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풀어 읽기 · 23장
이 장의 자리 · 22–29장 · 성전 준비와 솔로몬
더 이상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역대상 23장은 숫자와 이름으로 가득합니다. 레위 사람 3만 8천 명을 세고, 그들을 네 가지 직무로 나누며,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의 자손을 차례로 기록합니다. 처음 읽으면 성전 건축을 앞두고 필요한 사람들을 배치한 행정 기록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 장의 중심에는 이 모든 숫자와 이름을 새롭게 이해하게 하는 짧은 문장이 있습니다.
「그러니 레위 사람들도 더는 성막과 그 안에서 섬기는 데 쓰는 모든 기구를 짊어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레위 사람들은 오랫동안 성막을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광야에서는 이스라엘이 이동할 때마다 성막을 해체하고, 그 기구들을 옮기고, 다시 세우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의 오랜 직무 가운데 하나가 끝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막을 운반하던 사람들이 더 이상 그것을 옮기지 않아도 된다면,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직무가 끝난 것일까요? 아니면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새로운 방식이 열리는 것일까요?
앞 장에서 성전을 지을 사람과 건축에 필요한 준비가 강조되었다면, 여기서는 그 성전에서 예배가 지속되도록 섬길 사람들이 중심에 등장합니다. 건물을 세우는 문제에서 그 건물 안에서 이루어질 삶과 예배의 문제로 시선이 옮겨 갑니다.
왕이 바뀌는 때에 예배의 질서를 세우다
다윗의 마지막 시기에 이루어지는 일
23장은 다윗의 노년을 알리는 말로 시작합니다.
다윗은 나이가 많아졌고 오랜 삶을 누렸습니다. 그는 아들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습니다.역대상 23:1 · 두루새김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왕위 계승을 알린 직후, 왕궁의 관리나 군대 지휘관보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주목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모았습니다.역대상 23:2 · 두루새김
왕이 바뀌는 시기에 다윗이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왕실의 권력만이 아닙니다. 새로운 왕의 시대에도 여호와야훼를 향한 예배가 지속될 수 있도록 사람들과 직무를 정비하는 일입니다. 다윗은 나라를 확장한 왕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예배를 정돈하는 왕으로도 그려집니다.
다윗은 서른 살 이상의 레위 남자들을 조사합니다. 그 수는 3만 8천 명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네 종류의 직무로 나눕니다.
| 직무 | 인원 | | --- | --- | |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하는 일의 감독 | 24,000명 | | 관리와 재판관 | 6,000명 | | 문을 지키는 사람 | 4,000명 | | 찬양 담당자 | 4,000명 | | 합계 | 38,000명 |
레위 사람들의 일은 제사와 직접 관련된 일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성소의 일을 감독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관리와 재판관, 출입을 지키는 사람들,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도 포함됩니다.
관리와 재판의 영역까지 등장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예배 질서가 공동체의 생활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실제로 역대상 26:29–32에서는 레위 사람들에게 성소 밖의 행정과 재판에 관련된 직무도 맡겨집니다.
또한 성소의 문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건물의 안전을 유지하는 작업으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장소의 출입을 관리하고 정해진 질서를 지키는 일입니다. 뒤에 나오는 역대상 26장은 이 문을 지키는 사람들의 조직을 더욱 자세히 설명합니다.
「4천 명은 문을 지키고, 4천 명은 내가 찬양하려고 만든 악기로 여호와야훼를 찬양하게 하여라.」역대상 23:5 · 두루새김
여기에는 다윗이 자신을 가리키는 「내가」라는 표현이 남아 있습니다. 다윗이 마련한 악기가 새로운 시대에도 사용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음악이 성소에 덧붙이는 장식이 아니라 정식으로 조직된 직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사람과 악기와 질서가 배정됩니다.
성전에서 이루어질 예배는 제사장 한 사람이 제물을 바치는 순간만으로 구성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준비하는 수많은 사람의 섬김이 그 예배를 떠받칩니다.
새로운 조직이지만, 뿌리는 오래된 질서에 있다
6절에서 다윗은 레위 사람들을 다시 나눕니다.
다윗은 레위의 아들들인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의 집안에 따라 그들을 여러 조로 나누었습니다.역대상 23:6 · 두루새김
게르손과 그핫과 므라리는 광야 시대부터 레위 지파를 구성했던 세 주요 계열입니다(출 6:16; 민 3:17). 게르손 자손은 성막의 휘장과 덮개 등을, 그핫 자손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거룩한 기구들을, 므라리 자손은 성막의 널빤지와 기둥과 받침 등을 운반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민 4:4–33).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성막을 운반할 필요가 없다고 선언됩니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집안별 조직도 사라져야 할까요?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기존의 집안들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직무에 맞게 편성합니다. 광야에서 성막을 섬겼던 레위 지파가 이제 예루살렘의 성전을 섬기게 됩니다. 섬기는 방식은 달라지지만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동일하십니다.
