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빗기 풀어 읽기 · 10장
이 장의 자리 · 7–10장 · 사라와의 혼인
기쁨의 집과 기다림의 집
토비야가 사라와 혼인한 뒤, 엑바타나의 라구엘 집에서는 열나흘 동안 잔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 니느웨의 토빗 집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집니다.
독자는 두 가정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토비야는 살아 있고, 사라와 혼인했으며, 아버지의 은전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한 사람에게 기쁨이 되는 시간이, 그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슬픔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앞 장에서 토비야는 아버지가 날수를 세고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9:3). 10장은 그 걱정이 사실이었음을 보여 주면서 시작합니다. 이제 이야기는 토비야의 예상에서 부모의 실제 모습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그 날수가 다 찼는데도」 — 기다리는 사람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이야기는 토빗의 계산으로 시작합니다.
토빗은 날마다 아들이 가는 데 며칠이 걸리고 돌아오는 데 며칠이 걸릴지 날수를 헤아렸다. 그 날수가 다 찼는데도 그의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토빗기 10:1 · 본디새김
문제는 토빗의 계산이 틀렸다는 사실보다, 그 계산에 들어 있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데 있습니다.
토비야는 여행 도중 사라를 만나 혼인했습니다. 라구엘은 열나흘 동안 혼인 잔치를 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또 토비야가 직접 라게스로 가지 않고 라파엘을 보내 은전을 찾아오게 했습니다.
토빗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릅니다. 따라서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생각할 때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혹시 그곳에 붙들려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가바엘이 죽어서 아무도 그 아이에게 은전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닐까?」토빗기 10:2 · 본디새김
그는 여행의 목적과 관련된 어려움부터 떠올립니다. 출발 전에 자신이 맡겼던 은전을 되찾는 일이 이 여행의 중요한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가바엘은 죽지 않았습니다. 은전도 돌려주었습니다. 토비야가 늦는 이유는 돈을 되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혼인 잔치에 머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아들의 소식을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들의 여행을 맡긴 뒤, 정해진 기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습니다.
토빗이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여행에 필요한 날짜이지, 그 날짜들 속에 담긴 사건들이 아닙니다.
본문은 곧바로 그가 슬퍼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10:3).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떠올려 보았지만, 어느 것도 아들의 안전을 확인해 주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토빗이 가능성을 하나씩 따지는 동안, 안나는 훨씬 더 절망적인 결론에 도달합니다.
「내 눈의 빛인 너를 떠나보냈으니」 — 보이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안나는 남편과 달리 아들의 죽음을 확신하듯 말합니다.
그의 아내 안나가 말했다. 「내 아이가 죽었소. 이제 살아 있는 이들 가운데 없소.」 그녀는 아들 때문에 울며 통곡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말했다.토빗기 10:4 · 본디새김
독자는 그녀의 판단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나에게는 그것을 바로잡아 줄 소식이 없습니다. 그녀는 남편처럼 여러 가능성을 따져 보지 않습니다.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고 가장 두려운 결말을 떠올립니다.
「아, 슬프구나, 얘야. 내 눈의 빛인 너를 떠나보냈으니.」토빗기 10:5 · 본디새김
사랑하는 자녀를 자신의 눈의 빛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토비야의 아버지 토빗은 실제로 눈이 멀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안나는 이제 아들을 「내 눈의 빛」이라고 부릅니다.
토빗은 시력을 잃었고, 안나는 아들을 잃었다고 생각합니다.
안나는 남편이나 동행자를 탓하기보다, 아들을 보내기로 했던 순간을 다시 떠올립니다. 이것은 앞서 토비야가 여행을 떠날 때의 장면과 연결됩니다. 안나는 그때도 아들의 안전을 걱정했습니다(5:18-23). 이제 그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고 믿으면서, 그녀는 떠나보낸 일 자체를 후회합니다.
같은 불안을 서로 다르게 표현하는 부부
토빗은 아내를 위로하려 합니다.
