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75편

이 장의 자리 · 73–89편 · 셋째 권

세상을 붙드시는 분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일 때,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를 묻습니다. 이 혼란은 언제 끝날 것인가? 그리고 결국 누가 이길 것인가?

시편 75편은 이 두 질문에 뜻밖의 방식으로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곧바로 악인들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자신이 심판하실 때를 정하신다고 선언하십니다.

시편 75편은 단순히 악인이 벌받고 의인이 승리한다는 노래가 아닙니다. 세상이 흔들릴 때에도 누가 실제로 세상을 붙들고 계시는지, 그리고 인간이 스스로 높아지려는 시도가 왜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무너지는지를 보여 주는 노래입니다.

이 시편은 감사로 시작하고 찬양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입니다. 시인은 심판을 이야기하면서도 감사할 수 있는 이유를 차례로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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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감사하는 이유

시편 75:1–2 본문 →

표제는 이 노래를 아삽의 시편이라고 밝힙니다. 「알 타슈헤트」는 다른 시편의 표제에도 나타나지만(시편 57:1; 58:1; 59:1), 정확히 어떤 음악적 지시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표제만으로 시편이 불린 역사적 사건을 특정할 수도 없습니다.

노래는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드리는 감사로 시작합니다.

하나님, 저희가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이름이 가까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시편 75:2 · 본디새김

시인은 악인들이 이미 사라졌다거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뒤이어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이 아직 정해진 때를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도 백성은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단순한 호칭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고, 자신의 백성과 관계를 맺으시며, 어떤 분인지 알게 하신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이 가깝다는 말에는 하나님이 멀리 떨어진 채 세상에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는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어지는 「사람들이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이야기했습니다」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은 이미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행동을 기억하고 전할 근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다는 믿음은 모든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때에도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잊지 않는 고백입니다.

그 고백에 응답하듯, 다음 구절에서는 하나님 자신이 말씀하십니다.

조금 더 깊이

앞선 시편 74편과의 연결이 눈에 띕니다. 시편 74편에서는 원수들이 성소를 파괴하고 자기들의 표징을 세웠으며, 백성은 하나님께 언제까지 침묵하실 것인지 물었습니다(74:3–10). 시편 75편은 바로 그다음에 하나님의 이름이 가까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두 시편이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배열에서 두 노래는 서로를 비추어 줍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부재처럼 느껴지는 현실에서 부르짖고, 다른 하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심판을 바라보며 감사합니다.

땅이 녹아내릴 때 기둥을 바로 세우시는 분

시편 75:3–4 본문 →

「내가 정해진 때를 택하면, 내가 공정하게 심판하겠다.」시편 75:3 · 본디새김

첫 구절에서 백성이 하나님께 말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직접 일인칭으로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의 감사에서 하나님의 선언으로 목소리가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밝히시는 것은 심판의 결과가 아니라 심판의 시점입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는 우연이나 인간의 요구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언제인지는 밝히지 않으십니다. 인간에게 그 일정을 맡기지도 않으십니다.

이 선언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위로이면서 동시에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지금 당장 정의가 이루어지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의 때에 공정하게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심판이 아무 기준 없이 미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는 하나님의 결정에 속하고, 판단은 공정함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이어서 등장하는 장면은 훨씬 거대합니다.

「땅과 그 안에 사는 모든 이가 녹아내린다. 내가 그 기둥들을 바로 세웠다.」 셀라.시편 75:4 · 본디새김

「녹아내린다」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힘을 잃는 상황을 떠올리게 하며, 땅 자체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는 위기를 그립니다. 개인적인 어려움을 넘어 공동체와 세계 전체가 흔들리는 장면입니다.

고대 시적 언어에서 땅의 기둥은 세계를 떠받치는 질서를 나타내는 이미지입니다. 시인이 전달하려는 것은 땅이 흔들려도 그것을 지탱하는 권위와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땅과 사람들은 녹아내리지만, 하나님은 기둥들을 바로 세우십니다. 인간이 의지하는 질서는 무너질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질서를 지탱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단지 파괴적인 심판자로 소개하지 않으십니다. 심판하시는 분인 동시에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드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세상의 질서와 무관한 파괴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질서를 세우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불의를 판단하시는 일입니다.

이 선언을 들으면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붙드시고 심판하시는 분이라면, 인간은 무엇을 근거로 자기 힘을 자랑하는 것일까요?

조금 더 깊이

「정해진 때」(⁨מוֹעֵד⁩)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낱말은 정해진 시간이나 약속된 때를 가리킬 수 있으며, 다른 문맥에서는 정해진 모임이나 절기에도 사용됩니다. 땅의 기둥은 지구의 물리적 구조에 관한 설명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스스로 뿔을 들어 올리는 사람들

시편 75:5–6 본문 →

「나는 자랑하는 자들에게 『자랑하지 마라』 하고 말했고, 악인들에게 『뿔을 들어 올리지 마라』 하고 말했다.」시편 75:5 · 본디새김

성경에서 동물의 뿔은 힘과 위세를 나타내는 비유로 자주 사용됩니다. 뿔을 가진 짐승이 그것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상대와 겨루는 모습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뿔을 높이 든다는 것은 자신의 힘을 드러내고 우월한 위치를 주장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단순히 뿔을 가진 것이 문제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뿔을 스스로 높이 들어 올리려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이 차이는 시편의 마지막 부분에서 중요해집니다. 악인의 뿔은 잘리지만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리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힘 자체를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며 누가 그것을 높이는지를 묻습니다.

