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새김 · 두루새김
이 번역에 대하여
무엇을 어떻게 옮겼는지, 무엇을 아직 하지 못했는지를 여기에 적어 둡니다. 화면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이용 안내에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 번역은 히브리어 구약과 그리스어 신약, 그리스어 제2경전을 한국어로 새로 옮긴 것입니다. 기존 한국어 성경의 문장을 다듬은 것이 아니라 원문에서 처음부터 옮겼습니다. 모든 책이 베타 버전입니다.
이 번역은 두 판으로 냅니다. 본디새김은 원문의 본디 뜻을 한 절씩 새겨 옮기고 그 근거를 함께 보여 주는 판입니다. 두루새김은 본디새김을 바탕으로 누구나 두루 읽을 수 있도록 쉬운 문장과 해설로 풀어 쓴, 쉽게 읽는 성경입니다(두루새김 읽기). 두루새김이 어떻게 다른지는 아래에 따로 적었습니다. 처음에는 「새김성경」과 「널리 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열었습니다.
옮긴 것만 내놓지는 않습니다. 왜 그렇게 옮겼는지를 많은 절에 함께 적어 두었고, 본문의 절 번호를 누르면 그 자리가 열립니다. 아직 적지 못한 절도 있습니다. 그런 절에도 낱말을 어떻게 옮기기로 했는지, 사본이 갈리는 자리가 어디인지 따위는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마저 하나도 없는 절에 물으시면, 기록된 근거가 없는 자리라고 답 위에 밝힙니다. 다르게 옮길 수 있었던 자리에서는 자료가 갖추어진 만큼 택하지 않은 쪽도 함께 둡니다.
번역의 자리는 직역과 의역의 가운데입니다. 원문의 구조가 한국어에서 부러지는 자리에서는 한국어를 택하고, 뜻이 갈리는 자리에서는 함부로 하나로 풀지 않습니다. 본디새김의 문체는 현대 한국어입니다. 편지는 「~합니다」로, 복음서의 서술은 「~했다」로 둡니다. 요한계시록의 서술은 읽는 이를 앞에 둔 글이라 「~합니다」로 닫습니다. 대화의 말투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의 관계에 따라 달리합니다.
이 번역은 초안입니다. 그리고 완성을 선언하는 것이 이 일의 목표가 아닙니다. 지금의 번역이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다 맞히는 것이 아니라, 잘못 내린 판단이 그대로 굳어 버리지 않게, 다시 판단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는 것입니다.
두루새김은 무엇이 다릅니까
두루새김은 원문에서 따로 옮긴 번역이 아닙니다. 본디새김을 바탕으로, 같은 뜻을 쉬운 말로 다시 적은 판입니다. 사본이 갈리는 자리에서도 본디새김이 택한 읽기를 따릅니다. 중학생이 혼자 읽어도 막히지 않는 것을 목표로, 문장은 짧게 끊고 모두 「~했습니다」로 맺으며 교회에서만 쓰는 말은 풀어 씁니다. 실제 독자와 함께 확인하는 일은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판 번호는 책마다 매깁니다. V0.3 에서 시작했고, 책 전체 검수를 한 번 마칠 때마다 한 단계씩 오릅니다.
풀어 쓴 것도 기계입니다. 기계가 초안을 쓰고, 여러 모델이 나누어 판정했습니다 — 본디새김과 원문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쉽게 읽히는지. 실제 독자에게 읽혀 확인하는 일은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쉬움」은 기계가 판단한 쉬움입니다.
두루새김에는 절마다 번역 근거를 달지 않습니다. 대신 궁금할 만한 곳에 쉬운 해설을 달고, 장마다 「이 장을 읽기 전에」와 소제목을 둡니다. 해설을 얼마나 펼쳐 둘지는 「본문만」「조금」「많이」 가운데 고릅니다. 한 장씩 읽고, 시는 행을 나누어 시처럼 읽습니다. 왜 그렇게 풀었는지 궁금하시면 절 번호를 누르십시오. 본디새김의 같은 절과 그 근거로 건너갈 수 있습니다.
묻는 자리는 본디새김에만 있습니다. 답이 그 절의 번역 근거를 읽어 짓는 것이라, 근거를 곁에 두지 않는 두루새김에서는 열지 않았습니다.
삽화는 장면을 떠올리도록 돕는 그림입니다. 옷차림이나 건물까지 고증한 자료는 아닙니다.
