 걷는 사람의 바로 곁에서 그를 가려 주는 그늘처럼, 여호와야훼의 돌보심을 가까운 이미지로 보여줍니다.
해와 달이 치지 않는다
낮에는 해가 그대를 치지 않고 밤에는 달도 그대를 치지 않을 것입니다.시편 121:6 · 두루새김
5절의 그늘은 자연스럽게 6절의 해와 연결됩니다. 낮의 햇볕은 실제로 사람에게 위험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해와 함께 달을 언급합니다.
달이 사람을 해친다는 말은 오늘날 독자에게 낯설게 들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해와 달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는지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본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낮과 밤의 대조입니다.
해와 달은 낮과 밤을 대표하며, 두 표현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모든 시간에 걸친 보호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서로 대조되는 두 대상을 사용하여 전체를 나타내는 성경의 시적 언어와 잘 어울립니다.
이 장면을 앞의 4절과 연결하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은 잠들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밤이 되어 인간의 활동이 멈추더라도 그분의 보호는 멈추지 않습니다.
낮과 밤이 바뀌어도 하나님의 돌보심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사야 4:6에서도 그늘은 낮의 더위를 피하는 장소로 등장하고, 시편 16:8에서도 여호와야훼가 자신의 오른쪽에 계시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6절에서 「해치다」로 옮긴 원문의 동사는 실제로 때리거나 해를 입히는 행동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달빛이 특정한 병을 일으킨다는 고대의 생각과 연결하여 이해하기도 하지만, 시편 121편이 그런 질병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특정한 질병이나 자연 현상을 이 구절의 의미로 확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의 보호를 과학적인 자연 현상에 대한 설명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경험하는 시간 전체를 아우르는 축복의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 반복되는 「지키다」 — 이 시편의 중심 동사
시편 121편을 다시 읽으면 같은 말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키다」입니다. 보호하다, 지키다, 살피다, 보존하다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 동사에서 나온 표현이 시편 121편의 여덟 절 가운데 여섯 번 등장합니다.
3절에는 「너를 지키시는 분」, 4절에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 5절에는 다시 「너를 지키시는 분」이 나옵니다. 7절에서는 두 번 사용됩니다. 「너를 지키실 것이다.」 「네 생명을 지키실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8절에서도 사용됩니다.
이 반복이 중요한 이유는 시의 모든 이미지가 한 가지 행동으로 모이기 때문입니다. 산들을 바라보며 도움을 묻는 일, 발이 흔들릴 위험, 졸지 않는 보호자, 오른손 곁의 그늘, 낮의 해와 밤의 달, 생명과 일상의 모든 움직임이 하나님의 지키심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 동사의 사용 방식에도 변화가 있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주로 하나님을 「지키시는 분」이라고 부릅니다. 뒷부분에서는 하나님이 실제로 「지키실 것이다」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그분의 성품에서 출발하여 그분이 행하실 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시인은 그분이 앞으로도 지키실 것을 기대합니다.
지킨다는 것은 아무런 고난도 겪지 않는다는 뜻인가
여호와야훼께서는 모든 악에서 그대를 지키시고 그대의 생명을 지키실 것입니다.시편 121:7 · 두루새김
이 구절은 시편 121편에서 가장 큰 위로를 주면서도, 동시에 가장 신중하게 해석해야 하는 구절입니다.
「모든 해로운 일」이라는 표현은 매우 강합니다. 원문의 이 말은 도덕적인 악뿐 아니라 사람에게 닥치는 재난이나 해로운 일도 가리킬 수 있습니다. 그분의 보호는 인간의 생명과 실제 삶을 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모든 해로운 일로부터 지키신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사고나 질병, 고난도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닐까?