「『너희 뿔을 높이 들어 올리지 마라. 목을 곧추세워 거만하게 말하지 마라.』」시편 75:6 · 본디새김

뿔을 치켜드는 동물의 모습과 목을 곧추세우고 말하는 사람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교만은 마음속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의 말과 태도에 나타납니다. 자신이 누구보다 강하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자신에게는 아무도 도전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게 됩니다.

악인들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 힘을 과장하고, 그 힘을 근거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로 그려집니다.

한 가지 읽기의 갈림도 있습니다. 5절의 「나는」이 누구인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3–4절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이 계속 악인들에게 경고하시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시인이 하나님의 선언을 들은 뒤 악인들에게 경고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7–9절이 하나님을 삼인칭으로 설명한다는 점은 후자의 가능성을 뒷받침합니다.

어느 쪽이든 시편의 논지는 같습니다. 악인들의 교만에 대한 경고는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 경고에는 아직 행동을 바꿀 가능성이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뿔을 잘라 버리시기 전에 먼저 높이 들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높아지는 일은 어디에서 오는가

시편 75:7–8 본문 →

높아지는 일은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광야에서도 오지 않기 때문이다.시편 75:7 · 본디새김

이 구절은 앞서 반복된 「뿔을 들어 올리지 마라」라는 경고에 이유를 제시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여러 방향에서 힘을 찾습니다. 다른 사람의 후원을 기대할 수도 있고, 더 강한 세력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습니다.

히브리어 하림은 문맥에서 「높이는 일」로 이해할 수도 있고, 「산들」을 가리키는 명사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광야와 산을 연결하는 구절이 되어 문장 구조를 다르게 풀어야 합니다. 자음 표기만으로 어느 읽기가 반드시 옳다고 결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높아지는 일」로 읽으면 앞의 뿔을 높이 들지 말라는 말과 다음 절의 높이고 낮추시는 하나님이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반면 산으로 읽으면 여러 지리적 방향과 장소를 언급하면서 인간이 외부에서 도움을 얻으려는 기대를 부정하는 표현이 됩니다. 두 읽기의 강조점에는 차이가 있지만, 다음 절은 이 구절이 향하는 핵심을 분명하게 밝혀 줍니다.

하나님이 심판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사람을 낮추고 저 사람을 높인다.시편 75:8 · 본디새김

여기서 시인은 누가 높아질 것인지의 문제를 누가 심판자인지의 문제로 바꿉니다.

사람들은 높아지는 일을 경쟁에서 승리하거나 권력을 얻는 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순히 사람들의 경쟁을 지켜보다가 승리한 쪽을 인정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 자신이 판단하시고 한 사람을 낮추시며 다른 사람을 높이십니다.

이것은 모든 사회적 성공이나 실패가 곧바로 하나님의 호의나 심판을 나타낸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편은 현재의 모든 지위 차이를 하나님의 평가로 해석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 높아져 있는 사람이 그 위치를 자신의 정당함에 대한 최종 증거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에 가깝습니다.

지금 높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판단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이 장면은 한나의 노래와 뚜렷하게 연결됩니다. 한나는 교만하게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여호와야훼께서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신다고 노래합니다(사무엘상 2:3, 7). 또한 땅의 기둥들이 여호와야훼께 속하고 그 위에 세계를 세우셨다고 말합니다(사무엘상 2:8).

한나의 노래에서 낮은 자를 높이시는 일은 단순히 권력의 주인이 바뀌는 사건이 아닙니다. 기존의 힘과 지위가 최종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시편 75편도 바로 그 질서를 노래합니다.

여호와야훼의 손에 들린 잔

시편 75:9 본문 →

여호와야훼의 손에 잔이 있고, 포도주가 거품을 일으키며 향료가 가득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잔에서 술을 쏟았다. 땅의 모든 악인은 반드시 그 찌꺼기까지 남김없이 들이켜 마실 것이다.시편 75:9 · 본디새김

시편의 이미지는 다시 크게 바뀝니다. 앞에서는 땅의 기둥과 사람의 뿔이 등장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손에 들린 잔이 보입니다.

이 잔은 심판의 잔입니다.

첫째, 심판은 악인들이 자기 뜻대로 조절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앞에서 그들은 자기 뿔을 마음대로 높이 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호와야훼가 잔을 쥐고 계십니다. 누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지가 달라졌습니다.

둘째, 심판은 끝까지 이루어집니다. 「찌꺼기까지 남김없이」라는 표현은 심판을 조금만 경험하거나 일부를 피해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을 강조합니다.

