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빗기 풀어 읽기 · 4장

이 장의 자리 · 4–6장 · 길을 떠나는 토비야

은전보다 먼저 물려줄 것

토빗기 4장은 뜻밖에도 돈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앞 장에서 토빗은 고통을 견디지 못해 하나님께 자신의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그는 오래전에 메대에 맡겨 둔 은전을 기억합니다. 이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토빗은 아들 토비야를 부릅니다. 은전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찾아오자 토빗은 돈 이야기부터 꺼내지 않습니다.

토빗은 돈을 물려주려다가 자신이 평생 중요하게 여겼던 삶의 원칙을 먼저 전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재산의 소재를 아는 것만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에는 불편한 질문도 따라붙습니다.

토빗 자신은 이런 원칙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것은 안정과 풍요가 아니라 실명과 가난, 박해와 모욕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들에게 의롭게 살면 형통하고, 구제는 죽음에서 건져 낸다고 말합니다.

토빗은 자신의 삶이 그 가르침과 어긋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가 말하는 복과 보상에는 당장의 형편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토빗기 4장의 핵심은 고난 없는 삶의 비결이 아니라, 고난을 겪은 사람이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주려 하는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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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전을 기억했지만, 먼저 사람을 기억하라고 가르치다

토빗기 4:1–4 본문 →

4장은 짧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날 토빗은 메대의 라게스에서 가바엘에게 맡겨 둔 은전을 기억했다.토빗기 4:1 · 본디새김

‘그날’은 앞 장에서 토빗과 사라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진 날과 이어집니다. 독자는 이미 라파엘이 두 사람을 고치기 위해 보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토빗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입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보라, 나는 죽음을 청했다. 내가 죽기 전에 내 아들 토비야를 불러 이 은전에 관해 알려 주는 것이 어떻겠는가?」토빗기 4:2 · 본디새김

자신이 하나님께 죽음을 요청했기 때문에, 죽기 전에 아들에게 알려야 할 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여전히 죽음을 향한 소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아들의 미래를 염려합니다.

그런데 아들이 오자 첫 번째 당부는 돈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토빗이 자기 아들 토비야를 부르자 토비야가 그에게 왔다. 토빗이 아들에게 말했다. 「나를 잘 묻어라. 네 어머니를 공경하고, 어머니가 살아 있는 모든 날 동안 어머니를 버리지 마라. 어머니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어떤 일로도 어머니의 마음을 슬프게 하지 마라.」토빗기 4:3 · 본디새김

토빗이 장례를 먼저 언급하는 것은 그의 삶과 잘 어울립니다. 그는 죽은 동족을 묻는 일을 중요한 의무로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이제 자신의 죽음 앞에서 아들에게도 그 의무를 당부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긴 설명은 어머니 안나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어머니가 살아 있는 모든 날 동안’이라는 표현은 이 가르침이 한순간의 효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책임에 관한 것임을 보여 줍니다.

「얘야, 어머니를 기억해라. 어머니는 너를 배 속에 품고 너 때문에 많은 위험을 겪었다. 어머니가 죽으면 나와 같은 무덤에 내 곁에 묻어라.」토빗기 4:4 · 본디새김

출애굽기 20:12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합니다. 토빗은 그 명령을 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어머니의 삶에 연결합니다. 토비야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그를 품었고, 낳았고, 돌보았습니다.

그 수고를 기억하는 것이 어머니를 공경하는 출발점입니다.

2장에서 토빗은 안나가 정당하게 받은 선물을 훔친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아내의 설명을 믿지 않았고, 그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들에게는 어머니의 마음을 슬프게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이 장면을 토빗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했다는 증거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가 안나에게 사과하거나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토빗은 어머니를 공경해야 한다는 원칙을 진심으로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 원칙을 아내와의 관계에서 언제나 온전히 실천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토빗은 완벽한 교사가 아니라, 자신도 배워야 할 진실을 아들에게 전하는 아버지로 나타납니다.