토빗은 그녀에게 말했다. 「조용히 하시오. 걱정하지 마시오, 자매여. 그 아이는 건강하오. 그들에게 그곳에서 크게 신경 쓸 일이 생긴 것이오. 그 아이와 함께 간 사람은 믿을 만한 사람이며 우리 형제들 가운데 하나요. 그 아이 때문에 슬퍼하지 마시오, 자매여. 곧 돌아올 것이오.」토빗기 10:6 · 본디새김
독자의 관점에서는 토빗의 말이 사실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토비야는 살아 있고 건강합니다. 그러나 토빗도 그것을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그 역시 자신의 믿음과 추측에 근거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토빗은 동행자의 실제 정체를 모르면서도 그를 신뢰합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독자가 알고 있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하나님께서 라파엘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3:17).
하지만 본문은 토빗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받아 아들의 안전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을 근거로 아내를 위로합니다.
반면 안나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내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 나를 속이지 마시오. 내 아이는 죽었소.」 그녀의 말은 남편의 위로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보여 줍니다. 토빗의 설명이 논리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아들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설명보다, 살아 있는 아들을 다시 보는 일입니다.
길을 바라보는 어머니
그녀는 날마다 밖으로 나갑니다. 아들이 떠났던 길을 바라봅니다.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밤새 울며 잠들지 못합니다.
낮에는 아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눈앞에 열려 있지만, 밤이 되면 또 하루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녀가 날마다 같은 길을 확인하면서도 아무런 소식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토빗은 날짜를 계산합니다. 안나는 길을 바라봅니다.
토빗은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생각합니다. 안나는 아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어 합니다.
토빗은 믿음이 좋아서 안심하고, 안나는 믿음이 부족해서 우는 사람으로 단순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토빗도 슬퍼하고 있으며, 안나도 자신이 아는 현실 안에서 반응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보여 주는 것은 같은 불확실성 앞에서 서로 다르게 흔들리는 두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기다림의 한가운데서 이야기는 갑자기 엑바타나로 돌아갑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 기쁨을 마치고 돌아갈 때를 알다
10장 7절은 길게 이어지다가 중간에서 장소가 바뀝니다.
그녀가 그에게 말했다. 「내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 나를 속이지 마시오. 내 아이는 죽었소.」 그녀는 날마다 뛰어나가 아들이 떠나간 길을 둘러보았고, 누구의 말에도 설득되지 않았다. 해가 지면 안으로 들어와 밤새 통곡하며 울었고 잠을 자지 못했다. 라구엘이 자기 딸을 위해 열겠다고 맹세한 열나흘의 혼인 잔치가 끝나자, 토비야는 그에게 가서 말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저를 다시 보리라고 믿지 않고 계신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저를 보내 주셔서 제 아버지께 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아버지를 어떤 형편에 두고 왔는지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토빗기 10:7 · 본디새김
안나에게 열나흘은 아들을 기다리며 불안해한 시간입니다. 라구엘의 가족에게 열나흘은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난 혼인을 축하하는 시간입니다.
두 가정의 서로 다른 시간이 이제 다시 하나로 이어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토비야가 니느웨의 상황을 직접 보고 들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부모의 성품과 떠날 때의 상황을 기억하며 그들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그는 부모에게서 새로운 소식을 받았기 때문에 귀향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걱정할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귀향을 요청합니다.
한 문장 안에 두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토비야는 라구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니느웨에 있는 토빗을 「제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토비야는 이제 두 가정에 속한 사람입니다. 혼인으로 라구엘의 아들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길러 준 토빗의 아들이기를 그만둔 것은 아닙니다.
혼인은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주지만, 기존의 가족을 지워 버리지는 않습니다.
라구엘은 왜 다시 머물라고 할까?
라구엘이 토비야에게 말했다. 「머물러라, 얘야. 나와 함께 머물러라. 내가 네 아버지 토빗에게 심부름꾼들을 보내겠다. 그들이 네 소식을 전할 것이다.」토빗기 10:8 · 본디새김
그는 일곱 번이나 딸의 혼인이 죽음으로 끝나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이제 처음으로 딸과 사위가 함께 살아 있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시간을 조금 더 오래 나누고 싶었을 수 있습니다.
