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빗기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3–14장 · 감사 노래와 마지막 말

포로의 땅에서 예루살렘을 노래하다

토빗은 니느웨에 살고 있습니다. 그곳은 그의 고향이 아닙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끌려와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포로입니다.

이제 그의 가족은 다시 평안을 되찾았지만, 이스라엘 전체의 형편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백성은 여전히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져 있고, 예루살렘은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토빗은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뜻밖의 말을 합니다.

「나는 내가 포로가 된 땅에서 그분께 감사하고, 그분의 힘과 위엄을 드러낸다.」

그는 포로 생활이 끝났기 때문에 찬송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포로인 채로 찬송합니다.

앞 장에서 라파엘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내고 기록하라고 명령했습니다(12:6–7, 20). 이제 토빗의 찬송은 그 명령에 응답하는 것처럼 이어집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눈이 나았다는 이야기나 아들의 무사 귀환을 길게 노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이스라엘의 흩어짐과 회복, 예루살렘의 미래를 노래합니다.

토빗은 자신이 이미 받은 자비를 찬송하다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자비를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읽는 시간 18분소단락 913장 본문 읽기 →

채찍질하시는 하나님을 왜 찬송하는가

토빗기 13:1–2 본문 →

토빗의 찬송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나라를 높이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가 말했다.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께 찬송을, 그분의 나라에도 찬송을 드린다.」토빗기 13:1 · 본디새김

여기서 ‘영원히 살아 계신’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이 죽지 않으신다는 사실만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곧이어 나올 인간의 고난과 회복을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 아래에 놓습니다.

토빗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의 삶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그가 경험한 고난과 기쁨도 시간 안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그가 찬송하는 하나님은 한 사람의 생애나 한 나라의 흥망에 제한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채찍질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땅 가장 깊은 곳 하데스까지 내려보내시고, 그 큰 멸망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기 때문이다. 그분의 손에서 벗어날 것은 아무것도 없다.」토빗기 13:2 · 본디새김

이 대조는 토빗이 겪었던 고난과 회복에 어울리지만, 단지 자신의 병이 나았다는 사실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만은 아닙니다. 토빗은 여기서 이스라엘의 오래된 신앙 고백을 이어받습니다.

신명기 32:39에서 하나님은 자신이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 하기도 하고 낫게 하기도 한다고 선언하십니다. 사무엘상 2:6에서 한나 역시 여호와야훼께서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로 내려보내기도 하고 올라오게도 하신다고 찬송합니다.

하데스에서 다시 올라온다는 말

구약의 기도와 찬송에서는 죽음에 가까운 절망을 스올에 내려가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시편 30:3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스올에서 끌어올리셨다고 찬송하고, 시편 86:13은 깊은 스올에서 목숨을 건져 주셨다고 말합니다.

토빗기 13:2도 그러한 언어를 공유합니다. 특히 ‘큰 멸망’에서 이끌어 올리신다는 표현은 죽음과 파멸에 가까운 처지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강조합니다. 이 말씀에는 죽음의 영역에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권세가 담겨 있지만, 죽음 이후의 구체적인 회복 방식은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그분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깊은 파멸에 빠진 사람도 그분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내려갈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은 심판의 엄중함과 구원의 가능성을 동시에 말합니다.

토빗은 이 확신을 개인의 삶에서 이스라엘 전체의 역사로 옮겨 갑니다.

하나님은 왜 흩어진 백성에게 찬송하라고 하시는가

토빗기 13:3–5 본문 →

토빗의 노래는 갑자기 청중을 바꿉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민족들 앞에서 그분께 감사하여라. 그분이 너희를 그들 가운데 흩으셨고,」토빗기 13:3 · 본디새김

이스라엘이 여러 나라에 흩어진 것은 이들에게 단순한 해외 이주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긴 결과로 이해되는 포로 생활이었습니다. 토빗 역시 자신의 죄만이 아니라 조상과 민족의 죄를 고백한 바 있습니다(3:3–5).

그런데 토빗은 바로 그 포로의 땅을 하나님을 증언하는 장소로 제시합니다.

