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풀어 읽기 · 30장

이 장의 자리 · 28–31장 · 사울의 마지막 싸움

되찾은 것은 누구의 것인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불타 버린 집과 사라진 가족들이었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람들에게 이제는 돌아갈 집도, 맞아 줄 가족도 없습니다. 그들은 울 힘이 없어질 때까지 울고, 마침내 서로를 향해 분노를 돌립니다. 다윗을 따라 살아온 사람들이 이제 다윗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장은 다윗이 어떻게 적을 물리치고 가족들을 되찾았는지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승리한 뒤에 일어난 일이 이 이야기의 의미를 완성합니다.

처음에는 빼앗긴 것을 어떻게 되찾을지가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되찾은 것을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가 문제로 떠오릅니다.

읽는 시간 20분소단락 730장 본문 읽기 →

집을 잃은 사람들, 지도자를 잃을 뻔한 다윗

사무엘상 30:1–6 본문 →

다윗과 그의 부하들은 블레셋 군대에서 제외되어 시글락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 사이 아말렉 사람들이 그곳을 습격했습니다.

시글락은 아기스가 다윗에게 거처로 내어 준 성읍이었습니다(27:6). 다윗은 그곳을 근거지로 삼아 부하들과 가족들을 데리고 생활했습니다. 그동안 다윗과 부하들은 여러 지역을 습격하며 활동했지만, 이번에는 자신들의 거처가 습격을 당했습니다.

이야기의 방향이 뒤집힌 것입니다.

사무엘상 27장 8절은 다윗이 이전에 습격했던 집단 가운데 아말렉 사람들을 분명히 밝힙니다. 다만 이번 공격이 그에 대한 직접적인 보복인지는 본문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읍에 있던 여자들을 어린 이부터 나이 든 이까지 사로잡았습니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사로잡은 사람들을 끌고 떠났습니다.사무엘상 30:2 · 두루새김

독자는 포로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불타 버린 성읍에 도착한 다윗과 부하들은 가족들이 어디로 끌려갔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불타 버린 성읍뿐입니다.

다윗은 함께 있던 사람들과 더는 울 힘이 없을 때까지 소리 높여 울었습니다.사무엘상 30:4 · 두루새김

여기에는 지도자와 부하의 구별도 없습니다. 다윗의 두 아내 아히노암과 아비가일도 사로잡혀 갔습니다(30:5). 따라서 다윗은 다른 이들의 고통을 밖에서 관찰하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자신 역시 가족을 잃은 당사자입니다.

하지만 지도자라는 위치 때문에 그에게는 한 가지 고통이 더해집니다.

다윗은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부하들이 저마다 아들딸 때문에 마음이 쓰라려 다윗을 돌로 쳐 죽이자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의지하여 힘을 얻었습니다.사무엘상 30:6 · 두루새김

다윗의 부하들은 원래 안정된 삶을 누리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사무엘상 22장 2절에서 그에게 모여든 이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이거나 빚을 지거나 마음에 억울함을 품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다윗은 자신들을 받아 준 사람이자 함께 살아갈 길을 마련해 준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시글락이 불타자 그 관계가 무너질 위기에 놓입니다.

이들은 다윗을 따라 사울에게서 벗어났고, 다윗을 따라 블레셋 땅에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족마저 잃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이곳까지 이끌고 온 다윗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군사적 위기가 아닙니다. 다윗이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신뢰를 잃고, 그들에게 죽임당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힘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무엘상 30:7–10 본문 →

「다윗은 자기 하나님 여호와야훼를 의지하여 힘을 얻었습니다」라는 말은 단순히 다윗이 마음을 굳게 먹었다는 뜻보다 깊습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인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말했습니다. 「에봇을 제게 좀 가져다주세요.」 아비아달이 다윗에게 에봇을 가져왔습니다.사무엘상 30:7 · 두루새김

아비아달은 사울이 놉의 제사장들을 죽이게 했을 때 살아남아 다윗에게 도망친 제사장입니다(22:20–23). 그는 이제 다윗 곁에서 하나님께 뜻을 묻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에봇은 제사장과 관련된 의식용 물품으로, 사무엘상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행위와 연결됩니다(23:6–12).

다윗은 곧바로 추격대를 조직하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육백 명의 부하가 있고, 가족을 납치한 적을 향한 분노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군대를 움직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묻습니다.

다윗이 여호와야훼께 물었습니다. 「제가 우리를 습격한 이 무리를 뒤쫓아가야 합니까? 그들을 따라잡겠습니까?」 여호와야훼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뒤쫓아가라. 반드시 따라잡고 반드시 구해 낼 것이다.」사무엘상 30:8 · 두루새김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당연히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길이 무엇인지 확인하려 합니다.

