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13장

이 장의 자리 · 12–16장 · 둘로 나뉜 나라

말씀을 전한 사람도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열왕기상 13장은 읽을수록 불편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의 제단을 향해 심판을 선포합니다. 왕이 그를 붙잡으려 하자 왕의 손이 말라 굳어 버리고, 제단은 그의 예언대로 갈라집니다. 왕이 기도를 부탁하자 하나님의 사람은 그를 위해 기도하고, 왕의 손은 낫습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중간에서 방향이 완전히 바뀝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왕이 제안한 선물을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늙은 예언자가 전하는 거짓말에는 넘어갑니다. 그는 하나님께 받은 명령을 어기고 돌아가 빵을 먹고 물을 마십니다. 결국 사자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그를 속인 늙은 예언자가 살아남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에게 진짜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전해지고, 그는 죽은 사람의 시신을 거두어 자기 무덤에 묻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사건 바로 뒤에 놓였을까요? 거짓말을 한 사람보다 거짓말에 속은 사람이 더 심각한 결과를 맞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 전하는가에 따라 권위를 얻습니까, 아니면 왕과 예언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 말씀 앞에 서야 합니까?

읽는 시간 22분소단락 913장 본문 읽기 →

하나님의 사람은 왜 왕이 아니라 제단을 향해 외쳤는가

열왕기상 13:1–3 본문 →

제단 곁에 서 있는 왕

이야기는 여로보암이 제단 곁에 서 있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한 명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유다에서 벧엘로 왔습니다. 여로보암은 연기를 올리려고 제단 곁에 서 있었습니다.열왕기상 13:1 · 두루새김

왕은 제단을 세웠고, 절기를 정했으며, 제사장들을 임명했습니다. 이제 자신이 마련한 제단에서 직접 연기를 올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유다에서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에게는 이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왕실의 관리인지, 어떤 집안의 후손인지, 얼마나 유명한 인물인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그를 오직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의 권위는 개인적인 명성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1절과 2절은 그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왔고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외쳤다고 거듭 밝힙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정치적 권한으로 제단과 제사장과 절기를 마련했습니다. 반면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따라 그 자리로 들어옵니다.

두 사람의 권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가 처음부터 대조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은 여로보암에게 직접 말을 걸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제단을 향해 외쳤습니다. 「제단아, 제단아!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다윗 집안에 요시야라는 아들이 태어날 것이다. 그는 네 위에서 연기를 올리는 산당 제사장들을 네 위에서 죽여 제물로 바칠 것이다. 또 사람들이 네 위에서 사람의 뼈를 태울 것이다.』」열왕기상 13:2 · 두루새김

왜 왕에게 죄를 지적하지 않고 제단을 부르는 것일까요? 본문은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행동의 효과는 분명합니다.

심판의 대상이 단순히 여로보암 개인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그가 세운 예배 제도 자체가 하나님의 판결 아래 놓입니다. 여로보암이 살아 있든 죽든 그 제단은 계속 존재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왕이 그 제단을 이용할 수도 있고, 다음 세대가 그곳에서 제사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바로 그 지속될 수 있는 예배의 중심을 향해 말씀을 선포합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요시야의 이름

여로보암은 다윗 왕조와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왕국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제단을 심판할 사람은 다윗 집안에서 태어날 왕이라고 선포됩니다.

그 이름까지 주어집니다.

요시야.

열왕기하 23:15–20을 보면 요시야가 벧엘의 제단과 산당을 파괴하고, 무덤에서 꺼낸 사람의 뼈를 제단 위에서 태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열왕기하의 서술자는 이 일을 열왕기상 13장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전한 말씀이 이루어진 사건이라고 직접 연결합니다.

왕이 세운 것은 당장 눈앞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그 왕이 살아 있는 기간보다 훨씬 먼 미래까지 바라봅니다.

제단 위에 사람의 뼈를 태운다는 의미

예언은 요시야가 산당 제사장들을 제단 위에서 죽여 제물로 바치고, 사람들이 그 위에서 사람의 뼈를 태우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현대 독자에게 매우 잔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폭력적인 심판의 이미지이며, 이를 단지 상징적 표현으로 부드럽게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에서 죽은 사람의 몸과 뼈는 의식상 부정한 것과 관계됩니다(민수기 19:11–16). 따라서 사람의 뼈를 제단 위에서 태우는 일은 그 제단을 예배에 알맞지 않은 장소로 만드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제단이 더 이상 거룩한 제사의 장소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그토록 먼 미래에 이루어질 말씀을 여로보암은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람은 즉시 확인할 수 있는 표징도 제시합니다.

