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서
결정 중인 자리 2곳. 본문으로
결정 중인 자리 2
줄을 누르면 두 문장이 펼쳐집니다.
2:112:7의 τὰ ἑαυτῆς τέκνα는 '제 자식', 2:11의 τέκνα ἑαυτοῦ는 '제 자녀'로 갈렸습니다. 젖어미와 아버지를 나란히 놓은 짝 비유이므로 같은 낱말로 받아야 짝이 보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우리는 아버지가 제 자식들을 대하듯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여러분이 잘 아는 그대로, 우리는 아버지가 제 자식을 대하듯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 밖에 안이 4개 더 있습니다.
- 사람 확인(여기서 멈춤)
어느 후보도 두 표를 얻지 못했습니다. 현행을 확정하지 않고 다음 검수의 미해결 항목으로 남깁니다.
판정 4건
투표 ①지금 문장
καθάπερ οἴδατε를 ‘알고 있듯이’로, ἕνα ἕκαστον을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보존합니다. πατὴρ τέκνα ἑαυτοῦ도 ‘아버지가 제 자식들을 대하듯’이라 하여 복수와 재귀 관계를 살리고 2:7의 짝 비유와 같은 낱말로 잇습니다. 이 절이 2:12로 열린 채 이어지는 원문 구조도 그대로 둡니다.
투표 ②수정안
나의 「알고 있는 바로 그대로」는 겹말이고, 다·라의 「제 자녀에게 하듯」은 「하다」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며 2:7의 「제 자식」과 짝 비유가 갈립니다. 라는 2:5와, 가는 2:2와 표현이 그대로 겹쳐 καθάπερ가 καθώς보다 힘을 더 주는 차이가 지워집니다. 바는 「잘 아는 그대로」로 καθάπερ의 힘을 살리면서 앞 두 자리와 꼴을 갈라 놓고, τέκνα ἑαυτοῦ를 2:7과 같은 「제 자식」으로 받아 젖 먹이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짝 비유를 보이게 합니다.
투표 ③그 밖(마)
καθάπερ οἴδατε의 강조를 ‘여러분도 알다시피’로 살리고, ἕνα ἕκαστον을 ‘한 사람 한 사람’, τέκνα ἑαυτοῦ를 ‘제 자식들’로 보존한다. 뒤 절의 분사들과 이어지는 미완결 구조도 그대로 남긴다.
투표 ④그 밖(같음)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쓰면(나·라) καθώς(2:2·2:5)와 다른 낱말인 καθάπερ의 차이가 지워지고 세 번째 반복으로 굳은 말투가 된다는 지적이 있어 나·라는 밀립니다. 다·라의 '제 자녀'는 2:7의 '제 자식'과 짝비유 낱말이 갈린다는 지적, '아버지가 제 자녀에게 하듯'의 '하다'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라는 지적도 있어 다·라는 이중으로 불리합니다. 바는 '제 자식'(단수 표기)이라 τέκνα(복수)를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에 걸릴 수 있습니다. 가('여러분이 알고 있듯이')와 마('여러분도 알다시피')는 반복을 피하면서 '제 자식들'로 2:7과 짝을 맞추고 '대하듯'으로 자연스럽게 이었으며, 둘의 차이는 도입부 어투뿐이라 우열을 가리기 어렵습니다.
4:15「주님이」 → 「주님께서」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곧 주님이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잠든 이들보다 결코 앞서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곧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잠든 이들보다 결코 앞서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밖에 안이 3개 더 있습니다.
- 사람 확인(여기서 멈춤)
두 문장을 읽고 어느 쪽이 원문을 보존하는지, 왜 그런지 남겨 주십시오.
판정 4건
투표 ①수정안
ἐν λόγῳ κυρίου를 ‘주님의 말씀에 근거하여’로 밝히고, ὅτι 이하의 발언 내용을 ‘곧’으로 연결합니다. οἱ ζῶντες와 οἱ περιλειπόμενοι를 각각 ‘살아서’와 ‘남아 있는’으로 살리며, οὐ μή의 강한 부정도 ‘결코’로 보존합니다. 나는 두 분사를 ‘살아남아 있는’ 하나로 뭉치고 ‘앞서지 못하다’로 능력의 뜻을 더하며, 다·라는 주격 높임이 어긋나고, 마는 ‘말하기—말입니다’를 되풀이해 주절과 내용절을 두 토막 냅니다.
투표 ②그 밖(다)
나의 「앞서지 못하리라」는 οὐ μὴ φθάσωμεν의 강한 부정을 능력의 부정으로 바꾸고, 「살아남아 있는」은 ζῶντες와 περιλειπόμενοι 두 분사를 한 낱말로 뭉갭니다. 마는 「말씀으로 … 말하기 … 말입니다」로 같은 서술이 겹치고 말투가 내려앉습니다. 가·라의 「말씀에 근거하여」는 ἐν λόγῳ κυρίου를 논증의 절차로 바꾸어 주님의 말씀 자체로 전한다는 뜻이 추론으로 기웁니다. 다는 ἐν을 「따라」로 받아 그 기울음을 피하면서 두 분사와 οὐ μή를 모두 지킵니다.
투표 ③수정안
ἐν λόγῳ κυρίου를 주님의 말씀에 근거한 권위 있는 발화로, παρουσία를 용어집의 ‘오실 때’로, οὐ μὴ φθάσωμεν을 ‘결코 앞서지 않으리라’로 보존합니다. 나는 perileipomenoi의 ‘살아서 남아 있는’을 ‘살아남아’로 약화하고, 마는 원문에 없는 ‘말입니다’ 종결을 더합니다.
투표 ④그 밖(다)
가·라의 「말씀에 근거하여」는 ἐν λόγῳ κυρίου(수단·권위의 전치사구)를 논리적 인용 근거로 바꾸어 원문에 없는 해석을 보탠다 — 원문은 바울이 주님의 권위 있는 말씀 '으로' 전한다는 뜻이지, 기존 말씀에서 추론한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οὐ μὴ φθάσωμεν(단순 부정 미래 함의의 가정법, '결코 앞서지 않으리라')을 '앞서지 못하리라'로 옮겨 원문에 없는 능력·불능의 양태를 보탰다. 다와 마는 이 두 손실이 없어 원문 보존 단계를 통과한다. 이 둘 중 다는 '따라'로 ἐν λόγῳ κυρίου의 권위·전거 의미를 살리면서도 논설투로 흐르지 않고, ὅτι절 앞에 '곧'을 두어 두 문장으로 갈라지는 지적을 완화한다. 반면 마는 '말씀으로'+'말하기'+'말입니다'로 '말'이 세 번 겹쳐 지적된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고 '곧' 같은 연결이 없어 문장이 더 뚝 끊긴다. 따라서 다가 원문 보존과 읽힘 모두에서 가장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