여호와야훼의 대답은 다윗의 두 질문을 모두 받아 주면서, 그가 질문하지 않은 결과까지 알려 줍니다. 다윗은 뒤쫓아갈지, 따라잡을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야훼께서는 따라잡는 데서 끝나지 않고 반드시 구해 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울은 앞 장에서 위기를 맞았을 때 여호와야훼께 물었으나 대답을 받지 못했습니다(28:6). 결국 그는 금지된 방법으로 죽은 사무엘을 찾으려 했습니다. 반면 다윗은 제사장을 통해 여호와야훼께 묻고 응답을 받습니다.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은 모두 절박하지만, 이야기는 그들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를 다르게 보여 줍니다. 중요한 차이는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고, 그 말씀에 따라 움직일 수 있는가에 있습니다.

다윗은 명령을 듣고 출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공을 약속하셨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400명과 함께 계속 뒤쫓아갔습니다. 나머지 200명은 너무 지쳐 브솔 시내를 건너지 못하고 남았습니다.사무엘상 30:10 · 두루새김

본문은 이백 명이 겁을 먹어 도망쳤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명령을 거역했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쳐서 더 갈 수 없었습니다.

이제 사백 명이 추격에 나섭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적이 어디로 갔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주어졌지만, 그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버림받은 이집트 종이 길을 열다

사무엘상 30:11–15 본문 →

추격 중에 다윗의 사람들이 들에서 한 사람을 발견합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그에게 빵과 물을 줍니다. 그리고 눌러 뭉친 무화과와 말린 포도도 먹입니다.

눌러 뭉친 무화과 한 조각과 말린 포도 두 송이도 주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먹고 기운을 되찾았습니다. 사흘 낮과 사흘 밤 동안 음식을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못했던 것입니다.사무엘상 30:12 · 두루새김

다윗은 가족을 구하기 위해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의 부하들은 이미 지쳐 이백 명이나 뒤에 남았습니다. 적이 멀리 달아날수록 가족들을 되찾을 가능성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사람에게 음식을 줍니다.

먼저 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줍니다. 그가 기운을 되찾은 다음에야 다윗이 그의 정체를 묻습니다.

다윗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의 사람이냐? 어디서 왔느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집트 젊은이로, 아말렉 사람의 종입니다. 제가 병이 든 지 오늘로 사흘째인데, 그 때문에 주인이 저를 버렸습니다.」사무엘상 30:13 · 두루새김

아말렉 주인은 병든 종을 버렸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은 그 버려진 종에게 음식을 먹여 기운을 되찾게 했습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사람을 적군이 살린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사람이 시글락을 불태운 습격대의 행방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들이 그렛 사람들의 네게브와 유다에 속한 지역과 갈렙 집안의 네게브를 습격했다고 말합니다(30:14). 이는 아말렉의 공격이 시글락 하나에 그치지 않고 남부 지역의 여러 공동체에 미쳤음을 알려 줍니다.

다윗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나를 그 무리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겠느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저를 죽이지도, 제 주인에게 넘기지도 않겠다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 무리가 있는 곳으로 모시고 내려가겠습니다.」사무엘상 30:15 · 두루새김

그는 다윗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옛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도 두려워합니다. 따라서 그는 길을 안내하는 대가로 돈이나 지위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본문은 다윗이 맹세하는 말을 직접 기록하지 않습니다. 다음 절에서 그가 다윗을 안내했다는 사실만 전합니다.

사람을 버린 아말렉 습격대는 그 버려진 사람을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여호와야훼께서는 반드시 따라잡고 구해 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약속의 실현에는 적에게 버림받은 이름 없는 이집트 젊은이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도 아니고 다윗의 충성스러운 부하도 아닙니다. 오히려 적군의 종이었습니다.

다윗을 성공으로 이끈 결정적인 정보는 강한 전사에게서가 아니라 버림받은 약자에게서 나왔습니다.

잔치를 벌이는 아말렉과 모든 것을 되찾는 다윗

사무엘상 30:16–20 본문 →

이집트 젊은이의 안내로 다윗은 마침내 습격대를 발견합니다.