토빗이 아들에게 남긴 말은 아들뿐 아니라 아버지 자신에게도 적용되어야 할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머니가 죽으면 자기 곁에 묻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는 자신의 장례와 아내의 장례를 하나로 연결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어머니를 버리지 말라는 당부는, 죽은 뒤에도 가족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라는 말로 이어집니다.

토빗이 먼저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 것은 은전보다 앞서 부모에게 받은 삶을 기억하는 태도였습니다.

진실의 길을 걸으면 모든 일이 형통하는가

토빗기 4:5–6 본문 →

부모에 대한 당부를 마친 토빗은 아들의 삶 전체를 다스릴 원칙을 말합니다.

「얘야, 네 모든 날 동안 주를 기억해라. 죄를 짓거나 그의 계명을 어기려 하지 마라. 네가 사는 모든 날 동안 의로운 일을 행하고 불의의 길로 가지 마라.」토빗기 4:5 · 본디새김

여기에는 ‘모든 날 동안’이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그는 살아가는 모든 날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기억에 따라 행동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사람이 걸어야 할 길은 불의를 피하고 의를 행하는 길입니다.

「진실을 행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에서 형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를 행하는 모든 이에게,」토빗기 4:6 · 본디새김

우리는 흔히 진실을 말하거나 진실을 안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토빗은 진실을 행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진실이 단순히 올바른 지식이나 말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행동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더 어려운 문제는 뒤에 이어지는 ‘형통’이라는 약속입니다.

토빗 자신은 진실을 행하려고 노력했지만 형통한 삶만을 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력을 잃고 가난해졌습니다.

잠언에도 비슷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잠언 10:2는 의로움이 죽음에서 건진다고 말하고, 잠언 11:4 역시 재물이 진노의 날에 무익하지만 의로움은 죽음에서 건진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지혜의 말씀은 의로운 삶의 가치와 그 삶이 향하는 방향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든 개인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즉각적인 보상의 공식으로 읽으면 욥기와 같은 성경의 다른 증언과 충돌하게 됩니다.

그에게 의로움은 그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걸어야 할 길입니다.

물론 토빗은 의로운 행동에 복이 따른다는 믿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4장에서는 그것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따라서 이 장의 보상에 관한 말씀을 모두 비유적인 표현이나 내면적인 만족으로만 바꾸는 것도 본문에 충실한 읽기는 아닙니다. 다만 토빗의 실제 삶을 함께 보면, 이 가르침이 그 보상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는지까지 인간이 확정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토빗은 형통한 삶을 누렸기 때문에 진실의 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겪고도 그 길을 버릴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아들에게 가르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말라

토빗기 4:7–11 본문 →

토빗의 가르침에서 가장 긴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구제입니다.

「네가 가진 것으로 구제를 베풀어라. 구제를 베풀 때 네 눈이 인색해지지 않게 해라. 가난한 사람 누구에게서도 네 얼굴을 돌리지 마라. 그러면 하나님의 얼굴도 결코 네게서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토빗기 4:7 · 본디새김

여기서 인색한 눈이란 재산을 나누어 주기를 아까워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신명기 15:9에도 가난한 형제를 향해 악한 눈을 품지 말라는 경고가 나옵니다. 이어지는 신명기 15:10은 가난한 사람에게 줄 때 아까워하는 마음을 품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다음에는 눈이 아니라 얼굴을 말합니다.

얼굴을 돌린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뜻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의 사정을 알면서도 관계를 끊거나 도움을 외면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이 표현은 앞 장의 토빗의 기도와도 연결됩니다. 그는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주님, 저에게서 당신의 얼굴을 돌리지 마십시오.” (3:6)

토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외면하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들에게는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바라는 자비를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라는 것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만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네가 가진 것의 양에 따라 그 가운데서 구제를 베풀어라. 가진 것이 적다면 그 적은 만큼 구제를 베풀기를 두려워하지 마라.」토빗기 4:8 · 본디새김

토빗은 이제 가난한 사람입니다. 아들에게 줄 재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가족의 생활은 어려워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토빗은 구제를 포기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구제의 기준을 일정한 금액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도움을 베풀 책임이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완전히 사라지거나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드러냅니다.