그날 그는 표징이 될 일을 알리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야훼께서 말씀하신 표징이다. 보아라. 제단이 갈라지고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질 것이다.」열왕기상 13:3 · 두루새김

눈앞에서 제단이 갈라지는 일은 훗날 그 제단에 관한 더 큰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한 약속만이 아니라, 지금 눈앞의 현실을 흔드는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조금 더 깊이

다만 이처럼 훗날 등장할 왕을 이름까지 지목하는 예언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구별이 필요합니다. 본문을 기록된 그대로 읽으면 특정한 미래 인물에 관한 예언이며, 열왕기의 최종 서술이 훗날 그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아는 자리에서 이 사건을 전하고 있다는 문학적 이해도 가능합니다. 본문 자체만으로 처음 한 말이 어떻게 생겨나고 전해졌는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왕의 손은 말라 버렸지만 다시 회복되었다

열왕기상 13:4–6 본문 →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이 제단을 향해 외치는 말을 듣고 곧바로 반응합니다.

여로보암 왕은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의 제단을 향해 외치는 말을 듣고, 제단 곁에서 그를 향해 손을 뻗으며 명령했습니다. 「저자를 붙잡아라!」 그러자 뻗은 손이 말라 굳어 버려, 왕은 손을 도로 거두지 못했습니다.열왕기상 13:4 · 두루새김

왕은 자신의 권위를 사용해 하나님의 사람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권위를 표현하던 손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왕이 내민 손이 오히려 왕 자신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제단도 갈라지고 그 위에 있던 재가 쏟아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알린 표징대로였습니다.열왕기상 13:5 · 두루새김

왕이 자신의 명령으로 붙잡으려 했던 사람은 붙잡히지 않았고, 왕이 자신의 예배를 위해 세운 제단은 갈라집니다. 이 장면은 정치적 권력과 종교적 권력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대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왕의 손은 낫습니다.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부디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야훼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해 주십시오. 제 손이 낫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야훼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자, 왕의 손이 나아 전처럼 되었습니다.열왕기상 13:6 · 두루새김

여기서 왕은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야훼」라고 부릅니다. 이 표현만으로 여로보암의 마음속 신앙 상태를 모두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이 세운 제단의 권위나 왕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섬기는 여호와야훼께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제단을 철거하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손이 낫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것을 여로보암의 예배 제도를 승인하셨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갈라진 제단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제단을 향한 심판의 말씀도 거두어지지 않았습니다.

왕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돌아볼 만한 사건이 충분히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몸이 낫는 것과 마음이 돌아서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차이는 장의 마지막에서 분명해집니다.

왕의 집에 들어가지 말라는 명령

열왕기상 13:7–10 본문 →

손이 나은 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을 자기 집으로 초대합니다.

조금 전에는 그를 붙잡으라고 명령했지만, 이제는 식사와 선물을 제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대답했습니다.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제게 주셔도 함께 가지 않겠습니다. 이곳에서는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겠습니다.」열왕기상 13:8 · 두루새김

본문은 그가 여호와야훼께 직접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명령에는 세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벧엘에서 빵을 먹지 말 것, 물을 마시지 말 것, 왔던 길로 돌아가지 말 것.

이 명령의 이유를 하나님께서 직접 풀이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벧엘의 제단을 심판하라는 말씀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왕의 초대를 받아 식사하고 선물을 받으면, 그가 선포한 심판과 왕의 예배 제도 사이의 거리가 흐려질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함께 먹고 마시는 행위는 단순히 영양을 얻는 일을 넘어 손님을 맞이하고 관계를 표현하는 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식사를 거절하라는 명령은 벧엘에서 이루어지는 잘못된 예배와 관계를 맺지 말라는 상징적 행동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본문이 직접 밝힌 설명이 아니라 문맥에 근거한 해석입니다. 빵과 물을 금하신 이유를 반드시 하나의 상징으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왕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았으며, 선물도 거절했습니다. 명령받은 대로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가 벧엘을 떠나던 길에서 멈추어 앉았을 때, 또 한 사람이 그를 찾아옵니다. 이번에는 왕이 아닙니다.

예언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하게 만든 것은 또 다른 예언자의 말이었다

열왕기상 13:11–19 본문 →

늙은 예언자는 왜 하나님의 사람을 뒤쫓았을까?

벧엘에는 늙은 예언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그날 벧엘에서 일어난 일을 아버지에게 들려줍니다. 아들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까지 전합니다.