새로운 예배 질서는 오래된 언약의 역사와 단절되지 않은 채 시작됩니다.
이름을 하나씩 기록하는 이유
족보는 직무를 맡을 사람들을 확인하는 기록이다
7절부터는 긴 족보가 이어집니다. 게르손 계열의 라단과 시므이, 그핫 계열의 아므람과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 므라리 계열의 마흘리와 무시의 자손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다윗은 앞에서 레위 사람들의 직무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그 직무를 맡을 사람들의 집안을 확인합니다. 누가 어느 집안에 속하고, 각 집안의 우두머리가 누구이며, 어떤 집안들이 하나의 조직 단위가 되는지를 기록합니다.
야핫이 우두머리였고 시사가 둘째였습니다. 여우스와 브리아는 아들들이 많지 않아서, 두 집안을 하나로 묶어 한 조로 삼았습니다.역대상 23:11 · 두루새김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몇 명 있었는지는 단순한 가족사가 아니라 직무 조직을 결정하는 요소가 됩니다. 여기서 각 집안의 규모와 조직상의 필요가 함께 고려되고 있습니다.
9–10절에서 시므이의 아들들이 두 차례 등장하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9절은 슬로밋과 하시엘과 하란을 기록하고, 10절은 야핫과 시나와 여우스와 브리아를 기록합니다. 특히 9절은 그들을 라단에게서 이어진 집안들의 우두머리라고 설명합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서로 다른 계열을 기록한 것인지, 전해 내려온 족보의 배열에 복잡한 관계가 남아 있는 것인지는 이 본문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이름들을 임의로 합치거나 서로 다른 형태를 모두 같은 사람으로 단정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아론과 모세는 형제였지만, 그 후손의 직무는 같지 않다
족보의 한가운데에서 특별한 대조가 등장합니다.
아므람의 아들들은 아론과 모세였습니다. 아론과 그의 자손들은 영원히 지극히 거룩한 사람들로 구별되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 앞에서 향을 피우고 여호와야훼를 섬기며, 영원히 그분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 주는 일을 맡았습니다.역대상 23:13 · 두루새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아들들은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들로 등록되었습니다.역대상 23:14 · 두루새김
출애굽 이야기에서 두 사람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고 광야에서 인도하는 일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모세는 평범한 인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전했고,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언약을 잇는 사람으로 섬겼습니다. 신명기 34:10은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고까지 평가합니다.
그런데도 그의 아들들이 모세의 특별한 지위를 근거로 제사장의 직무를 물려받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제사장 직무는 모세 개인의 위대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후손에게 맡기신 구별된 직무에 따라 이어집니다(출 28:1; 민 18:1–7). 이스라엘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후손이라고 해서 모든 거룩한 직무에 대한 우선권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13절의 「지극히 거룩한 사람들로 구별되었습니다」라는 표현에는 원문상의 해석 문제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레하크디쇼 코데쉬 코다쉼(קָדַשׁ)은 문법적으로 「그를 지극히 거룩하게 구별하다」라는 방향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한편 전통적인 다른 읽기에서는 지극히 거룩한 것들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직무로 이해합니다.
특히 마지막 직무인 복을 빌어 주는 일은 민수기 6:22–27과 연결됩니다. 그곳에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 주도록 명령받습니다. 제사장의 역할은 제물을 바치는 행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선포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아론의 후손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예배를 담당하는 특별한 책임을 지고, 다른 레위 계열은 그 예배를 위한 다양한 봉사를 맡습니다. 이 구분은 뒤에 나오는 28절의 「아론 자손을 도와」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바탕이 됩니다.
후손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맡겨진 자리다
모세의 후손은 게르솜과 엘리에셀의 계열로 이어집니다(15–17절). 이어 이스할과 헤브론과 웃시엘의 자손이 소개되고, 마지막으로 므라리 자손의 족보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22절에는 또 하나의 특이한 가족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아자르는 아들 없이 딸들만 두고 죽었습니다. 그 딸들의 친족인 기스의 아들들이 그들과 결혼했습니다.역대상 23:22 · 두루새김
여기서 엘아자르는 21절에 등장한 므라리 계열 마흘리의 아들이며, 모세의 아들 엘리에셀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이 기록은 딸들만 남은 집안의 가족 관계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 장은 이 혼인이 재산이나 직무를 물려받는 데 구체적으로 어떤 법적 효과를 가져왔는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 목적을 하나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족보 작성자가 그 집안의 후손 관계를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이 사실을 중요하게 다루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 이름들 가운데에는 후대 독자가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성전의 봉사는 유명한 조상 몇 사람의 이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일할 사람들이 있어야 하며, 그 사람들이 어떤 공동체에 속하는지가 정해져야 합니다.
