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풀어 읽기 · 12장

이 장의 자리 · 12–16장 · 둘로 나뉜 나라

백성을 섬기지 않은 왕과 하나님을 믿지 못한 왕

열왕기상 12장에는 두 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아버지에게서 왕국을 물려받았고, 다른 한 사람은 하나님께 왕국을 받겠다는 약속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왕권을 지키려다가 오히려 그 왕권의 토대를 무너뜨립니다.

르호보암은 백성을 섬기는 것보다 백성을 지배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고,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보다 자신의 왕권을 지키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읽는 시간 19분소단락 812장 본문 읽기 →

세겜에 모인 백성이 왕에게 요구한 것

열왕기상 12:1–5 본문 →

왜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세겜으로 갔을까?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그런데 새 왕은 예루살렘의 왕궁에 머물러 백성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르호보암은 세겜으로 갔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세우려고 그곳에 모였기 때문입니다.열왕기상 12:1 · 두루새김

르호보암은 다윗의 후손이며 솔로몬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 혈통만으로 온 이스라엘의 왕권이 아무런 문제 없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겜은 이스라엘의 오래된 역사와 연결된 성읍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들어온 뒤 세겜에 이르러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고(창세기 12:6–7),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새롭게 확인했습니다(여호수아 24:1–25).

여호수아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세겜에 모여 누구를 섬길 것인지 선택했습니다. 이제 솔로몬이 죽은 뒤에는 누가 자신들을 다스릴 것인지 결정하는 자리에 모였습니다.

르호보암 앞에는 왕위를 이어받을 기회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왕위를 안정적으로 이어받기 위해 백성의 말을 들어야 하는 상황도 놓여 있습니다.

백성은 왕을 없애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이집트에 머물던 여로보암이 소식을 듣고 돌아옵니다. 사람들은 그를 불러 르호보암에게 함께 나아갑니다.

「왕의 아버지께서는 저희에게 견디기 힘든 멍에를 지우셨습니다. 이제 왕께서는 아버지께서 시키신 고된 일과 저희에게 지우신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저희가 왕을 섬기겠습니다.」열왕기상 12:4 · 두루새김

이것은 충성의 조건을 제시하는 요청입니다. 여기서 「멍에」는 짐승의 목에 얹어 일을 시킬 때 사용하는 도구에서 나온 비유입니다. 백성은 솔로몬 시대의 노동과 부담을 그들의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멍에로 묘사합니다.

앞서 솔로몬의 건축 사업은 성전과 왕궁, 성벽과 병거를 두는 성읍, 여러 군사 시설을 세우는 일로 이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동에 동원되었다는 사실도 기록되었습니다(열왕기상 5:13–14; 9:15–23).

이제 그 사업을 떠받쳤던 백성이 자신의 입으로 그 경험을 말합니다.

왕국의 건물들은 완성되었지만, 그 건물들을 세우는 데 동원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감당한 부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담을 해결하는 일이 이제 새 왕의 첫 번째 과제가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은 사흘째 되는 날 다시 오라고 말합니다.

아직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왕이 백성의 종이 되면 백성이 왕을 섬길 것이다

열왕기상 12:6–11 본문 →

르호보암은 먼저 솔로몬을 섬기던 나이 든 신하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그들이 왕에게 대답했습니다. 「오늘 왕께서 이 백성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시고 좋은 말로 대답해 주신다면, 그들은 언제까지나 왕의 종이 될 것입니다.」열왕기상 12:7 · 두루새김

왕과 백성이 서로 섬긴다는 말

나이 든 신하들은 같은 계열의 말을 사용해 왕과 백성의 관계를 거꾸로 뒤집습니다. 왕이 먼저 백성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면, 백성도 왕의 종이 되어 그를 섬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왕이 백성을 섬기면, 그들은 언제까지나 왕을 섬길 것입니다.

왕권은 백성의 삶을 책임지는 일을 통해 안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무엘하 5:2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께서 그를 자기 백성의 목자로 세우셨다고 말한 장면과도 연결됩니다. 목자는 양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만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양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젊은 신하들의 조언은 왜 정반대였을까?