심판의 잔은 단순히 이스라엘 밖에 있는 적들만을 위한 이미지가 아닙니다. 이사야 51:17–23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예루살렘도 여호와야훼의 진노의 잔을 마신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므로 시편 75편에서 「땅의 모든 악인」에게 주어진 잔을 읽으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심판의 기준에서 자동으로 제외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시편이 말하는 것은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본래 우월하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악인을 공정하게 판단하신다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앞의 8절과 9절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낮추시고 높이시는지는 그분의 공정한 심판과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막연한 권위의 선언으로 끝나지 않고 악인들에게 실제로 미칩니다.

자기 힘으로 높아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결국 여호와야훼의 손에 들린 잔 앞에서는 자신의 운명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엄중한 심판의 이미지 뒤에 시인은 다시 노래를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고대의 포도주는 물을 섞어 마시거나 다른 재료를 더해 마시기도 했습니다. 본문의 포도주는 거품을 일으키며 무언가가 섞여 있는 술로 묘사됩니다. 「향료가 가득 섞여」라는 표현은 이 혼합된 포도주의 모습을 풀어 옮긴 것입니다. 성경에서 잔이 심판을 나타내는 장면은 다른 곳에도 있습니다. 예레미야 25:15–29에서는 여러 민족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이사야 51:17–23에서는 하나님이 그 잔을 거두어 예루살렘을 괴롭힌 자들의 손에 넘겨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에 남는 노래와 뿔

시편 75:10–11 본문 →

그러나 나는 영원히 알리겠다. 야곱의 하나님께 찬양 노래를 부르겠다.시편 75:10 · 본디새김

「그러나 나는」이라는 말이 마지막 부분을 엽니다.

시인이 찬양하는 분은 추상적인 정의의 원리가 아닙니다.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이 이름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조상 때부터 관계를 맺어 온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분은 세상의 심판자이시면서 동시에 자신의 백성과 관계를 맺으시고 그들을 인도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구절은 조금 뜻밖입니다.

나는 악인들의 뿔을 모두 잘라 버리겠다. 의인의 뿔들은 높이 들릴 것이다.시편 75:11 · 본디새김

앞서 반복되던 뿔의 이미지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뿔을 높이 들지 말라는 경고가 아니라, 악인의 뿔을 잘라 버리겠다는 선언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화자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해석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으로 읽으면, 마지막 구절은 3–4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 마침내 완성되는 장면이 됩니다. 악인의 뿔을 잘라 버리시는 주체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반면 10절의 시인이 계속 말한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시인은 하나님이 세우실 정의의 질서를 선포하거나, 왕 또는 공동체의 대표자로서 악인의 힘을 꺾겠다는 결의를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그 화자가 왕이라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마지막 구절에서 화자가 바뀐다는 명시적인 표시가 없으므로 어느 한쪽으로 확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이 시편 전체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분명합니다.

처음에 악인들은 자기 뿔을 높이 들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마지막에는 그 뿔들이 잘려 나갑니다. 반대로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립니다.

의인에게는 자신의 뿔을 높이 들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의인의 뿔은 「높이 들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악인은 자기 힘으로 높아지려 하지만, 의인은 하나님이 세우시는 공정한 질서 안에서 높임을 받습니다.

이것은 힘의 완전한 소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힘이 꺾이고 의로운 힘이 세워지는 일입니다.

조금 더 깊이

한나는 자신의 뿔이 여호와야훼 안에서 높아졌다고 고백하고(사무엘상 2:1), 노래 마지막에는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고 기름 부음 받은 이의 뿔을 높이실 것이라고 말합니다(사무엘상 2:10). 시편 75편에서는 높아지는 대상을 「의인」이라고 표현하지만, 뿔을 높이는 일이 하나님의 능력과 판단에 달려 있다는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심판을 찬양하는 노래가 보여 주는 하나님

시편 75:1–11 본문 →

시편 75편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시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운 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감사와 찬양의 이유가 됩니다. 그 까닭은 시편이 심판을 하나님의 성품과 분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심판은 단지 누군가에게 벌을 내리는 사건이 아닙니다. 힘 있는 자가 자기 힘으로 세상의 질서를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입니다.

동시에 이 시편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악인을 향한 무제한의 복수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심판의 때와 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사람은 불의를 불의라고 말할 수 있고, 하나님의 정의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분노를 곧바로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기다림의 의미가 있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불의를 외면하거나 현실에서 손을 놓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힘의 크기가 최종적인 진실은 아니라는 사실을 붙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공정하게 판단하신다는 믿음은, 강한 자 앞에서 무조건 굴복하지 않을 근거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강해졌을 때 교만해지지 않을 근거가 됩니다.

시편 75편의 첫 감사는 바로 이 믿음에서 나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붙들고 계신 분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시편이 끝날 때, 두 종류의 뿔이 우리 앞에 남습니다.

하나는 스스로 높이 들었다가 잘려 나가는 악인의 뿔입니다. 다른 하나는 높이 들리는 의인의 뿔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장면의 뒤에는 여전히 땅의 기둥들을 바로 세우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사람들은 자기 뿔을 높이 들려고 하지만, 세상을 떠받치는 기둥은 사람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시편 75편은 그 사실을 알기에, 심판을 기다리는 자리에서도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