「거기서 너희에게 그분의 위엄을 보여 주셨다. 살아 있는 모든 이 앞에서 그분을 높여라. 그분은 우리의 주이시고, 그분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그분은 영원토록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토빗기 13:4 · 본디새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본래 살던 땅에서만 자신의 위엄을 나타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백성이 흩어져 살아가는 곳에서도 자신의 위엄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흩으셨지만, 토빗은 여전히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사야 63:16과 64:8에서도 이스라엘은 버림받은 듯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 호칭은 현재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호소합니다.

「그분은 너희의 불의 때문에 너희를 채찍질하실 것이다. 또 너희가 어느 민족 가운데 흩어지든, 그 모든 민족 가운데서 너희 모두를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토빗기 13:5 · 본디새김

이스라엘의 회복은 예루살렘에 돌아온 사람들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회복의 첫 움직임은 그들이 흩어져 있는 곳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신명기 30:1–5도 같은 소망을 제시합니다. 이스라엘이 먼 나라에 흩어져 있더라도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다시 모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토빗은 여전히 니느웨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는 하나님의 자비는 니느웨에까지 미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고 느끼는 장소도,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부르시는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흩어진 백성은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까?

돌아오면 돌아오시는 하나님

토빗기 13:6–8 본문 →

13:6에는 아름다운 동사의 반복이 나옵니다.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 앞에서 진실을 행하려고 그분께 돌아가면, 그때 그분도 너희에게 돌아오시고, 다시는 너희에게서 얼굴을 결코 숨기지 않으실 것이다. 이제 그분이 너희에게 하신 일들을 보아라. 입을 한껏 열어 그분께 감사하여라. 의로움의 주를 찬송하고, 영원한 왕을 높여라. 죄인들의 민족들아, 나는 내가 포로가 된 땅에서 그분께 감사하고, 그분의 힘과 위엄을 드러낸다. 죄인들아, 돌아와서 그분 앞에서 의를 행하여라. 그분이 너희를 기꺼이 받아들이시고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실지 누가 아느냐?」토빗기 13:6 · 본디새김

이 구절에서 돌아간다는 말은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단지 죄송하다고 말하거나 하나님을 다시 찾는 감정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삶에서 진실을 행하는 일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표현은 신명기 30:2의 ‘마음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말씀과 매우 가깝습니다. 토빗은 포로 생활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회복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다시 나타난다는 것

구약에서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신다는 말은 그분의 도움과 호의를 경험하지 못하는 상황, 또는 죄에 대한 심판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신명기 31:17–18에서는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기면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시편 27:8–9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며 자신에게서 얼굴을 숨기지 말아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러므로 얼굴을 다시 보여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다시 받아들이시고 관계를 회복하신다는 뜻입니다.

토빗은 이미 하나님이 자신의 가족을 돌보셨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와 다시 모이는 일은 여전히 소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그 사이에서 찬송합니다.

「누가 아느냐?」

13:6 뒷부분에서 노래는 포로의 땅을 향한 증언으로 바뀝니다.

앞에서는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도 돌아오실 것이라고 확신에 찬 약속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자비를 베푸실지 누가 아느냐고 말합니다.

요나 3:9에서도 니느웨 왕은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이 뜻을 돌이켜 그들을 멸하지 않으실지 누가 알겠느냐고 말합니다. 요엘 2:14에도 유사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 말들은 회개해도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비관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동시에 회개라는 행동으로 하나님의 결정을 확실히 통제할 수 있다는 주장도 아닙니다.

토빗은 하나님이 자비로우신 분임을 알지만, 그 자비를 인간이 마음대로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오라고 권하면서도 마지막 판단은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권고를 마친 뒤, 토빗의 시선은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조금 더 깊이

시내 사본에는 13:6 후반부터 13:10 앞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으며, 바티칸 사본의 본문을 사용하여 이를 보충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들은 긴 그리스어 본문 전승의 직접적인 증언이 아니라 다른 그리스어 계열에서 전해진 내용입니다.

