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풀어 읽기 · 93편

이 장의 자리 · 90–106편 · 넷째 권

강물 위의 흔들리지 않는 왕좌

시편 93편에는 두 가지 움직임이 있습니다.

하나는 굳게 서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굳게 서 있고, 하나님의 왕좌가 예로부터 굳게 서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솟구치는 것입니다. 강물들이 높아지고, 소리를 높이며, 마침내 거대한 바다의 파도가 위엄차게 밀려옵니다.

굳게 서 있는 것과 솟구치는 것이 마주합니다.

그런데 시인은 파도가 잦아들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강물들이 더 이상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모든 물소리보다 높은 곳에 계신 여호와야훼가 더 위엄차시다고 선언합니다.

시편 93편에서 하나님의 왕권은 소란이 모두 사라진 다음에야 확인되는 것이 아닙니다. 강물들이 여전히 소리를 높이는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통치입니다.

이 시에는 왕의 즉위식도, 전쟁의 승리도,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단 다섯 절을 통해 하나님의 왕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먼저 여호와야훼가 왕으로 다스리신다고 선언하고(1절), 그 왕좌가 영원하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2절). 이어 강물과 바다의 위협적인 소리가 등장하고(3–4절),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증언들과 거룩한 집으로 시선이 옮겨집니다(5절).

시인은 하나님의 능력이 바다보다 크다고 말한 뒤, 그 능력을 다시 과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고 그분의 집에는 거룩함이 어울린다고 선언합니다.

읽는 시간 17분소단락 693편 본문 읽기 →

왕이신 여호와야훼는 무엇을 입으시는가

시편 93:1 본문 →

여호와야훼가 왕으로 다스린다. 위엄을 입었다. 여호와야훼가 힘을 입고 허리를 동여맸다. 참으로 세상은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시편 93:1 · 본디새김

시편은 아무런 설명 없이 왕권을 선포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여호와야훼 말라크(⁨מָלַךְ⁩)입니다. 이 표현은 「여호와야훼가 왕이 되셨다」 또는 「여호와야훼가 왕으로 다스리신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사의 형태만으로 즉위의 한순간을 가리키는지, 확립된 왕권을 선언하는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절에서 하나님의 왕좌가 예로부터 굳게 서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이 시를 하나님께서 비로소 왕의 자리에 오르신 사건을 설명하는 노래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이미 확립된 하나님의 왕권입니다.

이어서 시인은 왕의 차림새를 묘사합니다. 왕은 위엄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힘을 입으시고 허리를 동여매셨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왕의 옷은 그의 지위와 권위를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특별한 의복이나 장식은 일반 사람과 구별되는 왕의 존귀함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편은 하나님의 옷이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금이나 보석, 화려한 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입으시는 것은 위엄과 힘입니다.

이것은 그분의 왕권이 외적인 장식이나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위엄은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나타내고, 힘은 그분이 어떤 일을 하실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고대의 긴 옷은 활동하기에 불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을 하거나 싸울 때 허리띠로 옷을 단단히 묶었습니다. 따라서 허리를 동여맨다는 표현은 행동할 준비를 갖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은 여호와야훼를 왕좌에 앉아 장식적인 위엄만 드러내는 분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힘을 갖추시고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그런데 이 힘이 무엇을 이루는지는 곧바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드러납니다. 왕의 힘이 세상을 굳게 서 있게 합니다.

고대 왕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대표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다른 나라를 정복하거나 적을 무너뜨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편 93편은 하나님의 힘을 가장 먼저 세상을 안정되게 세우시는 능력으로 소개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힘을 입으셨기 때문에 세상이 굳게 서 있습니다.

그분의 왕권은 무언가를 무너뜨리는 힘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세계를 붙들고 질서를 유지하는 힘입니다.

여기서 「세상」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세상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땅이 물리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거나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자연과학적 진술이 아닙니다. 시인은 창조세계가 무질서하게 무너져 버리지 않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굳게 서 있다는 사실을 찬양합니다.

시편 96:10에도 거의 같은 선언이 등장합니다. 「여호와야훼가 왕으로 다스리신다」는 선언과 세상이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는 표현이 함께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왕이시라는 사실은 단순히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지고 계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의 통치 때문에 세계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조금 뒤에는 강물들이 거세게 소리를 높입니다. 그 소리가 등장하기 전에 시인은 먼저 하나님의 왕좌가 어디에 서 있는지 보여 줍니다.