두 판에서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나누는 기준은 하나입니다. 번역의 근거는 본디새김에, 쉬운 풀이는 두루새김에, 성경의 배경은 두 판 모두에 둡니다. 책 소개는 두 판 모두 읽기 화면 위쪽의 「책 소개」에서 엽니다.
| 무엇 | 본디새김 | 두루새김 |
|---|---|---|
| 절마다 붙은 풀이 | 번역 노트 · 원문 낱말 · 사본과 견해 | 쉬운 해설 |
| 책 소개 | 옮기면서 붙든 것 · 책의 짜임 | 책의 배경 · 생활과 문화 해설 |
| 성경 배경 | 시대 · 갈래 · 쓴 사람, 성경 전체 연대표, 지도, 함께 읽기, 용어 사전 (두 판 공통) | |
| 장 머리 | — | 「이 장을 읽기 전에」 · 소제목 · 삽화 |
| 더 깊이 | 갈린 자리 · 해석 전통 · 묻기 · 대역 | 본디새김의 같은 절로 건너가기 |
| 읽기 설정 | 글자 · 본문 폭 · 글꼴 · 화면 · 듣기 · 하나님의 이름 표기 (두 판 공통) — 두루새김은 해설을 얼마나 펼쳐 둘지도 고릅니다 | |
어떻게 판단합니까
번역에서 갈리는 문제는 두 갈래입니다. 셀 수 있는 것과 골라야 하는 것.
빠진 절, 뒤집힌 부정, 잘못 옮긴 숫자와 이름 — 이런 것은 원문에 대고 맞춰 보면 드러납니다. 여기서는 여러 사람의 선호를 묻지 않습니다. 기계가 원문과 대조해 걸리는 자리를 먼저 짚습니다. 다만 짚혔다고 곧 틀린 것은 아닙니다 — 인칭이나 수를 한국어에서 어떻게 드러낼지처럼, 원문을 확인한 뒤에도 판단이 남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살펴본 뒤에도 의견이 갈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한 낱말을 어느 쪽으로 옮길 것인가, 원문의 모호함을 그대로 둘 것인가 풀 것인가, 원문의 짜임과 자연스러운 한국어가 부딪칠 때 무엇을 앞세울 것인가. 이런 문제에 모든 답을 가진 심판은 없습니다.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기계, 어느 한 기관의 판단을 최종으로 두지 않습니다. 여러 판단을 모아 보고, 그래도 하나를 골라야 할 때는 고릅니다. 그 선택은 진리를 확정한 것이 아니라 지금 시점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고른 뒤에도 고르지 않은 쪽을 지우지 않습니다. 어떤 후보가 있었고 무엇이 반대 근거였는지를 함께 남깁니다. 결정은 하나로 내리되 판단의 역사는 하나로 만들지 않습니다. 지금의 다수도 영구한 권위가 아닙니다 — 새로운 근거나 더 나은 도구가 나오면 이미 내린 결정도 다시 봅니다. 그때 무엇이 바뀌었고 왜 바뀌었는지가 남습니다.
누가 옮겼습니까
초안은 기계가 옮겼습니다.
옮긴 뒤에는 여러 기계가 나누어 검토합니다 — 원문에 충실한지, 한국어 문장으로 서는지, 이 번역이 세운 원칙을 지켰는지. 같은 본문을 여럿이 각각 읽는 단계도 둡니다.
지적이 나오면 사실인지 먼저 대조합니다. 기계는 그럴듯하지만 없는 근거를 대기도 합니다 — 인용한 한국어가 본문에 없거나, 든 그리스어가 그 절에 없거나 하는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자료와 어긋나는 지적은 여기서 걸러집니다. 다만 문장의 결처럼 자료만으로 가릴 수 없는 지적은 확인되지 않은 채로 다음 단계에 오릅니다.
고칠 안이 나오면 지금 문장과 나란히 놓고 여러 기계가 다시 견줍니다. 어느 쪽이 고친 것인지 알려 주지 않은 채 견주게 하고, 지금 문장을 든 표가 하나도 없으면서 고친 쪽 표가 문턱을 넘은 것만 반영합니다.
표를 통과했더라도 기존 노트를 뒤집거나 표결이 다루지 않은 변경이 섞인 안은 걸러집니다. 한 절에서 고칠 곳이 겹치면 사람이 두 안을 하나로 만들고, 그 사이 본문이 달라져 멈춘 자리도 사람이 풉니다.
반영하지 않기로 한 것도 까닭과 함께 남깁니다. 무엇을 왜 지키기로 했는지가 다음 검토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책마다 붙은 해설도 기계가 썼습니다. 그 책의 번역 노트, 번역하며 남긴 결정 기록, 원문을 읽고 「이 번역이 무엇을 어떻게 옮겼는지」를 적게 했고, 쓴 것과 다른 기계가 주장 하나하나를 그 근거와 다시 대조했습니다. 그래도 틀린 곳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읽다가 묻는 자리에서 답하는 것도 기계입니다. 그 답은 이 저장소에 기록된 것을 읽어 정리하게 되어 있고, 기록에 없는 것을 물으시면 그렇다고 밝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답마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 기록된 근거인지, 낱말 풀이인지, 기록 밖의 일반적인 설명인지 — 를 위에 적습니다. 그 표시는 기계가 스스로 단 것입니다. 노트를 인용하지 않은 답은 견해나 고쳐 온 기록을 읽고 답했더라도 「낱말 풀이」로 표시됩니다. 표시도 답도 틀릴 수 있습니다. 이상하면 그 자리에서 알려 주십시오.