멀리 있는 예루살렘에게 말을 걸다

토빗기 13:9–10 본문 →

「예루살렘아, 거룩하신 이의 도성아, 그분은 네 자손들의 행위 때문에 너를 채찍질하시고, 다시 의로운 이들의 자손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토빗기 13:9 · 본디새김

토빗은 예루살렘을 하나의 인격처럼 대합니다. 도성에는 자손이 있고, 고난이 있고, 장차 누릴 기쁨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벽과 건물로 이루어진 공간이면서 동시에 그곳에 속한 백성의 삶을 대표합니다.

이사야 54장에서 시온은 버림받았으나 다시 받아들여지는 여인처럼 묘사됩니다. 예레미야애가 1장에서는 예루살렘이 남편을 잃은 여인처럼 울며 고통을 호소합니다. 토빗은 그 전통을 이어받아 예루살렘을 위로하고 미래의 회복을 노래합니다.

도성이 거룩하다고 불리는 이유는 건축물이 특별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죄 때문에 심판을 경험하는 도시일지라도,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소망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주께 정성껏 감사하고, 영원한 왕을 찬송하여라. 네 장막이 너를 위해 기쁨 속에 다시 세워질 것이다. 그분이 사로잡힌 모든 이를 네 안에서 기쁘게 하시고, 고통받는 모든 이와 영원히 이어질 모든 세대를 네 안에서 사랑하시기를 빈다.」토빗기 13:10 · 본디새김

그런데 토빗이 소망하는 회복은 건물을 다시 세우는 일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의 회복은 도시가 얼마나 아름답게 재건되는가보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다시 살아가게 되는가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포로들이 돌아오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는 도시. 그것이 토빗이 바라는 예루살렘입니다.

조금 더 깊이

시내 사본의 표현은 예루살렘의 장막이 다시 세워진다는 뜻입니다. 다른 그리스어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장막이 예루살렘 안에 다시 세워지는 것으로 읽힙니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폐허와 상실을 경험한 도성이 다시 거주와 기쁨의 장소가 된다는 데 있습니다.

흩어진 민족들 가운데서, 민족들이 모여드는 도시로

토빗기 13:11 본문 →

13:11에서 노래는 예루살렘을 향한 소망을 더욱 크게 확장합니다.

「밝은 빛이 땅의 모든 끝까지 비칠 것이다. 많은 민족이 멀리서, 땅 끝 모든 곳에서 와서 네 거룩한 이름을 향해 자리 잡고 살 것이다. 하늘의 왕께 드릴 저마다의 예물을 손에 들고서. 세대가 세대를 이어 네 안에서 환호를 올리고, 영원히 이어질 세대에 걸쳐 네게 선택받은 이라는 이름을 줄 것이다.」토빗기 13:11 · 본디새김

처음에는 이스라엘이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졌습니다. 이제는 여러 민족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듭니다.

이 모습은 이사야 60:1–6과 매우 가깝습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에 빛이 비치고 민족들이 그 빛으로 나아오며, 먼 곳에서 사람들이 재물을 가지고 와 여호와야훼를 찬양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토빗기 13장 역시 예루살렘을 한 민족만의 도성이 아니라 많은 민족이 하나님을 높이는 장소로 그립니다.

그 회복은 이스라엘이 강해져서 다른 민족들을 지배하는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여러 민족이 하늘의 왕께 예물을 드리며 찬양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토빗이 바라보는 예루살렘은 흩어진 이스라엘이 돌아오는 곳인 동시에, 먼 민족들이 하나님을 찾으러 오는 곳입니다.

예루살렘을 파괴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

토빗기 13:12–14 본문 →

민족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오는 밝은 장면 뒤에 갑자기 저주가 등장합니다.

「모진 말을 할 자들은 모두 저주받는다. 너를 헐어 버리고 네 성벽을 끌어내리는 자들, 네 망대들을 무너뜨리고 네 거처들을 불사르는 자들은 모두 저주받을 것이다. 그러나 너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모두 영원히 복을 받을 것이다.」토빗기 13:12 · 본디새김

그가 바라보는 회복에는 도시를 파괴한 폭력에 대한 판단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벽을 끌어내리고, 망대를 무너뜨리고, 집들을 불태우는 행동은 군사적인 공격과 파괴를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토빗은 그런 폭력을 회복된 미래 안에서 아무 일도 아닌 것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13:11에서는 먼 곳의 많은 민족이 예루살렘으로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13:12에서는 예루살렘을 헐고 불태우는 자들을 저주합니다. 이것을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과 다른 민족의 대립으로만 읽으면 두 구절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놓치게 됩니다.