토비야가 그에게 말했다. 「안 됩니다. 부탁드립니다. 저를 여기서 제 아버지께 보내 주십시오.」토빗기 10:9 · 본디새김
토비야에게는 소식을 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안나는 누구의 말에도 설득되지 않습니다. 그녀는 날마다 아들이 떠난 길로 뛰어나가 돌아오는 모습을 찾고 있습니다. 물론 토비야는 어머니가 매일 길을 바라본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신을 다시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은 분명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불안을 덜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다시 얼굴을 마주하는 일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토비야가 돌아가려는 것은 자신의 안전을 증명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을 기다리는 부모와 다시 함께 있기 위해서입니다.
출애굽기 20:12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토빗기 10장은 부모 공경이 단순히 부모가 원하는 모든 일을 그대로 따르는 것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가족을 이룬 사람이 부모를 공경하면서도 자신의 삶과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와 자기의 모든 재산의 절반」 — 떠나보내는 일이 가족을 이루다
토비야의 뜻이 확고하다는 사실을 알자 라구엘은 더 이상 붙잡지 않습니다.
라구엘은 일어나 토비야에게 그의 아내 사라와 자기의 모든 재산의 절반, 곧 남종들과 여종들, 소들과 양들, 나귀들과 낙타들, 옷과 은전과 세간을 넘겨주었다.토빗기 10:10 · 본디새김
가축뿐 아니라 의복과 은전, 집안의 여러 물건이 포함됩니다. 남종과 여종도 재산 목록에 들어가 있는데, 이는 고대 사회에서 종들이 가구의 경제적 자산에 속하는 것으로 취급되던 현실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제도를 오늘날의 윤리적 관점에서 정당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라구엘은 이미 혼인 첫날밤의 위험이 지나간 뒤 자신이 가진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8:21). 이제 그 약속이 실제로 이행됩니다. 그는 두 사람이 다른 곳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재산을 나누어 줍니다.
그는 그들을 건강히 떠나보내며 토비야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건강하여라, 얘야. 건강히 가거라. 하늘의 주께서 너희와 네 아내 사라의 길을 순조롭게 해 주시기를 빈다. 내가 죽기 전에 너희의 자녀들을 보기를 빈다.」토빗기 10:11 · 본디새김
그가 반복하는 말은 「건강」입니다. 토비야가 혼인 첫날밤에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라구엘에게 이 말은 특별한 무게를 지닙니다. 그는 이제 사위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사위와 딸이 건강하게 여행을 계속하고, 앞으로 자녀를 얻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 죽음은 이전과 다른 자리에 놓입니다.
앞서 라구엘의 집에서 죽음은 젊은 신랑들의 생명을 갑작스럽게 끊어 놓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그가 바라는 것은 자신이 자연스러운 삶의 끝에 이르기 전에 다음 세대를 보는 것입니다.
「저와 이 여자가 자비를 받고 함께 늙어 가도록 명해 주십시오.」 (8:7)
토비야는 사라와 함께 늙어 가기를 구했습니다. 이제 라구엘은 그들이 자녀를 얻고 자신이 그 모습을 볼 수 있기를 빕니다. 두 기도 모두 혼인이 첫날밤에 끝나지 않고 오랜 세월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이제 라구엘은 사위에게서 시선을 돌려 딸에게 말합니다.