르호보암은 나이 든 신하들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와 함께 자란 젊은 신하들과 의논합니다. 여기서 「젊은 신하들」이라는 표현을 나이가 어리거나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으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의 핵심은 나이 자체가 아닙니다.

나이 든 신하들은 솔로몬의 통치를 경험한 사람들이고, 젊은 신하들은 르호보암과 가까운 관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나이 든 신하들은 백성의 요구에 응답하라고 합니다. 반면 젊은 신하들은 백성에게 왕의 힘을 보여 주라고 합니다.

왕과 함께 자란 젊은 신하들이 대답했습니다. 「이 백성은 왕께 『왕의 아버지께서는 저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셨지만, 왕께서는 그 무게를 덜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열왕기상 12:10 · 두루새김

이 말은 크기를 과장하여 자신이 아버지보다 훨씬 강하다고 주장하는 표현입니다.

「『내 아버지는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웠지만, 나는 그 멍에를 더 무겁게 하겠다. 내 아버지는 너희를 채찍으로 벌했지만, 나는 전갈로 벌하겠다.』」열왕기상 12:11 · 두루새김

젊은 신하들의 조언에는 한 가지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백성이 왕에게 부담을 덜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왕의 권위를 시험하는 일이며, 따라서 더 강한 위협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르호보암은 자신이 받은 요청을 왕권을 안정시킬 기회로 볼 수도 있었고,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두 번째 길을 선택합니다.

르호보암은 충성보다 두려움을 선택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다」에서 구체적으로 신체의 어떤 이미지를 강조한 것인지는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이어지는 문장이 그 뜻을 분명하게 합니다. 여기서 「전갈」은 더 고통스러운 벌을 가리키는 위협입니다. 이것을 가시나 금속이 달린 특정한 채찍의 이름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원문만으로 그런 도구의 형태를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채찍과 전갈의 대조 자체가 벌을 더욱 가혹하게 하겠다는 뜻을 충분히 전달합니다.

왕은 듣지 않았고, 백성은 떠났다

열왕기상 12:12–20 본문 →

사흘째 되는 날 여로보암과 백성이 돌아옵니다.

백성은 아직 왕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거칠게 대답합니다.

왕의 실패는 조언을 구하지 않은 데 있지 않습니다.

그는 조언을 구했습니다. 서로 다른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답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들어야 할 말을 듣고도 따르지 않은 왕입니다.

「왕은 백성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15절은 왕국 분열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두 차원을 함께 제시합니다.

왕은 백성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간 것은 여호와야훼께서 일으키신 일이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실로 사람 아히야를 통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습니다.열왕기상 12:15 · 두루새김

인간의 책임과 하나님의 통치가 서로 지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대목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악한 선택을 도덕적으로 승인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의 실제 선택과 그 결과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이루신다는 신학적 진술입니다.

왕의 말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습니다.

다윗의 집안에서 떨어져 나가는 이스라엘

온 이스라엘은 왕이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왕에게 대답했습니다. 「다윗 집안에 우리가 무슨 몫이 있느냐? 이새의 아들 집안에 우리 유산은 없다. 이스라엘아,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 다윗아, 이제 네 집안이나 돌보아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열왕기상 12:16 · 두루새김

다윗 집안과의 정치적 관계를 끊겠다는 선언입니다. 「몫」과 「유산」이라는 표현은 다윗 집안과 이스라엘 사이에 더 이상 함께 나눌 관계가 없다는 뜻을 전달합니다.

사무엘하 20:1에서 세바가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킬 때 거의 같은 외침을 사용했습니다. 다윗 시대에도 지파들 사이의 갈등이 있었고, 다윗 집안에 대한 충성이 언제나 저절로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르호보암의 말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그 말에 이르기까지 백성의 부담과 지파들 사이의 관계, 왕권에 관한 오래된 문제가 함께 존재했습니다.