무엇이 열려 있습니까
본디새김 본문의 절 번호를 누르면 그 절을 두고 기록해 둔 것이 열립니다.
- 번역 노트
- 이 자리를 왜 이렇게 옮겼는지
- 원문
- 원문과 낱말마다의 형태·뜻
- 사본과 견해
- 사본이 갈리는 자리, 학자들의 갈린 견해, 그리고 이 번역이 택한 자리
서가의 책 이름 옆에는 그 책이 몇 번째 판인지 적혀 있습니다. 고쳐 온 깊이가 책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순여섯 권이 모두 같은 무게일 수 없는데, 그것을 적지 않으면 같아 보입니다.
갈린 자리도 엽니다. 지금 문장과 다르게 옮길 수 있었던 자리 — 표결에서는 이겼으나 노트와 부딪혀 붙들어 둔 안, 사람이 보고 있는 안, 그리고 고쳤거나 그대로 두기로 한 기록 — 을 갈린 자리에 모아 두었습니다. 그런 절은 본문의 절 번호 곁에 점이 서고, 절을 열면 두 문장이 함께 섭니다. 두 문장이 다 서 있는 자리만 엽니다. 아직 문장으로 서지 못한 지적과 기계가 붙들고 있는 것은 거기 없습니다.
이 번역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의 기록 전체는 아직 화면에 세우지 않았습니다. 갈린 자리에 서는 것은 그 가운데 두 문장을 견줄 수 있는 것뿐입니다.
남기신 말은 어떻게 됩니까
읽다가 걸린 곳은 그 절에서 바로 알려 주실 수 있습니다. 절 번호를 누르면 판이 열리고, 그 아래 「이 절에 의견 남기기」가 있습니다. 두루새김에서는 해설 판 아래 「이 절에서 걸린 곳 알려 주기」입니다. 무엇이 걸렸는지 따로 적지 않으시고 갈래만 고르셔도 보내실 수 있습니다.
본디새김에서는 「읽기 불편」과 「번역 이의」를 나누어 받습니다. 원문의 뜻과 다르다, 사본 선택이 의문이다, 번역 노트의 설명이 틀렸다고 보시면 「번역 이의」를 골라 근거(원문·사본·다른 번역·참고 문헌)를 함께 적어 주십시오. 결과를 받고 싶으시면 이메일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이메일은 의견과 따로 보관하고 그 의견의 결과를 알릴 때만 쓰며, 공개하지 않습니다. 두루새김에서는 이메일을 받지 않습니다.
한 절이 아니라 화면이나 기능, 번역 전반에 하실 말씀은 서가 아래와 글 쪽 머리, 읽기 설정에 있는 「의견 보내기」로 남겨 주십시오.
보내 주신 의견이 곧바로 본문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절마다 모아 두고, 어디를 먼저 다시 볼지 고르는 데 씁니다. 다시 보게 된 자리에서는 그 절을 두고 지금까지 내린 판단과 나란히 놓습니다 — 그 기록만으로 이미 설명되는 자리라면 그대로 두기로 할 수도 있습니다.
의견 하나하나에 답을 드리지는 못합니다. 이메일을 남기신 번역 이의에는 다시 본 결과를 알려 드립니다. 다시 본 자리에서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을 지켰는지는 기록에 남지만, 그것이 어느 의견에서 비롯되었는지까지는 지금 이어 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갈린 자리에 남기시는 말은 다릅니다. 두 문장 가운데 어느 쪽이 읽히는지와 그 까닭을 받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읽고 걸러 그 자리에 싣고, 그 자리가 결정된 뒤에도 지우지 않습니다. 거르는 기준은 좁습니다 — 남의 개인정보, 욕설, 본문과 무관한 것. 이 번역의 선택과 반대여도 싣습니다. 표로 세지 않고 글로 둡니다. 다수가 곧 결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담고 무엇을 담지 않았습니까
담은 것. 구약은 WLC 본문(public domain)과 OSHB 분석(CC BY 4.0)을 사용합니다. 전자 사전과 개별 해설의 출처·이용 조건은 책 해설과 각 노트에 표시합니다. 옮길 바탕으로 삼은 그리스어 본문은 SBLGNT(The Greek New Testament: SBL Edition)이고 CC BY 4.0 으로 열려 있습니다. 낱말마다 그 표제어와 문법 형태를 알려 주는 자료로는 MorphGNT 를 씁니다 — 이쪽은 CC BY-SA 3.0 이라 고쳐 쓰실 때 같은 조건으로 여셔야 합니다. 여기에 저작권이 풀린 옛 주석과 사전을 함께 읽었습니다.