「그분들이 너를 낳은 이들처럼 네 부모이기 때문이다」 — 부모를 떠나되 부모를 잃지 않다
라구엘이 사라에게 하는 말은 이 장의 가족관을 보여 주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는 자기 딸 사라에게 말했다. 「네 시아버지에게 가거라. 이제 그분들이 너를 낳은 이들처럼 네 부모이기 때문이다. 평안히 가거라, 딸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네 좋은 소식을 듣기를 빈다.」 그는 작별 인사를 하고 그들을 보냈다. 아드나가 토비야에게 말했다. 「얘야, 사랑하는 형제야. 주께서 너를 되돌아가게 해 주시기를 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가 죽기 전에 너와 내 딸 사라의 자녀들을 보기를 빈다. 주 앞에서 내 딸을 네게 맡겨 두니, 네가 살아 있는 모든 날 동안 그 아이를 슬프게 하지 마라. 얘야, 평안히 가거라. 이제 나는 네 어머니이고 사라는 네 자매다.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날 동안 우리 모두 함께 형통하기를 빈다.」 그녀는 두 사람에게 입을 맞추고 건강히 떠나보냈다.토빗기 10:12 · 본디새김
「너를 낳은 이들처럼」이라는 표현에는 출생으로 형성된 가족과 혼인으로 형성된 가족을 연결하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라구엘은 사라가 새로운 가정에서 낯선 방문객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랍니다.
사라에게 앞으로의 혼인은 남편과 함께 사는 것뿐 아니라, 눈먼 시아버지와 아들을 기다리다 지친 시어머니를 새로운 가족으로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라구엘은 딸을 새로운 부모에게 보냅니다. 반면 니느웨의 부모는 아들이 아내를 맞아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사라는 이제 길을 떠나지만, 니느웨에서 누군가를 만나야 합니다.
「좋은 소식」을 듣고 싶은 아버지
라구엘은 딸에게서 「좋은 소식」을 듣기를 바랍니다.
그는 딸이 떠난 다음 관계가 끊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직접 함께 살지 않더라도 딸의 소식을 계속 듣고 싶어 합니다.
라구엘은 앞으로 좋은 소식을 듣기를 바라고, 토빗과 안나는 지금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야기의 양쪽에서 소식을 기다리는 부모들의 마음이 서로 겹칩니다.
「내 딸을 네게 맡겨 두니」 — 어머니가 사위에게 남기는 가장 중요한 부탁
아드나는 딸을 떠나보내면서 토비야에게 재산을 잘 관리하거나 가문의 이름을 높이라고 부탁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가장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딸을 슬프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라는 일곱 번의 혼인이 죽음으로 끝나는 일을 경험했습니다. 아드나는 그 고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어머니입니다. 이제 딸이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그동안 겪은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아드나는 토비야가 앞으로 남편으로서 사라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녀는 「주 앞에서」 딸을 맡긴다고 말합니다. 이 관계에 하나님을 증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토비야는 이제 사라에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 됩니다.
아버지의 당부가 새로운 가정에서 다시 들리다
아드나의 말은 토빗이 여행을 떠나는 아들에게 했던 당부와도 연결됩니다.
토빗은 4:3에서 아들에게 어머니를 공경하고 돌보며, 어머니를 슬프게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두 당부는 서로 다른 사람을 향하지만,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가까운 관계에 있다는 이유로 그 사람에게 고통을 주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배우자를 소중히 대하는 것은 경쟁하는 의무가 아닙니다.
토비야는 부모를 향한 책임을 가지고 돌아가고 있으며, 이제 아내를 향한 책임도 함께 지고 있습니다. 그가 새로운 가족을 얻었다는 사실은 사랑해야 할 사람이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드나는 토비야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말하고, 사라를 그의 자매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자매」는 이미 혼인한 두 사람의 친족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지, 부부 관계를 취소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 모두 함께」 형통하기를 빕니다. 아드나는 딸과 사위만의 성공을 바라지 않습니다. 자신과 라구엘도 그들과 함께 좋은 삶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더라도 서로에게 속한 가족이라는 사실은 계속된다는 소원입니다.