강제로 동원된 사람들을 감독하는 아도람이 죽다

르호보암 왕은 나라의 일에 강제로 동원된 사람들을 감독하는 아도람을 보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에게 돌을 던져 죽였습니다. 르호보암 왕은 급히 수레에 올라 예루살렘으로 달아났습니다.열왕기상 12:18 · 두루새김

아도람이 왜 이때 보내졌는지, 왕이 그에게 정확히 어떤 임무를 맡겼는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백성의 첫 요구가 무거운 노동 부담을 줄여 달라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강제 노동을 감독하는 사람이 등장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백성이 반발하던 왕실의 부담 체계를 대표하는 인물이 그들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를 돌로 죽인 행동을 정당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 사건을 기록하지만, 그 폭력을 도덕적으로 승인한다는 설명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르호보암은 백성에게 더 무거운 멍에를 지우겠다고 위협했지만, 이제 자신의 신하를 보호할 수 없고 스스로도 도망쳐야 합니다.

처음에 르호보암은 왕으로 세워지려고 세겜에 왔습니다. 이제는 왕위를 지키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달아납니다. 여로보암은 백성의 모임에 불려 나와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솔로몬에게서 이어져 온 하나의 왕권이 이제 두 왕에게 나뉘었습니다.

조금 더 깊이

르호보암은 실제로 조언을 구했고, 나이 든 신하들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백성에게 거친 말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이야기 속에서 분명한 선택으로 제시됩니다. 동시에 열왕기는 그 선택의 결과로 일어난 왕국 분열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불순종을 심판하시며 예고하신 말씀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해석합니다. 20절은 유다 지파 말고는 다윗 집안을 따르는 지파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단락에서는 르호보암이 유다와 베냐민을 모읍니다(12:21). 20절은 다윗 집안을 따르는 정치적 중심이 유다에 남았음을 강조하고, 21절은 실제로 르호보암 편에 모인 집단에 베냐민도 포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어느 지파가 어떻게 계산되었는지에 관한 모든 세부 사항은 본문에 제시되지 않습니다.

전쟁을 준비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

열왕기상 12:21–24 본문 →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유다와 베냐민에서 뽑은 군사 십팔만 명을 모읍니다.

이스라엘과 싸워 왕권을 되찾으려는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세겜에서 백성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군사력을 사용해 그들이 떠난 결정을 되돌리려 합니다.

그런데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집니다.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야훼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올라가서 너희 형제인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지 마라.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은 나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돌아갔습니다.열왕기상 12:24 · 두루새김

정치적으로 왕국이 나뉘었지만, 그들이 서로 다른 민족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같은 출애굽의 역사를 공유하고, 같은 조상들에게 주어진 언약의 전통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제 서로 다른 왕을 섬기게 되었다는 이유로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벌이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왕국의 분열이 형제 사이의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왕국의 분열이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앞서 아히야를 통해 선포하신 판결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속한 일이므로 무력으로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장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말씀을 따른다

르호보암은 백성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12:15–16). 그러나 유다와 베냐민의 사람들은 「여호와야훼의 말씀을 듣고」 돌아갔습니다(12:24).

왕은 듣지 않음으로 왕국을 잃었고, 전쟁을 준비한 사람들은 들음으로 전쟁을 멈추었습니다.

왕국은 이미 나뉘었습니다. 분열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형제 사이의 전쟁은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때로 자신이 정당하다고 여기는 것을 무력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멈추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남쪽의 군대가 집으로 돌아간 뒤, 북쪽의 새 왕 여로보암은 또 다른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왕국을 받았지만 잃을까 두려워한 왕

열왕기상 12:25–27 본문 →

여로보암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을 튼튼하게 세우고 그곳에 삽니다. 또 브누엘도 튼튼하게 세웁니다.

세겜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던 성읍이므로, 여기서 세웠다는 표현은 도시를 처음 만들었다는 뜻보다 왕의 거점으로 정비하거나 강화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브누엘은 요단강 동쪽 지역과 연결되는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창세기 32:30–31; 사사기 8:8–17).

그런데 바로 그때 그의 마음에 두려운 생각이 떠오릅니다.