세상보다 오래된 왕좌

시편 93:2 본문 →

당신의 왕좌는 예로부터 굳게 서 있고, 당신은 영원 전부터 계십니다.시편 93:2 · 본디새김

1절에서는 「여호와야훼가 왕으로 다스린다」고 하나님에 관하여 말했습니다. 그런데 2절에서는 하나님을 직접 부릅니다. 시인은 왕권에 관한 선언을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으로 바꿉니다.

이 인칭의 변화는 짧은 시에 생동감을 줍니다. 독자는 하나님에 관한 설명을 듣다가, 하나님께 직접 아뢰는 기도에 참여하게 됩니다.

2절에는 두 가지 영속성이 함께 나타납니다. 왕좌가 예로부터 굳게 서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1절에서는 세상이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의 왕좌가 「굳게 서」 있습니다. 두 표현에는 같은 히브리어 어근이 사용됩니다. 굳게 세우다, 안정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세상이 굳게 서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그보다 근본적인 하나님의 왕좌가 굳게 서 있다는 사실로 시선을 옮깁니다.

세상은 안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좌는 예로부터 안정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사는 세계의 안정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에 근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왕좌가 오래되었다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래된 왕좌라도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곧바로 「당신은 영원 전부터 계십니다」라고 덧붙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단지 오래된 제도나 왕조가 아닙니다.

그 왕좌에 계신 분 자신이 영원하십니다.

인간의 왕권은 왕에게서 시작되어 왕의 죽음과 함께 끝나거나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왕조가 오랫동안 지속되더라도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의 왕권은 그런 방식으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인간의 시간보다 앞서며, 그분의 통치도 인간 역사의 변화에 종속되지 않습니다.

시편 90:2에서 모세의 기도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당신은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93편은 그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신다고 선언합니다. 인간의 생애는 짧지만, 그 생애가 속한 세계를 다스리시는 분은 영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영원한 왕권을 가지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계에는 아무런 혼란도 없을까요?

3절은 그 기대를 깨뜨립니다. 갑자기 시끄러운 강물들이 등장합니다.

강물들이 세 번 소리를 높이다

시편 93:3 본문 →

강물들이 높였습니다, 여호와야훼. 강물들이 자기 소리를 높였습니다. 강물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높입니다.시편 93:3 · 본디새김

앞에서는 세상과 왕좌가 굳게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강물들이 솟구칩니다.

같은 표현이 세 번 반복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세 동사가 모두 들어 올리다라는 동사에서 나온 형태입니다.

첫 번째 표현에는 무엇을 높였는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문장은 읽는 사람에게 잠시 빈자리를 남깁니다. 바로 다음 행에서 소리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소리가 부딪치는 물의 격렬한 움직임으로 확대됩니다.

처음에는 강물이 높아집니다.

그다음에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지막에는 거세게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마치 멀리서 들리던 물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커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왜 강물이 이토록 중요한 것일까요?

고대 근동의 문학에서 거센 물과 바다는 종종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힘이나 질서를 위협하는 세력을 상징했습니다. 시편 46:3–4에서는 땅이 변하고 산들이 바다 가운데로 빠지며 물이 소용돌이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사야 17:12–13에서는 많은 민족들이 소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바다와 큰물의 소리에 비유합니다.

따라서 시편 93편의 강물도 단순한 자연현상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세상을 위협하는 거대한 세력이나 무질서의 힘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을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에는 강물들이 특정한 나라나 군대를 가리킨다는 설명이 없습니다. 또한 강물들이 실제로 하나님께 반역을 일으켰다고 명시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물들을 곧바로 어느 역사적 제국이나 특정한 악의 세력과 동일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이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강물들의 거대한 힘과 소란입니다.

물이 불어나면 평소에 안전해 보이던 땅이 잠길 수 있고, 견고해 보이던 구조물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강물은 인간이 세워 놓은 질서가 얼마나 쉽게 위협받을 수 있는지 보여 주는 강력한 이미지입니다.

강물들이 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하나님의 왕좌가 흔들렸다는 말은 없습니다.

물이 거세게 솟구친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통치하지 않으신다는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시인은 그 소란을 바라보며 다음 절에서 하나님의 위엄을 선포합니다.

조금 더 깊이

앞의 두 동사는 완료형이고 마지막 동사는 미완료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 차이를 단순히 과거에 두 번 일어난 일과 지금 일어나는 일을 구별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히브리어 시에서는 동사의 형태가 장면의 움직임과 표현의 생동감을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부딪치는 소리」로 옮긴 다크얌은 의미를 확정하기 어려운 낱말입니다. 물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나 물결의 충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정확히 어떤 현상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휘상의 불확실성이 전체 장면을 흐리게 하지는 않습니다.

