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빗기 풀어 읽기 · 9장
이 장의 자리 · 7–10장 · 사라와의 혼인
은전과 아버지의 선한 이름
토비야는 혼인 첫날밤의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사라와 함께 살아갈 길이 열렸고, 라구엘은 열나흘 동안 머물며 혼인 잔치를 즐기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토비야에게는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맡겨 둔 은전을 찾아야 하고, 무엇보다 니느웨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부모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문제는 두 가지 책임을 동시에 지키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라구엘은 토비야가 잔치가 끝나기 전에 떠나지 않도록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토비야가 오래 머물수록 아버지는 걱정할 것입니다. 토비야는 자신이 하루라도 늦어지면 아버지를 몹시 슬프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결정을 내립니다. 자신은 혼인 잔치에 머물되, 라파엘을 대신 보내 은전을 찾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돈을 찾기 위해 시작된 일이, 한 사람의 의로운 삶이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보여 주는 만남으로 끝납니다.
「아사랴 형제」 — 도움받던 아들이 이제 일을 맡기다
본문은 토비야가 라파엘을 부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사랴 형제, 집안 종 넷과 낙타 두 마리를 데리고 라게스로 가서 가바엘을 찾아가시오. 그에게 증서를 건네주고 그 은전을 돌려받으시오. 그리고 그를 형제와 함께 혼인 잔치로 데려와 주시오.」토빗기 9:2 · 본디새김
토비야가 라파엘을 「아사랴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여전히 그의 실제 정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그가 천사 라파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토비야에게 그는 여행을 함께해 온 믿을 만한 동행자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두 사람의 역할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여행을 시작할 때 토비야는 메대로 가는 길조차 몰랐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동행자를 찾으라고 말했습니다(5:3). 라파엘을 만나고 나서도 여러 차례 그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토비야가 먼저 계획을 세우고 라파엘에게 부탁합니다.
토빗기 3:17에서 하나님께서는 토빗과 사라의 고통을 해결하도록 라파엘을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천사는 은전을 찾아오는 일을 맡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수행하는 일이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평범합니다. 문서를 전달하고, 돈을 받아 오고, 사람을 초대하는 일입니다.
이 장은 하나님의 인도를 극적인 구출의 순간에만 한정하지 않습니다. 이미 시작된 회복이 사람들의 일상과 가족의 책임 속에서 계속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다만 이 사실을 근거로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성공적인 거래나 계획의 성취를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토빗기에서 라파엘의 정체와 파견 목적은 독자에게 이미 밝혀져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여행을 하나님의 인도 안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은전을 찾는 일이 왜 중요했을까?
토빗은 앞서 아들 토비야에게 메대의 라게스에 사는 가바엘에게 은전 열 달란트를 맡겨 두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4:20). 이 돈은 토빗이 현재 가지고 있는 돈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곳에 보관된 재산입니다. 이를 되찾기 위해서는 실제로 라게스까지 가야 하고, 가바엘에게 맡긴 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토빗과 가바엘은 증서를 작성해 두었습니다. 토빗기 5:3에 따르면 두 사람은 각자 서면 증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맡긴 문서는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맡긴 은전을 돌려받기 위한 증빙입니다.
그런데 토비야가 라파엘에게 부탁하는 일에는 단순한 금전 회수 이상의 목적이 있습니다.
가바엘은 돈을 보관하는 사람인 동시에 토빗의 친척이며, 오랫동안 그와 관계를 맺어 온 사람입니다. 토비야는 그를 단순히 거래를 마무리할 상대로 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혼인을 축하하는 자리에 초대할 가족의 일원으로 대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날수를 세고 계실 것이오」 — 두 가정 사이에서 책임을 헤아리다
토비야는 자신이 직접 라게스로 가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형제도 알다시피 아버지께서는 날수를 세고 계실 것이오. 내가 하루라도 늦어지면 아버지를 몹시 슬프게 할 것이오. 또 라구엘이 무엇을 맹세했는지 형제도 알고 있소. 나는 그의 맹세를 어길 수 없소.」토빗기 9:3 · 본디새김
토빗은 앞을 보지 못합니다. 아들이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어디에서 머물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그는 아들이 돌아올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화내실 것이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몹시 슬프게 할 것이오」라고 말합니다. 아버지의 걱정을 어길 수 없는 규칙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슬픔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토비야는 이 여행을 떠나기 전 부모의 걱정을 직접 보았습니다. 아버지는 길을 떠나도록 허락했지만, 어머니 안나는 아들을 잃을까 두려워했습니다(5:17-23). 토비야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그때 자신을 보내던 부모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토비야에게는 또 다른 의무가 있습니다.