여로보암은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제 왕국이 다윗 집안으로 돌아가겠구나.」열왕기상 12:26 · 두루새김

그는 아히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열 지파를 자신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열왕기상 11:31–38).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자신의 길을 따라 걸으며 명령과 규정을 지키면 함께하시고 굳건한 집안을 세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야훼의 성전으로 제사를 드리러 올라가면, 그들의 마음이 자기들의 주인인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 돌아갈 것이다.」열왕기상 12:27 · 두루새김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나뉘었지만 예루살렘 성전은 여전히 유다 왕국 안에 있었습니다. 북쪽 백성이 중요한 축제 때마다 예루살렘을 방문한다면 그 과정에서 남쪽 왕국과의 관계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여로보암의 입장에서는 종교의 중심지가 다른 왕국에 있다는 사실이 정치적 위험으로 보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실제로 백성이 예루살렘에 다녀온 뒤 여로보암을 죽일 계획을 세웠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로보암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예상입니다.

왕의 마음이 다시 문제의 중심에 놓이다

11장에서는 솔로몬의 마음이 다른 신들을 향해 돌아섰다고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12장에서는 여로보암이 백성의 마음을 걱정합니다. 적어도 이 장의 서술에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대신 그는 백성의 움직임과 마음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스스로 계산합니다.

그 두려움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솔로몬의 위협을 피해 이집트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입니다. 왕권을 잃으면 자신의 생명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과 자신의 정치적 안전을 확보하는 길이 서로 다른 것처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왕국을 지키기 위해 예배를 바꿀 계획을 세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왕국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으신 방식으로 지키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까지 올라가는 일은 너희에게 너무 힘들다」

열왕기상 12:28–30 본문 →

여로보암은 의논한 뒤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듭니다.

왕은 의논한 뒤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고 백성에게 말했습니다. 「예루살렘까지 올라가는 일은 너희에게 너무 힘들다. 이스라엘아, 보아라. 너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네 신들이다.」열왕기상 12:28 · 두루새김

겉으로 보면 그는 백성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을 덜어 주려는 것처럼 말합니다. 르호보암에게 백성은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오히려 멍에를 더 무겁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로보암은 정반대로 행동합니다. 예루살렘까지 올라가는 부담을 덜어 주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가 실제로 해결하려는 문제는 백성의 피로가 아닙니다.

바로 앞에서 드러났듯이 그의 가장 큰 관심은 백성이 예루살렘에 다녀온 뒤 자신을 떠나는 것을 막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백성의 편의를 위한 말은 왕권을 지키기 위한 계획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출애굽의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가리키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고 그것들을 가리켜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신들이라고 선언합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32:4와 놀랍도록 가깝습니다. 시내산에서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신을 가리키는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일은 죄가 되었습니다. 백성은 그중 한 송아지 앞에 나아가려고 단까지 갔습니다.열왕기상 12:30 · 두루새김

여로보암은 자신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와 연결하는 예배의 대상으로 제시했습니다. 출애굽기 20:4–6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자신들을 위해 형상을 만들어 그것들에 절하거나 섬겨서는 안 된다고 명령합니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신앙을 말하면서도 그 신앙의 근본적인 명령을 어기는 형태의 예배를 마련했습니다.

왜 벧엘과 단이었을까?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하나를 벧엘에, 다른 하나를 단에 둡니다.

벧엘은 북쪽 왕국의 남쪽에 가까운 지역에 있고, 단은 북쪽 끝에 가까운 지역에 있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하며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부른 장소입니다(창세기 28:10–22). 단에도 이미 사사기 시대부터 종교적 전통이 있었습니다(사사기 18:29–31).

여로보암은 백성에게 아무런 기억도 없는 장소에서 새로운 예배를 시작하라고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종교적 연관성을 가진 지역들을 이용해 북쪽 왕국의 예배 중심지를 마련했습니다. 다만 왜 정확히 이 두 장소를 선택했는지, 교통과 정치적 통제, 기존의 예배 전통 가운데 무엇을 얼마나 고려했는지는 본문이 자세히 밝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대신하는 장소를 세우는 것만으로는 북쪽 왕국의 종교적 독립이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배 제도 전체를 다시 구성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더 깊이

열왕기상 12:28에서는 복수형 표현이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표현이 여로보암이 처음부터 하나님과 완전히 별개의 두 신을 섬기려 했다는 뜻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금송아지 형상으로 나타내려 했다는 뜻인지는 더 조심스럽게 살펴야 합니다. 여로보암의 선언은 출애굽의 구원 행위를 자신이 만든 송아지들과 연결합니다. 따라서 그가 이스라엘의 출애굽 신앙을 전혀 다른 역사로 바꾸어 버리려 했다기보다, 그 신앙의 언어를 이용하여 자신이 만든 예배 체계를 정당화하려 했다고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황소나 송아지 형상이 신의 힘을 나타내거나 신이 서 있는 받침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금송아지들이 하나님 자체를 형상화했는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받침이었는지에 관해서도 해석이 갈릴 수 있습니다.