강물은 높아지지만, 여호와야훼는 높은 곳에 계신다

시편 93:4 본문 →

많은 물의 소리보다, 위엄찬 바다의 파도보다, 높은 곳에 있는 여호와야훼가 더 위엄차다.시편 93:4 · 본디새김

바다의 파도를 묘사하는 「위엄찬」(⁨אַדִּיר⁩)과 여호와야훼를 묘사하는 「위엄차다」에는 같은 히브리어 형용사가 사용됩니다. 이 낱말은 강력하고 장엄하며 위엄 있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파도에도 위엄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야훼께서는 그보다 더 위엄차십니다.

시인은 바다의 힘을 하찮게 여기지 않습니다. 파도는 실제로 강합니다. 그 소리는 압도적일 수 있고, 그 힘은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바다의 힘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또 하나 놓치기 쉬운 대조가 있습니다. 3절에서 강물들은 자기 소리를 「높였습니다」. 4절에서 여호와야훼는 「높은 곳에」 계십니다.

강물은 높아지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높은 곳에 계십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강물을 제압하기 위해 새롭게 높은 곳으로 올라가셨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본래 높은 곳에 계십니다. 따라서 물이 아무리 크게 움직여도 하나님의 왕권은 그 소란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시편 93편에는 하나님께서 바다와 싸우시는 장면이 묘사되지 않습니다. 바다 괴물을 죽이거나 파도를 부수는 사건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강물의 소리를 들려준 다음, 곧바로 하나님의 더 큰 위엄을 선언합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이미 밝혀졌습니다. 하나님의 왕좌는 예로부터 굳게 서 있고,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계십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의 통치를 증명하기 위해 새로운 승리의 사건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왕권은 강물의 소란에 대응하여 비로소 얻어지는 권력이 아니라, 강물이 솟구치기 전부터 확립되어 있는 통치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으면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다보다 강하시다는 사실은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어떤 왕이십니까? 가장 큰 힘을 지니셨다는 사실만으로 그분의 통치가 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시인은 마지막 절에서 이 질문에 대답하는 듯합니다. 바다의 소리에서 하나님의 증언들과 그분의 집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29:3–4에서는 여호와야훼의 목소리가 물 위에 있으며, 그 목소리가 힘 있고 위엄차다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29:10에서는 여호와야훼께서 홍수 위에 왕으로 앉으셨으며 영원히 왕으로 앉아 계신다고 선언합니다. 시편 29편에서는 하나님의 목소리가 자연의 거대한 소리 가운데서 울립니다. 시편 93편에서는 강물들이 소리를 높이지만, 그보다 더 위엄차신 여호와야훼가 높은 곳에 계십니다. 두 시는 물의 압도적인 힘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시편 93편에는 하나님께서 바다와 싸우시는 장면이 없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바다의 소리에서 하나님의 증언들로

시편 93:5 본문 →

당신의 증언들은 매우 확실합니다. 여호와야훼, 당신의 집에는 거룩함이 길이길이 어울립니다.시편 93:5 · 본디새김

이 마지막 절은 언뜻 앞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까지는 왕권과 위엄, 강물과 바다의 파도를 노래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의 증언들과 그분의 집에 관한 선언이 나옵니다.

바다의 소리는 크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증언은 그분이 알려 주신 말씀이나 언약의 요구, 가르침과 관련될 수 있습니다. 시편 19:8에서는 여호와야훼의 증언이 확실하여 우둔한 사람을 지혜롭게 한다고 노래합니다.

여기서 「확실합니다」(⁨אָמַן⁩)는 믿을 만하고 신실하다는 뜻을 가진 어근에서 나왔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증언들이 확실하다는 말은 단순히 정보가 정확하다는 뜻을 넘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신뢰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습니다.

강물들은 자기 소리를 높였습니다. 그 소리는 크고 위협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리가 크다는 사실이 그 소리의 권위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증언은 믿을 만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강물보다 더 큰 소리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의 확실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단순히 다른 모든 힘보다 더 강한 힘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신뢰할 수 있다는 사실로도 나타납니다.

1절에서는 세상이 굳게 서 있었습니다. 2절에서는 왕좌가 굳게 서 있었습니다. 5절에서는 하나님의 증언들이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안정에서 왕좌의 안정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거룩함이 어울린다

여기서 「집」은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가 이루어지는 성전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이 시의 표현만으로 성전의 어느 건물을 가리키는지, 또는 특정한 역사적 예식에서 불렸는지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집에 어떤 건축물이 놓여 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 집에 무엇이 어울리는지를 말합니다. 거룩함입니다.