환영받는 이들은 하나님을 향해 예물을 가져오는 이들입니다. 저주받는 이들은 예루살렘을 파괴하는 이들입니다.

구별의 중심에는 민족이라는 신분보다 그 도성과 하나님의 백성을 대하는 행동이 놓여 있습니다.

「그때 의로운 이들의 자손들에게 가서 크게 기뻐하여라. 그들이 모두 한데 모여 영원한 주를 찬송할 것이기 때문이다.」토빗기 13:13 · 본디새김

노래의 처음에 등장했던 흩어짐이 이제 모임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슬퍼했던 사람들이 복을 받는 이유

「너를 사랑하는 이들은 복이 있고, 네 평화를 기뻐할 이들도 복이 있다. 네가 당하는 모든 채찍질 때문에 너를 두고 슬퍼할 사람들은 모두 복이 있다. 그들이 네 안에서 기뻐하고, 네 모든 기쁨을 영원히 볼 것이기 때문이다.」토빗기 13:14 · 본디새김

이 부분은 이사야 66:10과 매우 가깝습니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 도시를 위해 슬퍼했던 사람들에게도 함께 기뻐하라고 권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이 무너졌을 때 그 상실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의 고난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기쁨은 단순히 아름다운 미래의 광경을 보는 즐거움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함께 아파했던 대상이 회복되는 것을 보는 기쁨입니다.

고난을 겪은 사람과 그 고난을 함께 슬퍼했던 사람에게 회복의 기쁨이 함께 돌아갑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포로입니다. 그 도시가 겪는 일을 직접 바꾸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도시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고, 그 회복을 자기 기쁨으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

토빗은 예루살렘에 살지 못하지만, 예루살렘의 고통과 소망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금과 보석으로 지어진 예루살렘

토빗기 13:15–17 본문 →

13:15에서 토빗은 다시 자신의 찬송으로 돌아옵니다.

「내 목숨은 위대한 왕이신 주를 찬송한다.」 그리고 장차 재건될 예루살렘을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찬란한 언어로 묘사합니다.

「예루살렘 도성에 그분의 집이 영원토록 세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 후손 가운데 남은 이들이 네 영광을 보고 하늘의 왕께 감사하게 된다면, 나는 복될 것이다. 예루살렘의 문들은 사파이어와 에메랄드로, 네 모든 성벽은 값진 돌로 세워질 것이다. 예루살렘의 망대들은 금으로, 그 망대들의 성가퀴는 순금으로 세워질 것이다.」토빗기 13:16 · 본디새김

이어 넓은 길들에는 붉은 보석과 오빌의 돌이 박힐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언서에서 사용되는 이상적인 예루살렘의 회복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이사야 54:11–12에서는 고난을 겪은 예루살렘을 향해 보석으로 기초를 놓고 아름다운 돌로 성문과 성벽을 세우겠다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여기서 보석은 단순한 부의 축적을 뜻하지 않습니다. 버림받고 황폐해진 도시가 다시 영광과 아름다움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표현합니다.

무너진 바로 그곳이 다시 세워진다

13:12에서는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성벽을 끌어내리고 망대를 무너뜨리며 거처들을 불사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13:16–17에서는 바로 그 성벽과 망대와 길이 보석과 금으로 세워집니다.

파괴의 대상이었던 것들이 회복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이 회복하실 예루살렘은 과거에 아무 상처도 없었던 도시가 아닙니다. 파괴의 역사를 지닌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 역사가 이 도시의 마지막 모습이 되지는 않습니다.

토빗은 예루살렘이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가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기대에는 자기 생애의 한계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토빗은 하나님의 약속이 자기 생애 안에 모두 이루어져야만 기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보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이 그 영광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복되다고 말합니다.