그 이집트 사람이 다윗을 데리고 내려갔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그 일대에 널리 흩어져 있었습니다. 블레셋 땅과 유다 땅에서 빼앗은 엄청난 전리품으로 먹고 마시며 잔치를 벌이고 있었습니다.사무엘상 30:16 · 두루새김

한쪽에는 굶주린 채 버림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다른 쪽에는 약탈한 것으로 풍족하게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무관한 장면이 아닙니다. 바로 그 잔치를 벌이는 집단이 병든 종을 버린 집단입니다.

다윗은 그들을 공격합니다.

다윗은 해 질 무렵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그들을 쳤습니다. 낙타를 타고 달아난 젊은이 400명 말고는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사무엘상 30:17 · 두루새김

서술자의 관심은 전투 자체보다 그 결과에 있습니다.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간 모든 것을 되찾았습니다. 자기 두 아내도 구해 냈습니다.사무엘상 30:18 · 두루새김

여기서 8절의 약속이 실현됩니다.

어린 사람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아들딸들과 빼앗긴 물건들까지 하나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모두 되찾아 왔습니다.사무엘상 30:19 · 두루새김

2절에서 아말렉 사람들이 「어린 이부터 나이 든 이까지」 사로잡았다고 했는데, 19절에서는 「어린 사람부터 나이 든 사람까지」 모두 되돌아옵니다. 이야기의 시작에 제시된 상실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방식입니다.

성읍은 불탔습니다. 그러나 포로로 잡혀갔던 가족들은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전리품이다」

전투가 끝나자 사람들은 가축을 몰고 가며 외칩니다.

다윗은 그 밖의 양과 염소와 소를 모두 차지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가축들을 되찾은 가축 떼보다 앞세워 몰고 가며 말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전리품이다.」사무엘상 30:20 · 두루새김

이 말은 군사적 승리를 이끈 지도자에 대한 인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곧 일어날 논쟁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이제 사람들은 전리품을 누가 가질 권리가 있는지 따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습니다.

조금 더 깊이

두루새김이 「해 질 무렵」으로 옮긴 히브리어 네셰프(⁨נֶשֶׁף⁩)는 어스름을 뜻하며 저녁이나 새벽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시간 표현까지 고려하면 이 싸움을 저녁 어스름부터 다음 날 저녁까지 이어진 전투로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시작 시점에는 원어상 해석의 여지가 남습니다. 아말렉과 이스라엘 사이의 오랜 적대 관계는 출애굽기 17장 8–16절과 신명기 25장 17–19절에서 확인됩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는 사울이 아말렉을 치라는 여호와야훼의 명령을 받고도 그 명령을 온전히 따르지 않아 책망받았습니다. 그러나 30장에서는 아말렉 사람들 전체를 진멸하라는 별도의 명령이 다윗에게 내려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무엘상 15장의 명령을 이 장에 그대로 옮겨 다윗의 모든 전투 행동을 직접적인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한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 장에서 분명히 주어진 여호와야훼의 명령은 뒤쫓아가라는 것이며, 약속의 중심은 구해 내는 일입니다. 두루새김은 이 가축들을 「그 밖의 양과 염소와 소」라고 하며, 「되찾은 가축 떼」보다 앞세워 몰고 갔다고 옮깁니다. 되찾은 가축과 그 밖에 얻은 가축을 구별하여 읽게 하는 표현입니다. 다만 원문에서는 원래 빼앗겼던 가축과 아말렉 사람들에게서 새로 빼앗은 가축을 정확히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해석의 여지가 남습니다.

브솔 시내에서 드러난 공동체의 진짜 위기

사무엘상 30:21–25 본문 →

다윗은 승리한 부하들과 함께 브솔 시내로 돌아옵니다.

다윗은 브솔 시내에 남겨 두었던 200명에게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너무 지쳐 다윗을 따라가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맞으러 나오자, 다윗은 가까이 가서 안부를 물었습니다.사무엘상 30:21 · 두루새김

그들이 끝까지 싸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했는지 보고하라고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윗과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을 따라갔던 사람들 가운데 악하고 못된 자들은 저마다 말했습니다. 「그들은 나와 함께 가지 않았으니, 우리가 되찾은 전리품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겠어. 각자에게 아내와 자녀들만 돌려주고, 그들을 데리고 떠나게 하자.」사무엘상 30:22 · 두루새김

「악하고 못된 자들」이라는 표현은 그들의 주장을 서술자가 중립적인 의견 차이로만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이백 명도 시글락이 불탔을 때 함께 울었고, 가족을 잃었으며, 추격에 나섰다가 힘이 다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따라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른 동료들보다 못한 위치에 놓일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말렉에게서 가족들을 되찾은 공동체가 이제는 내부에서 서로를 밀어내려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윗이 말했습니다. 「내 형제들아, 여호와야훼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그렇게 나누어서는 안 된다. 그분께서 우리를 지켜 주셨고, 우리를 습격한 무리를 우리 손에 넘겨주셨다.」사무엘상 30:23 · 두루새김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은 「우리가 되찾은 전리품」이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야훼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인간의 수고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사백 명이 추격했고, 싸웠으며,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고가 모든 결과의 유일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승리를 자신들의 소유라고 생각하면 함께하지 못한 사람을 밀어낼 이유가 생깁니다. 그러나 승리를 여호와야훼께서 주신 선물로 이해하면 함께 나누어야 할 이유가 생깁니다.