물론 이 말씀을 가난한 사람에게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것까지 무조건 내놓으라고 강요하는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각자가 가진 정도에 따라 구제하라고 말하며, 구체적인 액수나 생계의 한계를 정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적다는 이유로 나눔의 가능성까지 부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제는 어떻게 죽음에서 건져 내는가

「그렇게 너는 곤궁한 날에 대비하여 너 자신을 위해 좋은 보물을 쌓는다.」토빗기 4:9 · 본디새김
「실제로 구제는 너를 죽음에서 건져 내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해 줄 것이다.」토빗기 4:10 · 본디새김

그는 구제를 많이 베풀었지만 여러 차례 죽음의 위협을 겪었습니다. 심지어 앞 장에서는 하나님께 죽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므로 10절을 선행이 육체의 죽음을 반드시 막아 준다는 절대적인 보장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구제를 죽음과 어둠에서 건져 내는 행위로 묘사한 것은 잠언 10:2, 11:4와 같은 지혜 전통과 연결됩니다. 그 전통에서 의로움은 재물보다 더 깊은 생명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나타납니다.

재산은 사람을 안전하게 만들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곤궁한 날에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 앞에서 행한 자비는 헛된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삶의 일부입니다.

「구제는 그것을 베푸는 모든 이에게 지극히 높은 분 앞에서 좋은 예물이기 때문이다.」토빗기 4:11 · 본디새김

이것은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본문이 구제를 하나님에게 보상을 받아 내는 거래로 설명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구제의 유익을 강하게 약속하지만, 그 구체적인 작동 방식이나 모든 예외를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토빗은 아들에게 은 열 탈란톤을 물려주려 합니다. 그러나 그 재산에 관해 자세히 말하기 전에, 구제를 통해 쌓는 보물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메대의 특정한 장소에 보관되어 있는 은전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극히 높은 분 앞에서 좋은 예물로 여겨지는 자비의 행동입니다.

토빗은 아들에게 재산을 찾는 방법만이 아니라, 재산을 무엇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지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내를 맞는 일은 왜 조상의 이야기와 연결되는가

토빗기 4:12–13 본문 →

구제에 관한 가르침 뒤에 토빗은 결혼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얘야, 온갖 음행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살펴라. 먼저 네 조상들의 후손 가운데서 아내를 맞아라. 네 아버지의 지파에 속하지 않은 외부 여자를 아내로 맞지 마라. 우리는 예언자들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얘야, 오랜 옛적 우리의 조상인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모두 자기 형제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았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들은 자기 자녀들을 통해 복을 받았고, 그들의 후손은 땅을 상속받을 것이다.」토빗기 4:12 · 본디새김

그는 고향을 떠나 아시리아에 포로로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지파와 조상의 역사를 잊지 않으려 애써 왔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아들의 결혼은 단순히 개인의 배우자 선택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이 물려받은 신앙과 정체성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이어 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예언자들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은 토빗이 자신과 아들의 정체성을 이스라엘 조상들의 신앙 전승과 연결한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다만 그가 열거한 조상들의 실제 혼인 이야기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24장에서 아브라함은 이삭의 아내를 구할 때 자신의 친족에게 종을 보냅니다. 창세기 28:1–5에서는 이삭이 야곱에게 외삼촌 라반의 집안에서 아내를 맞으라고 명령합니다. 이 두 사건은 토빗의 가르침과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반면 창세기는 노아의 아내가 어느 집안 출신인지 밝히지 않습니다. 따라서 토빗이 열거한 모든 조상의 혼인 방식을 창세기의 개별 기록으로 동일하게 입증할 수는 없습니다. 토빗은 족장들의 이야기를 신앙적 본보기로 묶어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후손과 땅의 상속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녀들을 통해 복을 받았고, 그들의 후손은 땅을 상속받을 것이다.」 이 문장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어진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창세기 12:1–3, 17:7–8). 토빗에게 결혼은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을 다음 세대로 이어 가는 일과 연결됩니다.