토빗의 찬송에서 미래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

그가 기도하는 예루살렘은 자기 아들과 손자와 그 뒤를 이을 사람들의 예루살렘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13장의 소망은 개인의 성공이나 회복을 넘어 여러 세대가 함께 참여하는 하나님의 미래로 넓어집니다.

조금 더 깊이

‘오빌의 돌’ 역시 특정한 현대 보석의 이름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구약에서 오빌은 귀한 금의 산지로 알려져 있으며(열왕기상 9:28; 10:11), 여기서는 값비싸고 귀한 재료를 떠올리게 하는 지명으로 기능합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 21:18–21에서도 보석과 금으로 장식된 새 예루살렘이 등장합니다. 이는 토빗기 13장과 같은 구약의 시온 회복 전통을 공유하는 장면입니다. 다만 토빗기가 요한계시록을 직접 예언했다고 보거나, 두 본문의 세부 묘사가 완전히 일치한다고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침내 성문과 집들이 노래한다

토빗기 13:18 본문 →

토빗의 찬송은 마지막에 매우 독특한 장면으로 끝납니다.

「예루살렘의 문들은 환호의 노래를 부르고, 그 안의 모든 집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할렐루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송받으실 분입니다.』 복을 받은 이들은 그 거룩한 이름을 영원히, 또 그 너머까지 찬송할 것이다.」토빗기 13:18 · 본디새김

성문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입니다. 집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 모든 장소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포로의 땅에서 한 사람이 시작한 찬송이, 마침내 예루살렘의 모든 집에서 울려 퍼지는 찬송으로 확대됩니다.

앞부분에서 민족들이 먼 곳에서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찾아왔습니다. 성문은 그들을 맞이하는 통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바로 그 성문이 환호의 노래를 부릅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발걸음과 그들을 맞이하는 도시의 환호가 하나의 장면을 이룹니다.

화려한 보석으로 지어진 도시이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 도시 전체가 하나님을 찬송하기 때문에 영광스럽습니다.

조금 더 깊이

이 표현은 문자 그대로 건축물이 입을 열어 노래한다는 예언으로 읽기보다, 도시 전체에 기쁨과 찬송이 가득하다는 시적인 의인화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시편 98:8에서는 강들이 손뼉을 치고 산들이 함께 환호합니다. 이사야 55:12에서는 산과 언덕이 노래하고 들의 나무들이 손뼉을 칩니다. 토빗기는 그러한 찬송의 언어를 예루살렘의 건축물에까지 확장합니다.

포로의 노래가 닿는 곳

토빗기 13:1–18 본문 →

그러므로 토빗의 감사는 자기에게 일어난 좋은 일들을 돌아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가 받은 자비가 자신이 속한 백성에게도 베풀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자라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현재의 고통을 부정하거나, 자신이 바라는 회복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 안다고 주장하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자신이 경험한 자비에 감사하면서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회복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토빗은 니느웨에 있습니다.

그가 부르는 노래 속의 예루살렘은 그의 눈앞에 있지 않습니다. 그 성문을 볼 수도 없고, 보석으로 장식된 성벽을 만질 수도 없습니다. 먼 곳에서 찾아오는 민족들의 행렬도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토빗은 그 도시를 향해 말을 겁니다.

그는 장차 예루살렘의 성문이 사파이어와 에메랄드로 세워질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성벽과 망대가 금으로 빛날 것이며, 길에는 귀한 보석들이 깔릴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모든 건축물을 하나씩 지나, 가장 평범한 공간인 집들에 이릅니다.

「할렐루야,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찬송받으실 분입니다.」

토빗이 마지막에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보석이 부딪히는 소리도, 영광스러운 왕의 행렬을 알리는 나팔 소리도 아닙니다. 성문에서, 거리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집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찬송입니다.

그는 그날을 직접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 예루살렘의 집들에서 울려 퍼질 노래를, 포로의 땅 니느웨에서 먼저 부르고 있습니다.

아직 예루살렘에 도착하지 못한 사람의 입에서, 예루살렘이 장차 부를 찬송이 시작됩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