「이 일에서 누가 너희 말을 따르겠느냐? 싸우러 나간 사람이나 짐 곁에 남은 사람이나 같은 몫을 받아야 한다. 함께 나누어야 한다.」사무엘상 30:24 · 두루새김

30장 10절에서 이백 명은 지쳐서 시내를 건너지 못했다고 했지만, 다윗은 이제 그들을 「짐 곁에 남은 사람」에 포함시킵니다. 당시 군사 활동에서 물품과 장비를 지키는 일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역할이었습니다. 다윗은 전투에 참여한 사람과 뒤에 남은 사람을 공동체에 기여하는 서로 다른 역할로 인정합니다.

다만 30장 자체는 그 이백 명이 실제로 어떤 물품을 얼마나 지켰는지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그들의 지친 상태를 전리품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근거로 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전리품을 독차지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는 그들을 곧장 쫓아내거나 적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같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행동을 바로잡습니다.

그의 목표는 한쪽을 이기게 하고 다른 한쪽을 패배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의 공동체로 남게 하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한 번의 배려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날부터 이것을 이스라엘의 법과 규칙으로 삼았습니다. 이 법과 규칙은 오늘날까지 이어졌습니다.사무엘상 30:25 · 두루새김

사무엘상은 다윗이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이스라엘의 법과 규칙으로 기억될 만한 원칙을 세웠다고 기록합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졌습니다」라는 표현은 이 법과 규칙이 이야기의 서술자 시대까지 이어졌다는 뜻입니다.

아말렉 주인에게 병든 종은 쓸모를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전리품을 독차지하려는 다윗의 일부 부하들에게 지친 이백 명도 승리에 기여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두 경우 모두 사람의 가치를 현재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로 판단하려는 태도가 나타납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백 명을 다르게 대합니다.

그들은 끝까지 싸우지 못했지만 여전히 자기 형제들입니다. 그들의 가족도 함께 구원받아야 하고, 그들에게도 공동체의 몫이 돌아가야 합니다.

그가 어떤 왕이 될지 알려 주는 것은 오직 전투에서의 승리만이 아닙니다. 승리한 뒤 공동체 안의 힘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도 그의 통치 방식과 성품을 드러냅니다.

조금 더 깊이

앞서 8절에서 여호와야훼께서는 반드시 구해 낼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18–19절에서 다윗은 모든 것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22절에서 전사들은 자신들이 그것을 되찾았다고 주장합니다. 원문에서는 이 과정에 같은 낱말이 되풀이됩니다. 전리품을 전투에 참여한 사람 외의 공동체 구성원과 나누는 생각은 이미 민수기 31장 27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는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과 나머지 회중 사이에 전리품을 나누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나눔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처음 만들어 냈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사무엘상 30장은 다윗이 자기 부하들 사이에서 그 원칙을 명확히 세우고 이스라엘의 법과 규칙으로 삼았다고 전합니다. 30장의 규칙은 구체적으로 전투에 참여한 사람들과 짐 곁에 남은 사람들 사이의 전리품 분배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규칙을 오늘날 모든 노동과 보상의 상황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시글락에서 유다로 — 전리품이 선물이 되다

사무엘상 30:26–31 본문 →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다윗은 자기 부하들 사이에 공평한 분배 원칙을 세운 지도자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다윗은 시글락으로 돌아와 자기 친구들인 유다의 장로들에게 전리품 일부를 보내며 말했습니다. 「여러분께 드리는 선물이에요. 여호와야훼의 원수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이에요.」사무엘상 30:26 · 두루새김

그는 전리품을 단순히 자기 재산으로 쌓아 두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선물로 바꾸어 보냅니다.

전리품이 전쟁터에서 벗어나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잇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유다 출신이며,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전히 사울을 피해 블레셋 땅에 살고 있습니다.