늙은 예언자는 그가 어느 길로 갔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나귀에 안장을 얹게 한 뒤 그를 뒤쫓습니다.

늙은 예언자가 금송아지 예배를 지지했는지, 반대했는지, 아니면 그저 벧엘에 살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을 속인 동기 역시 설명되지 않습니다.

늙은 예언자는 마침내 테레빈나무 아래 앉아 있는 하나님의 사람을 발견합니다. 왕의 위협도 없고, 갈라지는 제단도 없습니다. 한 예언자가 다른 예언자에게 집으로 가서 빵을 먹자고 권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평범한 제안이 하나님의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왕에게 거절했던 말을 다시 하다

늙은 예언자가 집으로 돌아가 빵을 먹자고 권하자 하나님의 사람은 처음에는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당신과 함께 돌아가 집에 들어갈 수는 없어요. 이곳에서는 빵도 먹지 않고 당신과 함께 물도 마시지 않겠어요.」열왕기상 13:16 · 두루새김

이 대답은 왕에게 했던 말과 거의 같습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받은 명령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여호와야훼께서 자신에게 빵을 먹지 말고 물을 마시지 말며 왔던 길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셨음을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그런데 늙은 예언자는 이 명령을 정면으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늙은 예언자가 말했습니다. 「저도 당신과 같은 예언자예요. 천사가 제게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이렇게 전해 주었어요. 『그를 데리고 네 집으로 돌아가서 빵을 먹고 물을 마시게 하여라.』」 그러나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습니다.열왕기상 13:18 · 두루새김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이 거절하려면 단순히 다른 사람의 친절한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달된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지시를 거절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했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받지 않은 계시를 받은 것처럼 말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사람은 속았는가

하나님의 사람은 늙은 예언자와 함께 돌아가 그의 집에서 빵을 먹고 물을 마셨습니다.열왕기상 13:19 · 두루새김

왜 마음을 바꾸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정말로 천사의 말이라고 믿었는지, 늙은 예언자의 지위에 압도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왕의 위협과 선물은 하나님의 사람이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왕은 자신의 뜻을 따라 행동하라고 요구했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이미 여호와야훼에게 받은 명령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늙은 예언자는 자신의 요구를 여호와야훼의 새로운 말씀으로 제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제 서로 충돌하는 두 말 앞에 놓입니다. 하나는 자신이 직접 받은 명령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언자라는 사람이 천사를 통해 받았다고 주장하는 명령입니다. 본문이 명확하게 알려 주는 것은 둘 가운데 뒤의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한 말이라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아닙니다.

조금 더 깊이

이 문제는 신명기 13:1–5와도 연결됩니다. 그곳에서는 예언자나 꿈꾸는 사람이 놀라운 표징을 제시하더라도, 이미 주어진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한다면 그를 따라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신명기의 상황과 이 장면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닙니다. 늙은 예언자는 다른 신을 섬기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야훼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공통적인 원칙은 분명합니다. 종교적 권위를 주장하는 사람의 말도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거짓말한 예언자가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

열왕기상 13:20–23 본문 →

두 사람은 식탁에 앉아 있습니다.

그들이 식탁에 앉아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을 데리고 돌아온 늙은 예언자에게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전해졌습니다.열왕기상 13:20 · 두루새김

18절의 천사에 관한 말은 늙은 예언자의 거짓 주장입니다. 20절에서 여호와야훼의 말씀이 전해졌다는 것은 서술자가 직접 밝히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늙은 예언자가 한 번 거짓말했다는 이유로 그가 이후 전한 말까지 모두 거짓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동시에 그에게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다는 사실이 앞선 거짓말을 정당화하지도 않습니다.

본문은 한 사람의 입에서 거짓말과 참된 예언이 모두 나오는 불편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과 말씀의 참됨

늙은 예언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향해 외칩니다.

늙은 예언자가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에게 외쳤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네가 여호와야훼의 말을 거역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야훼가 네게 내린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열왕기상 13:21 · 두루새김

이어 그가 돌아와 빵을 먹고 물을 마셨기 때문에 그의 시신이 조상들의 무덤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이야기가 거짓말을 하는 예언자도 얼마든지 신뢰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늙은 예언자의 거짓말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참된 순종과 종교적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인 복종은 구별되어야 합니다.

종교 지도자가 성경을 정확하게 설명했다는 사실과 그 지도자의 모든 행동이 올바르다는 사실은 같지 않습니다. 또한 지도자의 개인적인 권위가 성경의 권위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왜 속은 사람이 벌을 받고 속인 사람은 벌을 받지 않는가?