왕이 스스로 만들어 낸 절기

열왕기상 12:31–33 본문 →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여로보암은 산당 건물을 짓고, 백성 가운데서 제사장들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레위 자손이 아니었습니다.열왕기상 12:31 · 두루새김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제사장 직무는 특정한 제사장 가문과 연결되어 있었고, 레위 지파는 성소에서 일하는 데 특별한 역할을 맡았습니다(민수기 3:5–10; 18:1–7). 그런데 여로보암은 레위 자손이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웁니다. 이는 자신이 마련한 예배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기존의 제사장 질서와 다른 체계를 만든 것입니다.

이제 그는 축제의 날짜까지 정합니다.

일곱째 달이 아니라 여덟째 달

여로보암은 여덟째 달 십오 일에 유다에서 지키는 축제와 같은 축제를 마련하고 제단에 올라갔습니다. 그는 자기가 만든 송아지들에게 제사를 드리려고 벧엘에서 이렇게 했습니다. 또 자기가 만든 산당들에서 일할 제사장들을 벧엘에 세웠습니다.열왕기상 12:32 · 두루새김

율법은 일곱째 달 십오 일에 초막절을 지키도록 명령합니다(레위기 23:34; 신명기 16:13–15). 달은 하나 늦추었지만 날짜는 십오 일로 유지했습니다. 본래의 절기와 비슷한 형식을 유지하면서 시기를 바꾼 것입니다.

열왕기가 강조하는 것은 그 날짜를 누가 정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로보암은 여덟째 달 십오 일에 자기가 벧엘에 만든 제단에 올라갔습니다. 그 달은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축제를 마련하고, 연기를 올리려고 제단에 올라갔습니다.열왕기상 12:33 · 두루새김

여기서 「자기 마음대로 정한」이라는 표현은 왕이 자기 마음에서 만들어 냈다는 뜻을 지닙니다.

왕의 마음에서 나온 예배

처음에는 왕의 마음속에서 시작된 염려였습니다. 그런데 그 염려가 금송아지가 되고, 예배 장소가 되고, 제사장 제도가 되고, 축제의 날짜가 됩니다.

왕의 내면에서 일어난 정치적 불안이 공동체의 예배 제도를 바꾸어 놓습니다.

예배의 형식이 갖추어지고 사람들이 모이며 왕이 제단에 올라간다고 해서, 그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예배가 누구의 말씀에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로보암의 축제는 왕 자신의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조금 더 깊이

여로보암이 정치적 필요 때문에 축제의 시기를 조정했을 가능성은 문맥상 충분합니다. 그는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는 것을 막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날짜를 선택한 구체적인 이유를 본문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지역의 농사 일정 때문이었다거나 특정한 정치적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마지막 장면 — 왕이 제단에 올라갔다

열왕기상 12:1–33 본문 →

르호보암에게는 백성을 섬기는 길이 열려 있었고, 여로보암에게는 하나님을 믿으며 순종하는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왕권이 자신을 지키는 일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을 때, 백성의 삶도 하나님의 예배도 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그는 자기가 만든 제단에 올라갑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그들의 발걸음이 어느 곳을 향하는가만이 아닙니다.

그 발걸음을 결정하는 말이 누구에게서 왔는가 하는 것입니다.

유다와 베냐민의 군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로보암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에 축제를 마련하고 제단에 올라갔습니다.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사람들이 하려던 일을 멈추었고, 다른 쪽에서는 왕 자신의 생각 때문에 새로운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2장은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남깁니다.

형제들과 싸우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 정한 날에 자신이 만든 제단에 올라가는 왕.

왕국은 둘로 갈라졌지만, 무엇을 듣고 누구의 뜻을 따라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두 왕국 앞에 놓여 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