본문은 그 대상들을 「자기 친구들」이라고 부릅니다. 이어지는 명단에는 벧엘, 라못네게브, 얏딜, 아로엘, 에스드모아, 호르마, 헤브론 등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모든 지명을 하나로 묶는 설명이 나옵니다.

헤브론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다윗과 부하들이 돌아다녔던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사무엘상 30:31 · 두루새김

그동안 다윗이 도망자로 살아오며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과 지역들이 여기에 나타납니다. 다윗의 광야 생활은 끊임없이 이동하는 불안정한 시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유다의 여러 공동체와 연결되는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행동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다윗은 자신이 얻은 것을 부하들 안에서만 쓰지 않고 더 넓은 공동체와 나눕니다. 전쟁의 성과가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둘째, 이 행동은 다윗과 유다 지역 지도자들 사이의 관계를 더욱 굳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2장 1–4절에서 사울이 죽은 뒤 다윗은 헤브론으로 올라가 유다 사람들에게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다만 다윗이 오직 왕이 되기 위해 계산적으로 선물을 보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은 그가 친분을 맺고 있던 사람들에게 선물을 보냈다고 기록할 뿐, 그의 속마음을 상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감사와 친밀함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관계를 강화하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일은 개인적인 호의와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함께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말렉은 여러 지역에서 재산을 빼앗아 한곳에 모아 놓고 잔치를 벌였습니다. 다윗은 그들에게서 얻은 전리품을 다시 여러 지역의 사람들에게 보냅니다.

아말렉의 움직임은 빼앗아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움직임은 되찾아 나누는 것입니다.

물론 다윗도 전쟁을 통해 전리품을 얻었으며, 그 과정의 폭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서술자는 그가 전리품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마지막에 길게 기록함으로써, 승리 이후의 행동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야훼의 원수들에게서 빼앗은 전리품」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맥에서는 이스라엘을 습격해 재산과 사람들을 빼앗은 아말렉 사람들이 그 대상입니다. 이 표현을 시대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자신과 대립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원수로 규정할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조금 더 깊이

여기서 「선물」로 옮긴 히브리어는 브라카(⁨בְּרָכָה⁩)입니다. 기본적으로 「복」 또는 「축복」을 뜻하는 말이지만, 문맥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선물이나 호의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실제로 전리품을 보내고 있으므로 「선물」이라는 번역이 자연스럽습니다. 사무엘상 8장 11–18절에서 사무엘은 백성이 요구하는 왕이 그들의 아들들과 딸들과 밭과 재산을 자기 것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 경고에서 왕의 권력은 백성의 것을 가져가는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30장의 다윗은 전리품을 자기만의 재산으로 움켜쥐지 않고 부하들과 유다의 여러 공동체에 나눕니다. 두 본문은 직접적인 인용 관계에 있지는 않지만, 이스라엘이 어떤 왕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큰 주제 안에서 의미 있게 대비됩니다. 물론 이것이 다윗이 앞으로도 언제나 그렇게 행동하리라는 보장은 아닙니다. 사무엘하의 이야기는 다윗 역시 권력을 잘못 사용할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그렇기에 이 장은 다윗이라는 인물 자체를 무조건 이상화하기보다, 그가 이 순간 보여 준 좋은 통치의 모습을 주목하게 합니다.

맺음 — 브솔 시내에 남았던 사람들

사무엘상 30:1–31 본문 →

전리품의 분배는 단순히 효율이나 보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해 주신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은 것을 서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다윗은 아말렉에게서 사람들을 되찾았고, 이어서 그 사람들이 서로를 버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본문의 마지막은 여러 지역으로 보내는 선물 목록이지만, 그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 다윗의 태도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 주는 장면은 브솔 시내에 있습니다.

사백 명이 승리하고 돌아옵니다. 이백 명은 그들을 맞으러 나옵니다.

그 이백 명은 전투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지쳐서 더는 갈 수 없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에게 다가가 안부를 묻습니다.

얼마 뒤 누군가 그들에게는 전리품을 주지 말자고 말했을 때, 다윗은 반대하는 이들을 「내 형제들아」라고 부르며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여호와야훼께서 주신 승리는 끝까지 달린 사람들만의 소유가 아니었습니다. 브솔 시내에 지쳐 남아 있던 사람들도 함께 누릴 선물이었습니다.

한 저자가 장을 따라 어려운 대목을 풀어 가며 쓴 글입니다. 여러 읽기를 나란히 놓는 자료와 달리 한 사람의 읽기를 따라갑니다. 편집 교정과 사실 검수를 거쳤고, 인용한 성경은 두루새김 본문입니다.