독자는 이미 3장에서 사라라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라를 토비야의 아내로 주실 계획을 마련하셨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3:17).

그러나 토빗은 아직 그것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조상들의 이야기에 근거하여 아들의 결혼을 가르칩니다. 그런데 독자는 그 가르침이 앞으로 사라의 이야기와 연결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토빗이 아들에게 가르치는 말들이 앞으로 전개될 사건을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같은 백성 안에서 결혼하라는 명령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러니 이제, 얘야, 네 형제들을 사랑해라. 교만한 마음으로 네 형제들과 네 백성의 아들딸들을 멀리하여 그들 가운데서 아내를 맞기를 거부하지 마라. 교만에는 멸망과 큰 혼란이 있고, 게으름에는 쇠락과 큰 궁핍이 있기 때문이다. 게으름은 굶주림의 어머니다.」토빗기 4:13 · 본디새김

그렇다고 이 구절의 집단적 경계를 없었던 것처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토빗은 실제로 같은 조상과 지파에 속한 사람 가운데서 아내를 맞으라고 요구합니다. 그것은 포로 생활 속에서 가족과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그의 관심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이를 모든 시대의 모든 혼인에 그대로 적용되는 보편적인 민족적 배타성의 명령으로 읽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구약 안에도 룻처럼 이스라엘 밖에서 왔지만 여호와야훼를 자기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에 받아들여진 사람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룻기 1:16–17, 4:13–17). 토빗의 당부는 그의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과 가족의 미래에 관한 가르침으로 먼저 읽어야 합니다.

혼인에 관한 이야기에서 갑자기 게으름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토빗은 아들이 앞으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사람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그가 가르치려는 것은 어떤 사람과 결혼할 것인가만이 아닙니다. 교만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인은 신분이나 가문의 이름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실제로 살아갈 사람의 태도도 중요합니다.

남의 품삯을 미루지 말고,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토빗기 4:14–16 본문 →

14절에서 토빗의 가르침은 노동과 임금의 문제로 옮겨 갑니다.

「너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 품삯을 하룻밤도 묵혀 두지 말고 곧바로 주어라. 네가 하나님을 섬기면 너도 보답을 받을 것이다. 얘야,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자신을 살피고, 모든 처신에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답게 행동해라.」토빗기 4:14 · 본디새김

이 말씀은 레위기 19:13과 신명기 24:14–15의 규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신명기에서는 가난하고 궁핍한 품꾼에게 해가 지기 전에 품삯을 지급하라고 명령합니다. 그가 품삯을 기다리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선행이지만, 일한 사람에게 마땅한 임금을 주는 것은 정의의 문제입니다. 도움을 베푸는 일과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일은 서로 다른 책임입니다. 그런데 토빗은 이 두 책임을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삶 안에 놓습니다.

구제를 많이 베푸는 사람이 노동자의 품삯을 미룬다면, 그의 구제는 노동자에게 행한 불의를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안나는 직접 천을 짜서 품삯을 벌었습니다. 일을 맡긴 사람들은 그에게 품삯을 모두 지급했고, 새끼 염소까지 선물로 주었습니다(2:11–12). 토빗은 아내가 받은 선물을 의심했지만, 이제 아들에게는 노동자의 품삯을 곧바로 주라고 가르칩니다.

토빗의 집 안에도 정당한 노동과 품삯의 문제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네가 미워하는 일을 아무에게도 하지 마라. 취할 만큼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네가 가는 길에서 술 취함이 너와 함께 다니지 못하게 해라.」토빗기 4:15 · 본디새김

이 말씀은 앞에 나온 여러 계명을 하나의 원리로 묶어 줍니다.

자신이 버림받기 싫다면 다른 사람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기 싫다면 다른 사람도 부당하게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품삯을 제때 받고 싶다면 남의 품삯도 제때 주어야 합니다.