이 긴 족보가 끝나는 순간, 본문은 다시 그들의 직무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제 가장 중요한 변화의 이유가 밝혀집니다.
서른 살에서 스무 살로 — 안식이 가져온 변화
왜 레위 사람들의 연령 기준이 달라지는가
3절에서는 서른 살 이상인 레위 사람들을 조사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4절에서는 다른 기준이 나옵니다.
이들은 조상 집안별로 나뉜 레위 자손, 곧 각 집안의 우두머리들이었습니다.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스무 살 이상이었으며, 그 이름을 하나하나 세어 명단에 올렸습니다.역대상 23:24 · 두루새김
27절에서도 스무 살 이상이라는 기준이 반복됩니다. 27절은 스무 살 이상이라는 기준을 「다윗의 마지막 지시에 따라」 정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역대상은 새로운 편성의 배경을 바로 이어지는 25–26절에서 제시합니다.
이는 다윗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서 자기 백성이 편히 쉬게 해 주셨고, 예루살렘에 영원히 자리 잡으셨다.」역대상 23:25 · 두루새김
「그러니 레위 사람들도 더는 성막과 그 안에서 섬기는 데 쓰는 모든 기구를 짊어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역대상 23:26 · 두루새김
더 이상 이동하지 않는 성막
성막은 이스라엘과 함께 이동하는 성소였습니다.
성막 봉사에는 이동을 준비하고, 기구들을 운반하고, 새로운 장소에서 다시 설치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직무에는 무거운 구조물을 다루는 육체노동과 엄격한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봉사는 광야에서와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성소를 운반하기 위한 조직에서, 정해진 장소에서 지속적으로 예배를 섬기는 조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주신 안식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그 안식은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예배하는 방식까지 바꾸어 놓습니다.
「예루살렘에 영원히 자리 잡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만 존재하시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예배를 위한 정해진 중심이 세워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아직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한 때는 아닙니다. 다윗은 앞으로 이루어질 성전 중심의 예배 질서를 내다보며 레위 사람들의 직무를 편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무 살 이상이라는 기준도 이러한 직무 재편의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본문은 운반할 짐이 가벼워졌기 때문에 연령이 정확히 열 살 낮아졌다고 직접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두 사건의 연결에서 생각할 수 있는 설명이지 명시적인 규정은 아닙니다.
직무는 달라져도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윗은 레위 사람들에게 더 이상 성막을 짊어질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들의 봉사를 중단시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앞으로 맡을 일을 더욱 세밀하게 정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를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운반은 그 섬김을 수행했던 하나의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상황을 허락하시자 그들이 맡아야 할 구체적인 일도 달라집니다.
조금 더 깊이
민수기 4:3에서는 서른 살부터 쉰 살까지 성막에서 봉사할 사람들을 조사하도록 합니다. 민수기 8:24–26에서는 스물다섯 살부터 봉사를 시작하고 쉰 살에 정규 직무에서 물러나도록 규정합니다. 민수기의 서로 다른 연령 규정과 역대상 23장의 규정이 실제로 어떤 절차를 거쳐 조정되었는지는 본문들이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또한 3절의 3만 8천 명은 서른 살 이상을 조사한 수이므로, 스무 살 이상으로 기준을 넓힌 뒤에도 총인원이 그대로였다고 계산해서는 안 됩니다.
성전의 일상 — 보이지 않는 일을 맡는 사람들
「아론 자손을 도와」라는 말의 의미
다윗은 레위 사람들의 새로운 직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레위 사람들의 일은 아론 자손을 도와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뜰과 방들을 관리하고, 모든 거룩한 것을 깨끗하게 하며, 하나님의 집에서 필요한 일을 해야 했습니다.역대상 23:28 · 두루새김
이는 모두가 동일한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맡겨진 일을 통해 하나의 예배가 이루어지도록 돕는다는 뜻입니다. 이 구분은 민수기 18:1–7에서도 확인됩니다. 그곳에서는 레위 사람들이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도와 성소를 섬기도록 하지만, 제사장에게만 맡겨진 직무를 함부로 수행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합니다.
「깨끗하게 하며」라는 말 역시 단순히 일반적인 청소를 뜻한다고 한정해서는 안 됩니다. 성전과 거룩한 기구에 적용되는 정결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까지 포함하는 표현입니다.
레위 사람들은 사람들의 눈에 가장 잘 띄는 역할만 맡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장소가 그 목적에 맞게 사용되도록 일상의 질서를 지킵니다.
빵을 준비하고, 가루를 다루고, 치수를 확인하다
29절은 더욱 구체적입니다.