라구엘은 토비야에게 열나흘 동안 머물며 혼인 잔치를 즐기라고 맹세했습니다(8:20). 토비야는 그 약속도 존중합니다.
니느웨에 있는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엑바타나에 있는 장인은 새로 맞이한 사위가 머물며 딸과 함께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두 사람 모두 토비야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표현되는 방향은 다릅니다.
토비야는 어느 한쪽을 선택하고 다른 한쪽을 버리지 않습니다.
자신은 라구엘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라파엘을 보내 아버지의 일을 처리하기로 합니다. 그는 두 사람의 요구 사이에서 누구의 사랑이 더 중요한지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 모두를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혼인했다고 해서 자신을 길러 준 부모에 대한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부모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해서 새로 맺은 혼인 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두 관계를 함께 지키려 합니다.
이 점은 창세기 2:24에서 혼인을 부모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는 일로 설명하는 것과도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구절은 새로운 부부 관계의 형성을 말하지만,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책임을 폐기하지는 않습니다(출애굽기 20:12).
다만 9장이 일반적인 가족 윤리의 원칙을 상세하게 가르치려는 본문은 아닙니다. 이야기의 초점은 토비야가 당면한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는가에 있습니다.
토비야는 그 걱정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라파엘은 그 일을 수행하러 떠납니다.
조금 더 깊이
시나이 사본은 아버지가 날수를 센다는 말을 먼저 전하고, 라구엘의 맹세를 뒤에 놓습니다. 3절과 4절의 구분과 배열은 그리스어 전승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다. 이 순서에서 토비야는 먼저 멀리 있는 아버지의 슬픔을 떠올리고, 이어 자신이 지금 머물러야 할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를 두 책임 사이의 우열을 정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의 감정적 중심이 단순히 혼인 잔치를 떠날 수 없다는 불편함이 아니라, 아버지를 슬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봉인이 붙은 자루들 — 오래전에 맡겨 둔 신뢰가 돌아오다
본문은 라파엘이 토비야의 부탁을 수행하는 과정을 매우 간결하게 기록합니다.
라파엘과 집안 종 넷과 낙타 두 마리는 메대의 라게스로 갔고, 그들은 가바엘의 집에서 밤을 지냈다. 라파엘은 가바엘에게 그의 증서를 건네주고, 토빗의 아들 토비야가 아내를 맞았으며 그를 혼인 잔치에 초대한다고 알려 주었다. 가바엘은 일어나 봉인이 붙은 자루들을 라파엘에게 세어 주었고, 그들은 그것들을 한데 모았다.토빗기 9:5 · 본디새김
토빗이 가바엘에게 돈을 맡긴 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토빗은 니느웨에서 살고 있고, 가바엘은 메대의 라게스에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 재산은 반환할 수 있는 상태로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봉인된 자루라는 묘사는 그 보관 상태를 구체적으로 보여 줍니다.
토빗은 이제 직접 라게스로 찾아올 수 없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그가 과거에 맺어 둔 신뢰 관계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토빗이 직접 그 자리에 없어도, 그가 다른 사람과 맺어 놓은 약속은 지켜지고 있습니다.
토빗은 아들에게 의롭게 살고, 진실하게 행동하며,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4:5-19). 그런데 여기서는 반대로 토빗 자신이 다른 사람의 성실함을 통해 도움을 받습니다.
이러한 정직함은 눈에 띄는 기적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서로 떨어져 살면서도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조건입니다.
증서와 봉인, 그리고 사람 사이의 신뢰
증서는 돈을 돌려받을 권리를 확인하는 수단입니다. 그러나 가바엘이 그 권리를 인정하고 실제로 은전을 넘겨주지 않는다면 문서만으로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사람 사이에 신뢰가 있더라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금전을 반환하는 과정에서는 문서와 보관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토빗기의 서술은 이러한 두 요소를 자연스럽게 함께 보여 줍니다.
믿음직한 사람을 신뢰하는 것과, 증서를 남기고 봉인을 사용하는 일은 서로 배척되지 않습니다.
이는 잠언 11:1에서 정직한 거래를 중요하게 여기는 구약의 지혜 전통과도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다만 여기서 본문이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거래 절차 자체가 아닙니다.
이야기는 은전을 돌려받았다고 해서 끝나지 않습니다.
라파엘은 가바엘을 혼인 잔치에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엑바타나로 향합니다.
돈을 맡긴 관계가 이제는 얼굴을 마주하고 기쁨을 나누는 관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선한 사람의 아들아」 — 아버지의 삶이 아들에게서 다시 보이다
라파엘과 가바엘은 일찍 일어나 혼인 잔치로 향합니다.