이 가르침은 가까운 친족에게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토빗은 ‘아무에게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표현은 자신의 행동을 다른 사람의 자리에서 생각해 보라는 요청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훗날 마태복음 7:12와 누가복음 6:31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과 주제적으로 연결됩니다. 토빗은 자신이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부정형으로 말하고, 예수는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긍정형으로 말씀하십니다. 신약이 이 구절을 직접 인용한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토빗은 포도주 자체를 금지하지 않습니다. 술 취할 만큼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분별 있는 삶과 연결됩니다. 자신의 행동을 살피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생활을 무너뜨리는 습관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16절에서는 다시 굶주린 사람에게 빵을 나누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주라고 명령합니다. 7–11절이 구제의 신앙적 의미를 설명했다면, 16절은 그 구제가 실제로 어떤 행동인지 다시 구체화합니다.

토빗이 가르치는 의로움은 이렇게 생활의 구체적인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왜 의로운 사람의 무덤에는 빵을 놓고 죄인에게는 주지 말라는가

토빗기 4:17 본문 →

17절은 이 장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의로운 이들의 무덤 위에 네 빵을 쏟아 놓고, 죄인들에게는 주지 마라.」토빗기 4:17 · 본디새김

앞에서는 가난한 사람 누구에게서도 얼굴을 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죄인들에게 주지 말라고 합니다. 이 두 가르침이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무덤 위에 빵을 쏟아 놓으라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한 가지 해석은 의로운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장례와 관련하여 음식을 마련하라는 뜻으로 읽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6:7에서는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이들에게 위로의 음식을 나누고 위로의 잔을 건네는 관습이 언급됩니다. 이 배경을 고려하면 토빗의 말도 의로운 사람의 장례에 음식을 마련하거나, 그 유가족에게 위로의 음식을 제공하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다른 해석은 문면에 더 가까이 머물러, 무덤 위에 음식을 놓거나 바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그 음식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어떤 종교적 의미를 지녔는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신명기 26:14에는 십일조와 관련하여 죽은 사람을 위해 거룩한 것을 내어놓지 않았다는 고백도 나옵니다. 따라서 무덤에 음식을 놓는 행위를 아무런 구별 없이 이스라엘의 일반적인 종교 의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만으로 어느 해석이 확실한지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죄인들에게는 주지 마라’는 명령도 비슷한 주의를 요구합니다. 이것을 모든 죄인에게 음식이나 도움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인 명령으로 이해하면, 바로 앞에서 가난한 사람 누구에게서도 얼굴을 돌리지 말라고 한 가르침과 긴장이 생깁니다. 반면 장례 음식에 관한 말씀으로 읽으면, 의로운 사람의 장례와 악한 사람의 장례를 구별하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이러한 구별의 이유와 범위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근거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의인과 죄인으로 구분하여 구제하라는 일반적인 원칙을 확정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한 것은 토빗이 죽은 사람을 어떻게 기억하고 대할 것인가를 자신의 윤리적 가르침 안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에게 사람을 돌보는 책임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에게 물어보되,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구하라

토빗기 4:18–19 본문 →

토빗은 아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전한 뒤 뜻밖의 명령을 덧붙입니다.

「지혜로운 사람 누구에게서나 조언을 구하고, 도움이 되는 조언은 어떤 것이든 업신여기지 마라.」토빗기 4:18 · 본디새김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말을 기억하라고 당부하지만, 오직 자기 말만 듣고 살아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모든 해답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토비야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할 모든 상황을 토빗이 미리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아들은 새로운 문제를 만나게 될 것이고, 자신이 모르는 길을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이미 들은 명령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능력만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고, 다른 사람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잠언 12:15는 미련한 사람은 자기 길을 옳게 여기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조언을 듣는다고 말합니다. 토빗의 가르침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이어서 그는 그 지혜의 궁극적인 근원을 하나님께 둡니다.

