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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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3장이 장 풀어 읽기

그리스도의 편지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을 내세우기 시작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어떤 사람들처럼 우리에게도, 여러분에게 보내는 것이든 여러분이 써 주는 것이든, 우리를 내세워 주는 편지가 필요합니까? 여러분이 곧 우리의 편지, 우리 마음에 쓰여 있고 모든 사람이 알아보고 읽는 편지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맡아 전했고, 먹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돌판이 아니라 살로 된 마음이라는 판에 쓰인 편지입니다.

새 언약을 섬기는 힘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향한 이런 확신을 지니고 있습니다. 무엇을 우리에게서 나온 것으로 헤아리는 일을 우리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도리어 우리의 감당할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분이 또한 우리에게 새 언약을 섬기는 이로서 감당할 힘을 주셨습니다. 문자를 섬기는 이가 아니라 영을 섬기는 이입니다. 문자는 죽이고 영은 살리기 때문입니다.

더 큰 영광

그런데 돌에 문자로 새겨진 죽음의 섬김이 영광 가운데 나타나서 이스라엘 자손은 모세의 얼굴에 어린, 없어져 가는 그 영광 때문에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면, 그렇다면 영의 섬김은 어찌 더욱 영광 가운데 있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 정죄의 섬김에 영광이 있었다면 의의 섬김에는 훨씬 더 영광이 넘칩니다. 실은 영광스럽게 되었던 것이 이 점에서는 그것을 뛰어넘는 영광 때문에 영광스럽게 되지 않았습니다. 없어져 가는 것이 영광을 띠고 왔다면, 남아 있는 것은 훨씬 더 영광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벗겨지는 너울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소망을 지니고 있기에 조금도 거리낌 없이 말합니다. 우리는 모세처럼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얼굴을 너울로 가리곤 했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없어져 가는 것의 끝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굳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날까지도 옛 언약을 읽을 때에 바로 그 너울이 벗겨지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그 너울은 그리스도 안에서라야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실은 오늘까지도 모세의 글이 읽힐 때마다 너울이 그들의 마음을 덮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로 돌아설 때에는 그 너울이 벗겨집니다. 그런데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너울이 벗겨진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바라보며, 영광에서 영광으로 바로 그 형상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영이신 주님께로부터 오는 변화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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