시인은 분명히 하나님의 보호를 강하게 선언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마음의 평안만을 뜻하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줄여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 시는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다치거나 죽지 않는다는 세부적인 약속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시편 121편이 속한 「오름의 노래」의 첫 시편에서 화자는 이미 고통과 적대적인 관계 속에 있었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여러 시편에도 억압과 고난, 눈물과 기다림이 등장합니다. 이처럼 시편 전체의 흐름은 하나님이 지키시는 백성도 실제적인 고통을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이 절은 모든 개별적인 위험에서 반드시 곧바로 무사함을 보장하는 약속으로 읽기보다, 위험과 불확실성 속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여호와야훼의 돌보심에 맡길 수 있다는 강한 신앙의 선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읽기가 「모든 해로운 일」이라는 표현의 강도를 없애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여호와야훼의 보호가 인간이 마주하는 모든 위험보다 크다고 고백합니다. 그 고백이 구체적인 삶의 모든 고통과 어떻게 함께 성립하는지는 시편 121편만으로 완전히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 시는 그 문제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 하나님의 지키심을 신뢰하는 말로 노래합니다.
네 생명을 지키실 것이다
7절의 두 번째 문장은 보호의 대상을 더욱 분명히 합니다. 「생명」(נֶפֶשׁ)에 해당하는 원문의 말은 앞뒤 흐름에 따라 목숨, 생명, 사람 자신, 욕구나 사람의 내면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시편 121편에서는 「네 생명」이라는 번역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몸은 다치거나 죽어도 몸과 분리된 영혼만은 안전하다는 의미로 읽는 것은 본문의 초점을 벗어납니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 전체를 하나님께 맡기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뒤이어 등장하는 마지막 축복에서 더욱 넓은 범위로 확장됩니다.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것 — 보호받는 삶의 전체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대가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실 것입니다.시편 121:8 · 두루새김
마지막 절에서는 더 이상 산이나 해와 달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사람이 일상에서 반복하는 가장 평범한 행동을 이야기합니다. 이 표현은 두 가지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일입니다. 시편이 오름의 노래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길을 떠나는 사람과 돌아오는 사람을 축복하는 말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삶 전체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사람은 날마다 어딘가로 나가고 다시 돌아옵니다. 「나갈 때에도 들어올 때에도」는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생활 전체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두 해석은 서로 배제되지 않습니다. 실제 여행의 출발과 돌아오는 일을 떠올리면서도, 그 표현이 사람의 삶 전체로 넓어진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산길에서만 지키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집을 떠나는 순간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에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지금부터 영원까지
앞의 6절에서는 낮과 밤을 통해 보호가 계속된다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이제 시인은 그 범위를 더욱 넓힙니다.
지금부터 영원히입니다.
다만 이 표현을 근거로 죽음 이후의 구체적인 상태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런 장면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여호와야훼의 지키심이 잠깐 주어졌다가 사라지는 보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시편은 그 말로 끝납니다.
산에서 시작된 노래가 발걸음에 머물다
시편 121편은 산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야훼였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그 대답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낮과 밤을 지나, 생명 전체를 지나, 나가는 것과 들어오는 일상의 모든 순간까지 그 보호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보호의 근거는 사람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길을 걷느냐가 아니라, 여호와야훼께서 어떤 분이시냐에 있습니다. 시인은 길을 조심해서 걸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신뢰하는 것은 자신의 안전 관리 능력이 아닙니다. 온 세상을 만드신 분이 한 사람의 발걸음을 지키시는 분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시편에서 축복을 받는 사람은 길을 걷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길을 걸어야 합니다. 산을 넘어야 할 수도 있고, 낯선 곳에서 밤을 보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 사람이 홀로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처음에 시인의 눈앞에는 산들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이르면 그 산들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 대신 한 사람의 발걸음이 남습니다.
집을 나서는 발걸음, 길을 걷는 발걸음, 다시 돌아오는 발걸음입니다.
시인은 그 길이 얼마나 길고 험한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길 끝에 정확히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든 움직임을 향해 「여호와야훼께서는 네가 나갈 때에도 들어올 때에도 지금부터 영원히 너를 지키실 것이다」라고 하나님의 보호를 선포합니다.
산을 향해 눈을 들었던 사람에게 주어진 마지막 말은 산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그가 어디로 가든 자신을 지키시는 분이 계시다는 축복입니다.
그렇게 시편 121편은 산에서 시작하여 한 사람의 발걸음에서 끝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