「언제나 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네 길들이 곧게 되고 모든 길과 계획이 잘되도록 그에게 구해라. 어느 민족도 판단력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는 그들에게 좋은 판단을 줄 것이며, 주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하데스 가장 깊은 곳까지 낮춘다. 그러니 이제, 얘야, 이 계명들을 기억하고 네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게 해라.」토빗기 4:19 · 본디새김

토빗은 아들에게 불의의 길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자신의 길을 곧게 해 달라고 구하라고 합니다.

불의의 길로 가지 않는 것은 사람이 책임지고 선택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계획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사람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토빗은 자신의 행동을 살피면서도 하나님께 길을 구하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잠언 3:5–6의 가르침과 연결됩니다. 자신의 명철만을 의지하지 말고 모든 길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독자는 앞 장에서 라파엘이 보내졌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토비야는 아직 자신이 누구의 도움을 받게 될지 모릅니다. 토빗 역시 앞으로 아들이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지혜는 모든 길의 답을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길 앞에서 어떻게 배우고 누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지 아는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4:7부터 4:19의 중간까지는 시나이 사본에 결락이 있어 다른 그리스어 본문으로 보충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4:6에서 7절로, 그리고 4:19의 중간으로 이어지는 문장은 매끄럽지 않습니다. 결락된 모든 내용이 원래 토빗기에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19절의 어색한 연결을 근거로 지나치게 세밀한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이제야 은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다

토빗기 4:20–21 본문 →

긴 가르침이 끝난 뒤 토빗은 처음에 아들을 부른 이유를 말합니다.

「이제, 얘야, 네게 알려 준다. 나는 메대의 라게스에서 가브리의 아들 가바엘에게 은 열 탈란톤을 맡겨 두었다.」토빗기 4:20 · 본디새김

은 열 탈란톤은 상당한 재산입니다. 그러나 지금 토빗의 가족은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은전은 니느웨의 집 안에 있지 않습니다. 메대의 라게스라는 먼 곳에 있습니다. 토빗은 이전에 메대로 가는 길이 끊겨 그곳을 방문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1:15). 이제는 눈까지 멀었습니다.

돈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돈을 당장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토빗이 아들에게 맡기려는 일은 단순히 숨겨 둔 재산의 위치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직접 그 재산을 찾아와야 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후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됩니다.

그런데 은전에 관한 말을 마친 토빗은 마지막으로 다시 돈이 아닌 삶의 태도를 강조합니다.

「얘야, 우리가 가난해졌다고 두려워하지 마라. 네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모든 죄를 피하고 네 하나님인 주 앞에서 선한 일을 행하면, 네게는 좋은 것이 많이 있다.」토빗기 4:21 · 본디새김

그가 제시하는 근거는 재산의 회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죄를 피하고,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을 행하는 삶입니다.

여기서 ‘좋은 것이 많이 있다’는 말을 오직 물질적 부유함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물질적인 삶과 무관한 내면의 보상으로만 해석할 근거도 없습니다. 토빗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을 넓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 복의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인지는 지금 모두 설명하지 않습니다.

은전은 메대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지금부터 걸어야 할 삶의 길은 어디에서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라게스에 남아 있는 은전

토빗기 4:1–21 본문 →

토빗이 남기려는 유산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합니다. 그는 아들에게 먼 곳에 맡겨 둔 재산을 알려 주지만,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온 가르침도 함께 전합니다. 고난과 한계를 지닌 사람이 자신도 계속 걸어야 할 길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가르침입니다.

그의 말이 끝났을 때 은전은 여전히 라게스에 있습니다.

토빗은 여전히 눈이 멀어 있고, 가족은 여전히 가난합니다. 토비야는 아직 그 돈을 찾으러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당부는 재산을 반드시 되찾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얘야, 우리가 가난해졌다고 두려워하지 마라.」 가난해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아들의 삶 전체를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토빗은 아들에게 은전이 있는 곳을 알려 주면서, 은전보다 먼저 지켜야 할 길을 가르쳤습니다.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버지도 아들도 아직 모릅니다.

다만 토비야는 이제 라게스라는 먼 도시의 이름과 함께, 평생 기억해야 할 아버지의 말을 품게 되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학자 견해·해석 전통과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본디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