조금 더 깊이
리브가는 이삭과 혼인하기 위해 자신의 가족을 떠납니다. 가족들은 그녀를 축복하며 떠나보냅니다(창세기 24:59-61). 토빗기에서도 부모가 딸을 떠나보내며 앞으로의 삶을 축복합니다. 창세기 24장에서는 리브가와 그 후손의 미래를 향한 축복이 두드러집니다. 토빗기 10장에서는 새로운 시부모와 맺게 될 관계가 특별히 강조됩니다. 그리스어 아가텐 아코엔(ἀγαθός)은 좋은 소식, 좋은 평판이나 좋은 보고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하나는 딸이 새로운 가정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딸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본문은 어느 한쪽만을 명시하지 않습니다. 토비야의 여행은 아버지가 가바엘에게 맡긴 은전을 되찾는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순간, 아드나는 자기 딸을 토비야에게 맡긴다고 말합니다. 은전은 반환해야 할 재산이고, 사라는 자기 삶과 존엄을 지닌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라를 은전과 같은 소유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같은 계열의 언어가 쓰인다는 사실은 맡기는 사람과 맡는 사람 사이에 신뢰와 책임이 요구된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주가 그의 길을 순조롭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 돌아가는 길의 시작
마지막 절에서 토비야는 라구엘의 집을 떠납니다.
토비야는 건강한 몸으로 기뻐하며 라구엘을 떠났다. 그는 하늘과 땅의 주, 곧 만물의 왕을 찬송했다. 주가 그의 길을 순조롭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네가 그들이 살아 있는 모든 날 동안 그들을 공경하는 일이 잘 이루어지기를 빈다.」토빗기 10:13 · 본디새김
그는 물고기의 공격을 받았고, 사라와의 혼인을 두려워했으며, 장인이 혼인 잔치가 끝나기 전에는 떠나지 못하도록 한 약속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가 거쳐 온 길은 결국 새로운 가정과 회복의 가능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그 길 전체를 돌아보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앞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길을 축복했습니다. 끝에서는 토비야가 자신의 길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따라서 길이 순조로웠다는 그의 찬송은 여행에서 어려움이 없었다는 평가가 아니라, 여러 사건을 거쳐 결국 자신에게 필요한 길이 열렸다는 고백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제 마지막에는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을 공경하는 일이 언급됩니다. 그렇게 본문은 가족 사이의 관계를 단지 혼인식이나 작별 인사에서 끝나는 일로 남겨 두지 않습니다.
그 관계가 살아 있는 날들 동안 계속되어야 할 책임이라는 사실을 마지막에 남깁니다.
조금 더 깊이
시나이 사본에서는 라구엘이 토비야와 사라의 길을 순조롭게 해 달라고 축복할 때도 이 동사가 사용되고(10:11), 마지막에 토비야가 주께서 자신의 길을 순조롭게 해 주셨다고 찬송할 때도 같은 동사가 등장합니다(10:13). 본문은 마지막 발언의 화자와 청자를 이름으로 명시하지 않습니다. 앞 문장에는 토비야가 주를 찬송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토비야가 상대에게 「그들」을 공경하기를 비는 것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반면 라구엘이 토비야에게 부모를 공경하도록 축복하는 말로 이해하는 읽기도 가능합니다. 다른 그리스어 전승에는 토비야가 라구엘과 아드나를 축복했다는 서술로 마무리되는 형태도 있습니다. 시나이 사본의 대명사만으로는 어느 쪽이 정확한지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본디새김 번역처럼 화자를 임의로 확정하지 않는 것은 타당합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처음에는 며칠이나 늦어졌는지가 중요했지만, 끝에 이르면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해집니다. 이처럼 토빗기 10장은 여행의 시간을 가족의 삶이라는 더 긴 시간 안에 놓습니다.
다만 여기서 일반적인 삶의 모든 기다림이 반드시 원하는 결과로 끝난다고 약속해서는 안 됩니다. 토빗기의 독자가 토비야의 안전을 아는 것은 이야기 자체가 그 사실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누군가의 안전이나 앞으로의 결과를 이 이야기만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니느웨에서는 아직 한 어머니가 아들이 떠난 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엑바타나에서는 그 아들이 아내와 함께 집을 떠나 부모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서로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은 같은 길의 양끝에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