늙은 예언자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람은 돌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심판의 말씀은 속은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거짓말을 한 사람에 대한 직접적인 징벌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에게도, 늙은 예언자에게도 그 명령을 정확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여 자신이 받은 명령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습니다.

본문은 그 행동을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거역한 것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늙은 예언자의 책임이 없어진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명백히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거짓말이 하나님의 사람을 돌아가게 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본문은 그의 행동이 옳았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에 대한 별도의 징벌을 기록하지 않을 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왜 그에게는 즉각적인 징벌을 내리지 않으셨는지,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왜 그토록 엄중한 결과를 선포하셨는지도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모든 사람의 잘못에 비례한 처벌을 독자가 확인하도록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신 분명히 받은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 줍니다. 그렇다고 독자가 느끼는 도덕적 불편함을 지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짓말한 사람이 살아남고 속은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본문은 그 긴장을 풀어 주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사자는 죽였지만 먹지 않았고, 나귀는 도망가지 않았다

열왕기상 13:24–28 본문 →

하나님의 사람은 빵을 먹고 물을 마신 뒤 다시 길을 떠납니다.

늙은 예언자는 그를 위해 나귀에 안장을 얹어 줍니다. 그런데 길에서 사자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길을 떠나자 사자가 길에서 그를 만나 죽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길에 내던져져 있었고, 나귀와 사자가 시신 곁에 서 있었습니다.열왕기상 13:24 · 두루새김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성읍에 알립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곧이어 거의 같은 장면을 반복합니다.

그는 길로 나가 내던져진 시신과 그 곁에 서 있는 나귀와 사자를 찾아냈습니다. 사자는 시신을 먹지도 않았고 나귀를 해치지도 않았습니다.열왕기상 13:28 · 두루새김

단순한 맹수의 공격으로 끝나지 않는 사건

사자가 사람을 공격하여 죽이는 일 자체는 자연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이러한 이상한 모습을 강조하여 사건이 평범한 맹수의 습격과 다르게 이해되도록 합니다. 늙은 예언자는 이 소식을 듣고 그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거역했기 때문에 사자에게 넘겨졌다고 말합니다(13:26). 앞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어진 심판의 말씀과 연결하면, 그의 죽음은 단순히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 예고된 심판이 이루어진 사건으로 제시됩니다.

두 개의 표징, 서로 다른 운명

하나님의 사람은 제단이 갈라지고 재가 쏟아질 것이라고 예언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늙은 예언자는 그가 조상들의 무덤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포했고, 하나님의 사람은 길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두 사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두 사건에서 심판의 대상은 다릅니다.

첫 번째는 여로보암이 만든 제단입니다. 두 번째는 그 제단을 심판하라고 보냄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도 그 말씀의 권위에서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벧엘의 제단에 대해 올바른 예언을 했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을 어길 권리를 얻지 못합니다. 그가 왕 앞에서 용감했다는 사실도 이후의 불순종을 없던 일로 만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불순종이 반드시 이와 같은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일반 법칙을 끌어내서는 안 됩니다. 본문은 특정한 명령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과 그가 받은 특별한 심판에 관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모든 신앙인의 실수나 잘못에 똑같이 적용할 근거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참된 말씀을 전했지만, 자신의 삶에서는 그 말씀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몸은 길 위에 남겨졌습니다.

자신이 속인 사람을 자기 무덤에 묻은 예언자

열왕기상 13:29–32 본문 →

늙은 예언자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신을 거두어 자기 성읍으로 가져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의 시신을 자기 무덤에 묻었습니다. 사람들은 「아, 내 형제여!」 하며 슬피 울었습니다.열왕기상 13:30 · 두루새김

그런데 이 행동은 앞서 선포된 심판의 말씀과도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조상들의 무덤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벧엘에 사는 늙은 예언자의 무덤에 묻힙니다.

죽은 예언자와 함께 묻히기를 원하다

장례를 마친 늙은 예언자는 아들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묻은 뒤, 늙은 예언자가 아들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묻힌 무덤에 나도 묻어라. 그의 뼈 곁에 내 뼈를 두어라.」열왕기상 13:31 · 두루새김

그들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만났습니다. 게다가 그 만남에는 거짓말과 불순종, 죽음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 구절에서 밝혀집니다.