제2경전. 그리스어 본문은 스위트(H. B. Swete, 1905, public domain)이고, Open Greek and Latin First1KGreek 전자본(CC BY-SA 4.0)을 쪽 사진과 대조해 고쳐 썼으므로 이 그리스어 본문 층은 CC BY-SA 4.0 입니다. 전자본이 없는 토빗기(시나이 사본의 긴 본문)와 집회서는 새김이 스위트의 쪽 사진에서 직접 옮겨 적었고, 같은 CC BY-SA 4.0 으로 냅니다. 표제어와 형태 분석은 OpenScriptorium lxx-morph(CC BY 4.0)를 스위트 낱말에 맞추어 바꾸어 썼습니다.
문장을 옮기지 않은 것. 저작권이 살아 있는 현대 주석과 사전, 사본마다 글자가 다른 곳을 정리해 둔 현대 자료, 그리고 기존 한국어 성경 역본. 이들을 읽지 않은 것이 아니라, 문장을 옮기지 않고 견해만 요약했습니다. 출처를 밝힌 것도 있고 아직 밝히지 못하고 갈래만 적어 둔 것도 있습니다.
곁에 세운 옛 역본. 본디새김 신약과 구약에서는 『성경전서 개역한글판』(대한성서공회, 1961)을 대역 칸과 절 판에 나란히 볼 수 있습니다. 한국 독자에게 익숙한 문장과 견주어 보시라고 세운 것이고, 이 번역을 옮기거나 검수하거나 물음에 답하는 데에는 쓰지 않았습니다. 저작재산권 보호기간이 끝난 본문이며, 1961년의 표기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구약은 본디새김이 히브리어 원문의 장절 번호를, 개역한글이 영어 성경 계열의 번호를 따르므로 Copenhagen Alliance 의 장절 대응표(CC BY-SA 4.0)로 짝지었습니다 — 개역한글 번호가 다른 자리에는 그 번호를 함께 적습니다(말 4:1 은 본디새김 3:19 곁에). 제2경전은 개역한글에 없습니다.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 두 판 모두 CC BY 4.0 (별도 표시된 노트 제외)
두 판의 번역문과 노트·해설은 이 저장소에서 새로 쓴 것입니다. 출처를 밝히시면 인용도, 복제도, 고쳐 쓰시는 것도, 팔아서 쓰시는 것도 됩니다. 같은 조건으로 열어 두실 의무는 지우지 않습니다.
빌립보서 2:6, 본디새김 (CC BY 4.0) · saegim.corderlabs.com · 2026-09-29 확인
마가복음 1:15, 두루새김 (CC BY 4.0) · saegim.corderlabs.com/duru · 2026-09-29 확인
이 번역은 계속 고쳐지므로 어느 때의 본문인지가 중요한 자리라면 보신 날짜를 함께 적어 주십시오 — 다만 지금은 그 시점의 본문을 다시 불러올 길을 마련해 두지 못했습니다. 위의 원문과 형태 분석은 조건이 저마다 다릅니다. 어느 것이 어느 조건인지는 저장소의 LICENSE 에 갈라 적어 두었으나, 저장소는 아직 열지 않았습니다.
왜 한쪽으로 정해 주지 않습니까
이 번역은 어느 교파의 교리를 세우려고 옮긴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원문을 바탕으로 그것을 어떻게 읽어 옮겼는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를 보여 드릴 뿐입니다.
그렇다고 이 번역에 선택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장을 하나 세울 때마다 고른 것이 있고, 그 고름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른 자리를 감추지 않습니다.
읽다 보면 「그래서 어느 쪽입니까」 싶은 자리를 만나게 됩니다. 사본이 갈리거나, 한 낱말이 두 가지로 읽히거나, 오래 다투어 온 해석이 걸린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이 번역은 갈린 것을 갈린 채로 보여 드립니다. 본문에는 하나를 세워야 하므로 하나를 세우지만, 자료를 갖춘 자리에서는 다른 쪽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밝힐 수 있는 자리에서는 누가 그렇게 읽었는지를 함께 둡니다. 한쪽을 지우고 내놓으면 번역이 실제보다 더 확정적인 척하게 됩니다.
아직 설명을 붙이지 못한 자리가 많습니다. 사본이 갈린다는 것만 알고 무엇이 어떻게 갈리는지 적지 못한 곳인데, 그런 자리도 감추지 않고 「여기서 갈립니다」라고 표시해 둡니다. 설명이 없다고 지워 두면 갈린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읽으시는 분이 이 번역의 선택에 다 동의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지만 왜 이렇게 결정했는지는 알겠다」
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이 일이 바라는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