또 하나님 앞에 차려 놓는 빵, 곡식 제물에 쓸 고운 가루, 누룩을 넣지 않은 얇은 빵, 판에 굽는 것, 섞어 반죽한 것을 맡았습니다. 필요한 양과 크기를 하나하나 맞추는 일도 맡았습니다.역대상 23:29 · 두루새김
레위기 24:5–9에는 여호와야훼 앞에 항상 차려 놓는 빵에 관한 규정이 나옵니다. 이 빵은 고운 가루로 만들어 정해진 방식에 따라 배열해야 했습니다.
또한 레위기 2장에는 곡식 제물의 재료와 조리 방식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제물은 아무렇게나 준비하는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서 정해진 절차를 따라야 했습니다.
예배에서 사용되는 재료에는 정해진 분량과 규격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바르게 측정하고 관리하는 일도 성전 봉사의 일부였습니다.
성전에서는 정확한 분량의 가루를 준비하는 일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모두 필요합니다. 두 일의 내용은 다르지만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위해 수행됩니다.
아침과 저녁, 반복되는 찬양
30절에서는 성전 봉사의 또 다른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아침마다 여호와야훼 앞에 서서 감사하고 찬양해야 했으며, 저녁에도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역대상 23:30 · 두루새김
히브리어 원문은 아침을 나타내는 말을 거듭 사용하여 반복성을 강조합니다. 매일의 일과가 시작되고 끝나는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일이 정해진 것입니다.
한편에서는 성소의 기구와 제사 재료를 준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하나님 앞에 서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두 직무는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모두 같은 예배의 일상에 속합니다.
특히 「서서」라는 표현은 찬양이 단지 마음속에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실제로 수행해야 하는 직무임을 보여 줍니다. 레위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하나님 앞에서 찬양합니다. 그들은 찬양을 자신의 기분이나 특별한 사건에만 맡겨 두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일이 공동체의 시간 속에 자리 잡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안식일과 절기에도 지속되는 봉사
31절은 하루의 반복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또 안식일과 매달 첫날과 정해진 명절에 여호와야훼께 번제를 드릴 때마다, 정해진 규정과 인원수에 따라 늘 여호와야훼 앞에서 섬겨야 했습니다.역대상 23:31 · 두루새김
한 주의 주기에는 안식일이 있고, 한 달의 흐름에는 매달 첫날이 있으며, 한 해의 흐름에는 정해진 명절들이 있습니다. 민수기 28–29장은 바로 이러한 시간에 드려야 할 제물들을 자세히 규정합니다. 역대상 23장은 이러한 제사의 주기에 레위 사람들의 봉사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31절은 정해진 번제가 드려질 때마다 레위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문맥에 맞습니다.
날마다, 안식일마다, 매달 첫날마다, 명절마다.
이스라엘의 시간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예배하는 일로 조직됩니다.
이 장에서 성전의 새로운 질서는 단순히 공간의 변화가 아니라 시간의 변화이기도 합니다. 움직이는 성막을 중심으로 봉사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지속적인 예배의 시간을 지키는 사람들이 됩니다.
새로운 성전 안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성막
마지막 32절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그들은 성막과 성소에서 맡은 일을 지키고, 같은 친족인 아론 자손을 돕는 책임을 다하며 여호와야훼의 집에서 섬겨야 했습니다.역대상 23:32 · 두루새김
앞에서 다윗은 성막을 더 이상 짊어질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절에서는 여전히 성막에서 맡은 일을 지키라고 합니다.
앞의 26절에서 끝나는 것은 성막과 기구를 운반해야 하는 책임입니다. 그러나 성막을 통해 주어진 예배와 성소의 책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레위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장소에서 봉사하지만, 그들이 지켜야 할 거룩한 책임은 이스라엘이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역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더욱이 이 구절은 아론 자손을 「같은 친족」이라고 부릅니다. 앞에서 제사장과 다른 레위 사람들의 직무가 분명히 구별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레위 지파에 속한 친족입니다. 한쪽은 제사장으로, 다른 쪽은 그들을 돕는 사람들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맺음 — 짐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 편히 쉬게 해 주셨다는 사실은 섬김의 끝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식에 어울리는 새로운 섬김의 질서가 시작된다는 뜻입니다.
나무와 천으로 만들어진 성막을 운반하던 사람들. 그들이 이제는 짐을 내려놓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서 일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성소의 뜰과 방을 관리하고, 어떤 사람은 제물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합니다. 누군가는 성소의 출입을 지키고, 누군가는 정해진 시간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그 안식 가운데 성전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됩니다.
아침이 오면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서고, 저녁이 오면 다시 그 자리에 섭니다. 광야에서는 성막을 짊어지고 길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정해진 자리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마칩니다.
그들이 짊어지던 성막은 멈추었지만, 여호와야훼를 향한 그들의 섬김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