「그가 여호와야훼의 말씀에 따라 벧엘의 제단과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 건물을 향해 외친 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열왕기상 13:32 · 두루새김

그는 자신이 받은 명령을 어겼고, 그 결과 조상들의 무덤에 묻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벧엘의 제단을 향해 전한 말씀은 거짓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실패했다고 해서 그가 전한 참된 하나님의 말씀까지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늙은 예언자는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기에, 하나님의 사람과 같은 무덤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그가 앞으로 벧엘의 제단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생각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요청입니다.

훗날 요시야가 발견한 무덤

열왕기하 23장에서 요시야는 벧엘의 제단을 무너뜨립니다.

그는 무덤들에서 사람의 뼈를 꺼내 제단 위에 태워 그 제단을 더럽힙니다. 그러다가 한 무덤을 발견하고 그것이 누구의 무덤인지 묻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이 유다에서 와서 벧엘의 제단에 관한 말씀을 선포했던 하나님의 사람의 무덤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자 요시야는 그 무덤을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사람의 뼈뿐 아니라 그와 함께 묻힌 늙은 예언자의 뼈도 그대로 남습니다(열왕기하 23:16–18).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묻힌 무덤은 훗날 자신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그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표지가 됩니다.

조금 더 깊이

그러나 본문은 그의 마음속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가 진심으로 회개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슬픔이 거짓이었다고 판단할 근거도 없습니다. 다만 그가 자신의 뼈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그렇게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구체적인 동기는 본문에 완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더 주의할 것은 13:32의 「사마리아 성읍들」이라는 표현입니다. 사마리아라는 성읍은 열왕기상 16:24에서 오므리가 세우고 이름을 붙인 것으로 기록됩니다. 따라서 여로보암 시대의 사건을 전하는 13장에서 사마리아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은 후대에 익숙해진 지역 이름으로 앞선 시대를 설명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을 보고도 돌아서지 않은 왕

열왕기상 13:33–34 본문 →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시 여로보암에게 돌아옵니다.

이 일이 있은 뒤에도 여로보암은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백성 가운데서 산당 제사장들을 세웠습니다. 누구든 원하면 산당 제사장으로 세워 주었습니다.열왕기상 13:33 · 두루새김

그는 자신이 만든 예배 제도를 계속 유지하고 넓혀 갑니다. 여기서 누구든 원하면 산당 제사장으로 세워 주었다는 표현은 단순히 신분에 관계없이 사람들에게 종교적 기회를 제공했다는 뜻으로 긍정적으로 읽을 수 없습니다.

열왕기상 12:31에서 이미 여로보암이 레위 자손이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운 일이 죄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 구절도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하지 않은 자신의 제사장 제도를 이어 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회복된 손과 돌아서지 않은 마음

왕은 자신의 몸에 일어난 표징을 경험했지만, 자신의 길을 바꾸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표징이 분명했다고 해서 사람의 응답이 자동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일은 여로보암 집안의 죄가 되었고, 그 집안이 땅에서 완전히 멸망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열왕기상 13:34 · 두루새김

여기서 「이 일」은 앞선 문맥에서 여로보암이 이어 간 잘못된 예배 제도와 제사장을 세운 일을 가리킵니다. 여로보암은 자신의 집안을 지키기 위해 예배를 바꾸었지만, 그 예배를 고집한 일이 오히려 자신의 집안을 무너뜨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왕국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요구하신 것은 다윗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길을 따르는 일이었습니다(열왕기상 11:37–38). 그러나 그는 자신이 받은 왕국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웠습니다.

이제 그 선택은 개인적인 잘못을 넘어 왕조 전체의 미래에 영향을 미칩니다.

갈라진 제단과 길 위에 남겨진 시신

열왕기상 13:1–34 본문 →

이 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의 실패와, 그가 전한 말씀의 확실성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세 사람의 잘못은 서로 같지 않고 그에 대한 결과도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권위나 욕망에 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양한 장면에서 보여 줍니다.

예언자는 죽었지만 예언은 죽지 않았습니다.

왕은 살아남았지만 그가 세운 제단은 이미 심판의 말씀 아래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13장의 가장 무거운 장면은 사자가 사람을 죽인 장면만이 아닙니다. 갈라진 제단을 보고 손까지 나은 왕이 끝내 돌아서지 않았다는 마지막 기록입니다.

제단의 돌은 갈라졌습니다. 그러나 왕이 고집하던 길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벧엘에는 두 가지가 남습니다. 왕이 계속 사용하려는 제단과, 언젠가 그 제단이 무너질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람의 무덤입니다.

왕은 자신의 제단에서 제사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제단을 향해 선포된 여호와야훼의 말씀까지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