그들은 함께 새벽에 일어나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 그들은 라구엘의 집에 들어가 상에 기대어 앉아 있는 토비야를 발견했다. 가바엘은 벌떡 일어나 토비야에게 인사하고, 울며 그를 축복하고 그에게 말했다. 「훌륭하고 선한 사람아, 훌륭하고 선하며 의롭고 자선을 베푸는 사람의 아들아. 주께서 너와 네 아내와 네 아버지와 네 아내의 어머니에게 하늘의 복을 주시기를 빈다. 하나님은 찬송받으실 분이다. 내가 토빗을 닮은 내 친척 토비야를 보았기 때문이다.」토빗기 9:6 · 본디새김
가바엘이 처음 보는 토비야는 길에서 고생하거나 돈을 받으러 찾아온 사람이 아닙니다. 혼인 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신랑입니다.
이 장면에서 이야기는 금전 거래에서 가족의 만남으로 완전히 옮겨 갑니다.
토빗은 앞서 자신이 동족에게 자선을 베풀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죽은 사람들을 장사 지냈다고 이야기했습니다(1:16-18). 그런데 이제 다른 사람이 토빗을 기억하면서 똑같은 방향의 평가를 내립니다.
가바엘은 토빗을 실제로 알고 있는 사람이며, 그를 의롭고 자선을 베푸는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그의 삶은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그러한 사람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가바엘은 토비야에 이어 아버지를 이야기한다
가바엘이 토비야에게 건네는 축복의 표현을 자세히 보면, 아들에 대한 칭찬과 아버지에 대한 평가가 함께 놓입니다. 그는 먼저 토비야를 훌륭하고 선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이어 그가 어떤 아버지의 아들인지를 말합니다.
토비야는 아버지가 쌓아 온 평판을 물려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 평판이 아들의 인격을 자동으로 보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토빗기에서 토비야는 자신의 행동으로 아버지의 가르침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책임을 다하려 하고,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며, 사람을 존중합니다. 그러한 행동은 아버지가 남긴 삶의 가르침과 어울립니다.
여기서 잠언 22:1의 말씀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많은 재물보다 좋은 이름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가르침입니다. 토빗기 9장이 이 잠언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두 본문은 재산과 한 사람의 이름이 지닌 가치를 구별한다는 점에서 연결됩니다.
무엇을 보고 하나님을 찬송하는가?
가바엘은 토비야 혼자만을 축복하지 않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 아버지 토빗, 아내의 어머니 에드나까지 축복합니다. 가바엘의 축복은 여러 가족 관계로 확장됩니다. 토비야의 혼인은 한 사람의 기쁨에 머물지 않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을 함께 묶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축복의 마지막 문장에서 가바엘은 다시 토빗을 떠올립니다.
가바엘은 토빗 자신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만난 사람은 토빗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토비야에게서 토빗의 모습을 봅니다.
이 말에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외모나 인상의 유사성이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앞서 라구엘도 토비야를 처음 보았을 때 토빗을 닮았다고 말했습니다(7:2). 그러나 가바엘의 축복은 단지 얼굴이 닮았다는 관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그 얼굴을 보며 토빗의 선함과 의로움과 자선을 기억합니다.
그 만남이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가 됩니다.
가바엘은 은전을 돌려주러 왔지만,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는 은전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에는 작은 번역상의 갈림이 있습니다. 그리스어 본문은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는 행동의 주어를 명시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가바엘이 일어나 인사했다고 읽을 수도 있고, 식탁에 있던 토비야가 일어나 가바엘을 맞았다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읽기는 토비야가 손님을 맞이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여 줍니다. 전자의 읽기는 가바엘이 토비야를 만났을 때 보인 적극적인 반가움을 강조합니다.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이어지는 축복은 가바엘의 말이며, 두 사람의 만남이 기쁨과 눈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길
토빗기 9장은 아직 토비야의 귀향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토비야는 혼인 잔치에 머물러 있으며, 사라와 함께 니느웨로 돌아가야 할 길도 남아 있습니다.
그는 새로 얻은 기쁨 때문에 아버지의 걱정을 잊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다리는 아버지가 마음에 걸린다는 이유로 장인과의 약속을 깨뜨리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돈을 돌려받아야 하는 사람을 단지 거래의 상대자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를 잔치에 초대해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뜻밖의 축복으로 돌아옵니다.
라파엘이 은전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토비야는 잔칫상에 기대어 앉아 있었습니다. 가바엘이 들어왔고,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그러나 가바엘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돈을 되찾은 젊은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토비야의 모습에서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토빗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토비야가 찾아온 것은 아버지의 은전이었지만, 가바엘이 그에게 들려준 것은 아버지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은전은 봉인된 자루에 담겨 돌아왔고, 아버지의 선한 이름은 가바엘의 눈물 어린 축복 속에서 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