「어울립니다」(⁨נָאָה⁩)로 옮긴 히브리어 낱말은 어떤 대상에 알맞고 적절하며 아름답게 어울린다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시인은 「거룩함을 지켜라」라고 명령하지 않습니다. 거룩함이 하나님의 집에 어울린다고 선언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집의 마땅한 성격이라는 뜻입니다.

거룩함은 구약에서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된 성격과 깊이 연결됩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임재에 속한 공간도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엄은 단순한 압도적인 힘이 아닙니다. 그분의 통치에는 신뢰할 수 있는 말씀과 거룩함이 있습니다. 이것을 놓치면 시편 93편을 힘센 왕에 관한 노래로만 읽게 됩니다.

시편 97:2에서는 의로움과 공정한 판결이 하나님의 왕좌의 기초라고 노래합니다. 시편 99편에서도 왕이신 여호와야훼는 정의를 사랑하시며 공정함을 세우시는 분으로 묘사됩니다(시편 99:4). 시편 93편은 직접적으로 그 모든 내용을 설명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확실한 증언들과 거룩함을 마지막에 놓음으로써 왕권의 성격을 보여 줍니다.

왕이 강하다는 것과 그 왕이 믿을 만하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길이길이 어울리는 거룩함

시의 시작에서는 세상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2절에서는 하나님의 왕좌가 예로부터 굳게 서 있고,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에서는 하나님의 집에 거룩함이 길이길이 어울린다고 합니다.

시의 처음과 끝이 영속성의 언어로 감싸여 있습니다.

인간의 왕조는 시대에 따라 성격이 바뀔 수 있습니다. 한 왕이 정의롭게 다스리다가도 후계자가 불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의 왕권에서 그러한 변화를 상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세월이 흐른다고 그 성격이 달라지는 통치가 아닙니다.

세상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고난이 없다는 뜻인가

시인은 세상이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는 실제로 혼란과 불의, 전쟁과 재난이 존재합니다.

시편 자체가 그 질문을 이해할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시인이 세상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 직후에, 강물들이 거세게 소리를 높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굳게 서 있다는 선언이 물의 격렬한 움직임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상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은 모든 사건이 평온하게 진행된다는 보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혼란과 위협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신다고 믿는 사람에게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그러한 현상만으로 하나님의 왕권이 사라졌다고 결론 내리지 않습니다. 강물들의 소리가 크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왕좌가 흔들린다는 사실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이시라는 고백은 세상의 문제를 보지 않게 만드는 믿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문제들을 하나님의 통치와 판단 앞에서 바라보게 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왕권을 고백하면서 불의한 수단으로 자기 힘을 과시하는 것은 그 왕권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그 말씀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것도 이 시가 보여 주는 믿음과 거리가 있습니다. 그분의 통치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힘의 크기보다 신실함과 올바름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그 고백에 어울립니다.

조금 더 깊이

시편 93편의 바로 다음 장인 시편 94편에서는 불의한 자들이 악행을 일삼는 현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신다는 선언 다음에 불의에 대한 탄식이 이어집니다. 시편의 배열 자체가 하나님의 왕권을 믿는 신앙과 현실의 불의를 직면하는 일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왕좌에서 시작하여 거룩한 집에서 끝나는 노래

시편 93:1–5 본문 →

왕좌와 바다와 하나님의 집. 왕좌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바다는 그분이 다스리시는 세계에 얼마나 거대한 힘들이 존재하는지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집은 그 왕의 임재에 무엇이 어울리는지 보여 줍니다. 이렇게 읽으면 시편의 마지막 절은 갑작스러운 주제 변경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왕권에 대한 찬양을 완성하는 결론입니다.

시편 93편이 노래하는 하나님은 단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왕이 아니라, 그분이 하신 말씀을 신뢰할 수 있고 그분의 임재가 거룩한 왕이십니다.

시의 마지막에 이르면 강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습니다. 파도가 멈추었다는 말도 없습니다. 물의 소리가 사라졌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시인은 그 장면을 해결하지 않은 채 하나님의 집을 바라봅니다.

강물들은 자기 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아무리 커져도, 예로부터 굳게 서 있는 왕좌를 흔들 수는 없습니다.

소리를 높이는 강물들과,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왕좌.

그리고 그 왕좌에 계신 분의 집에는, 길이길이 거룩함이 어울립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